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 대안교육으로써의 가능성 -하자센터 기획부장 김종휘

하자의 '기획부장' 김종휘 씨를 만나기로 했다. '김종휘=하자'는 아니겠지만, 기획부장이라는 직함은 그가 하자의 브레인일 것이라 짐작하게 했다. 지난 3월 29일 오후, 영등포구 하자 센터 2층 기획실로 그를 찾아갔다. 하얀 빵모자를 눌러 쓰고, 안경을 낀 그의 모습은 하자의 홈페이지에 올라 있던 사진에서 익히 접했던 터라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교육’이 정말 문제인가 보다.
3대 메이저 언론이라는 ‘조중동’에는 날마다 한 건 이상 한국 교육을 씹는 기사가 올라온다. 신문 방송을 보노라면 마치 모든 사람들이 “자녀교육 때문에” 이민 수속을 준비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이다.
암울한 묵시록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해찬 세대’로 불리는 고등학교 학생들의 경우 학력 저하 상태가 너무나 심각하고, 심지어 서울대생들조차(!) 중학교 수준의 한자 어휘도 삼각함수도 모를 정도로 기초 학력이 우습기 그지없다. 한국의 미래는 한마디로 암담하다…

 

그래, 인정하자. 교육이 문제이다. 그런데 교육을 비판하고 있는 사람들은 ‘교육’이라는 거대한 항공모함을 어느 곳을 향해 운항해가고 있는가? 요즘 교육을 비판하는 목청 높은 소리에서는 냄새가 난다. 매부리코의 마술사가 최면제를 만들 때 펄펄 끊는 가마솥에 던져 넣곤 하던 죽은 개구리의 뒷다리 썩는 냄새가 난다.

 

지난 3월말 <퍼슨웹>은 하자 센터 판돌이 허진 씨와 죽돌이 강진주 양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한창 회자되고 있던 하자 센터에 <퍼슨웹> 역시 포커스를 들이대면서 많이 조심스러워 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맙게도 인터뷰 기사가 오르자, 하자 센터의 사람들은 예상 밖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왔다.
그동안 제도언론에 의해 많이 왜곡되어 비춰졌던 하자의 모습을 <퍼슨웹>은 ‘그나마’, ‘어느 정도’는 정직하게 비춰주고 있는 것 같아 반가웠다는 반응이었다. 하자 센터의 그러한 반응에 상당히 고무되긴 했지만, 사실 우리 자신이 하자 센터를 얼마나 속속들이 알고 기사를 썼는지 저으기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허진 씨, 진주 양과의 만남을 통해 하자 센터 현장의 일단은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새삼 하자 센터의 판은 어떤 생각, 고민 속에서 굴러가고 있는지, 하자에 대한 좀더 큰 그림을 보고 싶어졌다. 특히 하자 센터가 지금 현재 ‘대안교육’의 상징처럼 제시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러했다.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교육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다면 하자의 시도가 어떤 철학에 터하여 진행되고 있는가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았다.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우리는 하자의 ‘기획부장’ 김종휘 씨를 만나기로 했다. ‘김종휘=하자’는 아니겠지만, 기획부장이라는 직함은 그가 하자의 브레인일 것이라 짐작하게 했다. 지난 3월 29일 오후, 영등포구 하자 센터 2층 기획실로 그를 찾아갔다. 하얀 빵모자를 눌러 쓰고, 안경을 낀 그의 모습은 하자의 홈페이지에 올라 있던 사진에서 익히 접했던 터라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1. 10대가 가슴 속에 들어오다

     – 하자와의 만남

 

문화기획자였던(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김종휘 씨가 청소년·교육 문제에 개입하게 된 과정, 그것은 하자 센터가 만들어진 과정과 긴밀하다. 하자의 판돌이로 활동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문화판에서야 전문가로 활동하던 사람들이었지만 처음, 그들은 청소년·교육 문제의 전문가들이 아니었다. 어쩌다 그들은 하자에 결합하게 된 것일까?

김종휘 : 연세대학교에서 조한혜정 선생님이 학교 안에다 청소년문화센터라는 것을 만들었죠. 2-30대 각계 전문가 그룹들 – 문화예술, 교육, IT 쪽의 사람들이 모여서 개방적인 워크샵이 진행되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청년, ‘Youth’ 개념을 중심으로 시작했죠. 그러다 서울시에서 새로운 종류의 청소년 활동 공간을 공모하고 있던 차에 연세대에서 기획서를 냈습니다. 이곳으로 결정이되면서 연세대학교가 위탁 경영을 하는 것이지요.(하자 센터는 1999년 12월 17일 공식 개관했다.)

김종휘 씨는 1318이니, 대학생이니, 2·30대가 아니라 ‘Youth’, 청년의 개념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에서 10대, 청소년이란 존재가 왜 중요한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고 했다. ‘청년’에 대한 개념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10대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 그래도 여전히 궁금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처음으로 들었던 것은 청소년 전문가 김종휘가 아니라 문화판의 김종휘, 혹은 인디음악판의 김종휘였다. 그러던 사람이 과연 어떻게 지금 이곳, 하자 센터에 오게 된 것일까?

김 : 처음에는 ‘인디’라는 음반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관심을 갖고, 얘기도 듣고 얘기도 하면서 패널처럼 같이 참가를 한 것이죠. 근데 ‘인디’ 음반사 일을 하기 전, <팬진공>이라는 잡지를 만들었어요. 홍대 앞 밴드들을 다루는 잡지지요. 그쪽의 잡지 디자인업계의 배테랑들이 모여 자비 들여서 저예산 독립잡지라는 걸 해보자 그래서 한 거거든요. 저 예산으로 계속 유지하기가 힘들어서 5호까지만 하고 다 관두게 되었죠.

김 : 근데 그 잡지를 20대 정도가 보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만들었는데 팬레터가 오는데, 그게 다 10대예요. 우리 잡지에 뭘 보고 이걸 보내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나중에 우리가 어렴풋이 느낀 게 이런 쪽의 매니아든지, 아니면 이 잡지에서 어떤 코드를 찾은 것 같았어요. 이런 잡지라면 내가 말할 수 있겠다 같은 느낌이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을 써서 보내고 했던 같아요. 그리고 몇 명 애들은 주소를 갖고 찾아왔어요. 지방에서 온 아이들도 있고, 서울에서 온 아이들도 있고…

그를 만나기 이전, 나는 하자센터가 교육에 대한 정교한 관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문화판에 있는 이런저런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만들어진 게 아닌지, 그 출생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보니 오늘날 청소년 문제를 문화판에서부터 풀어나갈 수밖에 없는 현상은 어쩌면 너무 당연해보였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는 탈출구가 지금으로서는  혹시 ‘문화’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김 : 인디가 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해요. 하나는 우리나라의 인구가 1억이 넘어서든지, 다양성이 있어야 된다는 거죠. 인디가 되고 있는 나라들을 보면 기본이 1억 이상이에요. 일본도 그렇고 영미권도 그렇고. 그리고 또 하나는 10대들이 어렸을 때부터 문화라든지, 음악을 듣는 패턴이 바뀌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거죠. 이미 감수성이 TV를 통해서 만들어진 아이들한테 대고 인디가 뭐고, 이런 음악 들어 봐라하면 너무 번지수가 안 맞고 무의미한 일이지요.
그래서 10대들을 더 생각해 봐야겠다 한 거구. 그리고 하자, 연세대 클리닉 이런 것들이 조금 더 본격적인 화두를 준 거죠. 거기서 청소년에 대한 전문적인 공부를 하거나 그런 것들은 없어요. 연세대 클리닉에서 심리 상담하고 그런 쪽에 관심이 생긴 거죠. 줏어 듣고, 관련 책들도 많이 읽어보고, 그러면서 지금 막 화학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아요. 준비된 뭐 대통령처럼 준비된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니고.

