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느리게/가난하게/사랑하라 음악을…
-<노동하는 기타, 천일의 노래>의
배윤경 씨에게 듣는 “다른” 음악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는 전세계적으로 두드러진 하나의 특징이 있다. 그것은 미국의 (팝)음악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미미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미국 팝음악이 시장 장악에 ‘실패‘하고 있다는 전세계적으로 특이한 사실이 결코 한국인의 음악적 정서의 건강함, 혹은 풍부함을 보증해주지는 못한다. 그 빈 시장을 대신 장악하고 있는 것은, ‘코 묻은‘ 10대의 호주머니를 주요 마케팅 대상으로 하는 댄스음악이기 때문이다.
그 예술적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거의 모르고 있는 ‘월드뮤직‘에 대한 이해와 소개는 우리의 음악적인 감수성을 보다 풍부하고 다양하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월드뮤직‘을 우리가 접할 수 있는 통로는 거의 없다. 이는 방송이나 음반만이 아니라 그에 관한 서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남미의 음악을 빅토르 하라(Victor Jara *)라는 칠레의 민중가수를 중심으로 소개한 <노동하는 기타, 천일의 노래>(이후, 2000)란 책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책의 저자인 배윤경 씨를 만나러 여의도에 있는 까페 <자유Ⅱ>를 찾아갔다. <자유Ⅱ>에는 그 입구에서부터, 체 게바라의 커다란 사진이 걸려 있었다. 게바라는 <노찾사>와 김광석, <노찾사> 들의 사진–포스터들과 더불어 이 까페의 ‘컨셉‘을 구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유 Ⅱ>의 주인장은 ‘월드 뮤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손님들을 배려하여, 우리가 그 카페에 머물던 내내, 아래에서 소개될 중남미 가수들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인터뷰의 내용을 이렇게 완벽하게 하드웨어적으로 보족하는 장소가 또 있었던가?
▶빅토르 하라(Victor Jara)
:가수이자 연극 연출가이기도 했던 빅토르 하라는 1935년 칠레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신학교와 군 자원 입대 등 피곤한 삶을 살았다. 그는 우연히 합창단원 모집에 합격함으로서 노래를 시작했으며, 칠레 민요를 수집하면서 민속음악에 바탕을 둔 새로운 민중가요에 눈을 떴다. 이후 ‘누에바 깐시온‘ 운동에 선두에 서 있으면서, 아옌데 정권의 선거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등 ‘노래를 무기로‘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을 짓누르는 가난과 압박에 맞서 저항하다가 1973년 아옌데 인민정부가 미 제국주의자의 사주를 받은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무너질 때, 이에 저항하다 총에 맞아 죽었다. – <노동하는 기타, 천일의 노래> pp.81-118.
▲빅토르 하라 영문 스페인어 사이트, 홈페이지, 디스코그래피, 사운드
http://www.msu.edu/~chapmanb/jara/enueva.htm
http://www.alumnos.utfsm.cl/~evargasp
spin.com.mx/~hvelarde/chile/Victor
▶누에바 깐시온(NuevaCancion)
‘새로운노래(Nueva Cancion)’라는 말은 1960년대 말 라틴 아메리카에서 처음으로 생겼으며 원래는 칠레에서 열린 ‘제 1회 누에바 깐시온(Nueva Cancion)’이라는 행사의 이름으로 붙여졌던 것이 점점 그 범위가 넓어져 남미 전역에 걸쳐 일어났던 1970년대의 민족운동을 가리키게 되었다. 본격적인 누에바 깐시온 운동의 시발점은 1970년 아옌데 정권의 출범 전후이며, 보다 근원적인 동력은 쿠바혁명이라 할 수 있다.
미국·유럽에서 들어온 외국의 유행 음악이 방송 매체를 등에 업고 대중 음악을 질식시켜 버렸다. 이러한 상황은 새로운 음악과 노래를 만드려는 운동을 점점 가속화시켰으며, 기존의 대중 음악과 이러한 노선 사이의 구분을 더욱 뚜렷이 해 주었다. 이러한 상황이 주는 위협에 대한 민중적 저항이 이 새로운 노래에 담겨 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즉, 누에바 깐시온은 미국의 팝과 록에 ??은 층의 관심이 옮겨가는 현실에 대한 반작용으로 자민족 문화의 발굴과 보존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되면서 활성화되었으며 민족주의의 파고를 타고 지식인과 예술가가 참여하는 집단적 문화운동으로 표출된 것이다.(위책, pp.58-78)
1. “저는 그게 안돼요, 무조건 다 들어야 되더라구요.”
퍼슨웹: <노동하는 기타, 천일의 노래>는 얼마나 팔렸습니까? 꽤 팔렸다던데요?
배윤경 : 하하… 아닙니다. 2천 부 다 팔리면 다음 걸 기획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죠.
퍼 : 홈페이지에 글 올리신 걸 보니까 요즈음 테오도라키스 공부하고 계시다데요.
배: 예, 테오도라키스를 하는데, 너무 어려워 가지고…
퍼 : 아 그래요? ‘어렵다‘고 말씀을 하시네요.
배: 전(全) 장르가 다 있으니까. 클래식, 오페라, 연극, 영화음악부터 방송음악 등등요. 테오도라키스 음악은 전 장르에 걸쳐있어요. 그 인물을 다루려면 아주 많은 분야에 대해서 알아야죠.
퍼 : 테오도라키스는 오래 살았다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인가요? 거기서 실물로 처음 봤어요. 제 개인적으로 그 사람 곡 중에 아그네스 발차 음반에 들어있는 두 곡을 좋아하는데, 하나는 <기차는 7시에 떠나고♬♬> 또 하나는 <그대에게 드릴 장미 향수를 만들겠네>거든요. TV 보면서 아주 인상적이었던 게 원형 경기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직접 노래하는 장면이었어요. 와, 굉장히 감동적이었어요. ‘정말 영원한 현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주 멋있었어요. 한 번 다뤄 볼 만한 인물인 것 같아요.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그리스 작곡가로 말대로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의 <기차는 7시에 떠나고>는 한국에서도 여러 상업광고에서 쓰였고, 소설가 신경숙이 이 노래제목을 딴 소설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 이 노래는 反나치 레지스탕스 투쟁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귀에 들리는 것은 그 음악의 사회적 역사적 맥락이 완전히 거세된 그 멜로딕한 감상적 측면뿐이다. 월드뮤직의 ‘임무‘와 의미는, 아마도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 이러한 상황이 단지 음반자본의 일회적인 상업적 의도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음악적 감수성의 지형이 가진 구조적 측면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란 점을 인식하고, 우리의 음악적 문법을 다양화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cf) 테오도라키스 곡이 실린 아그네스 발차 음반
퍼 : 홈페이지는 어떻게 운영하시나요?
배 : 제 홈페이지는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신경을 거의 안 써요. 수익적인 면이 거의 없기 때문이죠. 결국 자발적으로 하는 건데 무엇보다도 동기 유발이 안 되죠. 결정적인 문제는 제가 어떤 내용을 올리면 그것에 대해서 뭔가 얘기가 올라와야 하는데 없을 뿐만 아니라, 영 엉뚱한 데서 이상한 걸 듣고서는, 누구 누구를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요. 그럴 경우 제가 사이트 뒤져 가지고 한 번 찾아보기는 해요. 그 정도죠.
근데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나 빅토르 하라에 대해서 어떤 점이 궁금하다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죠. (웃음) 좀 나이가 좀 드신 분들이나 80년대를 경험하신 분들은, 정말 구하기 어려웠는데 그나마 이렇게라도 자료라도 이렇게 들을 수 있었으니까, 거기에 대해서 좋게 생각한다, 그런 정도입니다.
퍼 : 테오도라키스 다음 공부거리가 메르세데스 소사입니까?
배 : 테오도라키스 공부는 조금 좀 더 뒤로 미룰 생각입니다. 지금은 부분적으로 다뤄야 할 것들이 많아요. 남미를 하고 나서 그리스를 할 생각인데, 테오도라키스를 다루려면 그것들을 다 해보고 나서 할 작정입니다. 테오도라키스를 마지막에 해야될 것 같아요. 테오도라키스는 최고의 거장인 것 같아요.
퍼 : 테오도라키스… 그래요? 그러면 아티스트(가수 혹은 작곡가)에 대한 연구를 처음에 할 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세요?
배 : 처음에 접근할 때는 정치적인 이유가 많아요. 테오도라키스에 대해서 전 처음엔 그냥 음악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정치적인 운동 성향을 보니까, 음악인인데 저항적인 좌파였다가 우파로 변신을 하고, 또 다시 국회의원에 지명되고 하거든요. 음악을 하는 사람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참 희한한 일이거든요? 우리나라에서라면 ‘변절이다‘ 뭐다 하면서 온갖 수식어가 따라 붙을 텐데 말예요. 이 테오도라키스란 인물이 그리스 내전 이전부터나 독일에 대항해서 독립 전쟁을 할 때부터 보면, 음악인이 이렇게 실질적으로 정치적 활동을 한다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퍼 : “사람에 대한 관심“, 그런 게 중요하군요. 퍼슨웹처럼 말이죠.
배: 그렇죠. 먼저 음악보다는, 그 사람이 가진 사상이라든지, 삶의 모습들 이런 걸 보게 되고, 그러면 음악에 대해서도 정말 궁금하게 되는 거죠. 거꾸로 가는 부분들이 많아요. “음악은 도대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차는 7시에 떠나고>란 노래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 월드뮤직에 관한 정보, 음반 구입– RootsWorld(영문)
▶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
아르헨티나 민속음악의 어머니 메르세데스 소사는 1935년 아르헨티나 북서부 투쿠만에서 태어났다.
소사의 음악은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로 일컬어지는 비올레따 빠라와 누에바 깐시온의 선구자 유빵끼 등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 강력한 저항 음악의 출현을 예고했던 누에바 깐시온 운동에 크게 영향받았다.
소사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독재와 폭력에 저항하는 노래로 아르헨티나 민중의 지지를 얻는다. 그러나 소사의 커다란 인기는 곧 군부에게 걸림돌이 되고, 1979년 고국 아르헨티나를 떠나 프랑스 망명 길에 오른다. 이후 1982년 군정종식과 함께 귀국하기 까지 소사는 존 바에즈 밥 딜런 해리 벨라폰테 등 포크가수들과 전쟁의 만행을 고발하는 콘서트를 열고 인종과 언어를 초월해 자유와 평화를 향해 한 목소리를 냈다.(위 책, pp.67-69)
♬♬메르세데스 소사 & 존 바에즈
▶ 아따우알빠 유빵끼(Atahualpa Yupanqui)
: 누에바 깐시온의 선구자 유빵끼의 본명은 엑또르 로베르또 차베로(Hector Roberto Chavero)이지만, 14세때 처음 쓴 시에서 아따우알빠라고 서명하면서 인디오 문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표명했다. 정복자의 이름을 버리고 옛 잉카 선조의 이름을 차용하면서 독자적인 인디오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아따우알빠 유빵끼‘라는 말은 께츄아(Quechua)어로 “멀리서 와서 노래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유빵끼의 아버지는 인디오이고 어머니는 바스끄족이었다. 그는 이른바 메스띠조로서, 척박한 현실속에서도 원주민들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정서를 노래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그는 평생을 아르헨티나를 비롯하여 안데스 일대의 페루와 볼리비아까지 전통음악을 채보하였으며 이런 방랑의 경험으로 도시보다는 자연을 노래하게 된다. 그는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작곡가 가수 클래식 기타리스트 시인 작곡가로서 1천여곡 이상의 노래를 만들었으며 여러 권의 시집과 책을 출간하는 등 다방면에 걸쳐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위 책, pp.5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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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 그 노래가 좀 서정적이죠.
