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윤태호

<야후yahoo>의 작가 윤태호는 96년 <혼자 자는 남편>으로 만화계에 자신의 이름을 내민 이후 <연씨별곡>이라는 흥부전 패러디로 판소리 만화라는 '새로운 만화의 가능성을 열었다'. <연씨별곡>이 그 발랄함에서 주목받았다면 최근작 <야후>는 무겁고 진지한 내용으로 평자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1. 나는 열 받는다 ! !

 

 

 

<야후yahoo>의 작가 윤태호는 96년 <혼자 자는 남편>으로 만화계에 자신의 이름을 내민 이후 <연씨별곡>이라는 흥부전 패러디로 판소리 만화라는 ‘새로운 만화의 가능성을 열었다’. <연씨별곡>이 그 발랄함에서 주목받았다면 최근작 <야후>는 무겁고 진지한 내용으로 평자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80년대 중반에서 현재에 이르는 생생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한 젊은이의 분노와 절망을 그려낸 <야후>는 한국 만화에서 보기 드문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그것은 오롯이 만화작가 윤태호의 몫으로 돌아간다. 과연 그는 어떻게 만화를 그리고 있을까. 강남의 화실에서 만난 윤태호는 평범했으며 자신의 만화 주인공과 닮아 있지도 않았다. 어시스턴트 한 명과 화실을 지키고 있었고, 파지가 수북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비교적 정돈 잘 된 책상과 책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원고 마감일이 닥치지 않아서인가.

 

 

 

면식범 : 무작정 상경한 뒤 허영만 문하에서 만화를 그리기 전까지 꽤나 고생했다고 들었다. 왜 만화를그리려고 생각했는가?

 

윤태호 : 미술대학 실패 후, 어렸을 때부터 그려 왔던 만화를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집안 사정상 대학을간다는 것이 어렵기도 했다. 이건 현실적인 것이고. 어려서부터 만화를 아주 좋아했다. 학교 신문에 만화 연재도 했고 교실 뒤 게시판에 만화를 그려 넣기도 했다. 담임선생님을 잘 만난 덕분이다. 그랬기 때문에 대학엘 가더라도 만화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만화를 선택한 건 당연한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면 : 만화는 그림에 스토리를 넣지 않는가. 만화에서 특별히 말하고 싶은 것이 있었나.

 

윤 : 69년에서 71, 2년생까지는 선배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열 받을 일이 많았을 게다. 내 경우만 봐도 상경하고 나서 광주항쟁에 대해 새롭게 보게 됐다. 신문을 보면서 정치도 알게 됐다. 참, 얼마 전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이나 박 전장관 사건 이후에 중앙일보랑 한겨레신문 다 끊었다. 정치나 언론에 환멸을 느낀다. 대중문화 자체에도 정치색이 많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빌딩을 하나 올리는 데도 온갖 비리가 다 들어간다. 삼풍, 성수대교가 그렇지 않았는가. 총체적으로 한국이라는 나라는 사람을 열 받게 한다. 지금 10-20대 젊은 사람들이야 자기 생활에 만족하고 살겠지만 나만 해도 그렇지 않다. 선배들로부터 들어온 것들, 나는 거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선배들의 분노를 이어받고 있는 거다. 난 그걸 느낀다. 요즘 세대와는 분명히 다르게 느낀다. 그런 분노를 나 혼자 느끼고 말 것인가?분명히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작가는 자기가 느끼는 분노를 한번쯤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면 : 그런 한국사회에 대한 분노, 그것이 당신의 <야후>인가?

 

윤 : 그 전의 코믹에서도 사실은 그런 이야기를 한 거다. 그건 상당히 냉소적인 거였다. 그게 나의 정서라고 할 수 있다. 조금은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면 : 혹시 반항만 있는 건 아닌가? 아니, 냉소 또는 폭주만 있는 건 아닌가?