김 : 청소년 지도 자격증이라는 것이 있어요. 지금 하자의 판돌이 했던, 혹은 하는 사람 중 그걸 갖고 있는 사람이 1명밖에 없어요. 자기 안에 청소년기가 있었던 거고, 그냥 사회를 살면서 10대들을 마주하는데 내 삶의 지도에서 10대가 중요한 위치다 생각 안하고 있다가 하자에 모인 거예요. 무슨 외인부대처럼, 지지고 볶고, 우리끼리 막 이런 것을 규명해 보려고 하는 거죠. 이 안에서.

하자 센터가 대안교육의 상징처럼 떠오르고 있지만, 그 출발점은 대안교육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민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 기원이 무엇인가 하는 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지금의 하자 센터는 그렇게 인식되고 있으니까. 기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화판이든 어디에 있었든 하자 센터에 들어온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일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김 : 새로운 것을 해 보자고 합의가 되어 있었고, 열정이 있었던 사람들이죠. 그 새로운 것의 파트너가 이 곳에서는 10대다, 그런 생각을 하고 온 것구요. 근데 해 보니깐 그게 이런 거였구나. 그런 느낌이 들어요. 어떤 사람은 1년 정도 지나니깐, 빈폴 광고 있죠. “그 사람의 자전거가 가슴에 들어왔다”는 그것처럼 “내 인생을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10대가 내 가슴 속에 들어와 있었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2. 서태지는 없다.

    – 일/ 놀이/ 자율?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자. 먼저 하자의 기본적인 마인드에 대해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보는 것이 좋겠다.

 

‘일, 놀이, 자율 공간’. 이 세 단어 속에는 일이 놀이처럼 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놀이가 곧 일이 되는 삶을 체험하고 익힌다는 맥락이 존재한다. 또한 하자 홈페이지(www.haja.or.kr) 인트로 페이지에 나와 있는 모토처럼 ‘나의 삶을 스스로 업그레이드 하자’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 모토를 설명하는 가운데 뜻밖에도 김종휘 씨는 ‘서태지’를 이야기했다.

 
김종휘 : 저희도 지난 1년 동안에 좀 많이 헤맸죠. 10대들에게 어떤 상을 제시해야 하는지. 그런데 지금이 서태지 같은 아이들이 나오는 시대인가, 과연? 아닌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죠. 자기가 먹고 살 수 있는 만큼 자기 생계를 확실히 책임지면서, 가급적이면 그 생계를 책임지는 방식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연결되게끔 하는 그런 섹터들이 늘어나는 것, 이런 것들이 행복의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것에 많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퍼슨웹 : ‘서태지 같은 아이들’ 그게 무슨 뜻이죠?

 
김 : ‘서태지’가 10대들에게 미친 효과는 두 가지인 것 같아요. 학교를 박차고 나왔다는 상징성이 컸던 것 같고, 메인스트림 스타 시스템에서 베스트가 되었다는 점이죠. 이 두 가지가 종종 혼동이 되는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는 하나의 착시 효과처럼 사람들에게 보인 것은 학교를 나가서 저렇게 되었구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상이 있는데요, 과연 지금 우리 사회가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인가 하는 점이죠. 지금의 사회는 10대를 상대하는 두 섹터가 있죠. 학교와 연예 사업. 근데 현실적으로, 두 곳 어디에서도 아이들에 삶을 책임지지는 않는다는 거죠. 두 곳 어디에서도 아이들이 자기 스스로 업그레이드 된다든가 자기가 어떻게 살면 행복한지에 대한 반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서태지가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대중음악 주류 속에서 베스트가 되었다는 두 가지 현상이 마치 필연적인 인과 관계로 이해될 위험이 있다. 서태지 개인에게 그 두 가지는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의 베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를 중퇴해야 한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사회의 베스트와 고등학교 중퇴, 그건 필연적 인과 관계가 없는 두 가지 개별 사실일 뿐이다.

김 : 하자에 온 아이들 중 한때는 서태지 같은 부분을 보기도 했죠. 예를 들면 하자에서 대중문화 각 장르별로 작업장들이 있으며, 어느 정도 시설을 갖추어 놓고, 상당히 왕성한 활동을 하거든요. 뭔가를 하고 싶은 게 참 많은 아이가 있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여력이라든지, 인맥이라든지, 자본이라든지 이런 것이 뒷받침 안되기 때문에 못하고 있던 아이들이 하자에 오면 제 속도를 확 내고 가지요.
한 명의 10대 죽돌이가 ‘나 이거 하겠다’, ‘내 삶의 어떤 의미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속도를 내기 시작할 때 하자는 속도를 내기 아주 좋은 공간이에요. 거기에 여러 명의 판돌이들이 붙어주니까요. 그런 아이들이 이제까지 많이 있었어요. 그런 걸 보면서 한때는 서태지 같은 부분을 보기도 했습니다. ‘아, 그런데 이건 아닌 것 같다.’ 실현불가능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저게 과연 행복한 것인가.’ 하는 고민이 시작된 것이죠.

하자의 목표는 서태지를 길러내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서태지가 과연 길러지는 것인가? 서태지는 예외적 개인, 그냥 ‘천재’ 아니었던가? 아마도 하자의 10대들 속에서 김종휘 씨가 처음 보았던 것은 그런 천재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도 모르고 있었던 어떤 자질들을 하자에 와서 발견하고는 능력을 발휘해낸 아이들. 스스로도 모르고 있던 자질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야말로 교육이 담당해야 할 아주 중요한 몫이다. 그러나 김종휘 씨는 하자가 담당해야 할 몫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자에게 맡겨진 몫은 무엇인가?

김 : 대중음악작업장에 힙합팀이나 밴드팀이 무지하게 많아요. 근데도 아직 바깥에선 줄 서있구요. 왜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오냐면 여기 들어오면 기타부터 여러 가지 악기를 거의 일대일 교습을 해 주거든요. 그게 좋은 것이죠. 그래서 아이들이 풀로 차 있습니다. 차있는데 아이들이 안나가요, 밖에서는 못 들어온다고 항의하는 친구들도 생겨나고. 그런 것을 볼 때 일단 어떤 관계 속에 들어와서 자기가 그 관계 안에 있다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단계가 있은 것 같아요. 그 매개가 음악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하자 센터의 센터장인 조한혜정 교수는 하자를 ‘일과 학습을 한꺼번에 이루는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의 청소년 공간’이라고 규정한 적이 있다.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 일대일 교습이 가능한 건 이런 체제 때문일 것이다. 이건 하자의 강점이자 약점이다. 일단 하자에 들어온 아이들은 양질의 뭔가를 얻어 갈 수 있지만, 그 ‘다품종 소량’을 고수하려는 순간, 밖에서 들어오고 싶어도 들어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김 : 근데 기타를 치고 보컬 강좌를 듣고 있다고 ‘나는 가수가 된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되더라 이거죠. 사회가 이미지 세팅을 그렇게 해 놓았으니깐. 그걸로 먹고살아야지. 춤이 좋아서 춤을 추는데 춤꾼이 돼야지. 그런다는 거죠. 물론 그런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자에서 과연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할 것이냐는 거죠.
  

