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천둥을 만나다
정찬교> 저는 사진이나 커피를 취미로 하고 있습니다만 10여 년 전, 그 길에 들어서게 된 계기나 그 당시 제 느낌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첫 경험이란 강렬한 법인데 오디오와의 첫 만남, 그 순간과 그 느낌을 기억하시는지요?
권기범> 예, 기억하지요. 제가 오디오를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아버님이 원주에서 병원을 운영하시던 친구집에 놀러 갔더니 아주 넓은 마루 한 면에 커다란 농 같은 게 두 개가 양쪽으로 놓여 있더라구요. 그게 뭔지 너무 궁금해서, 이게 뭐냐고 친구한테 물으면서 천으로 된 커버도 꾹꾹 눌러 보고 두들겨도 보았지요. 그러자 친구가 ‘한번 들어 볼래?’ 하면서 음악을 틀고 볼륨을 올려 버리는 거예요.
그 큰 소리에 너무 놀랬어요. 어린 가슴에 큰 충격이었죠, 그게. 스피커는 제 키보다 더 컸고, 소리도 넓은 마루를 가득 채울 정도로 컸는데 그 때 들었던 소리는 평생 못 잊을 거예요. 그 때부터 오디오에 대한 목마름은 시작되지 않았나 싶네요.
정> 초등학교 2학년이면 아홉 살인데 그 어린 나이에 강렬한 경험을 하셨군요. 그 때 무슨 곡을 들으셨는지 기억하십니까?
권> 곡명까지는 기억하지 못하구요, 그 컸던 스피커는 지금 생각으로는 ALTEC 스피커였지 않았나 합니다.
정> (ALTEC 스피커는 강당이나 극장에 쓰는 고출력 스피커로 유명하다.) 저는 열 살 이전의 기억을 거의 하지 못하고, 하더라도 어슴푸레한데 스피커 모델까지 기억하시는 것을 보니 상당히 강렬한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처음 장만하신 오디오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권> 독수리표 전축을 기억하시는가 모르겠네요.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있는 로고를 단 은색 카세트 데크는 어린 시절 내가 제일 갖고 싶었던 물건이기도 하다.) 독수리표가 나오고 새로 나온 전축이 코스모스였거든요. 그 코스모스 전축을 삼촌께서 저에게 주셨어요. 그게 제 첫 오디오예요. 그러다가 오디오다운 오디오를 갖게 된 게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저금한 돈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산 게 Sansui 4700이죠.
정> 아니,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저금을 하셨다는 말씀입니까?
권> 네, 어머님이 주시는 용돈을 아끼고 아껴서 거의 매일 저금을 했었죠. 학년이 올라가면 통장을 바꿔 가면서 잔액도 늘어나고 근 10년을 저축한 셈이네요. 한 주도 거른 적이 없어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필자에게 권 선생은 서랍 속에서 색이 바랜 통장 하나를 꺼내 보여 주셨다. ‘신용협동조합’이라고 적힌 표지의 통장을 열자 어떤 때는 매일, 길어야 사흘 건너 몇 백 원씩 입금한 내역을 볼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단 아홉 살 먹은 꼬마아이가 오디오 사겠다고 과자 살 푼돈을 모으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실험정신, 첫 자작 스피커
권> 저축한 돈으로 앰프는 샀는데 스피커 살 돈이 부족한 겁니다. 그래서 왜, 기타 앰프용 스피커 있지 않습니까? 그걸 하나 전파사에서 싼값에 구입했습니다. 한 조 살 돈이 없어서 하나만 샀어요. 울림판이 상하로 두 개가 있는 것이었는데 그걸 톱으로 썰어서 둘로 나누고 나무를 구해다가 덮었죠. 저음용 스피커였기 때문에 거기에다 또 구멍을 뚫어서 트위터(Tweeter, 고음 확성용 스피커)를 부착시키고 음 분리 장치도 달았습니다. 그게 저의 첫 자작(自作) 스피커였습니다. 음질은 별로였지만 일단 소리가 커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권 기범 씨의 실험정신은 익히 알고 있는 바다. “여기 동대문시장인데요, 커피 필터 대신 천으로 추출하는 실험을 해 보려고 하는데 어떤 천이 좋을까요?”라고 필자에게 전화한 분이 바로 그다. 그 뿐이 아니다. 기어코 커피에 소금을 넣어 보기도 하고, 오렌지를 짜서 넣어 보기도 하여 맛의 변화를 알아내기도 하는 분이다. 범상치 않은 그 실험정신과 탐구욕은 언제나 나의 존경의 대상이었다.
