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가을, 찬 겨울을 지나며
문학평론가 이명원
새해 초하루 서설(瑞雪)이 내리더니, 1월 7일에는 20년만의 큰 눈이 내렸다. 날씨는 전에 없이 얼어붙었고, 사람들은 움츠러들었다. 폭설과 강추위 사이, 그 잠깐 반짝 따뜻하던 날, 질척질척한 종로길을 가로질러 인사동으로 갔다. 1월 8일의 오후였다. 인사동 초입의 서울은행 앞 길가에서 이명원을 기다렸다. 날씨가 풀렸다고는 하지만 바람은 너무 차가웠다. 바람을 피해 얼른 서울은행 안으로 숨은 채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폈다. 아직 이명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가을, 그전부터 내가 알던 이명원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는 하나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좁은 소견에 마치 세상에는 이명원을 아는 사람과, 이명원을 알지 못 하는 사람 – 두 부류가 존재한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는 뜨거운 논쟁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이명원이 날린 돌 하나에 사람들은 정말 뜨겁게 반응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거인 골리앗에게 날린 젊은 다윗의 돌에 비유하기도 했고, 그 돌의 진정성을 문제삼아 그를 지독하게 미워하기도 했으며, 그가 일으킨 파장이 찻잔 속 폭풍일 뿐이라는 듯 냉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또다른 많은 이들은 이명원이라는 이름을 둘러싼 논쟁의 추이에 시간과 정열을 들여 진지한 눈을 떼지 못했고, 그 속에서 한국사회의 일그러진 한 단면을 보고 있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러 모두에게 상처를 입힌 커다란 풍파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흘러 논란은 가라앉았고, 문제는 봉합된 듯하다.
그런데 세칭 ‘이명원 사태‘ 속에 정작 이명원 자신은 풍파 속에서 어떻게 변화했고, 지금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정작 그는 돌을 던져 놓고 그 파장을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다. 장발 머리에 조금은 초췌하고 마른 듯한 얼굴에 베이지색 코트 자락을 날리며 드디어 이명원이 나타났다. 여전히 인사동은 춥다. 우리는 종종걸음치며 경인미술관으로 갔다.
1/ 되짚어, 말문을 열다.
퍼슨웹(이하 퍼): 머리 스타일이 바뀐 것 같다.
이명원(이하 명): 어디 출근할 데도 없는데…
작년 8월까지 그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교였다. 꽤 오래전에 유행했던 이런 우스개가 있다. “코끼리 냉장고에 넣는 법“의 대학교수 편이다. 대학교수가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 방법? 정답은 “조교에게 시킨다“이다. 그런 조교 생활을 견디지 못했는지 임기를 채 다하지 못하고 그만두고, 그는 천상 그냥 글쟁이로 살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후, 2000년 9월 {타는 혀}가 출간되었고, 그 책에 실린 논문 [김윤식 비평에 나타난 ‘현해탄 콤플렉스‘ 비판]에 담긴 ‘김윤식 교수 표절‘ 주장이 일파만파의 파장을 불러왔다. 그리고, 파장은 ‘사태‘로 되었다. 이명원은 자신이 다니던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을 자퇴하며, <말>지 2000년 11월호에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는 도발적인 제목의 자퇴 이유서를 발표했다. 당시 그는 박사과정 2학기에 재학중이었다. 그로써 사건은 누구도 감당하기 어려운 윤리적인 문제로, 한국사회의 한 약한 고리를 건드리는 문제로 번져나갔다. 이상은 속칭 ‘이명원 사태‘ 전반부의 매우 개괄적인 경과이기도 하다. (참조: 말지 홈페이지.)
퍼: <말> 11월호에 글을 실을 때, 이후의 상황을 예상했나? 충격 효과, 파장… 같은 거?
명: 그때 당시에는 내가 순진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게 하나의 학적 문제제기라고 봤다. 학문 시스템의 문제제기라는 차원에서 어느 정도의 지지, 혹은 비판이 가능하다고. 그러나 내가 예상했던 차원을 넘어섰다..
퍼: 예상 못하던 더 큰 사회 문제로 비화되었다?
명: 그렇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현상적인 사건일 수 있는 사례가 지식 사회 전체의 문제성을 제기하는 과정으로 나아갔다. 신문사설(문화일보 사설에서 이 문제를 다룬 적이 있다)에까지 나온 걸 보고 상당히 놀랐다.
퍼: 표절을 포함해서 처음에 학문적으로 제기한 문제와 나중에 그만두면서 나왔을 때의 대학원 사태, 크게 보면 2가지 단계가 맞물려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속에서, 이명원 씨가 취한 태도는 뭐였나? 흐름에 몸을 맡겼나? 아니면 상황을 적극적으로 타개해 간 쪽인가?
명: 후자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학문적인 차원하고, 학문을 생산하는 토대로서의 구조, 두 개가 독립된 사안이 아니고 서로 결부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제제기의 여러 가지 방향들이 존재했는데, 그것들을 관계적으로 봤을 때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동시다발적으로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지금까지 여러 인물들을 비판하는 글들을 써왔지만 그런 저항을 받은 일은 없었다. 가령 김윤식 교수가 아니었다면 그런 저항은 없었을 것이다. 김종엽 교수(이명원 씨의 주장에 대한 한신대 사회학과 김종엽 교수의 비판문도 <말>에 실려 있다)의 경우, 대학원 문제와 논문에서의 논리적 정합성, 표절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니까 독립적으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학문 생산의 장이라는 전체적인 차원에서 결코 독립적인 문제라고 파악하지 않는다. 그 두 가지 문제는 동시에 제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종엽 교수는 이명원이 제기한 문제의 두 번째 차원이 우리 학문 사회의 “제도적 병리“를 짚은 것이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첫 번째의 ‘학적 차원‘에서는 이명원의 논리를 강하게 비판했다. 김윤식 교수의 표절문제와 그의 현해탄 콤플렉스 극복 여부라는 상이한 문제를 하나로 뒤섞고 있다는 전제 아래, 김윤식 교수의 여러 저작들을 근거로 이명원의 표절 폭로에 대해 “나는 그래서 이명원이, 김윤식이 고진을 표절했다는 주장을 독서 부족이거나, 발견에 너무 놀라 경황이 없는 상태에서 나온 말이라고밖에는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이명원의 자퇴 이유서를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서울시립대 국문과 교수들은 모두 서울대 국문과 대학원 출신이다. 자신이 제기한 문제가 학문 내적인 문제와 대학원의 문제로 분리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그의 생각은, 시립대의 이런 특성(?)으로 인해 학적 시스템이 학문 내적인 문제까지 압박해왔다는 판단 때문이다. 어쨌건 그의 문제제기에 따라 파장은 ‘서울대 : 반서울대‘의 구도로까지 이어져 나갔다.