김 : 저희가 보기에는 이건 아닌 것 같다는 거죠. 예를 들면 영상을 배우는 아이들이 있어요. 애니메이션이라든지, 비디오라든지 국제 청소년 영화제 같은 데 가보면 거의 상을 휩쓸어 오거든요, 근데 나중에 고3 되고 대학 앞에 서면 영상학과 갈 거냐, 아니면 다른 인문계열로 가고 영상은 취미생활로 할 것이냐. 이런 고민들을 하게 되더라 말이죠. 취미생활과 먹고사는 문제, 이렇게 나누어지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죠. 여기서는 통합된 삶을 바랐던 것이고, ‘네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들을 영상이라는 것으로 표현해 내라’는 것입니다. 이런 지점까지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대중음악장도 마찬가지구요.

처음 ‘일과 놀이의 결합’이라는 모토를 들었을 때, 그 말은 지금 내가 놀이처럼 하고 있는 일이 곧바로 직업이 된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즉, ‘하고 싶은 일’은 곧 직업이었다. 그러한 일을 곧바로 직업과 연결시키는 사회적 통념이 가장 잘 드러나는 국면이 대학 진학이 아닐까? 판·검사가 되기 위해서 법대를 가고, 의사가 되기 위해서 의대를 간다. 사회에서 인정받고 돈 많이 버는 직업과 무관한 학과에 가려는 무모한 아이들은 주위에서 뜯어말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하자의 모토인 ‘일과 놀이의 결합’은 대중음악, 웹, 영상 등을 앞으로 직업으로 선택할 것이냐, 혹은 취미로 선택할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인 듯 하다. 자기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관계들을 제시해주기 위해, 그리고 자기 스스로를 표현해내기 위해 하자에서는 대중음악, 영상 등을 활용한다는 말 같았다. 그 속에서 통합된 삶을 기획한다. 좋은 말이긴 한데, 그것들이 ‘일과 놀이의 결합’인가?

퍼 : 지금 그 말씀이 하자에서 내걸고 있는 모토인 일과 놀이의 결합과 연결될 것 같습니다. 근데 예를 들면, 대중음악장에서 대중음악을 배운다고 해서 대중음악을 모두 다 직업으로 할 수는 없을 텐데 그런 점에서 일과 놀이 조화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요?

 

김 : 예를 들면 내가 주유소에서 일을 해요. 근데 내가 음악이 너무 좋다 이거죠. 그럼, 내가 주유소에서 번 돈을 음악 하는 일에 쓰고 밴드 활동하는데 써요. 클럽 대여하는 데 돈을 쓰고 우리끼리 음반 만들어서 500장 정도 찍어서 주문하고. 이렇게 살면 부모들, 친구들 이 사회가 어떻게 볼 것인지 현재는 답이 나오죠. 그게 제대로 먹고사는 거냐. 장가는 갈 거냐. 자식을 낳으면 대책은 있느냐. 이런 이야기들이 계속 쏟아진다는 거예요.

김 : 결국 이 두 가지가 일치되는 것을 찾아내면 제일 행복한 것인데 그것은 이 사회랑 같이 가는 부분이고 그게 아닐 때 이 친구한테는 음악활동을 하는 것이 자기 삶에서 직업으로 정착이 되고 직업으로 인정을 받고 하기 이전에 음악으로 자신을 계속 표현하고, 50명이든 100명이든 인간관계망이 이게 자기 안에서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자각하는 것 외에는 없다는 것이죠. 주유소에서 일하는 것조차도 의미가 있고, 이런 시선들에 대해서 자기가 정리할 수 있는 이런 인간형이 나오지 않으면 뭐가 행복한 건지에 대해 대답할 수 없다는 거죠.

이 지점의 김종휘 씨의 말을 따라가는 것이 조금 버겁다. 일과 놀이의 결합은 결국 행복의 개념과 연결되어 있는 듯 했다. 그러나 명확하지는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곧 나의 일로 만든다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 다른 일 역시 즐겁게 할 수 있는 모습 역시, 일과 놀이의 결합일 수 있다는 말인 것 같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그걸 ‘일과 놀이의 결합’이라고 말할 수 있나 여전히 의심스럽다. 그 의심의 근원에는 여전히 ‘일=직업’이라는 통념이 도사리고 있는 듯 하다. 하자가 생각하는 직업의 개념이 궁금하다.

김 : 하자 센터의 부제가 “직업체험센터”잖아요. 예를 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한 때는 창업이란 말도 썼거든요. 코코봉고도 아이들이 직접 운영을 하는 것이고, 라디오 하자, 명함샵 같은 창업프로젝트라는 걸 시작을 했죠. 근데 직업체험이라는 것은 이 사회가 제공하고 있는 직업의 메뉴를 놓고 그것에 우리가 맞는 인간이냐 아니냐 하는 체험이 있을 것이고, 또 그 사람이 사는 스타일 자체가 하나의 직업일 수도 있는 것이죠. 이것이 나에게 맞는 삶이고 내가 행복해 하는 삶의 모양인지를 스스로 체험해 보고 조기에 난 이렇게 사는 것이 나한테 행복한 것이라는 자기 확신, 그러니깐 자기 줏대를 갖게 되는 체험이 있는 것이죠. 그러니깐 하자 내에는 그 두 가지가 다 있는 셈이라고 보면 될 겁니다.

김 : 예를 들면 이런 것이지요. 얘가 음악을 할 것인지, 취직을 해서 평생 살 것인지 이런 고민들을 하고 있다면, 한 1000불 정도를 애한테 줘요. 아시아 쪽에 한 달이 됐든, 2달이 되었든, 3달이 되었든 약간 빠듯하게 네가 가서 무전여행을 하든지, 배낭여행을 하고 와라 권유하는 것이 걔 인생에 훨씬 도움이 될 겁니다. 돌아다니면서 다른 여러 삶을 보고 부박하게 떠도는 사람들도 만나보고 그 속에서 스스로 내가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보고 동기 부여가 된 후, 여기 세팅되어 있는 직업의 매뉴얼이든, 그것이 아닌 제3의 길을 자기가 선택을 하든지 길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 길이 저는 더 좋다는 거죠. 그런 체험을 주는 게, 그게 하자가 권하는 방식인 것 같아요.

직업 체험의 두 가지 개념. 창업, 이것은 이미 사회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직업 속에 내가 편입되어 들어가는 모습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미 이 사회에 존재하는 어떤 직업 양식에 맞추는 맞춤형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 직업이 된다는 개념.
지금까지 일과 놀이의 결합을 이야기하면서 김종휘 씨가 염두에 두었던 것은 주로 이 후자의 개념에 터하고 있었던 듯 하다. 일과 놀이의 결합은 놀이가 곧 일이 되는 방식도 가능하지만, 일과 놀이를 조화롭게 설계해나가는 방식도 가능한 것이었다. 하자가 말하는 ‘일과 놀이의 결합’은 그 두 가지를 포괄하는 것이다.

 

 

3. 삶으로서의 문화 – 생비자

일과 놀이의 결합이라는 것이 문화판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김종휘 씨는 일과 놀이의 ‘결합’을 일과 놀이의 ‘조화’라는 형태로 설명하고 있지만, 하자의 탄생과 관련해서 생각해 봐도 일과 놀이의 결합은 문화판에서나, 혹은 문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 아닐까? 이런 질문에 대해 김종휘 씨는 순순히 “그런 부분도 많이 있겠죠.”라며 동의한다. 문화판에서 10대를 만난 김종휘 씨의 입장이라면 가능한 대답일 것이다. 특히 ‘문화의 세기’라는 요즘, 문화는 어디서나 중심 화두이다.
그러나 한 아이가 자라나는 데 문화만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퍼 : 아까 말씀하신 것 중에서 여행 체험을 권유하듯이 한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는데, 하자에서 권유하는 체험은 왜 문화쪽이기만 하지요? 원래 문화 쪽에 계속 계셨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예를 들면 여행을 권해 볼 수도 있는데, 왜 음악이나 영상 등의 문화를 권하시죠?

