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인터뷰에 앞서
섬나라 쿠바는 미국 플로리다 최남단의 섬 키 웨스트(Key West)로부터 불과 90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사회주의 국가이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이끈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한 이래, 쿠바는 중미를 제 앞마당 넘나들 듯 하던 자본주의의 맹주 미국에게 “목에 걸린 가시“였다.
쿠바 교역의 90% 이상을 차지했던 사회주의권이 붕괴했을 때, 전 세계는 카스트로의 사회주의 정권이 몰락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오히려 1990년대 중반이후 쿠바 경제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다.
외교문제에 있어 가장 종속적인 국가에 속하는 우리나라에, 가장 “독립적인” 정치를 펴온 쿠바 사람들이 왔다. 방문 목적은 서울대학교 스페인중남미연구소가 개최한 국제학술대회 <쿠바의 현실과 개방정책>에 참여하는 데 있었다.
나로서는 이번 인터뷰가 사회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을 처음 만나는 가슴 떨리는 기회였다. 투철한 반공교육 덕택에 남한이 적화통일되는 악몽을 틈틈이 꾸었던 범생이였기 때문이다.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면서 우리에겐 너무나 낯선 나라인 쿠바에 대해 조금이라도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직접 쿠바를 방문해 본 적도 없고 그쪽 문제에 전문가도 아닌 탓에 다소 혼란스러운 자료들을 제시하는 데 그쳐야 할 것 같다.
라 틴아메리카 역사를 기술한 벤자민 킨은 피델 카스트로를 쿠바의 오딧세이라 칭한다. 그도 그럴 것이 1959년 사회주의 혁명이 쿠바에서 성공한 이후 고용, 공정한 소득 분배, 보건, 교육 등에 나타난 성과물은 실로 대단하다. 1989년 통계로 영아 사망률은 1000명 당 11.9명으로 미국과 동일한 수준이었고, 1997년에는 7명으로 줄어들었다. 쿠바인의 평균 수명은 1997년 기준 76세로 다른 개도국의 58.2세와 현격한 차이를 보이며, 노령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3%나 되어 OECD 국가들과 유사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또 실업 인구나 의사 1인당 환자수도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특히 1982년 불과 전인구의 31%에 그쳤던 의료혜택이 1995년에 92%로 급격히 상승한 것은 쿠바 혁명정부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대변한다고 하겠다.
또한 1998년 자료에 의하면 100%에 가까운 쿠바의 어린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고 한다. 북한이 자랑했던 “100%의 성과와 만장일치“에 항상 의심을 품어왔던 우리인지라, 이 수치는 오히려 더욱 큰 의구심만을 불러일으키리란 점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1990년대 말 UNESCO가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스페인어 시험에서 쿠바의 어린이들은 월등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비교적 부유한 국가에 속한다는 멕시코, 칠레, 아르헨티나의 우등생 어린이들이 쿠바의 열등생과 거의 비슷한 실력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쿠바의 혁명정부가 단기간에 이룩한 성과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헬름스–버튼법(쿠바에 들어갔던 배는 6개월이 지나서야 미국에 입항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쿠바의 경제교역에 치명타를 가한 법)과 같은 미국의 치밀한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카스트로 정부 정책의 사회주의적 기본 취지는 손상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쿠바의 혁명정부가 자구책으로 내놓은 제도적 차원의 관광산업 육성과 그와 관련된 분야에 제한된 자본주의적 동기부여가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쿠바인들 스스로는 이러한 자국의 이중구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것이 이번에 그들과 인터뷰를 하게 된 동기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에서 온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만족스러웠다.
《쿠바에 관한 자료》
♤ Benjamin Keen, {A History of Latin America』: 곧 번역되어 출판될 예정임.
♤ 곽재성/ 우석균, {라틴아메리카를 찾아서}(민음사).
