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딸기 – 즐거운 페미니즘

'딸됨의 정치학'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창간된 지 벌써 2년을 넘어선 페미시스트 웹진 <달나라 딸세포>. 신딸기는 <달딸>의 초대 편집장이다. 신딸기라는 그녀의 '이름'은 '새로운 딸들의 이야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이고, 그 '딸됨의 정치학'이란 또 무엇인가? 그리고 왜 그녀들의 페미니즘은 즐거운 것일까?

1. 나, 신딸기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사적인 계기가 뭐였죠?

중학교 3학년 때 마광수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읽었어요. 일단 너무 놀래서,아니 도대체 이런 걸 책이라고 쓴단 말이냐. (웃음)

 

인터뷰 동안 그녀의 웃음소리로 분위기는 시종 즐거웠다. 아무래도 우리가 갖고 있는 문자의 무거움 때문에 그때의 분위기까지 모두 옮기는 것은 힘들 듯 하다.

 

일단 반감?

아니, 그러면서 열심히 읽었어요. 백과사전도 읽고 등등. 뭐랄까. 처음에는 되게 신기하고 뭔가 많이 아는 거 같았는데… 보면 볼수록 내가 원하는 정보는 별로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구요. 그러다가 <제2의 성>이라는 책을 접하게 됐어요. 분명히 야할 거다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되게 멋진 책이더라구요. 그때부터…

 

 

 

계기가 야한 것에서?

그렇다기보다는 어른들이 책을 아무데나 방치해놓다 보니… 그걸 접한 청소년으로서… (웃음)

 

독서체험? 그게 꽤 오래가는데…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알게 된 건 거기부터였겠죠.

그다지 차별을 받고 컸던 거 같지는 않아요, 전 여중, 여고를 나와서. 아휴, 어른들 이야기는 고리타분하겠거니 했고… 몸으로 느낀 건 크지 않았던 같아요. 딸 하나, 아들 하나라 나름대로부모님이 꽤 챙겨주셨고, 경험은 책이나 신문 영화 같은 미디어 영향이 컸죠.

 

뒷풀이에서 들려 준 이야기를 흘리면, 신딸기는 전교조 세대로 고등학교 시절부터 학생회 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조건부 약속으로 대입 공부에 전념, 서울로 진학했다. 그렇지만 민족해방파가 주류였던 학과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해 겉돈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던 여학생들과 만났다. 그때 시작된 동행이 아직도 계속되고있다.

 

졸업 후에 페미니즘 말고 다른 길을 생각한 적이 있어요?

뭔가 졸업하고 다른 길로 가는 선배들을 보면서, 저건 아니다, 라고 생각했어요. 각개격파잖아요. 고립되니까 그런 상황에서 멋진 생각을 갖고 있어도, 결국 파편화 되면 상황에 파묻히기 마련이죠. 저렇게 되지 말자 했죠.

 

인터뷰 당시만 해도 신딸기는 직장 여성이었다. 지금은? 보다 멋진 걸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다른 직장도 다녔나요?

많이 다녔죠. 여기 저기. 직장은 생계수단 정도로 생각해요. 지금 같은 경우는 생계수단 정도라고 할 수는 없는데, 웹에서 계속 해 보고 싶었던 것들을 하고 있는 셈이죠.

 

페미니스트로서 직접 부딪혀 본 직장생활이 조용하진 않았을텐데?

페미니스트로서라기보다는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사원이 느꼈을 법한 것들이죠. 첫 직장 에서는 장난 아니었어요. 합리라는 게 아예 없었어요. 큰 출판사였는데… 여자가 여덟, 남자가 두 명 있었는데 여자들은 소위 명문대 출신이었고, 남자들은 아니었어요. 팀을 짜는데, 남자들이 군대 갔다 왔다구 팀장을 줬어요. 근데 이 사람들이 일을 안 하는 거예요. 입사동기 들인데다 나이도 사실 비슷비슷 했는데… 더러운 꼴이다, 이런 생각을 했죠. 그때 여자들이 다 나왔는데… 한 세 명 정도가 똑똑한 체 한다는 이유로 짤렸고, 그 이후에 차례차례 다 나왔죠.

 

그 다음 직장은 어땠어요?

그 다음부터는 작더라도 믿을 만한 곳으로 갔죠. 선배가 있는 회사로 갔어요. 스카웃을 받아서 보수나 복지를 보고 움직였죠. 작고 합리적인 곳에 다녔어요. 얘기하면 받아들이거나 받아 들이려고 노력하는 회사였어요. 다니면서 생리휴가 다 만들어서 다녔어요.

 

동료들 호응은 좋았나요?

여사원들이 말도 잘 통하고 단결도 잘 되는 편이었죠. 작은 회사일수록 그런 게 잘 되더라구요.

 

 

 

대기업은 힘든가요?

거기선 신경 쓸 필요 없죠. 이미 다 돼 있으니까.

 

대학 다닐 때랑 회사 다닐 때랑 차이나 변화가 있지 않아요?