정> 대단하십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한다고 하지만 어떻게 스피커 하나 사셔서 둘 만들 생각을 하셨는지 놀랍습니다. 그 다음에 장만하신 오디오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권> Sansui를 오랫동안 쓰다가 그 다음에 갖게 된 게 Luxman이죠. 그 두 개는 정이 들어서 아직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Sansui는 안방에서, Luxman은 거실에서 A/V용으로 여전히 현역으로 활약 중이다.) 하도 오래 써서 버리거나 남에게 주려고 해도 처음에 포장을 뜯던 그 감동을 잊지 못해 아직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정>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셨으니 전자 계통의 지식은 없으셨을 텐데 어떻게 회로를 만드시고 스피커를 조립하실 수 있었는지요?
권> 친구 형님이 그때 전파사를 하셨어요. 거기 가서 다른 스피커를 뜯어 보기도 하고 어깨너머로 납땜 같은 기초적인 기술을 배웠죠.
정> 근 10년 저축하신 돈으로 첫 오디오를 장만하셨는데 대학생이 되셔서도 계속 오디오에 빠져 지내셨으리라는 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데 경제적으로 힘들지는 않았습니까?
권> 많이 힘들었죠. 그래서 방학 때는 음악다방에서 DJ도 하고, 부르는 절이 있으면 바라춤도 추고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바라춤 추는 소년
정> 아니! 범패할 때 추는 바라춤 말씀입니까? 바라춤도 추십니까?
권> 아버님이 강원도 불교신도회장을 계속하실 정도로 불심이 깊으셔서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절에 다녔어요. 어느 날 절에 갔는데 한 스님이 법당 안에서 바라춤을 추고 계시는 것을 보고는 신기해서 계속 보았지요. 그런데 그 스님께서 절 보시더니 한 번 추어 보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는 게 아닙니까? 그래서 옷을 빌려 입고 스님 흉내를 내며 춤을 춘 게 계기가 되었지요. 그 때가 고등학교 1학년 때입니다. 스님의 법명은 동각(東覺)이셨는데 강원도 지정 무형문화재 보유자이셨죠. 스님께 춤을 배우고 나서 여러 절에 다니면서 행사 때 바라춤을 추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각 대학 학도호국단(아마 70년대 이후에 태어나신 분들에게는 ‘학도호국단’이라는 명칭이 낯설 것이다. 요즘의 학생회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에서 주최하는 문학의 밤이나 축제 때 춤을 춰서 받은 돈으로 용돈으로도 쓰고 오디오도 사고 그랬지요.
정> 지금도 바라춤을 추시는지요?
권> 대학교 2학년 때까지 췄는데요, 스님께서는 무형문화재 이수자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기도 하셨는데 아버님의 완강한 반대로 그만 두게 되었죠. 춤을 계속 추려면 집을 나가라고 하시는 거예요. 집을 나가자니 무섭기도 하고 그래서 춤을 포기했죠.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아쉬운 부분 중 하나예요.
정> 대학 졸업 후 사회 생활하시면서 계속 취미 생활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많으실 텐데 추억담 몇 가지 소개해 주시죠.
권> 추억담 많지요. 그 중에서 하나 말씀드릴까요? 몇 년 전에 회사 자동차 전시장에다 오디오를 설치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어요. 회사에서 받은 돈이 70만 원이었는데 좋은 오디오 시스템을 장만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돈이었죠. 전시장이 넓었기 때문에 출력이 높으면서도 싸고, 좋은 음질을 낼 수 있는 기기를 찾아 세운상가를 일 주일 동안 뒤졌죠. 샅샅이 뒤진 끝에 외관은 낡았지만 기기의 상태는 좋은 것들을 구했습니다. 제 손으로 전시장에 설치를 하고 잘 들었죠. 상당히 음질이 좋았어요.
그런데 구조조정으로 인해 회사(쌍용자동차㈜)가 대우자동차판매㈜로 통합되던 과정의 어느날 전시장 인테리어 개조 공사가 들어가면서 그 오디오가 없어지고 새로운 소형 오디오가 있는 거예요. 그때 저는 지방 출장 중이었거든요. 그래서 인테리어업자에게 그 오디오 어디 있냐고 물으니까 쓰레기 폐기업자가 가지고 갔다는 거예요. 오디오의 외관이 낡아서 다들 쓰레기로 알았나 봐요. 그래서 쓰레기 업자에게 전화를 했죠. 정성과 공이 많이 들어간 오디오니까 꼭 찾고 싶다고요. 그러니까 그 업자 말이 이미 난지도에 갔기 때문에 찾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속이 상해서 일주일 동안 잠을 못 잤습니다.
