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포먼스 락밴드 허벅지 보컬
퍼슨웹 : 허진 씨의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허진 : 점심시간이면 학교에 있는 등나무 아래 모여서 담배 피우고, 저녁에 학교 끝나면 그 당시에 닭장이라고 하는 디스코텍에 놀러가고 그랬죠. 뭐.
퍼 : 그럼, 20대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진 : 대학에 들어갔는데, 대학에서도 음악 생활을 계속 했습니다. 학교 밴드 생활.
퍼 : 졸업하시고도 계속 음악 생활을 하셨겠네요?
진 : 졸업하고는 음악으로 한국 땅에서는 먹고살기가 힘들다는 판단 하에, 직장생활도 좀 하다가, ‘조직 부적응자’로 찍혀 가지고, 얼마 못 버티고 나왔죠. 근데 음악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구요. 가수이기 이전에 저는 전문 연주인이 되고 싶었는데, 너무 힘든 삶을 많이 봐서, 영화를 해야겠다, 그래서 영화 공부를 했습니다.
퍼 : ???
진 :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영화 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음악하는 인간들이 절 꼬셔 가지고, 음악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쭉 음악을 하게 되었죠.
인터뷰하러 가기 전 허진 씨에 대해 알고 있었던 정보는 오직 두 가지. 대중음악장 판돌이이자 허벅지 밴드의 일원이라는 것. 그 얼마 안 되는 정보로 허진 씨의 모습을 상상했다. 왜 락 밴드 뮤지션이라 하면 떠오르는 외모가 있지 않은가. 훤칠한 키, 장발의 부시시한 머리, 청바지. 허진 씨의 외모는 나의 기대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는 허진 씨의 말을 듣고 영화배우 해도 되겠다는 인터뷰어의 아첨에, 그는 정색을 하며 영화감독이 되보고 싶었단다. 지금은 음악 때문에 잠시 꿈을 접었지만 조금 늙어서는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퍼 : 허벅지 밴드에서는 어떤 부분을 담당하시나요?
진 : 보컬과 악기 주로 하구요. 허벅지 밴드는 락밴드이긴 하지만, 음악이외에 퍼포먼스를 같이 하는 밴드죠.
퍼 : 같이 밴드 하시는 분이 ‘소냐’라는 여자분이죠?
진 : 소냐라고 전문 행위예술하는 친구랑 함께 합니다. 일반 음악 콘서트 무대뿐만 아니라, 예술제나 미술 관련 행사에 많이 참여를 하는 편입니다.
퍼 : 그런 음악 활동 개념이 하자에서의 활동과도 관련이 있을까요?
진 : 강조는 안 하지만, 은연중에 배어 나오는 것이 있겠지요. 우리 친구들 중에서도 음악과 퍼포먼스를 같이 결합된 팀들이 탄생을 했습니다.
퍼 :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이 궁금합니다.
진 : 틀 안에 가두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제 음악관이죠. 뭐 ‘이런 건 음악이고, 저런 것은 음악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기가 쉬운데, 그 틀 안에 저를 가두지 않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퍼 : 인디밴드들 중에서 배타적인 경우들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진 : 그런 경우가 많지요. 그것들이 어떤 면에서는 자기 주관일 수도 있고, 또 하나는 가지지 못한 자의 피해 의식일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그런 것에 비애 가질 필요 없이,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예술적 마인드를 가지고, 가난하다는 것도 기꺼이 자기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뛰어들어야 된다고 봐요. 그렇지 않으면 오버에 가서 열심히 바닥 닦으면서 하든가.
퍼 : 밴드 외에 또 어떤 일을 하시나요?
진 : 인디판의 음악 축제라든가, 잡지를 만드는 일이라든가, 이런 일들을 좀 하고 있죠…
퍼 : 굉장히 바쁠 것 같은 데 하루 일과가…?
진 : 별로 안 바빠요. 여기는 1시부터 10시까지가 근무 시간으로 정해져 있거든요. 오후에 나와서 퇴근을 새벽 2,3시 정도에 하고,
퍼 : 그럼, 다른 일은 언제 하세요.
허진 씨의 명함에는 다음과 같은 많은 글자들이 함께 박혀 있었다.
“Rock Performance Group 허벅지 밴드 / Jazz Band 양산박 Jazz 공작단 / 서울특별시립 청소년직업체험센터 haja 대중음악작업장 교육팀장”
진 : 글쎄, 뭐 지금까지 제 밴드일을 잘 못했죠. 개인적으로 이번 달 말이나, 다음달 초에 앨범이 나옵니다. 3집 앨범 녹음이 다 끝났어요. 앨범이 나오면, 이제 저 개인적인 일들도 좀 하려 합니다. 그런데 제가 개인적인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제가 잠깐 자리를 비우는 사이에도 대중음악작업장이 친구들의 힘으로도 자체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아야 하기 때문에 요즘 조금 바쁜 것이지요. 자생력이 생겨야 하기 때문에.
퍼 : 자생력이 생긴다는 것은 어떤 형태를 말씀하시는 것이죠?