배: 정치적인 노래도 있을 텐데, 그런 건 우리나라엔 소개가 안 되겠죠. 그런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사실들이 하나하나 보이는 거죠.
퍼 : 그러면 자료들은 어떤 방식으로 입수하십니까?
배 : 자료는 예전에는 아는 사람한테 부탁해서 판을 달라고 그랬어요.
퍼 : 현지에 계신 분이요?
배: 현지에는 제가 아는 분들은 별로 없고, 동호회 같은 데서요.
배윤경 씨가 구하기 힘든 ‘월드뮤직‘ 자료를 구하는 곳은 <전영혁의 음악세계 애청자 모임>과 냅스터였다. 거기서 만난 회원이나 채팅 친구들로부터 음악과 그에 관련된 정보를 얻는다는 것이다.
퍼 : 하하하. 미국 법원에서 냅스터가 불법으로 판결이 났다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배 :글쎄요. 빅토르 하라나 테오도라키스의 음악은 그것과 상관없이 공유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하.
퍼 : 하지만 공유해야 할 것과 말아야 할 것이 있겠지요?
배: 부분적으로 차별화 시켜야 할 것은 있죠. 현역가수들은 음악으로 수익을 남기는데, 그런 것까지 다 파일을 배포해 버리는 것은 문제가 있죠. 그런데 하라 같은 경우는 다르죠. 하라 재단도 있으니까요. 우리가 냅스터로 받아서 들었는데 좋았다면, 나중에 우리가 돈이 생겼을 때 충분히 기부할 수도 있죠.
퍼 : 그러면 음반주문을 하시는 경우도 있습니까?
배 : (쑥스러워 하며) 저, 신용카드가 없어요.
퍼 : !! ??
배: 직업이 없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작가한테는 신용카드 발급이 안 되요.
퍼 : 그럼 음악 자료 대부분을 인터넷으로 다운받으시는 거군요?
배: (끄덕끄덕) 냅스터 밖엔 없어요. 그리고 자료가 비싸서 직접 구입하는 것은 부담이 됩니다.
퍼 : 책 뒤에 붙어있는 CD에 “빅토르 하라의 음악을 알릴 목적이 아닌 경우에는, 불법복제를 하지 마십시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요.
배: 그건 빅토르 하라의 음악을 알릴 목적에서 그랬던 겁니다. 근데 음질이 안 좋아요…
배윤경 씨의 책 <노동하는 기타, 천일의 노래>의 부록으로 빅토르 하라의 음반이 있다. 이 CD는 원음을 미국에서 나온 CD와 이런저런 테이프, LP 등에서 따와서 파일을 mp3로 다시 wave파일로 바꾸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 한다. 따라서 온전한 의미의 “앨범“은 아니다. 노래가 좀 잘린 것도 있고.
배: 제가 일부러 잘랐어요.
퍼 : 최대한 많은 것을 집어넣기 위해서……?
배: 정식 음반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런 티는 내자는 그런 목적에서 그런 겁니다.
퍼 : 그 쪽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주로 만나십니까?
배 : 잘 안 만나요.
퍼: 정보는요?
배 : 우리나라 음반의 해설지는 음반 한 장 달랑 듣고 쓰는 건데, 사실상 그건 감상문이잖아요. 그러면, 그 해설은 사기잖아요. 그러니까 음악 이론용어, 철학, 미학용어 등 온갖 용어를 막 다 갖다 쓰는 건데, 그걸로 모든 음악에 적용을 해요. 어떤 가수든지 어떤 장르든지 이렇게 임의로 만든 틀에 다 맞게 설명이 되는 거죠. 이건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저는 기본적으로 다 들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막 생겨요. 뭐냐하면, 예를 들어 음악을 들으면 이건 남미 쪽이라는 생각만 나지 이름이나 성별 이런 게 구분이 잘 안가요. 다른 분들은 적당히 가려 가면서 들으라고 하시는데, 저는 그게 안돼요. 무조건 다 들어봐야 되더라구요.
배윤경 씨는 일부 ‘음악평론가‘들이 해당 가수 혹은 장르에 관한 음반을 모두, 혹은 많이 듣지도 않고 음반해설이나 평론을 쓰는 행위와, 그 해설과 평론 속에 지나치게 이론적 현학적인 용어를 동원하는 것에 대해서 강한 반감을 표했다. 이런 비판적 관점은 인터뷰 내내 견지되었다.
퍼 : 예… 그렇지요. 음악 같은 경우는, 시간을 요하잖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이른바 시간의 예술이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안 들으면 말이 안 되는 거니까.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안 듣고 말하는 경우가 상당히 있죠.
배: 현역에 있는 사람들은 다 들어 볼 시간이 없으니까 몇 곡만 듣거나 보도자료를 가지고 적당히 엮어서 해설을 쓰는 경우가 많아요.
2. ‘월드뮤직‘과 ‘제3세계음악‘
퍼 : 저는 임의로 ‘제3세계 음악‘이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만, “월드뮤직“은 어떤 의미입니까? <노동하는 기타, 천일의 노래>에서 월드뮤직이라는 개념은, 소위 ‘팝‘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주류 음악을 제외한 다른 세계의 모든 음악… 그리고 그 중에서 어떤 사회적 의식과 민속적인 개념을 갖고 있는 그런 음악을 통칭한 것 같은데요.
배 : 예… 저도 그런 의미로 썼습니다. 사실 ‘월드뮤직 = 음악‘입니다. 결국 ‘음악‘이지요. 미국에서 80년대말인가 90년대 초에 줄리어드 음대에 월드뮤직 학과가 생겼는데, 여기서 학술적인, 아카데믹한 입장에서 월드뮤직이라는 용어를 쓴 거죠. 그리고 당시에는 민속 음악에 중점을 둔 것 같아요. 근데 요즘 와서는 새로운 현상이 막 생겨나니까 저 같은 경우도 월드뮤직이란 것의 개념에 혼선이 빚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월드뮤직 / 제3세계 음악
퍼 : 그런데 ‘월드뮤직‘은 ‘제3세계 음악‘이란 개념과는 대체가 될 수 있는 개념입니까?
배 : 음악하는 사람들은 ‘제3세계‘란 말을 안 쓸 거예요. 그게 정치적인 용어이기 때문이죠. ‘제3세계‘는 음악에선 말이 안 되죠. 왜냐하면 제3세계란 개념은 타자를 전제한 입장을 가지고 있죠. 따라서, 음악에서 타자를 대상으로 연구를 한다는 사고는 가장 경계해야 합니다. 그건 인간과 인간사이의 교류를 부정하고, 하나의 대상을 타자화시켜 버리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 봅니다.
퍼 : 제3세계라는 말이 그런 위험성을 내포한다는 말씀이시죠?
배: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용어니까요. 더구나 냉전시대 때 쓰던 말이죠.
퍼: 제가 제3세계란 표현을 사용한 전제는,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사실상 제1세계, 제2세계의 의미가 사라지고 제3세계라는 의미만 남는다는 거죠. 그러니까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혹은, 이태리 같은 나라의 음악도 있지만, 음악적 제1세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서양의 특수한 지역의 클래식 음악이라든지, 혹은 미국의 팝 음악이 사실 제1세계 음악이잖아요. 이들 음악을 제외하면, 다른 음악들은 그 나라가 정치적으로 제1세계에 속하더라도 그 나라의 음악은 제 3세계에 속한다 의미거든요.
배 : 하지만 그것을 제3세계라고 통칭하고 타자화시키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앞으로 월드뮤직이라는 표현은 정착이 되어 갈 겁니다.
배윤경 씨는 “월드뮤직=음악“이라고 말했다. 이는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귀결인 듯하다. 물론 그도 자본의 논리에 근거한 음반산업의 주류적 경향이나, 미국음악의 세계적인 패권에 의해 초래되는 심각한 불균형 현상에 우려를 표한다. 그러나 동시에 ‘제3세계 음악‘ 같은 개념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는 정치적 판단과 또다른 ‘타자화‘를 전제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자기 문화의 자양분으로의 귀속을 위해 타자와 교류하고 교감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단지 분석과 판단의 대상으로 여기기 위해 대상화하는 태도가 그런 개념에 묻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제3세계‘라는 언설은 ‘음악을 통한 상호간의 평등한 교류와 이해‘보다는 오히려 타자를 타자화시킬 우려가 있다……
퍼 : 어쨌든 월드뮤직은 미국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네요.
배 : 그런데, 그것도 참 모호해요. 미국에서 만들어진 학술적인 개념으로 나오긴 했지만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니까요.
퍼 : 저 같은 경우, 음악에 처음 접근할 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과연 우리의 전통이 무엇인가 그리고 전통을 어떤 식으로 잘 계승해서 현대적으로 바꾸나 하는 문제 말이죠.
메르세데스 소사 같은 경우를 보면 인디오의 전통악기나 음악하고 결합시켜서 새로운 걸 만들어 내는 것 같은데요. 에이토르 빌라로보스(Heitor Villa-Lobos)의 ‘브라질풍의 바흐(Bachianas Brasileiras)’라는 작품도 좋은 예죠. 빌라로보스는 유럽에 가서 공부를 했지만 자기가 태어난 브라질의 민족적인 것을 서유럽에서 배운 음악적인 교육의 전통이라는 것과 결부시켜서 만들어 내더라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디오 음악 자체는 나오지 않는다 – 이런 건 어때요? 또, 문화예술분야에서 진보적이고 의식이 있는 사람들도 그런 부분에 관심을 가지지는 않잖아요. 인도네시아나 투르키스탄 같은 데의 음악을 들으면 이건 우리가 기본적으로 같고 있던 음악적 문법과는 완전히 다르거든요. 오히려 하라나 소사의 음악을 들으면 80년대 민중가요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데요!
배: <노찾사>도 소사나 하라의 테이프를 구해서 노래 만드는 데 참조했지요. 그리고 스페인 내전직후에 나온 노래가 정치적이고 선동적인데 그런 노래들이 같은 라틴 문화권인 남미로 유입되고 섞이기도 하고 다시 또 남미에서 만들었던 게 스페인으로 다시 또 건너가고, 이런 식으로 교류가 되었죠. ‘포크 로리‘라고 그러죠. 이러한 것들이 나중에 ‘누에바 깐시온‘이 탄생하게 된 기저가 되었죠. <몽골리안 루트>를 보면 북미와 남미의 음계가 확 차이가 나요. 남미는 이베리아 문화의 영향을 받았는데, 북미는 그렇지 않았죠.
