만화가 정훈이

지금부터 만화가 정훈이 씨를 만나러 가겠습니다. 다들 아시죠? 정훈이 씨는 <씨네21>에 <만화 vs 영화>를 6년째 연재하며 기발한 아이디어와 유머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분이죠. 어떤 생각으로 뭘 그리고 있는지 얘기를 들어볼 참입니다. 만화가를 만나서 얘기를 듣는 일은, 만화에 대한 이런저런 상식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만화를 그리는 사람의 얼굴을 그려보는 데 초점을 맞춰보는 일이지요. 엉뚱하고 기발한 만화의 정훈이는 과연 어떤 모습인가. 우선 그의 만화 중에서는 가장 애절한(?)한 부분으로 제게는 비춰졌던 원고료 인상에 관한 얘기로 허두를 뗐습니다.

1. 나는 황당무계한 감초

  

면식범 : 제일 궁금했던 것인데, 원고료가 얼마나 되길래 원고료 얘기가 만화내용에 그렇게 자주 나오는가요.

 

정훈이 : 원고료 인상문제가 만화의 소재로 두어 번 정도 만화에 나온 적이 있어요. 노동 쟁의처럼 띠를 두르고 나오는 경우도 있긴 했죠. 그런데 다른 만화 잡지에 비해 적게 받는 편은 아니에요. 그냥, 사실, 사람 살면서. 가장 민감하면서 진솔할 수 있는 부분이 돈 문제 같아요. 그냥 재미 차원에서 해본 겁니다. 한겨레에서 받는 고료로 치면 많이 받는 편입니다. 전에는 편당 3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인상되서 40만원 받아요. 다른 만화보다는 많이 받는 편이죠. 그런데 우리는 그런 거 말고는 고정적인 수입이 많지 않으니까. 많은 건 아닙니다.

 

  

면 : 화실 운영에 무리가 있겠네요.

 

정 : 그렇죠. 이 공간 운영은 지금은 그냥 같이 밥만 먹고 있는 거예요. 특별히 월급 고정적으로 주는 처지는 아니고. . 특별히 밥먹고 하는 거 말고는 하는 게 없죠. 저 같은 경우는 어쩌다가 한번 광고, 홍보 만화 같은 게 들어오는 게, 그건 패이가 쎄거든요. 그거 들어오면 나눠 쓰고 그러죠.

 

  

면 : 정훈이 씨는 <씨네 21>에서 위치가 큰 것 같은데, 어떻게, 실감하고 계신가요?.

 

정 : 저는 아직 별로. 요즘은 한겨레에 자주 못가요. 예전엔 원고 갖다주러 매일 가다시피 했는데 요즘은 인터넷으로 보내니 갈 일이 없어서니까. 인기나 위치나 그런 거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 안 해봤어요.

 

  

면 : 정훈이 씨는 이른바 명랑 만화체로서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인 것 같습니다. 명랑만화에 대해 불만이나 혹은 자부심 같은 건 없나요?

 

정 : 처음에는 그런 거 생각하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원래 잡지의 성격은 영화 잡지라 저 역시나 감초 이상의 역할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죠. 처음에는 걱정이 더 많이 앞섰었어요. 그 당시, 지금도 변함없는데, 만화를 그리는 가치관이라고 해야되나, 좀 황당무계한 것을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씨네 21>자체에서 처음 청탁을 받았을 때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런 얘기하면 좀 그런데, 먹물들도 많이 있고, 자칫하다가 공격당하는 거 아닌가. 또 그것보다… 여기서 이런 황당한 얘기하면 돌 맞는 거 아니냐.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그러다가 반대 개념이 들었죠.

“야, 내가 봐도 이 잡지는 어렵고, 또 신문사 특징상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많을 텐데, 차라리 여기서 나 혼자 황당무계한 얘기나 하고 영화를 내 맘대로 조작하고 그러면 어떨까.” 그렇게 했는데, 오히려 반응이 좋아서..  기대보다 뜬 거 같아요.