진 : 기획안, 예산안 등 행정적인 작업들은 제가 하지만, 저희 하자 센터에서 벌어지는 행사들은 우리 10대 친구하고 같이 회의를 합니다. 예를 들면 공연에서 컨셉을 어떻게 잡을 것이며, 출연자는 누구를 할 것이며, 시간 배정은 어떻게 할 것이며, 뒤풀이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 그런 기획이 철저하게 됨으로써 행사 당일 날은 편할 수가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친구들이 스스로 어떤 행사이든지 기획을 하고, 치뤄 낼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지요. 이런 것들은 행사위주로 말씀 드리는 것이고, 대중음악방이 돌아가는 것은 프로젝트 중심인데요. 프로젝트 중심의 하자의 일상 사업들이 계속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겠지요.
퍼 : 그런 자생력이야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하면 그런 자생력을 얻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죠?
진 : 글쎄요. ‘어떻게 하면’이라는 말이 너무 어려운데요. 일단은 10대 뿐만이 아니라 그 사회에서 그 사람을 믿어야 자생력이 길러지겠지요. 믿고 맡긴 후, 성패에 대해서 잘못을 지적하고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평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평가도 수우미양가의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준비했던 과정과 결과물을 점검한다고 할까요. 그런 평가를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다음 작업에 들어 갈 때 그것을 하나의 모델로 삼아 근거자료, 데이터화 할 수 있고, 이런 것들이 하나 둘 씩 쌓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배워나갈 수 있겠지요.
얘들아,여기 와서 한번 멋지게 놀아보자. 허진 씨가 하자를 통해 궁극적으로 10대들에게 심어주고 싶은 부분이 자생력의 생산이 아닐까. 10대들이 놀고 배울 수 있는 판을 벌여 주되, 그 판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그리고 ‘
대중 문화? 판을 바꾸자!
퍼슨웹 : 하자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뭔가요?
허진 : 저희 ‘허벅지 밴드’ 같은 경우에는 인디밴드의 1세대라고 볼 수 있어요. 항상 문화판 자체, 문화판 만들기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래서 여기에 오게 된 것 같군요.
퍼 : 문화판?
진 : 하자센터도 새로운 청년문화의 판을 짜는 곳이라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저희 직원들을 판돌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그런 맥락들이나 마인드가 공유 되다보니, 들어오게 된 것 같습니다.
퍼 : 경력도 그렇고 말씀을 들어보니, 문화판 지형도에 대한 구상과 청소년 문화가 하나로 연결되었을 것 같은데, 우리나라 문화판에 대해서는 어떤 상을 가지고 계시나요?
진 : 전체적 우리나라 문화판은 아직은 바닥이 좁다고 그럴까요. 요즘 정부에서 문화 쪽으로 많은 지원을 하는 편이지만 그것이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는 않습니다. 문예진흥기금이든지, 문화관광부 진흥기금이든지 그것 자체에 대해서 정보도 못 얻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정보를 수시로 검색할 수 있고, 기획안을 쓸 수 있는 요령, 거기에 첨부할 수 있는 자기의 작업물 등, 지원금을 받아낼 수 있는 방법들이 있는데, 일반인들이나 이런 쪽의 초보자들은 접근이 잘 안 되는 것이죠.
진 : 앞으로는 기획자들의 시대가 올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전문적인 기획자들이 너무 없었거든요. 문화기획자로 지금 활동하고 있는 분들이 계신데, 그것이 독과점화 되어 있어요. 요즘 지방자치제가 시작된 이후, 각 지방마다 많은 행사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마 아실 텐데, 그 행사를 노하우를 가지고 기획하는 자는 얼마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부실한 행사가 이루어지고, 어떤 경우에는 중간에서 무산되는 경우도 있죠. 그것이 다 기획의 부재 때문이죠.
진 : 그래서 이제 전문 기획자들이 앞으로 많이 나와야 될 것이고, 그런 기획교육이 많이 되어야 되겠지요. ‘한겨레 문화 센터’에 기획자들을 위한 문화 프로젝트들이 있습니다. 저희 하자 내에서도 기획 마인드를 갖는 데 중점을 두고 있고, 자꾸 키워 나간다면 한 5년 후에는 좋은 기획자들이 많이 나올 것 같습니다.
퍼 : 기획 교육?
진 : 우리 친구들이 행사를 하면서 기획을 하게 하고, 기획서를 써서 내게 하고 그런 데서 출발을 합니다. 틀은 저희 판돌이들이 잡아 주지만, 기획해서 밀어 붙이는 것들은 10대들이죠. 기획자적 마인드를 가졌으되, 동시에 현장을 아는 기획자, 머리로만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와 가슴, 그리고 자기의 손과 발을 동시에 쓸 수 있는 그런 기획자가 되어야 되는 것이죠. 지금 그런 기획자들이 별로 없습니다.