 

윤 : 반항이 아니라 절망이다. <야후>는 앞으로 그럴 거다. 다른 작품은 아마 이럴 거다. 한 반항아가 있다고 치자. 그는 사회에 대해 적의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 사람도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과 적당히 타협을 하거나 자기 스스로 변해서 세상을 이해하고 화해를 하는 쪽으로 변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걸 하나의 작품 속에 담을 수 있을까? 희망을 다루는 작품 뿐만 아니라 절망을 담은 작품도 필요하다. 철저한 절망을 따라 읽다 보면 보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무언가를 걸러 낸다. 어쨌든 내가 절망, 끝까지 파괴적인 걸로 일관하고 싶은 건 그 때문이다.

 

 

 

면 : <야후>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윤태호씨가 만화를 그리는 태도 자체가 그런 것 아닌가? 아니면 <야후> 이후에 다른 모습도 보여줄 수 있는가?

 

윤 : 내 안에도 내가 여럿 있다. 사람마다 자기 스펙트럼이 있을 게다. 삶의 목적과 의미에 따라서. 그렇지만 일단 <야후>에서는 한 가지로만 갈 거다. 그리고 그 후에 또 다른 자기 내면의 가치를 찾는 작품이 나올 거다. <야후>에 모든 걸 다 담을 필요는 없다.

 

 

 

면 :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보자. 만화는 자기 내면을 고백하는 수단인가?

 

윤 : 만화가끼리 이런 말을 한다. 만화는 배설이라고. 그것을 고백이라고 불러도 좋다. 나 역시 그런 게 있다. 지금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서 받는 열, 에너지를 풀어버리고 싶은 게 있다. 풀어버려야 또 다른 게 올라올테니까. 지금은 다른 작품하기 싫다. 그 에너지들이 내 안에 아직도 충만하고 욕할 게 많이 남아 있으니까.

 

 

 

면 : 앞으로 <야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되는가?

 

윤: 인물의 성격을 설정하기 위해 일단 88 올림픽까지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까지 주인공 네 명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나서 본격적인 사건이 이어진다. 아현동 가스폭발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등이 계속 나온다. 사람들이 물어본다. 본 이야기는 언제 나오냐고. 그러나 이건 주제 자체가 분노하는 청춘이다. 분노하는 청춘이 결국 자폭한다, 이게 주제고 본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미 본론은 들어간 거다. 전략샹 인물 설명을 많이 한 것 뿐이다. 사건이 나와야 본론으로 인정하는 건 기존 만화 관습일 뿐이다.

 

 

 

면 : 솔직히 나는 거북하다. 역사적 사건의 개입은 필요 없는 것 아닌가? 조급한 마음처럼 보인다. 지금 연재중인 허영만의 <타자>가 그렇지 않던가? 꼭 삼풍이 무너져야 얘기가 되는가?

 

윤 : 원래 과거의 SF물들이 먼 미래의 공간을 동원해서 현재를 비판해 낸다. 그러나 난 현재를 배경으로, 보다 현실감 있게, 현재의 열 받는 상황을 재현하고 싶다. 그게 내 출발점이었다.

 

 

 

면 : 그렇지만 소재의 순화는 필요하다. 사건이 내면화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주인공 김현이 무너진 건물에서 압사한 아버지의 기억을 떠올릴 때, 그 계기가 되는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너무 거대한 실재다. 한 개인이 너무 많은 얘기를 거드는 것 아닌가.

 

