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으로 살아간다는 것 – 강진주

강진주(18). 고등학교 2학년. 하자센터의 죽돌이. 만나기 전에 귀를 뚫고, 노랗게 혹은 빨갛게 머리를 염색한 힙합 스타일의 10대를 머릿속에 그렸다. 그러나 내 섣부른 짐작과는 달리 진주는 단발 생머리에 안경을 낀, 평범한 차림의 여고생이었다. 게다가 진주는 대한민국의 대부분 자기 또래들처럼 열심히 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러나, 진주는 대안교육 공간이라는 '서울특별시립 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에도 한 발을 디디고 있다. 고등학교 재학생으로서 하자에 다닌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열 여덟 진주는 어떤 생각으로 이곳에 오는 것이며 이곳에서 무엇을 얻고 있을까?

진주, 하자로 가다

 

 

약속보다 2시간이나 늦은 저녁 7. 헐레벌떡 하자로 들어선 진주는 연신인터뷰, 다른 친구랑 하셨어도 되는데…’라는 말을 내뱉으며 미안해했다. 학교에서 방송반 신입생을 뽑는 일 때문에 늦었다고. 키가 큰 열 여덟 소녀 강진주를 따라 하자센터의 스넥바로 갔다. 하자 센터의 10대들이 사장도 맡고 종업원도 맡아서 자치 운영한다는코코봉고였다. 라면과 파전, 그리고 진주의 어머니가 싸주셨다는 딸기로 푸짐해진 상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자에는 언제 처음, 어떻게 알고 오게 됐어요?

>> 하자가 재작년 12월에 생겼는데 생긴 지 한 달쯤 뒤에 오게 됐어요. 원래 힙합을 좋아하는데 아는 오빠가 여기에 힙합 강좌가 있다고 얘기해줘서 그 강좌를 들으러 왔던 거죠. 힙합 음악도 듣고 뮤지션에 대한 얘기도 하고 미국의 대중음악 시장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그러는 강좌였거든요. 그때만 해도 사람들하고 별로 친하지도 않았는데 작년 디스토리 페스티벌에서 사람들하고 많이 친해졌죠.

 

 

 

그럼, 말하자면 이곳에 오게 된 동기가 기존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과는 달리, 학교가 너무 싫고 견딜 수가 없어서는 아니었다는 얘기인데?

>> . 단지 학교에선 접하지 못하는 걸 이곳에선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온 거예요.

 

 

 

처음 하자에 왔을 때 학생들이 얼마나 있었어요?

>> 그때는 얼마 없었어요. 게다가 대부분이 학교를 안 다니는 자퇴생들이었고.

 

 

 

하자에 온다는 것에 대한 부모님의 반응은요?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 처음에 엄마가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막상 와보니 담배 피우는 아이들도 많고

 

 

 

부모님이 그런 걸 아셨을 때는요?

>> 되게 싫어하셨죠. 하지만 아빠를 설득해서 디스토리 페스티벌에 참석하시게 했고, 아빠도 여기저기 둘러보시곤 좋아하시게 됐어요. 이제는 밤에 늦으면 데리러 오세요. 학교 공부말고도 다른 여러 가지 일을 열심히 한다는 점에 대해 저를 믿고,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남매(자매)가 있나요? 있다면 하자에 대한 관심은?

>> 중학교 3학년 여동생이 한 명 있어요. 동생도 여기 몇 번 와봤지만 동생은 집에서 공부만 하기 때문에 이곳에 특별히 관심을 갖거나 저를 부러워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하자에 오는 것에 대한 친구들의 반응은요?

>> 아는 친구들만 알지만 그 친구들 되게 부러워해요. 다들 전교 1,2등 하는 친구들인데, 자기들은 공부에 전념하면서, 한편으론 제가 다른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걸 부러워하는 거예요. 저도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친구들이 공부 잘하는 걸 보면 부러울 때도 있지만 일단은 공부와 공부 이외의 일도 다 하는 지금의 제 모습에 만족하고 있어요.

 

 

 

하자에 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는 없어요?

>> 일단 제가 하자에 오는 걸 아는 친구가 별로 많지는 않기 때문에 그런 친구는 없는 것 같아요. 대체로 부러워들 하죠. 예를 들면 핸드폰에 여기서 알게된 오빠 전화번호 찍혀있는 거 보면 부러워하고

 

 

 

하자에 오기 전에 어떤 기대를 했나요?

>> 하자에 대해서는 몰랐어요. 하자가 이런 곳인 줄 전혀 몰랐죠. 그저 힙합 강좌가 있다는 얘기에 와본 거예요. 그런 걸 가르쳐주는 데는 없으니까.