정> 설마 난지도까지 가지는 않으셨겠죠? (웃음)
권> 사실 가고는 싶었는데 차마 못 갔습니다. 너무 애착이 가는 오디오라 땅 속에 묻히지 않고 어느 분이 주워서 듣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권 기범 씨는 진정으로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던 것이 어느 순간 곁을 떠나버려 더 이상 볼 수 없을 때의 슬픔과 아쉬움이 얼마나 오래 가는지를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Mark Levinson ML-6A, JBL M9500…
정> 지금 가지고 계신 시스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권> 스피커는 JBL M 9500을 한 조 가지고 있구요, 전원부는 별도로 쓰고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제품은 아닌데 스웨덴에서 제작한 Qubic 121을 거실에서 A/V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실내악 같은 소편성 악곡을 들을 때는 소리가 좋기 때문에 옮겨다가 연결해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현재 사용 중인 JBL M 9500 이전에는 JBL 4312A와 Tannoy GRF Memory TW를 번갈아가며 들었죠.
그 다음에 프리앰프는 Mark Levinson ML-6A를 쓰고 있는데, 사용한 지 10년이 훨씬 넘었어요. 이 앰프는 나이를 많이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음이 아주 따뜻해서 제가 좋아합니다. 프리앰프 전원부는 따로 PLS-154라는 모델을 사용하고 있어요. 파워앰프는 McIntosh MC 1000 한 조를 Mono+Mono로 사용하고 있습니다.(보통의 앰프는 스테레오 방식이지만, 이 앰프는 출력을 높이기 위해 하나의 스피커에 하나의 앰프를 연결해서 사용한다.)
그 다음에 제가 가지고 있는 기기들 중 가장 취약한 부분이 CD플레이어인데요, McIntosh MCD 7009입니다. 튜너는 McIntosh MR 7084와 Sansui TU D-55X를 가지고 있습니다. 카세트 데크는 Teac W-995RX이고, LP플레이어는 Denon DP-51F와 독일산 Elac 기계식 턴테이블을 가지고 있습니다.
카트리지는 Audio Techinica H-VL3MC를, 케이블은 Cable Talk 3을 4m씩 쓰고 있죠.(케이블의 길이가 길어지면 저항이 커지기 때문에 짧은 케이블을 선호하는데 이 케이블의 경우 길이가 어느 정도 길수록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인터코넥터(기기와 기기 사이를 연결해 주는 케이블)는 Monster Cable CX-4TH이구요, 전원 시스템은 Powertek 110/220 V 겸용 초기 모델을 쓰고 있습니다. 헤드폰은 Grado RS-1, 헤드폰 스피커 스위치는 QED MA30입니다.
그리고 A/V용 앰프는 제가 대학시절 썼던 Luxman LV-103U인데요, 이 앰프는 특이하게도 트랜지스터와 진공관을 같이 사용하여 두 가지 특성을 접목했는데요, Luxman의 야심작이고 한 시대를 풍미한 앰프죠. 이퀄라이저는 Pioneer SG-9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JBL Control 1이라는 스피커도 서라운드용으로 사용 중입니다.
최고의 오디오는?
아마도 권 기범 씨의 시스템 소개를 보고 나올 수 있는 반응은 세 가지로 나뉠 것이다.
첫째, “이게 무슨 소리야? 뭐가 이렇게 복잡해!” 오디오를 잘 모르시는 분의 반응이다.
둘째, “와, 부럽다. 나는 언제 이런 시스템 한 번 가져 보나?” 오디오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지금 한창 오디오 사랑에 빠져 계신 분의 반응이다.
셋째, “최고급은 아니구만. 좀 더 돈을 들여야겠어.” 오디오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서 더 이상의 고급 기종을 찾을 수 없는 분의 반응이다.
권 기범 씨의 기기들은 명기의 자격을 충분히 갖춘 것들이지만 파트별로 최고가 기종의 조합은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물건을 품질이 아닌 이름표나 가격으로 판단하는 세태에 비추어 본다면 그의 오디오는 최상급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오디오에 대한 변함 없는 30년 사랑의 정열이 식지 않은 그의 땀과 노력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오디오는 누가 뭐래도 당연히 최상의 것이라 할 수 있으리라.
정> 오디오 매니아로서 궁극의 오디오, 최상의 오디오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권> 궁극의 오디오는 결국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워낙 변수가 많아서요. 커피도 어떤 물을 쓰느냐, 어떻게 볶느냐, 누가 뽑느냐에 따라 맛이 완전히 틀려지지 않습니까? 오디오는 가격이 비싼만큼 품질이 좋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비싼 오디오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신경 써야 할 요소가 너무 많습니다. 케이블을 어떤 것을 쓰느냐, 전원 정류기를 어떤 것을 쓰느냐, 어디 설치하고 어떻게 매칭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있죠. 자신의 취향에 맞추어서 자신의 형편에 따라 무리하지 않고서 장만한 오디오가 그 사람에게는 최상의 오디오죠. 그리고 자주 오디오숍에 가서 좋은 오디오 소리를 많이 들어 보고 연주회장에 가서 악기의 원음을 귀에 익히는 것이 시행착오를 줄이고 빠른 시간 안에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찾는 길인 것 같습니다.