문제를 받아들인 대부분의 사람들 또한 표절 시비와, 자퇴를 직접적으로 야기한 한형구 교수의 압박과 회유를 구분하지 않았다. 하필 한형구 교수가 김윤식 교수의 제자라는 면이 작용한 결과였겠지만, 이명원 씨의 표절 문제 제기에 대해 “젊은 학인의 패기를 높이 평가한다“고 했던 김윤식 교수는 한형구 교수의 과오까지 덮어쓰고 “조폭“의 우두머리인양 치죄되기도 했다.
퍼: 그것은 본인의 “기획된” 비판이었나?
명: 기획된 비판의 과정은 아니었다. 그런 의식은 있었지만, 상황이 그렇게 전개된 것은 내 의지와 무관하다. 내 자신 그러한 문제 의식을 지니고 있었고, 삶 속에서 실천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것이 이 과정을 통해서 드러나리라고는 전혀 예상 못 했다. 약간의 신념과 약간의 우연이 결합해서 사태가 예상외로 커진 것이다.
퍼: 당혹스러웠거나 빠지고 싶었던 대목은 없었나?
명: 항상 빠지고 싶었다. 시끄럽게 살고 싶지는 않으니까.
퍼: 지금도 여전히?
명: 지금도 평화롭게 살고 싶은 것이 근본적인 생각이다. 상황이 그렇게 맞물려 돌아간 것이다.
이명원은 파장 전체를 자신이 예상하지 못했거나, 의도하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 그의 근본적인 욕망이라 한다. 평화롭게? 과연? 이명원의 글을 읽었던 사람들이 과연 그의 글 속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그의 의지를 읽을 수 있을까? “문화권력 비판“의 선두에 섰다가 상징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 그가 아닌가… 그렇다면 누가 그렇게 그를 만들어버린 것인가.
어쨌든 권력이란 그 핵심에 서있든, 주변에 서있든, 혹은 그것을 비판하든 조용할 수 없는 무엇이다. 또 의도하지 않은 면이 있다고 말했지만, 기본적으로 “문화권력 비판“에 대한 그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그렇다면 이명원이 꿈꾸는 평화로운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신중해야 했다.
퍼: 충격효과를 자신이 의도한 면도 있지만,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문제적인 자리에 서버렸고, 그것 때문에 치뤄야 하는 대가도 만만치 않았으며 심정적으로 곤혹스러움은 있었다… 이렇게 정리해도 되겠나?
명: 그렇다.
퍼: 만약 동일한 상황이 주어진다면 피할 생각은?
명: 당연히 안 피하지. 피할 생각은 없다.
퍼: 그러면 미리 예상해서 문제가 덜 생기는 방향으로, 또는 자신의 의지가 미치는 범위 내에서는 문제를 재배열할 생각은?
명: 싸워야 할 대상이 분명하다면 거기에서는 적극적으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불필요한 소모전은 벌일 필요가 없다고 본다. 내가 피곤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은 이런 말이다. 그러나 일단 내가 제도 밖에 나와 있으니까 아웃사이더가 지니는 자유로움이 있는 만큼 구조적 모순에 대해서 더 치열하게 싸워야 될 거 같은 생각이 든다. 내부 속의 행위자들이 상황에 대해서 자신있게 발언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퍼: 구조에 맞서기 위해서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바깥에서 새로운 대안적인 시스템을 자생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명; 바깥에서뿐만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내부에 있는 사람들과 외부가 같이 접점을 이루면서.
퍼: 본인이 서고 싶은 자리는 일단 나와 있기도 하고, 거부당하기도 했으니 외부에서?
명: 내 자신이 거부한 거다.
퍼: 바깥에서부터 가능성을 찾겠다?
명: 지금은 그렇다.
이명원은 현재 자신의 처지를 “바깥에서부터” 위치 짓고자 했다. 다른 중심의 일부가 된 듯 보이던, 그 자신은 어딘지 “바깥“에 있다는 것이다. 이명원은 대안적인 자생적 시스템과 고미숙 씨를 거론했다. 그는 대안적인 자생적 시스템으로 ‘수유 연구소‘, ‘현실철학연구소‘ 등등의 현실적인 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 했다. 알다시피 고미숙이건 무슨 연구소건 그 이름들은 밖에 있는 무엇들이다.
퍼: 김윤식 교수 표절 문제에 대해서 지금 자신은 어떻게 정리하고 있나?
명: <말>지 1월호에 김윤식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를 썼다. 내 기본적인 소신에는 변화가 없지만…
편지는 “보다 치열한 연구를 다짐하며“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어찌 보면 이 글은 이명원이라는 젊은 비평가가 김윤식이라는 “대가“에게 받은 영향이 무엇이며, 동시에 그를 넘어서기 위한 내적 투쟁이 어떤 것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또 이 글은 게시판들에서의 논란을 이명원 스스로가 정리 또는 승화시키기 위해 쓴 글로 읽히기도 하는데, 그는 기본적인 소신에는 변화가 없다고 한다.
퍼: 표절이다?
명: 표절인 것은 확실한데-.
퍼: 그걸 김윤식 교수도 인정한 것인가?
명: 사실상 인정을 하신 것이지. 다만 이제 소모적인 논의가 확산되는 것은 나도 원치 않는다. 학적인 차원에서 김윤식 교수의 비평 세계 전체를 검토하는 조직화된 작업을 선보이겠다. 작은 차원에서의 논란에는 더 이상 개입하고 싶지 않다. 그런 내용의 편지를 썼다. (참조 : 말지 홈피. http://www.digitalmal.co.kr)
2. “상처“받은 사람들
우리는 인사동 된장 비빔밥집으로 갔다. 그는 요즘 밤낮을 거의 거꾸로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후 5시 반, 오늘 첫 곡기를 입으로 털어 넣고 있었다. 술을 잘 못한다는 그에게 맥주 한 잔을 권했다.