 

 

 

하자에 와서 적응을 못했다든지 실망을 해서 나간 친구들은 없었고요?

>> 그런 친구들은 없었어요. 그런 것말고, 하자가 방송에 나간 이후로 하자 홈페이지에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는데 다들 말로는오고싶다, 부럽다그러지만 실제로 온 사람들은 없었어요. 일단 왔으면 적응은 자기 몫인데 여기에 올 용기조차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학교 친구들과 하자 친구들 사이에 분위기의 차이는 있나요?

>> 학교에선 아무래도 공부 얘기를 주로 하지만, 여기에선 학교친구들이나 엄마 아빠하고는 이야기 할 수 없는 진로 얘기 같은 것을 판돌이들, 언니 오빠들하고 할 수 있어요.

 

 

 

그럼 하자 친구들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겠네요?

>> 그렇지도 않아요. 이곳에 오는 사람은 이곳에서 친하고, 각자 밖에 나가면 또 자기 삶이 있으니까 거기선 또 다르죠. 저는 학교친구들도 좋아요.

 

 

 

이곳에 온 뒤로 학교 자퇴하고 싶은 유혹을 느껴본 적은?

>> 예전에야학교 공부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학교 공부가 나름대로 꼭 필요한 거라고 봐요. 자퇴한 사람들 중에는 학교 공부가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자퇴한 사람도 있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도 적응을 못해서 자퇴한 사람도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후회하는 걸 보니 자퇴 생각은 잘 안 하게 되죠.

 

 

 

학교공부가 필요하다는 말의 의미는?

>> 꼭 대학 가기 위해서가 아니어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초적인 지식이라고 생각해요. , 학교에서 하는 방송반 활동도 재미있구.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초적인 지식이라. 학교에 다닐 당시 나도 해봤던 생각이라 낯선 이야기는 아니다. , 누구나 그런 생각(위안?)을 하며 학교에 다니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막상 학교를 졸업하고 보니, 학교에서 배운 어떤 지식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인지 잘 모르겠다. 가사 시간에 배운, 밥 물 맞추는 방법? 이제는 다 잊어버린, 정치경제 시간에 배웠던 시사 개념들? 역시 이젠 잘 기억나지 않는 문학, 역사적 사실들? …

그 얼마 되지 않는 지식을 배우기 위해서라는 것이, 학교 생활을 버텨내는 주요한 이유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일까? 머리 속에 많은 의문들이 떠올랐지만, 일단 그냥 가기로 했다.

 

 

 

하자에 친한 친구가 많아요?

>> 자주 오고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알고 친해요. 그런데 새로 온 사람들이나 저쪽(건너편에서 컴퓨터를 하고 떠드는 학생들을 가리키며)에 있는 애들은 하나도 몰라요. 쟤네들은 프로젝트는 1, 2명이 듣는데 막 10명씩 몰려와서 컴퓨터 같은 거 쓰고 놀다가 가요. 이곳에서 생활하는 우리는 하자라는 공간에 대해 감사히 여기면서 이용하는데, 놀러오는 아이들은 그냥 가볍게 놀러 와요. 하자 실내에서는 금연인데, 막 아무데서나 담배 피우고 꽁초 던지고우리는 자유가 아니라 자율이거든요. 하자에는 7가지 규칙이 있는데 그건 최소한 지켜줘야 해요. 그런데 그걸 안 지키는 거예요.

 

그런 문제에 대한 규제나 대책 같은 건 없어요?

>> 그런 건 없어요. 하도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고 그래서 언니가 한번 (그 학생들한테) 얘기한 적은 있는데 그래도 여기는 다같이 이용하라고 서울시에서 만든 거고, 그 자원은 공유하는 게 기본이니까 나가라고 할 수는 없어요. 변하겠죠, 그 친구들도.

 

진주에게는 죽돌이답게, 하자를 자신의 소중한 공간으로 여기면서도 기본적으로 개방적인 태도를 견지할 줄 아는 성숙함이 있는 듯했다. 한편 진주가 말한 하자의 7가지 규칙이란 다음과 같다. 꼭 하자의 10대들만 지켜야 할 것은 아닌, 매우 보편적인 덕목들이기도 한 듯하다. 보통 학교의 교훈보다는 훨씬 구체적이지만, 실제로 지키기란 쉬울 것 같지만은 않다.

 

 

 

 

첫째,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해야 하는 일도 한다.

 

둘째, 나이 차별, 성차별, 학력차별, 지역차별을 하지 않는다.

 

셋째, 어떤 종류의 폭력도 행사하지 않는다.

 

넷째, 내 뒤치다꺼리는 내가 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다섯째, 정보 때문에 치사해지지 않고, 정보와 자원은 공유한다.