권 기범 씨가 권하는 서양 고전음악 감상법 하나를 소개한다. 우선, 자신이 좋아하는 곡의 악보를 구한다. 웬만한 악보는 대형서점이나 명동에 있는 음악사에 가면 구할 수 있다. 음반을 틀고 눈으로는 악보를 좇아가며 음악을 듣는 것이다. 처음에는 악보를 보는 것이 힘들지만 몇 번 시행착오를 거치면 음률을 따라갈 수 있게 된다. 작곡가가 남긴 유일한 메시지인 악보를 기준으로 해서 음악을 듣다 보면 연주자마다의 개성과 곡 해석력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권 기범 씨는 무엇보다도 악기의 원음을 많이 들어 봐야 귀가 뚫리기 때문에 연주회장을 많이 찾으라고 권한다. 사실 권 선생은 하도 연주회장을 많이 찾아서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앞의 암표상들과는 호형호제(呼兄呼弟) 하는 사이이기도 하다.
정> 몇 해 전, 당시 국내에 수입되는 오디오 기기를 각 파트별로 최고가의 제품들만 모으면 15억 원을 훨씬 상회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기사를 읽고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꿈만 같은 이야기라고 여겼는데 오디오 잡지에 소개되는 오디오 매니아를 보면 보통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정도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 적잖은 것 같습니다. 그런 시스템에 비한다면 권 선생님의 시스템은 아직도 업그레이드 중이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권> 그렇게 비싼가요? (웃음) 아직 저도 그런 금액의 오디오는 접해 보지 못했습니다만 오디오는 금액보다는 손맛에 따라서, 어느 정도 정성을 들였나에 따라서, 그리고 어느 정도 시행착오를 겪고 어떤 과정을 거쳤냐에 따라서 그걸 점수를 많이 줘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아무리 비싼 오디오라 하더라도 제대로 설치나 관리를 안 해 주면 좋은 소리를 기대하기 힘듭니다.
정> 권 선생님은 어떤 시행착오를 겪으셨습니까?
권> 오디오?熾【? ‘이게 좋으니까 부담 없이 가져가서 한 번 들어 보라’고 해서 가져 와서 듣다가 소리가 마음에 안 들어 되돌려 주지는 못하고 손해 보고 한두 달 뒤에 판 적도 있구요. 대학생 때부터 해 오는 일입니다만 세운상가나 용산 전자상가에는 거의 일 주일에 2-3번은 나가서 오디오를 둘러 보고 오죠. 한 번 가면 5-6시간은 보내고 오는데 그 시간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 버려요.
정> 그러시면 한 20년 세월을 바쳐 오디오?痔? 드나드신 게 되나요?
권> 그렇죠. 그렇게 꾸준히 다니다 보니까 간혹 업자들 중에서 제품의 성능이나 가격에 대해서 저보다 모르시는 분들이 있을 정도가 되더군요. 돈이 궁했던 학생 시절에는 한 가게에서 급하게 싸게 파는 물건을 사다가 바로 다른 가게로 가서 박스채로 팔아서 차액을 벌어 용돈으로 쓴 적도 있습니다.
발로 뛰어야
정> 영악한 질문이 되겠는데요… 큰 돈 들이지 않고 좋은 오디오를 장만하는 비결이 있습니까?
권> 그건 일단 신발이 닳아야죠. 똑같은 제품이라도 가게마다 가격이 틀리고, 그리고 처음 시작하시는 분은 신제품을 구입하기보다는 중고품을 구입하는 게 좋구요. 나가 보시면 싼 가격에 음질이 좋은 오디오가 많이 있거든요. 주위의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형편 되는대로 하나씩 구입하시는 게 큰 돈 들이지 않는 비결이라면 비결이겠네요.
정> 누군가가 오디오는 부자들의 취미다, 심하게 말하면 ‘부자들의 돈자랑이다’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권> 글쎄요, 오디오가 워낙 고가다 보니까 자꾸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취미가 있습니다만 그 중 많은 것들이 깊이가 깊어지면 많은 경제적 지출을 요구하지 않습니까? 사진을 좋아하시니까 잘 아시겠지만 카메라도 돈이 만만찮게 들어가는 취미죠.