♤ 서울대학교 스페인중남미연구소 한 쿠바 국제학술대회
“쿠바의 현실과 개방정책: 한 쿠바 교류의 전망“의 자료물
(제 1부: 쿠바의 정치와 경제/ 제 2부: 쿠바의 문화)
2 . 로베르토 멘데스 마르티네스 (니콜라스 기옌 연구소 연구원)
– 쿠바 내의 반대 세력
인터뷰를 시작하며 쿠바문학을 전공한 로베르토 멘데스 마르티네스에게 조금 난처한 질문을 했다. 내 전공에 관한 것이기도 했지만, 쿠바사람을 직접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기도 했다. 쿠바에는 일명 ‘망명 문학가‘라 불리는 일군의 작가들이 있다. 그들은 혁명 때 카스트로를 도와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나, 이후 사회주의 국가 쿠바에서 누리지 못하는 비판의 자유와 개인의 예술혼을 찾아 미국과 유럽 등 자본주의 국가로 망명했다. 이들을 극우나 보수반동이라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카스트로 정권에 대해 아주 비판적 자세를 취한 것이 사실이었다. 이에 관한 질문에 대한 로베르토의 답은 아주 명쾌했다.
로베르토> 당시 이들은 유럽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돌아오지 않았어요. 이 사실 자체는 별로 큰 의미를 지니지 않습니다. 이들이 미국이 주도하는 반카스트로 이데올로기 혹은 반쿠바 공세에 아주 적절히 이용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솔직히 말해서 쿠바인이 아니라 그들이 파라과이인이었다면 과연 돌아왔을까요?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사실 쿠바문학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고 직접 그곳에서 연구를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뷰에서 그가 밝힌 내용에는 미국의 경제봉쇄로 인해 쿠바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그 속에서도 사회주의적 가치들을 고수하려는 의지가 분명히 나타나 있었다.
* [사진]로베르토 멘데스 마르티네스 씨(앞줄 왼쪽 2번째)와 박선영 씨(오른쪽 2번째), 그리고 그의 동료 학생들.
박선영> 사회주의 국가 쿠바가 자본주의를 부분적으로나마 받아들인 이후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달러의 유입이후 여러 가지 기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들엇습니다. 외국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쿠바인들은 보다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지만, 사실상 대다수 국민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한 택시 운전사는 하루동안 벌어들인 팁만해도 30달러가 되는데 반해, 전문직업인이라 할 수 있는 의사는 한달 임금이 20달러에 불과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과도기 쿠바에 벌어지는 기현상의 대표적 사례인 것 같습니다만……
로베르토> 당신이 말한 것처럼 이와 같은 불합리한 사태들은 쿠바의 위기 상황에서 벌어진 것들입니다. 이 사실을 먼저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위기 때 많은 문제들이 제기되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노동의 가치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노동의 사회적 가치에 따라 임금이 지불되었습니다. 물론 의사들이 택시운전사보다 많은 임금을 벌여들였고, 작가나 예술가들도 일반 종업원들보다 매우 많은 돈을 벌었지요. 세계 자본주의로의 개방이후… 아니, 이 말은 너무 지나친 것 같군요. (하하하) 정말 그래요….. 그 용어보다는 단순히 ‘세계 시장경제로의 진입‘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이 조치는 당시 농업 중심의 사회주의 국가 경제체제를 보호할 여러 가지 매커니즘들이 상실됨에 따라 취해진 것입니다. 사실 시장경제로의 진입은 뭐랄까 노동의 가치나 사회적 삶의 수준, 인간 관계 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노동의 즐거움과 같은 사회적 가치들에 끼친 영향은 더욱 크지요. 저는 쿠바가 과도기를 거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기현상들은 오직 새로운 경제 매커니즘을 통해서 제자리를 잡아가리라 봅니다.
세계의 어느 국가도 지금 쿠바만큼 이 위기를 잘 견뎌낼 수 있으리라 보지 않습니다. 당신이 말한 것과 같이 쿠바에서는 택시 운전사들이 의사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지 않습니까? 즉 문제는 택시 운전사들의 삶의 수준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의 삶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되겠지요. 하하하
박> 자본주의의 물결이 점점 거세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데…… 어떤 미국 학자에 의하면 이미 미국 기업들은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가 풀릴 경우를 대비해 언제든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소름끼치는 일이지요. 과연 카스트로 정권은 자본주의의 유입으로 위협받고 있는 사회주의적 가치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조치들을 취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말씀 드려야 할까요… 쿠바 내부에도 분명 사회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 아닙니까?
