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나러 가면서 나는 시종일관 한 판의 대결 구도를 머리에 그렸다. 절대 설득되어서는 안 된다, 필사적으로 저항해야 한다고 거듭 다짐했다. 적어도 내게 보험외판원은 귀찮은 존재다. 어린 시절 집에서 뒹굴고 있으면 꼭 찾아오는 사람들, 예수 믿으라는 전도사들과 보험 외판원들 말이다. 이런 유의 대결은 현란한 초식을 구사하는 진검 승부가 아니라, 바둑의 초반 국면처럼 일종의 기세 싸움에 가깝다. 현란한 언어와 침묵의 팽팽한 긴장, 또는 일종의 내공 싸움. 한쪽이 악기를 꺼내어 연주를 시작하면서 그 음 하나하나에 내공을 실어보내는 비파신공을 구사할 때, 내공이 약한 자들은 정신을 잃지만 고수들은 초연하게 음공을 이겨낸다. 보험 외판원과의 대결은 이런 광경과 사뭇 닮아 있다
1. 재정설계사(Financial Consultant)가 되기까지
노: 저의 이력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연세대 체육교육과 88학번이고, 졸업하기 전에 라는 데를 들어갔어요. 프로야구나 프로축구나 프로 구단들을 LG 그룹에선 LG 스포츠라는 회사가 전부 다 관리를 하거든요. 근데 모든 조직이 다 그렇지만, 들어가서 좀 일을 해 보니까 아니더라고요. 사실 LG 스포츠도 직장으로서의 꿈을 꾸고 들어간 건 아니구요. 오히려 대기업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이런 게 궁금했어요.
LG 스포츠 취직 당시의 재미있는 일화 한 자락. 서류 전형에 통과하려면 성적 증명서를 내야하는데 노정현씨 학점이 1점 몇이었다. 100점 만점에 한 3, 40점 정도 되겠다. 성적증명서를 제출했다간 도저히 합격이 안 될 듯해서 궁리를 했단다. 그때가 마침 입학 시즌이라 이렇게 핑계를 댔단다. “원서 마감날이라 학교 전산망이 다운되었다. 서류전형에 합격하면 성적증명서를 가지고 오겠다.” 그렇게 해서 입사를 했단다. 우리는 껄껄대며 웃었다.
휠: 스포츠 구단 관리를 선호하는 사람들 많치 않아요? 왜 나왔어요?
노: LG 스포츠는 되게 보수적인 조직이었습니다. 그런 조직 생활에 실망을 많이 했죠. 하지만, 보수적이긴 해도 프로 스포츠 조직을 그렇게 주식회사로 관리하는 데도 없으니 계속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렇지만 결국 구본무 좋은 일 시켜주는 것 같더라구요. 거기서 노조를 만들려고 몇몇 사람들하고 얘기를 하던 중에, 그 사람들이 다른 부서로 가 버렸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다 조용해지고, 뭐, 귀찮고 싫더라고요.
휠: LG 스포츠를 나와서 바로 보험업계로 뛰어들었나요?
노: 아뇨. 경제정의실천연합 즉 <경실련>에 들어갔어요. 제 발로 찾아갔죠. ‘나 이런 사람인데, 여기서 일하고 싶다.’ 그런데 경실련에서도 그만 노조 비스무레한 걸 만들었어요. 노조는 아니었고 간사 모임이었죠. 세 명이서 만들었는데, 그 때 상부에서 배후 조종자가 나라고 생각했어요. 사실은 내가 아닌데… 뭐 재미있는 얘기는 아닙니다만, 그 당시 김현철 테이프 사건 있었잖아요? 그걸 간사들이 몇 명 알고 있었어요.
휠: 간사들끼리 모임을 가지면 대단한 일이라도 생깁니까?
노: 30대 후반 40대 초반 정도면 그런 것에 대해 별로 알레르기 반응이 없는데, 그 위의 세대들은 민감하거든요. 일방적으로 내가 잘못한 거라고 하더라고. 그리고 주위에서도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라고. 안 그러면 짤린다는 거지. 그래서 나도 무조건 잘못했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나 보고 밥버러지니 쓰레기니, 별 오만 욕을 다 하는 거야. 그래도 참았지. 거기까진 참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나 보고 반성문을 쓰래. A4지로 세 장인가? 허, 완전히 돌겠더구만. 그래서 나도 참었던 얘기 다 했어요. ‘비디오 테이프 공개해라’ 그랬더니 ‘니가 뭔데 공개하라 마라 하냐’라고 하더군요. 거기다 나이 든 사람들이 얘네 안 짜르면 밖에서 돈 못 갖고 온다는 식으로 윽박질렀고… 그래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 뒀어요. 함께 몇 명 짤렸고. 그리고 저는 97년 10월 달에 ING Life에 입사했습니다.
1997년 3월 18일 경실련은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한다. 속칭 ‘김현철 비디오테이프 사건’이었다. 3월 초 한겨레신문은 김현철의 국정, 인사 개입 의혹을 본격적으로 제기했고 그 와중에서 문제의 비디오 테이프가 거론됐다. 박경식이라는 비뇨기과 의사의 병원 폐쇄회로 카메라에 잡혔던 김현철의 목소리와 행태는 정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문제는 경실련이 언론에서 폭로하기 이전에 벌써 그 테이프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결국 경실련은 은폐 의혹으로 곤혹을 치렀다. 3월 18일 대국민 사과 성명은 그 댓가였다.
휠: 왜 ING라이프였죠?