퍼 : 제가 관심 갖는 부분은 특히 한국 사람들의 음악적 감수성이 형성된 역사적 계기라고 하는 부분에 대한 것입니다. 노동은 선생 같은 경우는, 우리의 음악적 근대화나 음악적 탈 식민지화가 아직 요원하다고 하면서, 북한의 경우 50년대 이후에 주체 사상이 생기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와는 또 다른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들이 개척됐다고 얘기하는데, 중요한 건 예술적인 부분에서는 한참 떨어졌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판소리 같은 게 혁명 이후에 북한에서 사라졌는데, 그 이유는 판소리는 기본적으로 청음(淸音)이라기보다는 탁음(濁音)으로 보기 때문이라지요. 탁음이라는 것이 곧 인민 대중의 자발성, 역사에 대한 진취적 의식– 이런 것을 마모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유로 계승이 안 되었다는 겁니다. 따라서 북한 사람들이 전통 음악을 부르는 창법 같은 걸 들어보면,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하죠. 청음만 남아있는 것이죠. 또 어떤 북한의 혁명가요는 가사만 바꿨지 알고 보면 일본관동군의 행진곡과 똑같다고 하더군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음악적 문법이 다양해야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배 : 그렇죠. 그건 굉장히 중요해요.
퍼: 가장 중요한 게 그런 것 같은데요. “음악적 문법의 다양화“라는 것. 저는 기본적으로 사물을 보는 관점이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얘기하자면 서양이나 동양, 진보와 보수, 이런 식의 여러 가지 구도들을 한꺼번에 농축한 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음악적 문법의 다양화가 아닐까. 근데 음악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제가 말씀드린 의미에서의 동양과 서양이라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아직까지는 관심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더라구요.
배 : 동양과 서양이요?
퍼: 예를 들자면 아까 말씀드렸던 투르키스탄 음악 같은 것 말이죠.
배 : 아, 인도라든지 뭐 그런 음악들 말이죠.
퍼: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란 부분이 진지하게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빠져 있지 않나 합니다. 사실 제가 가지고 있는 CD는 거의 클래식이거든요? 그 사실이 항상 고민이고, 스스로도 자기모순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돈이 좀 생기면 CD를 사러 가는데. 손이 안 가요. 누가 훌륭하다, 임방울이 훌륭하다 이런 거 다 아는데, 손이 안 가요. 이게 문제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기본적으로는 서양 음악의 문법에 익숙해 있으니까, 그거에만 손이 가요. 오히려, 소사는 들어보면 좋고 이렇지만요.
배 :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근데 저도 국악은 안 사죠. 국악을 사더라도 좀 현대화됐다고 표현되는 것들을 사죠.
퍼 : 임동창 같은?
배: 절대 안 사죠. 임동창 음악은… 음악하는 사람들끼리는 그것도 약간 사기라고도 봅니다. 그러니까, 음악이라는 건 그래도 기본적인 몇 가지 요소는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현대화가 되어도 장사익 같이만 돼야 된다고 보는 거죠. 장사익 음악은 재미도 있고요. 그렇잖아요? 음악이 재미있어야지 듣고서 머리 아프고 그렇다면 문제가 있죠.
강태완의 퓨전 프리 재즈도 한번 들어보면 이런 게 있구나 정도지. “아, 이 음악 좋네, 또 한번 들어볼까” 하지는 안잖아요. 그리고 임방울을 안 듣는 것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무슨 부담을 갖거나 음악적 문법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바흐의 문법이 우리에게 들어 왔으면 바흐의 문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죠.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고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혹시 나중에 나이를 먹고 우리 소리에 대해서 어떤 깊은 맛을 느꼈다면 그 땐 흥이 날지도 모르죠.
배 : 그래서 ‘라틴 열풍‘이니 ‘탱고 열풍‘이니 하는 것도 전 잘 모르겠어요. “이것도 음악을 들어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월드뮤직도 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예전에 들었던 데스메틀 같은 것은 지금은 안 듣는데. 이제 들어보니 그냥 기계음, 똑같은 기계음으로 들리기 때문이죠. 어차피 가사도 못 알아듣고. 재즈도 들었는데 뭐 ‘웨더 리포트‘ 같은 거. 뭐 이런 것, 좀 재미있는 재즈. 그 다음에 뭐 좀 정통적인 재즈, ‘찰리 파커(Charlie Parker)’ 같은 거, 좀 이해가 안 되지만. 그런 것도 좀 들어보고. 지금도 듣긴 들어요. 그런데 참고 사항으로 듣는 거지, 즐겨 듣진 않죠. 누가 재즈를 갖다가 이렇게 하나의 장르로 굳혀지게 한 공은 크지만, 별로 그렇게 재즈 음반 안 사거든요.
그러면서 배윤경 씨는 이런 저런 음악 가운데에서 우리 정서에 가장 잘 맞는 건, 뉴에이지 음악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또한 그는 켈틱과 안데스 음악을 대단히 강조해서 내세웠다. 월드뮤직이 우리 정서에 잘 어울리는 면이 있을 수 있는데, 켈틱과 안데스 음악, 그리고 빠두나 스웨덴과 북구의 포크 음악이 좋은 예라는 것이다. 이러한 음악들은 대체로 비교적 간단한 선율과 아름다운 멜로디로 만들어져있다는 것이다. 변화가 많지 않은 이런 음악들이 한편 들어서 편하고, 한편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켈틱?
배 : 통칭해서 이런 것들을 음악에서 켈틱이라고 그래요.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잉글랜드는 좀 다른 것 같구요. 스코틀랜드 그 백파이프 있고, 아일랜드 가면 뭐 탭댄스를 많이 추죠. 그걸 지그(불:gigue, 영:jig)라 한답니다. 그 리듬 자체도 지그라 그러고 춤도 지그라 그런답니다.
그는 사실상 서양적인 것 일변도로 구성된 한국의 음악적 정서를 다양화–풍부화하기 위해서, 월드뮤직의 여러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향유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데, ‘전통‘에 대한 비판적 계승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우리의 음악적 현실이라면 ‘월드뮤직‘의 수용의 의미와 위상은 무엇일까.
3. 음악 편력
: <징기스칸> <농민가> 그리고 ‘유빵끼(Yupanqui)’
퍼 : 어떤 음악적 편력을 거쳐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배 : 처음에는 팝송만 들었죠. 그건… 그냥 라디오에서 들리는 거요. 라디오를 켜면 음이 나오니까요. 삼촌이 듣던 아바나 징기스칸 그런 것 좋아했어요. 지금도 좋아하고.
퍼 : 그게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 정도?
배: 그럴 거예요. 둘리스 같은 건 와 닿지가 않았는데, 징기스칸은 좀 와 닿더라구요.
퍼 : 이미 월드뮤직에 소질이 있었네요… 하하.
배: 하하하, 그랬던 것 같아요. 양희은이나 김민기는 정이 잘 안 가고, 징기스칸 들으면 신나고 해서, ‘아 이건 재미있는 음악‘이구나 생각했죠. 고등학교 때는 라디오를 끼고 살았죠. FM 들어보면 브라더스 포, 알란파스 프로젝트 이런 게 나와요. 기억나는 게 그게 있네요 제가. Foreigner의 란 노래를 들었는데, 그 때는 Foreigner라는 말도 몰라서 사전 찾고 그랬어요.
그런 식으로 음악을 듣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아주 큰 변화가 있었죠. 여름 방학 때 사촌형네 집에 가니까 빽판들이 막 있어요. 근데 색깔도 뭐 빨갛고 파랗고 이래요. 신기했죠. 그러다가 테이프를 듣게 되었어요. 세상에 무슨 이런 음악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게 라는 콰이어트 라이트(Quiet Riot)의 노래예요 그러니까 라디오에선 당시엔 들어 볼 수도 없는 노래예요
퍼 : 저는 콰이어트 라이트, 라디오에서 들었는데요…
배: 그 당시에는 그런 것들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 땐 스콜피온즈의 <홀리데이>, <스틸 러빙 유> 이런 것들을 그냥 락으로 소개했죠.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 이런 게 소개가 되었는데, 콰이어트 라이트의 <커몬 필더 노이즈>라든지 이런 건 없어요. 그 다음에 쥬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라고 있더라구요. 들어보니까 막 때려 부수고 그러더라구요. 야! 이상하다,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 다음에 데프 레파드(Def Leppard)라는 그룹이 있어요. 그래 <풀링>이란 걸 듣고 나서, 그 테잎이 제 것이 아니니까 못 갖고 오잖아요. 그래서 아쉽게 이걸 놔두고 왔죠. 우리나라 방송을 막 찾았어요, 안 나와요. 그러다가 우연히 찾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우– AFKN이었어요.
퍼 : 누가 가르쳐주거나 한 게 아니라, 자연발생적인 과정이었네요.
배: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그 때부터는 아예 불을 꺼 놓고 듣는 거예요. 그러고서는 데프 레파드의 <풀링>이 언제 나오나 하고 생각하는 거예요. 근데 정말로 그게 나오면 너무 놀라운 거죠. 몸이 완전히 분리가 된 상태 같죠. 전혀 주변이 느껴지지도 않고, 이런 새로운 세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음악이란 건.
그 때부터는 관점 자체가 모든 게 다 바뀌어 버린 거예요. 세상을 보는 관점 자체가. 그러면은 음악도 이런데, 세상의 다른 면도 있지 않을까. 문학도 교과서에 나오는 문학이 아니라, 뭔가 안 다루어 주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찾아 돌아다녔죠. 그러니까 교과서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무언가를 말이죠.
“락음악을 통해 세상에 대한 눈을 뜨게 되었다“. – 매우 재미있는 설명이 아닐 수 없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것, 주류 세계에 속하지 않는 것 – 을 찾아 헤매다니는 비주류의 정신 – 그것이 배윤경 씨를 월드음악 매니아로 만들었다는 것인데…
퍼 : 비주류적인…?
배: 예. 그런 것들도 이제는 찾아서 보게 되는 거죠. 모든 관점 자체가 그런 식으로 바뀌는 거죠. 이게 있다면, 이 사람의 세계는 뭘까 그런 게 궁금해지는 거죠.
퍼 : 전공은 어떤 거 하셨나요?
배 : 저는 경제학 전공했습니다. 경제학은 굉장히 좋은 학문이에요. 이 세계를 이해하고 특히 월드뮤직을 공부할 때 특히 도움이 되요.
퍼 : 어떻게요?
배: 92년, 93년 그 때 우루과이라운드, WTO에 대한 논의가 분분했잖아요. 그리고 거기에 다국적 기업이라는 거 많이 나오잖아요. 그러면, 공부를 하게 되는 거죠. 음반도 문화가 아니라 하나의 산업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말들. ‘코카콜라의 식민지‘ 그 다음 맥도날드화 등. 그러니까 돈 되는 게 주류고, 돈 안 되는 거는 우수한 가치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정보가 없으니까, 안 듣는 거죠. 그러니까 문화 자체가 결국은 돈 있는 자들이 다 바꿀 수 있다, 정치까지 바꿀 수 있다는. 고등학교 때부터 빌보드차트니 그래미상 같은 것들 참조는 하지만 오히려 거기 없는 것들을 한 번 들어보면 이게 더 좋아요.
배 : 그래서 거기 있는 음악 안 듣고, 딴 걸 찾아 들으면 이게 진짜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차트에 올라오는 음악은 뭔가 “진국” 같은 것이 없어요. 감동도 덜하고. 근데 다른 것들을 들어보면 찐하고, 뭔가 실패한 것 같아도 인생에 뭔가를 던져주는 것이 있어요.