로베르토> 네……그것 참…… 그러한 조치들이 마련되면 그때 제가 다시 설명드리지요.
너무 직설적인 질문에 놀란 로베르토는 무척 당황한 듯 했고…… 잠시후 유머로 갑갑한 상황을 넘기려 했다. 그러나 질문자가 전혀 유머에 반응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욱 진지한 얼굴을 하자……
로베르토> 하지만 사회적 문제들은 즉각적인 조치를 취한다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에 대한 조치는 확고한 논리에 기반해야 하고 적절한 과정을 거쳐야 하며, 국가에서 그 과정의 전개상황을 주시해야 합니다.
저는 자본주의의 유입에 맞선 통제의 메커니즘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먼저 쿠바는 일정한 사회 보장제도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주요 생필품의 생산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택시 운전사가 의사보다 많이 번다는 얘기는 택시운전사가 의사보다 몇가지 물건들을 더 많이 구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교육, 보건, 문화와 같은 여타 근본적인 사회적 제도에 있어 불평등하다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참 신기한 일이지요…..
최근 들어 쿠바에서 책을 구하는 것은 예전에 비해 조금 어려워졌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쿠바의 책값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극이나 콘서트의 관람비용도 매우 적어서 아마 아무도 그 가격을 상상할 수 없을 겁니다. 노동자의 하루 일당으로 연극 한편과 콘서트 공연을 볼 수 있지요. 이 모두는 쿠바정부가 대중의 복지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계속해서 지원할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쿠바는 신자유주의 경제에 결코 편입되지 않았습니다.
박> 하지만 쿠바내에 불만세력은 없습니까? 쿠바의 민중 모두가 이러한 정부정책에 동의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로베르토>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모든 민중이 다 동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일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이지요.
박> 아, 저는 쿠바내에 존재하는 반대세력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로베르토> 네, 좋습니다. 쿠바 내에 존재하는 반정부의자들에 대해서는 늘 냉철한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이들의 존재를 과장하는 일은 다른 의도와 관련되 있기 마련이지요. 쿠바는 아주 오랫동안 미국의 압력을 거세게 받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미국은 전쟁촉발의 위기 상황을 계속 조장해 왔습니다. 이 강대국은 문제를 자기 입장에서 단순화하고 있으며, 양국은 적대적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따라서 기막힌 일들이 벌어지지요. 쿠바정부에 반대해 시위를 하는 세력들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미국정부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세계 모든 국가의 반정부 세력들이 다 이렇게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에게 지속적인 압력을 받고 있는 쿠바가 이에 저항하면서 동시에 내부의 반대세력에게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길을 터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물론 이런 종류의 문제는 모두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른 특수한 측면도 갖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특히 1980년대 말와 90년대에 쿠바정부는 매우 적대적인 반대세력들 때문에 커다란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점차 진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쿠바의 모든 방송매체는 국영이며 단 한번도 반대세력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유럽공동체의 몇몇 단체들이나 쿠바를 직접 방문했던 구소련 사람들이 내놓은 의견처럼 쿠바는 평화적 공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꼭 두드러진 반대세력이 아니라 해도, 카톨릭 교회나 갖가지 시민당국 등 쿠바정부의 정책에 이견을 지닌 여러 사회계층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반대세력들의 주장이 스스로 제살을 깎아먹는 결과가 되는 이유는 그들 자체가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의식을 지닌 정치인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고,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단순히 과격한 테러리스트에 불과하다는 점이지요. 정부정책에 반대한다 해도 엘리사르도 산체스나 구스타보 아르코스와 같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결국 합의에 이른 건 그렇지 못하건 간에 무자비하게 관광객들을 살해함으로써 뭔가를 얻어내려는 테러리스트들과 같을 수는 없겠지요. 그런데도 미국정부는 이 테러리스트들을 쿠바내의 반정부세력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박> 사회주의국가 쿠바에서 오셨다고 하니 저에겐 남다른 감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의 조국은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는 실정인데요. 사회주의 국가 쿠바에서 사는 사람으로서 남한과는 다른 정치체제를 갖고 있는 북한을, 흔히 사회주의국가라 불리는 북한을 어떻게 보십니까?