퍼슨웹: 기대하지 않았던 반응들 속에서 남들이 잘 모르는 상처가 있었을 거 같은데… 논쟁 과정에서 ‘당신이 비판하는 쪽이니까 당신이 가해자다‘. ‘가만 있으면 되는데, 나서서 폭로해서 다른 사람들이 상처 입었다‘, ‘언론이 선정주의적 방향으로 치달아 그 사람 결국 언론에서 이용당한다는 평가‘ 등등이 있었다…?
이명원: 가능한 생각이라고 본다.
퍼: 감수한다, 는 것인가?
명: 정도 이상의 비난으로 김윤식 교수나 나 역시 상처가 될만한 부분들이 많았다. 그런 식의 발언을 듣는 것, 그 자체가 상처가 되는 것이다. 상처가 크긴 하지만 그 정도의 상처는 치유할 수 있다고 본다. 거기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학문적 근대성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거쳐야 할 통증이라고 생각한다.
속칭 ‘이명원 사태‘는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확산되었다. 오프라인의 메이저 신문들이 침묵한 사이, 창비 게시판, 오마이뉴스 등을 통해 문제는 터져 나왔으며, 많은 네티즌들은 “토론“을 교환했다. 그러나 그 과정 역시 온라인상의 “토론“이 지녔던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드러냈기에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을 수밖에 없었다. 상처받은 것은 한 둘이 아니었다. 당사자인 이명원, 김윤식 교수는 말할 것도 없으리라. 시립대 교수들, 시립대 국문과 학생들, 서울대 국문과 학생들 – 이들 역시 혹은 단죄되거나 스스로 악역을 맡음으로써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논쟁을 알면서도 침묵했던 사람들 역시, ‘말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죄를 걸머지기도 했다.
명: 사적 차원에서의 상처라고 한다면, 외부에서의 비난보다는 내가 살아가던 공간,내가 속해 있던 공동체 속의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발생한 정서적인 상처가 가장 큰 것이었다. 내부 모순을 비판하는 내부 고발자가 될 때, 그들의 동료와 그가 속해 있던 공동체 내의 사람들로부터 가장 큰 상처가 파생된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시립대 대학원생들, 시립대 학생들과 나와의 관계. 거기서 얻는 상처가 다른 어떤 비난이나다른 식의 비판보다 더 큰 상처가 되었다. 사람살이의 상처.
퍼: 사람살이의 상처라… 아프다… 시립대의 선후배들은 보호하고 지지하는 쪽이었던 것 같은데?
명: 게시판들, 여론의 지지는 심정적으로는 큰 위안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현실 속에서 실제적인 기여가 전혀 못 된다. 가령 어떤 행위의 결과로 제도 속에서 배제됐건, 스스로 나왔건 가능성이 축소되는 것인데, 그 속에서 받는 위안은 한계가 있다.
위안과 지지, 그 한계의 속 깊이를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이명원이 대학원을 자퇴하고 나온 이후, 시립대 국문과에서는 학부생, 대학원생,졸업생들을 주축으로 한 대책위가 생겼다. 2000년 11월 2일 성명서를 발표한 이후, 11월 10일 임시총회를 통해 당사자 이명원 씨는 배제된 상태에서 교수와 학생들 사이에서 비공개 사과가 이루어진 이후 대책위는 공식적인 활동을 정리하였다. (참고 서울 시립대 국문과 홈피 http://www.uos.ac.kr/~korean 게시판)
명: 상처는 감수해야 한다고 본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진정성이라고 하는 것은 과정의 진정성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최초로 보여주었던 문제의식이 단지 하나의 해프닝이었는지 진정으로 어떤 마음 속의 내적 요구에 의해서 그랬던 것인지는 이후의 삶이 증명하는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는 확언하기 어렵다. 다른 분들이 그런식의 생각을 가지고 나를 평가하는 것, 이해할 수 있다.
퍼: 동기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명: 그렇다. 물론 의외의 반응에 대해서 놀란 면이 있다. 가해자, 피해자 논리가 전도된 경우도 있고. 가령 ‘내가 가해자고, 김윤식 교수가 피해자다.’ 이렇게 전도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명백한 것은 그 사람이 현재 살고 있는 구조 속에서 그 사람의현재 위치와 앞으로의 가능성의 방향을 고려해 볼 때, 과연 누가 더 상처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지는 판단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갈등을 보였던 교수님들은 여전히 그분들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고, 나같은 사람은 어쨌든 대학을 떠나서 나름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랬을 때 표면적인 가해자, 피해자 논리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다른 사람들이 평가할 문제일 것이다.
퍼: 악의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대학 다녀봐야 별로 도움도 안 되는데, “더 좋은 데“로 간 거 아니냐는 말도 한다.
명: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지사지해보자. 친구가 그러던데, 나처럼 한 대학에서 사고친 사람을 어떤 부분에서 받아주겠는가? 아직 한국적 통념으로 보자면 내가 했던 일들은 이성적으로는 인정하더라도 정서적으로는 거부할 확률도 높다. 나 역시 그런 것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여론이라는 것은 양은냄비와 같아서 쉽게 뜨거워지고 쉽게 식는다.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삶의 방향을 책임져주지 못한다. 내가 이해한다는 것은 그런 속성까지 이해한다는 것이다.
‘더 좋은 데‘에 대해 서로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 그 악의적으로 말한다는 사람들은 이명원이야 어차피 저널리즘적인 글을 쓰는 사람이고, ‘폭로‘를 통해 대중에게 그만큼 어필했으니, 글 써서 잘 먹고 살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이명원은 ‘더 좋은 데‘를 다른 대학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 이 사람, 여전히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에 대한 미련이 있는 것 아닐까.