그리고 취미라는 게 결국 어느 정도의 정신적, 경제적 여유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니겠는가라고 봤을 때 그렇게 평가하는 것은 무리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물론 음식 맛도 모르면서 값비싼 산해진미만을 찾는 사람이 있듯이, 좋은 소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음악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면서 수억 원대의 오디오를 장식용으로 장만하는 사람도 있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대부분의 오디오 매니아들은 자신이 갖고 싶은 기기를 갖고 싶어서 밤마다 오디오 꿈을 꾸기도 하고, 술 안 마시고 박봉을 아껴서 모은 돈으로 어렵게 장만합니다. 저도 마찬가지구요. 너무 색안경을 끼지 않고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정> 가지고 계신 음반들을 소개해 주신다면.
권> 아직까지 음반 수집은 많이 모자랍니다. 그 동안은 기기를 갖추는 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구색만 맞추어 놓고 있습니다. IMF 이전보다도 요즘 CD 가격이 거의 두 배가 되어서 CD 사는 게 아무래도 부담스럽기 때문에 많이는 못 사고 조금씩 콜렉션을 키워 가고 있습니다.
권 기범 씨가 소장하고 있는 음반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수가 엄청나게 많은 것은 아니지만 아주 다양한 작곡가, 다양한 장르의 음반을 아우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팝 음악 쪽의 좋은 앨범들이 눈에 많이 띤다. 그의 음악실에서 들은 Eric Klapton의 (Just One Night – 1979년 일본 동경 무도관 Live), Dire Straits의 (Alchemy : Dire Straits), Al Di Meola / Paco De Lucia / John McLaughlin의 (Friday Night in San Francisco)를 들었을 때의 감동은 잊혀지지 않는다.(음악을 클릭하시면 감상 하실수 있습니다).
정> 주로 들으시는 쟝르나 작곡가를 소개해 주십시오.
권> 학생 시절에는 팝 음악에 심취했습니다.(그는 대학 시절 락 밴드를 결성해 리드 보컬을 맡기도 했다.) 흔히들 팝 음악은 듣다 보면 하드락에서 프로그레시브를 거쳐 재즈라는 귀결점에 도달하게 된다고 말하는데 재즈 직전에서 클래식에 입문했지요. 클래식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톱 연주 때문입니다.
정> 아니, 톱 연주도 하세요?
권> 중학교 2학년 때 아는 분으로부터 톱 연주를 배웠죠. 톱 연주의 특성상 바이올린 곡을 많이 따라 하게 되었죠. 그래서 클래식 중에서 현악곡 위주로 듣게 되었어요. 그게 시작이었죠.
다시 만난 첫 사랑
정> 학생 시절부터 LP 음반을 모아 오셨으면 많이 가지고 계실 텐데 여기 음악실에는 제 어림짐작으로는 한 2백 장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다른 LP는 처분하셨습니까?
권> 아픈 곳을 찌르시네요. 그 얘기를 하자면 길어지는데, 저로서는 눈물 나는 이야기이기도 하구요. 음악을 듣지 않아도 하루에 10장에서 20장 정도는 꺼내서 음반을 닦고 겉표지는 투명 테이프를 붙여서 보관하고 그랬죠.
1984년도 어느 날, 친구가 찾아 와서는 자신이 안산에 있는 처음 문을 여는 음악다방에 DJ로 취직이 되었는데 음반을 구하기가 힘들다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음반을 고가에 사겠다는 거예요. 그 때 당시 제가 오디오를 바꾸려고 하는데 돈이 모자라서 애를 태우고 있었기 때문에 고가에 사겠다는 말에 현혹이 되어 그만 음반들을 팔고 말았습니다. 한 2천장 되는 음반을 밤에 트럭에 실려 보내고 선금으로 반을 받고 나머지는 나중에 받기로 했는데 그 돈은 아직도 못 받고 있습니다.
참으로 후회막급한 일이지요. 음반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꿈속에서도 음반들을 보기도 하고 한참 동안을 일기장에 그리운 마음을 적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애인과 같았죠. 그리고는 시간이 흘러 음반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한 4년 전에 안산에서 사업을 하는 친구가 어느 호프집에 갔더니 그때 그 음반과 비슷한 것을 보았노라고 하는 거예요. 그 전화 받자마자 바로 안산으로 향했죠…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는 밤이었어요. 한 10시 반쯤 도착해서 호프집에 들어가니까 음악실에 음반들이 꽂혀 있어요. 그래 자세히 보니까 제 음반이 맞는 겁니다. 주인에 지금까지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양해를 얻어 음악실에 들어가서 음반을 만지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그런데 가슴을 진정하고 음반을 꺼내서 보니까 실망이 밀려오더군요. 관리를 잘 못해 겉표지는 찢어지고 음반 표면에는 흠집이 많이 나 있는 데다 귀중한 음반들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더군요. 한 4곡 정도를 듣고 있으니까 주인이 문 닫아야 한다고 나가라고 해서 발길을 돌려 나와 술을 한 잔 했습니다. 옆에 있던 친구도 같이 울어주더군요. 첫사랑은 찾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그 곳을 안 찾아가는 게 낫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냥 찾지 말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겨 둘 걸 같은 후회가 남습니다.