 

 

 

면 : 굉장히 뜬 거 아닙니까. 잡지만큼 정훈이 씨의 인기는 대단한 것 같은데요?

정 : 저도 잡지 덕 좀 본 거죠.

 

 

 

면 : 그리고 잡지에 격호로 연재되는 연상퀴즈. 그거 너무 어려운 거 아닌가요.

 

정 : 그게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벌어지는데, 맞추는 사람은 계속 맞추는데, 그런 사람은 너무 쉽다고 하는데, 어렵다고 하시는 분이 있어요. 그런데 그건 주관식이 아니라 객관식이에요. 뒤의 20자평이나 개봉관 표를 보면 거기서 다 나와요. 개봉관 표에 안나오는 영화는 한번도 안 했어요. 언젠간 개봉영화표에 안 나오는 걸로 허를 찔러볼까 생각중이죠.

 

  

면 : 만화는 어쩌다가 시작하게 됐습니까.

 

정 : 만화라는 게, 직업적인 목적을 가지고 하려고 한 것은 아마 만화가가 되기 직전이었는지 몰라요. 그전에 만화를 많이 보지는 않았거든요. 만화광처럼 작가를 꿰고, 연보를 외우고, 이렇지는 않았습니다.   제 만화가 길창덕, 윤승운 선생 같은 소위 명랑만화잖아요. 그러니까. 명랑만화는 원래 작품을 만들어낸다기 보다는 생활습관에서 나오는 거 아닌가요. 예를 들면 메모지 같은 종이의 여백이 있으면 가만히 못 있고, 어떻게 해서 그림을 그려 이야기를 채워나가잖아요. 그래서 교과서니 참고서니, 수업시간이든…하얀 여백만 보이면, 무조건 그렸던 거죠. 그런 것이 습작이나 다름없었죠.

 

그러다가 그냥 만화 그리자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걸 이제는 생활로 삼고, 남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이 만화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작가와는 다른, 불순한 생각을 가지고 시작한 거죠. 그래서 만화학원엘 다녔는데 5개월 정도 다녔습니다. 고향이 창원인데 상경해서 아르바이트하면서. 5개월 다니고 군대에 갔죠. 제대를 하니까 실업자였습니다. 백수가 되어있더라구요. 그때부터는 공모전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운좋게 첫 번째 공모전에서 입상을 했죠. ‘리모코니스트’라고. 그런데, 또 운좋게, 창간한지 얼마 안된 <씨네21>에서 그걸 보고 청탁이 들어온 겁니다. 그래서 인터뷰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고 바로 원고청탁을 받았습니다. 나에게는 행운이네요.

 

 

 

면 : 만화의 첫발걸음이 아직까지 유지되는 건가 봅니다.

 

정 : 그런 셈이죠.

 

 

 

정훈이의 만화는 6년이라는 비교적 긴 시간에 비해 작품 활동은 많지 않은 편입니다. <만화 vs 영화> 이외에 사보에 연재했던 <빌리지피플>, <비디오킹> 처럼 비슷한 포맷의 연재물이 전부입니다. 그 외에 본격적인 잡지 연재물은 삼국지를 패러디한 <트러블 삼국지>가 있는데, 이 작품은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만화잡지를 열독하는 분들이 아니라면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면 : 이전의 작품 <트러블 삼국지>는 어땠습니까, 실패였던가요?

 

정 : 저로서는 ‘중단’이라고 봅니다. 시간이 좀 지났는데, 지금 <트러블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연재할 때 보다 늘었다고 해야하나? <트러블 삼국지> 재밌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제가 생각할 때도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말로 풀어가는 코메디로서는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중단하게 된 이유는 하나입니다. 제 스스로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이 풀어내지 못한다는 생각에. 원래는 삼국지를 가지고 캐릭터를 바꾸어 가면서 재밌게..만들면서 이야기 틀을 지켜나가자고 했는데, 자꾸 벗어났어요. 이야기가 딴 데로 흐르더라구요. 그리고 그때 좀 2년 좀 넘었는데 지치기도 했고. 인기순위도 밑바닥이었기 때문에 내가 그만 둔다니까 잡지사에서 말리지도 않고 새출발하라고 그랬죠.