‘막간을 이용하여‘ 이명원의 한달 수입에 대해 물어봤다. 가끔의 강연과 원고료 포함, 평균 50만원 정도라 했다. 아직까지 좀 “떴다“고 해서 저널에 글을 실어서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은 못되는 모양이다. “월수 50″이라는 그의 경제적 입지는 그가 당자였던 충격이나 소란에 비하면 참 초라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가 수입을 축소신고하고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퍼: 비판 대상이 김윤식 교수가 아니었어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타났을까? 서울대 국문과 대학원생들의 모습이나, 시립대 교수의 직접적이고 정서적인 반응 등등 말이지…
명: 김윤식 교수가 아니었다면 상황이 바뀌었을 것으로 본다. 김윤식 교수가 가지는상징성이 있었으니까. 문학계나 학계에서 한국문학에 대표성을 지닌 사람이었기 때문에 파장이 더 커졌다. 또한 그것이 시립대 내 학연의 문제와 겹치면서 문제가 커졌다. 만약 다른 분들이었다면 논란이 축소되었을 것이다.
명: 한기 선생님의 반응은 사적인 감정이라고 본다. 개인적인 존경심, 육친에 가까운 애정이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조금씩만 양보했으면 어찌 보면 이 정도까지는 안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글쓰는 사람에게 글쓰는 것 자체를 문제 삼으면 충분히 분노할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한기 선생님“은 이명원을 결국 대학원에서 나오게 만든, 서울시립대 국문학과 한형구 교수를 가리킨다. 이명원의 지도교수이기도 했던 그는 사태의 진행 과정에서 최대의 악역이자 가해자로 지목당했다. 이명원은, 한기 교수가 그런 악역을 감당했던 것이 김윤식 교수의 지도 학생 출신인 그가 갖고 있는, 김윤식 교수에 대한 “개인적인 존경심, 육친에 가까운 애정“의 발로가 한 측면이었다고 파악하는 것이다.
한편 이명원 씨에게 가장 농도 짙은 악의를 갖고 온라인 게시판에서 악역을 마다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 서울대 국문학과의 일부 대학원생들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속내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명원의 또래들이면서 논란의 과정에서 정반대편에 섰던 그들의 경우에도, 우습게도 “개인적인 존경심, 육친에 가까운(?) 애정“이 빼놓을 수 없는 한 요소였다는 것이다. 김 교수가 한국문학 연구의 한 상징이라든가, 서울대 국문학과를 대표한다거나 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김윤식 교수로부터 배워온 그들은 외부 사람들이 결코 이해하기 힘든 존경과 애정을 정년을 코앞에 두었다는 문제의 노교수에 대해 품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논란의 과정에서 그들 중 몇몇이 빼든 칼은 순진하고 무딘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반비판은 오히려 더 큰 반발과 비난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진중권 등의 논자는 그것을 ‘기득권‘을 놓고 싶지 않은 ‘조로(早老)’의 태도나 봉건적 사제관계에 대한 아부 내지는 충성심의 발로에서 나온 것으로 “쉽게” 단정했다. 물론 그 존경과 애정이 그들이 갖고 있을 수도 있는 상대적이며 작은 ‘기득권‘과 착종되어 있을 수도 있다.
3. 인터넷 스타? – 나는 비평가다.
그가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논쟁을 제기한 것은 아니지만, 그와 관련된 논쟁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른 데에는 인터넷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신문 지상을 통한 지식인들만의 논전이 아니라, 이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던 개인들은 저마다의 의견을 가지고 온라인 상에서 논쟁의 당사자로 참여하였다. 그런 논쟁의 장이었던 인터넷을 이명원 자신은 어떻게 생각할지?
퍼슨웹: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진정성을 말하니 묻고 싶다. 모든 것을 가차 없이 되묻는 활동이라는 의미에서의 ‘비판‘이 궁극적으로 권위와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그 토대 – ‘자기 반성‘, 그러니까 자기 자신 역시 가차 없는 비판 앞에 세우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또 논쟁을 촉발시키고 확산시킨 데에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힘이 컸던 것 같다. 그런 사이버 공간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그 논쟁이 짧은 시간에 핫이슈로 부각되는데는 그것을 소개한 인터넷 언론의 선정적, 상업적 태도도 한몫 했다고 생각되는데?
명: 인터넷이 양가성의 매체라고 본다. 지금 단계는 일종의 인터넷 매체가 활용되는 초기인만큼 시행 착오를 많이 겪는 듯 하다. 인터넷 매체의 장점이라면 의사 개진의 적극성이다. 거기에 참여하는 네티즌들은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상식을 가지고 발언할 수 있는 수위를 보여주는 것이다. 많은 지식인들이 우려를 표하는 것은 막 나간다는 것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터넷 상에서 전개되는 여론의 질이 문제가 아니고, 그런 식의 막 나가는 발언을 가능하게 한 이 사회 전체의 구조가 문제다, 오히려 지식인들이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것이 더 필요한 작업이다. 그 책임을 각각의 네티즌들 개인의 문제로 돌리기보다는 그러한 발언을 그렇게 아무런 의식 없이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
퍼: 오호, 인터넷의 속성이 아닌 사회 전반의 비이성주의를 먼저 문제 삼자는 건가?
명: 그렇다. 그것이 더 큰 문제다.
퍼: 논쟁이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서 진행되고 혼란스러워진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본인이 개입하기도 그렇고, 내버려두기도 그랬을 것 같은데….?
실제로 당시 논쟁 과정에서 창비게시판에는 이명원 자신의 개입을 바라는 글들도 많이 올라왔다. 그러나 이명원은 철저하게 침묵으로 일관했었다.
명: 그런 경우 자정 능력을 믿는 수밖에. 그렇다고 해서 여론을 한 개인이 만들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하나의 현상이 과열되는 이면에는 커다란 문제가 잠복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책임있는 사람들, 연구자들이 오히려 앞서서 작업을 했다면 그런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연구자들 자신이 해야될 작업을 방기하다보니까 오히려 전문적 지식이 없고, 감정적으로 반응할 소지가 많은 부분들이 개입을 한 것이다.
퍼: 언론에서 진지하게 학적인 문제제기와 성찰로 가지 않고 선정적인 폭로로 치달은 것에 대해서는?