 

김 : 그게 문화가 아닌 다른, 정치, 경제, 사회는 왜 아니냐는 의미인가요?

 
퍼 : 그런 것일 수도 있고, 국, 영, 수일 수도 있겠지요.

 

김 : 그럴 때의 문화는 장르나 영토의 개념이 강한 거죠. 그랬을 때는 이 영토를 주장하는 것에 대한 답은 별로 없어요. 제가 그 영토에 관여하고 있고, 제가 그 부분에 관심이 많다, 이건 답이 아닌 거 같구요. 물론 지금 하자는 결국 아이들이 장르나 영토 같은 문화 개념으로 만날 수 있는 세팅이에요.

김 : 그러나 ‘삶으로서 문화’로 자기를 돌아 볼 수 있는 것으로 가야한단 말이죠. 그것은 아이들과 보다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가장 부담감 없이 아이들 스스로도 접근 할 수 있는, 이런 요소로서 선택된 것이 하나가 있겠죠. 또 하나는 내 삶의 문화를 스스로 준비하고 만드는 화두를 자신이 어떻게 준비를 하고 자극받을 것인지로서의 문화지요. 문화 산업, 문화의 시대라고 이야기되고, 문화를 하면 일과 놀이가 일치가 될 가능성이 많고 그런 것은 아니거든요. 이것도 명백히 직업일 경우에는 직업 이데올로기가 있죠. 자기를 성찰하는 힘을 어떤 개념으로 가질 거고, 어떤 개념으로 체험을 할 것인가를 저희는 ‘문화’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사실 문화만큼 다양한 의미를 지닌 단어가 어디 있으랴. 삶의 양식, 문명, 의미작용 등등의 동의어가 문화가 아니던가? 질문의 의도는 그러한 문화의 개념 중에서 하자는 어떤 문화 개념을 선택하고 있느냐의 문제는 아니었다. 겉에서 보기에 하자의 세팅은 명백하게 정치, 경제 등과는 구분되는 ‘문화’의 영역을 중심에 둔 채 세팅되어 있으며, 또한 대중문화의 각 영역별로 프로젝트가 마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하자가, 소위 말하는 영토 개념의 ‘문화’판을 중심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오해(?)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김종휘 씨의 말은 문화판을 중심으로 운용되고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그 문화에 능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문화에 대한 새로운 질적 변이가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삶을 성찰할 수 있는 문화, 이때의 문화란 결국 세계관과 동의어 아닐까? 방법으로서의 문화를 통해 귀결점으로서의 문화로 간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 : 물론 하자 안에서 그렇지 않은 것도 많죠. 장부 쓰는 법을 배우는 아이들도 있죠. 코코봉고  아이들이 제일 많이 하는 것이 하루, 서비스하는 거예요. 문제가 많거든요. (웃음) 이건 단골 장사다. 개점 시간이 정확하지 않다. 저희는 그런 면에서 시간이 좀 느리다는 거예요. 아이들이 한번 자기가 필요한 것을 깨달으면 속도가 상당히 빨리 가요. 물론, 니네 1시에 개점을 해야 한다. 출근부를 우리가 확인할 수도 있겠죠. 그리고 그 시간에 전화해서 ‘너 왜 안나왔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잘 안 한다는 거예요. 얘들한테 맡기죠. 그러면 매상이 떨어진다는 거죠. 그러면 자기네가 힘들어져요. 자기네가 나누어 갖기로 되어 있으니까. 안 하던 메뉴를 또 막 해요. 이제는 밥도 하고, 오징어덮밥도 하고, 특선 메뉴도 하는데 왜 안 팔려요. 아이들이 막 그런다구요. 그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답이 있겠죠. 어떻게 한 사람이 같은 식당에서 두 끼를 먹겠냐, 이런 것들도 있고, 식당이 신의를 잃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맨날 라면밖에 안 팔고, 2시쯤 해야지 먹을 수 있고, 예를 들어서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걸 애들이 자기 안에서 공유하고, 자기화 하는 거죠. 얘네가 장사 끝나면 매일 결산해요. 장부 쓰고 재료값 뭐 이런 것 다 해서 우리가 제대로 잘 경영을 했는지 이런 체험을 하는 것이죠.

김 : 그런데 이런 체험을 하는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식당을 차릴 것이냐. 아니라는 거예요. 만의 하나 그런 경우가 생길 수도 있겠죠. 그래도 이것은 자기 삶을 자기가 책임지고 돈이라는 것에 대해서 태도를 기르는 체험 프로그램인 거죠. 창업 체험, 창업체험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장부 쓰는 법, 손님을 대하는 법,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해서 점검하는 법, 이런 것들이죠. 그런데 이거는 식당이라는 틀에서 끄집어내도 자기 삶에 대한 부분들을 점검하거나. 성찰하는 수단들이죠. 툴(tool)들이고…

코코봉고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다른 대중문화방의 아이들에게도 역시 문화는 ‘체험’의 수단이자 ‘성찰’의 수단이다.

“하자 센터란 괴이한 곳을 출근하던 때였다. 학교를 다닐 때도 새보지 않았던 밤을 새가며 회의를 하고 다음날 쇼를 위해 뚝딱뚝딱 글을 쓰고 노래연습을 했다. 영상물을 만들고 그림도 그렸다. 극단처럼 그렇게 무대에 올라 시를 노래하기도 하고 지미니씨 자기 얘기를 하기도 했다. 그때 지미니씨 얘기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다. 어떤 곳에서든 다 큰 대학생들이 그러했고, 어떤 곳에선 그만한 딸이 있는 부모들이,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다른 공연을 보러 온 각층의 죄 없으나 결코 무고하지 않은 다양한 사람들이, 지미니씨가 나는 무엇이 옳은 것 같다 얘기를 하면 그것에 전면 수긍은 하지 않더라도 쪼그만 애가 애써 말하는 게 안쓰럽고 대견한 모양이었다. 관객이 어떤 사람들이든 지미니씨는 바로 앞에 자신의 얘기를 주의깊게 듣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또한 어리둥절하고 두렵기도 했다.”(「지미니씨 자퇴유람기」 중에서, 격월간 대안교육 전문지 『민들레』 2001년 1∼2월호)

하자센터 죽돌이 경험이 있는 지민희라는 친구의 글이다. 학교에는 조금만 있고, 하자에는 많이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관계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게 만든다는 것인 듯 하다. 그들의 문화에, 그들의 이야기를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성찰’하기 시작했다. 교육이 허공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수단, 매체를 가지고 아이들과 만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하자에서는 그 수단으로 문화를 선택했을 뿐이다.

퍼 : 밖에서 하자를 비판할 때의 문화의 개념하고, 하자에서 ‘문화를 활용하는 것’이 조금 다른 차원이 있는 것 같네요. 예를 들면 밖에서 비판할 때 ‘거기에 가는 10대는 10명중의 1명일 수 있다, 하자에 갈 수 있는 사람들은 문화에 대한 관심, 문화에 대한 재능이 있는 아이들만 가는 것 아니냐’, 이런 것 같은데, 결국 이런 비판들도 사실 무의미 하겠네요.