많죠. 밤마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 이런 거? (웃음)

 

페미니스트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걸까요?

그런 거 맨날 머리 속에 항상 넣고 사나요? 실생활이 꽤 다르구나, 세상 참 어렵다,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도 많다, 이런 거 굉장히 많이 느껴요.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그렇겠지만, 근대적인 건 남성적이다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저도 그런 편이고. 나는 포스트 모더니스트다… 이런 거.

근데 사회 겪으면서 사람들이 근대적이기만 해도 얼마나 편할까 이런 생각을 하죠.

 

일단 제도 자체도 전근대적이고 사람들 생각도 비합리적인 구석이 많으니까, 그 위에서 멋진 얘기 할 수 있는 구조가 절대 아니거든요. 근대적인 틀만 만들어져도 살기 편하겠다, 이런 생각하는 거죠. 옛날에는 당위랄지 그런 것들에 의해서 몸을 움직였다면 사회 생활하면서는 내가 불편해서 못살겠다, 힘들다, 이런 생각 때문에 움직이는 거 같아요.

 

관념적으로는 포스트 모던한 사고를 하더라도 실천에서는 근대적인 요구를 하게 된다는 거죠?

멋진 얘기를 하는 친구들 보면 가끔 씩 웃어요. 그래, 니네 나라에서는 그게 되는 모양이지?

 

서양 페미니스트?

예. 유럽 쪽 이론가들.

2. 우리, 영페미니스트

 

<달딸>이 이론 중심적이라는 비판도 있잖아요?

(웃음) 그게 좀 웃기는데. 우린 나름대로 아니려고 애를 많이 쓰거든요? 신변잡기도 많이 다루잖아요. 어느 쪽에서는 너네 너무 가볍지 않냐고 비판을 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니네 아직도 학삐리 티를 못 벗었냐, 이게 뭐냐 아직도, 그런 사람도 있어요. 뭐가 더 좋다는 생각은 안 하는데, 사이버 페미니즘 같이 새롭게 소개할 만한 걸 번역하는 작업은 꾸준히 하려고 해요. 글을 어렵게 쓴다거나 잘난 척 하려고 한다거나 이런 건 곤란하다고 생각해요.

 

재미를 찾는다?

첫 번째가 재밌어야 된다는 거죠. 우리, 인간 개조 많이 했어요, 학생일 땐 이론적일 수밖에 없었죠. 엄청 진지하고 열라 무거운 글만 쓰다가, 재밌으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좋아하는구나, 그런 걸 깨달았죠. 다들 재밌어지려고 노력하죠.

 

요즘 업데이트가 늦던데… 직장 생활때문에?

최근에 굉장히 어려운 주제를 했더니 힘이 빠져서. <달나라 탐사>라고 아무도 안 보는… (웃음) 우리끼리만 진지한 걸 했더니…  여태 웹에서 일어났던 사이버 페미니즘적 행위들, 우리가 해 왔던 것들. 앞으로 어떻게 갈 것인가를 돌이켜볼려고 했어요. 달딸 2주년이기도 했고…

 

게시판 때문에 그런 주제가 잡혔던 게 아닌가요?

게시판 때문이기도 했지만 2주년 특집이라는 의미가 더 컸죠.

군가산점 문제가 쟁점일 때도 그렇고, 게시판 도배가 종종 일어나는데…

아직도 그래요.

 

주로 남자?

(정색을 하며) 그냥 남자들이에요. ‘주로’가 아니라 다 남자예요. 애들이에요, 남자애들. 

 

“게시판이 열린 98년 7월부터 99년 12월까지 2년 5개월동안의 글이 99년 12월부터 2000년 2월까지 두 달동안 글의 두배 밖에 되지 않는다… 온라인으로 휭행하는 협박성, 성폭력성 리플이 오토메일러로 그것도 익명의 게시자 대신 관리자의 아이디로 게시판에 글쓴 여자친구에게 날라가서는, 관리자였던 딸기는 해명을 바라는 조심스러운 편지를 받아야 했고, 우리는 오토메일러 기능을 없애버리기로 했다. 끔찍한 두달이었다.”

 

진정될 기미는 없나요?

자기들도 피곤하면 좀 쉬었다 하곤 그래요. 어디 가서 힘 좀 비축했다가 ‘야, 하자’ 그러면 쫙 몰려와서 하고. 지금은 항상 있는 애들이 계속 있는 거구요. 보통은 돌아가면서 해요. 한번은 <딴지 독투>(딴지일보 독자투고)에 노는 애들, 얼마 후에는 <대자보> 애들 한번 놀구 가고. 여기저기서… 지금은 <싸우>에서 놀던 애들이 오던데… 덩달아 놀러 오는 애들도 있어요. 사실은 별 관심 없어요.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지만, 그거 폭력 아닌가요?

스토킹이죠. 자기는 도배하고 난리를 하면서 자기 아이디를 게시판에서 누가 도용한다고 잡아달라고 난리치고 그러는 걸요.