기획 마인드, 예술 마인드, 문화적 마인드. 허진 씨는 ‘마인드’에 강조점을 두고 말한다. 결국 문화판을 바꾸는 것은 생각을 바꾸는 문제라는 말이다. ‘판을 바꿔봐!’ 오래간만에 들어본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한때 세상의 판을 바꾸는 꿈을 꾸고, 또 그러다 그 꿈이 얼마나 무모한가도 알게 된다. 그러나 하자 센터에 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작은 것이나마 세상의 판을 바꾸자고 공식적으로, 그것도 나랏돈을 받으며 외쳐대고 있다는 사실은 감동적이었다.
퍼 : 하자에서 다루고 있는 부분은 청소년 문화와 관련된 부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문화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혹은 문화적 소양이 있으면 하자 같은 공간에서 굉장히 행복하겠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는 어떻게 하죠?
진 : 문화적인 소양이라는 것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적 소양이 있어서 하자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하자를 드나들면서 그것을 갖게 되는 것이죠. 지금 하자에는 디자인, 또는 컴퓨터, 영상, 음악, 또 꼴레지오라고 하는 인문학부도 있어요.(하자 콜레지오 홈페이지) 이런 것들을 두루두루 경험을 하면서 배워 나간다면 문화적 소양이 자연적으로 취득되는 것이겠지요.
진 : 실제로 우리가 강조하는 문화는, 문화 그 자체가 아니라 문화적인 마인드가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결국 판을 바꾸어야 되는 것이죠. 의식을 개혁한다 그럴까요. 그런데 그것이 결코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제일 우려하는 것은 한국인들의 조급증, 이것을 빨리 우리가 탈피하여야 한다는 것이죠. 뭘 했다가 금방 잘못 되었을 경우에 금방 피해의식 느끼고, 누가 뭐라고 하면 피해의식 느끼고 그것에 대처할 줄 모르고…
진 : 교육은 놀이가 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자센터에 대해 외부 분들이 우려를 하시는 것은 기존 제도권에 있는 분들이 바라볼 때 ‘하자라는 데는 맨날 놀기만 하는데 아니냐’ 특히 대중음악작업장 같은 경우에는 정말 놀기만 하는데 아니냐 그러시는데 놀이와 일과 교육을 어떻게 함께 풀어낼 것인가를 지금도 고민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런 것들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결국 일과 놀이와 교육이 결코 다르지 않다고 보거든요. 저 같은 사람은 음악을 좋아하고, 비록 큰 성공을 하거나 많은 돈을 벌지는 않았지만, 놀면서, 일하면서, 친구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이 제 직업이 되었지요. 모든 사람들이 저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이런 방법들이 곳곳에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퍼 : 외부의 시각으로는 오히려 ‘하자에 나오는 10대들이 특혜를 받는 거 아니냐’는 관점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특별하게 뭘 받는다가 아니라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 자체가 특혜 아닌가’ 하는 생각이요. 또 ‘하자의 10대들이 문화적 특권의식이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들었었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진 : 거기에 대해서는 저희도 가끔씩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마인드를 갖지 말라고 항상 경계하고 있지요. 특히 저희 작업장 같은 경우, 대중음악장을 오래 다니고 어느 정도의 노하우가 쌓여 있어 저와 스스럼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아이들일수록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을 항상 강조를 합니다. 여기서 누리고 있는 혜택을 풀어내야 된다는 것이지요. 하자의 모토가 “내 삶을 업그레이드 시키자”인데, 내가 하자에서 업그레이드 된 만큼 누군가를 업그레이드 시켜라,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새로 들어온 친구들, 적응 잘 못하는 친구들, 게시판에 그냥 질문만 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하자에 들어오고 싶은데 어떻게 가야하죠. 거기는 자퇴생만 가는 데라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 자퇴를 고민하고 있는데 도움을 주세요.” 그런 질문에다가 저희들이 적극적으로 답변해 주면서 함께 업그레이드되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진 : 지금 외부에서 특혜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면, 저도 특혜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 특혜는 하자를 찾아 올 수 있었던 적극성이 있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것이지요. 외부 친구들과 게시판에서 상담을 할 때, 일단 한번은 와라 그럽니다. 그런 적극성을 자기가 가져야 되는 것이지, 찾아오지도 못하면서 그런 얘기를 하면 안되죠. 어느 사회건 간에 자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의 몸을 움직이는 최소한의 무엇인가가 있어야 되는 것이고, 들어온 이상 저희는 최대한 하려는 것이죠.
프로젝트에 처음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은 하자 사이버 회원(www.haja.net으로 들어가서 ‘회원가입’을 클릭하면 된다)에 가입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하자센터에 와서 직접 접수하거나, 참가비를 무통장 입금하고 연락하면 된다. 하자 센터의 회원이 되면, 인터넷카페, 동아리방, 세미나실, 무용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자치모임을 통해 하자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
진 : 일단 많이 좀 왔으면 좋겠어요. 프로젝트를 수강하지 않아도 드나들면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거든요.
퍼 : 어떤 일이 가능하죠?