 

여섯째, 항상 입장 바꿔 생각하고, 배려와 친절이라는 덕목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일곱째, 모든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자와 관련해서 부모님과는 대화를 잘 나눠요?

>> 예전에 한번 행사 끝나고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인사불성이 된 적이 있거든요. 그때 아빠한테 엄청 혼났는데 여기에 대해서 얘기도 하게 되고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아빠가 이해를 많이 해주세요. 엄마도 그렇고. 엄마는 예전에 아빠가 하자 싫어하실 때 제가 힙합 강좌 들으러 가는 거 돕느라 독서실 간다고 거짓말도 해주셨어요. 엄마는 제 편이에요. 근데 요새는 아빠가 제 편을 많이 들어주시니까 엄마는 제 편 잘 안 들어주세요.<

하자! 무엇을 하나?

 

얼마 전 하자센터에서 있었다는 <디(디지털)스토리 페스티벌>에서 일을 했었다는데?(디스토리 페스티벌 홈페이지 http://www.dstory.net)
>> 기획을 했어요. 총기획자 밑에 10대 기획단이 있는데 거기서 일했어요.

 

하자에서의 행사는 보통 학생들이 제안부터 다 하나요?
>> 대체로 판돌이들이 대충 기획을 해놓고 판을 짜면 저희는 세부 기획을 해요. 그런데 이번 <죽돌 IN SCHOOL>은 우리끼리 제안해서 시작했어요. 우리가 하자와 학교 생활에 관해 문제를 느끼고 얘기하니까 조한 선생님이 ‘그럼 그런 걸 해봐라’, 이래서 시작하게 됐어요. 우리끼리 주제 다 정하고 예산 짜고 기획하고 판돌이는 회의에 들어와서 조언만 해준 거예요.

 

<죽돌 IN SCHOOL SHOW>은?
>> 지난 2월 28일날 학교도 다니면서 하자에 오는 죽돌이들끼리 모여서, 우리가 2마리 토끼를 다 잡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순수하게 우리가 제안에서 기획까지 다 해서 치러낸  쇼예요. 그리 많은 사람들이 오지는 않았지만 온 사람은 나가지 않았고, 무엇보다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거든요.
그 목적이란 건, 하자에 오는 것에 대해 불만인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을 불러놓고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예요. “우리는 공부 안하고 놀려고 이곳에 오는 게 아니다, 나름대로 자기를 찾기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는 거다”, 이런 거. 예를 들어 디자인을 배운 친구가 설치 미술을 한다거나, 퍼포먼스 배운 친구는 퍼포먼스로 자기를 표현하고…
그런데 한 친구는 자기 엄마한테 이 쇼가 더 나쁘게 비춰져서 지금 하자에 못나와요. 원래도 되게 싫어하셨는데 막상 와보니까 담배 피우는 아이들도 많고 뒤풀이 때 술 마신단 얘기도 들리고, 토론형식으로 이어졌던 2부에서 사람들이 “대학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안가도 된다” 뭐 이런 얘기가 하고 그러니까 더 나쁘게 생각하신 거예요.

 

<죽돌 IN SCHOOL> 마치고 난 뒤에 어땠어요?
>> 우리끼리 다 해서 뿌듯했지만, 너무 힘들었어요. 예산 짜는 것도 자꾸 빠꾸 먹고…그래도 3번은 해봐야될 것 같아요. 그래야 잘 하지 않겠어요?

 

<죽돌 IN SCHOOL>이라는 쇼는 하자의 10대들에게 하나의 새로운 의미를 갖는 행사였다. 판돌이들이 짜준 판에서 죽돌이들이 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판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도, 그리고 하자가 학교와 대립되는 곳이 아니라 학교와 어울릴 수 있고, 어울려야 할 곳임을 10대 스스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일까? <죽돌 IN SCHOOL> 쇼를 설명하고 행사 포스터를 챙겨주던 진주의 눈은 시종일관 진지했으며, 자랑스러움에 진주처럼 빛났다.

 

여태까지 개설된 프로젝트 중에서 참여해본 건 어떤 게 있어요?
>> 대중음악반에서 힙합강좌도 들었고, 현재는 영상 쪽으로 듣고 있어요. 또 소년원이나 수녀원같이 공연을 잘 접하지 못하는 사람들한테 공연하러 가는 데 좇아가서 돕는 <서커스 유랑단>이라는 활동도 해요. 그리고 걸즈 힙합 밴드라고 힙합 춤도 배우고, 하자 내에 힙합팀과 밴드들이 함께 음반을 제작하는데 매니저 일도 하고 있구요.

