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커피, 그 오묘함의 세계
재작년 미국의 공룡 커피 체인 스타벅스(Starbucks)가 국내에 진출한 이후 에스프레소 음료가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들 중 몇 사람이 카페 라떼와 카푸치노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었으며, 세계 최대의 스타벅스 매장이 서울 명동 한 가운데에 자리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에스프레소 음료의 황금시대라 할 만하다. 그렇지만 과연 우리나라의 커피 문화는 스타벅스의 크기만큼이나 성장한 것일까? 커피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커피 전문가를 만나 우리의 커피 문화 수준을 가늠해 보고 어떤 커피가 좋은 커피인가를 알아 보고 싶었다. 인터뷰는 선생이 기술 상무 로 계시는 ㈜리빈코리아 사무실(경기도 곤지암 위치)에서 이루어졌다.
퍼슨웹) 허 선생님께서는 커피를 처음 접했던 순간을 기억하시는지요?
허형만) 네, 기억하지요. 1976년도였는데 대학 1학년 첫 미팅이었습니다. 다방에서 여학생과 마주 앉았는데 그때 커피를 압니까? 메뉴판을 받아 들고 보니까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제일 비싼 게 뭐냐고 했더니 비엔나 커피래요. 커피가 나왔는데 원두커피 위에 휩핑크림이 얹혀 나왔는데 아, 이걸 어떻게 먹어야 할 지를 알 수가 있어야죠. 커피를 알게 된 후에는 그 크림은 젓지 않고 뜨거운 커피의 쓴맛과 차가운 크림의 단맛을 동시에 마셔서 입 안에서 섞어서 마시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몰라서 상당히 당황했던 기억이 나네요.
퍼슨웹) 그러시면 커피와 완전히 인연을 맺으신 것은 커피회사에 입사하신 후부터인가요?
허형만) 그렇죠. 신문에 난 모집공고를 보고 원서를 넣었더니 시험을 보러 오라더군요. 그 당시 우리나라 커피회사는 동서식품과 미주산업(MJC커피) 두 회사가 있었는데 미주산업에 입사하게 되면서 커피와 인연을 맺게 되었죠.
퍼슨웹) 그 당시 우리나라 커피업계는 어떠했습니까?
허형만) 우리나라 커피산업은 1968년 동서식품이 설립되면서 시작합니다. 동서식품이 설비를 갖추느라 1970년부터 커피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미주산업에서는 1968년부터 커피를 처음으로 출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미주산업이 원두커피를 상표등록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원두커피라는 말이 퍼지기 시작해 지금은 원두커피를 보통명사처럼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후일 동서식품은 원두커피라는 상표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배전두(焙煎豆) 커피라는 상표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혹시 기억할런지. 코메디언 남보원 씨가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코털을 씰룩거리며 음, 배전두 커피라고 했던 TV광고를.)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두 회사가 다방에 간판 달아주기 등 마케팅 경쟁을 치열하게 전개해 출혈이 심했습니다. 그 회사 간판을 달면 그 회사 커피를 사용하는 조건이었죠. 그러다 이런 경쟁이 끝난 계기가 동서식품에서 1983년부터 동결 건조 인스턴트 커피 (Freeze Dried Instant Coffee)인 맥심의 생산입니다.
퍼슨웹) 어리석은 질문입니다만, 커피가 왜 맛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허형만) 저는 현답(賢答)을 드리기가 참 힘든데, 문학적 표현을 잘하는 사람들은 커피는 마시는 검은 보석이다와 같은 좋은 말을 하더라구요. 저는 그런 재주가 없어요. 일단 커피는 향이 좋고 마시면 입안이 개운해요. 인스턴트 커피와 원두커피의 차이점은 원두커피는 마시고 난 다음에 입안이 개운해서 입안을 헹굴 필요가 없는데 인스턴트 커피는 그렇지 않죠. 그런데 커피 맛이 없다고 말하시는 분은 좋은 커피를 마셔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그 커피 맛에 익숙해지고 좋은 커피를 접하게 되면 누구라도 좋아하게 됩니다. 차를 마시는 분들은 격식을 많이 따집니다만 커피는 그럴 필요가 없이 간편하게 마실 수 있다는 것이 또 좋은 점이죠. 자기가 좋아서 마시고 자기만의 커피를 만들 수 있고 나는 이 커피만을 마신다는 자기만족 같은 게 있죠. 너무 인스턴트화 되어 있기 때문에 커피의 진미를 느끼지 힘들지 않나 싶습니다. 좋은 커피를 한 입 마시고 나면 상쾌하지 않습니까?