윤 : 음, 그건 그런 거 같다. 한 명보다는 여러 명, 수백 만의 문제가 보다 가치 있을 거다. 그러나 그게 한 명에 다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야후>를 시작할 때 이런 생각을 했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다 앞에 앉은 여자의 하얀 목덜미가 눈에 들어왔다. ‘아, 이 여자의 목을 딱 잘라 버리면 얘는 죽겠지’. 왠지 하얀 목을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내 몸을 봤는데, 내 몸이 상당히 두텁다는 걸 느꼈다. 이 안에 심장이며 뭐며가 다 들어 있고 이게 저 여자의 몸에도 들어있겠지,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기억이나 모든 것이 저 사람에게도 있겠지. 그러고 나니, 저 한 사람을 죽인다는 것?? 세상을 하나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명의 인생에 너무 많은 걸 끼워맞추는 게 아니냐고? 삼풍 사건은 그걸 직접 겪은 사람, 혹은 가까운 가족정도까지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고 느끼는 거랑은 다르다. 열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건 순식간의 일이다. 그리고 나서는 통속적인 관심 뿐이다. 누가 몇 일만에 살아 나왔다, 신기록이다, 그 속에서 뭘 하고 있었을까, 왜 옷을 벗고 있었지… 그런 거. 그렇지만 그 내부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걸 왜 모르나. 뉴스를 봐서는 당사자나 가족이 느끼는 걸 알 수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금방 잊는다. 십 수일만에 구출된 사람이 콜라가 먹고 싶다니까 그 다음날 콜라 회사에서 몇 박스 갖다주는 걸 보며 나는 열 받았다. 이 사건 하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걸 봐도 똑같이 반복된다. 그렇지만 나는 한 명의 인물이 여러 사건을 통해 그처럼 열받는 심정을 드러내고 싶었다. 아현동, 성수, 삼풍… 삼풍은 주인공의 기억을 되살리는 계기, 설정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 중요한 건 이 만화를 보는 사람들의 기억을 되살리는 거였다. 삼풍 사건은 최대한 객관적 자료를 취합해서, 김현 한 사람의 이야기만을 하는 게 아니라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끌어들일 거다. 우연히 놀러온 사람, 부유층 아줌마, 아르바이트 학생 등등. 그 사건 바깥에서 사람들이 어떤 분노를 갖게 되는지 그릴 거다.

 

내 말은 이렇다. 말할 주제가 있으면 어떤 설정이 있을 수 있다는 거다. 모두 그런 걸 다 겪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떻게 느끼는가, 무엇을 느꼈는가가 훨씬 중요하다. 그것을 작위적이라고 평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2. 비평가들이 사기꾼 이다

 

 

 

윤태호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진지한 주제도 주제거니와 그의 그림체는 요즘의 한국 만화, 특히 일본 만화의 세례를 받은 젊은 작가의 그림체와는 표현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가 주목받던 90년대 중반 한국 만화계는 일본 만화라는 거대한 해일 앞에 서 있었다. 거기서 한국적인 만화에 대한 열망이 싹텄다. 박흥용이라는 중진을 중심으로 <누들누드>의 양영순과 윤태호가 신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윤태호는 구세대의 극화체 만화, 그러니까 예전 대본소 만화를 자기 그림체의 뿌리로 삼었다.

 

 

 

면 : <야후> 같은 만화는 좀 특이하지 않는가? 상업성이라는 것이 반드시 나쁘건 아니지만, 흥미위주로 나가는 만화와는 달리, 무언가 진지해 보인다. 소재도 그렇고 그림체 또한 상업성에 덜 물들어 있거나 윤태호 나름의 진지한 전략이 담겨져 있는 것 같다.

 

윤 : 흔히 학원물이니 무협물이니 그런걸 그리는 사람들은 그게 재미있어서 그리는 것뿐이다. 자기가 재미없어 하는 걸 그리는 작가는 거의 없다. 자기도 재밌다고 생각해서 몇 년씩 그리는 거다. 우리가 볼때 코믹스, 상업만화 그리는 사람들, 나이도 많은데 왜 이런 걸 그리지, 돈이 그렇게 좋은가, 싶지만 실제 만나보면, 그 작가는 그걸 그렇게 재미있어 할 수 없다. 학원물의 패싸움 같은 거, 이런 장면에서 이런 자세는 어떨까 하면서 마냥 즐거워한다. 양영순씨는 모든 걸 성적인 코드로 풀어내는 걸 좋아하고, 나는 <야후>에서 하는 이게 당장 하고 싶어 이야기를 만든다. 자기 기만적으로 작품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볼 때 그렇다는 거다. 만화가라면 다 똑같다. 간혹 작가모임에 가보면 몇몇 일부가 질투를 하기도한다. 그렇지만 그들 말고는 다 친하게 지낸다. 당신의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를 떠나서, 너는 너 자신에게 충실하구나 하는걸 전제로 해서 만나는 거다. 그래서 다들 친하고 잘 논다. 이희재 계열과 허영만, 이현세 계열이 안 친할거라고 짐작하겠지만, 이희재씨나 이현세씨도 서로 친하고, 다들 친하다. 아우라가 넓은 건지 개념이 없는 건지는 말하기 어려워도…

 

 

 

면 : 만화를 처음 시작할 때 지금의 젊은 작가와는 달랐던 거 같다. 등단작인 <혼자 자는 남편>은 대본소 스타일, 그러니까 구세대 풍의 그림이지 않는가. 그런 만화체는 어디서 나온 건가?