 

김 : 아니, 그건 그것대로 이야기를 하면요. 결국 재능 있는 아이들이 오는 데는 아니예요. 그건 진짜 10대를 관찰하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어른들의 이야기이죠. 재능이 있는 애들, 그걸로 돈을 번다든지, 떠야겠다는 애들은 이미 SM(SM 기획사) 가 있다니까요. 이미, 여기로 안 와요.

이야기 도중 김종휘 씨는 SM기획을 몇 번이나 이야기 선상으로 끌어 올렸다. 자본이 힘을 발휘하고 있는 대중음악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으로 SM을 거론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SM에 대해 뭔가 대결의식을 지니고 있는 듯도 했다. 다시 말해 하자가 대를 이루고 싸우고 있는 또 하나의 축은 우리나라의 대중음악판을 좌지우지하는 연예산업이 아닌가 싶다.

김 : 어떻게 보면 한 사람 안에 다양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굳이 이렇게 나누어 놓으면, 다 조금씩 관심이 있다구요. 그런 면에서 사람들은 리베로예요. 미드필드에 떴다가, 최전방도 갔다고, 수비도 본단 말이죠. 그런 경우가 속도를 내기 좋다는 거예요. 와서 대중음악작업장 그거 하는 데 1년이 걸렸다, 그러면 슬슬 지가 디자인에 관심이 생기고, 그렇게 되면 거길 기웃기웃댄다구요. 뮤직비디오 내지는 영상, 영상방, 또는 이걸로 니가 홈페이지 만들 거면, 듣고, 수당 받고, 이렇게 해서 자기 삶에 대한 자신감이랑, 자기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생산해 내고, 스스로가 생비자가 되는 이런 체험들을 하는, 이런 것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이 결국 하자에 남는 것이죠.

생비자? 녹음기의 재생을 몇 번을 눌러 다시 들어봐도 역시 그는 ‘생비자’라는 생소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생산과 소비가 한 몸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생산만이 강요당하거나, 혹은 소비만이 강요당하는 모습이 아니라 스스로 생산하고 소비해낼 수 있는 인간형.

김 : 근데 밖에서는 그걸 잘 못 보는 것 같아요. 하자가 비판받을 게 많이 있어요. 근데 주파수가 잘 맞으면 좋겠는데. 예를 들면 중산층, 하층이하 아이들이 많은데, 그렇게까지 들여다보지 않지요. 조한혜정 교수님 이미지도 한 몫 했겠죠.
그 아들 하는 것 보고요. 그런 아이들 가는 데 아니야, 그렇게 보는 것도 아주 불성실한 판단인 거고, 문화 쪽에서 보면 재능 있고, 이런 아이들이 저기 가서 잘 된다도 아닌 거죠. 정작 우리 안에서는 이런 잣대로 봤을 때는 우리 아이들이 경쟁력이 없다고 냉정하게 판단을 할 수 있죠.

조한혜정 교수의 아들, 전한혜원 군.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한 이후,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하여 환경 경제학을 공부 중이며, 여성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고 알고 있다. 앞서 거론했던 서태지가 그러하듯이 전한혜원 군 역시 고등학교 중퇴와 서울대 입학이라는 사실이 중첩되면서 하나의 착시 효과를 불러 일으키는 면이 있을 것이다. 또한 그의 이채로운 경력과 하자 센터의 센터장인 어머니의 모습이 교묘하게 겹치면서 하자 센터의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 : 기자들이 인터뷰를 하러 방송국에서 오잖아요. 아이들이 인터뷰를 한다, 그러면 저희 같은 판돌이들이 제일 먼저 무엇부터 확인을 하냐면, 인터뷰 비용을 지불 할 것이냐? 액수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렇게 해서 연결을 시켜 준다구요. 뭐 여기서 두 가지가 있어요. 도대체, 그게 원칙상 맞지만, 인터뷰하는 데 뭐 돈까지 줘가면서 해야 되냐. 그 아이들이 별난 아이들이야. 과잉보호 하는 거냐. 이런 반응일 수도 있죠. 우리 생각에는 어떤 원칙이 포기되지 말아야 되는지를 아이들한테 보여주겠다는 부분이 있는 것이죠.

퍼 : 어떤 원칙이죠?

  
김 : 아니 그건 노동인 것이죠. 자기 한 노동에 대해서 거꾸로 너희가 인터뷰를 하든 뭐를 하든지, 분명히 책임지는 자세를 갖게끔 한다는 것이죠. 그게 아니면 뭐밖에 없는데요. TV에 나오는 거죠. 기사 나오는 거고.

이 대목에서 우리는 조금 당황했다. 인터뷰를 하고 비용을 지불한다? 지난 번 퍼슨웹 인터뷰에 응해주었던 강진주 양에게 우리는 아무 비용도 지불하지 않고 왔다.(그냥 코코봉고에서 부침개  사서 함께 나눠 먹었다.) 아니, 인터뷰 후, 인터뷰이에게 어떤 비용을 지불한다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다. 김종휘 씨의 말을 들으면서 그마저도 안 했으면 큰일날 뻔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황당했던 그의 말이 일리가 있어 보였다. 인터뷰 비용은 인터뷰에 자주 노출되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이자, 어떤 노동에 대해서는 반드시 대가가 뒤따라야 한다는 개념을 심어주기 위한 것일 게다. 그래서 앞으로 그 아이들이 어떤 노동을 하게 되든 자신들이 받았던 대우를 기억하고 그만큼의 프로 정신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는 체험을 시키려는 의도로 보였다.

 

 

4. 하자의 자기 증식

     – 글쓰기와의 만남

김종휘 씨는 담배 매니아 같아 보였다. 그러나 하자 센터 안에서는 지정된 장소 이외의 곳에서  담배를 필 수 없다. 물론 판돌이 역시 이 약속을 엄수해야 한다. 그래서 실내에서 인터뷰를 하던 내내 김종휘 씨는 연신 바깥으로 왔다갔다 하며 담배를 꼬나 물었다. 그러다 결국 3월말의 날씨답지 않게 진눈깨비가 흩날린 후, 맑게 갠 하늘을 보더니 하자 센터의 베란다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제안했다. 날은 좋은데, 바람은 너무 차갑다. 인터뷰어들은 얼어붙었지만 김종휘 씨는 담배를 마음대로 필 수 있어서 그런지 인터뷰 초반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하자를 둘러싸고 있는 또하나의 담론, 혹은 소문, “하자는 대안교육의 장이다.” 그렇다면 하자의 기획부장과 만난 자리에서 대안교육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퍼 : 하자는 대안 교육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김 : 그 표현이 조금 조심스럽네요. 우리나라에서는. 대안 교육이라면, 대안 교육이라는 표현을 써 오셨던 분이 있단 말이죠. 거기에는 상이 있는 거예요. 대안 교육자, 학교, 이것과 견주어서 말하자면, 심하게 말하자면, 대안 교육에 대해서 ‘대’자도 고민을 안 했던 사람들이 사칭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읽힐 수도 있는 거죠. 우리 사회에서는 대안 교육이라는 말을 쓰기가 조심스러워요. 시간이 지나서 그렇게 말 할 수 있겠죠.

김 : 우리는 굳이 이게 대안 교육이라고 생각 안 했었는데, 하고 나니까, 대안 교육의 일환이 되어 뭐 이렇게 이야기 할 수는 있겠죠. 서로 편하게 서로, 그 시점에서 그런 이야길 하는 게 좋겠죠. 대안 교육 프로그램, 그 프로그램 중의 문화예술 영역이라고. 그 때 그렇게 세팅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죠. 대중문화, 영상 이렇게 해서 우리가 쭉 했던 프로그램들이 이런 것이네, 컨텐츠로서 어떤 의미가 있네, 다른 데 어떻게 연결될 수 있겠네. 이렇게 갈 수도 있는 것이고, 어떤 것은 공교육 학교, 학교 교실 안에서 어떤 것은 해 볼 수 있겠네라고 경계심 없이 하자가 했던 것들을 여러 가지 선택 가능한 메뉴로 이건 여기에다가 가져다 이렇게 쓰면 좋겠네라고 밖에서 볼 수도 있고, 그걸 그렇게 매뉴얼 하든지, 프로그램 해서 내놓기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아요.