퍼슨웹) 저도 이미 중독된 상태라, 허허.
허형만) 아니, 커피는 중독성이 없습니다. 한 번 끊어 보십시오, 아무런 금단현상이 없습니다. 그리고 커피는 사실 영양학적인 가치도 많이 있습니다. 비타민의 일종인 나이아신(Niacin)이라고 구강염을 예방하는 성분도 많구요.
퍼슨웹) 전문가로서 어떤 커피를 즐겨 드시는지요?
허형만) 코스타리카, 케냐, 이디오피아 커피를 좋아합니다.
퍼슨웹) 그것들을 특별히 좋아하시는 이유는?
허형만) 우선 향이 좋고 고급스런 신맛이 있으며, 어느 정도 강하게 볶더라도 입 안에 가득차는 맛이 남는 커피라고 할 수 있죠. 그 반면 브라질 같은 경우에는 향도 좀 떨어지고 복합적인 맛도 적어요. 중성적인 맛이죠. 블루 마운틴 같은 커피는 향은 좋습니다만 입안에 가득 차는 맛은 없고 부드럽습니다. 에스프레소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싫어하시죠.
퍼슨웹) 커피를 볶는 정도에 따라 맛이 다르죠?
허형만) 커피를 볶을 때 두 번의 튀김(crack 또는 popping 필자)이 있고, 첫 번째 튀김부터 City Roast라고 합니다. 그보다 더 볶으면 맛이 더 풍부해진다는 의미로 Full City Roast라고 하는데 그보다 더 볶으면 French Roast라고 하지요. 저는 Full City Roast 커피를 좋아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Mild한 커피를 좋아하는데 커피 본연의 맛과 향을 즐기려면 그것보다는 조금 더 강하게 볶는 게 좋죠.
퍼슨웹) 회사에서 Cupping(커피 Test)을 위해 여러 잔의 커피를 드셔야 할 텐데 댁에서도 커피를 드십니까? 또, 가족들도 커피를 좋아하시나요?
허형만) 집사람은 커피와 녹차를 반반씩 마십니다. 저도 요즘은 차를 마시면서 차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집사람은 커피는 이렇게 뽑는 것이다라고 가르쳐 줘도 안 해요. 할 수 없이 제가 뽑죠. 얘들이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데 고등학교 2학년 정도 되면 커피를 마시게 할 작정입니다. 커피에 있는 탄닌(tannin) 성분이 섭취하는 음식 중의 철분과 결합해서 체내흡수를 방해하여 아이들 성장을 저하시키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어릴 적에는 마시지 않게 하는 게 좋죠. 콜라, 커피, 녹차, 홍차 등은 금하고 있습니다.
퍼슨웹) 선생님께서는 커피가 직업의 대상물인 동시에 취미가 되는 셈인데 이 둘 사이의 갈등은 없습니까?
허형만) 커피회사에 취직하면서 커피를 알게 됐고, 오랜 시간을 커피를 공부하면서 보냈지만 아무런 갈등은 없었습니다. 이제는 커피가 완전히 제 생활이 되어서 일이라는 의식 없이 하고 있습니다. 퇴근을 해서라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자료를 찾아 보고 실험도 해 보는 것이 즐겁기만 할 뿐 어떤 의무감에 의한 것은 아닙니다.
퍼슨웹) 불교식으로 표현하자면 원융(圓融)과 무애(無碍)의 경지군요.(웃음) 진정한 커피 전문가의 자격 같은 것이 있습니까?