 

그리고 타겟도 안 맞았어요. 그 잡지는 청소년 상대잡지였는데, 요즘 청소년이 개그만화 보나요, 그림 멋있는 것만 보지. 그러니 밑바닥을 헤매지. 그래도 성인들은 좋아해요. <트러블 삼국지>는 접었지만 삼국지를 가지고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안 접었어요. 그래서 다시 시작할거예요.

 

 

 

면 : 캐릭터가 단순하지 않나 생각하는데요, 다들 단발성 캐릭터이지 않는가요. 삼국지를 이끌 캐릭터치고는 좀 그렇네요. <만화 vs 영화>는 그렇지만 장편을 이끌 캐릭터는 약해 보이는데요.

 

정 : 그래요. 삼국지는 등장인물만 1000여명입니다. 그리고 새로 나오는 장수 그리기가 예삿일이 아니었죠. 그리다 보니 모두 같은 사람이었죠. 수염만 바꿔 달고 나오고 다 똑같은 사람이어서 정말 철저히 준비 안 하면 힘들구나 느끼면서 고우영 삼국지를 보니까. 아 대단하다는, 캐릭터가 하나하나 묘사되는구나… 그래서 중단했고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면 : 지금 <만화 vs영화>의 캐릭터- 그러니까 남기남과 씨네박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정 : 남기남은 저랑 비슷해요. 살아가는 모습이 비슷하고. 시네박은… 예전에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나이는 많은데 나이값 못하고 푼수짓 하는 그런 중년. 약간 느끼하기도 하고 그런 인물을 묘사했는데, 우연히 하다보니 나온 겁니다.

 

<씨네21>은 두 명의 캐릭터뿐이지만 더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없어요. 두 명이 주인공이고 두 사람이 역할을 맡아서 모든 걸 다 하기 때문에 그 작품은 두 캐릭터의 버디입니다. 두 사람이 책임지고 이끌기 때문에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은 없을 거예요. 아마 그런 일이 있을 거 같으면 문을 닫을지 모르죠.

 

<씨네21>은 지금 6년 정도 지났습니다. 그래서 반응이 반반 정도인 거 같아요. 변화를 바라기도 하고 변화하지 않고 계속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후자 쪽이에요. 저는 엽기 문화를 싫어해요 그런 문화보다는 그냥 전에 누군가 그런 말을 했는데. 소년을 두부 사러 보냈는데 두부는 안 사오고 과자 사오는 만화 같다. 그랬는데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2. 명랑만화를 생각한다.

 

 

 

면 : 다른 작가에게서 영향을 받은 부분은 있나요?

 

정 : 김수정 선생을 참 좋아하고, 윤승운 선생은 어렸을 때 참 좋아했어요. 그리고 도리야마 아키라, 그 사람의 만화를 좋아해요. <닥터 슬럼프>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아기자기 하면서도 황당한 것이 좋아요. 그래서 도리야마가 많은 것을 영감을 준거 같아요. 이야기를 말로 대사로 풀어가는 것은 김수정 선생의 영향을 받은 겁이다.

 

 

 

면 : 독자들은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그림체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데 자신에 그림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림만 보면 단조롭고 표정이 단순하지 않나요?

 

정 :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사실상 몇 개 컷만 되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어요. 표정이나 동작이 한 만화에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데 그것은 그릴 때마다 달라집니다. 화를 내고 있거나 울고 있거나 하는 표정이 만화를 그릴 때 느껴서 그리기 때문에 미묘한 차이가 있는 거죠. 수십 개의 기본 컷만 그리고. 그걸 컴퓨터로 조합해서 만들면 한 작품 만들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한다면 사람들은 대번에 알 거예요. 똑같은 장면이라도 그리는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는 거니까. 

