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내면, 그것은 젊은 열정

인터 카드넷(www.cardkorea.com) 김경진 사장을 취재하라는 명을 받고 테헤란로로 갔다. "카드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인터 카드넷은 인터넷 카드 서비스 업체로는 꽤 잘 알려진 기업이다. 인터 카드넷은 <메디슨 벤처 타워>에 있었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테헤란"이니, "메디슨"이니 하는 이름이나, 사람보다 차가 많고널찍널찍하게 구획된 강남 거리의 분위기에나 도무지 편한 생각을 품기 어렵다. 게다가 이 '타워'는 외관이나 내부 시설이 퍼슨웹 사람들이 죽치는 건물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잘 나가고 있는' 벤처 기업의 사장이라니, 퍼슨웹의 취재 대상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성공"의 신화에 대해 복창해야 할 것인지?

 

메디슨 벤처 타워 별관에 입주해 있는 회사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회의실로 가서 김경진 사장을 만났다. 취재를 위한 자료를 찾다가, 중국과 일본으로의 진출까지 시도하고 있는 이 잘 나가는 벤처기업의 사장이 올해 갓 스물 네 살을 먹은 여대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카드코리아라는 회사만큼 24살난 이 어린(!) 사장이 유명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김경진 사장은 “여대생 벤처 신화”, “벤처 업계의 여성 파워”의 주역으로 꽤 여러 번 매스컴을 탔다는 것이다.

김경진 사장은 우리를 대접하느라, 손수 냉장고에서 먹다 남은 1.5리터짜리 펫트 병 콜라와 종이컵을 가지고 왔다. 대화가 시작되고 나의 불편한 마음은 풀려갔다. 김경진 사장의 면모가 24살 먹은 여대생답게 “앳되다”느니 “풋풋하다”느니, 또는 발랄하고 쾌활해서 그렇더라 하는 따위의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솔직하고 열정적인 이 스물 넷의 처녀에게서 배울 수 있었던 많은 것에 감응해 가고 있었다.  


> 이화여대 96학번이고 정보통신학과 4학년 휴학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아, 이번에 복학했어요. 마지막 학기 다니고 있어요.


> 수업 듣기 힘들지 않아요?
지금 복학해 보니까 인터넷 강의도 많이 생겼고, 일주일에 두 번만 나가거든요. 
휴학할 당시는 일주일에 5일 내내 나갔는데… 결정적으로 수업 시간 잘 피해서 제휴 회사 만나러 갔는데, 거기 사장님이 ‘멀리 왔는데 점심이나 먹고 가지’ 그런 말을 하시잖아요, ‘근데 수업이 있어서 가 봐야하는데요’, 그런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안 그래도 학생이미지 때문에 제휴가 잘 안되다가 겨우 이번에는 좀 되나 싶은데. 그러다 수업을 연달아 이틀 그런 일 때문에 빠지게 됐어요. 작년 이맘때죠? 
학교도 잘 못다니고, 회사일도 안되고. 안되겠다 싶어서 일주일 다니다 휴학원서를 냈어요. 일년 지나서 지금 마지막 학기 다니는데 인제 많이 변해서, 작년보다는 덜 고생하면서 다니는 거 같아요. 쉬니까 그러니까 다들 물어보는 거예요. 보통 맘 먹은 게 아닌가보다 하고…사실은 학교 다니기 싫어서 쉰 건데..(웃음)

 

 

1. 일어서기  


카드코리아가 법인회사가 된 것은 작년 12월이다. 개인회사는 확장을 위한 사업 제휴가 어렵다. 그래서 법인으로 등록하고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창업 초기의 멤버인 미국 유학생 친구들도 휴학을 하고 한국으로 나왔다.  