 

‘우리’끼리 노는 공간을 원하나요?

처음에는 게시판이 소통 공간이었어요. 토론의 공간이었죠. 그건 옛날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갑자기 인터넷 환경이 많이 변했거든요. 저희가 늙어서 그런 건지, 대응을 잘 못해서 그런지… 군 가산점 위헌 판결 나기 전까지만 해도 왔다 가고. 왔다 가고 그러더니… 진지하게 대답 해주면 남아서 친구가 되는 사람들도 있는데. 많이 바뀐 거 같아요. 그렇지만 진짜 안 되는 애들은 안 돼요. ]

 

 

 

달딸 멤버 중에 남자도 있나요?

생물학적 남자는 있어요.

 

무슨 소리예요?

몸은 남잔데 정신적으로는 남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하나 있어요. 우리도 남자라고 생각 안 하구요. 언니, 언니 그래요.

 

“얼핏 잠에서 깨어보니 어느 남자가 내 위에서 나를 덮치고 있었다. 무척 놀라 어떻게 해야할까 당황해하면서도 ‘난 남자니까 별 상관없을 거야’ 라는 생각을 하곤 뭔가 심한 욕을 해주어야지 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내 몸으로 삽입이 되어서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어버렸다. 그 순간은 나에게 또 하나의 성기가 있었다는 것을 지각한 것과 마치 칼에 찔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 선명하다”

 

 

게시판에서 시달리는 게 유명세라고 생각하지는 않나요?

그러고 싶지 않은데… 우리끼리 놀아야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어요. 도배 할려면 해라, 그렇게 나두고 싶은 생각도 있긴 하지만…

 

종종 여성 잡지나 웹진에 들어와서 ‘너희들끼리 잔치 벌리냐’며 끌어내려는 사람들한테, 얘기도 제대로 안 들어주면서 우리끼리 노는 거 방해나 하지 마라고 대꾸하는 걸 보는데, 소통하려는 의지는 있는 건가요?

있으니까 아직도 그러고 있겠죠. 근데 버릴 부분은 버려야 하지 않나 싶어요. 괜찮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아는데, 되면 되는 거고 안되면 안되는 거죠, 뭐. 지워봤는데 소용도 없고… 사실 우리가 게시판 지우는 것도 가만 보면 걔들이 우리 노동력을 폭력적으로 착취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못 알아들으면 걔들이 답답한 거지 우리가 답답하겠어요? 사실 우리도 답답하고 상처받기도 하는데… 우리가 좀 마음을 접으면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요.

 

<달딸>에 붙은 영(young)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은?

우리가 붙인 이름이에요. 세대가 다르다는 걸 전제로 영페미니스트고 던지고 나갔어요. 서로 흩어져 있는 페미니스트 그룹들이 합의가 돼 있던 건 아닌데 다들 비슷하게 내 걸고 나왔죠. 그런데… 이걸 물으신 거 맞나요?

 

늙었다는 표현을 쓰니까 물어봤어요.

네에. 인터넷 환경이 많이 변했다는 거죠. 그때는 10대들이 쓸 수 있을 때가 아니였거든요. 예의 없는 사람들이 썼어도 감히 예의 없게 쓰지 못하는 분위기였는데. 중고생들이 많이 쓰면서 달라졌어요. 너무 안일하게 대응했던 건 아닐까 싶어요.

 

고등학생들이나 어린 세대들과의 연대도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이반의 경우에는 워낙 소수라 힘을 합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잖아요. 10대 이반 홈페이지도 많고 서로 연대하고 있지만, 페미니즘 경우 여고생들이 와서 친해지기도 하는데 어떤 모임이 생기거나 하는 건 좀 힘든 거 같아요. 페미니즘이 중고생 때는 배부른 소리 같기도 하고. 특히 여중 여고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적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그런 모임을 만들 필요야…

 

이반은 일반(一般)의 반대의미로 사용하는, 동성애자를 일컫는 말이다.

3. 달나라에 가볼래?

 

자유주의 페미니즘? 처음 던진 질문을 다시 던지는 건데, 신딸기의 페미니즘은 뭐죠?

저희가 어디에 가깝냐는 질문인가요? 처음에는 맑스주의적 페미니즘이었다고 할 수 있죠.

 

그러고 보면 처음에 YH 여공 기사도 있었죠?

처음에 모였을 때 우리의 공통된 기반은 사회주의적 페미니즘이었으니까… 다들 안 믿더군요. (웃음)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한 부분인데… 4, 5호 정도까지는 그 쪽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긴 했는데, 역시 쉽지 않으니까, 건방 안 떨려고 하다보니까 잠시 멈추고 있는 것 같아요.