노: 경실련을 자발적으로 찾아갔듯이 ING라이프도 자발적으로 찾아갔습니다. 그 당시 먹고 살 길이 곤궁해서 취직을 하려고 했는데 네 곳에서 동시에 합격이 됐어요. 그 중에 두 곳이 푸르덴셜하고 ING였습니다. 그 밖에 다른 기업에도 합격이 됐지만, 다시 샐러리맨으로 살아가기는 싫더라구요. 푸르덴셜이나 ING는, 정확히 말하면 합격이라고 할 수도 없는데, CIS라고 해서 회사에서 세 번의 과정을 거쳐 검증을 하죠. 설사 그 과정을 통과했다고 하더라도 회사에서 아니라고 판단이 되면 짤라버립니다. 회사와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인지를 판단하는 거죠. 그런데 푸르덴셜은 조직이 좀 노후돼 있더라고요. 상대적으로 ING에는 젊은 사람이 많았고. 그래서 ING로 가게 된 거죠. 물론 지금도 우리 회사가 진취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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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너희가 보험을 아느냐!
노정현씨 명함에는 평범한 재정설계사(FC; Financial Consultant)와는 구분되는 명칭이 하나 더 표시되어 있다. 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 회원이 그것인데, 연봉 5만 9천 달러 이상인 사람들에게만 부여되는 자격이란다. 작년 현재 국내의 회원수는 3백명 정도였다.
지금까지는 분위기 파악을 위해 탐색전을 벌인 것에 불과하다. 뭐랄까, 링 아나운서의 선수 소개 멘트라고나 할까? 아니면 경기 시작 직전 주심의 주의를 들으며 벌이는 눈싸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험은 남자들이 할 게 없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 정도로 치부됐다. 수십 권 짜리 백과사전이라든가 정수기 외판처럼 사업하다가 망한 사람들이 맨손으로 시작하는 일. 나의 덜 떨어진 시대감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신경전은 예고도 없이 끝났다. 아직은 가벼운 잽이다. 그렇지만 상대의 선방은 매서웠다.
노: 종신보험에 대해서 잘 모르시죠?
휠: 종신보험? 전혀. 지금 하시는 일이 종신 보험 파는 겁니까?
노: 요즘 국내 보험 시장이 종신보험 시장으로 재편이 되고 있죠. 국민 소득이 만 달러가 넘는 선진국에선 대부분 종신보험 점유율이 한 50%정도 됩니다.
휠: 점유율이 50%라는 건 사람 수를 말하는 겁니까, 총액을 말하는 겁니까?
노: 물론 총액을 말하는 거죠.
<하면된다>라는 영화가 있다. IMF로 먹고 살기 힘들어진 가족 모두가 소위 ‘보험 사기꾼’으로 나서는 이야기. 우연한 계기로 보험의 맛을 보게 된 가족들은 자기 신체를 하나씩 절단 내면서 보험회사의 돈을 울궈 먹는다. 그들은 매우 진지하게 연구하고 계획한다. 눈 하나에 얼마, 팔다리 부러진 데 얼마… 그리하여 아버지는 지나가는 차에 뛰어 들고, 아들은 해병대에게 죽지 않을 만큼 얻어 맞는다. 마침내 그들은 생명보험이 최고의 ‘수익 상품’이라는 걸 깨닫는다. 이제 죽음은 더할 나위 없는 ‘상품’이 된다. 그렇지만 그들은, 보험 중에도 종신보험이 최고의 수익을 자랑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 역시.
휠: 종신 보험이란 게 뭔데요?
노: 말 그대로 간단하게 종신토록 보장이 되는 보험이죠. 종신보험도 하나의 상품입니다. 그렇지만 개인마다 가정마다 수입, 지출 규모가 다르잖아요? 종신 보험은 거기에 맞춰서 셋팅을 해준다는 데 특징이 있죠. 그래서 저희는 각 가정의 수입이나 지출 규모부터 파악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LG에 근무한다고 합시다. 그 사람에게도 장래의 계획이나 꿈이 있겠죠? 비교적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합니다. 지금 애가 한 명이 있는데, 후년쯤 애를 한 명 더 가질 거다, 그리고 내후년쯤엔 과장이 될 거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여기에 수입 규모나 부채 정도도 추가합니다.
이런 걸 바탕으로 그 사람이 만약 경제적인 능력을 완전히 잃었을 경우, 반신불수가 됐다거나 사망을 한 경우 말입니다,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얼마가 필요할 건가를 계산합니다. 교육비라든가 결혼자금 같은 걸 계산해서 아이 한 명당 1억이 필요하다고 보면 그 사람한테는 2억이 필요한 거죠. 앞으로 태어날 아이까지 포함해서요. 거기다 부채 상환도 있을 거 아닙니까? 이런 거 다 합쳐서 이 사람에게 필요한 돈이 한 3억 정도라고 보고, 거기에 맞춰 보험을 셋팅하는 거죠.
말하자면 이런 뜻이다. 종신보험은 고객의 인생 사이클을 설정해주고 거기에 맞추어 필요한 경비를 산출한 다음 그 경비에 해당하는 보험금을 정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신보험은 흔히 “생명보험의 꽃”이라고 불린다. 종신보험은 일종의 보장성 보험으로, 사망 원인에 관계 없이 모든 위험을 보장해 준다.
이 점에서 생명보험과는 크게 다르다. 그리고 종신보험은 만기라는 개념이 없다. 보험금 역시 규모가 크다. 일반 보험이 보통 2-5천만원 정도인 것에 비해 종신보험은 수억 원을 지급한다. 남은 가족들의 평생을 보장한다는 것이 종신보험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종신보험은 라이프 컨설턴트가 고객와의 직접 상담을 통해 각 가정의 Life-Cycle에 맞는 최적의 보장 계획을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설계해 준다.