 

윤 : 조선일보와 인터뷰하면서 그랬는데, 왜 허영만체냐고 하더라. 나는 화가 났다. 인터뷰 하기 전에 분명히 내가 허영만, 조운학의 문하라고 했는데, 왜 물어보는가? 나는 어렸을 때부터 허영만만 보고 자랐다. 나는 만화가 치고 만화를 많이 안보는 케이스다. 허영만만 봤다. 만화가가 된 계기도 허영만인데 영향 받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말하자면 이 사람 피를 물려받은 것인데 왜 바꿔야 하냐는 거다. 이 사람은 극복해야할 대상이다. 그렇지만 이전에 배운 것을 무시하고 전혀 새로운 것을 그려도 좋은 건 아니다.그리고 거기에 한계도 있다. 요즘 일본만화를 그리고 싶어도 배운 게 그런 거니까 따라 그릴 수도 없다는 거다. 일본만화라고 한정지어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다. 일본만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고 다양하다. 내용과 그림체 모두 그렇다. 시장도 몇십 배 크고 종류도 다양하고 독자도 많다. 그런 기호를 맞추다보니 다양해진 거다. 그런 것 중에서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건 소년물이다. 그걸 일본만화라고 부른다. 그러나 일본만화는 내용면에서 대단히 진지하다.

 

 

 

면 : 당신을 마지막 구세대라고 볼 수도 있는가.

 

윤 : 나도 그렇게 본다. 그래서 살아남으려고 애쓴다. ^^;;

 

 

 

면 : 그림은 누가 도와 주는가.

 

윤 : 어시스턴트 한 명과 스크린톤을 해주는 아르바이트 한 명이 있다. 마감이 임박하면 더 많은 사람이들러붙기도 한다.

 

 

 

면 : 이른바 만화공장이라 불리는 시스템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당신과 다른 점은?

 

윤 ; 최소한의 인력은 필요하다. 만화공장이라면 한 작품에 2-30명씩 붙는다. 작가가 자기 작품 스토리도 모른 채 찍어내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정도라면 분명 문제다. 돈을 벌기 위해 만화를 한다고 해도 그걸 욕할 수는 없다. 생활 수단일 수도 있으니까. 그런 걸 떼고 보더라도 허영만 선생 정도로, 7명 정도가 적정 수준이라고 본다. 작가가 손대지 않는 작품이 그 사람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한다. 그러나 노래를 보더라도 그걸 연주하는 세션맨들이 있고 작사 작곡가가 따로 있다. 노래만 불러도 그게 누구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영화도 스텝이 얼마나 많은가. 만화는 소설과 다르다. 만화는 기능적인 것이 들어간다. 소설이 글만 쓰는 것과 달리, 만화는 글이 나온 후에 그림을 그려야 한다.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스텝이 없으면 힘들다는 건 당연하다.

 

 

 

면 : 만화작가의 이름은 어디쯤 그 경계가 있나? 예를 들어 콘티 작가도 따로 있다. 스토리와 콘티까지인가? 아니면 더 넓어질 수도 있는 건가?

 

윤 :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자. 내가 7명의 문하를 둔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자기만의 그림을 그려낸다면 문제가 된다. 그렇지만 이 사람들은 나의 문하생으로 내가 어떻게 그리려고 하는가에 맞추려고 애를 쓰고 그게 나를 통해서 검토되어 출판된다면, 그건 내 작품이다. 스토리를 남이 써도. 나와 안 맞으면 돌려보내고, 맞으면 채택해서 쓴다. ‘내 것’이 되는 거다. 스토리 작가를 쓰건 안 쓰건 간에. 그래서 딱히 구분 지울 수는 없다. 가령 혼자 100%하더라도 개념 없이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책임감 없이 마감시한 맞춰서 대충 쓱싹쓱싹 그려내고, 돈벌이로 삼는다. 그걸 그 작가의 작품이라 하겠는가. 나는 한 달 내내 스텝들과 상의한다. 상업만화라고 하는 것은 팀웍의 결과다. 그게 잘 짜여져 있으면 온전히 그 작가의 작품이라고 봐야한다.