 

“‘역사 속의 여성’의 첫 주제로 ‘YH’여공을 택한 것을 난감해 한다. 98년에 79년의 사람들에 대하여 말해야 하는 두려움은 내가 무심히 흘려 들은 나이 든 사람들의 충고들 때문에 커지고, 내가 그녀들에 대하여 갖는 생각들이 너무 현대적이거나, 혹은 내가 너무 구시대적일까 하여 더 커진다. 사실 신문기사를 찾아 읽을 때, 나의 포부는 참으로 원대하였다. 이들의 삶이 어쩜 지금과 이리도 닮았을까? 내가 하려던 말들은 어쩌면 가장 시대에 부합하면서도 감동을 자아내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79년 오일파동으로 들썩이던 우리나라를 보고 질질 끌려나오는 여공의 사진을 보고 숨져버린 여공의 사진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나를 벗어나질 못한다.” <달딸> 0호, [YH 여공 이야기]에서

 

그렇다면 지금은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의 페미니즘 운동이라고 보아야 할까요?

달딸만으로는 그렇게 말하기 힘들지만. 처음부터 사이버페미니즘을 갖고 웹으로 들어갔던 건 아니에요. 크게 생각하지 않고 잡지로 할 걸 웹에다 올린다, 이런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우리가 잡지를 만들 때까지 흩어지지 말자, 때를 기다리자는 거였어요. 그런데 하자마자 사람들 반응이 오고 92, 93년 미국에서 일어났던 일이 우리랑 굉장히 유사하더라구요. 그런 경험에서 나오게 된 거죠. 앞으로 진척이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문제들을 생각했던 것이기도 하구요.

 

“‘사이버’와 ‘페미니즘’이라는 두 단어의 만남은 페미니즘과 전자미디어의 역사상 결정적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형성하였다. 각각의 단어는 다른 쪽의 의미를 변화시킨다. ‘페미니즘’ (더욱 적절하게는 ‘페미니즘들’)은 여성의 자유와 정의를 위한 몰역사적이고 초국적인 운동이며, 그것은 지역, 국가, 국제 그룹에 참가하는 여성 활동가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통상 생각되어져 왔다. 그것은 여성 차별적 사회구조와 성역할로부터 비롯되는 물질적, 정치적, 정서적, 성적, 심리적 조건들에 초점을 둔다. ‘사이버’라는 말이 붙음으로써, (이말은 지휘, 통제, 조종 -특히 자동 시스템에서-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페미니즘을 요동치는 새로운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가능성들의 위치로 만들수 있다.” <달딸> 4호, [사이버페미니즘에 페미니즘은 어디 있는가]에서

 

 

 

앞으로 하려는 건 뭐죠?

저요? 나름대로 바르게, 정치적으로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요. 계몽적인 건 안 할려구요.

 

신딸기는 구성애가 못마땅하다. 아마도 계몽이 체제순응적이라는, 다시 말해 체제 밖을 사고하지 못하도록 길들인다는 의미 때문 아닐까?

 

 

“정말이지, 나는 구성애 아줌마의 강연을 듣다가 좀 짜증이 났어요. 이거 초등학교 때부터 들어오던 그 순결교육 아니야?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여학생들에겐 어쩌면 조금 더 ‘진보된 순결 교육’ 이상은 아닐 것이에요… 애가 불쌍해지는 게 문제라면 안전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피임법을 가르쳐 주든지 하지, 나이 열 여섯에 별 짓을 다하면서 섹스를 하는 춘향전과 고려 가요를 배우는 우리 고교생에게 무조건 ‘순결’하라는 것은 우스운 일 아니었던가요?” <달딸> 3호, [구성애를 좋아하시나요?]에서

 

하지만 달딸이 남자들에게 미친 계몽적인 효과는 있었잖아요. 여자의 몸이나 욕망에 대해서 뭘 알겠어요?

그런데 저희는 거기에 별 관심 없어요. 가끔 이런 질문하는 남자애들이 있어요. 여자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어요, 저희들이 알기 싶게 쉽게 글을 써 주세요… 우린 비웃죠. 딴 데 가서 보라고. 계몽적인 건 안 할려구요. 기본적으로 여자를 위해서 만들어진 거고, 여자들이 모를 만한 거. 호호아줌마가 그렇거든요. 그랬더니 남자들도 무척 좋아하더라구요. 그 정도로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은 들더군요.

 

“달딸에서 섹스나 욕망이 주제가 아니더라도 그에 대해 언급하게 되었다면, 그 이유는 대부분이 ‘사적인 것이 정치적’ 이라는 구호에서 온 것이 많다. 사생활 중에서도 가장 ‘사적’인 것이 바로 그것 아니겠는가. [호호 아줌마에게 물어보세요] 코너는 특히 그러하다. 이 코너에서는 의료 정보나 섹스 클리닉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여성의 몸’에 관한 권력 관계를 보여주고, 그 권력을 여성에게로 돌리려는 사회학적이고 정치적인 의도에서 쓰여진 글이었다. 그 정치적 구호를 의료 정보라는 당의를 입혀 독자들에게 내 놓았던 셈이다.” <달딸> 12호, [섹시 달딸의 정체를 밝힌다] 중에서  

 

달딸은 스스럼없이 성 이야기를 다루려고 하는데 본인은 색에 대해서 거부감은 없는 겁니까?