퍼 : 89학번이라 그러셨는데 그 때 같으면 민중가요, 민중문화 이런 것들을 대학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시대였는데요.
배 : 그건 되게 싫어했죠. 강압적이라고 느꼈거든요. 저처럼 음악을 찾아 들어야 되는데, 선배들이 부르라니까 부르고 하니까 우리 같은 사람은 그걸 싫어하죠. 자발적이고 뭔가 찾아서 그걸 느낌이 온 다음에 표현이 되어야지, 주입되는 걸 굉장히 싫어했어요.
전경 근무 하다 배운 민중 가요
퍼 : 저는 민중가요가 다른 음악적 경험이 없는 사람들한테는 엄청난 또 큰 진국이나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배 : 아, 그렇지요… 저는 휠씬 뒤에 왔어요. 군대를 전경으로 갔어요. 그 때 데모 막다가 느꼈어요 그런 것을. 그 음악들이 정말 진국이라는 것을. 전경으로 진압이나 강제호송 해산도 시키고 하다 보니까 몸싸움을 많이 하잖아요.
퍼 : 하하하… 힘 드셨겠습니다.
배 : 근데 대학생들하고 몸싸움하는 건 하나의 스포츠일 수도 있고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인데, 우리 부모님 같은 철거민이라든지, 노점상을 단속할 때는 굉장히 싫죠. 몸싸움하기도 싫구요. 그 사람들이 뭐 잘못 했건 그건 내가 잘 모르겠지만, 이거 좀 잘 사는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할 리는 없잖아요? 분명히 없는 사람이고.
거기서 그런 사람들이 같이 노래를 부르는데 노래도 어떻게 단순한 거 하나밖에 모르잖아요. 뭐 많이 알겠어요? 그거, 누가 가르쳐 줬는지 몰라도 농민가 부르더라도 그거 하나하나 딱 외워 갖고 보면서 막 애랑 같이 부르는 거예요.
“아! 이게 노래의 생명력이다.” 정말 노래라는 거는, 저기서 노래라는 게 힘이 있구나. 그 때 저는 오히려 그 때 배웠어요. 대학 들어갔을 때 처음에는 거부하던 걸 그때 바로 그 현장에서 배웠어요. 아 노래라는 게 저들한테만큼은 하나의 힘이 되고 생명력이 있는 거구나 느꼈죠. 아마 누군가가 그 옆에 같이 부른다면 나도 부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퍼 : 감동적인 대목인데요.
배: 노래는 진짜 그렇게 접한 것이죠. 말씀드리자면 그게 월드뮤직이나, 노래 운동 뭐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지는 기초가 됐죠. 제가 노래운동 엮으면서 제일 몰랐던 게, 남미의 음악운동은 그래도 좀 감을 잡는데, 개인적으로 주류를 거부하는 성향이 있어서 미국 포크를 안 들었어요. 피터 시거(Peter Seeger)니, 밥 딜런이니 이런 걸 안 들었기 때문에 뭐라고 비판하질 못하겠더라구요.
그가 “음악“을 알아간 과정은 이처럼 상당히 자연발생적(自然發生的)이다. 보통 음악평론가나 매니아가 되는 경로는 어떠한 것일까? 아마 개인에게 주어진 제도적인 체계 내에서 이뤄진 교육이나, 이와 유사한 정보취득에 의해서 유발된 개인적 음악적 관심을 다시 학원이나 강좌와 같은 제도적인 시스템을 타며 확대재생산 해나가는 과정에서가 일반적인 경로일 것이다. 그러나 배윤경 씨에게는 우연히 획득한 개인적인 경험의 강렬함이 우선이다. 이는 그의 민중음악에 대한 수용의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대학에 다닐 때 ‘억압적‘이라는 이유로 거부의 대상이었던 민중음악은, ‘전경근무‘에서 느낀 경험의 강렬함에 의해 다시 전유된다. 그것은 ‘진국‘이라 표현된 ‘진정성‘의 관점에서였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촉발된 음악적 관심은 비제도적인 방식으로 얻는 정보를 통해서 확대된다. 사실 이런 음악적 관심 자체도 ‘순수‘한 것은 아니다. 물론 음악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에게는 어떤 음악과 음악가가 생겨난 역사적–정치사회적 맥락도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관심은 특정 대상과 유사한 역사적 정치사회적 맥락을 가진 나라나 문명권으로 확산·이행한다.
퍼 : 어쩌면, 평범한 사람들의 음악 편력과는 반대군요.
배: 그러니까 밥 딜런을 못 들었어요. 목소리가 워낙 안 좋으니까 그 가수가 또, 짜증나고 그래서요.
퍼 : 존 바에즈 같은 경우는 다르잖아요.
배: 존 바에즈 좋죠. 존 바에즈는 좋은데 밥 딜런은 이상하게 좀…
퍼 : 하나 추천해 드릴게요. 메르세데스 소사와 라이브로 같이 부른 ♬ 한번 들어보세요. 죽입니다.
배 : 존 바에즈 같은 경우엔 포크 가수니까, 세계 민요를 많이 불렀어요. <델라 포르데스>랑, 이스라엘, 아프리카 것도 부르고. 남미의 것도 많이 불렀죠. 그러니까 포크 가수죠? 그게 진짜. 세계의 민요를 부른다는 게.
퍼 : 노래 운동에 대한 관심도 군대 갔다 오시고 난 뒤에 시작된 거네요.
배 : 전 그런 거 원래 전혀 관심 없었어요. 노래 운동 같은 건 전혀 관심 없었어요.
퍼 :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공부하고 관심을 가진 거군요.
배 : 공부도 안 했죠. 음악에 대한 건 그저 듣기만 했지, 과정이야 대충 그렇잖아요. 사운드도 단순한 것보다는 뭔가 좀 예술적인 것 찾잖아요. 그 때 <시완 레코드>라고 아트 락이란 걸 공급하는 곳 있잖아요? 80년대부터, 80년대 중반부터 했는데. 그쪽의 음악을 돈 생기는 대로 좀 구해서 들었죠. 그런데 아트락이란 건 좀 어렵죠. 어렵다는 것이, 이해를 못해서 그런 건 둘째고, 자기 자신의 음악을 하니까 시장 같은 걸 생각 안하고 자신의 무언가를 표출하는 걸 하다 보니 그런 건데. 그걸 다 따라서 듣기에는, 반복성이 없는 거죠. 몇 가지는 좀 흥미로운 것도 있는데, 멜로딕한 부분요, 카약 같은 건 굉장히 괜찮은데.
나머지는 좀 아방가르드 같아 같아서, 프리재즈 같은 기분이 많이 들어요. 즉흥적인 면이 너무 많아 가지고. 좀 듣기에 반복성이 없는 거죠. 다음에 또 듣고 싶은 마음이 생겨야 되는데, 이게 기억이 안 날 것 같아요. 이 사람들이 뭐였지 하고 들어보면 이런 거였나 하고 와 닿지가 않기 때문에 반복성이 없어요. 멜로딕 하지 않으면 반복성이 없는 것 같아요.
퍼 : 남미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요?
배 : 그 때는 남미 음악에 관심이 없었어요. 회사 생활을 했으니까요. 그때도 음반 구해서 아트 락만 주로 들었죠. 95년도인가 CBS가 개국을 할 때였어요. 토요일에 이상한 방송을 하나 하더라구요. 우연히 듣는데 이상한 건 둘째고, 방송이 감상자를 위해서 포인트를 정확히 잘 지적을 잘 해 주는 거예요. 우리 DJ들 보면 음악에 대해 “누가 불렀고” 어쩌고 저쩌고 필요없는 소리가 많죠.
근데 그 분은 그게 아니라 이 가사의 의미는 뭐고, 또 제목이 뭐라는 걸 말해 주고, 제목을 바로 말해주면서 가사를 또 읊어 줘요. 그래서 신기하더라구요. 그래서 주의 깊게 들었죠. 이 분이 알고 보니 서남준 씨더라구요. 그래서 인제 그 방송 할 때 주의 깊게 들었죠. 듣고 있는 차에 신문을 보니까 이 분이 강의도 한대요. 그럼 이분한테 들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죠.
퍼 : 그럼 최초로 남미 음악을 듣기 시작했던 때가 언제죠?
배 : 굉장히 늦을 거예요. 남미 음악을 알고 들은 건 빅토르 하라라는 이름으로 들은 게 97년 정도 되겠네요.
퍼 : 하라를 제일 먼저 들으셨군요.
배 : 아니죠. 하라를 몰랐죠. 소사를 먼저 알았을 거예요. 그런데 구체적으로 소사라는 이름도 몰랐을 거예요. 단지 뭉뚱그려서 유빵끼라는 이름으로 그 때부터 조금씩 접해 봤죠.
4. “나는 먹물티가 싫다“
: 가짜 평론가와 진짜 감상자
퍼 : 책을 낸다는 것은 혼자 관심있는 음악을 찾아 듣고, 개인적으로 공부한다는 것과 차원이 완전히 다른 일인데요, 어떤 생각의 변화 같은 게 있었습니까? 책을 내게 된 계기는 어떤 겁니까? 그것도 하라에 대해서.
배 : 월드뮤직에 대해 클래식에서도 안 다루고, 대중음악에서도 안 다루고 하는 이유가 있죠. 근데, 안 다루는 건 좋아요. 근데 좀 뭐라 그럴까요. 평론가들이 먹물 먹은 티를 내는 것 자체에 대해서 불만을 가졌고, 사실은 먹물티가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흐르는 것이 싫었어요. 미학 용어 쓰고, 음악 이론 용어 막 갖다 쓰면서, 예컨대 핑크 플로이드의 가사가 뭔지, ‘Dark Side of the Moon’의 의미가 뭔지에 대해서 해설이나 이해도 없이, 몇 백만 장 팔렸고 어디서 공연했고, 몇 백만 명이 운집을 했고, 언제 매진됐고 하는 이런 정보만을 가져다주는 이른바 음악평론가들에 대해서 불만을 많이 가졌어요.
퍼 : (끄덕끄덕) 평론가들 대부분이 표피적인 정보만 준다….?
배: 예, 이런 것들이 전혀 음악을 이해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되는데.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이 뭐냐, 물리학과를 다닌 친구가 그 얘길 해 줘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은 우리는 모른다. 왜냐하면, 달의 이면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거기 때문에. 사운드가 어쩌니 저쩌니 뭐 블루스가 어쩌니 이런 걸 따지지 말고 일반 감상자들이 들으면 도움이 되는 그런 게 필요하죠. 그러니까 제 얘기는 불만의 성격을 띤 거죠.
배윤경 씨는 시종 기존 음악평론(가)의 관행이나 방법론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을 내비췄다. 기존 음악평론은 현학성과 추상성, 표피성이 그 특징이다. 그들은 어떤 곡 제목의 의미조차 말하지 않으면서(못하면서), 미학용어를 동원하고 이론가연한다. “전부 다 듣고, 곡 뒤에 깔린 역사적 정치사회적 배경을 고찰하고 실제로 청취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설명을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배윤경 씨가 생각하는 방법론이다.
퍼 : (끄덕끄덕) 홈페이지에 보니까 “이런 이런 출판 계획을 갖고 있으니까 관심 있는 출판사는 연락해라“고 써 놓으셨던데, <노동하는 기타 천일의 노래> 내실 때에는 쉽게 잡으셨어요?