진 : 행사 때 같이 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서 공연을 하는데, 무대 준비, 악기도 날라야 되고, 그리고 행사 진행 할 때 뒤에서 서포트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일에 붙어도 되고, 다른 작업장 같은 경우에는 아이들이 수시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요리를 좋아한다. 하자에 와서 게시판에 자기가 쓰는 것이죠. 요리 동아리 만들고 싶은데 관심 있는 사람들은 뭉쳐라. 막 해보는 것이죠. 자기네들끼리 떡볶이를 만들든 라면을 끓이든지, 마당에 나가서 해 보는 것입니다. 그럼 판돌이가 뭐 힘든 건 없니 그러면 이런 게 힘들다, 그러면 우리가 100%로 지원은 못 해주더라도 가급적 해보라고 지원은 해 주고, 뭐 이런 거죠.
사실, 하자의 10대들이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문화적 우월감에 대한 질문은 일종의 ‘딴지’였다. 인터뷰를 하러 가기 전 하자의 10대들에 대한 말을 여기저기서 들었다. 대한민국의 대부분 10대들, 오늘도 감옥 같은 학교 생활을 ‘그냥 버티면서’ 살아간다. 절대적인 대다수들에 비하면, 뭔가를 스스로 선택하고 해 본다는 하자의 10대들은 얼마나 ‘다행’이며, 예외인가.
그래서 “걔네들 특혜받은 거 아냐?”, “걔네들 문화적 우월의식 갖는 거 아냐?” 등등의 딴지들은 하자의 10대들이 그런 ‘다행’과 ‘예외’임을 느끼라는 주문이나 부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는 대다수 10대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분노나 연민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고. 아무튼 진짜 딴지를 걸어야 할 대상은, 하자에 와서 뭔가를 모색하는 10대들이 아니라 모든 10대들에게 황량하고 삭막한 10대 시절을 강요하고 있는 그 무엇이어야 한다.
대안교육? 하자의 가능성
퍼슨웹 : 요즘 하자가 대안교육의 상징처럼 제시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허진 : 하자가 앞으로 대안 교육 지원센터가 될 것입니다. 서울시에서 예산도 나와 그 방법을 계속 고민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말이 대안이지만, ‘무엇에 대한 대안인가?’부터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죠. 한국적인 입장에서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단순히 기존의 기득권 교육에 대한 대안인 것인가? 전체 문화판에 대한 대안일 것인가? 하자 센터에서 제안하는 모델이 “놀이와 자기의 먹고사는 일 + 교육”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창출해 낼 것인가 고민하고 있지요.
하자 센터는 지난 가을 대안 교육 지원센터로 지정되었다. 1차로 5개년 계획을 추진 중으로 올해 3월부터 본격적인 회의에 들어갔고, 올 가을부터 가시적인 결과물들이 나오리라고 한다.
퍼 : 대안 교육에 대한 허진 씨 개인의 생각은?
진 : 지금의 시점에서는 필요합니다. 사실 저희 세대도 그랬고 우리 윗세대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항상 학교 다니기 힘들어하고, 학교를 갑갑해 하지요.
그런데 지금의 10대들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을 하고 있는 단계일 뿐이죠. 대안 교육 센터라는 곳이 정말 아이들의 마음을 열어 주고, 그 아이들의 개성적인 길을 열어 줄 수 있도록 만들 때, 즉, 집단주의적 교육이 아니라, 개별적인 것들을 맞춤서비스로 벌려 놓았을 때, 대안 교육 기관은 ‘또 하나의 체험’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실제로 학교 고민이나 부모 문제나 이성문제로 고민하던 친구들은 대안 교육에 대해 엄청난 기대를 하고 옵니다.
진 : 자퇴 때문에 상담하러오는 경우들이 많은데, 저 개인적으로는 그냥 학교 다니라고 많이 이야기합니다. 학교도 순기능이 있는데, 웬만하면 학교 다니라고 그러고, 또 어차피 학교 생활이든지, 사회 생활이든지, 힘들고 어려운 것을 참아내면서 극복해 나아가야 하는 점도 있는데, 단순히 귀찮고 힘들어서 도피적으로도 올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소위 말하는 왕따 등의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하는 친구들의 경우에는 상처받고 힘들었던 것을 치유를 해야 하니까, 그 기간(자퇴)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학교를 자퇴하고 이 쪽으로 왔을 때 과연 그 친구들의 중요한 시기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하는 고민이 굉장히 많지요.
대안교육은 ‘또 하나의 체험’이라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일만 하다. 요즘 대안교육이 학교 교육 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에서 제안되는 경우가 많은데, 적어도 허진 씨는 학교 교육이 지닌 나름의 순기능을 인정하며, 학교 교육과 대안 교육의 공존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학교 교육, 혹은 대안 교육만이 절대적이라는 관점과는 달리, 학교 교육도 그리고 대안 교육도 여러 가지 체험 중 ‘또 하나의 체험’일 수 있다는 말이다.
퍼 : 하자에서 학생들하고 같이 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세요?