아뇨. 그런 척 하는 거죠. 전혀 안 그렇다는 건 거짓말이고, 안 그럴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이 대목에서 신딸기는 자기 어릴 적 이야기를 했다. 구구절절 옮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무언가 대단히 섬뜩한 이야기라거나 한없이 슬픈 이야기라는 의미가 아니다. 누구나 한 번쯤 가져봄직한 개인의 역사. 내가 흥미로웠던 건, 그녀가 자신의 과거를 말하는 데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끊임없이 해석되어야 할 자신의 역사. 이른바 Herstory. 신딸기는 매우 진지한 자세로 그녀 자신의 삶을 하나의 텍스트로 대하고 있었다. <달딸> 4호의 [몸 이야기]의 편집 주석도 아마 그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여성문제 관심을 가지게 되고, <또문>(또 하나의 문화)의 ‘새로 쓰는 성이야기’를 읽으면서 몸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때 여성 성기의 모양을 그림으로나마, 처음 봤던 것 같고… 나의 성기를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그때였다. 거울을 가지고 보기 시작했다. 왠지 낯설고, 그래서 처음에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 잠시 보고. 거울을 치우고, 그랬다… 여기에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있다. 자신의 몸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쉬쉬하고 남몰래 해야 한다고 길러졌던 여성들이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몸에 대해 당당하게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목소리들이다.”

 

 

 

자신이 섹시하다는 말을 들으면?

들어본 적이 없는데 (웃음)

 

만약 들으면 어떨까요?

물론 안 들어보진 않았겠죠? (다시 웃음) 사람에 따라 다르겠죠.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를테고… 전 화를 버럭버럭 내는 편이거든요. 달딸 하면서 웃기도 잘하고 그러는데, 모르는 남자들 앞에선 화 잘내는 편이죠. 설득이 되는 사람은 설득도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무시하기도 하고. 예를 들어서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술이 잔뜩 취한 애가 옆에 와서 너 섹시한데, 그러면 가만히 못있는 거죠.

 

페미니스트는 피해의식 덩어리다는 힐난도 있는데…

그건 맞아요. 피해의식 덩어리죠. 피해받은 게 없으면 이렇게 되겠어요. 그러면 미안해할 줄 알아야지…

 

요즘 여성성이니 아줌마 담론도 유행하는데, 그런 것하고는 거리가 멀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건 말하는 사람도 따로 있고. 딸됨이라는 건 여성을 마이너리티라고 하면 그 안에서도 더 소수인 거죠.

 

엄마되기를 거부한다? 그거 일종의 피터팬 증후군 아닌가요?

피터팬은 낙원에서 잘 먹고 잘 살잖아요. 우린 생계 문제도 급하고… 아이엠에프 이후에 경제적인 문제로 결혼한 사람이 꽤 많다고 하더라구요. 조건 좀 되면 맞선 시장에 뛰어들어서…

 

화살을 돌려봤다. 인터뷰어 중의 한 명이 ‘아줌마’였던 것.

아줌마는 어떨까?

 

퍼슨웹 여>여자가 혼자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사회적인 규범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사는 건 꽤 부러운 일인 거 같아요. 함께 여성 공동체를 꿈꿀 수 있었다면 저도 미혼을 선택할 수도 있는 거죠. 일단 결혼할 만한 사람을 만났으니까 했던 거고, 따로 아줌마되기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죠. 하지만 여성공동체라, 소수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긴 한 거 같아요. 근데 저 이제 아줌마 된 지 육개월 밖에 안됐어요.

신딸기> 사실 애기도 없잖아요? 그럼 무슨… 아줌마라고 부르면 안되는 거잖아요?

 

퍼슨웹 여> 자꾸 불러보려고 해요. 나 스스로 정체성을 느껴보고 싶으니까. 이제서야 고민하는 거죠. 서로 다른 조건에 처해 있으니까 고민이 좀 다르긴 한데. 여성주의 담론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다양성을 인정해달라는 거 아닐까요. 여자에 대해 획일적인 걸 균열내고…

여성들도 남자들과 경쟁을 하기도 하고, 남녀를 떠나서 시스템 내부에서 경쟁의 주체로서 살아가기도 하잖아요. 예컨대 신딸기 씨는 그 경쟁의 구조, 그러니까 아예 시스템 자체를 대상으로 삼겠다는 건데…

예, 그렇죠. 우리 윗세대 여성운동 하시는 분들은 그런 부분에 힘을 쓰고 계신 거죠. 정치라든가 근대적인 활동,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런 부분들이 확보된 이후에 우리들이 말하는 것들이 있겠죠. 그런 거 옛날에는 부정적인 느낌들을 갖고 있었고 제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고, 제도에 구멍을 내겠다, 그랬는데…

 

지금 와서는 그나마 우리가 어느 정도 살 수 있는 건 그분들이 해 놓은 것들 위에서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부분은 계속 진행되어야 하는 거고, 어떤 부분에선 그분들과 손을 잡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그 흐름에 몰려다닐 필요는 없다, 이런 거죠. 그렇지 않은 부분들, 수직적 남성 질서에서 벗어난 여성적 질서, 딱히 무어라 말하기는 힘들지만 타자로서의 여성적 질서를 생각하고 있는 거죠. 아직 명확히 합의된 건 없다고 하더라도.