> 이대 학생 벤쳐 성공사례로 보도됐는데, 이대 학생 말고도 있었나요?
다른 멤버가 한 명 더 있었어요. 항상 인터뷰를 하고 사진 찍을 때, 한국에는 두 명의 이대생 밖에 없으니까 기사 포커스가 이대 학생 벤쳐로 맞춰졌던 거거든요. 사실 시작은 네 명이 했고 일은 세 명이 계속 했던 거죠. 미국에서 한 명이 귀국을 했구요. 그래서 여대생  창업 기업이라지만, 사실 남학생도 한 명 있었습니다. (웃음) 
너무 보도가… 원래 신문 기사가 그런지, 기사를 쓰면서 좀 더 자극적인 내용으로 가다 보니까, 작년에, 나이도 23살인데 ‘만나이’로 해서 ’21살의 여대생이 사장님이다’, 많이 포장을 하더라고요. 물론 거짓말은 아니지만 포장이 많이 됐죠.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은 그런 거였다. 아이디어나 아이템 하나만으로 일어설 수 없다. 그걸 상품화하고 회사가 되고, 또 업계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하는 지난한 과정이 있다. 그런데 그런 과정은 누구도 말하지 않거나, 보도되지도 않는다. 잘 된 결과만이 어느날 뻥 알려지는 것이다.


원래 진짜로 회사를 할 생각은 없었어요. 꿈은 많잖아요. 이런 거 해야지, 이런 거 해야지… 그래서 친구랑 아이디어를 냈는데, 처음에는 선물을 팔려고 했어요. 그래서 당시 대학교 3학년짜리 머리에서 나온 게, 두산타워에서 인형을 떼다가 주문이 오면 우편으로 배달해야지 하는 건데, 비용을 따져보니 아무래도 계산이 안나오는 거예요. 
근데 미국의 선물사이트들을 보고 카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냈죠…. 근데 그 다음 문제는 사업자 등록증은 어디에다 내야되냐, 모르겠다, 그런 어려움이 있었죠. 그래서 재미있었다, 그냥 낙서한 걸로 만족하자…이렇게 될 뻔했죠.


사장(死藏)될 뻔한 아이디어는 역할을 분담하여 일을 추진하며 본격적으로 생명을 얻었다. 김경진 사장은 서버니, 도메인 등록이니 하는 쪽을, 그 친구는 사업자 등록이라든가 하는 쪽을 맡았다. 그러고도 일은 많았다. 사이트를 개설해야 했고, 카드 서비스를 실제로 해야 했기에.


처음에는 카드도 두 개 밖에 없었어요. 친구들이 그린 거 달라고 하기도 하고…사이트가 완전히 허잡한 거예요. 그냥 그린 걸 이미지로 줄여 놓았으니까요. 잘 될리가 없죠. 6개월 정도 운영을 했는데 회원도 만 명 정도? 남들은 금방 백만 회원된다는데, 우리 상태로는 백만년은 걸리겠다, 이랬어요. 사이트를 닫을 생각도 했었어요. 그 때가 휴학하기 직전이었죠. 다들 대학원 가니, 취직 하니 하는 고민들 할 때기도 했으니까요. 또 다른 어려움은, 학생들이 돈이 없으니까, 다들 과외하기 싫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예전보다 과외를 더 열심히 해서 자본금을 대야 했죠. 일하지, 과외하지, 돈 벌지. 그런 경제적인 어려움에다 장비도 없지, 방도 없지 – 그런 거. 미국에서 일하는 친구들하고 시간도 잘 안 맞고.


 이런 것은 일반적인 어려움에 속하는 것일 테다. 어떤 비약의 계기를 만나거나 그런 어려움을 뚫고 나갈 추진력은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그러다 작년 7월쯤 동아리 방에서 고민을 하다가 저희 앞방에 계신 교수님이랑 우연히 대화를 하게 됐거든요. 저희 사이트 문제점을 간단하게 그 교수님이 사이트의 문제점을 설명해 주셨는데, “아, 우리가 이래서 안 됐구나”하는 게 막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고치면 더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제휴를 하러 다니고 나서기 시작했죠. 그리고 휴학을 하게 됐죠. 
 우리는 진짜 공부하고 일하고 아르바이트하고 그랬는데…. 밤낮없이 열심히 했죠. 주말에도 계속 동아리방에 나와서 일을 했죠. 근데 그 교수님이 일요일이면 나오셨는데, 그 교수님과 일요일이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어요.