노정현씨에 따르면 종신보험은 근래 새로운 문화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돈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보험 사이즈가 수십 억인 고객도 있고 매달 천만 원씩 보험료로 넣는 사람도 있다. 특히 골프를 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골프가 그들의 문화인 것처럼, 종신보험도 새로운 문화처럼 퍼지고 있단다.
휠: 그럼 한 번 정해지면 계속 변동이 없는 건가요? 사람도 연령대에 따라 활동 정도도 다르고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변화가 생기잖아요. 갑자기 물가가 오른다거나 등등.
노: 그렇죠. ‘3억’ 이라는 게 고정적인 액수가 아니고, 시간이 지날수록 올라갈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부채가 2억이다, 그런데 내가 매년 2천만 원씩 갚아 나간다. 그러면 1억이 필요한데 부채가 2억이 있으니깐 피보험자가 돌아가셨을 때를 대비해서 모두 3억이 필요하잖아요. 그러면 내년에는 2억 7천이나 2억 8천 정도가 필요한 거잖아요? 그럼 특약 같은 거, 그러니까 매년 그만큼 깎아가는 특약을 부과할 수 있죠. 그럼 전체 규모가 내려가는 거죠. 올라간다는 건, 경제적 상황이 바뀌고 인플레이션이 되니까 보험료를 일정 금액 증액해야 할 필요가 생기거든요. 예를 들어 애가 한 명 있다가 둘째가 생겼어요. 그럼 증액을 해야 되죠. 이제 그런 식으로 각 가정의 수입이나 지출의 규모에 맞춰서 보장을 해 준다는 의미입니다.
종신보험이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건 10년쯤 됐고, 국내 회사에서 판매하기 시작한 건 불과 2년이 안됐다. 종신보험을 전문으로 담당하고 있는 한 회사는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21세기 보험 산업의 주류인 종신보험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신조직으로, 직장 경력 3년 이상 대졸남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과정을 이수하였으며, 보험을 비롯한 개인금융 전반에 대해 상담하는 일을 한다.” 한마디로 “신개념의 서비스”라는 것.
말하자면 이제 보험은 젊은 전문가 집단이 판매하는 상품이 됐다. 내가 만나고 있는 노정현씨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다. 이제야 그의 직함, 재정상담사(FC; Financial Consultant)가 의미하는 바를 알겠다. 생각한 것보다 상대의 초식과 내공이 무척 강했다. 적을 모르고 안이하게 덤빈 댓가를 톡톡히 받지 않을런지. 이건 어쩌면 필패의 길일터. 그가 소나타Ⅲ를 몰고 나타날 때부터 긴장했어야 하는 건데. 이제 상대방의 가벼운 잽조차 묵직한 스트레이트와 다름없다. 몸은 긴장할수록 움직임이 둔해지고, 상대의 주먹은 수시로 바람을 가르며 정면에서 날라든다.
노: 당신은 자신의 몸값이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거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
휠: 없습니다. 그 기준이 뭡니까? 지금인가요, 아니면 십년 후인가요?
노: 모든 보험은 현재를 기준으로 합니다.
휠: 그럼 ING라이프를 찾아가서, 아니 노정현씨를 찾아가서 상담하면 그쪽 데이타를 기준으로 제 몸값이 나온다는 건가요?
노: 그렇죠.
휠: 예를 들어, 서른 다섯 정도 되고 지금 대리나 과장 정도 올라가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설계를 하십니까?
노: 제가 볼 때 적절한 보험료라는 건 없습니다. 연봉 3천 5백만원인 사람이 2만원 짜리를 들 수도 있고 30만원 짜리를 들 수도 있죠. 저라면 아마 13만원에서 15만원 정도에서 설계할 것 같습니다만…
휠: 그나저나 보험금 지급은 어떻게 합니까?
노: 종신보험은 기본적으로 일시불입니다. 언젠가 한 번은 지급되게끔 되어 있죠. 자연사하는 경우에도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다 특약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종신 보험이 천만 원이고 주계약이 천만 원인데, 십년 짜리 특약을 1억으로 한다. 그러면 보험기간 10년 만기까지는 1억 1천만원이 보장됩니다. 10년이 지나면 1천만원만 지급됩니다. 주계약이란 건 언젠가는 한 번 지급되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사람에 따라서 주계약을 많이 하기도 하고 특약을 많이 하기도 하죠. 그런데 제가 이런 말씀 드려도 아마 잘 모르실 겁니다.
휠: 예? 예… 사실 제가 보험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거든요.
마침내 상대방의 훅이 내 턱에 정통으로 걸쳤다. 다운 직전까지 몰린 거나 다름없다. 그는 실컷 이야기해 놓고는, ‘이렇게 말해도 너는 잘 모를 거야’라고 쐐기를 박았다. 경기 초반에 대세는 이미 결정났다. 그리고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빠르게 결판이 났다. 고수들은 금새 안다. 상대의 초식을 조금만 보아도 그 공력이 어느 정도인지. 어차피 대결 구도는 어렵다. 이제 한 수 배운다는 자세로 바꾸자. 너희가 보험을 아느냐! 너희가 보험을 아느냐! 나는 그 고함소리에 무릎을 꿇는다.
3. ‘보험으로’ 고객을 감동시켜야 한다!
노정현씨는 고객이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찾아가 다양한 사람들을 고객으로 섬기는 사람이다. 어쩌면 걸어다니는 PersonWeb이 아닐런지. 고객을 설득하는 일 또한 일종의 인터뷰다. 퍼슨웹과 다른 점이 있다면 듣는 것 보다는 주로 말을 하는 입장이라는 것. 도대체 그는 어떤 방식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걸까?