 

영상반에서는 뭘 만들어요?
>> 우리들끼리 이야기해서 기획하고 스토리보드 짜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친구들 세 명이 한 팀인데 CF를 찍으려고 해요.

 

거기서 판돌이의 역할은요?
>> 간단한 기계 조작법 등 기초적인 기술 가르쳐주고 어떻게 하면 좋은 작품이 나올지 조언을 해 주는 거예요. 판돌이는 그냥 판만 짜주고, 나머지는 다 우리들이 하는 거죠.

CF 찍으면 보게 해 줘요. 인터넷에 띄워줄 테니까.
>> (경악) 안돼요! 비밀이예요. 배우가 없어서 제가 하기로 했는데 그 테잎 제가 갖고, 친구들 셋이서 무덤까지 묻고 가기로 했어요.

 

호호호… 하자에서 배운 것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 혹은 도움이 많이 되었던 강좌는 뭐였어요?
>> 강좌는 아니고, 엔지니어 하는 언니가 있는데 그 언니가 조명 만지는 거 같은 걸 가르쳐줬거든요. 되게 재미있었어요.

 

진주는 기계 다루는 게 재밌다고 한다. 학교 방송반에서도 엔지니어를 담당하고 있다고 했다.

 

하자의 친구들과 싸운 적은 없어요?
>> 있죠. 10명이 <죽돌 IN SCHOOL> 쇼를 준비했는데 서로 마음이 잘 안 맞아서 막 욕하고 대판 싸운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러고 나서 더 친해졌어요.

 

하자에서의 별명은요?
>> 하자에선 본명을 안 쓰고 별명을 만드는 사람들도 되게 많은데, 전 최근에 하나 지었어요, ‘리트머스’라고. 리트머스는 이끼의 한 종류로 산성/염기성에서 각각 다르게 반응하거든요. 이 점이 학교생활, 하자생활 서로 다른 생활을 다 하는 저랑 비슷한 것 같아요.

 

학교가 여고라고 했는데, 여기 와서 남자친구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 별로요. 지금은 여고지만 중학교 때 공학이어서 남자애들하고도 잘 놀았으니까. 근데 여고라서 애들 그런 건 있어요. 학교에 우유배달 아저씨만 와도 애들 몰려가서 소리지르는 거… 그리고 서른 살 넘은 (남자)선생님들 막 좋아하고, 그 과목만 열심히 공부하고.

 

진주의 이야기가 나의 여고 시절 경험과 얼마나 흡사하던지. 학교란 공간은 참 “마술적인” 공간이어서, 교단에만 섰다 하면 유부남 애아빠도 다 멋있어 보이는 곳이다. 그러고 보면 여고생이란, 혹은 남고생이란 예나 지금이나 변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고등학교를 나온 한 친구에게 들은 이야긴데, 자기네 학교는 심지어 양호실 선생님도 남자여서 창문 밖에 할머니만 지나가도 모두들 창문에 붙어 환호성을 지르곤 했단다.

 

사진 찍는 걸 싫어해요?
>> 싫어하진 않아요. 하지만 얼마 전에 하자 행사 관계로 TV에 찍힌 적이 있는데 보니까 되게 이상하게 나온 거예요. 원래 전 잘 웃는데 거기선 화난 표정, 찡그리는 표정만 잔뜩 나왔어요.

 

진주는 인터뷰 중간중간 카메라를 들이대자 당황하며 고개를 돌리거나 숙였다. 그런데 수줍어하며 카메라 앵글을 피하던 진주는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하자 신문의 편집장 아린 양과 함께 사진을 찍을 때는 달랐다. 불만 섞인 말투로, “한번 밖에 안 찍어요?” 그랬다. ‘헐헐… 이 녀석 정말 강적이군.’ “그래야 그나마도 잘 나온 게 나가지 않겠어요?(^^;;;)” 그녀는 발랄하고 밝은 10대다.

 

하자에 대한 TV 방송 때문에 학교에서 피곤해진 점은 없어요?
>> 있어요. 학교에서도 교무실 갈 때마다 선생님들이 “공부 좀 해라, 아빠 속 그만 썩여라” 이런 얘기하고. 괜히 알지도 못하는 선생님들이 와서 아는 척 하고, 막 손 붙잡고 20십 분씩 얘기하고…

 

오호… TV 방송이 ‘하자에서 생활하는 우리의 실제 모습과는 다르게 보여주고 있다’는 식의 불만같은 건 없어요?
>> 있어요. 예를 들어 제가 나왔던 프로(KBS 취재파일) 같은 경우는 PD 아저씨가 우리집을 꼭 찍어야 한다고 했는데 엄마가 반대하니까 PD 아저씨네 집 가서 우리집인양 찍었어요. 섭외가 안 돼서 전혀 관련도 없는 사람도 친한 사람인양 찍고…너무 어거지였어요.