허형만) 우선, 어떤 커피를 보더라도 원료가 좋은 것인지, 잘 볶았는지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겠구요. 그 커피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맛 자체를 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내 커피의 장단점을 확실히 알고 단점을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하겠지요. 제일 중요한 점은 커피와 관련된 지식을 더 알고자 노력하고 연구하는 탐구심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또한 내가 알고 있는 바를 남에게 흔쾌히 베풀 수 있는 사람이 전문가 자격이 있지요.
퍼슨웹) 간혹 자신의 커피가 최고라고 하지만 정작 자기만의 노하우를 쉽게 가르쳐주지 않는 분들을 보는데…
허형만) 미국과 일본의 경우도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는 사람이 가르쳐 줄려고 하지 않지요. 그러나 커피업계가 발전하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많이 베풀어야 하며,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그 사람은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만하지 않아야지요. 산을 오를 때 봉우리를 올라서 내려다 보면 산을 다 오른 것 같지만 더 높은 봉우리가 나타나지 않습니까? 자신이 성취한 바에 자만하지 않고 자신을 계속 채찍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세계의 커피, 그리고 한국의 다방
퍼슨웹) 다도(茶道)처럼 커피의 도(道)라는 게 있을 수 있습니까?
허형만) 커피가 너무 일상화 되고 서구에서 들어 온 것이라고 해서 정신적인 면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원두커피는 손님들과 얘기하는 과정에서 격식을 갖추어서 정성을 들여 추출하고 제대로 마신다면 하나의 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커피에는 차 못지 않은 맛과 향이 있기 때문에 충분한 가치가 있고 우리가 하기 나름입니다.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스턴트 커피가 도입되면서 이런 문화의 근저가 파괴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퍼슨웹) 선생님께서 추구하시는 궁극의 커피, 최상의 커피는 어떤 것입니까?
허형만) 제가 커피회사에 갓 입사했을 때 예순 다섯 되신 선배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 분께서 가장 좋은 커피는 누구라도 마셨을 때 한 잔 더 마시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커피다라고 하시더군요. 그만큼 매력 있는 커피죠. 한 잔 더 마셔도 질리지 않는 커피. 그런 커피를 만들려면 결점이 없어야 하겠죠.
퍼슨웹) 대부분은 커피의 향을 즐긴다고 합니다. 어떻게 마시는 것이 맛있게 마시는 것입니까?
허형만) 이 부분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낙후된 부분이기도 한데요, 커피를 먼저 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어떻게 하면 커피를 쉽게 즐길 수 있는가를 알리는 일입니다. 결론적으로 커피 원료 선택에서부터 뽑는 방법까지, 신선한 커피를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하고 마셔보고 나서 좋은 맛을 가릴 수 있는 감별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혼자서는 체득할 수 없습니다. 앞서 간 사람과 같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맛있게 마시는가. 간략하게 말씀 드리면,
첫째, 볶은 지 열흘이 지나지 않은 신선한 커피를 마셔야 합니다. 오래된 커피는 변질된 커피입니다. 오래된 커피에서는 흔히들 담배 냄새 같다는 냄새가 납니다. 깔끔한 맛이 없죠.
두 번째는 가능하면 분쇄기를 갖추는 것이 좋고, 갖출 수 없다면 볶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원두를 일 주일 마실 수 있는 분량만을 갈아서 구입하고, 커피가 거의 다 떨어질 때 다시 구입합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선입선출(先入先出)이 맞지만 커피는 신선도가 생명이기 때문에 후입선출(後入先出)이 좋습니다.