노: 보험 세일즈를 하다 보면, 이야기 도중에 뭔가 탁, 하고 교감이 오가는 부분이 있어요. 우린 그걸 ‘Open Mind’라고 하죠. 모든 영업이 그렇겠지만, 서로 편한 관계가 되고 상대가 내 얘기를 들어 줄 준비가 되면, 그 싸움은 백전백승입니다. 그러니까 영업하는 데 제일 힘든 건, 도대체가 내 얘기를 들어 줄 자세가 안 된 사람과 만날 때죠.
휠: 어떤 스타일이 가장 힘든가요?
노: 보험 얘기하면 “아, 그래요? 아, 그렇군요! 예, 아, 좋죠!” 이런 사람들이 제일 힘듭니다. 정말 힘듭니다. 감동 없이 듣고 있다는 표시죠.
휠: 혹시 그 감동이라는 게 상대를 제압할 때 느끼는 거 아닙니까?
노: 맞습니다. 기싸움이라고 할 수 있죠.
휠: 말이 설득이지, 싸움이네요. 상대는 설득 당하지 않으려고 버티는 거니까요.
노: 예, 99%가 처음에는 설득 안 당하려고 합니다. 보험은 역시 상품이기 때문에 제가 사람을 만나면 보험 이야기를 하는 건 당연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말이죠. 이때 가장 좋은 건 그 사람을 ‘보험적으로’ 감동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휠: ‘나’라는 인간을 통해서가 아니라, ‘보험’으로 감동을 시킨다고요?
노: 전 때론 형님같이 때론 친구처럼, 혹은 동생처럼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데서 재미를 느낍니다. 막연한 재미라고 하긴 그렇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 말하자면 인맥에 대한 욕심이라고 할 만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휠: 잠깐, 인맥? 사람? 일종의 피라밋을 말하는 겁니까?
노: (웃음) 그런 게 아니고… 산다는 게 뭔지 잘 모르지만, 이렇게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관계 속에서 ‘아, 어느 시대나 이게 사는 거구나’, 짧은 순간이나마 행복할 수 있는 순간이 있습니다. 서로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관계 말이죠. 저는 불특정 다수를 고객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모르는 사람을 찾아 가다 보면, 정말 꼴도 보기 싫은 고객,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고객들이 있습니다.
휠: 원래 보험이라는 게 냉정한 거 아니었습니까? 지금 말씀하신 부분은 왠지 지나치게 낭만적인 느낌을 주는데요?
노: 이렇게 말해볼까요? 80년대 운동은 대부분 점조직 비슷했습니다. 그것도 일종의 다단계 판매죠. 전 최고의 세일즈맨이 예수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을 전하라고 하니까 열두 명이 죽을똥 살똥 복음을 전했잖아요? 진짜, 그건 최고의 상품입니다. 보험이 아니라, 복음 말이죠.(웃음) 그런 것처럼 어떤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분명할 때, 그게 새로운 사상이든 보험이든, 대부분의 사람은 쪽 빨려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보험얘기만 해도 말이죠.
휠: 그 얘기는 물론 종신보험이 질적으로 새로운 상품이라는 말씀이군요?
노: 그렇죠. 이런 시스템은 처음 보거든요. 컴퓨터 갖고 와서 두들기고, 그 사람 수입, 지출 규모 모두 때려 넣어서 그래프로 보여줍니다. 가끔 나도 헷갈리는데(웃음) 처음 보는 사람이 보면 얼마나 헷갈리겠어요? 이게 뭔가, 싶은 거죠. 제가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노트북 들고 나가는 사람 별로 없었어요. 그거 딱 보여 주면 ‘야, 보험 세일즈맨이 노트북을 갖고 다녀?’하면서, 일단 그 자체를 신기하게 여기는 거죠.
어느새 이야기는 다시 보험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제법 선선하게 자신의 숨겨진 노하우를 꺼내 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라는 외장은 보험이 인생을 ‘과학적’으로 설계한다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것일 터. 더이상 보험 판매가 억척과 끈기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노: 예를 들어 당신하고 제가 모르는 사이였잖아요? 친구가 한번 찾아 가 보라고 해서 만납니다. 당신하고 얘기를 하다가, 그게 저희들 얘기로 Ice Breaking이거든요. Ice를 Breaking한다고. 서로가 이제 아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가족에 대한 얘기도 하다가… 어떻게 조질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근데 말하다 보면, 이미 아이스 브레이킹 하는 과정에, 그 연결 고리를 아주 자연스럽게 끌어내요. 만약 당신이 굉장히 시를 좋아한다, 그럼 시에 대한 얘기를 막 하는 거예요. 그 정도는 자신 있거든요. 약간의 지식들은 있으니까.
참고로 말씀드리면, 제가 MBC 퀴즈 아카데미 출신이기 때문에, 잡학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습니다. 그 하나의 축을 매개로 삼아서 조금 얘기를 나누다가, “이제까지 말씀은 참 잘 들었습니다. 어쨌든 제가 오늘 보험 얘기를 하러 이 자리에 왔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한번 말씀을 드리고 당신 반응을 제가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상대가 “아! 그러세요.” 라고 한단 말예요. 그럼 저는 주로, “당신께서 기존에 생각하시던 모든 보험에 대한 선입견은 일단 접어주시고, 학생과 강사의 입장에서 저의 얘기를 굉장히 진지하게 경청을 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라고 하지요. 그럼, “아, 그럼 해 보세요.” 라고 하죠. 그러면 게임 끝이에요. 딱 그렇게 들어가서, 보험을 놓고 얘기하면 게임은 오버됐어요. 거의 진짜 100명중에 95명 정도는 넘어 오죠.
휠: 95명이라… 대단한데요?