하자가 대안교육이라고 말하기는 미안하다고 했다. 특히 대안교육을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사람들에게. 하자는 그냥 하자의 활동을 하는 것이고, 그것을 대안교육으로 평가할 것인가, 아닌가는 이후의 문제라는 말이다. 그러나 얼마 전 개편된 2001년 하자 홈페이지 2.0 버전에 마련된 하자의 지난 1년을 홍보하는 동영상 파일을 보면 2001년 하자는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분화를 시작하고 있다.

1. 놀면서 배우는 작업장, 2. 배움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대안학교’, 3. 배우면서 일하는 ’10대 창업 인큐베이터'(하자센터 홈페이지 www.haja.or.kr)

 

그런 만큼 많은 사람들은 하자 속에서 ‘대안교육’을 읽어내지 않았던가? 혹은 하자를 끌고 온 중요한 마인드 중의 하나가 대안교육과 관련되어 있지 않았던가?

김 : 그런 것 같아요.

 
퍼 : 그러니까 어떤 것에 대한 대안이냐 그런 것들이 궁금한 것이거든요. 예를 들면은 ‘민들레'(교육 전문 격월간지. 가정학교, 교육통화 등 학교 교육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대안교육을 고민하고 있다.) 같은 경우에는 대안 교육을 이야기할 때 학교에 대한 대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이해하고 있거든요.

 

김 : 분명한 것은, 공교육, 한국 사회가 제공하고 있는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공급받거나 체험 할 수 없는 것들을 찾아다니는 아이들이 하자로 온 거죠. 그런 의미에서 대안이 되겠죠.

 

김 : 저는 개인적으로 후기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야 되고, 살아 남아야 하는 것에 대한 어떤 개인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하자에서 아이들이 그런 것들을 발견했으면 좋겠고, 그렇게 저는 보는 거죠. 하자를 대안 교육의 일환이라고 보시는 분이 있다면 그 분 하고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되겠죠. 그러면 우리가 대안 교육의 일환으로서 읽힐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면 되고, 우리가 한 것이 대안교육이라는 맥락을 고민해오셨던 분들의 포괄적인 밥상 안에서는 뭐, 굴비네요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거죠. 제가 조심스럽다는 것은 우리가 대안 교육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조심스럽다는 거예요.

퍼 : “후기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의 대안”에 대해서 조금더 구체적으로…

 

김 : 자세히 말할 것은 없고, 행복의 기준을 바꾸는 연습을 하는 거죠. 그 행복의 기준이 이미 몸에서 증상으로 드러나는 아이들이 젊은 애들이라고 할 수 있죠. 예를 들어서 386은 컴퓨터나 인터넷도 이걸 쓰면 내가 뭐가 편리할 거야. 대단히 이성적으로 먼저 사고한단 말이죠. 사고해서 그걸 한단 말이에요. 저도 인터넷 하지만 그게 나의 생활의 언어가 되어있다든지 그렇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다르잖아요.

김 : 행복이 뭐냐? 그러면 제자신도 두 가지가 왔다갔다 하는 거죠. 제 몸이 원하는 건 가정을 꾸려서 돈 좀 많이 벌어 놓고 그런 걱정 안하고 사는 욕망도 있고, 그런 것 없이 그냥 세계여행이나 하면서 사는 것도 참 행복할 것 같애 이런 생각도 하는 건데, 지금의 10대는 후기 자본주의라고 우리가 말하는 환경을 보다 본격적으로 살아갈 아이들이고, 그런 것들이 제공을 해서 이미 반응이 일어난 아이들이죠.

근데 그게 탈근대라고 딱 표상을 하기에는 한국 사회는 19세기, 20세기, 21세기도 있는 사회잖아요. 그렇게 해서 하나를 다 표상을 하기에는 너무 벅찬 것이 많아요. 그래서 자꾸 표현이 조심스러워지는 거고, 그런 의미에서 학교가 하는 것, 가정이 하는 것과 다른 것을 여기서 하는 것이죠. 그걸 필요하다고 자각하거나, 그게 뭔지를 몰라서 찾아 다니는 아이들이 여기에 와서, 그게 이거였나 보다라고 발견하기도 하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자가 해 줄 수 있을 거야 하고 찾아오기도 하고, 그런 거죠. 그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 아이하고는 분리해서 이야기할 수 없거든요. 학교이야기도 하게 되고, 가정이야기도 하게 되고, 그것에 대해서 더 알게 되고…

김종휘 씨는 인터뷰 내내, ‘속도를 내기 좋다’, ‘속도가 좀 느리다’, ‘시간이 좀 느리다’ 등의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속도, 시간에 대한 인식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김종휘 씨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어떤 대타 개념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잠자는 시간까지 쪼개가면서 아침에는 건강을 위해 운동하고 저녁 때는 생존을 위해 영어 배우며, 교양을 위해 인터넷을 즐기면서 살아야만 제대로 사는 것 같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속도감을 거스르는 것,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자기 속도를 갖는 것이야말로 후기 자본주의 사회가 지녀야 할 대안일 것이며, 하자는 그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말로 이해된다.

퍼 : 하자와서 아이들이 정말 잘 지내고 있는데, 이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는 어떻게 적응을 할 것인가?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문제들, 아이들은 굉장히 새로운 마인드를 가졌는데 사회는 전혀 새로운 마인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김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게 제가 물어보고 싶은 거예요.

앞으로 아이들은 하자를 떠나서 사회로 나갈 것이다. 사회로 나간, 혹은 나갈 아이들에 대해 하자는 어떤 상을 갖고 있을까? 하자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한국 사회 전체의 모순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문제라면 아이들을 어떤 장소에 모아놓고, 새로운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회 전체를 바꿔야 되는 거 아닐까? 사회는 바뀌지 않았는데, 얘들만 데려다가 변화시켜 놓으면 그 아이들이 다시 사회에 나갔을 때 잘 살 수 있으리라 어떻게 가정할 수 있을까? 학교에서 상처받고 하자로 온 아이들도 있는데, 그들이 다시 사회에 나갔을 때, 상처받지 않으리라 가정할 수 있을까? 다른 부분의 개혁들과 병행하지 않고 하자라는 공간 내에서만의 변화들, 새로운 시도들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김 : 어떤 한 아이의 인생을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든지, 다 안다든지 하는 것은 성립 불가능한 이야기예요. 아주 오만한 태도이고, 그래서 마치 알 수도 있고, 마치 관여할 수도 있다고 전제한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요. 그건 아닌 것 같고,

김 : 두 가지 생각이 들어요. 하나는 하자가 이 사회 전체 개혁과 관련해서 어떤 단서가 되거나, 해석이 되거나. 비판이 될 수는 있어요. 다 가능한 거라구요. 그런데 전제상을 확인할 필요가 있어요. 하자가 한국 제도 교육 개혁 센터도 아니고, 이런 전제들이죠. 하자가 언론이나 방송에서 회자되니까, 그게 자꾸 착상되는 것 같은데, 이런 전제상을 자꾸 확인을 하지 않으면 질문도 그렇지만, 답도 엉뚱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김 : 그리고 또 하나는 여기가 예전에는 남부근로청소년회관이었어요. 전두환 시절에 만들어졌을 때요. 이발기술, 미용기술을 가르쳤어요. 우리가 그걸 가르치면 좋은가? 여기서? 그렇게 이 사회에 던지고 싶은 거죠. 공교육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 공교육이 다 없어지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을 하는 것 하고, 한 명의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서 12년을 보내는데, 이런 부분에서 심한 표현도 하잖아요. 한 반에 절반은 자러간다고 학교에, 중요한 거 자기가 관심있는 것은 다 밖에서 하고,  학교에는 자러간다는 거죠. 중학교 얘들 물어보면, 그게 50%에 육박했어요. 한국청소년교육개발원에서 나온 통계를 보니까, 학교 가기 싫다. 그게 약 50%예요. 그러면 왜 가냐 그러면 엄마 때문에 간다. 이런 것이 현주소잖아요. 그런 거랑 잇닿아 있는 것 같다.