세 번째는 다른 기구가 없어서 커피메이커로 추출하더라도 분쇄커피와 물의 양, 분쇄커피 입자크기 등을 조절하면서 내게 맞는 커피를 찾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네 번째는 커피를 잘 아는 사람을 찾아서 배우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제대로 추출한 커피와 그렇지 않은 커피의 맛의 차이를 알게 되면 커피 배움의 길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죠. 책을 참조하면 좋은데 우리나라에 출간된 커피 관련 책은 여섯 권입니다. 그 중에서 두 권은 내용이 충실한데 구하시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윤영노,황성연 씨의 커피와 정홍식 씨의 커피 이야기입니다. 일본의 경우만 하더라도 다양한 책들이 나와 있고 동네마다 커피를 직접 볶아서 파는 Roastery Coffee Shop이 있어서 신선한 커피를 사고 커피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 있는데 앞으로 우리나라도 이렇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눈속임을 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는 게 커피입니다. 품질이 낮은 커피를 사용하거나 사용치 않으면서 유명한 커피명칭을 사용하기도 합니다.(블루마운틴 커피가 대표적인 예이다–필자) 또 커피의 법정 수분 함량은 5%이하인데 커피를 볶아서 가수(加水)를 하지 않으면 수분 함량이 1.5% 정도 됩니다. 그런데 대형 커피 메이커에서 만든 커피는 수분 함량이 4% 정도입니다. 그러면 2.5% 정도의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것은 커피를 볶고 그 열기를 빨리 식히기 위해서 물을 분사하기 때문입니다(water-quenching).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서 하는 이 공정이 지나쳐서 수분 함량이 높아지게 됩니다. 동서식품의 연간 볶은 커피 생산량이 약2,000톤인데 여기에 2.5%라면 연간 50톤의 커피를 더 만들 수 있습니다. 엄청나죠? 금액으로 환산해 보십시오. 제 생각으로는 원두커피는 대규모 회사에서 제조할 것이 아니고 지역 밀착형으로 소규모 커피 볶는 사람들이 그 지역민들에게 신선한 커피를 공급하는 형태가 바람직합니다. 대형메이커에서 도매상과 재료상이라는 소매상을 거쳐 소비자에게 공급되는 유통기간은 너무 길죠. 열흘이 지나면 커피의 상태가 확실히 틀려지죠.
퍼슨웹) 우리나라에 소개된 커피 문화가 주로 유럽, 미국, 일본 등의 것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각 지역별로 커피문화가 어떻게 다른지 또, 어떤 점들을 각 문화에서 우리가 발전적으로 수용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요.
허형만) 우선, 유럽을 말씀 드리면, 흔히들 유럽에서 커피문화가 제일 발달한 나라는 이태리라고 알고 있는데 이태리는 에스프레소의 발생지여서 에스프레소 문화가 다양하게 발전한 나라이고 실제로 좋은 커피가 제일 많이 소비되는 나라는 독일입니다. 유럽에서는 로부스타종 커피 소비가 많습니다. 유럽의 식민지 국가들이 아프리카에 많고 아프리카는 로부스타종이 자라기에는 적지이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커피 역사는 상당합니다. 1660년 정도에 도입되었기 때문에 우리나라보다 230년 정도 앞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반면 유럽은 우리나라에 비해 수질이 나쁩니다. 석회질 성분이 많이 있죠. 커피를 마시는 전통이 오래되어서 생활 속에 완전히 녹아 있습니다. 생활의 여유가 있고 빨리빨리 문화가 없기 때문에 자기가 좋아하는 볶은 커피를 즐길 수 있죠. 그런데 그 사람들은 떫은 맛에 대해서 둔감한 것 같아요. 유럽 커피들은 강하게 볶아도 떫은 맛이 강합디다. 그래도 잘 팔리더군요. 독일에서 가장 큰 커피회사인 Tchibo(www.Tchibo.de)사의 커피를 다 마셔 봤는데 떫은 맛이 강해서 도저히 제 입맛에 맞지 않더군요. 유럽에서는 커피문화는 독일과 이태리가 제일 발달해 있고, 조리기구 쪽으로는 스위스가 발달해 있습니다. 커피 볶는 기계(roaster)는 독일, 이태리, 프랑스 순으로 발달해 있습니다.