 > 경영 자문을 해 주신 거네요.  
예, 그렇죠. 그리고 그게 계기랄까 추진력이 된 셈이죠. 휴학을 하고서도 그 선생님 수업을 청강했죠. 인터넷 비지니스 전략 수업이었는데, 수업에서 들은 걸 다음 날 회사에 응용하면 금새 눈에 띄게 달라지더라구요. 회원도 막 늘어나고. 어찌 보면 우리 사이트가 그만큼 문제가 많았다는 거도 되고요. 간단한 경영학적 원리를 적용하기만 하면 쉽게 고쳐질 만큼. 또 수업 내용이 좋았던 거구요…


계기, 바로 그것은 간단하고 기본적인 경영학적 원리였다. 어딘가가 저려온다.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교양필수 과목은 경영학인가? 
학교로부터 지원도 초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방도 없이 집에서 어렵게 일한다는 내용이 신문에 보도되자, 학교에서 동아리 방과 컴퓨터를 지원했다.

 

2. 변화하기 


아르바이트에서 시작하려고 한 게 이렇게 성장하리라고는 생각 못 했을 거 아닐까. 회사의 성장과 더불어 그 주역의 생각도 그에 맞게 변화해 갔다.


법인화하면서 <벤처 연구회>에 많이 나갔었는데요. 법인화하면 사람들도 친구들만으로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사무실 임대료도 내야 하는 거구.. 그 때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이제는 발 못 빼고, 아르바이트나 대학 때의 하나의 경험 차원이 아니라, 내 젊은 날을 바쳐서 진짜로 해야 되겠구나… 원래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웃음)
반년에서 1년동안 법인화하기 전에 했던 경험으로는 돈이 되고 안되고, 회사가 잘 되고 안되고의 차원이 아니라 굉장히 배운 게 많았어요. 사람과 사람들과의 관계라든가. 회사와 회사의 전략적인 관계라든가. 경영이지요. 경험이 쌓이니까 더 해 봐야겠다, 또 더 배워봐야겠다 하는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그리고 이런 아마추어적인 순수함은 책임감으로 발전했다. 
 

전에는 잘 되고 못 되고 간에 내가 좋으니까 열심히 하겠다는 거였는데, 법인화하고 보니까 주주가 생기잖아요. 이제는 망하면 안되거든요. (웃음) 이전에는 내가 돈 박아서 내가 망하면 그만인데. 엔젤 투자 받고 나서는 나를 믿고 투자한 사람들한테 큰 기대를 안고 일을 하니까 책임감도 커지고… 또 제가 잘 나가는 회사에서 일하다가 온 분들도 뽑고 다른 직장 갈 수 있는 졸업생들도 데리고 왔거든요. 저를 믿고 왔지요. 그런 분들이 늘어나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 부담감도 커지고 그렇더라고요.


> 원래 학부 다닐 때는 뭘 하고 싶었어요?
학부 때요? 저는 꼭 제 회사를 차리고 싶었어요. 특별히 아이템이 있어서라기보다는. IMF 일어난 후에는 공대생들이 LG전자나 삼성에 간다 하는 식으로 대기업 연구소에 가는 게 더 이상 부러움의 대상이 되질 못해 버렸거든요. IMF가 오면서 부서 없어지고, 퇴출 당하고. 평생 자기 일이라고 몸 바쳐 했지만 자기 일이 되지 못하고, 남의 일만 해 준 거죠. 돈을 얼마나 버느냐가 아니라, 자기 삶에 있어서 주(主)가 되지 못하고 종(從)이 되어 버린 거예요. 그래서 당시에는 내가 사는 건데 내 일을 해서 내 인생의 주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 보도한 걸 보니까, 정보통신 쪽에 관심이 있던 평범한 여대생이 어느날 갑자기 IT업계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것처럼 나왔던데… 사실은 마인드의 면에서 준비가 돼 있던 거군요!
신문사 인터뷰 할 때는 이 이야길 잘 안 하는데. 신문기자들이 아버지가 뭐 하세요? 자본을 얼마나 도와주셨어요? 그런 거요. 그런데 아버지 영향도 컸어요. 벤쳐 마인드 같은 거. 공대 출신이시고 대기업에 계시다가 벤처로 가신 때가 바로 제가 대학 1,2 학년 때였거든요. 그 혼란기에 아버지 모습 보면서 많이 배웠죠.