잠깐, 잠깐. 이야기가 약간 샛길로 새는 것 같지만, 이건 짚고 넘어가야겠다. 한 반의 50%가 학교 가기 싫다 했다고? 학교라는 공간이 반드시 즐거운 공간이기만 해야 할까? 혹은 하자라는 공간은 하자를 출입하는 모든 아이들에게 즐겁기만 한 공간일까? 때로는 하기 싫어도 해야 되는 일이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나머지 50%는 정말 즐거워서 학교를 갈까?
지난 번 강진주 양 인터뷰를 하면서 상당히 의외였던 대답 중 하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자기도 잘 알고, 그런 점에서 참아야 되는 부분들이 있다는 말이었다. 진주는 학교도 다니고 하자도 나오면서, 그런 이야기들을 했었다. 어떤 즐거움, 혹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 이것만이 꼭 하자의 목표일까, 그건 아니지 않을까?

김 : 신자유주의 개념을 예를 들어보자구요.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정부가 쓰고, 지식인들이 비판을 하려면 이게 성립이 가능한 전제 중의 하나가 복지란 말이에요. 복지의 체험이 있어야 된다 말이에요. 복지 비용을 줄이면서 그만큼을 시장으로 넘기겠다는 것인데, 그것도 안된 사회에서 자꾸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건. 어떤 답을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전혀 쓸모 없는 답이 될 거라구요. 비슷한 거죠. 공교육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에서 예를 들면 아직도 굶는 아이들이 많고요. 교육을 완전히 시장의 논리로 완전히 재편했을 때 대책이 없는 것이 너무 많아요.

김 : 그래서 공교육이라는 틀이 필요하고, 공적 자본이 투입이 되어야 되단 말이에요. 이런 몫이 있고, 또 한편에서는 공교육의 내용이 어떻게 가는 것이 좋겠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을 계속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절반의 아이들이 마음이 떠났다는 것이 공교육을 떠났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동기 부여가 안 되는 거죠. 거기서 하기 싫은 것도 해야 된다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학교가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건 인증제도라구요. 학력인증제도가 최소한 무엇을 제공하는 것인지, 계속 신구조로 가면서 기술교육을 제대로 시키는 것도 아니고, 전인간적 교육을 시키는 것도 절대 아니죠. 제도만 남았다 이거죠. 제도의 결과를 사회에 나와서 향유하고, 제대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성적으로 봐서 상위에 속하는 1%란 말이에요.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고, 이런 것들이 이노베이션되고 할 때, 하자가 했던 것들이 어떤 면에서는 쓸모가 있을 수 있겠다는 말이죠.

결국 학력인증제도에 대한 문제로까지 나아간다. 우리 사회의 교육열, 그 중심으로 파고들면 학력 위주의 사회, 학력, 동문 중심으로 똘똘 뭉쳐진 집단, 그 집단을 축으로 돌아가는 사회… 결국 이리로 올 수밖에 없는 얘기였다.
마치 학교는 졸업장을 발급해준다는 명분만 틀어 쥐고 앉은 안방 늙은이 같다. 그렇다고 새로운 안방 마님이 등장한 것 같지도 않다. 그냥 안방 마님의 퇴락과 함께 집안 살림은 휘청하고, 창고의 곡식들이 어떻게 새나가고 있는지 아무도 제대로 모르고 있다. 이 안방 늙은이를 안방에 고이 모셔놓아야만 하나? 그냥 고려장해 버리고 말까?

김 : 요즘 아이들 하기 싫은 것 중의 하나는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왜 나누어 주어야 되는지, 그리고 상대 입장을 배려하는 것, 정보 가지고 치사해지지 않기, 그런 것들이 하기 싫은 일인데 나한테 유익한 것이고, 그것을 했을 때 무엇이 더 생산적이고, 그래서 자기 속도를 늦춘다든지, 상대 속도에 맞추어 본다든지 그래야 하는 거죠. 요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훨씬 더 많거든요. 내 속도가 있어요. 내 속도랑 안 맞아서 짜증이 나는 경우가 있어요.

김 : 근데 더 중요한 것은, 하고 싶은 것이 뭔지를 모르는 아이들이 태반이에요. 하자는 가정을 하는 거예요. 영상반의 아이들이 지금 한 5,60명 되는데, 나는 애시당초 영상을 하기 위해서 하자에 온 거야 하는 아이들은 대단히 소수예요. 해보고 자기를 표현해 보면서 난 영상에 더 관심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라고 발견을 하는 거고, 이게 내가 좋아하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가정해 보는 거예요. 거기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영상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이런 직업 형태를 이야기한다면, 냉정하게 이야기를 해야죠.

하자 센터로 오는 아이들도 자신이 뭘 하겠다는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오는 것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오는 아이들을 변화시키고 체험시키려고 한다. 그것이 하자의 몫이라는 말 같다. 흔히 “청소년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 같지만, 실상은 별로 생각없는 10대들도 많아”라는 비판들을 쉽게 하지 않던가. 그런데 그런 비판은 10대들을 향한 비판으로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10대들이 여전히 형성되고 있는 과정에 있는 아이들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말이다.

퍼 : 한 인간의 전 부분을 하자가 다 책임지는 것은 아니지만 하자를 나가는 아이들은 좀 준비해주어야 되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준비를 하시나요.

 

김 : 지금 그런 것을 하기 시작하는 단계예요.

퍼 : 어떤 것들을 하고 계신지?

 

김 : 구체적인 정보를 주는 것, 그 다음에 그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것. 그 선택한 사항에 대해서 하자 판돌들이 해 줄 수 있는 도움과 객관적인 평가, 그것을 어떻게 시스템으로 남길 수 있을까? 그 부분이에요. 하자 올해 사업구조 중 하나가 ‘시스템 하자’예요.
작년부터 이것저것 시쳇말로 닥치는 대로 했어요. 여기에 있는 판돌들의 하루 근무시간이 평균 12시간이 넘어요. 그러니까, 바깥에 갈 나가지를 않아요. 그러면서 이것저것 막 했는데 그중에 시스템으로 잘 다듬어서 남길 수 있게끔 하는 것들을 정리정돈하구요. 올해 1년동안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예측하는 거예요. 그런 페이퍼 작업이 한번 끝났어요. 12월까지 모범으로 한 다음에. 이런 것이 있고, 또 하나는 ‘매니지 하자’ 라는 말을 썼어요. 이렇게 시스템을 놓고, 아이들과 보다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좀더 자세히 들어가고 그래서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 진로, 진학, 취업이란 말 아무리 써봐도 답답해요 솔직히, 그래서 그런 것을 자꾸 찾아내는 거죠.