 

보고는 그런 느낌 안들었어요?
>> 그것도 하자를 너무 이상하게 보여줬어요. ‘코코봉고’랑 꼴레지오(하자 내의 인문학 교실)만 다룬 건데 그러다 보니까 자퇴생만 나오고, 결과적으로 ‘하자는 자퇴생들의 천국이다, 공부 안 하는 애들만 있는 곳이다’ 이렇게만 보여졌거든요.
그래서 그 이후에 하자 게시판에 ‘나도 학교 가기 싫고 하자 같은 데에서 살고 싶다’ 이런 글도 막 올라왔어요. 그런데 사실 여기 죽돌이 중에는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자퇴생보다 훨씬 더 많아요.

 

저런 저런! 짐작은 했었지만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이 순간 기사를 쓰면서 본의 아니게 하자에 대해 뭔가를 ‘왜곡’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석의 잘못은 잘 하면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보도의 상업성이나 선정성은 워낙 원래 그런 거니 넘어간다고 해도, 없는 걸 만들어내면 안 된다.
부풀리기, 끼워 맞추기, 조작하기…… 그런 거는 좀 하지 말았으면 한다. PD네 집에서 촬영을 하고 취재원의 집인 양 구라치다니! 섭외할 데가 그렇게 없었나? KBS 취재파일팀은 좀 자제해야 할 것 같다. 차라리 드라마 찍든지.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닌 그 뻔한 짓거리에 오늘도 속고 있는 게 아닌지 새삼 반성해본다. 동시에, 하자가 방송을 탄 이후, 쏟아져 들어오는 인터뷰 요청과 연이은 왜곡으로 상처받았을 몇몇 하자의 10대들이 보낸 경계의 눈빛이 지금 다시 떠오른다.

 

처음 하자센터의 10대를 인터뷰하고자 기획할 때는 하자를 출입하는 자퇴생과 재학생을 모두 만날 의도였다. 그러나 하자로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 때문인지 ‘어떤 내용으로 인터뷰할지가 확실하지 않으면 10대를 만날 수 없다’던 까다로운 조건에 직면하면서, 하자의 판돌이들을 만나는 것보다 하자의 10대를 만나는 것이 참으로 만만치 않은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도대체 하자를 출입하는 10대들의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렇게 인터뷰 섭외가 힘들까 생각했다. 하지만 진주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하자 센터의 그런 태도들이 선정적이고 무차별적인 언론의 포화로부터 10대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음을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취미활동처럼 하는 하자를 다니는 친구들이 많다는 건데?
>> 그렇죠. 예를 들면 어떤 친구는 학교도 다니면서, 장래 희망이 신문기자인데 여기에서 신문을 만드는 기회를 잡았어요. 그리고 전 하자에서 오래 있다보니까 이곳에 대해서 취미 활동 이상의 깊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어요.

 

특별히 인기 있는 판돌이가 있나요?
>> 특별히는 없어요. 각 방마다 판돌이가 있고, 그 방에 주로 가는 죽돌이들이 있는데 자기가 가는 방 판돌이를 좋아해요.

 

앞으로의 진로도 이곳에서 활동한 걸 바탕으로 관련 있는 쪽으로 가겠네요?
>> 어제도 여기 사람들하고 잠깐 얘기했었는데, 아는 언니가 말하기를 자기가 장차 하려는 것과 관련이 없는 진로에 가는 것도 좋다고 했거든요. 영상을 하고 싶더라도 인문학을 전공한다든가… 저도 그런 식으로 하고 싶어요. 저는 수학과나 사회복지학에 관심이 있거든요. 수학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고 사회봉사에도 관심이 있어요. 이곳에서 하는 서커스 유랑단 활동도 일종의 사회봉사예요. 또 가끔 아는 언니랑 가서 걸식아동들 돕기도 하고.

 

여기에는 재능있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은데 혹시 자기가 잘하는 것에 대해 우월감을 갖거나 하는 경우는 없어요?
>> 그런 건 없어요. 그냥 파트를 나눌 때 자기가 잘 하는 분야 자기가 하겠다 이런 정도지…그리고 그런 게 느껴진다 해도 부럽게 느껴져요. 저와는 다른 부분을 잘 하고, 거기에서 인정을 받고 있으니까.

 

자퇴생과 비자퇴생들간의 신경전이나 알력같은 건 없었어요?
>> 없어요. 오히려 서로가 경험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얘기를 해주죠…

 

무의식중에 자꾸만 저런 질문을 하게 된다. 아, 이런. 아직 세상의 때가 덜 묻은 10대들을 해석하기엔 나의 사고방식이 너무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걸까. 반성, 또 반성. 