명: 그것이 언론의 기본속성 아닌가? 시선끌기. 선정성. 그런 차원은 이해할 수 있다.다만 그것을 바라보는 지식인 자신, 연구자들 자신이 그러한 견해나 반응에 휩쓸려 버릴 때 문제가 된다.
퍼: 이번 경우는 휩쓸린 경우라고 봐야 하나?
명: 연구자들의 경우 별다른 반응을 보인 것 같지 않다.
퍼: 그렇다, 오히려 일반인들에게 더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면서 막 나간 면도 있었다. 그에 반해 지식인들의 경우, 흥미로워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자신은 직접 개입하고 싶어하지 않은 경향을 드러내며, 양쪽 다 냉소적으로 쳐다본 면이 많다…?
명: 그런 경우가 많았다. 자기 의사를 적극적으로 개진하기보다는 하나의 재미있는 사건이다 정도. 또 하나, 냉소주의라는 표현이 맞는데, 이런 상황은 예전부터 있었던 것 아니냐…
퍼: “이 바닥이 원래 이런 것 아니냐?”… 는 식의?
명: 그런 식의 논리에 빠져서 대안이라든가 치유하고자 하는 노력은 거의 없었다고 본다. 지식인 사회 내에서.
인터넷, 언론이라는 매체, 그 자체의 문제보다 지식인 사회의 문제, 지식인들의 태도가 더 문제삼아야할 지점이라는 말로 이해했다. 그렇다면 정말 지식인답게, 지식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걸까? 김용옥처럼 TV에서 ‘intellectual show’를 하는 풍경? 이명원처럼 논쟁의 한복판에 서는 풍경? 연구실 속에서 묵묵히 공부하는 풍경? 거리에서 함께 빨간 띠를 휘날리는 풍경?… “지식인이라면 모름지기 ∼야 한다.” 그걸 정립하고 살아간다니, 이 대목에서 어찌되었든 이명원은 자신이 뭘 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행복한” 지식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는?
명: 과거에는 윤후명 씨, {돈황의 사랑}, 요즈음 젊은 작가 중에서는 김선우, 권혁웅, 김민정, 김종광, 전성태, 이응준 등의 작품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발전 가능성이 있는 신인이라고 본다. 또 동년배고.
퍼: 평론가들이 결국 욕심내는 것은 좋은 작품론 아닌가? 지금까지는 이론 비평에 주목해 왔는데…
명; ‘비평의 정도가 작품론이다‘라는 생각 역시 하나의 고정관념일 수 있다. 비평가의 존재 이유는 한 시대의 유효한 문학담론을 조직화해내는 것인데, 그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각각의 영역에서 얼마나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담론을 조직화해내느냐, 이 차원이다. 가령 제기되어야 할 쟁점들이 있고,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될 문제가 있을 때는 즉각적으로 개입할 태도를 취하는 한편에서 어떤 작품론의 영역, 흔히 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영역의 성찰 역시 병행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 내가 쓴 글 중에서도 작품론은 많지만 사실은 사람들에 의해서 감정적 동감과 반발, 저항을 불러 일으킨 것은 메타 비평, 비판적 글쓰기였다. 지금의 문학평론계도 논쟁적인 글을 쓰는 사람들과 전혀 그런 것들을 쓰지 않고, 작품론에 치중하는, 해석적 작업에 치중하는 부류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게 어떤 허구적 공식이다. 실제로는 작품론을 쓰는 과정 속에서도 아주 교묘하게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다. 비평이 단순한 미학적 실천만은 아니다. 동시에 미학을 발생시키는 사회적 실천의 장이기도 하다. 두 가지를 병행해야 한다고 본다.
비평에 대한 이러한 의욕은 근래 보기 드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 또한 많은 준비가 필요할 듯하다.
퍼: 본인이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미학적, 담론적 실천을 넘어서는 계획은?
명: 내가 앞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할 장은 역시 문학의 장이다. 지금의 문학계는 우리 문학이 사회적 의지와의 대결 능력이 완전히 상실되어 있는 상태다. 예컨대 이문구 선생님 같은 분이 동인문학상을 받고, 친일논리를 옹호하는 기괴한 발언을 했다… 문학 속에도 저항정신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문인들 같은 경우, 예능적인 특수 집단으로 자기 자신을 한정시키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는데, 사회적 실천의 장과 의지의 접점을 마련하려는 노력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퍼: 기억에 남는 좋은 반론? 자신에게 울림을 주는 반론이 있다면?
명: 문제는 반론 자체가 없는 경우가 더 많다.
퍼: 기억에 남는 반론 자체가 없다는 것이 오히려 지금 문제다?
명: 소위 말하는 작년 한해에도 문학권력 논쟁이 있었다. 언론에서 회자되고, 많이 논쟁이 됐지만, 거기에서 문제제기를 했던 부분에 있어서 공식적인 답변은 거의 없었다. 백낙청 교수가 창비게시판에다 ‘창비도 권력일지도 모른다‘, ‘창비 내부의 자기 성찰을 해야겠다‘는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인상적이었다. 내가 ‘창비도 거대 담론에 포함되어 있고 백낙청 1인 카리스마에 압도되어 있다‘는 내용으로 글을 썼는데, 그 부분에서 백낙청 교수가 나름대로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런 부분은 참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그 이외의 답들은 그런 방식의 공식적인 답변, 즉 실명 답변이 아니라 두루뭉수리하게, 시니컬하게 반응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명: 그리고 김윤식 교수 문제와 관련해서 김종엽 교수의 글도 인상 깊었다. 그 반론에 이견은 있지만, 나름대로 그 문제에 접근해나가는 방식에 있어서, 공유할 수 있는 고민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감정적인 것들을 완전히 제어하면서 반론을 편 경우는 아직까지 한편도 보지 못했다.
반론 없는 논쟁. 이 기형적 모습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제기되는 각종 논쟁의 대부분의 형태이다. “대화하지 않겠다. 니가 그렇게 깝죽거려봐라, 내가 상대해주나. 내가 응해주면 오히려 너만 더 키워주는 거 아니냐.” 그리고 여기에 다분히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거기다 무기명의 무기로 무장된, 무책임을 내용으로 하는 싸이버 공간이 오버랩되어 있다.