 

사실 이 질문은, 성 구분 없이,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그 중심에 놓여 있는 단어, ‘남성’을 살짝 ‘시스템’이라고 바꿔 놓으면 어떨까. 그런 의미에서 <달딸>이 지향하는 것은 일종의 소수자 운동인 셈이다.

4. 딸됨의 정치학

 

여성성이란 게 결국 관계의 문제일텐데, 혹시 상대항을 아예 배제하는 건 아닌가요?

아니, 옛날에는 남자와 ‘남자 아닌 것’만이 있었잖아요. 지금 우린 그 옆에 여자라는 항을 만들고 있는 거니까, 그런 건 아니죠. 예를 들어서 딸들이 스스로를 여자라고 느끼는 건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고 봐요. 오히려 여자라는 항의 부재가 문제겠죠.

 

“한국 사회라는 커다란 가정은 우리와 같은 젊은 여성을 그저 ‘딸아이’들로 여긴다는 것을 생각했다. 이러한 것이 현실, 이라는 것을 우리는 인정했다. 그러나 딸은 어머니의 딸이고, 또한 그 딸의 어머니이다. 남성의 신은 그 자신을 본떠 인간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무릇 모든 인간은 어머니가 배가 아파 낳는다. 우리는 독립된 주체가 아니라 예속적인 존재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의 딸아이 말고 우리의 ‘딸’을 낳자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딸됨’에 대해 상상하기 시작했다.” <딸됨의 정치학> 에서

 

좀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 여성적인 것을 긍정할 수 있도록 남자들의 인식 변화도 있어야 할텐데…

그래야 하지만 굳이 우리가 그런 걸 하진 않겠다는 거죠. 피곤하잖아요. 우리 일 하기도 바쁜데, 그리고 재미없는 일이잖아요. 토론을 하겠다고 하면 피하진 않지만. 우리가 소화할 수 있는 데까지만 얘기할 뿐이에요. 뭔가 대안을 내놓거나 무엇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건 기만적이라고 생각하니까… 달딸이 엘리트적이다라고 비판받기도 하지만 달딸은 우리가 책임질 수 있는 부분까지만 이야기하겠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공장에 다니는 친구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는 건 당연하고, 그 친구들이 어떻고 어떻게 해야한다고 이야기하는 건 기만이라고 생각해요. 오랫동안 그 부분에 대해서 많이 싸웠고 걸림돌도 됐고… 그 친구들에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그 친구들은 이렇더라는 정도까지만 이야기할 뿐이지… 후원이라는 코너가 있는데 같이 연대하고 싶지만 함부로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다 보니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만큼만 하자, 안 하지는 말자, 그런 생각에서 하게 된 거예요.

 

 

 

솔직하려고 노력한다는 뜻인가요?

얼마 전에 최보은 씨를 달딸 미팅에서 만났어요. 되게 재밌더라구요. 여자애들이 다섯 명 정도 최보은씨 집에 가서 술 마시면서 놀았어요. 진짜 재미있으세요. 사진 찍는다고 하면 포즈도 잘 취해주시고. 최고예요. 심지어는 진실게임해서 모든 걸 다 뱉어놓게 하고는 혼자 주무시더라구요.

 

최보은, 꽤 유명한 아줌마다. 케이블 TV 편집장이고, <씨네 21>에서 [아줌마, 극장가다]라는 꽤 과격한 영화 칼럼을 쓰기도 한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는 <한겨레 21>에서 김규항과 [쾌도난담]을 담당했었다.

 

최보은 씨 같은 경우는?

시스템 안에 들어가서 높이 높이 올라가겠다는 거죠. 자기가 도중에 쓰러지더라도 누군가 자기 보다 위에 올라가는 여자의 발판도 되주겠다고 하셨어요. 달딸이 그러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뭐… 대충 즐겁게 살다가 죽겠다! (웃음) 뭔가 성공하겠다, 이런 생각은 없죠. 하지만 그런 분들이 필요하다는 걸 부정할 필요는 없겠죠.

 

놀다 죽자?

제 말이 너무 과격한가요?

 

아니, 반은 동조하는데, 불안감은 없어요?