 

고민 상담은 주로 누구와 해요?
>> 판돌이들보다는 여기 언니 오빠들한테 더 많이 얘기해요. 나이차이도 그렇지만 판돌이들한테는 저랑 같은 문제로 상담하려고 하는 아이들이 많을 테니까 저까지 똑같은 문제로 상담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고등학생으로 살아간다는 것

 

학교에서 방송반을 하게 된 계기가 뭐였어요?
>> 원래 기계 다루는 걸 좋아해서 방송반에 들어갔던 거거든요. 그런데 우리 학교는 이상하게 엔지니어가 점심방송을 하기 때문에 직접 방송도 하게 됐어요.

 

학교에서 방송반도 하고, 하자에서 일도 하고 그러면 바쁠 텐데 공부는 언제 해요?
>> 그냥 하죠. 학원은 시간이 없어서 못 다니지만 여기 하자에도 학생들끼리 만든 스터디 그룹이 있어서, 거기서 공부를 해요.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있어서 공부를 도와주거든요.

 

과외나 학원은요?
>> 예전에 학원 다니다가 지금은 관뒀어요. 어차피 학원 다녀봐야 자기가 안 하면 소용없으니까. 여기서 그룹 스터디 짜서 공부해요. 아는 오빠가 공부 가르쳐줘요. 그리고 판돌이들도 다들 공부를 잘해요. 여기가 연세대랑 연결되어 있어서 반수 이상이 연대 출신예요.

 

학교에서 싫어하는 선생님은?
>> 어떤 선생님이 있는데 모든 학생들을 돼지라고 불러요. “이 똥돼지 새끼! 또 만났네” 이러고, 학생들이 다 돼지로 보이는가 봐요. 침도 되게 많이 튀고, 아니라고 하는데도 제 말은 안 듣고 자기 말만 계속 반복하고…

 

담임 선생님하고는 사이가 좋아요?
>> 좋긴 좋은데 방송반 하는 걸 싫어하세요. 그런 거 하면 수업 빠지게 되니까, 수업 못 빠지게 하세요.

 

그러면 하자 나오는 것에 대해서도 싫어하시겠네요?
>> 그건 상관 안 하세요. 학교 안에서만 관리하고, 학교 밖에서는 관심 없거든요. 그 많은 애들 관심 가질 수도 없고. 성적에 대해서도 전교 몇 등 하던 애가 성적이 뚝 떨어지면 그런 건 뭐라고 하지만. 그리고 하자에서는 판돌이한테 고민 상담하면 잘 들어주고 얘기해주지만 학교 선생님은 그렇지 않아요. 근무 시간 끝나면 칼퇴근하고, 대학원 준비하는 선생님은 대학원 준비하느라 바쁘고… 학생들한테 세세한 관심은 없어요.

 

진주의 말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학교 현실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체념 같았다. 아마도, 학교 안에서 하자에서와 같은 경험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학교란, 1명의 교사가 수십 명의 학생을 맡고(이런 교사를 담탱이라 한다든가) 소위 “교권”으로 아이들을 짓누르는 곳이다. 이런 말 자체가 교권 침해라고 침 튀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교권”이 뭐 그리 순수·순전한 개념인가? 물론 교권은 옹호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단, ‘교권’이란 단어 속에 포함된 권위주의, 군사문화, 전체주의 따위와 교권의  실행 속에 묻어 있는 폭력성, 억압성의 물이 빠져야 된다. 대다수의 선생님들이 그렇게 잘 하고 있는 것처럼, 교사-학생 사이는 인간적이고 민주적이어야 한다.

 

그런 말이 얼마나 말로만 쉬운지 알고 있다. 뭐, 선생님들의 책임인 것만은 아니다. 싸가지 없는 세상 때문에, 부모들 정말 싸가지 없고, 싸가지 없는 부모들 때문에, 애들 정말 싸가지 없고, 싸가지 없는 애들 때문에 선생들 더 꼭지가 돌아 날뛴다.
그러다가, 착한 선생과 아이들, 서로 포기한다. 무관심해진다. 나 또한 그랬던 것 같은데, 진주도 이미 체념하고 있는 듯했다. 또 한편, 어쩌면 진주의 불만은 불만으로 떠오르고 언어화되고 문제화되기 이전에 이미 하자 속에서 잘 해소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학교엔 아침에 몇 시에 가서 몇 시에 와요?
>> 아침 7시에 나가고 수업은 종례까지 마치면 오후 네시 반쯤 끝나요. 수업 끝나고 친구들하고 집까지 걸어오면 한 삼십 분 걸리고. 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은 없어요.