권 기범 씨의 눈가에 물기가 비쳤다. 그는 아직도 그 사랑했던 음반들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옛사랑의 기억은 그렇게 아련한 것인가 보다.
정> 피천득 선생의 <인연>이 떠오르는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분위기를 바꾸어서… 일주일에 음악은 몇 시간 정도 들으시는지요?
권> 어휴, 가슴 아픈 것만 골라서 물어 보시는군요. 전에는 음악실에 들어가면 12시간 이상씩 음악에 빠져 들곤 했거든요. 해가 지는지도 모르고, 배가 고픈지도 모르고, 화장실조차 안 가고 음악만 들었습니다. 12시간이 저한테는 30분 정도로 느껴졌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가정에는 아무래도 소홀해지고 부부싸움도 많이 했죠.
그러다가 작년 연말에 제 처와 합의를 봤습니다. 일주일에 편한 날을 정해서 이틀만 음악을 듣기로 약속했습니다. 음악을 듣다 보면 마음 같아서야 음악실에서 나오고 싶지 않지만 가정을 위해서야 어쩔 수 없죠. 그런데 이렇게 합의를 하고 나니까 눈치 안 보고 이틀은 마음껏 음악을 들을 수 있어 좋은 면도 있습니다.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12시간씩 음악을 들어도 배 고프거나 목 마르지 않는 그 충만과 희열을, 그 열락(悅樂)의 경계를.
정> 방금 하신 말씀은 집에서의 일이구요, 오디오 매니아로서 사회생활 하시는 데 고충 같은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권> 주위 사람들이 오디오를 산다고 하면 저한테 자문을 구하고 사는 데도 같이 가 달라고 합니다. 이런 부탁들을 받는 것이 즐겁기도 하지만 시간을 많이 뺏기기 때문에 꺼려질 때가 있죠. 그리고 오디오는 산과 같아서 자꾸 높은 곳에 도달하고 싶게 만드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한 단계 시스템을 완성했을 때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을 자제하는 것이 무척 힘들죠. 그리고 이사 갈 때 되면 무척 고민이 됩니다.
그의 집은 다세대주택 2층에 있다. 그는 1층에는 집이 없고 주차장이 있어 오디오 소리가 울려도 괜찮다는 이유 하나로 이 집을 구했다고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오디오 매니아다운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리 크지 않은 집에 자신이 방 하나를 독차지하고 있어 한창 자라고 있는 예쁜 세 딸에게는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 여기서 그의 음악실을 스케치해 보자. 음악실은 예상했던 것보다는 크지 않았다. 큰 스피커가 부담스러울 정도라고 하면 주인장이 서운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공간의 협소함은 공히 아쉬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오디오 뒤의 방 전면에 종이 박스를 몇 겹 부착시키고 두꺼운 커튼으로 그것을 가렸다. 천정과 방문에는 음악실 전용 방음재를 부착시키고 바닥에는 두꺼운 양탄자를 깔았다. 문의 반대편은 베란다인데 음악을 들을 때는 소리의 울림이 그 쪽으로 빠져 나가도록 하였고, 베란다에는 일부러 두꺼운 옷들을 걸어 놓아 난반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였다.
오디오 맞은 편에 있는 CD장 또한 권 선생의 정성이 듬뿍 배어 있는데, 직접 주문한 튼튼한 단풍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CD가 너무 밀착이 되면 혹시 습기가 찰까 봐 뒷부분에 나무 하나를 덧대어 CD장의 뒷면과 비닐 커버를 씌운 CD 사이가 떨어지도록 만든 정성에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런 세밀한 관심과 완벽에 가까운 조처들을 편집증적이라고 쉽게 판단해 버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무언가를 위해 정성을 기울이는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다운 것이고, 그러한 정성과 노력들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디스크 걸린 사연
정>이사할 땐 오디오는 직접 옮기십니까?
권>불안해서 다른 사람에게는 못 맡기죠. CD는 비닐로 포장하고 5개씩 고무줄로 묶은 다음 큰 레코드 가게에서 쓰는 포장용 박스를 얻어다 거기에 넣어서 운반을 합니다. 앰프나 스피커는 한 개씩 제 차로 옮깁니다.