배 : 먼저 연락이 왔어요. 그전에도 한 두 군데서 왔는데 좀 이상하더라구요. ‘이후‘는 거기서 나온 제가 책을 봐 왔으니까 성격을 알고 있었죠. 거기서 출간된 책들을 보니까 제가 아는 그런 것들. 그 동안에 관심을 가졌던 거하고 딱 맞았죠. 그리고 뭐 내준다는 것만도 고맙죠. 제가 오히려 감지덕지죠.
퍼 : 월드뮤직에 대해서 알려면 <노동하는 기타 천일의 노래>외에 어떤 책을 봐야 됩니까?
배 : 서남준 선생님이 쓰신 게 있는데 정치경제학이나 정치학 같은 것과 세계 흐름들에 기반하여 음악을 보는 거죠. 이번 달에 연속 5주 1위를 하고, 몇 백만 장이 팔리고, 언제 매진이 되고, 이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음반사에 있는 사람이라면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그런 걸 약간 비판도 할 수 있고. 하지만, 월드뮤직적인 관점에서, 세계화와 관련된 연결된 그런 부분들은 할 말이 없는 거죠. 음악 쪽으로 공부를 했다는 사람들은, 제가 볼 때는 시야가 한정돼 있지 않을까.
그래도 좀 기본적으로 지금 돌아가는 것을 이해하려면, 그래도 좀 마르크스가 했던 얘기들을 좀 주의 깊게 고찰해 보고서 왜 그것이 적용될 수 있냐를 한 번쯤 따져 볼 필요 있다는 것이죠. 마르크스의 이론을 두고 단지 경제 결정론이란 말로 딱 찍어놓을 게 아니라 해석을 할 수 있는 하나의 틀을 제공해 준다고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제 책의 베이스에는 사회과학적인 관점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퍼 : 예~ 사회과학적인 관점, 정치경제학적 관점이 이 책의 기본적인 베이스를 만들고 있군요. 일관되게 음악 이론을 열심히 공부했거나 또는 체계적으로 음악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관점이라는 것이 시야가 협소할 수 있다는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요…
배 : 협소한 것이 아니라 방향이 다르죠.
퍼: 방향이 다른 겁니까? 그런데 예를 들어서, 음악 내재적인 분석의 입장에 서면 배윤경 씨가 쓴 글이나 음악해석에 대해서 ‘얜 음악에 대해서는 오히려 놓치고 있다‘ 라든지, 또는 음악 자체에 대한 풍부함 또는 음악 자체를 해석할 수 있는 음악 이론적인 내용들, 이런 부분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배 : 겸허하게 받아들일 것 같은데… 솔직히 그 부분은 모르겠어요. 저는 감상자 입장에서 글을 쓰거든요. 순음악적인 부분은 관심이 없어요. 이게 몇 소절이고, 몇 도 화음을 쓰는 지도 모르는데요.
퍼: ‘감상자의 입장에서‘라고요? 그러면 <노동하는 기타 천일의 노래>는 감상자의 입장에서 또 다른 감상자를 위해서 쓴 책이란 말씀이시죠? 전문가의 입장에서, 어디 있을지도 모르는 감상자들을 위해서 쓴 책이 아니란 말입니까?
배 : 감상을 위해서죠. 그리고 하나의 자료로 남기기 위해서고요.
퍼: 스스로를 감상자라 표현하셨는데… 그 말이 흥미롭습니다. 감상자라고 한다면 아마추어일 수도 있고, 매니아일 수도 있고요. 이와 달리 전문가라 한다면 체계적인 교육과 어떤 제도 내에서의 인정이나 또는 권위 획득에 수반한 과정이 있을 텐데… 그런 면에서 보실 때 스스로를 감상자라고 말한 이유가 있는지, 아니면 스스로 “월드뮤직 전문가“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배 : 전문가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아직도 감상자라고 생각을 하고, 감상자 입장에서 제가 원했던 부분, 정말 이 노래의 의미는 뭘까, 배경은 뭘까, 왜 이 노래가 만들어졌을까에 관심이 있죠. 음악을 들을 때 이걸 알고 들으면 그 문화를 이해할 수 있잖아요. 음악을 통해 이런 노래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구나, 이런 사건이 거기도 있었구나, 우리와 유사한 환경이었구나, 라는 걸 음악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텍스트가, 노벨상을 받은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라든지, 네루다(Pablo Neruda)라든지, 이런 작가들을 통해서 관심 있는 사람만 번역된 걸 통해서였겠지만, 음악을 통해서도 안 알려진 부분까지도 우리와 유사한 환경이 있다는 걸 이해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관심을 갖는 게 그리스로 자연스럽게 넘어 갈 수 있잖아요. 그리스도 보니까 독재를 거치고, 독일 지배하에도 있었고, 거기에 또 외세인 미국과 영국이 개입하고, 이게 보면 역시 같은 맥락에서 벌어지는 정치적인 구도가 이렇게, 그래서 같은 아픔을 공유를 할 수 있구나 하는 걸 느끼는 거죠.
정리하면 이렇다… 그에게는 음악적인 관심에 있어서 “정치경제학적” 이해가 지극히 중요하다. 따라서 ‘순음악적‘인 음악내재적인 측면에 대해서 그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 이는 기존 음악평론에 대한 회의와 결부된다. 그리고 그는 적극적인 감상자로서, 다른 감상자를 위한 책을 출간한 것이다.
퍼 : 기존의 대중음악 평론가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배 : 별로 참조를 해본 적이 없어요. 읽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아까 얘기했던 이유 때문에 싫어해요. 읽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싫어한다고 하기도 뭐하지만, 예전에 좀 읽었죠. 참조하느라고 읽었는데 이건 무협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에 “강호의 무슨 대결을 벌이는“, 이런 식의 글들… 하하. 소박하게 할 수도 있잖아요.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애릭 크랩튼‘과 블루스의 거장 ‘비비킹‘이 만났다. 잘 보세요, 수식어를 떼 보세요. 그냥 에릭 크랩튼과 비비 킹이 만난 거예요. 그런데 그 전에 들어간 수식어가 “전설적인, 블루스“의 거장이죠?
배 : 근데 우리가 블루스가 뭔지 들어 봤어요? 블루스는 우리가 듣질 않아요, 사실. 락을 듣지. 매니아도… 블루스는 제가 볼 땐 안 들을 것 같애. 우리는 일본 성향이에요. 멜로딕한 거죠. 블루스 같이 이렇게 무슨 뭐, 그런 거 우리 보통 두 곡만 들으면 지겨워 못 들어요. 우리 감성에는, 제가 볼 때는, 켈틱하고 안데스지, 그리고 북구적인,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그런 포크, 그런 서정적이고 발라드적인 요소가 있는 거지.
사실 락에서는 블루스를 많이 사용해요. 하지만 우리 락은 까부는 락이죠. 펑크고, 재미있어야 되고, 퍼포먼스가 들어가야 되고, 가사도 상당히 유치해야 되고, 직설적이어야 되고, 같이 이렇게 선동적일 수 있고, 단순해야 되고. 그런 것들이 같이 들어있어야 되지, 블루스의 진수를 한 번 들으면 힘들죠. 인터뷰하셨다는 김현 兄은, 자기는 좋지만 일반 사람들이 듣기에는 어렵다고 그래요.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퍼 : 어렵고, 듣고 있으면 부담스럽고.
배: 그렇죠. 재미가 없으니까. 흥이 안 나니까. 흥은 날지 몰라도. 이런 거 있어요. 뭐가 대단하다 하면 잘 모르지마는, 뭐가 대단하다 그러면 가만 보면 흥이 나는 것도 같은 그런 것 말예요. 그거 뭐 있잖아요. 소화제 대신에 밀가루 줬는데 병 낫게 하는 심리적인 효과.
퍼 : 애초에 남미 음악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남미의 근현대사의 경험입니까?
배 : 물론 그건 아니에요. 음악이었어요, 음악.
퍼: 처음에 음악이었다고요? 알고 보니까 비슷하더라, 이런 겁니까?
배: 나중에 알았죠.
퍼: 하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하라가 죽게 된 연유가 되게 특이해서였다, 이렇게 책에 써놓으셨던데요.
배: 그렇죠. 아주 단순했죠. 황당하잖아요. 왜 가수가 총에 맞아 죽냐구요. 대체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느냐는 거죠. 정치적인 인물이라면 모르는데, 우리의 관점으로 보면 조용필이 총에 맞아 죽었다면 이건 이상한 거잖아요? 무슨 가수가 총에 맞을까 하는.
퍼 : 제 경우, 메르세데스 소사를 알게 된 계기는 정치사회적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저와는 반대시군요.
배 : 반대지만 기본적인 거는 아마 저도 갖고 있었을 거예요.
5. 음의 원형을 찾아 : “우리 정서에는 켈틱 음악이 맞아요“
퍼: 근래 어떤 글 쓰십니까…?
배: 민족문화연구원인가에서 지금 월드뮤직에 대한 거 하고 있죠. 음악은 들으면 끝나는 거잖아요. 이론적으로 설명해도 저는 몰라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재미인데, 재즈하고 민속 음악하고 잘 만나잖아요? 재미있는 부분이 뭐냐 하면 그쪽 연주자들은 악보를 못 보잖아요. 악보를 못 보면, 즉흥성이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클래식의 소나타가 3악장으로 되어 있을 때 주제–재현, 다시 주제로 가잖아요? 그러면 구도는 주제의 선율이 있고, 다시 이걸 풀고, 다시 주제를 어떻게 해서 해석하고, 중간에 이제 카프리스(caprice, capriccio)니, 여러 가지 어떤 즉흥이 들어가고 해서 결국 음악의 형태가 이런 식으로 구조화되는데, 그러면 물론 구조화를 인식하지 않은 그 사람들의 연주도 보면, 기본적인 멜로디를 제외하고는 즉흥적인 부분이 있는 것이죠. <엘 콘도르 빠사>♬♬의 기본적인 선율은 있지만, 나머지 뒷부분도 있어요.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부분인데, 이거는 기분에 따라서, 한 마디로 내키는 대로 하는 거예요. 재즈도 똑같아요. 기본적인 레퍼토리나 이런 것 몇 소절, 그 주제만 가지고 나머지 부분은, 똑같이 있겠죠.
퍼 : 클래식하고 재즈하고 현격하게 다른 부분,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 카덴차가 있거든요? 카덴차라는 자체가 자기 마음대로 하라는 거잖아요. 기본적으로 악보는 있지만 물론. 재즈 같은 경우는 교범이 있다기보다도 연주가가 연주하는 하나하나가 다 교범이잖아요. 자기 나름 스타일이 다 있는 것.
배 : 일본 재즈는 오히려 좀 듣기가 더 편한 것 같아요. 진짜배기의 그런 맛은 좀 떨어질지도 모르지만, 그냥 감상용이라면 차라리 일본 게 나은 것 같아요.
퍼 : 미국, 유럽에서 사라진 재즈 음반이 일본에서 생산된다더군요. 아시아 음악엔 관심 없으신지?
배 : 아시아는 뭐 그다지 관심이 없는데. 터키 정도.