로베르토> 글쎄요, 쿠바와 북한은 동일한 사회주의 국가라고 볼 수 없습니다.
박> 그렇다면 과연 어떤 점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로베르토> 북한의 사회주의는 자기에게 맞은 특성을 지녔을 테고, 물론 쿠바와는 매우 다른 청사진도 펼치고 있겠지요. 사실 저는 북한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지금 남한을 방문한 저의 입장에서 보면 남한이야말로 무척 폐쇄적인 국가인 것 같습니다.
이 땅에 학술적 목적을 갖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로베스토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온다는 이유로 제 3국 캐나다를 거쳐 비자를 받아야했다. 남한에 대한 그의 첫인상이 다름 아닌 폐쇄성이었던 것은 어쩌면 여전히 남과 북 사이에 뿌리깊게 남아 있는 불신 벽을 너무도 쉽게 체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로베르토> 당신이 쿠바를 방문해 보시면 잘 아시겠지만, 쿠바가 전세계의 관광객들에게 문을 열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이미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보여준 것입니다. 쿠바인들은 여자이건 남자이건 전세계의 모든 관광객들과 함께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쿠바에는 외국관광객들과 결혼한 사람들도 많이 있지요.
박> 아니, 북한에 관한 의견을 더 말씀해 주시면 좋겠는데요.
로베르토> 이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미 이룩한 사회주의적 성과들을 지속시키거나 근대화하는 일이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말로는 모두 쉽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현실에선 모순된 일들이 많이 벌어지거든요. 예를 들어 쿠바에서는 사라졌던 매춘행위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다시 발생했습니다. 이것이 퇴보일까요? 아닙니다. 새로이 발생한 문제들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방법을 다시 찾아야 겠지요.
결국 로베르토는 잘 모른다며 북한에 대한 언급을 조심스럽게 회피했다.
3 . 호세 아리오사 (아시아 오세아니아 연구소 연구원)
–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에 대하여
호세 아리오사는 북한에서 1983년부터 1990년까지 8년간 외교관 생활을 했던 쿠바인이다. 구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으로 쿠바가 극한적인 경제적 위기를 맞기 전에는 많은 북한 사람들이 쿠바에서 유학했다고 한다. 호세는 쿠바에서 처음 한국말을 배웠다. 더 정확히 말하면 조선말을 배운 것이다. 남한에서 배운 한국말과 북한의 조선말이 섞여 이제 자기는 통일된 한반도의 말을 구사하는 셈이라고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학회에서 자신의 논문을 ‘조선말‘로 발제할 만큼 능숙한 언어실력에다, 외교관이었던 경력에 맞게 난처한 질문을 능숙히 요리하는 임기응변술 때문에 인터뷰는 한편 재미있기도 했고 다른 한편 아쉽기도 했다.
호세 아리오사는 인터뷰 전부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능숙한 한국어로 대답하시면 내 일이 줄어들어 좋다다고 농담을 했더니…굳이 스페인어를 고집하며 얼굴을 굳혔다. 또 중간 중간 여담을 할 때도 마이크를 멀리 떼내며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인터뷰는 학회의 뒷풀이 술자리에서 이루어졌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고자 옆에 있던 한 선생님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김정일 정권이 언제 무너지겠느냐고 물어보셨다. 호세 아리오사의 대답은 금새 웃음을 자아냈지만, 북한에 대한 그의 태도를 어느 정도는 읽어낼 수 있는 명답이었다. 무엇보다도 북한에 자유로이 갈 수 없는 이곳의 실정과 여전히 북한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을 꼬집은 것이 무척 마음에 남았다.
“그래, 김정일 정권이 언제 무너질 것 같아요?”