노: 제일 좋은 고객이 어떤 고객이냐면요, 몇 번 전화하다 걸려드는 고객이에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내한테 당신을 소개를 해줬어요. 그런데 당신한테 전화하니까 “별로 나 보험에 관심 없어. 미안해요.” 그렇게 끊다가 나중엔 “그럼 하여간 한 번 오세요.” 하잖아요? 그런 사람은 거의 백발백중입니다. 그러니까 조금 거절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보험 가입할 확률이 높아요.
휠: 계속 연락하다 보면 언젠가는 넘어간다, 이건가요?
노: 그러니까 제일 무난한 사람들이 가장 많고, 대부분 ‘오픈 마인드’ 해 놓는데, “예스, 예스.” 하는 사람은 청약이 대부분 안 되죠.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제 고객 중에 관계를 튼 지 한 3년, 만 3년 4개월이 다 되도록, 아직도 쫓아다니는 사람이 있어요.
휠: 3년이라면 포기할 만도 하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나 오래 왜 쫓아다닙니까? 그 시간에 다른 고객을 만나보는 게 낫지 않나요?
노: 쫓아다닌다는 표현은 좀 그런가요? 전화를 하죠. 집요하게.
휠: 어떤 사람인데요?
노: 여행사를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휠: 언젠가는 보험에 들 것 같아서 전화하는 겁니까, 아니면 오기 때문입니까?
노: 둘 다죠 뭐. 그런데 그 사람은 정말 질렸어요.(웃음) 단지 보험만 가입 안하고 있을 뿐이지. 얘기는 다 돼 있거든요. 전 여기 들어와 가지고 한 6개월 정도는 버벅거렸어요. 정말 일도 못하고… 그런데, 어느 한 고개를 딱 넘으니까, 간이 배 밖에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옛날엔 긴장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심지어는 대통령 할아버지라도 걱정 안 해요. 시간이 지나니까 보험에 대해서만큼은 자신이 생기더라고요.
휠: 아까 말한 ‘보험으로 감동시킨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노: 그 얘기를 하고 있었죠? 보험 세일즈를 떠나서 진지하게 드리는 말씀인데, 혹시 부친이나 모친이 생존해 계십니까? 결혼은 하셨구요? 그럼 이렇게 여쭤 보겠습니다. 당신이 불 속에 갇혀 있는데 자기 목숨을 던져서 구하러 올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와이프? 부친이나 모친, 주위에 있는 사람들 그 누구라도.
이 질문이 과연 보험 세일즈를 떠나서 묻는 것일까? 어쨌거나 이런 류의 질문은 사람을 매우 당혹스럽게 만든다. 대부분 이 질문 앞에서 외로움을 느낄테니 말이다.
노: 정말 아무도 구하러 올 사람이 없습니까? 제가 볼 때는 어머님께서는 가능하십니다. 와이프나 아버님은 못 해도, 어머님은 자기 목숨을 던져서 구하려고 하실 겁니다. 보험은 일종의 확률입니다. 누가 어떤 일을 당할 지 모릅니다. 이렇게 다시 여쭤보지요. 당신 어머니께서 위중한 병에 걸렸다. 그런데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집을 파실 수 있습니까? 그것 말고는 돈을 구할 수 없을 때 말입니다.
휠: 네, 저야, 팔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 네. 그렇죠. 그런데 그게 애를 낳은 가정이라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일반 사망 일억 짜리 보험에 가입하고 계셨다고 하면, 집 팔기가 의외로 쉽습니다. 보험은 그런 겁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합니다. 그걸 전제로 가입을 권하는 거죠. 당신이 병에 걸려 어디 입원을 했다, 돌아가셨다 해도 주위 사람들이 해 줄 수 있는 건 몇만 원짜리 부위, 돈 십만 원 부조하는 이상이 안 됩니다. 물론 친구들이 “야, 우리가 가정을 돌봐 줘야 되지 않겠냐”, 뭐 이런 이야기는 할 수 있겠죠. 그렇지만 그게 제대로 될 것 같습니까?
휠: 음, 이해가 됩니다.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정말.
노: 운동권이나 예술가들은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 정말 막가파식 삶을 살고 있어요. 좀 심한 말일지 모르겠네요. 하여간 무관심하고 그런 분위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잖아요? 시민운동 하는 사람들 중에 누가 병이 들어가 다치기라도 해보세요. 맛 간다고요. 집안이 완전히. 안 그래도 얼마 못 받는 돈으로… 운동가 그룹은 복지의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오히려 이름 좀 팔리면 입에 풀칠할 수는 있겠지만. 운동가들은 이름있다고 하더라도 웬만해서는 먹고 살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사실 자기 몸보다도 공적인 이익을 위해서 희생한다는 자부심이 있긴 하겠지만, 마치 독립운동가들이 자기 가정 돌보지 않는 것과 비슷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 거죠.
휠: 최악의 불행한 상황을 전제로 설득을 하는군요. 타인의 불행을 담보로 하는 흥정이라…
노: 저희들은 애가 없는 가정은 별로 건들지 않습니다. 감동을 주기가 힘들거든요. 제가 드는 예는 보통 어머님 이야기입니다.
휠: 보험이 경제적 이익을 가져 준다는 이야기는 설득을 위한 수단입니까? 아니면 본인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겁니까?
노: 영업을 하다 보면 어느새 죽음과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되어 버립니다. 같이 이야기하는 거죠. 아, 물론 보험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분명 도움을 줍니다.
휠: 원래부터 그걸 믿었나요?
노: 아닙니다. 보험회사 다니면서부터죠. 저는 보험을 아주 싫어하는 놈이었습니다. 아주 싫어했습니다. 돈으로 위로와 평안함을 다 커버를 해 주진 못잖아요? 분명히!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돈에 대해서 경직되어 있는 것 또 사실이거든요. 보험 회사가 돈을 버는 건 사실이지만, 그 보험으로 인해서 혜택을 보는 사람들 또한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 사람들이 일 프로라 하더라도 그 일 프로가 자기에겐 백 프로가 될 수 있거든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휠: 예.