혼자 그러면 폐인 되죠. 여러 사람이 생각하면 안 그런 거 같아요. 더 즐거운 걸 찾게 되고. 처음엔 되게 진지한 사람들 모임이라고 했잖아요. 맨날 만나면 세미나 하고 사투하고 그랬어요. 그러다 점점 놀 수 있는 거, 몸을 많이 쓸 수 있는 걸 많이 만들어 냈어요. 공부도 하고 놀기도 같이 하고. 이제 논다는 게 어떤 건지 알겠다… 한 일년 됐나요. 즐겁게 살기 연습하고… 작년에는 코스프레도 한 번 해봤어요. 잉? 몰라요? 양놈들 할로인 파티때 하는 거 있잖아요. 밖에 나가서는 못하고. 누구네 집에서. 그래도 엄청 쪽팔렸어요.

 

뭐, 분장? 혹시 딸기소녀?

아니, 그렇게 비싼 건 못하죠. 한다는 게 겨우 성냥팔이 소녀. (웃음) 스카프 뒤집어 쓰고 진짜 불쌍하게 분장했어요. 저는 ‘마녀 배달부 키키’ 했어요… 까만 원피스에 빗자루 들고… 어떤 애는 스머프 했는데. 사진도 찍었어요. 처음이라 쑥스러워서 잘 못했는데 다음에는 잘 하겠죠?

 

 

 

그렇다면 달딸이 지향하는 목표는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딸됨의 정치학>에 썼는데… 우린 강령도 만들 뻔 했어요. 그거 다시 보면서 저희도 놀란답니다. 우리가 이렇게 절절했단 말인가! (웃음)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는 사실이 우리의 운동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기 언어를 가지지 못한 타자, 중심에서 배제된 주변부, 주류를 거스르는 소수자의 대표라는 의미에서 ‘여성’은 우리 운동이 시작하는 자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권력에 의한 배제와 억압이라는 동일한 공간 속의 모든 타자와 주변부, 소수자에 주목한다… 피지배 집단 하나 하나가 각자의 생존 공간을 확보하고 각자의 서사를 작성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대안적 미래의 구상이 가능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딸됨의 정치학>에서

 

물론 <또 하나의 문화>에서 말하는 것처럼 대안적인 가족의 형태가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거기에는 우선 멋진 남편을 만나고 나 자신도 그에 못지 않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걸 전제 조건으로 하거든요. 우린 그런 걸 원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거기서 반쯤 내려왔다고 할까요? 물론 그분들 없으면 우리 나름의 생각도 못했을 수 있겠지만…

 

가정과는 다른, 대안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계획이 있나요?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작은 건물이라도 사서 같이 살수는 있잖아요. 구체적인 상상들은 조금씩 하고 있는데, 워낙 돈이 없으니까.(웃음) 아직은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결혼을 하는 여자들도 꽤 있잖아요? 독립해서 살면 그런 생각들은 많이 줄어들겠죠. 자립할 능력이 있으면 굳이 결혼하지 않고 동거를 하면 되는 거니까.

 

“언제부터인지 자신이 가진 인생에 대한 두려움과 소심함, 비관적 전망을 의식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런 감정들이 어릴 적 부모로부터 받아야 했던 애정과 안정감의 결핍으로부터 기인한다는 구절을 어느 책에선가 읽고 가슴이 아팠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의 오빠가 가진 빛나는 자기 확신과 인생에 대한 낙관적 태도를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서로 이마를 밟고 올라서는 형제들 대신에, 한 줄로 손잡은 당신의 자매들, 당신의 딸들이 있다고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서로 이해하는 일이 힘이 되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당신과 함께 배우고 싶다고도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앉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에게 손을 내밀기 위해.” <딸됨의 정치학>에서 

 

다른 얘기지만, 전업주부의 경우에는 몸 파는 만큼 월급을 받아야하는 거 아닌가요? 육체 노동하고 밤에 서비스하니까 겨우 먹고 사는 걸로는 안되죠. 그래서 결혼이란 게 노동 많이 하고 월급 조금 받는 직업이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 전업주부한테 월급 줘야죠… 이렇게 말하면 너무 심한 말인가요?

 

남자가 경제적 능력을 갖고 있다면야, 뭐…

그러니까 남자도 나눠서 하면 되는 거죠. 밤에도 여자가 하라는 대로 남자가 서비스 해 주면 되는 거고… 동거라고 한다면 그런 점에서 해결 가능성이 있지만, 가족이라고 하면 언제나 두리뭉실해지면서 착한 사람이 항상 칼을 맞는 거 아닌가요?

 

‘결혼 안 한다’ 이런 생각에는,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들이 있겠죠. 어떤 엄마들 보면 결혼 생활 유지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너만 시집가면 이혼한다’고 말하고, 다시 딸은, ‘왜 엄마는 그러면서 나한테는 시집가라고 하냐’고 되묻잖아요? 그러면 ‘너는 이렇게 되지 않을 거다. 너 시집가기 전에 이혼하면 네가 고생한다, 너만 시집가면 너도 인생 피고 나도 인생 핀다…’ 이런 이율배반들이 딸로서의 정체성을 느끼게 되는 중요한 계기라고 할 수 있죠.