퍼 : 시스템하자라고 말씀하신 것이 지금까지 하신 것 중에 어떤 부분을 강화시켜 나가는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체계 있는 안정적인 시스템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김 : 후자에 조금 가까워요.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할 단계다.
하자 센터의 아이들을 보면서, 혹은 만나고 난 이후 든 생각인데 ㅡ 하자의 아이들은 하나하나 모두 멋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청소년기가 인생에서 어떤 무게를 지니고 있는지를 자각하고 있는 아이들이었으며, 그래서 자신의 청소년기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이 하자 센터에 모여서 자신의 문화적 마인드를 발견하고, 기획력을 발현해내는 모습들은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이제 끝난 것인가?

흔히 교육은 보수적 기능과 진보적 속성을 동시에 지닌 것으로 거론된다. 활용되는 모습에 따라, 그 사회의 권력구조를 지탱하도록 사회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도, 혹은 사회 변화를 위한 가능성의 진원지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하자 역시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하자 내에서 새롭게 자각한 내용을 어떻게 사회 내에 퍼뜨릴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아 있다. 특히 하자가 진보적 교육의 형태로 검토되고 있다면 하자의 자기 증식 문제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하자의 문화적 마인드들을 충분히 익히고, 자기 기획력을 갖게 된 아이가 사회로 나갔을 때 그 친구가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자의 마인드들을 다시 발현시켜내고, 그것을 퍼뜨릴 수 있는 역할을 해낼 것인가? 만약 이런 부분을 포기한다면 하자에 있는 10대는 그냥 이 사회의 ‘문화적인 귀족’으로 머물 가능성은 없을까?

김 : 하자 센터를 졸업했다고 표현한다면, 졸업한 아이가 사회에 언제 나가서 다시 하자를 복제하고 있을 거야. 거칠게 이야기하면 그런 말씀이겠지요. 그런데 그때도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이 안에서 이루어진 것은 작은 것이기 때문에 기타 등등의 사회 제반 문제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피력하려 하느냐로 드러나지 않고, 조용히 진짜 자기 삶을 살지 몰라요. 근데 그게 하자가 추천하는 모델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건 굉장히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 : 그리고 우리도 답답해요. 여기 많을 때는 500명, 한 3000명인데, 거의 포화 상태예요. 우리도 막 죽겠어요. 하자 분점, 막 이런 이야기도 나오고, 그런 제안도 있어요. 조심스러운 것이죠. 처음에 생각한 것은 이런 건데, 이게 과연 제도가 되고, 생긴다고 해서 그렇게 될 거냐 그땐 정말 비판받을 수 있는 거거든요. 영등포점, 무슨 점, 막 생기면…

하자 분점. 앞에서도 이야기했던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하자의 성격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하자 분점이란 모습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자가 빵집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학교 교육이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량 생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은 예전보다야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한 교실 내에 통제 불가능할 정도의 많은 학생들이 비좁은 공간에서 신체적 통제를 받아 가면서 버티고 있는 그 모습의 핵심은 동네 제과점도, 길거리 붕어빵 장사도 아닌, 빵공장에서 빵찍어내듯이 아이들을 몰아가고 있는 것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하자는 자기 증식을 과연 포기하는 것인가 생각하는 순간, 김종휘 씨는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를 한다. “하자의 글/쓰/기/로의 귀결.”

김 : 하자에서 결국 귀결된 것이 무엇이냐면, 글쓰기였어요. 글쓰기! 인문학에서. 우리 하자 안에 콜레지오라는 것이 있는데, 1대1로 지금 만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10명을 못 넘겨요. 그 이상 못 받는다구요. 그 실험을 1년간 했는데, 결국 글을 쓰고 워드로 쓰든지 뭐로 쓰든지, 글쓰기를 통해서 자기자신과 스스로 상담하고, 스스로를 치유하는 이런 부분이 요즘 아이들의 성장해오는 과정에서 그게 없는 것 같더라구요. 예를 들면 카메라로 치면 TV를 하도 봐서, 무의식적으로 안다구요. 카메라를 주면 스위치 뭐 누르고 뭐 누르는 것만 알면,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자동시스템처럼 아이들이 가요.

김 : 그런 경우 이제 두 가지가 남는 거죠. 많이 보아온 TV의 포맷, 그 앵글들이 과연 너에게 맞는 것인지, 그런 이야기를 해 나가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또 하나는 그런데 왜 그렇게 해야 하는데? 하는 이야기가 남아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왜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원하는 것이 있지 않으면, 계속 고민을 할 거거든요.
거기서 글쓰기가 나오는 거예요. 디스토리 페스티발 하면서도 이번에는 맛보기 정도 밖에 못 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게라는 카피가 나온 것도 그런 것이거든요. 너의 이야기를 해봐. 자기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인양 착각하고 하는 친구도 있어요. 조금 더 진도가 나간 친구들은 내 이야기가 뭐지? 자기도 확인이 안 되는 그런 경우도 있고, 더더 들어가면 태어나서 계속 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그런 것들의 의미를 되물으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아이들도 있고 그렇거든요.

글/쓰/기/. 하자의 일년 동안의 시도가 결국은 글쓰기로 귀결됐다. 그것이 하자의 인문학부에 해당하는 콜레지오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졌지만, 각 대중문화 작업장 안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 글/쓰/기/. 하자의 10대들이 자신의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영상을 자신의 몸의 언어로 사용하는 십대들, 어른들이 보기에 “걔들은 새로운 것도 하는군”일지 모르겠지만 실상 그것이 그들의 세계요, 언어다. 반면 그들은 어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글쓰기를 잃어버렸던 것일 수도 있다. 글쓰기로의 귀결. 그 말이 주는 울림은 적지 않았다.

이후 우리는 코코봉고로 자리를 옮겼다. 하자 센터를 방문했으니 코코봉고에서 한 끼를 먹는 것은 예의가 아닌가? 코코봉고, 오늘의 스페셜 메뉴는 ‘국수’. 코코봉고의 아이들에게 국수를 주문하며 농담을 주고 받는 모습은 확실히 인터뷰 동안의 조금은 긴장하는 듯한 김종휘 씨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김종휘 씨는 오후 1시 출근, 밤 10시 퇴근하는 하루를 산다고 했다. 그리고 하루 한 끼는 이 코코봉고에서 식사를 하며, 매일 밤 12시부터 CBS 방송국의 ‘N세대 클리닉’이라는 상담 프로의 사회를 맡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 개인적인 미래의 계획이 현재의 하자 센터와 어떻게 맞물릴 거 같냐는 질문에 그는 아직은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 그 대답만큼이나 현재의 그는 하자 센터의 아이들과 함께 어울릴 때 가장 편안하고 익숙해 보였다. 왜냐구? 지금 그는 하자의 기획부장이니까.

“역사를 가능성으로 생각하는 것은 교육 역시 하나의 가능성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교육이 모든 것을 해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약간의 것은 성취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략) 교육자로서 우리가 도전해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는, 역사적 관점에서 세계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어, 지금처럼 경직된 자세를 버리고 좀더 정직하고 좀더 인간적인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브라질의 교육학자 프레이리의 말이다. 그 가능성의 길에 하자 센터가 서있기를 바란다. 이제 하자에 대한 이야기를 이쯤에서 마무리하려 한다. 그리고 내년 2002년 이즈음 다시 영등포구 하자 센터를 찾아 보고 싶다. 그들은 그동안 또 얼마나 변해있을까? 그렇게 말없이 가만히 하자를 지켜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