 

 

 

면 : 규정 짓는게 의미 없긴 하겠지만… 작가의 이름은 스타일에 있는 것인, 아니면 기능적인 문체, 즉 그림체만의 문제인가? 스타일은 또 한 부분일 뿐이다. 그걸로만 규정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스타일을 변화무쌍하게 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으로 규정할 것인가? 이렇게 물어보자. 다른 장르와 비교해서, 작가주의란 말이 만화에서도 가능하다면, 그건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가?

 

윤 : 주체가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 같다. 처음부터 설계하고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가 중요하다. 타이틀의 이름이 작가라면 그것이 주체일 것이다. 예컨대 내가 교통사고로 손발이 짤려나가도 지시만 할 수 있다면 내가 주체가 되니까 내 작품이 될 수도 있다. 온전히 남들이 쓰고 그린 것이지만 내 머리 속에 나온 것이니까. 누구 머리가 더 큰가 하는 게 중요하다.

 

 

 

면 : 만화를 그려보지 않은 나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윤 : 영화의 경우 부분적인 전문가, 즉 조명, 촬영전문가 등이 필요하다는 걸 대부분 인정한다. 그런데 만화는 마치 가내수공업처럼 여긴다. 소설과 같이 책상과 먹과 종이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히 그건 아니다. 만화의 교과서로 불리는 오토모 가츠히로의 <아키라>만 해도 혼자 한 게 아니다. 한 회 연재분 정도면 몰라도. 10년 가까이 연재된 그 만화는 스텝의 작업을 통해 나온 거다. 스토리만 해도 혼자서 만들기 힘들다. 분명히 초기에는 자기 혼자 모든 걸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5, 6권부터는, 오토모 자신도 밝혔거니와, 뎃상은 문하생들이 했다. 혼자서는 절대 못한다.

 

 

 

면 : 나의 질문은 이런 것 같다. 질문하는 자들은 관념적인 것을 작가에게 요구한다. 작가주의 영화 담론을 봐도 그렇다. 그걸 원하는 작가나 비평가들이 고급한 작품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 실체는 여전히 모호하다. 그렇다면 작가주의 창작자들은 사기꾼인가? 아니면 그런 걸 지어내는 비평가들이 사기꾼인가? 물론 여기에 대해 나는 대답할 말이 없다. 당신은 대답할 수 있는가?

 

윤 : 비평가가 사기꾼일 것이다. <야후>로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나에 대해 부담을 가지더라. 박흥용이나 이희재 선생처럼 작가주의를 표방하는 사람으로 알고 무슨 대가를 대하는 태도를 갖고 오더라. 그렇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작가주의라고 이야기 한 적도 없고. 이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이야기라서 최선을 다해 그리는 것뿐인데, 소재가 소재이니 만큼 한번 그렇게 생각하고 오시더라.

 

 

 

면 : 나도 그걸 가지고 왔다.

 

윤 : 그걸 벗겨내고 얘기하는데 시간이 이렇게 흐른다. 국내 작가에만 작가주의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 일본은 팀 작업 아닌 게 없다. 그런데 그 사람은 착각을 하더라. 만화는 원래 혼자서 고독하게 하는거야 라면서. 이렇게 멍에를 씌우면서 막상 그 사람이 감명 깊게 본 걸 물어보니까, 시스템을 통해 제작된 일본만화를 꼽더라. 우습지 않나. 우리나라 만화가에 대한 평론들이 만히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허영만이나 이현세 같은 사람은 개념 없이 세대를 살아온 작가이다. 평론할 가치가 있는가? 그들은 전형적인 설계자의 위치에 있다. 대부분이 그랬다. 문하의 손에서 나온 작품이 대부분이다. 팀 관리 잘한 게 이현세고 허영만이다. 작가론이 나올만한 건 아니다.