 

“엄마와 딸.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배반했고 나는 엄마를 배반했다. 그리고 엄마의 엄마와 나는 놀랄 만치 닮았다. 근대를 거부하고 나온 포스트모던이 어떤 지점에서는 정확히 중세와 들어맞는다는 얘기. 외할머니와 어머니와 나의 관계 역시 이러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계의 역사를 복원하고 싶었다. 애초에 복원할 그 무언가가 있었을까에 별로 자신은 없지만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방식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굳이 아버지쪽의 역사가 아니라 왜 어머니쪽의 역사였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내 경험의 특수성 때문일 수도 있겠고, 내가 딸이라서 어머니와 외할머니에게서 더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혹은 어쩌면 어머니 쪽이 더 훌륭하고 오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달딸> 8호, [나의 엄마와 엄마의 엄마]에서

5. 달나라에서 딸들은 어떻게 살까?

 

달딸은 순전히 모임 회원들의 회비를 걷어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말 그대로 함께 모여 놀 수 있는 공간인 셈이다.

 

그런 식으로 모여 놀다 보면 웹진 운영이 좀 어려울 수도 있을 텐데?

힘드니까 업데이트가 늦잖아요. 노느라고. (웃음)

돈벌려고 생각하면 다 일이 되더라구요. 얼마만큼 착취를 당해줘야 하니까.

 

독자반응은 어떻게 알죠?

게시판, 메일 또는 후배들 만나서 이야기 듣는 걸로 알 수 있죠.

 

독자층은?

아, 절대 몰라요.

 

메일링 리스트도 운영하잖아요?

메일링 리스트는 한 4백 명 정도? 시작한 지는 1년 반 정도됐어요.

 

목표는?

저희는 그런 목표 없어요.

 

봐주면 좋고, 안 봐줘도 상관없다?

아니, 어떤 사람들은 안 봐줬으면 좋겠는데. (웃음)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그걸 좌지우지할 정도로 기대치가 높아지면 곤란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너무 많은 사람이 와서 봐 줘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해요. 상업적이지도 않으니까.

 

웹 디자인은 어떻게 하죠?

처음에는 제가 다 했구요. 그래서 좀 후졌죠. 고생도 많이 하고…

 

아마추어라지만 상당히 인상적이던데…

아니 처음에 그랬다는 거고. 지금은 스타일시트 쓰니까 자기 페이지는 자기가 다 만들어요. 메인 디자인 정도만 돌아가면서 기획 맡은 사람이 하죠. 기본적으로 자기 글은 자기가 책임을 지고 만들어요.

 

 

 

편집장은 어떻게 뽑아요?

일년에 한 번씩 하는데, 얼굴마담이에요. 인터뷰를 할 때 나가죠. 회의 주재를 하고, 출석 체크하고. 대부분 자기가 어떤 일로 몇 달 쉬었다던가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있으면 이번엔 내가 편집장 해야지 이런 식이죠.

 

책을 만들 생각은 없어요?

아니 있어요. 잡지를 만들 생각은 없지만요… 사실 예전에 제안이 있었어요. <스키조> 친구들을 알고 있었는데, 한번 잡지 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었죠. 그런데 거절을 했어요. 여력이 없어서… (웃음) 하지만 책을 낼 생각은 있어요. 달딸 총서! 사이버 페미니즘 번역들이라든가 코너 모음이라든가… 돈도 생기고 여유도 나면 해 봐야죠.

 

달딸에도 돈 문제가 있다? 잘 믿기지 않는데요?

만나면 돈 얘기만 해요. (웃음)

 

달딸의 변모 계획이 있나요?

곧 변모합니다. 어떻게든. 형식적인 면에서 바뀌지 않을까요? 여하튼 제가 열심히 주장하고 있어요.

오늘 인터뷰를 하면서 무척 친근한 느낌이 들었어요. 삶의 어떤 방식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구나, 살 줄 아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느낌 말이죠.

 

 

 

살려고 발버둥치는 여자들…

그 정도로 처절해요?

처절해요. 주로 돈 문제죠. 찻값이 없다든가… (웃음)

 

항간에 페미니즘이 돈 된다는 소문이 있는데.

무슨! 진짜 페미니즘은 돈이 안되죠.

 

오늘 즐거웠습니다.

아, 달딸 총서 나오면 꼭 사주세요. 10년 후가 될지 20년 후가 될지.

 

시스템은 성공을 위한 금욕과 조바심, 탈락에 대한 불안감들로 가득 차 있다. 그녀가 즐거운 것은 아마도 그 중심에서 비켜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의 이마를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안될 운명의 형제들, 그리고 형제의 욕망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명예남성’이 된 자매들에게, 그녀는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비켜서 서로의 손을 잡을 것. 그러면 당신의 삶도 즐거울 수 있다.”

 

“서로 이마를 밟고 올라서는 형제들 대신에, 한 줄로 손잡은 당신의 자매들, 당신의 딸들이 있다고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서로 이해하는 일이 힘이 되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당신과 함께 배우고 싶다고도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앉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에게 손을 내밀기 위해.” <딸됨의 정치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