진 : 특별한 것은 없구요, 저하고 나이 차이가 나고, 세대 차이가 나다보니, 약간의 갭은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은데, 특별히 어렵다고 느낀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단 한가지 수많은 성향들의 10대들이 저마다 자기 고민이 있고, 고민들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하자를 찾았는데, 저희들이 일일이 맞춤 서비스는 못한다는 것이지요. 그런 것들은 제도권 교육이나 어디든 다 마찬가지겠지요. 짐작만 할 뿐인데, 제 생각에는 하자에 와서도 많이 상처받고, 좌절하여 돌아가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안 교육을 이야기하면서, 그리고 학생들과의 만남을 이야기하면서 허진 씨는 계속해서 학생 개개인에게 맞춘 ‘맞춤 서비스’를 강조했다. 학생 개인의 개성적인 특질을 살려주는 교육, 그리고 학생 개인의 고민과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는 교육을 ‘맞춤 서비스’라는 말로 표현하는 듯 했다. 교육은 과연 ‘서비스’이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제기는 잠깐 접어두기로 한다. 그리고 허진 씨와 같이 교육을 ‘서비스’로 바라보는 시각이 하자의 새로움을 만들어냈음을 인정해야겠다. 다만 그 새로움이 또다른 형태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퍼 : 하자 자체에서 좀 개선되어야 할 부분은?
진 : 글쎄… 개선이란 말은 좀 포괄적이기 때문에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것인데, 지금은 어떤 개선보다는 계속 늘려나가야 하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지금 왜 늘린다는 표현을 했냐면 센터 공간상 들어오고 싶어하는 친구들을 못 받는 경우가 많아요. 누구든지 올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는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오는 사람을 다 못 받아요.
퍼 : 그럼 정원 제한을 하나요?
진 : 예, 왜냐면 교육의 질적인 면에서 생각하기 때문이죠. 한 반에 수십 명씩 앉혀 놓고 얘기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저희는 보통 한 프로젝트에 10명 정도예요. 그렇다 보니 정원이 찼을 경우 신청자를 못 받는 경우도 상당히 많죠. 참 애로상황입니다. 강의실이 없고, 서울시 예산 문제로 반을 계속 늘릴 수도 없는 상황이니까.
진 : 아무래도 하자 센터가 서울시 소속이다 보니, 예산 집행을 서울시 규정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죠. 하자 센터가 항상 새로운 것을 실험하고, 다른 곳에서는 할 수 없는 좋은 프로젝트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런 규정에 맞추다 보니 시행을 하지 못하는 것들이 참 많아요. 그것이 현재 한계라고 볼 수 있죠.
퍼 : 예를 들면 어떤 것들이 있나요?
진 : 아주 좋은 프로젝트인데, 수강생 미달로 폐강되는 경우, 또 연초에 1년 사업 예산에서는 없었던 아주 좋은 프로젝트가 제안되었는데, 예산 편성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 예산을 받을 수 없다는 점 등 주로 실무적인 문제들이죠.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하자가 국제적인 모델 케이스가 되어가고, 한국에서도 새로운 판을 실험해 가는 곳이라면, 좀더 실험적인 공간이 되야 하는데, 작년에는 우리가 정말 실험적으로 해 보겠다고 좌충우돌식으로 해 왔지만, 이젠 그 틀 안에 맞추어 들어가야 된다는 거예요. 운신의 폭은 더 좁아진 것이죠, 체계는 잡힌 것일 수 있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판을 이것저것 막 실험해 보지는 못하게 되어 버렸다고 할 수 있지요.
퍼 : 하자 쪽에서 기획이 나왔을 때, 서울시에서 간섭하는 것은 없나요?
진 : 그런 것은 특별하게 없습니다. 어떤 기획 자체에 대해서 서울시에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 그렇게 간섭하는 것은 없어요.
퍼 : 앞으로 허진 씨의 개인적인 계획 속에서 하자의 일들은 어떻게 배치시켜 나가실 건가요?
진 : 저는 항상 ‘하자 센터가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라고 이야기를 많이 하거든요. 10대를 업그레이드시키면서 저도 같이 커나가야겠죠. 저도 제 작업을 계속 해 나갈 것이고, 하자의 대중음악장 올 한해 계획은 공연과 녹음이거든요. 내년에는 공연과 녹음물들을 브랜드화 시킬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또 다른 계획이 생기겠죠.
진 : 하자라는 곳은 저도 명확하게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어떻게 변할 수 있을지 저도 장담을 못하는 것이니까요. 센터의 판돌이들이 25명인데, 25명이 나름대로 다 자기 분야에서는 전문가들이고 문화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저희들끼리도 많은 의견 충돌이 있지만, 생산적인 충돌이기 때문에, 그런 충돌들을 벌여 나가면서 수정 보완해 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는 다른 직장처럼 누구 밑에 누구 있고, 말단이 누구이고 이런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무슨 문제점이 발견되면 직급상 윗사람에게 바로 문제제기 할 수 있는 분위기입니다. 또 온라인 상의 자료를 공유하기 때문에 10대들이 바로 문제제기를 합니다. 문제점이 발견되면, 거기에 책임질 일은 책임을 지고, 사과할 일이 있으면 사과를 하고, 계산할 일은 계산하고, 오해가 생기면 충분히 설명을 해서 풀어주고, 이렇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죠. 그런 건 하자가 참 잘 되어 있고, 그런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겠지요.