4 . 한국사회의 문화권력
퍼슨웹: 한국 사회에서 에콜은 창비, 문지 등의 잡지 단위로 되어 있는 것 같은데, 그것 외에 에콜이라고 할만한 것이 있나. 크게 꼽을 수 있는 단위가 뭐가 있나?
이명원: 한국사회에서 진정한 에콜은 없다고 본다. 학파라는 개념인데, 진정한 학파는 없다.
문단권력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데란 결국 창비와 문지 정도이고 그 핵심에 포진한 사람들의 수 역시 대단히 제한적이지 않느냐라는 의미였는데, 문단권력 논쟁을보도한 신문 기사에 자주 등장했던 에콜이란 표현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근데 에콜이 뭐지…
퍼: 창비같은 경우 백낙청 개인의 카리스마가 작동하고 있으며, 그런 경우 다른 사람과의 역동적인 주고받음이라고 보기 힘들다?
명: 그렇다. 거기에 소속되어 있는 다른 평론가들의 발언의 독립성이 확보되어 있지 못한 것 같다. 그 평론가들 자신이 의지가 없는 것 같다.
퍼: 음…… 동의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나?
명: 그러나 만약 전면적으로 그 상황에 동의한다면, 주체로서의 평론가의 존재조건, 존재이유가 뭔지 회의스럽다. 어떤 견해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 과연 전면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조직의 민주화라는 측면에서 과연 백낙청 선생님 이후에 소신있는 평론가들이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을 지닌 발언을 제기하고 있는가 회의적이다.
퍼: 창비나 문지 등 몇 개를 제외하면 다수의 비평가들이 “외부“에 있는 것 아닌가. 오히려 그 관행에 엮여 있는 사람들이 더 소수가 되어 버리는 것 아닌가?
명: 외형적으로 보이는 것들과 다르다. 문지나 창비라고 하는 매체 권력이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거기에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그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퍼: 입장의 차이, 좌파, 우파와 무관하게 그런 규정력이 어디에나 작용하고 있나?
명: 문제는 어떤 담론을 생산하고 조직하는 과정을 어떤 그룹이 독점하는가이다. 한국문학 과거 20년간을 지배적으로 독점해온 그룹은 그 두 그룹, 문지, 창비다. 다른 매체들, 실천문학이나 작가세계 등도 존재하지만 이들이 담론을 제기했을 때 문학계 내부에서 정전화된 담론으로 승인받지 못한다.
퍼: 문학동네가 요즘 가장 잘 나가는 데 아닌가?
명: 문학동네는 담론의 차원에서는 커다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문학동네는 두 가지 차원에서 의미를 인정할 만 하다. 의미있는 작품을 생산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준다는 점과 작품집 발간을 통해 젊은 작가의 작품 경향을 수용해서 그것을 알린다는 차원, 그러나 그런 것들이 한 회사의 생존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고, 전체 문학 지형에서 생산적인 담론하고는 연결이 안 된다는 점이 문제다.
작품성 중심, 작가 중심의 문학관이라고 하지만 그것과는 무관하게 자본주의적 상품 시스템을 문학출판계에서 악화시키는 역할을 함으로써 부정적인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퍼: 담론 구조를 독점하고 억압하는 구조는 없으나, 상업적인 부분에서의 충분한 자기 비판은 부족한 거 아니냐는 말인가?
명: 그렇다. 그것 역시 문학 시장에서 행사하고 있는 또다른 권력의 모습일 수 있다.
퍼: 문학동네와 조선일보의 관련성을 제기하는 부분이나 신경숙씨에 대해 표절을 시비하는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런 것들을 집단의 문제로 볼 필요는 없다는 입장인가?
명: 집단의 멘탈리티하고도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작가적 엄격성, 작가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그룹에서 대표성을 가진 소설가와 평론가가 어떤 문제를 발생시켰다면 책임있는 반성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부분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명: 조선일보와의 유착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하지만, 실증적으로 검토는 안 해봤기 때문에 나는 뭐라 말하기 힘들다. 언론과 출판시스템이라고 하는 것이 적대적 공존 관계일 수도 있고, 상생의 관계일 수도 있는 것인데, 그것을 일면화시켜서 말하는 것은 좀 단순한 논리 같다. 그건 좀 조심스러워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만 작가윤리라는 차원에서 이번에 남진우 씨가 보여준 행동이라든가, 신경숙 씨의 문제 등은 철저하게 반성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진우 씨가 보여준 행동이란 남진우가 문학동네 겨울호에 실은 시인 김언희론 [메두사의 시–김언희의 시세계]라는 글의 후미에 본문과 별도로 [보유–김정란의 김언희 비판에 대하여]라는 글을 통해 김정란 교수의 김언희 비평을 비판하였는데, 이 글과 관련된 기사를 조선일보에서 내보면서 야기된 논쟁을 아우르는 것이며, 신경숙 씨의 문제란 신경숙 소설에 대해 제기되었던 표절 의혹을 가리킨다.
여기서 문제는 다소 복잡하다. 이명원은 “실증적으로 검토해봐야“한다고 유보적으로 말했지만, 지난 가을 이후 안티조선일보 문제, 문학동네와 김정란 논쟁, 서울대 / 반서울대 논쟁 등등과 이명원 자신이 주인공이 된 논란은 은연중에 얽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각이 가지고 있는 논쟁은 그 구체적인 맥락을 다 달리함에도 불구하고, 성급한 이들은 문제를 단순화·집단화시켜 이분법으로 파악하고자 했다. 문제를 제기하는 쪽이 진보이며 그 반대쪽은 보수며 기득권 세력이라는 식이다.
퍼: 문학동네 관련 논쟁에 대해 어떤 입장을 표명할 생각은?
명: 그 사안에 대해 아직은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다만 안티조선 등 김정란 씨의 행동 전반에 대해서는 나의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그 연장선상에 있다. 김정란선생이 가지고 있는 입장을 비판적으로 지지한다.
퍼: 검토는 더 필요하지만, 의도는 동감한다?
명: 의도의 순수성을 인정하는 차원. 그 분이 공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문제가 많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기는 하지만, 필요한 작업이라고 본다.
퍼: 구체적으로 문학동네를 비판한 적이 있는가?