커피를 마시고 5분 뒤면 인체의 신진대사를 10% 증진시킵니다. 그래서 추운 지방에서 커피를 많이 마십니다. 스칸디나비아 세 나라(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와 덴마크가 연간 일인당 커피를 마시는 양이 세계 최고입니다. 러시아는 춥기 때문에 커피를 많이 마셔야 하는데 사회주의 국가였고 경제수준이 낮아서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다가 최근에는 브라질에서 생산된 인스턴트 커피의 최대의 수입국이 되었습니다.
미국은 경제성을 중요시합니다. 비싼 커피는 안 마시는 풍토이다가 좋은 커피를 찾게 된 게 얼마 되지 않습니다. SCAA(Specialty Coffee Association of America, www.scaa.org)가 결성된 게 13년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이런 움직임에 스타벅스가 일조했습니다. 미국의 커피는 지역별로 맛이 다릅니다. 기후, 수질에 따라 그 맛을 달리 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사실 커피 후진국이었는데 스타벅스가 미국 사람들에게 에스프레소와 강한 커피를 익숙하게 하는 데 견인차 노릇을 했습니다. 미국은 아무래도 자본력이 있으니까 이제 제대로 된 커피를 사려고 하는 마인드가 되어 있어서 메이커들이 제대로 된 커피원료를 사려고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일본에는 1820년대에 큐슈 쪽으로 커피가 들어왔는데 1986~7년을 기점으로 인스턴트 커피에서 원두커피로 주소비가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가정용 소비는 지금도 62~3%가 인스턴트 커피입니다. 이런 소비 패턴의 변화는 생활 수준의 향상 때문입니다. 일본에는 소규모 Roastery Coffee House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좋은 커피를 쓰고자 하는 열의가 있고 생두를 취급하는 딜러가 늘어나게 되면서 커피 문화가 발전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런 방향으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활 수준이 더 높아지고 빨리빨리 문화가 없어지면 우리나라도 원두커피 쪽으로 커피 소비 패턴이 바뀌지 않을까 생각합 니다.
퍼슨웹) 최근 국내에서 에스프레소 테이크 아웃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습니다만
허형만) 지금 매스컴이나 체인 사업자들이 붐을 조성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기대치 이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소비층이 젊은층에 한정되어 있고, 에스프레소에다 뜨거운 우유를 섞어선 낸 맛을 즐길 뿐 실제로 정통 에스프레소 문화는 아직도 형성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전문성을 갖추지 않고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으로 체인본부에서 가르쳐 준대로만 기계처럼 커피를 만들어 내는 업소들은 머지 않아 도태될 것입니다. 전문성이 없으면 경쟁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에스프레소 문화가 형성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리라 생각합니다.
퍼슨웹) 우리나라에는 외국에서 볼 수 없는 다방이라는 독특한 공간이 있습니다. 커피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변형된 또는, 토착화된 형태가 다방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앞으로는 어떻게 변해갈까요?
허형만) 옛날 다방은 무료한 사람들이 시간을 때우는 공간이기도 하고 문학 예술인들의 안식처였는데 요즘에는 퇴폐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커피 문화가 잘못 정착된 탓입니다. 우리 세대부터 건전한 커피 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한다면 다음 세대부터는 정착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9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주방장의 권한이 아주 세었습니다. 주방장이 다방의 커피 맛을 좌지우지하고 추출이나 블렌딩도 직접 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주방장이 늦게 나오거나 결근 등 근무태도가 불량해도 업주들이 주방장의 눈치를 살필 정도였습니다. 유능한 주방장을 웃돈을 줘가며 스카우트하는 경우도 많았구요. 그런데 동서식품에서 맥심을 출시하면서 주방장한테 신경 안 써도 됩니다, 아무나 타도 커피 맛을 낼 수 있습니다라고 업주들에게 홍보하면서 다방을 석권하게 됩니다. 순식간에 서울 시내 다방의 8,90 %가 맥심을 사용하게 되더군요. 이것이 우리나라 다방커피의 인스턴트화입니다. 아직까지 지방에서는 원두커피를 사용하는 곳이 있는데 재료상이라는 곳에서 갈아서 공급한 커피를 추출하여 불 위에 올려 놓고 약탕기처럼 오랫동안 놔두어 졸여져서 커피 크리머를 타도 색깔이 거무스레한 것이 소위 다방 커피입니다. 요즘은 맥심에 설탕과 커피 크리머를 잔뜩 넣은 걸 다방커피라고 하지요.