하자(haja)는 그냥 하자였다. “대안교육의 실험장”이라고 떠드는 거창한 문구는 그곳의 역동성에 비한다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상투어다. 하자는 대한민국의 교육을 양어깨에 짊어지고 있어야 할 거인도 아니며,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그곳은 문화판이든, 교육판이든 뭔가 새로운 판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냥 꿈만 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하자’, ‘그래, 한번 해보자’ 그렇게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고 있는 공간이었다.
하자를 무조건 추켜 세우거나, 부러움에 배 아파하지 말자. 그저 여기저기서 좀더 많은 ‘하자’들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문화판에서만 하지말고 정치판에서도 하고, 경제판에서도 했으면 좋겠다. 또 청소년판에서만 하지말고 20대, 30대, 40대, 50대, 심지어 70대판에서도 했으면 좋겠다. 서로 다른 ‘하자’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들이 영등포구 하자 센터의 그 산만하면서도 정돈 안 된 모습처럼 어우러질 수만 있다면 좋겠다. 그래, 한번 해보자. 아자, 이제는 하자!
‘하자(haja)’가 떴다.
학교 붕괴, 대안 교육 등의 말이 때로는 진지하게, 또 때로는 무책임하게 유행처럼 떠돌고 있는 추세와 맞물려서, 공식적인 명칭 ‘서울특별시립 청소년직업체험센터’보다도 더 유명한 별칭, ‘하자’ 센터가 요즘 떴다.
더구나 막강 파워 공중파 MBC의 전파를 타고 난 이후, 사회의 더 많은 눈들이 하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실제로 하자의 회원 수는 MBC 스페셜이 방송되고 난 후 기존 회원의 1/3 이상이 증가했단다.) 그래서 우리가 하자의 사람들을 만나려고 시도했던 그 즈음 하자는 여기저기 인터뷰 공세를 받는 모양이었다. 하자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으나(이에 대한 이야기는 강진주 양 인터뷰를 보시면 안다), 인터뷰 약속을 하고 난 뒤에 하자 사람들의 태도는 다른 어떤 인터뷰이들에게서 볼 수 없었을 만큼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하자 사람들이 인터뷰에 너무 능숙해져 있지나 않을까 하는 쓸 데 없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준비된’ 인터뷰이는 정말 재미없으니까.
3월 10일, 토요일 오후 지하철 2호선 영등포구청역 근처에 있는 하자 센터를 찾아갔다. 붉은 벽돌담에 하얀색으로 ‘haja’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는 점을 빼면, 여느 관공서 건물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적어도 외관상으로 ‘하자’ 센터의 발랄함 같은 것은 느끼기 어려웠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하여 하자 센터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뭔가 일을 하다 정리 안하고 내버려 둔 느낌. 벽면의 이런저런 낙서들. 2층으로 올라가니 디자인실, 웹디자인실. 3층엔 한쪽 벽면을 유리로 장식한 연습실이 있고, 아이들이 춤을 추고 있다. 뭔가 정돈되지 않은 느낌, 산만하다. 여기저기 표어,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천장에는 기다란 천이 가로질러 걸려 있다.
그런데 이 산만한 느낌은 눈에 보이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디선가 비트가 강한 음악 소리가 난다. 소리가 흘러 나오는 곳으로 찾아 가니, 하자의 지하. 두 개의 스튜디오가 있고, 각 스튜디오 안에서 여러 명의 10대들이 저마다 음악에 빠져 춤 연습을 하고 있다.
하자에는 하자 세계만의 독특한 명명이 존재한다. 판돌이, 죽돌이, 프로젝트 등등… 하자 밖의 말로 바꾸면 판돌이=선생님, 죽돌이=학생, 프로젝트=수업이다. 이런 독특한 이름들은 하자 센터가 하자 바깥의 세상에서 익숙한 선입견을 거부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작지만 큰 시도이다. 이러한 하자 세계 속에서 나는 이방인이었다. 익숙지 않은 얼굴에게 지나가는 10대들은 힐끔힐끔, 그러나 그들 특유의 무관심한 듯한 눈초리를 한번씩 던졌다. 도무지 익숙해질 것 같지 않다. 10대들의 대안 공간, 이런 곳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인터뷰 약속을 했던 하자의 판돌이, 허진 씨를 만났다. 짧은 시간의 인터뷰로 하자를 다 알고 싶다는 무모한 욕심은 애당초 버리고, 하자에 참여하고 있는 한 개인으로서의 허진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자 밴드마스터 판돌이 허진
퍼슨웹 : 하자에서 무슨 일을 담당하시는지요?
허진 : 대중음악 작업장 팀장으로 있습니다.(하자 대중음악 작업장 초기 팀장은 고기모 씨였다. 고기모 씨는 현재 (주)라디오 뮤직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 뒤를 이어 허진 씨가 하자의 대중음악 작업장 팀장이 되었다.) 대중음악 작업장만 해도 11개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기타반, 보컬반, 드럼반 이런 식으로 강좌가 개설되어있고, 그런 것들을 운영하는 역할이 가장 크지요. 우리 친구들은 한 달에 한번씩 공연을 하며, 공연 기획, 녹음, 음반 발표, 음반 유통 등의 일을 함께 합니다.