퍼: 월드 음악, 월드뮤직 범주 내에 포착될 만한 아시아 음악이라고 할 만한 거는 아직 별로 없다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배 : 없는 게 아니라 제가 역량이 안 돼서요. 많겠죠. 인도네시아의 타악기인 ‘가멜란(Gamelan)’이라는 악기에서 파생된 가뮬란이란 음이 있을 테고, 베트남에 가면 베트남의 음악이 있을 테고, 중국에 가면 있겠죠.
그런데, 좀 보편적이어야지 된다고 생각해요. 김수철이 그 때 얘기했는데, 우리 국악을 있는 그대로 세계인들에게 들려주기보다는 어떤 보편성을 끼워서, 아프리카 사람이 듣건, 서유럽의 사람이 듣건, 어떤 사람이 들어도 ‘아, 이건 한국적인 사운드가 있지만 이건 이해가 된다‘는 정도까지는 만들어 줘야 된다는 거죠.
예를 들어서 우리의 누구의 창을 그대로 들려주면 문화 연구를 하는 교수님들은 ‘아, 이게 한국의 음악이구나‘ 하는 식으로 이해하겠죠. 또 황병기 교수의 어떤 음악을 들려주면 매니아 정도면 ‘어, 이게 뭐 한국에서 나오는 가야금으로 연주한 곡이란다. 근데 잘 이해는 안 된다. 하여튼 이런 게 있단다‘ 이 정도지, 딱 듣고서 ‘아, 흥이 나‘, ‘아, 슬퍼‘ 하는 감정이 생긴다든지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배 : 아프리카 음악은 다 좋아요. 원주민들이 하는 거는, 아주 굉장히 아프리카음악은, 제가 이것도 중간에 한 번 공부해 보고 싶었는데, 아프리카의 매력은 폴리포니(polyphony)라는 거죠. 다성 합창인데, 우리나라 식으로 노동요를 할 때도 한 사람이 끌어 주는 거죠. 그 영화 그 있잖아요. ‘Power of One’인가? 거기 잠깐 나오는데, 한 사람이 하면 나머지 사람이 음창하는 거죠. 이 노동요가 바로 흑인 영가가 됐고, 그런 것들이 재즈의 바탕이 되는 거죠. 요즘에 제가 ‘몽골리안 루트‘를 유심히 봐요. 배경 음악으로 깔리는 걸 들어보면 몽골의 음악도 상당히 독특한 것 같기는 한데, 참고 자료로서는 이해하고 싶지만 음악 감상용으로 듣기에는 좀 그렇죠.
퍼 : 켈틱, 안데스 얘기를 많이 하시는데, 독자들을 위해서 추천할 수 있는 켈틱 음악 좀 말해주시죠.
배 : 뭐 하나 추천하긴 그렇고 제가 그걸 밝혀 보려고 그래요.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 우리는 영국 역사를 몰라요. 세계사에서는, 잉글랜드가 주된 역사라 그렇지만 켈틱에 대한 역사는 없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거 있잖아요. 이라는 거. 이 아리랑이랑 멜로디하고 상당히 비슷한데, 그래 제가 지도를 찾아봤어요. 그러니까 스카이 섬이, 저기 스코틀랜드 위에 있는 거더라구요. 상당히 위에 있는 아이슬랜드도 아니고 그쪽 섬인데, 상상을 하건대 아마 굉장히 아름다운 섬이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 멜로디가 나왔을 법하고, 거기에 불가피한 사연이 있을 것이다. 분명히 민요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사건도 거기 분명히 얽혀 있을 것이고, 단순히 민중들이 멜로디가 좋아서 구전된 것은 아닐 거고, 서로 공유하는 바가 있으니까 구전이 됐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어떤 특정 작가가 만들었는데, 이게 좋아서 그렇게 구전되는 게 그렇지만 구전된다는 거는, 악보도 없이 구전된다는 거는 그만큼 서로 같이 불렀다는 얘기 아니에요.
퍼 : 정서의 공감대가 전제되어 있다…?
배: 분명히 있을 거예요. 침략의 역사와 함께 독립과 항쟁에 대한 그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민요들이 탄생했을 거라고 짐작을 해요. 러시아 민요도 분명히 그랬거든요. 러시아 민요도 분명히 찾아보면 노동요이고 민중의 노래거든요? 민중의, 어떤 뭐 굉장히 고달픈 삶이잖아요. ‘볼가강의 뱃노래‘ 라든지 ‘스텐까 라친‘ 그런 거 다 독립 운동에 대한 것이잖아요. 노예 반란이잖아요. 그렇게 따져 보면 역사가 분명히 있어요. 우리 나라의 민요도 보면 역사적인 반란에 대해서 서술하고 노래 운동 자체가, 우리 일제 시대 때 독립 운동 가요 자체도 슬라브의 것들을 많이 차용해서 따온 것이고 결국 그렇게 따지다 보면 사상적으로 좌파일 수밖에 없죠.
여기서도 그가 가진 기본적인 입장이 드러난다. 즉, 역사적 정치사회적으로 유사한 경험을 가진 나라들의 음악은 우리가 처음 들어도 쉽게 유사한 정서적 공감대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구체적인 민중의 경험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에. 켈틱음악과 남미 안데스 음악이 우리 조선사람한테 맞다, 는 주장도 이런 데서 나온 것이다.
퍼 : 켈틱 쪽은 어쨌든, 소위 아이리쉬(Irish) 뮤지션들이 워낙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해서, 그게 뭔지 대충 짐작은 가는데, 안데스라고 말씀하실 때는 전혀 짐작이 안 되거든요?
배 : 음악은 들어보면 간단해지거든요? 안데스 사람들도 노동할 때 노동요를 이렇게 불렀을 테고 물론 양식이 다르게 굳어졌지만 저는 그 뿌리를 안데스 지역에서 찾는 거죠. 국악은 한 마디로 재미가 없어요. 안데스는 재미가 있어요. 그래서 좀 실험을 하고 싶어요. 나만 좋아하는 건가, 그래서 다른 사람한테 들려줬더니 다른 사람은 싫대요. 제가 국악을 별로 안 듣듯이 “이런 걸 좋아하냐” 그러더라구요. 하하.
퍼: 아까 몽골리안 루트를 말씀하셨는데 저도 굉장히 관심있게 보거든요. 근데 요새 그걸 보며 느끼는 건, ‘문명사적 추적‘ 이런 건 좋은데 “… 따라서 인디언이나 인디오, 네이티브 어메리칸이 곧 한민족과 같은 사람이다“는 식의 얘기는 곤란한 게 아닌가… 선사시대인들의 문화적인 교감은 인정할 수 있지만, 감상적이고 예술에 가까운 그런 것들이 있다고 하는 것은, 개인적 기호의 차원을 넘어서, 민족적인 인종적인 차원에서 동일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뿌리에 관련된 거라는 얘기는 좀 다른 부분의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몽골리안 루트가 그런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고 봐요. ‘민족적인 것‘이라는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를 가지고 동일하다 같지 않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에 대해서 저 같은 경우에 고민이 많이 되더라구요. 음악적인 것도 마찬가지. 물론 중국 음악 ‘첨밀밀‘을 닿으면 와 닿더라고요.
배 : 저는 와 닿지 않던데요.
퍼: 중국의 얼후(二胡)와 해금은 음색이나 형태가 비슷하죠.
배 : 영향은 받았겠죠.
퍼: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디까지가 경계인가 하는 문제말이죠.
배 : 그게 월드뮤직의 같은 그런 걸 거예요. 예를 들면은, 베토벤의 를 두고 남미의 어떤 애들이 연주를 했다. 그럼 월드뮤직이 되는거죠. ‘스틸 드럼(Steel Drum)’ 이라고 멜로디를 낼 수 있는 드럼이 있는데 그런 걸로 연주를 한단 말이에요. 그러면 이것도 월드뮤직이 되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서, 줄리어드 음대에서 민족학적인 관점에서 세계의 민족 음악을 월드뮤직이라고 했던 것을 상업적으로 만든 것이 지금 유통되는 월드뮤직이라고 보는 거죠.
그는 이렇듯 월드뮤직의 정의를 평이하게 규정한다. 까다롭지가 않다. 베토벤 음악을 남미 인디오가 전통악기로 연주하면 그것이 월드뮤직이 된다, 는 식으로.
배 : 그러니까, 김현 兄 같은 사람을 선수라 그러는데, 이런 선수들이랑 얘기했을 때 “뭐가 안 되냐?”고 물어 보면 “야 사실 우리가 외국 애들이랑 기타가 되냐? 걔네들은 어렸을 때부터 그냥 이게 돼 있는 거야. 우리는 나중에 철 들고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부터 막 남의 것 지지리 귀로 듣고 모방해서 배우잖아, 그거 다르다 그거지. 음이 몸에서 나오는 거고, 우리는 귀로 들어 온 걸 갖다가 다시 이렇게 하는 거고.” 그러니까 한마디로 기타 워크가 다르죠.
엑스포에 가보니 저 쪽 한 구석에서 이상한 애들이 무슨 연주를 해요. 앞에서 보고 있는데, 연주를 시작하는데, 걔네들이. 그 땐 몰랐죠. 이게 무슨 뭐 차랑고라든지 악기 이름은 몰랐는데, 이 기타를 한 번 치는데 손이 정말 안 보여요. 아 근데, 그걸 우리는 안 보여 주면은 우리 나라 기타리스트는 그걸 훑어 버리는데, 이걸 뜯더라고요! 이렇게 분명히 우리는 셰이크가 난 보이는데 그걸 뜯더라고, 다 일일이 다. 놀랜 거죠. 저런 기타 주법도 있나?
퍼 : 그런 음악들이, 기계나 소위 전자 음악들 이런 것과는 거의 관계없는 음악들이잖아요.
배 : 완전 어쿠스틱이죠.
퍼: 어릴 때, 처음에 음악에 개안을 할 때는, 락을 통해서였다 그러셨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지신 거잖아요.
배 : 락을 안 듣죠. 완전히 안 듣죠, 락은. 꺼 버리죠, 나오면. 소리가 똑같으니까요. 리치 블랙모어(Richie Blackmore)도 지금은 어쿠스틱을 해요. 스팅도 무슨 아랍 음악 같은 걸 하고, 러시아 음악을 하고.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도, 이상한 음악을 찾아들어요, 그 사람도. 이 사람은 정말 극단적이에요. 티벳의 어떤 산골짜기의 어떤 그런 무슨 수도승들을 불러 와 가지고 녹음을 해요. 자기 스튜디오에 와 가지고. 정말 월드뮤직이죠. 산골짜기의 수도승 데려다가 녹음을 하는 거죠.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배윤경 씨는 그 외에도 <엘 꼰도르 빠사>나 스코틀랜드 민요인 <스카보로우 페어> 같은 노래로 출발한 폴 사이먼, 아트 가펑클, 그리고 얀 가바렉(Jan Garbarek) 같은 아티스트들의 예를 들었다. 이런 아티스트들이 음악의 원형을 찾아 갔다는데, 그 원형이란 무엇일까.