평생을 보장한다는 종신보험은, 뒤집어 말하자면, 생의 마감을 조건으로 이루어지는 계약이다. ‘아직 없는 죽음’이 ‘지금 살아 있음’을 보장해주는 것. 어떤 이들은 자살이라는 형태로 가장 확실한 미래를 선택하기도 하지만, 대다수에게 미래는 예측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가능성인 동시에 불안의 진원지다. 국가와 사회의 복지 시스템이 취약하고 불안정할수록 사람들은 사적이고 개별적인 미래 보장책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노정현씨가 말한 것처럼, ‘나’라는 절대 고립의 개인이 사회와 자연의 위험에 직면할 때, 그 어떤 울타리도 나를 지켜줄 수 없음을 확인할 때, 보험은 불안한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다. 그렇지만 과연 우리가 이처럼 사적이고 개별적인 복지 수단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옳은 것인가? 하나의 인간이 태어나서 살아감에 있어, 사회 그 자체가 개별 인간에게 하나의 보험이 되어줄 수는 없는 것일까? 적어도 인류는 한번쯤 그것에 대한 꿈을 꾼 적이 있음을 기억하자.
휠: 종신 보험 상품만 다루시는 겁니까? 다른 것도 다루십니까?
노: 연금 상품도 다룹니다. 연금 상품은 굉장히 즐거운 사업이에요. 연금이라는 건 같이 오래 살아서 받는 거죠. 보험이라는 건 크게 4가지 리스크를 커버를 합니다. 첫째는 죽음에 대한 리스크를 커버하고, 둘째는 병에 대한 리스크를, 셋째는 재해에 대한 리스크를, 넷째는 노후죠. 그런데 노후는 오래 살아서 누리는 거니까 행복한 거죠. 서로가 말입니다. 역시 그때 나한테 들어서 참 노후 대책이 잘 됐다, 이 정도 돈이 나오니까, 그래도 좋네, 하고 말입니다.
휠: 세 개가 고통이나 불행을 대가로 지불되는 거라면 나머지 하나는 불행하지 않았음을 대가로 지불되는 거네요?
노: 그렇죠. 뒤집어 말하면, 무사히 거쳤기 때문에 지불되는 성과급 비슷한 거예요. 보험 세일즈가 약간, 동전의 앞뒷면 같은 그런 모습들이 있습니다.
4. 국내 보험업계의 관행과 병폐
휠: 사람들이 주로 어떤 상품을 많이 듭니까?
노: 그런 건 없습니다. 통계가 나와 있는 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연배가 다 다르기 때문에 가입하는 사람들의 보장 사이즈가 줄어들면 보험료도 작아지죠. 나이가 들어도…
휠: 회사에 따라서 다른 거 아닙니까?
노: 그렇지 않습니다. 대동소이합니다.
휠: 그런데 외국 보험회사가 들어오면 우리나라 회사는 망한다, 그런 말을 많이 하잖아요? 일반적으로 ‘다른 외국 자본은 몰라도, 보험하고 자동차는 꼭 들어왔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내 생각엔 다른 것보다도 서비스의 질 때문이라고 생각되는데…
노: 근데, 푸르덴셜도 마찬가지고 저희 회사도 마찬가지지만, 그러니까 서비스라는 건, 사실 특별한 게 없습니다.
휠: 서비스라는 게 뭐 다른 거겠습니까? 고객들이 기본적으로 믿을 만한 방식으로 접근한다 라거나 그런 게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상대적으로?
노: 그것은 세일즈 과정 속에 있는 거구요.
휠: 아, 그럼 대체로 비슷하다?
노: 대동소이한데… 이런 건 있죠. 외국계 보험회사는 좀 신속, 정확하게 지급을 하죠. 보험금 지급은 좀 빨리 하는 편입니다.
휠: 한국의 보험 회사들에 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요?
노: 어, 이런 게 있죠. 그 푸르덴셜이나 ING도 마찬가지인데 이게 양적으로 비대해지면요 그, 조직의 순수성을 잃어버릴 수가 있죠. 어떤 거냐면, 직업적으로 굉장히 투철하게, 예를 들면 저 같은 사람은 ‘보험금으로 사랑을 전해 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거든요. 특히 자식에 대해서… 저희끼리는 그걸 FC Ship 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Financial Consultant Ship말입니다. 이건 영업적으로 굉장히 많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당신이 고객이 아니시잖아요? 내가 저 사람을 꼭 보장을 해 줘야 된다, 그래야만 내가 좀 잘 수 있겠다, 진짜 저 사람이야말로 보험이 필요한 사람인데, 왜 보험을 가입하고 있지 않을까? 진짜 만약에 어떤 일이 일어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꼭 저 사람은 가입시켜 주어야 된다, 라는 마인드를 저희들은 FC Ship이라고 부릅니다. 그 밑의 베이스는 ‘보험금으로 분명히 사랑을 전해 줄 수 있다.’ 라고 생각을 하는 거구요.
이야기의 가지가 약간 옆으로 뻗었다. 바깥의 입장에서 그 마인드의 진실성 여부를 따지긴 좀 어렵지 않을까? 믿지 못하겠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굳이 그 마음의 실체를 따져볼 필요가 있겠냐는 거다. 공무원이라면 봉사 의식을 자기 소명으로 삼는 게 당연한 것이고 교사라면 나름의 교육 철학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한 것이다. 이른바 직업 윤리니 소명 의식이니 하는 것이 그것이다.
휠: 지금 실적은 어느 정도 되십니까?