요즘 커피집들을 살펴 보면 우선 커피 가격이 너무 비쌉니다. 임대료 등의 투자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커피 가격이 왜곡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1976년도에 커피 한 잔의 가격이 250원이었는데 이때 커피 원재료가가 100원이었습니다. 지금은 커피 한 잔 3,000원에서 5,000원 정도 하지만 원재료가는 200원 정도입니다. 커피가격이 반으로 내려간다 하더라도 한 잔의 커피값을 반으로 내릴 수 있겠습니까? 과도한 임대비와 인건비 때문이죠. 이런 왜곡된 가격 구조가 점차적으로 개선되어야 하는데 이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또한, 커피의 질을 떨어뜨리는 셀프서비스와 커피 맛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는 안락의자 같은 것도 지양돼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고객은 왕이다라는 말을 오해해 오만불손하게 행동하는 분들이 많은데 좋은 커피 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커피를 마시는 사람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뽑은 신선한 커피의 맛을 알고 찾아가고 업주들이 항상 정성을 다해 커피를 만들어서, 좋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는 커피 문화를 기대합니다.
퍼슨웹) 장시간 자세하게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의 커피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3. 커피 마시는 법, 업그레이드
인터뷰를 마친 후 허 상무님은 공장 이곳저곳을 보여 주시며 자세한 설명을 해 주셨다. 꼼꼼하게 적어 내려간 배전일지(焙煎日誌)와 6년을 정성 들여 키웠다는 커피나무를 보면서 커피를 참으로 사랑하는 한 사람을 만났다는 기쁨에 휩싸일 수 있었다. 인터뷰 당시 몸이 불편했던 필자를 염려해 주시고 좋은 말씀 해 주신 허 상무님께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독자들께서는 위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생소한 용어를 많이 접했을 것이다. 사실은 몰라도 커피를 즐기는 데 하등 문제될 게 없지만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좀 더 좋은 커피를 즐기기 위해 몇 가지 설명을 붙이고자 한다.
1. 커피가 만들어지는 대략적인 과정
커피는 대체로 적도를 중심으로 남회귀선과 북회귀선 사이에서 재배된다. 열매는 체리처럼 붉게 생겼는데 우리가 말하는 커피는 그 열매의 씨앗을 볶은 것이다. 열매에서 과육을 제거해서 말리면 흔히 생두, 또는 생콩이라고 부르는 연두색깔의 Green Bean이 된다. 이 생두를 볶음기계(Roaster)에 넣고 열을 가해 볶으면 우리에게 익숙한 짙은 색깔의 원두가 되는 것이다.
2. 어떤 커피가 좋은 커피인가?
모르고 지나칠 수 있지만 커피는 식품이다. 식품은 신선도가 생명이다. 그렇다면 커피는 신선도가 생명이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흔히들 원두를 살 때 커피의 제조일자를 살펴 보고 사지 않는다. 그저 점원이 맛있고 좋은 커피라고 권하면 사 들고 오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신선함이 커피의 생명인만큼 이렇게 원두를 사면 안 된다. 생선을 요모조모 살펴 보고 사듯이 커피도 그렇게 사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원두커피에는 제조일자가 적혀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대부분 유통기한만 표시되어 있는데 보통 국내에서 볶은 커피는 유통기한이 1년, 해외에서 볶은 커피는 2년이므로 유통기한을 보고 제조일자를 역산해서 추측하는 수밖에 없다. 수입, 통관, 유통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이 두 달 이상 걸리게 되므로 아무리 좋은 커피라 하더라도 소비자의 손에 들어 왔을 때는 최상의 상태가 아니게 된다. 위의 인터뷰에서도 말했듯이 볶은 지 열흘이 지나면 원두는 급격하게 풍미를 잃어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최대한 볶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선한 원두를 구하자.