배: 공통점이 있겠죠. 자기가 좋아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뭔가 계속 추구하다 보니까 원형으로 자꾸 들어가는 거거든요. 아 이게 정말, 원형이라는 것은 인간과 자연이 둘이 아니라는 거죠. 악기의 재료 자체가 자연에서 나온 갈대였죠. 하나 가정을 해 보면 이런 팬파이프를 만드는 과정도, 그, 신화에 나오는 것처럼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도 산에 가 보면은 바람이 불면 바람소리가 나잖아요. 그런데 바람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그게 풀이 마찰되는 거잖아요. 풀이라든지, 나무라든지, 돌이라든지, 물도 마찬가지죠. 근데 이런 것들을 보면 모방하고 싶다, 저 소리를. 휴∼ 흘러갈 때. 난 이게 좀 멜로디적으로. 그러면 저게 흘러갈 때 갈대사이를 스치고 갔으니까, 나는 갈대를 엮어서 바람을 한 번 불어 봐야… 별 거 다 있을 거 아니에요. 이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하고, 바람을 불어 보니까 소리가 나. 허, 다른 거 요거 부르고 요거 부르니까, 요걸 한 번 묶어 볼까? 음이 두 개가 나와, 이런 식으로 해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유명한 락음악의 뮤지션들도 이제는 월드뮤직적 요소를 자신의 음악에 집어넣거나 아니면 아예 월드뮤직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 기존의 락음악은 이제 정체되어 실질적인 음악적 발전은 기대할 수 없으며 그것은 월드뮤직에 대한 기존 뮤지션들의 관심으로 증명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러한 월드뮤직적인 요소가 가지는 힘의 기초가 인류보편적인 감성이나 이지(理智)에 있다는 것이다.
6. 홀로/ 느리게/ 가난하게 사랑하라, 음악을.
<노동하는 기타 천일의 노래>는 남미음악에 대한 책만은 아니다. 이 책에서 배윤경 씨는 한국음악에 대해서도 발언하고 있고, 월드뮤직의 개념에 부합할 가수로 김수철, 안치환, 이상은, 김민기, 장사익, 정태춘, 등등을 들고 있다. 책의 본문에서는 안치환을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퍼: 책에서 김남주를 네루다나 하이네에 비견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안치환 얘기로 넘어가셔서 그를 되게 높게 평가하신 것 같은데.
배 : 제가 그런 게 좀 있는 것 같아요. 다들 아니라고들 그래. 주변 분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 정도는 아니다.” 아, 그냥 솔직하게 저는 안치환 팬이어서, 제가 그냥 그랬다, 고 얼버무리고 말았는데, 그 정신을 좀 샀어요. 김남주를 대중가요에서 이렇게 얘기하는 가수가 없기 때문에, 또 김남주 추모 앨범을 냈다는 자체만으로 저는 그냥 그 나름대로 좀 높게 평가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평가를 하고 싶다고요.
퍼 : 서문에 보면 월드뮤직의 개념에 부합되는 한국 아티스트들의 이름을요. 죽 늘어 놓으셨잖아요.
배 : 사실 그 부분도 많이 두드려 맞았어요. 음악하는 사람들한테.
퍼 : 그 중에 특별히 안치환을 본문에서 비중한 이유가 궁금하다 이겁니다.
배: 그건 노래운동에 대한 거였죠. 현장에서 활동하는 가수니까. 그리고 우리가 알 수 있는 가수가 없잖아요. 현장에서, 노찾사 이런 것도 아니고. 현장에선 모르잖아요. 공연을 한다든지 이렇게 예매를 하니까 찾아와 들어가겠다. 이러면서 하는 게 없잖아요. 아니면은 노동 집회…우리가 갈 수가 없잖아요.
퍼 : 정보 자체가 없죠.
배: 네, 그러다 보니까 그래도 좀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대중들이 접할 수 있는 가수는 안치환. 가까운 인물이고 그것도 있지만, 노래 운동에 몸담았었고, 현존하고 있고 그거죠.
배윤경 씨의 월드음악 개념에는 음악의 사회성, 정치사회적 맥락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자신이 인정하는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안치환을 월드뮤직 개념에 가까운 한국의 뮤지션으로 특필한 듯하다. 그리고 안치환 음악에 대한 그러한 평가는 배윤경 씨가 가진 고 김남주 시인에 대한 애착과도 관계가 있다.
퍼 : 이름을 죽 열거한 거에 대해서 다른 음악 하는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비판하던가요?
배: 그거 주관적인 거예요. 이상은 같은 경우에는, 개인적인 건데, “우리가 볼 땐, 가수들이 또는 선수들이 볼 땐, 아니다. 전통을 발굴한 것도 아니고, 계승한 것도 아니고 그런 것도 아니다“라는 식이죠. 근데 제가 일본에서 어떤 자료를 보니까. 이상은이 일본에서 공연했는데, 일본 관객들이, 나중에 이상은에게 감사하다는 표현을 굉장히 많이 했다. “하∼ 당신은 우리에게 잊혀져 있던 거를 생각하게 해 줬다.” “이것만으로도 걔가 그래도 인정받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그렇고 다른 것들, 안치환이라든지 이런 것도, “적당한 인물이냐? 그렇게 높게 평가할 수 있느냐“라길래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팬이라서 그랬습니다” 하고 그렇게 넘어갔죠.
퍼: 요즘 인디는 어떠세요?
배 : 인디에도 관심 있었죠. 제가 직장 다닐 때. 그 땐 많이 있었어. <삼청교육대>니 <허벅지 밴드>니 이름도 재미있고… 그 때는 참 재미도 있었어요. 좀 비판적인 게 좋았어요 하여튼. 단순하지만, 음악적인 뭐 그런 것도 좋지만 뭔가 새롭다. 안 하는 걸 한다. 그래서 좋아 듣고 있다 보니까, 좀 건방져요. 뭔가를 도구화 시켜버리는 감이 들고, ‘난 멋대로… 뭐가 아니다.’가 아니라. 난 좋아서 생활하면서 하다 보니까 그다 보니까 테크닉도 늘고, 그담 뭔가 자기에 대한 불만이 있으면 거기에 대해서 뱉어 보기도 하고, 그러면 락이 되기도 하는데. 이거는 뭐, 코드 세 개에 펑크 형식 어쩌고저쩌고. 너무 단순해가지고, 음악성이 없잖아요, 일단 들으면. 뭐 장난하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퍼 : 인디 음악에 대해 비판적으로 제가 느끼는 건 뭐냐면, 전반적으로 분명히 메시지성은 강하잖아요. 그런데 메시지랄까 하고 싶은 것을 전달하는 마인드랄까 이런 게 좀 유아적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좀 치기가 있는 경우가 있죠.
배 : 전 이미지보다 음악성이 없다 그냥 그거에요. 가끔 합동 공연을 할 때 있어요. 섞여서 나올 때 보면, 박수가 안 나와요. 짝 짝 이렇게 좀 해야 되는데, 이게 안 되요. 저것도 마취가 돼 가지고 사람들이 그 분위기에 마취되니까 그냥 그렇게 하는 거지, 흥이 안 나는데. 그러니까 이게 음악이 안전빵으로 돌아가요, 무슨 얘기냐면 그나마 검증된 것 있잖아. 그래도 반은 검증이 됐으니까. 그러니까 열심히 들을려고 안 하니까 그렇게 되는지 모르겠는데, 뭔가 검증됐다는 것으로 돌아가 누구 좋네 누구 좋네 그러면은 최소한 이렇게 실망을 안 하니까요.
그는 이른바 인디 씬의 락음악의 음악적 진취성이 없으며, 오히려 검증된 것만 찾는 보신주의 같은 것에 젖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퍼 : 배윤경 씨가 가진 음악적인 생각이나, 추구하고자 하는 바를 공유하고 토론하는 모임이랄 게 있습니까?
배 : 월드뮤직에 대한 거는 없고, 제가 이번에 <엑스퍼트>라고 있어요. 사이트에 한 번 신청을 했어요. 제가 요번에 원고 쓰는 거 끝나면 컨텐츠 업데이트 해서 그 때부터 제가 기획했던 거, 유빵끼라든지 이런 거 한 번 부족하나마 한 번 다루고 넘어갈려고 그래요. 그렇게 해서 한 5명만 딱 모였으면 좋겠어요.
배 : 그리고 이런 게 있으면 좋죠. 어떤 스폰서가 정말 밀어 줬으면… 생활비만 좀 대 줄 때 제가 다른 거 아무 것도 안 하고 그거만 했을 때, 음악의 배경을 알고 듣는 거하고 막연하게 듣는 거하고 분명히 차이가 있거든요.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도 사실 그런 걸 좀 알아야 돼, 사상이라든지 그런 거를, 그런 거 모르고 음악만, 멜로디가 좋다, 이론이 어쩐다 그런 게 아니고 철학이 분명히 동반돼야 되거든요? 그럼 테오도라키스 같은 사람은 분명히 하나의 사상 운동가잖아요. 정치가이기도 하면서. 그런 것들이 또 음악적으로 표출된 것이기도 하고. 우리 나라에서 그것이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하여튼 음악을, 클래식하면은 순수 음악이잖아요. 순수 예술. 그야말로 그런 게 음악적 자유를 더 제약하는 요소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퍼 : 책을 내시면서 사실상 전업 작가가 되신 건데요.
배 : 지금 딴것도 해요. 자격증 같은 것도 공부하고 그래요. 부동산, 공인중개사 이런 것도 공부하고 그래요. 그런 건 기본적으로 해 놓으면 사회 생활에도 도움되는 거구요. 그래도 기본적으로 좀 수입은 있어야 되기 때문이죠.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 공부를 한다는 말은 참 의외였다. 이 음악평론가, 가난한 것 같다. 순음악적인 측면에 대한 회의와 사회성에 민감한 감상자에 대한 지향으로 뭉친 그이지만, 홀로 외로이 연구하고 감상하는 것에 대해 상호 평가를 해주는 일정한 집단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현실적으로 이러한 자신의 진지하고 유의미한 음악연구 작업이 경제적인 가치로 전화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착잡해 했다.
퍼: 회사생활은 어땠나요?
배 : 집에 안 보내 주는 게 싫더라구요. 원하지 않는 거를 하면서 그것도 부자연스러우면 안되잖아 또. 같이 또 어울려줘야 되고 하니까 좀 그런 것들이 안 맞았어요.
배윤경 씨는 서울시 근로복지관의 음악실에서 DJ로도 일하고 있다. 여기에 있는 쏘스를 이용하여 인터넷 방송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배 : 어, 그 때 했어요, 초창기에. 제가 파일을 만들어서 서버에 올려놨죠.
퍼: 지금은 안 하시고요?
배 : 지금은 뭐 아무런 지원이 안 되니까. 하다 못해 그것을 해서 뭔가, 아니 지원은 둘째치고 반향이 있으면 좋겠는데, 전혀 엉뚱한 걸 물어보니까. 리키 마틴이니, 제니퍼 로페즈니,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이런 걸 찾는 사람은 있어도… 그러니까 제가 보내 주고 싶은 건 찾질 않고, 어서 그걸 들어 왔는지, 그걸 구해서 달래는 거예요. 흥은 전혀 안 나고 이건 뭐 관심도 없는 걸 이렇게 자꾸… 에이 좋다 그래. 그래서 몇 개 했는데, 자꾸 그런 식으로만 요구가 오지, 실제로 제가 보내 주는 부분에 대해서의 문의는, 거의 없죠. 그러다보니까 뭐 좀 신바람도 안 나고, 혼자서만 이렇게.