정> 오디오도 오디오지만 저런 스피커 받침돌 같은 것들도 무게가 상당히 나가겠는데요? 돌의 생김새가 예사로와 보이지 않습니다.
권> 참 사연이 많은 돌이죠. 이 스피커 이전에는 앞서 말씀 드렸듯이 Tannoy를 썼는데 그 스피커는 받침돌이 필요하지 않도록 만들어졌어요. 스피커를 바꾸고 나니까 돌이 필요해져서 여러 자료를 찾아 보고 이 방의 크기나 울림 등을 고려해 보니까 17㎝ 정육면체 대리석이 가장 좋겠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그래서 경기도 벽제에 있는 석재상에다 주문을 했죠.
그 때가 디스크 수술하기 직전이었어요. 크기에 오차가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입원해서도 몇 번이나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정밀한 작업을 당부하기도 했죠. 수술을 마치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돌 찾아 가라는 전화가 오더군요. 그래서 병원에서 퇴원한 지 보름만에 동료 직원에게 운전을 부탁해 돌을 찾으러 갔습니다. 그때는 걷지도 못할 때인데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누워서 갔죠. 돌을 실어 오기는 했는데 누가 도와줄 사람이 없더라구요. 빨리 돌 위에 스피커를 놓고서 음악을 듣고 싶은데 들 수가 있어야죠. 결국은 8개를 제 처가 하나씩 다 옮겼죠. 돌 무게가 상당히 나가는데 말입니다. 돌을 옮기자 제가 거래하던 오디오?? 사장님이 오셔서 스피커를 설치해 주셨죠.
그런데 그 과정에서 기존에 쓰던 큰 돌 하나가 거실에 남게 되어서 그걸 옮겨야 하는데 그 사장님은 떠나시고 제 처는 화가 나서 안 옮겨 주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들지는 못하니까 담요를 가져다가 돌을 끌어서 옮기는데 제 처가 그 광경을 보고 마음이 어찌나 상했던지 펑펑 울더군요. 그런 작업을 마치고 나서 앉아 있지를 못하니까 누워서 음악을 듣는데 굉장히 흡족하더군요. 소리가 참 마음에 들었어요.(그는 그 때의 느낌이 생생한지 가지런한 치열을 한껏 드러내며 소리 없는 웃음을 웃었다.)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겁이 나는데 그때 당시에는 빨리 저 돌을 설치를 해 놓고 음질의 차이를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에 눈에 보이는 게 없었습니다. 아무튼 여러모로 아내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매니아가 되기까지 아내의 도움이 무척 컸습니다. 이럴 때 아부도 좀 해야겠습니다.
그의 오디오에 대한 열정을, 오디오病의 심각함을 여실히 보여 주는 대목이다. 그런 남편을 옆에서 지켜 봐야 하는 아내의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정> 허리 다치신 이야기 좀 해주세요.
권>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오기 전 2평짜리 방에다 음악실을 꾸몄죠. 좁은 방에서 저 혼자 무거운 오디오를 옮기고 위에 올리고 하다 보니까 무리를 해서 허리를 다쳤는데 작년에 그게 재발해서 디스크 수술을 받았습니다. (파워앰프 하나의 무게가 거의 쌀 한 가마니 무게인 경우도 있다.) 그때 신경을 다쳐 하반신 마비가 왔고 의사는 제가 평생을 못 걸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수술 후 다행히도 신경이 점점 자라났고 조금 더 자라면 움직이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 같아요. 요즘도 계속 뜸을 뜨고 침을 맞고 있습니다.
평생을 불구의 몸으로 살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나락에 빠지는 것만 같았는데 이렇게 걸을 수 있으니 다시 태어난 느낌이고, 그런 고통을 겪고 나니까 정신적으로 훨씬 성숙해진 것 같아요.
이 부분에서는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선생의 그 넉넉한 웃음과 언제나 남보다 몇 뼘은 더 숙이는 고개의 바탕자리에는 기나긴 고통의 시간이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늘상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의 삶의 이면을 훔쳐 보면서 사람이란 그다지 높은 존재가 아닐지는 몰라도 엄청나게 깊은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음악의 희열
정> 바보 같은 질문입니다만, 그렇게 몸을 다치면서까지 그렇게 음악을 들으셔야 하는지, 왜 그렇게, 음악이 뭐가 그렇게 좋습니까? (조금 억양의 뒤끝이 올라갔다.)
권> 음악은 제가 잃어버렸던 꿈과 희망을 저에게 돌이켜 보게 해 주고요, 힘든 세상살이에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하죠. 언제나 사랑이 변치 않는 연인 같다고나 할까요?