 

 

 

면 : 감독자로서의 작가라… 내가 만화를 그리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자, 다시 한번 물어보자. 과연 만화의 작가주의는 존재하는가?

 

윤 : 그걸 스스로 표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몇몇 말고는. 자기 입으로 그렇게 규정짓긴 어려운 문제 아닌가. 왜냐하면 용어에 자신이 함몰되어서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면, 그건 변절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사고의 유연성을 희생하는 꼴이 될테니까. 그런 점에서 작가라는 용어는 위험하다. 많은 분들이 묻는다. <야후>의 장르가 뭐냐고. 그런데 내가 왜 그런 걸 고민해야 하는가? 그게 SF인지 사이버 펑크인지 역사물인지 내가 거기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나? 당신들이 규정짓고 싶으면 하고 말려면 말라. 장르는 이제까지 규정된 것에 불과하다. 이후에 나올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한다. 그 용어를 먼저 생각하면 스토리 쓸 때 힘들어진다.

 

 

 

3. 한국에서 만화 그리기

 

 

 

면 : 그 전 작품에 대해 물어보겠다. <연씨별곡> 성공이후 수궁가를 패러디한 <수궁별곡>을 그리다가 만 걸로 기억되는데.

 

윤 : 별주부하고 토끼와의 애절한 사랑 얘기를 하려했다. ^^;

 

 

 

면 : <연씨별곡>과 너무 비슷했고, 그래서 어떻게 나갈지 의아스러웠다.

 

윤 : 사실 그건 내가 원해서 그린 게 아니다. 출판사에서 <연씨별곡>이 잘 나가니까, 고우영 고전 전집처럼 그려보자고 제안을 했던 거다. 고전 패러디 전질로 말이다. 원래 나는 연씨별곡 하나로 고전 패러디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출판사 권유 때문이었다. 출판사 기획이라 내가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연씨별곡> 같은 풍자가 될려면 현실적인 의미가 들어가야 하는데, 하다못해 토끼가 술집 바니걸스라도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냥 용궁이 나오고 거북이가 그대로 나와버렸다. 그러다 연재하던 잡지가 청소년 보호법 때문에 폐간됐다. 잘 됐다 싶어 그만뒀다. 그 뒤로 악취미 만화, <발칙한 인생>으로 들어갔다.

 

 

 

면 : 그 잡지도 또 망하지 않았는가.

 

윤 : <발칙한 인생>은 동네야구 만화다. 내가 동네야구를 한 2년 정도 했다. 화실 사람들이랑 여의도에서 야구를 했는데, 동네 사람들과 하다보니 엉망이었다. 거의 폭력이었지만 재미있었다. 그래서 그걸 그리려 했고, 그러다 보니 기존과는 다른, 낙서 같은 그런 그림체가 나왔다. 이때 핸드폰 전화 “라이코스로 가 .응. 그래. 거기서 만화를 찍어. 가입 안 해도 돼. 부킹에 있는 게 거기 다 있어”

 

 

 

면 : <발칙한 인생>에 이어질 만한 악취미 만화라면 <수상(水上)한 아이들>이 있을 텐데 상당히 실험적으로 느껴졌다. 굵고 거친 선을 썼고 의도적으로 스토리를 파괴해 나간 게 눈에 보였다. 마치 <멋지다 마사루>, <이나중 탁구부> 같은 엽기 만화를 지향한 것 같았는데… 그림체는 미치츠키 미네타로의 초기작 <물장구치는 금붕어>와 비슷하기도 했고, 특히나 수영부 엠블렘은 서로 비슷하기도 했고…

 

윤 : <수상한 아이들>은 열 받아서 그렸다.

 

 

 

면 : ??