 

 

 

면 : 김수정 선생이라면 새 만화마다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정훈이 씨에게서도 그런 새로운 작품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기대하는 사람이 많아 보이는데요.

 

정 : 그야 당연하죠. 근데 작품이 더 없으니까. <씨네 21>에는 그 두 명이 주인공입니다. 새 작품에는 다른 캐릭터가 나올 거예요. 머릿속의 캐릭터는 10여 개 있어요. 외모가 아니라. 성격이 다른 거죠. 그들이 적당한 때 나타나야 하는데 작가라는 작자가 작품을 안하고 있으니 못 나오고 있는 거죠. 언젠가는 그 친구들을 불러내야죠. 대신에 그림체에는 변화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캐릭터를 붓 가는 대로 그려왔어요. 그리고 배경이 많이 생략됩니다.

 

 

 

면 : 1회 연재분을 그리는데 드는 시간은 어느 정도인가요?

 

정 : <씨네21>은 생각은 늘 하는 것이고, 꼭 책상 앞이 아니라도 순간순간 생각하고 있다가 결국 마감날까지 버티다가 그때서야 그립니다. 그러다가도 좋은 생각이 나면 그리다가도 바꾸기도 하구요.

나는 퇴고나 수정은 거의 없는 편입니다. 그래서 오타도 많고 그리다 만 컷도 들어가죠. 남들은 무성의하다고 말들은 많이 하는데, 어찌 보면 그걸 즐겨요. 즐긴다고 해야하나… 콘티, 극본, 이런 건 없어요. 순간순간 잡히면 그리니까.

명랑만화라는 것의 매력은 사실 이런 즉흥성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단순하고 정교하지 않은 그림체에서 친근감을 느낀다고 해야하나, 요즘의 손이 많이 가는 만화들과는 다른, 옛날 만화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오래된 습관 같은 만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면 : 어시스턴트는 얼마나 두고 일합니까.

 

정 : 지금은 거의 없습니다. 색깔넣는 일만 한 친구가 전문적으로 맡아서 하고 있구요. 

 

  

면 : 명랑만화의 특성상 많은 손이 필요하지 않은 건가요?

 

정 : 그렇죠. 극화체는 손이 많이 가요. 명랑만화는 진득하게 준비하면 오히려 재미없을 거에요. 작가의 순발력이 폭발하는 그런 게 중요하니까, 바로바로 붓가는 대로 그리는 그 맛에 있을지도 모르죠. 어떤 사람은 장편이나 대작을 준비 안 하냐고 그러지만, 명랑만화는 장편이나 대작이 나오기 힘들어요. 명랑만화의 역할이 감초처럼 존재하다가, 그게 처음 볼 때는 일회성인것 같지만 나름대로의 이야기,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다 들어있기 때문에 그것을 큰 작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면 : 그것이 명랑만화를 그리시는 이유겠죠?

 

정 : 그렇죠. 그리고 만화는 과장되었을 때 더 진실해 보여요. 지금 사실 만화를 많이 보는 세대와 명랑만화는 동떨어져 보입니다.

 

 

 

면 : 게다가 명랑만화를 그리는 분도 거의 없고.

 

정 : 지금 다른 만화는 너무 비슷해요. 90년 중반 넘어오면서 만화가 스토리는 없어지고. 그림만 멋있는 만화가 많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그림만 멋있는 만화가 되어버렸습니다. 2,3년만 지나면 그런 건 휴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마 김수정 선생님인가 이런 말을 신문에서 한 걸 봤습니다. ‘우리는 스토리에 대해 아직 고민한다. 이것이 이야기가 되느냐 스토리성이 있느냐 하는 것에 고민을 했는데, 요즘에는 멋있는 그림만 좋아하고 작가는 그것만 그린다.’ 그래서 요즘에 만화를 그리면서 너무나 힘들어서 못 좇아간다고 말한 적이 있거든요. 물론 요즘의 주소비층, 젊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면 힘들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일 테구요.