명: 창비, 문지, 문학동네는 시종일관 비판해왔다. 지속적으로 비판해왔지만 그 과정에서 답변은 없었다. 최소한의 반론이라도. 그저 소위 말하는 익명 비판 정도? 하여간 성의있는 답변이라고 보기 어려운 태도들을 많이 보였다.
퍼: 소위 익명 비판 가운데 당신을 드러내지 않고 지칭한다는 감을 가진 경우가 많았나?
명: 당연히 많았다.
퍼: 그런 경우 상대방은 그것을 부정하던가?
명: 가령 권성우 씨와 권오룡 씨가 권력형 글쓰기에 대하여 논쟁한 경우, 거기서 타겟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명백하게 몇 사람 있는데, 그쪽 사람들은 막상 이쪽에서 반론을 제기하면, ‘너 아니야‘라는 반응으로 대처한다.
명: 일단 비판적 글쓰기를 쓰는 사람이 적다. 왜냐하면 기존의 제도권에 편입되고 싶어하지, 그것과 대결했을 때 얻게 되는 손익분기점을 판단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부분일텐데… 내가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내가 만들고 있는 매체가 있기 때문이다. 매체가 생기면 작든 크든 매체 권력이 생기고, 나름대로 논의할 수 있는 자유스러움이 있다.
퍼: 그렇게 대항권력이 생긴다고 했을 때, 그것도 결국 권력화되는 것이라고 말하면 문제가 흐려지는 것 아닌가?
명: 권력 비판에 있어서 가장 맹점은 권력을 저급한 수준에서 인식한다는 것이다. ‘권력은 나쁜 거다‘라고. 문지 측에서 대응했을 때의 논리가 권력은 악이라는 사고인데, 하나의 권력을 비판한다는 것은 권력 자체를 완전히 무시한다거나 권력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상생적인 권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권력 존립 기반의 정당성을 만들고, 권력을 집행하고 수행하는 과정의 합리성이 중시한다는 것이다.
퍼: 권력의 특정한 작동방식, 즉 다른 권력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패권적 태도가 문제이지 권력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말인가?
명: 그렇다. 조선일보 최근 보도에서 문학권력 논쟁이 권력을 악으로 치부하고 달려든다며 오독을 했는데, 불필요한 오독이며, 저급한 수준의 이해라고 생각한다.
결국 너도 권력에 목말라하는 것 아니냐. 자신도 또다른 권력의 장을 만들려 하면서 누구를 권력이라고 비판하느냐. 이명원이 많이 들어온 말일 것이다. 그는 자신이 ‘권력‘임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권력을 비판하기 위해서야말로 자신이 권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퍼: 본인이 그 일부로서 만들어가고 있는 새로운 권력의 성격은 ‘대항‘적 권력의 성격을 띠어야 할 텐데… 대항권력 역시 자신을 권력으로 형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권력 일반이 빠져들기 쉬운 문제점들과 부딪히게 되리라고 한다면, 그 부분들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명: 우리 매체의 경우 동인들끼리 초심(初心)으로 삼은 것이, ‘만약 우리 자신이 우리가 타개하고자 하는 권력의 전형으로서 낙인찍히게 된다면 그때 우리는 해체하자‘는 것이다. 이런 초심이 변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퍼: 지금 당신이 만들고 있는 매체 내부의 반권력이 존재하나?
명: 우리 같은 경우에도 내부에서 견해가 차별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하나의 동일성을 확보하기는 힘들지만 최소한의 접점만 유지하면서 작업을 수행하면 하나의 그룹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하나의 권력이 타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부 성찰도 중요하겠지만 외부와의 대결 과정이 필요하다.
명: 매체간의 대립과 투쟁이 단순히 권력의 투쟁일 수도 있으며, 일종의 인정 투쟁, 정당성 투쟁일 수도 있는데, 한 역사적 국면 속에서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두 집단이 충돌하는 것은 더없이 자연스럽다고 본다. 그래야만 논의의 다변성이 확보될 수 있으며, 어떤 ‘썩지 않는‘ 역동성이 확보될 수 있는 것 같다. (참조. 비평과전망 홈피 http://www.saeumpub.co.kr)
그는 작년 초 이상문학상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실은 것으로 인해 작년 크리스마스즈음 문학사상사로부터 고소 전 단계에 해당하는 내용증명서를 받았다고 한다. 작년 초 말많았던 이상문학상 선정 과정에 대한 비판적 평론과 기사로 인해 문학사상사의 수입이 30% 줄었기 때문에 그 평론가들과 경향신문사를 고소하기 위한 사전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내용증명서를 받아든 순간, ‘아, 나의 2001년은 이렇게 시작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5 . Outsider? Insider? 아니, Betweensider.
개띠들은 꼭 그렇게 말한다. 오팔년 개띠, 칠공년 개띠. 이유는 없다. 그냥 스스로를 그렇게 부른다. 이명원, 그도 칠공년 개띠다. 그러면서 90학번이다.
퍼슨웹: 새로운 세대의 인정투쟁이라고 했을 때, 본인이 속하는 세대는 뭐라고 규정지을 수 있나? 문학판에 4.19세대외에 뭐 뚜렷한 세대가 없지 않나. 기껏해야 김명인, 조정환 등의 민족문학 논쟁을 이끌어낸 그 세대,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 사람들이 대거 평론가로 등장한 경우가 있겠다, 그리고 80년대 후반 학번, 90년대 학번은 많이 진출해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뚜렷한 힘으로 안 모이는 것 같다. 당신의 세대논의는 그런 것을 의식한 건가? 본인이 생각하기에 당신 세대의 정체성은 어떻게규정할 수 있나? 다른 세대와 구별짓는 징표라고 할까?
명: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학번 세대들은 ‘betweensider’라고 생각한다. 아웃사이더도 아니고, 인사이더도 아닌. 체제 내부에 완전하게 귀속되어 있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체제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나 있지도 않은. 사회적 위치도 그렇거니와 정치적 지향, 역사 속에서의 주체로서도 다중화된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
퍼: 정통적인 좌, 우의 스펙트럼으로는 포함시키기 어려운?
명: 그렇다. 좌, 우의 이분법 속에서는 결코 이해되기 힘든 범주 속에 우리 세대의 정체성이 놓여 있다.