 

하자에도 나오려면 피곤하지 않아요?
>> 별로 그렇진 않아요. 하자에는 하고 싶은 거 하러 오는 거니까.

 

학교에도 써클은 있지 않아요?
>> 많죠. 써클만 20개 정도. 우리학교는 비교적 써클이 많은 학교예요. 그런데 써클 활동 한다고 해도 그렇게 목숨거는 친구들은 별로 없어요. 써클 활동이 전부가 아니고, 공부를 해야 하니까.

 

시험기간 되면 하자나 방송반 활동 부담이 될 텐데요?
>> 네. 시험기간 때에는 시험공부를 위해서 잠시 제껴둬요. 그때는 하자에도 사람이 별로 없어요. 방학 때가 제일 많고.

 

대학 진학은 생각하고 있어요?
>> 대학, 가야죠.

그렇다면 관심있는 분야는요?
>> 기획일이나 엔지니어 일에 관심이 많아요. 공연이나 축제 기획같은 일, 그리고 기계 만지는 걸 좋아해요.

 

대학은 뭐하는 데라고 생각해요?
>>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곳이요. 부모님이 어떻게든 서울 안에 있는 대학은 가야 한다고 강요하시지만, 여기 언니 오빠들 말이 대학은 어차피 자기가 원하는 공부하는 데이기 때문에 꼭 빨리 갈 필요 없다고, 좀 늦게 가도 상관없다고들 하더라구요.

 

대학 가서 공부말고, 또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은 없어요?
>> 일단 술집에 당당히 들어가고 싶어요. 지금은 나이 물어보고 “민쯩” 까야 하고 이러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리고 어리니까 외박은 아직 안 된다고, 대학 가서 하라고 아빠가 그러시는데 외박도 마음대로 하고 싶어요. 남자애들은 친구네서 자고, 밤새고 PC방에서 놀고 하는데 그게 너무 부러웠어요.
그리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싶어요. 시간표 잘 짜서 여가시간 최대한 만들어 놓고 그 시간에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돈을 벌어보고 싶어요. 예를 들어 행사 엔지니어 보조를 한다든가.

 

술을 자주 마시느냐는 질문에 대해 진주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허나 술집에 당당히 들어가고 싶다는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한다.
“금기와 규제” 자체가 유혹의 다른 이름이다. 10대들이 ‘싸가지 없게’ 술 먹고 담배 피는 것 – 그건 결코 철이 없어서, 또는 “호기심에서”가 아니라, 수긍하기 어려운 이유를 대고 다가오는 형식적인 금기와 규제들에 대한 자연스러운 충동에서일 것이다.

 

학교에서는 어떤 학생이예요? 활발한 친구로 통할 것 같은데?
>> 그렇긴 한데 방송반 일이 워낙 많아서 바쁘기 때문에 활발할 틈이 없죠.

학교에서 하자를 안 좋게 보는 선생님들도 많아요?
>> 특별히 안 좋은 곳이라고 본다기보다는, ‘공부 안하고 그런데 가면 후회할 거다’ 뭐 이런  식으로 보는 선생님들은 좀 있어요.

 

하자같은 곳이 있다고 소개해주는 선생님은 혹시 없나요?
>> 있어요. 윤리 선생님인데, 이곳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여기에서 선생님들끼리 몇 번 모인 적 있다고 했어요. 학생들한테 하자에 대한 좋은 얘기 많이 해주세요.

 

집에는 보통 언제 들어가요?
>> 디스토리 페스티벌 준비할 때는 밤 11시에 들어가거나 밤 샌 적도 있거든요. 그럴 땐 아빠가 데리러 오셨어요. 평소에는 일주일에 한 두번, 프로젝트 듣는 날만 와요.

 

학교 선생님과 하자의 판돌이의 차이점은 뭐인 거 같아요?
>> 학교 선생님은 어디까지나 선생님이지만, 판돌이랑은 서로 그냥 반말을 써요. 호칭부터가 오빠니 선생님 이런 거 아니고 각자가 쓰는 별명같은 걸 불리는 걸 더 좋아해요. 그러면 판돌이들과 동등한 관계인 것 같아 좋아요. 그리고 학교에는 학생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선생님이 다 일일이 신경 써 줄 수가 없고 주로 공부 잘하는 애들 위주로 돌아가거든요. 하지만 하자에서는 판돌이들이 학생 하나하나 다 관심을 가져주세요.