오히려 <씨네 21>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은 행운일 겁니다. 그런 매체를 떠나서는 사실상 환영받지 못할 수 있거든요. 근데 그림이 멋있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촌스러워집니다. 스토리 없는 것이 시간이 지나도 남을 수 있을까요. 신데렐라는 이야기가 재미있으니까. 21세기에도 재미있게 읽히는 거잖아요.

 

 

 

면 : 어떤 이야기를 그리려고 하는가요.

 

정 : 특별한 건 없습니다.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 여고생들 이야기도 그리고 싶고. 가장 그리고 싶은 건 실업자 백수들 이야기죠. 백수를 우습게 보는 것은 아니구. 동질감도 느끼고 있거든요.. 나도 밖에 나가면 남들은 전부 백순 줄 알아요.

 

사람 사는 모습을 그린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를 그린다는 오래된 구절이 얼마나 지난(至難)한 것이었는지는 다른 예를 들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만화에서는 그것은 명랑만화, 혹은 황당한 코메디에서만 가능한 얘기일까요. 정훈이 씨의 황당무계한 만화는 실제세계에 더 가깝게 다가가는 한 걸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3. 교과서가 만화라면…

 

얘기가 이쯤까지 나갈 무렵 또 생각의 나쁜 습관이 튀어나와 버렸습니다. 제 스스로 만화에 대한 오해를 만화가에게서 풀어보고자 하는 그런 건데, ‘만화가란 어떠 어떠해야 한다’는 생각의 틀을 정훈이 씨에게도 비춰보고 싶어진 겁니다. 국정홍보처에서 발행하는 월간만화잡지, <야호코리아>에 를 연재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그걸로 시비를 걸어보려고 했습니다. 말고도 정훈이 씨는 잡지의 성격에 부합하는 홍보만화를 가끔 올리곤 합니다. 잡지를 보고싶은 분은 국정홍보처 홈페이지를 찾아가시거나 가까운 동사무소, 파출소, 군부대를 방문하시면 됩니다.

 

 

면 : 지금 또 하나 연재 중이신 <야호코리아>에 대해서 물어볼게요. 일종의 관변 잡지라고 볼 수 있는데. 불안하지 않습니까? 거기에 그리게된 경위는 어떤 건가요?

 

정 : 면식범 씨는 그런 게 아닐까요. 이데올로기에 대한 피해 의식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거 말이지요. 저 역시도 없는 건 아닌데, 사실 소개시켜 주신 분이 한겨레에 계신 분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그린 건 규제 개혁에 관한 60페이지 정도의 책입니다. 초판 50만 부 찍고 1주일 뒤에 50만부 더 찍었죠. 한국 만화역사에서 이런 일은 없을 거예요. 국민의 정부 1년 반 지나고 홍보차원에서 나온 겁니다. 그 책이 나가고 국정홍보처에서 만화의 위력을 실감한 거 같았어요. 그거 나가고 많은 문의 전화가 왔다고 하더라구요. 관심 가지고 전화가 온건 처음이었다고 담당자들이 말하더군요. 거기 처장으로 계신 분이 동아일보 계시기도 했었는데, 만화책으로 정기적으로 홍보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와서 그렇게 시작된 거죠.

 

 

 

제 질문은 사실 만화 내용에 관한 것이 아니었는데, 대답은 좀 민감하게 나오기 시작해서, 저로서는 조금 민망했다고 해야하나, 그래도 끝까지 듣고 다음 질문으로 넘기기로 했습니다.

 

 

 

만화가들이 왜 그런 데에서 그리냐고 묻는데, 생각해보면 만화는 작품이라고만 강요받을 수 없어요. 만화의 기능성도 인정해줬으면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어요. 많은 작가가 만화를 활용하면 좋은 부분도 많아요. 교과서가 만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만화가 읽히는 기능성으로 인정받는 것이 오히려 그런 관변지였던 것이죠.