노: 작년에 1억 몇 천 정도. 제가 우리 회사에 갖고 간 돈입니다. 보험료 사이즈가 커졌죠. 고객수로 하면 삼백 명 정도. 올해는 아마 좀 더 많아질 거예요. 한 오백 명 정도. 종신 보험 시장이 계속 커지고 있거든요.
휠: 종신 보험은 다른 보험보다 사이즈가 큰 건가요?
노: 그렇게 얘기하기는 좀 힘들구요. 기존의 사람들이 기존의 보험을 해약을 해 버리죠. 뭐 암보험 따로 들고 교통,상해보험 따로 들고 하는 게 아니라, 토탈 일반사망처럼 재해, 암 이런 게 기본적으로 다 되니까. 사람들이 이 쪽으로, 뭐야, 말 갈아 탄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게들 많이 합니다.
휠: ING라이프가 한국에서 지금 차지하는 위치는 어떻습니까?
노: 저희 회사는 외국계 생보사 중에서 제일 규모가 큽니다.
휠: 삼성 생명은 어떤데요? 삼성 생명에 대해서 다른 회사에 있는 사람으로 평가할 때, 어떻게 평가합니까? 본인의 평가도 괜찮고, 주위 사람들의 평가도 괜찮고…
노: 삼성생명이라는 회사 자체에 대한 평가는 솔직히 잘 모르겠구요. 국내 보험 회사들의 전반적 습성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미 왜곡된 구조에, 왜곡된 방법으로. 만들어질 때도 왜곡되게 만들어졌고, 들어온 돈도 왜곡되게 쓰고 있고…
휠: 세일즈 방식 자체도 왜곡되어 있다는 겁니까?
노: 많이 왜곡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위 아줌마 부대를 동원해서 단순한 인맥으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그러니까… 제가 고객에게 보험 상품 가입을 권할 때 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얘기를 하거든요? 그건 굉장히 중요하죠. 간단히 비교를 하면 이런 거예요. 전 시민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회원으로 가입해야 한다고 얘기를 많이 해요. 그런데 그런 부탁을 할 때 당당하게 부탁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그리고 자기들이 시민 운동을, 그래 숲에서 나오니까 숲이 보이는 게, 나무만 보이다가 숲이 보이는 게, 정말로 자기가 시민 운동을 하고 환경 운동을 한다면 그 시간은 굉장히 떳떳한 시간이었잖아요? 보험 세일즈를 할 때, 주위에 있는 사람도 설득해 내지 못하고 어떤 일을, 그러니까 주위에 있는 사람하고 친인척 이런 게 아니라, 자기 주위에 있는 친구들한테 자기의 어떤 세일즈 철학이나, 아니면 세일즈 상품에 대해서 설득도 안 하면서, 먼 데 있는 다른 불특정 다수가 회원이 안 된다고, 왜 회원이 안 될까, 안 될까 하는 건 상당히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휠: 그런데 왜 국내 회사들의 고객 유치가 왜곡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까?
노: 그러니까, 국내사들은 주위의 대부분의 보험설계사 아줌마들을 로테이션 시킵니다. 일정 정도 켑파가 커지면 나가고 또 들어오고 나가고 합니다. 나오고 들어오는 것이 왜곡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나오고 들어오는 그 과정에 있어서 사람들에 대한 혹은 보험 상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설명으로 판매를 하는 게 아니라, 강제로 가입을 시키는 사례가 비교적 많다는 뜻이죠.
휠: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울고불고 해서 가서 매달리고, 너 아니면 내 생계 끝난다는 식으로 매달리고, 뭐 이런 식이다, 이거죠? 물건 자체로 승부하는 게 아니고. 뒤집어 말하면 보험 설계사, 혹은 보험을 팔고 하는 ‘세일즈 맨 자체의 질’ 문제라는 겁니까? 예컨대,노정현씨가 정장을 차려 입고 말쑥한 표정으로 가서 “ING라이프 소속 사람이다. 이런 상품을 내가 너한테 주러 왔다.” 하는 것 하고, 야쿠르트 아줌마처럼 들어와 가지고 하는 거하곤 다르다는 겁니까?
노:지금 삼성 생명이나 국내 보험사들도 종신 보험을 판매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아줌마 조직과는 별도 조직을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삼성 생명이 한 2년 전부터 그런 시스템을 적용을 시키려고 하는데, 그게 기존 질서하고 조화가 잘 될지는 지켜볼 일이라 생각합니다. 조직을 세팅하는 게 상당히 오래 걸리지 않을까… 쉬운 일이 아니죠.
휠: 결국 국내 회사들도 시간이 지나면 외국 회사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될 거라는 말씀인가요?
노: 사람들의 인식이 실제로 바뀌고 있으니깐, 시간이 지나면 그 영업하는 방식도 미국과 비슷해질 겁니다. 이 보험설계사라는 직종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뀐다는 거죠. 무척 우울한 일을 다루는 일이라는 인식도 점차 바꿔야겠지요.
휠: 노정현씨는 일종의 1인 지점 아닙니까?
노: 네. 내 자신이 대리점 주인이니까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거죠. 그렇지만 저희 라이온들, 시니어 라이온이나 제너럴 라이온하고 미팅을 하고 간혹 하죠. 서로가 영업적인 이익을 위해서 상품에 대한 얘기나 영업쪽으로 얻을 수 있는 부분들… 그리고 국내 영업하고 참 다른 것 중의 하나가 저희들은 롤 플레이를 많이 한다는 점입니다.
휠: 롤 플레이라면?
노: 그러니까 저희 회사 같이 일하는 FC들이 있잖아요? 내가 내일 어떤 사람을 만나러 가잖아요. 저 사람을 어떻게 공략할까? 저 사람이 대충 이런 사람인데…
휠: 그러니까 가상으로 역할을 분담해서 실제처럼 해 본다는 말입니까?