 

그건 혹시 교사당 학생의 비율 차이 때문일 수 있지 않을까요?
>> 의외로 별 차이 없어요. 하자에 있는 판돌이들은 50명도 안돼요. 판돌이들은 하자에 오는 학생들 신경 써주느라고 자기 생활은 다 엉망인 것 같아요. 자기 가정도 못 돌보면서까지 저희들한테 신경 쓰고 챙겨주거든요. 집에서 생일 축하 받지 못했다는 언니 있었는데 판돌이가 알고는 밥 사주고 케?葯? 사주고… 월급 받은 돈이 다 학생들 밥 사주는 데 나가는 거 같아요. 굉장히 저희들한테 희생적이세요.

 

학교에서 힘든 점은 없어요?
>> 학교보다도 집에서 더 힘든 게 많았어요. 맨날 밖에 놀러만 다닌다고 엄마 아빠가 싫어하셨어요.

 

나는 어떤 선입견 때문에 진주로부터 “권위적인 선생님이 싫고/ 짜여진 시간표가 답답하고/ 매일매일 공부해야 하는 날들이 견딜 수가 없다/ …”는 식의 답변이 나올 것을 무의식중에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진주는, 학교도 쉽진 않지만 공부와 공부 이외의 것을 두고 부모님과 갈등하는, 우리들 중 다수가 그러했을 그런 모습의 평범한 10대였을 뿐이다.

 

학교가 어떻게 변했으면 좋겠다(예를 들면 하자처럼)는 생각 안 해봤어요?
>> 학교가 하자처럼 바뀌면 것도 문제일 것 같아요. 하자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게 받침을 만들어주는 건데, 모든 학교가 그렇게 된다면 하자에서와는 달리 모든 학생들이 다 열심히 활동하지는 않고, 단지 놀기만 하는 아이들도 생길 것 같아요. 근데 또 만약에, 대부분의 학교가 하자 같이 변하고 지금의 학교 같은 곳이 몇 군데에 남아 있다면 거길(학교를) 갈 것 같아요. 처음부터 하자 같은 생활에 적응되면 또 공부가 하고 싶어질 것 같거든요.

 

이 대목은 정말 “뜨악”이었다… 하자와 학교는 어느 곳이 더 좋고 어느 곳이 더 나쁜 식의 관계에 놓여 있는 대립물이 아니다. 둘 다 각각의 장점이 있는, 필요한 공간이다… 이러한 진주의 생각은 솔직한 것이기도, 균형 잡힌 것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학교도 하자도 다 나름대로 필요한 것이라고 보는 거예요?
>> 네. 언론에서는 하자에 있는 아이들이 다 학교를 싫어한다는 식으로 묘사하는데 막상 우리들은 그렇지 않아요. 학교도 필요한데, 하자는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좋은 곳이라는 거예요. 하자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한정되어 있거든요.

 

학교가 지식 전달 이외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 자퇴를 했지만 가끔은 학생들이 부럽다는, 한 오빠 말이 학교에서 문제가 생겨서 나온 거라면 그 사람은 사회에서도 적응할 수가 없다고 했어요. 말하자면 학교도 작은 사회이기 때문에, 거기서 잘 지내야 사회에서도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들만의 (살만한) 사회를 따로 만들어보겠다 이런 생각이 아니라, 어차피 기존의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 이런 건가요?
>>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해요. 그런데 제가 지금 어리고, 바꾸기는 힘들겠죠. 다만 저 나름대로 저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이런 걸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들은 우리들끼리 판을 짜고 놀아보겠다! 하자 대표 조한혜정 씨가 주장하곤 했던 ‘주변부 콤플렉스의 극복’과, ‘중심부로부터의 분리의식’을 떠올리곤 다시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자가 표방하는 것이 ‘우리끼리 놀겠다’거나 ‘우리가 대안이다’와 같은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하자의 사회적인 의미들과 진주는 무관했다. 진주는 자유로워 보였다. 열 여덟 진주는 다만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무엇으로부터도 규정되지 않고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에 있는 것 같았다.

 

사람마다 <자기>를 찾아가는 방법은 다르다. 그러기 위해 어떤 10대는 자퇴를 하고, 어떤 10대는 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이 정말 <선택>인지, 어떤 기반에서 나올 수 있었던 <선택>인지는 찬찬히 살펴보아야 하겠다. 그러나.
‘삶의 과정 자체가 중요해서, 순간순간이 도달점에 이르기 위한 경유지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 있어야 한다. 삶에 답은 없느니라’는 공자님 말씀이 옳다면, 그 의미를 찾기 위해 저마다 나름의 진지한 몸짓으로 모색을 하는 우리 10대들의 선택을, 그냥 밀어주자…
뭐든지 한 번 해 봐라. 그거 해도 안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