 

정부의 나팔수가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작가도 스스로 그 문제를 생각하고 있고, 저 역시도 마찬가지죠. 생각이 다른 건 안 그리죠. 야호코리아의 처장님도 ‘이런 건 정훈이 시켜..’ 이런 말을 하는데 나는 그런 건 나와는 논조가 틀리다, 나는 여기에서는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건 안 그리거든요. 작가로서 그런 면은 있지만. 정부 홍보에 만화가 그려진다는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죠. 오히려 세상이 좋아져서 경찰서나 관공서의 캐릭터를 그렸으면 좋겠습니다.

 

 

 

면 : 저도 물론, 뭐. 질문의 요는 그게 아니라 스토리 주제가 정해진 것에 기능을 더하는 일이 만화가로서는 어떤가 하는 것이었죠.

 

정 : <씨네21>이나 거기서나 만화가 나오는 과정은 비슷해요. <씨네21>도 한편의 영화를 주제로 놓고 그려 내는 거잖아요. 어떻게 풀어내는가가 작가의 역할이고 기술입니다. 정부에서 그리더라도 그다지 자료를 내주는 건 아니에요. 정부에서 하지만 민간에서 컨펌받아서 나오는 거라 공무원들이 하나하나 따지는 일이 없어서 오히려 편하죠. 그리고 를 그려왔는데, 거기선 내가 나혼자 똥배짱 부리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조남준 씨와 함께 가장 ‘홍보’와는 거리가 먼 만화를 그리고 있는 거죠.   그래도 잡지에는 제가 그린 홍보만화가 계속 몇 페이지씩 들어가는데 그게 2년 전에 그렸던 60페이지 짜리 책에서 떼오는 거죠.

 

 

 

면 : 야호 코리아에서 그림 그리기가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으신 거군요.

 

정 : 하나 중요한 게 있는데, 그림 그리는데는 공무원이 가장 편해요. 기업체는 아니에요. 사공이 너무 많아요. 그게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작가가 가면 자존심 상하는 부분이 많아요. 아이디어 회의 미팅한다고 오라고 하면 싫을 때가 많아요. 작가로서의 예우나 이런걸 떠나서, 나에게 어떻게 하는 건 상관없는데, 그림에 대해서 뭐라고 그러냐면, “눈이 모였네, 다리가 짧네…”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 안 좋죠.

 

 

 

면 : 만화의 기능성과 예술성이라는 문제를 한번 물어보고 싶어서 야호코리아에 대해서 물어본 건데요. 정훈이 씨의 만화가들의 견해가 일반적인 생각일까요?

 

정 : 만화가 예술로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에 몰입하는 경우도 있는 거 같아요. 예술이라는 강박관념 같은 거죠. 인정 못 받기 때문에 가식적인 것으로 변하는 것도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만화라는 자체가, 예술작품을 만드는 사람도 있지만, 모든 만화가 그럴 필요는 없어요. 나처럼 명랑만화 그리는 사람한테 대단한걸 요구하면 안되죠. 나는 사람들을 재미있게 하는 걸로 만족합니다. 그 속에 해학이나 풍자가 있다는 평가도 전부 읽는 사람의 몫입니다.

이런 편지를 받은 적이 있어요. “헤어진 사람인데 3년 전에 연애할 때 같이 보던 만화인데…  그 사람은 없어도 정훈이 씨 만화를 보면 그 사람 생각난다”, “언니가 좋아한 만화였는데 지금은 이 세상에 없다”, 이런 건데…… 저는 이게 너무 좋아요. 그것 자체로 제 역할은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만화가 그 사람들에게 하나의 생활로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튀거나 특별하거나 그렇지 않고 그냥 읽고 즐거우면 나는 됐어요.