 

윤 : 난 <야후> 이상 못하겠다고 했는데 편집장이 강하게 부탁했다. 거기에 화가 났다. 당신이야 여러 만화 실어서 인기 없으면 그거 떨궈내고 다른 거 실으면 되지만 나는 내 만화에 책임을 져야되는데, 무책임하게 작품 섭외를 할 수 있나. 그래서 스토리 구상도 안하고 하루만에 매직으로 찍찍 그려서 갖다 줬다. 그런데 이게 연재가 되면서 인기를 얻었다. 악취미 만화는 중독성이 있다. 반응이 쭉쭉 올라가 버린다. 그래서 끊지도 못하고…

 

 

 

면 : 뭔가 실험적…

 

윤 : 난 출판사 욕 먹일려고 그랬다. 당신도 한번 당해봐라, 이렇게 성의 없는 만화에 원고료 줘 가면서 돈 아까운 줄 좀 알아봐라, 그런 심정이었다. 출판사에서는 수구부 자료를 뽑아주더라. 그렇지만 난 <수상한아이들>에서는 수구부 룰 같은 건 안나오니까 그런걸 필요없다고 거부하고 그냥 그렸다. 거기에 수구에 관해서는 전혀 안나온다.

 

 

 

면 : 이상한 걸작이다. 유행 중의 하나인 줄로만 알았다. <열풍학원>도 그랬던 건가?

 

윤 : 만화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다. 특히 코믹스 만화에 그런 게 많다. 돈 때문이다. 제발 자기 화실 좀 가졌으면 하는 건 신인 모두의 맘이다. 사람도 쓰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잡지 연재로는 그렇게 못 번다. 이 분야에서 김성모는 신화다. 돈 벌어 빌딩도 세우고 나니 출판사도 놀랬다.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 모아서 코믹스를 찍어낸 거다. 지금 코믹스 시장은 다 죽었다. 나도 <미스터 블루> 망하고 할 일이 없어서 시작한 거다. 나는 잡지 정선데 코믹스는 어려웠다. 돈은 받았지, 그림은 그려야지… 그래서 스토리는 내가 했고 그림은 문하생이 다 그렸다. 그에 비하면 <발칙한 인생>은 애정이 많이 가는 작품이다. 그냥 구질구질한 사람들 얘기다. 치사하고 구질구질한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인 야구를 하면서 느끼는 거다. 그 동네 사람들은 콤플렉스가 다 있다. 열등감. 이런 것들이 야구를 통해서 건강하게 바뀐다. 조만간 인터넷에 다시 그려 올릴 생각이다.

 

 

 

면 : 인터넷 만화사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윤 : 공짜가 아니라면 괜찮다. 그런데 대부분이 공짜다. 이건 멍청한 짓들이다. 만화가에게 고료는 나가면서 회원들에겐 공짜다. 만화로 돈을 벌겠다는 사람이라면 그건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발사가 손님 늘이려고 공짜 이발해 주는 거와 뭐가 다른가.

 

 

 

면 : 촐판 만화와 인터넷 만화와의 함수관계가 있을 텐데?

 

윤 : 차이는 없는 거 같다. 누군가가 인터넷 만화에 지불하려면 모니터를 들고 화장실에서든 침대에 누워서든 볼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해야만 한다고 했다. 컴퓨터 앞에 앉는 수고까지 하면서 지불할 생각은 없다는 거다. 그게 사람들 대부분의 정서일 게다. 그러나 난 다르다. 이미 컴퓨터는 이미 일상화되어 있다. TV 만큼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돈 내야지. 그리고 하드웨어 환경은 몇 년이면 된다.

 

 

 

면 : 출판 만화의 발전 없이 인터넷 만화가 가능할까? 지금은 겨우 스캔해서 올리는 것이고 출판 만화에 대한 지원은 전혀 없다.

 

윤 : 그건 업자들의 농간이다. 겉보기에 풍성해야니까 무조건 스캔해서 올린다. 글자도 안보이고 가는 선도 안 보이는 걸. 작가도 인터넷 만화는 웹 개념에 맞게 웹상에서 작업해야한다. 글자도 폰트로 넣어야 하고 펜 선도 거기에 맞게 그려 넣어야 한다. 1년 정도 지나면 인터넷에 맞는 만화가가 나올 거다 컴퓨터에 익숙한 세대들이 그것을 해내지 않을까? 그게 출판 만화로 엮인다면 그다지 해를 입히지는 않을 거다.