3. 그러면 어떻게 신선한 원두를 구할 수 있는가?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커피를 직접 볶아서 파는 Roastery Coffee Shop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가게에서 주인과 상의한 후 신선한 커피를 사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다리품을 팔아 여러 곳을 다니면서 원두와 가격을 비교해 보면서 사는 것이 좋다. (가게마다 가격의 편차가 심하다) 백화점에서 산다면 제조일자를 꼼꼼히 살펴 보고 최대한 볶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원두를 구하여야 한다.
또 다른 방법은 이런 커피집에서 생두를 구해다가 직접 볶아 보는 것이다. 커피를 직접 볶는다는 것은 커피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다. 시행착오야 겪겠지만 자신만의 커피를 만든다는 즐거움이 만만찮다. 볶는 방법은 커피 동호회에 문의하거나 인터넷을 뒤지다 보면 찾을 수 있다.
4. 어떻게 추출하는가?
커피의 추출 방법은 다양한데 가장 널리 쓰이는 게 바로 커피 메이커일 것이다.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커피 메이커로는 제대로 커피를 추출하기 힘들다. 드립퍼를 이용해서 드립식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것이 가장 권할 만한 방법이지만 이것이 귀찮으신 분들께는 프렌치 프레스라는 기구를 사용하기를 권한다. 유리 컵 속에 철망을 누르는 방식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기구인데 백화점이나 남대문 수입상가 등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다. 프렌치 프레스의 또 다른 장점은 사무실이나 자동차에 두거나 가방에 넣어 다니면 어디서나 손 쉽게 커피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고속도로 휴게소와 스키장 같은 곳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주변을 둘러 보면 제법 많은 곳에 따뜻한 물이 나오는 정수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드립식 추출에 도전하실 분은 드립퍼와 필터만 사면 적은 돈으로 커피를 뽑을 수 있다.여유가 있으신 분은 커피를 가는 그라인더와 주둥이가 가늘어 편리한 드립 전용 주전자를 사도록 하자. 이런 용품들은 남대문 수입상가나 커피 전문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데 가격 편차가 심하므로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여러 군데 알아 보고 사는 것이 좋다.
5. 원두커피는 설탕과 크림을 넣지 않고 마시는 것이 좋은가?
원두커피에 설탕이나 크림을 넣으면 커피 맛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면박을 주는 분들이 있다. 제대로 추출한 커피를 아무런 첨가 없이 그대로 마시는 것이 커피를 즐기는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설탕이나 우유, 크림 등을 첨가한다고 해서 죄악시 할 일은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대로 커피를 즐기면 된다. 첫 모금은 그냥 마시고, 둘째 모금은 설탕을 넣어 마시고, 셋째 모금은 크림까지 넣어서 마셔 보면 그 맛의 변화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자신이 가장 맛있다고 느낀 방식대로 커피를 즐겨 보자.
6. 커피 메이커로 최대한 커피 맛있게 추출하는 방법
커피 메이커를 사용하는 것은 커피를 추출하는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없지만 워낙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기구이기 때문에 커피 메이커를 이용해서 최대한 커피를 맛있게 추출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우선 될 수 있는 한 신선한 원두를 구한다. 갈아진 커피를 필터에 넣고 전원을 켠다. 잠시 후 물이 끓으면서 커피가 추출 되려는 직전에 전원을 끊다. 원두에 수분을 주어 뜸(wetting)을 들이기 위해서다. 이 때 필터를 꺼내 보면 신선한 원두를 쓴 경우에는 커피가 빵처럼 부풀어 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10~20초 뜸을 들인 후 다시 전원을 켜서 추출을 계속한다. 마실 분량이 다 추출이 되면 전원을 끄고 필터를 제거한 후 커피를 마시고 많은 양을 한꺼번에 추출해 약탕기처럼 계속 우려내며 마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