퍼: 포스트모던적인 다원성, 열린 비평의 자세를 주장하는 세대, 예컨대 80년대 초반세대에 속하는 권성우 씨 등과의 차별성이라면?
명: 내가 보기에 지금 현재 공간에서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 학번 세대는 역사적 환멸세대다. 그리고 우리는 그 환멸의 끝물에서, 어떤 희망을 만들기 시작하는 과정 속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세대이기 때문에 차별성이 존재한다. 의식의 발전단계에서환멸적 체험을 내면화하지 않은 세대이기 때문에 유연성과 자유로움이 있을 것 같고, 그 세대가 가지고 있었던 어떤 의미에서의 이상한 봉건성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
명: 우리 세대는 정체성이 분열된 세대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정치적 지향이 일치하지도 않고, 삶의 취향의 방향도 다양하기 때문에 접점을 만드는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중이다. 80년대 초반 세대 같은 경우는 자신들이 발언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나 매체들이 정도 이상으로 빨리 마련이 되었는데, 우리 세대 같은 경우,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느리다. 문학비평계에서도 90년대 작가나 시인들은 80년대 세대들이 가지고 있었던 안경에 맞춰서 나름의 일반화와 왜곡을 통해서 규정된다. 타자화된 정체성이다. 일단 그러한 왜곡, 선입관, 오인의 근거를 깨는 작업이 필요할 듯 하다.
명: 90년대 정치학과 사회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91년을 생각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91년도의 강경대 분신 정국이라고 해서 변화의 끝물이라고 할 수 있는 시대로부터, 92년도의 서태지 등장의 접점에 90년대 세대들이 있는데, 그 두 가지의 전혀 이질적인 사건을 사회사적으로, 역사적으로 이해를 해보자, 우리 세대의 정체성을 거기서 발견해보자‘면서 모임을 결성한 것으로 알고 있다. <<비평과 전망>>의 우리의 작업은 문학적 차원에서 90년대의 의미를 규명하는 것인 만큼, 서로 연합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명: 그런 매체들이 앞으로 확장되지 않겠나. 온라인으로나 오프라인으로나. 그런 과정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도 확보되고, 자기 정의도 가능하지 않겠나. 90년대 세대는 웃긴 표현이지만 ‘상승하는 세대‘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가능성들이 있는 것 같다. 가능성을 규정하기보다는 가능성의 조건들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명원은 자신의 30대를 여는 첫 작업으로 {타는 혀}를 출간하며, 자신의 이십대를 정리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러나 20대를 마무리하는 통과제의는 녹록치 않았다. 마치 자신의 몸에 문신을 새기며 성인식을 치루는 사람들처럼 이명원, 그는 지금 자신의 마음 어디쯤엔가 문신을 새기고 있는 것일 게다.
퍼: 다른 일간신문이라든가, 다른 계간지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명: 이런저런 제안들이 좀 있었지만 유보했다.
퍼: 왜, 가급적이면 많이 관여하는 것이 좋지 않나. 자신이 코너에 몰려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매체가 많을 수록 좋은 것 아닌가?
명: 현재 여러 군데 시간을 분산시켜가며 발을 넓히는 것보다는 하나의 매체를 특성화하는 것,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외 외부기고라든가, 그런 것들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며, 현재도 하고 있는 일이다. 일단은 하나의 특징적인 매체를 활성화시켜서 좀 영향력을 확보하는 토대 속에서 여유가 생기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나. 아직 어떤 것이 옳은지 확신이 안 서서, 가능하면 외부에서의 작업을 줄이고 내 나름대로 생각했던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퍼: 어떤 기획?
명: 일단은 매체에 연재를 하는 방식을 통해 검증을 통한 후 연구서나 평론서를 낸다거나…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외에는 아직까지 나의 미래 전망이 확실하지 않아, 판단을 유보한 상태다.
인터뷰가 끝나고 인사동을 벗어나 종로로 빠져 나온다. 바람은 잠잠해졌고, 인파 속에 묻히니 새삼 편안하다. 사람이 참 많구나…
이명원은 한형구 교수에 대해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개인적 연민을 느낀다고 했다. 어쩌면 동업자 신세라고 할 수 있는 서울대 국문과 대학원생들이 보인 정서적이며 양가적인 반응에 대해서 말했을 때도 그는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 했다. 또 김윤식 교수가 문제의 당사자가 아니었다면 그를 핍박한 서울대 출신들의 반응이 조금쯤은, 아니 전혀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속사정” 설명에 대해서는 다소 놀라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 그는 여기서 힘주어 말하고 싶은 대목을 발견하고 싶어했다. 그것은 이렇게 서로 간의 입장을 ‘이해‘할 수도 있는 사람들 사이에 굳건히 서 있는, 대단히 넘어서기 힘든 ‘벽‘의 존재를 고발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주장과 논리를 떠나 그 ‘벽‘은 실재하고, 그로부터 무수한 ‘소문‘들이 흘러나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그 벽의 존재에 의해 구획 당해 있는 채로 소문을 생산하고 전파하는 유포자들에 지나지 않는 존재일지 모른다. 문학 혹은 비평의 고유한 임무가 ‘소문‘들이 진실이 아님을 엄숙하게 폭로하는 것이고 비평가는 ‘소문‘이라는 발 없는 말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존재라고 한다면 이 젊은 ‘비평가‘는 앞으로 또 어떻게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는 무수한 ‘소문‘들과의 박투를 펼쳐 나갈 것인지….
인터뷰 가운데서 이명원은 “개인적 연민과 구조적 모순의 사이“를 거듭 말했다. 신념을 가진 그와는 약간 달리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 “사이“에서 우리들 역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매순간 끊임없이 선택하거나 포기하거나 조류에 휩싸이면서. 잘 보이지 않는 적들과의 싸움이 어떤 이들에게는 목숨을 건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벽의 존재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그 싸움이 한갓 웃음거리로 치부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싸우고 있는 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란, 그가 목숨걸고 싸우는 ‘대상‘이 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비웃거나 욕하지 않고 지켜봐 주는 일이 아닐까. 이명원이 앞으로도 벌여갈 싸움이, 항상 올바른 방향에서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