 

 

 

면 : 당신은 ‘만화가로서 욕심이 없다’고 말한다면 실례일까요…?

 

정 : 아뇨. 그리고 능구렁이처럼 큰 욕심이 하나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죠.

4. 100만원짜리와 100억짜리

 

 

 

면 : 다른 작품에 대한 구상은 없습니까?

 

정 : 잡지에서 여러 군데 청탁이 들어오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2년째 안 한다고, 어떤 거든지 거부하고 있어요. 배부른 소리일수 있어요.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걸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거예요.

 

 

 

면 : 어떤 걸 하고 싶어 하시는 건데요?

 

정 : ‘도나스’라고 하는 웹상의 가상마을을 지금 준비중입니다. 일종의 플래시 애니메이션인데, 플래시 애니매이션에 대해서도 좀 어려운 상황이예요. 대학에서 플래시 애니나 그런걸 강의하긴 하지만 작년과 올해가 너무 달라요. 작년에는 플래시 애니가 가능성이 무궁할 것처럼 말하다가 새로운 대안으로도 받아들여졌는데. 지금은 그걸 3류로 만들어 버렸어요.

 

개나 소나 그렇게 아무렇게나 만들어서 좋은 작품이 나와도 3류 취급당하죠. 다양한 얘기로 플래시를 내놓는 데가 있는데 사람들이 그걸 자꾸 헐값 취급하려해요. 한 1년 정도 준비한 게 있는데, 그래서 막상 하려고 해도 내 놓기가 어려워요.  

 

 

 

면 : 애니매이션으로 만들어진 가상마을이라.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정 : 가상마을입니다. 사이트 전체가 애니메이션화 되어서 이야기를 이끄는 겁니다. 한 마을이 있으면 길이 있고 나무가 있고 집이 있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계속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 그런데 지금 상태는 기술적으로도 일반 회사 홈페이지 정도를 벗어나지 못한고 있어요. 그리고 오픈해도 뒷감당하기가 힘들어요. 계속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도 한 두 명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필요한 거고, 그렇다고 돈을 벌 장치도 없는 상태이거든요. 그냥 좋아서, 이런 거 재미있을 거 같아서 하는 거예요. 마을에 들어와서 인사도 나누고 서로 다투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또 뭐 가게 들어가서 물건도 사고 그런 거… 그냥 어드벤쳐죠.

 

 

 

면 : 말하자면 게임 같은 것이군요.

 

정 : 그렇죠. 게임 같이 다마고치처럼 캐릭터들이 살아가고. 매일 매일 바뀌고 하는 것들 만들려고 2년 가까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면 : 엄청난 돈과 인력 시간이 필요하겠군요. 현실적으로, 지금 구상하고 계신 건 언제쯤 구체적으로 드러날까요?

 

정 : 그런 건 없어요. 빨리 돈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뭐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잖아요. 일단 회사 만들고 사무실 열어서 인테리어 갖추고. 그래놓고 도망가잖아요.

예전에 투자를 받으러 간 적이 있었는데요, 내 얘기가 모 신문사 기자에게 얘기가 들어가서. 연줄을 통해서 재미교포 어느 회장님에게까지 연결되었어요. 그래서 라마다르네상스 호텔에서 만났습니다.

호텔에서 회장님 만난 얘기는 이렇답니다. 만화주인공 같은 영감님의 질문은 2가지, “자네 왜 그 일하나, 그 일 하는데 얼마 드나?” 두 번째 질문에서 정훈이 씨는 “100억 있으면 100억짜리 만들고 100만원 있으면 100만원짜리 만들죠”라고 그다운 배짱을 부렸답니다. 거기서 영감님은 투자를 제안했고, 세계적인 것 하나 만들라는 당부인지 주문인지를 들었답니다.