음악하는 사람들하고 얘기해 봤더니, 그만둔 친구들 인제 얘기를 듣다 보면, 그런 얘기 하더라구요. 똑같대. 반향… 혼자 공허하게 외치는 것 같아서 그만 뒀다고. “난 노래를 열심히 했는데, 들어주는 사람이 누가 있는지, 참 모르겠다.” 그래도 참 미련은 갖고 있고 또, 직장 다니면서도. 그런 사람들 많이 봤어요.
퍼 : 직장은 언제 그만두셨습니까?
배: 그 때가 97년 11월달에, 짤렸죠. 그 때 IMF가 터졌거든요. 뒤에 사업한다고 또 설치다가, 그 동안 월급 받아 가지고 꼬박꼬박 모아 놓은 것, 다 날리고. 그래 얼마나 아까워요? 그걸로 여행이나 한 번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허 그 돈 갖고, 그것도 몇 백만 원인데, 그 돈이면 국내 전국일주를 했을 거 아니에요. 아니면, 그 하다못해 음반이라도 사 둘걸. 그래 그냥 똘아이로 살자. 제 친구들도 똘아이라고 부르니까. 이런 놈 하나쯤 있어도 되지 않을까.
스스로 ‘똘아이‘라 말하며 그는 웃었다.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월드뮤직이란 코드로 모두어 보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제도 속에 이러한 사람들을 수용하고 지원할만한 폭을 갖고 있지 못하다. 월드뮤직은 별로 돈이 안 되니까. 이처럼 ‘돈 안 되는‘ 데다 자신을 투여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매니아일지 모른다.
퍼 : 어떻게 보면 진정한 매니아시네요.
배: 아, 매니아죠. 매니아죠 뭐. 평론가도 아니고 매니아. 제가 홈페이지 처음에 개설했을 때 동호회가 그렇게 해서 좀 많이 저 때문에 이렇게 좀 엮어진 사람들이 있어요. 제가 그 때 처음에 홈페이지는 제 시하고, 소설을 많이 올렸거든요. 그걸 읽고서. 제가 인제 대학교 때나 전경생활 하면서 좀 써놓은 거. 그 다음 복학하고 나서 그 때 많이 느꼈던 것들. 그런 것들을 시는 한 7,80편 되요. 소설을… 지금도 욕망이 있죠. 저만의 어떤 그 상상의 세계가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한 번 엮어 가지고, 근데 좀 진척이 안 되니까. 몇 가지 있어요 그런 것 좀, 소설. 알레고리적인 것도 있고. 그런 것들을 한 번 조금은 좀 마무리를 짓고 싶죠. 그것 때문에 저를 이렇게 찾아 온 사람들이 있어요, 연이 닿고. 제 소설을 읽고 나서, 참 공감이 된다.
이 순수해 보이는 사람, 돈 안 되게 사는 데 타고난 소질이 다분한 듯하다. 무슨 소설이고 시냐… 그는 김남주 외에도 김광규나 백석 시를 좋아한다고 했다.
퍼 : 어디 발표하신 적은 없나요?
배: 발표하려고 했는데, 안 받아주더라고요. 민족문학작가회의 뭐 이런 데, 제가 하는 부분이, 좀 참여적인 것도 있다 해서 좀 그래서 응모를 해 봤는데, 함량 미달이겠죠 뭐. 시 공부는 많이 했죠.
퍼 : 책에서 네루다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요…?
배: 사실 잘 몰라요, 저도. 네루다는. 우리 나라 사람들 거밖에 몰라요. 네루다는… 저는 남미 시인들이 좋은 게, 스타일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그런 것도 있잖아요, 뭐 보르헤스가 환상적 뭐고,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뭐다, 이런 이야기 많이 하는데, 그거 뭐 하나의 방식이겠지만, 제가 보기엔 표현이 그냥, 단순하면서도 그냥 딱 이거잖아요. 우리나라 시를 보면, 시어를 갖다가 기가 막히게 잘 쓴 사람들 많아요. 아주 그 예쁜 말 어디서 그렇게 모아 왔는지? 근데 남미 시인들은 우리가 툭툭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도 시가 될 수 있다, 욕설도 정말 그런 것도 시어가 될 수 있다. 우리 시중에 맑시즘이나 뭐 마르크스 어쩌고저쩌고 이런 시어는 사실 절대 들어갈 수가 없죠. 근데 남미 사람들은 시어 중에도… 사회과학적인 용어들도 팍팍 내뱉을 수 있는 이런 정서가 부러운 거예요.
퍼 : ?… 제가 중국 갔을 때 중국 음악 계속 들으면서 다녔거든요? 러시아 갔을 때도, 음악의 의미가 감성적으로 딱 와 닿더라구요.
배 :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게 다큐멘터리잖아요. 풍물들이라든지. 그런 걸 보면은 왜 저런 음악이 나왔을까가 조금은 이해되죠. 근데 안데스 산이라는 것 그 자체가 우리가 말하는 그런 이미지에서 오는 게 아니라, 황량하다. 혼자다, 저게 보면, 예를 들면 안데스의 콘돌, 걔들 뭐 군거 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 모르겠어요. 콘돌 보면은 혼자 날아다니고, 티벳에도 뭐라 그러죠? 설표라 그러나요? 그런 뭐 표범이 있어요. 독립 생활을 하잖아요, 그 황량한 데에서.
자연 속에서 그 사람들도, 그런 감정들이 들어서 막 그걸 위안을 삼고 싶어서 음악을 그렇게 표출하지 않았을까. 자연을 통해서, 그러니까 그런 상상이 되게끔 조건이, 뭐 고산지대나 이런 데 보면 저런 음악이 나올 수밖에 없겠구나. 저 같아도 뭐 그런 감이 드는데요. 하여튼 되는 대로 저도 구해다 봤어요.
책 쓰기 전에도 코스타 가브라스라든지, 이런 거 막 그냥, 남미에 관련된 건 하여튼 간접적인 거는, 니클로샤 안초 같은 것도 막 그냥, 다 구해서 본 거야, 그때도. <칠레 전투> 같은 거야 뭐 당연히 보고. 거기서도 많이 제가 베껴서 썼죠, 워낙에 쯧 없으니까. 결정적인 거는 한 번 뭐, 가야죠. 가서 저는 CD를 구하고 싶은 게 아니고, 그 사람들 농사짓는… 아니 밭 갈다가 쉬는 시간에 정말 제가 다큐멘터리로 봤듯이 그렇게 악기 갖다 놓고 부르면서, 여흥을 보내는지, 그렇게.
그의 예의 자연발생적 관심의 축은 이제 안데스로 옮겨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다시 태어나면 안데스에서 태어나게 하소서” 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퍼 : 그런데 말이죠, 실제로 남미 음악 같은 경우는 스페인어를 잘 해야 들릴 것 아닙니까?
배 : 저도 몰라요. 나중에, 다른 자료를 보고서, 이렇게 영역된 것을 참조한다든가, 그 정도 수준으로, 아 이게 대강의 의미가 이렇겠거니. 만약 이렇게 지금 나오잖아요. ‘컴바야‘. 이건 뭐 ‘컴 바이 히어‘거든요? 이게 어떻게 보면 이게 민중의 찬송가죠. 교회 민중 찬송가. 구세주 곁으로 다 함께 모이세. 이런 식으로 대강의 의미만 파악하고. 정확한 의미는 잘 모르죠. 지금 아마 제가 빅토르 하라 노래를 들으면 아마 새롭게 들릴 거예요. 워낙 안 들은 지가 오래 돼 가지고. 그 때 쓸 때만 잠깐 들었지. 안 듣죠. 들을 시간… 뭐 따로 듣질 않으니까.
퍼 : 최근에는 가–장 많이 듣는 음악은요?
배 : 뭐, 없어요. 대중이 없으니까. 별별 걸 다 들어요. 테크노도 듣고. 테크노에 대한 오해가 지금 하나 있는 게 댄스가 테크노가 아니에요. 옛날에 예를 들면 ‘반 젤리스‘라고 있어요. 전자음악을 하는 키보드… 영화음악도 하고. 1492년 작곡했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테크노로 가요. 테크노 계열에 전자음악도 들어가거든요? 그 때 제가 듣던 테크노는 뭐 그런 걸 테크노라고 했는데, 지금은 댄스를 테크노라고 얘길 하니까. 다르게 분류하면 앰비언트(Ambient)라고 그러죠 또. 환경 음악이니 뭐 이렇게. 전자 음악을 하면서도 좀 자연적인 소리를 내는 게 있어요. 그런 것도 듣고, 뭐 뉴 에이지도 듣고. 원초적인 것도 듣고. 요즘에 주로 듣는 건 켈틱.
퍼 : 오디오는 어떤 것 갖고 계십니까?
배 : 오디오는 듣고 있을 이유가 없죠. PC로 듣기 때문에. 저는 음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얘네들이 무슨 음악을 하냐. 음질까지 따져서 듣다 보면 진짜 그건 고상한 정말, 음질까지 좋아하는 진정한 매니아일지 모르지만, 저는 그냥 많은 걸 들어야 되고, 얘네들이 뭘 하는지.
보통의 경우 이런 음악 매니아들은 오디오 매니아이기도 하다. 그래서 물었는데 배윤경 씨의 답변은 “음질“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음질이 곧 음악은 아닌 것이다.
퍼: 테이프를 많이 듣는 게 CD로 구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그렇죠?
배 : 그거죠. 녹음해가지고 듣고, 그 다음에 녹음을 많이 하니까 또. 라디오 같은 거 녹음도 많이 하거든요. 이런 경우 있잖아요. 이쪽 방송국에서 좋은 거 나오는데, 또 이쪽 방송국에서 좋은 거 해. 그러면 할 수 없이, 두 군데 동시에 들을 수 없으니까 하나는 녹음해 두었다가 다음 날 듣고, 뭐 지금도 그거는 하죠. 뭐 KBS에서 국악 프로를 하는데, 아 요 부분을 이번 주에 한 번 들어 봐야 되는데, 재즈를 하니까 요즘에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것도 알기 위해서는, 한번쯤 들어 놔야죠.
퍼 : 그러면 음반 매장에 가실 일은 별로 없겠네요.
배: 거의 없죠. 그래서 제가 감을 좀 못 잡는 게 유행이나 챠트는 전혀… 오히려 더 몰라요, 음악을.
퍼 : 대중가요 음반은 저도 안 사요. 음반 자본, 음반 시장의 문제이니까 가 보긴 갑니다.
배: 저보다 나으시네, 저는 요전에 글 쓰면서 메이저 음반사라는 말을 써야 하는데 그게 뭔지 몰라서. 그래서 찾아 봤죠. EMI, BMG. 이게 메이저 음반사구나. 아직도 그런 걸 몰라요, 잘. 오히려 그런 걸 잘 모르고, 워낙 아티스트별로 음악 자체를, 텍스트 자체를 많이 읽어야 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그런 것들은 등한시하게 되잖아요.
퍼 : 전 객석, 등의 잡지에 크로스오버 등이 조금씩 나오다 제 3세계 음악이 나오는데 찾아봅니다.
배: 저도 한 번 찾아 봐야 되는데. 근데, 인터넷 때문에 또 이게 자꾸 안 보게 되는 일이 있어요.
배윤경 씨가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은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