“당신이 그곳에 가면요.”
“예? 제가 그곳에 가면 무너진다니요?”
“그렇다니까요. 김정일이 그곳에 온 당신을 보고 놀라 죽을테니 말입니다.”
박> 본인 소개를 해 주시겠습니까?
호세> 저는 호세 아리오사입니다. 아시아 오세아니아 연구소에서 한반도의 정치, 경제, 문화와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박> 왜 하필 한반도에 관련된 연구, 특히 북한에 관한 연구에 주력하시게 되었는지요?
호세>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어떤 연구자든 한 나라를 정해 심층 연구를 할 수 있는 법이지요. 저의 경험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저는 다른 나라에서 온 많은 연구자들을 보았습니다.
박> 이 기회에 제가 약간은 무모한 질문을 해도 될까요?
호세> 제가 보기에는 항상 무모한 질문을 하시는 것 같은데요. (하하하)
박> 사회주의 국가 쿠바의 한 지식인으로서 북한의 사회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지금 외교관으로서 갖고 있는 공식의견이 아니라, 호세 아리오사씨의 개인적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특히 북한에서 8년이나 지내셨다고 하셨는데…… 어제 공식적인 자리에서 인적자원에 엄청난 투자를 하는 쿠바가 그에 상응하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지 못한 것은 사회주의 체제의 가장 큰 병폐인 경쟁의 부재라 지적한 어떤 한국교수의 발표를 호세씨는 아주 완곡하게 반박하셨는데요. 그렇게 말고 이번엔 솔직한 본인의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호세> 우선 북한은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그렇듯이 자국에게 알맞는 정치체제 및 경제체제를 정의하고 설립할 고유한 권리가 있습니다. 북한은 자국의 실정에 맞는 여러 가지 변화를 추구했지만, 오랫동안 맑스–레닌주의의 원칙과 깊은 연관이 있는 정치체제를 유지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박> 혹, 북한의 정치체제는 일인독재나 그 비슷한 형태가 아닐까요?
호세> 세계 역사를 볼 때 자국의 발전을 위해 수년간 독재가 행해졌던 나라가 여럿 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전체 국민에게 있어 독재의 문제는 사실 매우 상대적인 해석이 가능합니다. 아주 자유롭게 솔직히 말한다면, 민주주의 국가인 남한도 예외는 아닙니다. 다시 말해, 독재는 단순히 민중을 억압하는 정치형태로만 볼 수는 없으며, 어떤 경우에는 민중의 발전을 위한 과도기에 해당할 수도 있습니다.
박> 쿠바의 사회주의와 북한의 사회주의는 어떻게 다릅니까?
호세> 양국 사회주의의 차이점을 말하자면, 우선 사회주의가 형성되어온 역사적 배경이 다르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쿠바의 사회발전 과정은 북한의 경우와 다릅니다. 쿠바는 1492년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발견되었고, 그후 대략 400년간 식민통치를 겪었습니다. 스페인 식민통치는 쿠바 사회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다음에는 미국의 막대한 영향 아래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는데요. 쿠바 사회가 아주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자본주의적 체제에 가까워지는 기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북한의 경우에서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수요에 의해 지배되는 경제체제,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경제체제를 온전히 경험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의미에서 볼 때, 북한이 사회주의로 변모된 과정은 한층 폭력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에게는 혁명의 대상인 자본주의 체제 그리고 바티스타 독재가 매우 확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사실상 1945경 당시 남과 북은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였습니까?
박> 북한과 남한에서 받은 첫인상을 비교한다면?