“작업장”은 5개로 나뉘어져 있다. 시각디자인, 웹디자인/정보기획, 대중음악, 영상미디어, 시민문화. 하자의 각 작업장은 매달 1일을 기준으로 새롭게 시작하며 각 작업장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가지고 학교를 다니거나/다니지 않는 10대들과 만나고 있다.
20001년 3월 하자센터 대중음악작업장의 ‘놀자 프로젝트’를 잠시 들여다 보면;
일렉기타 강좌 / 베이스 강좌 / 드럼 강좌 / 힙합 강좌 / 즐거워라, 자기 밴드 만들기 / 뮤지션스튜디오습격 / 하자서커스유랑단 프로젝트 / 초보를 위한 통기타교실 / 보컬트레이닝 / 미디음악의 이해 등등… 그리고 다섯 개의 작업장과는 별도로 인문학교실에 해당하는 콜레지오(하자 콜레지오 홈페이지 http://collegio.haja.net)가 있다.
퍼 : 하자의 10대들이 음반을 만들었나요?
진 : 정식 음반은 올해 초에 나오고요. 데모 음반이라고 그럴까, 그런 것은 수시로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퍼 : 공연도 하신다면서요?
진 : 저희 공연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매월 공연을 하는데 홀수 달에는 클럽 999 콘서트를 하고,(하자 센터 내 2층 강당 이름이 999클럽이다. 그 클럽에서의 공연을 가리킨다.) 짝수 달에는 ‘문화 돌격대 게릴라쇼’라는 야외 거리 공연을 합니다.
퍼 : 거리 공연이라 하면?
진 : 지금까지 두 번을 했습니다. 작년 12월에는 신림동 순대 타운에서, 2월에는 이대정문에서. 기본 취지는 10대들이 판을 벌릴 수 있는 사회 여건이 안 되어 있고, 특히나 거리 공연 같은 것이 활성화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친구들이 돌격대를 구성을 해 그냥 가서 판을 벌리는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굉장히 많죠.
제일 어려운 것은 장소 섭외입니다. 이번 이대 같은 경우도 이대 총무과에서 허락을 해 준다 안 해준다 해서 아이들이 우회적으로 총학생회를 찾아갔고, 총학생회 도움으로 학교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 부분뿐만 아니라 무대를 꾸미는 것, 출연진 등 모든 것들을 아이들이 다 함께 하거든요. 공연을 나가면 저희는 한 4시간 공연을 논스톱으로 해요. 4시간 논스톱 공연하는 게 결코 쉬운 일 아니거든요. 굉장한 사전 준비와 장비가 필요한데 이번 공연은 굉장히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3월 24일날 또 실내 999콘서트를 하고 4월달은 전주 국제 영화제에서 저희가 게릴쇼하는 걸 어떻게 알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청소년 단편 영화제가 있는데 거기 와서 행사를 해 달라고 해서 4월 29일날 전주 국제 영화제에 가서 게릴라 쇼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퍼 : 하자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진 : 하자 센터가 99년도 12월에 오픈을 했는데, 그 때는 센터가 홍보가 안 되었을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에 대한 구체상도 전혀 안 나와있는 상태였습니다. 음악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오면 그 친구들과 뭔가 한번 해 보라고 해서 왔는데, 하기로 한 첫날 딱! 왔는데 1명도 신청자가 없었죠. 하하하!
퍼 : 대중음악 쪽으로도 신청자가 없었다구요? 굉장히 의외네요.
진 : 네, 센터 홍보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었죠. 그 때는 공사도 안 끝난 상태였고, 그래서 그냥 멀뚱히 있다가 갔죠. ‘뭐 이런 데가 다 있어’ 그러고서는… 차 한잔 마시고 갔는데, 다음 1월에 신청자가 있다고 또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와보니 4명의 친구가 와 있더군요. 여학생 3명하고 남학생 1명, 그렇게 시작을 했습니다.
진 : 처음에는 단기적인 프로젝트로 ‘생활 속의 음악 찾기’를 시작했죠. 우리 주변에서, 음악을 꼭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아도 음악적인 느낌을 얻고, 음악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주제로 아이들하고 풀어갔는데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죠. 2, 3월달쯤에는 그 친구들이 같이 음악을 한번 해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프로젝트명이 ‘생활 속의 음악 찾기’에서 ‘자기 밴드 만들기’로 바뀌게 되었구요. 그 팀 이름이 ‘농협’입니다. 그 팀을 운영하다보니까, 친구들이 한 명, 두 명 늘어나게 되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죠. 지금은 하자 센터에서 가장 인원이 많은 작업장입니다.