 

처음엔 어안이 벙벙하더라구요. 뭐하는지도 모르고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래서 하룻밤만 자고 생각해보자, 원래 암만 좋은 아이디어도 하룻밤 지나면 재미 없어지는 게 있잖아요. 그래서 하룻밤 지나니까 싫더라구요. 왠지 찜찜하고. 안좋다. 그래도 인생의 기회일수 있잖아. 생각하고 하루만 더 지내보자. 그래서 다음날이 되었는데 더 찜찜하더라구요. 그리고 하룻밤 더 자고 나서 3일째 되는 날 일어나서 바로 전화를 걸었죠. 나 안 할래요, 그랬죠. 근데 지금 생각도 정말 잘했구나 생각해요. 그때 투자를 받았으면 내가 하고 싶은 거 못 했을 거예요. 어쩔 수 없이 만들어야하는 것만 만들었겠죠.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으면, 내가 하고 싶어하는 거 생각나는대로 순간순간 하는 게 좋아요. 기약도 없이. 언젠간 만들어지겠지 하면서요. 투자를 받았다면 회사부터 차렸겠죠.

 

면 : 기약 없는 프로젝트가 불안하지 않은가요.

 

정 :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데, 워낙에 성격이 낙관적이고 여유만만 그런 거 있잖아요. 그래서 사무실 꾸려나가면 친구들이 오히려 불안해하더군요. 당장 월세 낼 돈도 없잖아, 그러지만 뭐 그때 되면 또 어떻게 되겠죠.

 

 

 

면 : 돈 뿌리쳐가면서 자기 일한다는 게 부럽네요.

 

정 : 그때 가장 중요한걸 잃어버릴 수도 있었어요. 돈이야, 우리 같은 경우, 돈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만들 수 있는 거니까. 100억 있으면 100억짜리 만들고 100만원 있으면 100만원짜리 만들 수 있는 것이었거든요. 돈을 받았으면 강박관념에 시달렸을거 같아요.

 

 

 

면 : 가상마을이 하루빨리 나왔으면 좋겠네요.

 

정 : 저도 그런데 자꾸 만들었다가 없애요. 일년동안 마을의 틀을 잡았다가. 다른데 보니까. 똑같은 게 있어서 바로 없앴던 적이 있었어요.  그렇다고 자료로 남겨둔 것도 없구요. 파일이야 지우면 그만이니까. 미련 없이 지우고 첨부터 나무를 만들고 도로를 닦고 집을 짓고 그러고 있죠. 지금은 조금 중단된 상태입니다. 만들다 보니 내가 깨달은 건데 애니메이션에 대해 제가 너무 모르더라구요. 그래서 애니메이션 공부를 다시 하고 있죠. 머릿속에는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는데, 막상 하려고 하면 힘들어요.

 

 

 

면 : 앞으로 하실건 결국!

 

정 : 가상마을과 지금 연재하는 명랑만화.

 

 

 

면 :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군요. 그러니까 둘이 같은 거겠네요.

 

정 : 나는 인터넷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인터넷으로 돈 벌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대신 그 장점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와서, 즐기고 만화가는 인터넷으로 자유롭게 그림 그리고 널리 알리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가끔 캐릭터 인형이나 팔아먹고 하면 다행이고.  만화가에겐 인터넷은 좋은 공간. 홍보 수단이고 좋은 매체인 거 같아요.

인터넷을 활용한다는 게 뜬구름 잡는 얘기 같지만 돈벌 생각만 버리면 좋은 일이에요. 우리는 공짜로 다보여줄 겁니다. 그리고 인형 하나 사가면 좋구..^^

 

 

 

그래도 자꾸 인형 사달란 얘기가 돈은 좀 벌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로 걸러져 들리는 건 아마 제 탓인가요. 현재 ‘도나스’는 정훈이의 홈페이지에 공사중이라는 이름만 걸려 있을 뿐 정체불명입니다. 실제세계의 그의 만화와 가상세계의 그의 꿈은 우리가 느긋이 지켜봐야겠습니다. 그게 독자의 몫인 거 같습니다. 물론 애정 없는 사람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