호세> 인상이 어땠냐구요? 북한에서 수도인 평양 등 내부에 있는 여러 도시를 방문했는데, 쿠바인인 저를 진정으로 기쁘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저는 북한에 있는 동안 정말 즐거웠고, 아무런 불편이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외교관이었을 뿐만 아니라 학생이기도 했습니다. 아참, 꼭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 있었던 것은 1990년까지이니까, 분명 그후 10년이 흐르는 동안 제가 모르는 상당한 내부적 변화가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솔직히 저는 북한에서 그 어떤 조화로움을 느꼈습니다. 북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조금도 환경오염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반대로 남한의 서울에 왔을 때 환경오염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남한 사람들도 북한 사람들처럼 무척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한국인은 남북한을 막론하고 모두 쾌활한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당신처럼 무척 잘 웃는 것 같아요. (하하하….지금이야말로 웃지 않을 수 없음.) 그래요, 정말 잘 웃는 것 같아요. 평양은 무척 예쁘고 깨끗한 도시입니다. 그리고 서울은 그야말로 장엄한 도시로서 놀라운 발전을 이룬 듯 합니다. 서울은 천만이 살고 있는 거대한 도시입니다. 쿠바의 전 인구가 천백만이니까…후후, 생각해 보세요…… 서울에만 천만이 살다니요…… 서울은 전세계적인 도시입니다.
4. 헤수스 아이세 소톨롱고 (아시아 오세아니아 연구소 소장)
– 나는 쿠바인인 게 자랑스럽다!
쿠바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브라질 및 여타 카리브해의 작은 국가들과 함께 흑인인구가 아주 많은 나라에 속한다. 헤수스 아이세 소톨롱고는 소톨롱고라는 그의 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프리카인의 핏줄을 이어받은 흑인이다. 라틴아메리카에는 원래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과 식민시기에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 때문에 ‘인종의 도가니‘라 불릴만큼 다양한 인종들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아직도 끔찍한 인종차별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인터뷰가 시작되기 전에 나는 유일하게 유색인종이었던 그에게 쿠바에는 인종차별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 질문에 아주 분명히 대답해 주었다. “네, 전혀 없습니다. 아시아 오세아니아 연구소의 소장인 저를 보면 모르겠어요?” 또 구소련 및 동구권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교역국이 없어져 쿠바가 북한과 같이 식량난을 겪었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1미터 90이 훨씬 넘어 보이는 휜출한 키에 육중한 자신의 몸을 가리키며 가볍게 대답했다. “글쎄, 저를 보고도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까?”
헤수스는 인터뷰 내내 되려 질문자를 곤경에 빠뜨리며 난처한 질문들을 재치있게 넘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질문자에 대해 언급하며 전체 인터뷰를 평하기까지 했다. 의도가 다분히 뚜렷한 질문들에 대해서 단 한번도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면서 너털웃음을 쏟아냈다. 다혈질로 보였던 첫인상과 달리 헤수스는 침착하게 인터뷰에 응해 질문자를 연신 홍당무로 만들었다. 사회주의국가에서 사는 사람들은 웬지 딱딱하고 뭐든지 절제할 것 같다는 나의 선입견이 여지 없이 깨지는 기회였다.
박> 자기 소개를 해 주시겠습니까?
헤수스> 제 이름은 헤수스이고 성은 아이세 소톨롱고입니다. 저는 쿠바의 아시아 오세아니아연구소 소장입니다. 방금 전 당신과 인터뷰를 한 호세 아리오사가 제 친구입니다. 하하하
박> 그게 다 입니까?
헤수스> 네.
박> 제가 무슨 질문을 할 거라고 기대하셨습니까?
헤수스> 여기 한국에서 제가 어떻게 느꼈는지 아님 느끼는지 정도요?
박> 아닌데요. 하지만 말씀해 주세요.
헤수스> 이건 진심으로 하는 얘기인데요. 한국인들은 정말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것 같습니다. 또 이런 말을 하고 싶어요. 제가 참여한 학회에서도 그랬듯이 이곳의 학문적 수준과 폭이 저에겐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쿠바에 대해서도 깊은 연대감을 보여주었습니다. 적어도 이곳에 있는 쿠바인들과는 그렇다고 확신합니다.
박> 아! 네, …… 저희들은 정치인이 아니거든요. (하하하)
헤수스> 그래요, 저도 정치인은 아니네요.
박> 최근들어 남과 북은 어느 때보다도 많은 접촉과 대화를 갖고 있는데요. 당신이 보기에 북한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헤수스> 저는 북한이 정신적으로 준비되어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박> 정신적이라 하면 어떤 의미지요?