노: 그렇죠. 그러니까 롤 플레이죠. 서로 정보를 주는 거죠. 네가 뭐가 잘 됐더라, 뭘 못 했더라… 세일즈 매니저라는 직책이 있거든요. 팀장이 그런 거 총괄하죠. 그런 걸 굉장히 많이 시킵니다. 실패했을 때 분석도, 왜 실패했는지에 대해 분석을 해 내고.
휠: 본인은 보험에 가입하셨나요?
노: 당연히 가입했죠. 제 와이프거랑 다 합치면 한 2십 만원 정도 됩니다.
그의 연봉에 비하면 작은 액수가 아닐까? 그렇지만 감히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기가 어려워 질문은 삼가했다. 어련히 계산했으려고… 적어도 그 정도의 신뢰는 생겼다, 이말이다.
5. 불행을 인정하라, 그러면 위안을 줄게!
휠: 저로서는 사람을 설득하는 핵심이 뭔지 궁금합니다.
노: 제가 기본적으로 사람들에 대해서 목말라 있는 것 같아요.
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한다?
노: 지금은 솔직히 만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웃음) 원래 어떤 사람을 만나면 그게 인연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친한 친구도 일년에 한두 번 만나기 힘든 세상인데, 그렇잖아요?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상당히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휠: 개인적으로 만남 자체가 일차적인가요, 아님 보험이 일차적인가요? 당연히 보험이겠죠?
노: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Ice Breaking 과정에서는 고객이 새디스트가 돼요. 제가 주로 맞는 입장이죠. 그러다 강사와 학생의 입장이 되면 그때는 제가 새디스트가 되어 있어요. 저 쪽에서는 더 때려 주세요, 하는 상태구요.
한 6개월 정도 쫓아다닌 사장님이 계셨어요. 저랑 한 세 번 정도 약속을 했는데, 펑크를 내시더라구요. 창원에, 서울에서 창원까지 내려갔는데, 네 번째 딱 내려갔는데 ― 제주도에도 고객이 있습니다. 고객이 있는 곳이면 다 갑니다.(웃음). 어쨌든 전화를 했죠. 울산에 있대요. 사실 열 받았거든요. 그 사람이 “아, 진짜 미안하다. 우리 집으로 온나.” 하더라고. 됐다, 이건 된다. 근데, 그 사람 재산이 100억이래요.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자기가 죽어도 세금을 50억만 내면 50억 가지고 자기 가족이 살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한참 보험에 대해 설명했는데 그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컴퓨터를 꺼 버렸어요. 끄고, 이랬죠. “사장님 말씀 맞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사장님, 제 고객이 되어 주십시오.” 그러니까 아하하, 웃더라고. 그러면서 “고객이 되어 달라는데 고객이 되어 줘야지 뭐”, 그러더라고요. 기본적으로 저는 돈 많은 사람이 보험에 가입하는 건 참 이해가 안 됩니다. 사실 보험이 필요 없거든요. 돈 많은 사람들에게는, 특히 보장성 보험은 필요가 없습니다. 돈이 100억이 있는 데 뭐가 필요하겠어요? 100억이 있는 데 보험 들어가지고 뭐 십 억 받아 봐야. 최고로 보장되는 거 받아 봐야. 뭐. 한 달에 돈 뭐 몇백만 원씩 내고. 근데 그런 관계에 있어서는 굉장히 이상한 분위기에 좌우되죠.
휠: 그 관계는 여타의 고객과는 다른 관계다?
노: 예를 들면, ‘노정현이 이놈 상당히 재미있는 놈이네. 아새끼 괜찮네’. 뭐 이런 거. ‘보험하다가 말 놈이 아닐 것 같은데.’ 뭐 그런 분위기죠. 그러다 간혹 뭐 “같이 일 안 할래?” 이런 얘기도 있었고.
휠: 그런 계약이 이루어지면 상당히 즐겁겠네요?
노: 즐겁기는 하지만, 진짜 소중한 계약은 그런 건 아니예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제 주위에 가까이 있던 친구들이 2만원 3만원이지만 제 고객이 된 거… 내가 참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장을 해 줄 수 있어서 기뻤고, 다른 하나는 친구들이 내 얘기를 굉장히 진지하게 들어줬다는 점입니다. “짜슥, 됐다. 사인할게. 술이나 한 잔 하자.”, 이러지 않고,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줬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좀 큰 더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었죠. 그런 게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약들이에요.
휠: 우리 사회에서 꼭 보험이 필요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노: 아까 사회운동 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했지만, 그뿐 아니라 대부분의 우리 나라 국민들, 일반 백성들…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꼭 필요하죠. 그 사람들 보면, 뭐 몇만 원 짜리 들어도, 별 이상한 데 막 들고 이런 케이스가 너무 많아요. 실제 주위로부터 잘 이용당하고, 천만 원 받을 수 있다고 속아 가입했지만 실제로는 백만 원밖에 안 나오고. 그런 사람들이 더 필요하죠.
휠: 그 쪽에서 노정현씨는 정직하신 편입니까?
노: 저는 백 프로 정직하죠. 기본적으로 제가 알릴 수 있는 건 다 알립니다.
휠: 노정현씨 이야기를 계속 듣노라니, 당신은 결국 불행을 담보로 때론 죽음이라는 최악의 경우를 담보로 위안과 삶을 흥정하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죽음을 담보로 삶을 흥정한다, 인정하실 수 있나요?
노: 더 좋은 말 없나요? 보험은 사랑입니다. 난 정말 그렇게 믿습니다. 사랑과 위안, 많은 사람들이 보험을 통해 이런 혜택을 누리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