하자 센터를 드나드는 사이버 회원은 약 8,9천 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하자를 드나드는 유동인구는 4,5백 명 정도. 그 4, 5백 중의 절반 정도가 ‘대중문화’ 쪽과 관계한다고 한다. 하자 센터의 의사소통에서 온라인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자 센터 홈페이지(www.haja.or.kr )에는 다양한 항목의 게시판이 존재하며, 거기에 하루에도 수십 건씩의 안건들과 문의, 또 그에 대한 답글이 오르고 있다. 이러한 의사소통 상의 특징 때문인지, 하자의 사람들은 온라인상의 아이디로 서로를 부른다. 허진 씨의 경우, ‘밴드마스터’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이런 명명법은 단지 새롭거나, 재미있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이름을 ‘새롭게 부르기’는 사람들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하자 내의 “판돌이(≒선생님)”와 “죽돌이(≒학생)”의 관계는 하자 밖 여느 교육 현장의 ‘교사’와 ‘학생’ 사이와는 좀 다르다. 그들은 일반적인 교사-학생보다는 좀더 서로 친근할 수도 있고, 그것을 기반으로 무언가 새로운 역동성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름은 중요하다. 하자의 ‘공식’ 이름은 “서울특별시립 청소년직업체험센터”이다. ‘시립’ ‘직업체험센터’가 연상하게 하는 것과 저 발랄한 ‘하자’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진 : 공식 명칭은 그렇습니다.
퍼 : 그렇다면 성인이 되어서 자신의 직업을 갖기 이전에 다양한 영역을 체험한다는 차원이 강조되는 것 같은데…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한 지향을 가진 친구들도 있고, 혹은 그냥 취미로 배우는 친구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하자 센터에서 다루는 영역과 직업 사이의 연계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요?
진 : 저희 하자 센터가 1년이 넘어가면서, 다른 작업장, 예컨대 디자인 작업장이라든가, 웹 작업장 등은 코스제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1달 듣고 마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3개월 과정, 5개월 과정 이런 식이죠. 그런 부분은 자기의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거든요. 그런데 저희(대중음악장)는 그렇게 하기가 조금 힘든, 특수성이 있습니다.
진 : 지금 당장 음악을 배워 가지고 당장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어디서 직장을 잡고, 어디서 일을 하겠어요? 기껏 해야 자기 밴드 만들어서 저같이 인디 밴드 하는 것밖에 더 있겠어요. 그런 가난한 음악가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일이거든요.
그렇다. 그게 어디 소위 “직업”이라 할 수 있는 건가? 하자의 판돌이 허진 씨는 지금 <허벅지 밴드>에서 활동하고 있다.
진 : 개별적으로야 대학 실용음악과로 진학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은 따로 모아서 조금 더 고급과정의 교육을 시키고 있지만 그것도 아직 제도화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도와주고 있는 것이죠.
진 : 그래서 저희 대중음악장에서는 온라인상의 웹 작업을 폭넓게 해 나가려고 합니다. 전국적으로 청소년 음악들을 모을 수 있는 웹이요. 왜냐하면 지금 전국적으로 자기 음악을 만드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이 있지만, 음반을 낼 방법도 없고, 어렵게 어렵게 음반을 냈다고 하더라도, 발표할 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하자가 해주어야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이야기인 자신의 음악을 세상으로 던져 내고, 풀어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하나의 사업이 되어서 거기서 일하는 친구들이 직업적인 마인드를 가질 수 있고, 최소한의 자기의 용돈, 자기의 앞가림은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지요.
퍼 : 청소년의 음악을 한데 모아주고 그것을 지원해 주겠다?
진 : 네, 그렇죠. 제작도 하고, 만들어진 결과물을 저희가 사이트에 올리고, 그리고 다른 사이트로 계속 퍼다 나를 수 있는 체제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퍼 : 하자를 출입하는 구성원이 자주 바뀌겠는데요?
진 : 많이 바뀌죠. 하자가 문을 연 지 1년이 넘었는데, 1년 이상 다닌 친구들도 꽤 있습니다. 그런 친구들이 아무래도 주축이 됩니다. 그러나 취미로 음악 배우러 오는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1 달, 2달 정도 다니고 그만 두는 경우도 많죠.
언론에서는 하자센터를 탈학교적인 공간으로 다루고 있지만, 실제로 90%이상은 다 학교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입니다. 평범한 친구들이라고 보면 되겠죠. 학교도 가야 되고 그러다 보니, 오래 다니지는 못하죠. 학원 가고 과외공부 하기도 바쁜데 무슨 기타를 치고 있느냐는 부모님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방학 때는 아주 바글바글 대는데 개학하면 좀 빠지고 그렇죠.
하자를 출입하는 10대의 90% 이상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말은 의외였다. 언론을 통해 하자는 자퇴생들의 천국으로 비춰지고 있지 않았는가? 물론 실제로 하자 센터 홈페이지에는 자퇴를 고민하는 10대들의 상담이 많으며,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는 10대들의 일부도 자퇴를 고민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하자 센터에는 자퇴생도 있으며, 재학생은 더 많다. 자퇴생이냐, 재학생이냐는 하자의 10대들을 규정짓는 결정적인 특징은 아니다. 그들은 모두 하자라는 새로운 개념의 놀이터를 활용할 줄 아는 하자의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