 

 

 

면 : 일본 만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윤 : 살아남기 위해서는 베껴야한다. 우리는 잘 베끼지도 못한다. 그들은 수준이 높다. 잘만 베껴도 대단한 거다. 여태까지 우리 만화가는 일본 만화를 명동이나 중국대사관 근처에서 원서로 사다가 그림만 배워왔다. 스토리는 아니고 그림만 배운 거다. 그렇지만 만화는 그림만 있는 게 아니다. 내용을 알아야 온전히 그 만화를 자신의 것으로 육화시킬 수 있다. 멍청한 거다. 어떤 이들은 ‘우리 그림은 이미 수준급이다, 스토리만 하면 된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건 제대로 그리는 게 아니다. 만화는 스토리가 요구하는 대로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삽화가 아닌 다음에는. 따라 그리는 건 누가 못하나? 그런 얘길 만화가들이 한다는 건 부끄러운 이야기다. 영향을 제대로 받으려면 충분히 제대로 변역되어 있는 걸 보고 몇 번이고 봐야 한다. 지금 중고등 학생은 거의 일본 만화만 본다. 우리세대같은 거부감은 없다. 나만해도 일본만화보다는 유럽이 수준 있는 거 같고 미국이 더 나은 것 같다. 그러나 그 생각은 필요 없다. 난 아직까지 그런 편견이 있다. 따라 그린다거나 베낀다는 것에 대한 편견이 있는데, 지금 자란 세대는 일본만큼 재미있는 작품이 나온다. 내용도 같이 즐기고 있으니까. 독자도 그만큼 넓어진다. 과연 주변 나라의 영향을 무시해도 될까. 우리나라 것이 대만에 많이 나가 있지만 대만에서는 그런 얘기 안 한다. 문화에서 극복하고 자시고가 어딨냐. 그건 공무원 발상일 뿐이다.

 

 

 

면 : 해외작가의 영향은 어떤 것이 있나?

 

윤 : 아키라, 만화의 교과서 오토모. <핑퐁>의 마쓰모토 타이요, 그 정도.

 

 

 

면 : 만화 그리는 데 있어 외적인 여건은 어떤가?

 

윤 : 잡지사 측으로부터 폭행당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는데, 코믹스 경기가 좋을 때 그런 일이 있었다. 잡지 출판사에 작가가 얽매인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비인간적인 건 아니다. 모든 작가에게 잡지가 필요한 건 아니다. 잡지 지면은 한계가 있다. 단행본 시장이 커져야 한다. 잘 나가는 작가는 단행본이 없어야 잡지가 산다고 하지만, 그건 폭력적이다. 둘 다 필요하다.

 

 

 

면 : 잡지와 단행본 코믹스 중에 어떤 것이 우선일까?

 

윤 : 잡지는 기본적으로 활성화되어야 한다. 단행본은 자생력을 가지고 존재했다.

 

 

 

면 : 한국에서 만화 발전의 저해요소라면

 

윤 : 검열의 문제는 기본이니 말 않겠다. 그 외에 중간에 사기꾼 같은 업자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최근 인터넷 벤처니 하는 사람들이 만화를 수단으로 삼는다. 그런 사람들은 만화와는 상관없다. 그들의 목표는 코스닥 등록뿐이다. 열악하다.

 

 

 

내가 준비한 질문은 여기서 끝이 났다. 더 할 말도 없다. 만화를 가지고 뭔가 큰 이야기를 엮어 나가려고 한 나의 의도는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난 것이다. 만화를 어떻게 그리는가에 대한 상식적인 정보만을 얻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전에 윤태호라는 한 사람을 구경했으며, 내가 어떤 생각에 얽매여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음은 기쁜 일이다. 만화는 대중문화의 성격을 규정하기 이전에 이미 만화이고 만화를 보는 것은 그런 규정 없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비단 만화뿐이겠는가. 사람이라면, 사람이 만든 것이라면, 누구나 동등하게 이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나는 얻어간다. 그리고 이 자신감은 나의 들뜬 생각을 낮게 진정시켜 줄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윤태호는 나에게 <야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무엇이었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1권에서 김현의 아버지가 압사하는 장면과 그걸 껌을 씹으면서 지켜보는 이혜원의 당돌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윤태호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 장면을 말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