헤수스> 감정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지요. 저는 양쪽의 민중에 대해 얘기하는 것입니다. 통일은 민중이 하는 것이지 정치 지도자들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이라 하면 갈라진 한 민족을 다시 합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정치 지도자들은 통일을 가속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통일을 이끄는 것은 다름 아닌 민중입니다.
박> 그렇다면 북한의 민중들이 통일의 주요 문제들을 결정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헤수스> 저는 그렇다고 확신합니다.
박> 북한의 실정은 일인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것 아닐까요?
헤수스> 이 사실에 대해서는 의견이 없습니다.
박> 아니 어떻게 없을 수가 있습니까?
헤수스> 왜냐하면 북한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저는 학문적으로 북한을 일인독재라 보지는 않습니다.
그는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했다.
박> 쿠바의 경우엔 어떻습니까? 민중이 자신의 권리를 한껏 누릴 수 있는 상황입니까? 끊임없이 미국의 압력에 시달리는 쿠바는 이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국민 개개인에게 충분한 자유를 주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쿠바에서 정치적 이견을 지닌 사람들은…
헤수스> 쿠바에는 정치적 이견을 지닌 사람들이 없습니다. 모두 미국에 있지요.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있다해도 그 세력이 미비합니다. 쿠바 민중의 대다수가 지금의 사회주의 체제에동의하고 있습니다.
박> 듣자하니 사회주의에 대해서 쿠바의 젊은 세대들은 이전 세대들과 생각을 달리 한다고 하던데요?
헤수스> 최근 몇 년사이에 쿠바에서 벌어진 시위들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박> 네.
헤수스> 당신이 보기에 백만, 아니 백 오십만이나 되는 젊은이들이 단 몇 시간만에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모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히려 질문자를 당혹스럽게 하는군!)
헤수스> 물론 정치적 이견을 가진 젊은이들이 존재할 수 있고, 실제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겐 의견을 내놓을 자리가 없지요.
박> 그렇다면 이들이 소수이기 때문에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말씀인가요?
헤수스> 존중하지 않느냐구요?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르지요. 쿠바혁명이 민중을 위해 했던 일들에 반대되는 의견이나 행동을 지녔다면 자연히 존중될 수 없겠지요.
박> 혁명에 위배되는지 아닌지는 누가 결정합니까? 쿠바정부입니까? 아니면 다수에 의해 정해 집니까?
헤수스> 아닙니다. 아니예요. 누가 결정을 하는냐구요? 우리 이렇게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여기서 맥주를 마시며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지금 어떤 사안에 대해 결정을 하는 것은 누구인가요?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아닙니까?
박> 여기엔 지금 아무것도 결정할 일이 없는데요.
헤수스> 얘기를 잘 들어보세요. 어떤 일이든 이 자리에 있는 우리 한명 한명이 결정하게 될 거예요. 그런데 만약 우리 중 누군가가 이유도 없이 맥주잔을 던지며 욕을 하기 시작했어요.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박> 먼저 왜 그러는지 물어보겠어요.
헤수스>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처음 하는 행동은 그 주정꾼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일 겁니다. 이게 정확하고 올바른 행동입니다. 저는 그 상황에 빗대어 반혁명세력에 대한 쿠바의 태도를 설명하려 했습니다. 당신은 그 주정꾼이 난동을 부리는 상황에서 절대로 설명을 요구하지 않을 겁니다. 그것만은 확실해요. 왜냐하면 우리의 즐거운 술자리를 망치고 있으니까요.
박> 아니요. 저는 당신의 확신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헤수스> 저도 당신의 의견을 믿을 수 없습니다.
(와우! 상대방을 설득하는 방법도 가지가지이구나……. 이렇게 우리의 대화는 끝을 보지 못했다)
박>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습니다. 당신은 쿠바인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십니까?
헤수스> 네,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쿠바는 애국심이라는 역사적 전통을 갖고 있는 나라입니다. 저는 쿠바의 자연, 문화, 국민 등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