정> 좋은 음악을 좋은 기기에서 들으셨을 때의 느낌은 어떤 것입니까?
권>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마음이 편안하고 아무 생각이 안 납니다… 무아지경이라고나 할까요? 의식의 틈이 없이 뭔가 꽉 찬 상태 같은 느낌입니다. 한번은 제가 Mark Levinson 20.5L을 파워앰프로 쓸 때의 일입니다. 그 앰프가 열이 많이 나기로 알아주는 앰프인데요, 여름날 좁은 방에서 음악을 듣다 보니 더위 때문에 온몸에 땀이 절어서 금방 물에 빠졌다 나온 것처럼 땀에 흠뻑 젖었는데 저는 몰랐어요. 그 모습을 아내가 보고서는 깜짝 놀라서 괜찮냐며 걱정을 하더군요.
정> 그러면 음악을 들으실 때 그런 느낌이 몇 시간 동안이라도 지속될 때도 있습니까?
권> 그럼요. 그럴 때는 몇 시간이 몇 분처럼 느껴지죠. 음악을 한창 들을 때는 자면서도 음악을 듣곤 했습니다. 잠을 자면서도 음악을 듣다가 내가 1번, 3번, 5번 트랙을 들어야겠다라고 생각하면 정확하게 리모콘으로 트랙을 찾아서 누르는 경지까지 갔었죠. 연전에 회사 연수원에서 인성검사를 받았는데, 정서 부분의 그래프가 원형에서 유달리 튀어나와 동료들이 의아하게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정> 옛날부터 꿈 꾸어오던 시스템은 갖추신 셈인데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것인지 궁금합니다.
권> 앞으로의 계획이라. 본업이 자동차 영업이기 때문에 계속 열심히 일할 것이구요, 지난 94년도에 야간 대학원을 졸업을 하고 바로 시작한 것이 바로크 이전 시대부터 현대까지 서양음악을 작곡가별로 작품을 연대순으로 정리하는 것입니다. 제가 필요해서 그런 책을 사려고 하니까 없더군요. 그런 책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해서 틈 날 때마다 정리를 하고 있는데 현재 두꺼운 노트로 9권 분량을 정리했고 일 년 정도 더 하면 마무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살면서 항상 저 자신에게 감당하기 힘든 숙제를 부여하고 있는데 대학원 진학도 그 숙제 중 하나였고 현재는 이 일이 숙제입니다. 물론 오디오는 영원한 숙제 중의 숙제인 것 같습니다. 자료정리는 나중에 쓸모가 없어서 쓰레기가 되더라도 끝까지 마무리를 지어 볼 계획입니다.
정> 바하의 작품의 경우 BWV 번호로 정리되었고, 모짜르트 작품의 경우에는 Köhel 번호로 정리된 것이 있듯이 각 작곡가별로 작품 정리는 되어 있는데 어떤 형식으로 자료를 정리하시는지요?
권> 제가 정리하는 것은 음악사가(音樂史家)들이 했던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좀 더 실용적인 것이라고 할까요? 우선 작곡가 태생연도별로 모든 작품들을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 오페라, 성악곡 등과 같이 장르별로 분류하고, 악장별 설명을 붙이고, 그 밑에 출시된 음반들을 정리하고 제 감상을 첨가하는 식으로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작업은 두 권 정도 더 하면 1차 정리는 끝날 것인데요, 빠진 부분도 많을 테니까 제가 음악을 듣는 한 계속해서 보완 작업을 해 나갈 것입니다.
정> 기대가 큽니다. 시스템은 더 이상 바꿀 계획이 없으신가요?
권> 오디오는 자꾸 욕심이 가죠. CDP 정도는 바꿀 예정입니다. 한 단계 오르면 더 오르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어렸을 적 세웠던 1차 목표는 달성했기 때문에 당분간은 기기 쪽으로는 쉬고 싶구요, 그 동안 소홀했던 CD 수집에 좀 더 박차를 가할까 생각 중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맛있는 저녁상이 차려져 있었다. 댁에 들릴 때마다 ‘오늘은 저녁 안 먹고 갑니다’라고 미리 공언을 해도 한사코 한 숟가락이라도 뜨고 가라고 붙잡는 손길이 인정스러워 따뜻하기만 하다. 솜씨 좋은 안주인 때문에 ‘저녁은 언제나 한 그릇을 넘기지 않는다’라는 내 생활규칙을 행복하게 어기게 된다. 오디오 매니아의 아내로 살아오며 무던히도 속을 썩혔을 터인데도, 음악 들으러 오는 불청객을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사모님께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