좋은 아이디어, 좋은 조언자 – 이런 요소들 외에도 김경진 사장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건 다름아닌 벤처 마인드와 독립심인데, 이거 말고 또 또 또 없는가? 
어쩌다 분위기가 잘 맞아떨어져서 이렇게 된 건데. 또 하나는, 미국 사람들을 보면 대학 들어가서 경제적으로 다 독립을 하잖아요. 근데 우리는 대학 들어가고 시집 가기 전까지 다 얹혀 살잖아요. 전 그게 진짜 싫었거든요. 물론 아직도 용돈을 가끔 타 쓰기는 하지만, 하하하. 전 대학 들어가면서부터 독립할려고 계속 아르바이트하고 그랬어요. 햄버거 집에서도 일하고 과외도 하고 여러 가지 해 봤어요. 햄버거 집에서 일할 때는 한 달 내내 5-6시간 일하고 후불로 20만원 받았는데, 과외하면서는 선불로 50만원 주더라구요. 충격이 컸죠. 노동의 소중함, 돈의 가치… 그런 걸 1학년 때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빨리 독립을 해야겠다, 부모님이 피땀으로 버신 돈인데… 빨리 경제적인 독립을 해서 자랑스럽게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었던 것도 있어요.


> 아직도 용돈을 받는다고요? 
(웃음) 큰 거 살 때요. 전에는 아무 거나 입어도 되는데, 요새는요 가끔 세미나 같은 데 갈려면 정장 입어야 하잖아요. 정장이 생각보다 비싸더라구요. 카드 같은 걸로 끊고 가끔 제가 내기도 하지만, 엄마한테 가서, 나 옷 샀는데 하면 조금 보조해 주시기도 하고…


> 벤처에 대해 꿈을 갖고 있는 후배들 적지 않을 텐데 그런 사람들한테 한마디 해 준다면.
저한테도 친구들이나 후배들이 창업하겠다고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많아요.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제가 겪는 문제이기도 한데요. 사회적인 경험이 없으면… 제일 지금 아쉬운 게 제가 다른 사회적 경험 없이 회사를 만들었다는 거거든요. 회사를 다녀봤다든지 하는 경험이 없어서 제 머리 속에서 조직을 상상해서 만드는 거예요. 회사는 이럴 것이다…. 그러니까 시행착오가 많은 거죠. 일반적인 경험도 하고, 큰 회사나 작은 회사에서 경험과 연륜을 쌓았다면 창업하는 거는 문제가 없다고 봐요. 그런데 대부분은, 저도 좀 그렇지만, 되게 무모한 거 같아요. 다른 큰 회사들이 어떤가 많이 배울려고 노력을 하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가 과연 창업을 하면 다 잘 되느냐 그건 아니잖아요. 잘된 스토리만 보여주고 성공한 사례만 이야기하고 잘 되는 것처럼 이야기되니까 그렇지, 실제로는 극소수만 성공을 하잖아요. 그래서 별 생각 없이 유행에 휩쓸리는 건 조심할 필요가 있겠죠. 

빨리 성공해서 돈방석에 앉고 싶다, 그래서 코스닥에 빨리 올려서 몇 십억대 부자가 되어지, 그런 마인드로 하면 안 되겠죠.  
인생의 주인이 된다는 생각이 아니라 월급쟁이가 아닌 빨리 졸부가 되고 싶고 부러워서 하는 거라면 좀 문제가 있겠죠. 음, 꼭 그 회사를 비난하고자 그런 건 아닌데 M&A 같은 것도 딜링이 안되는 게 자기 네 회사를 원래 가치보다 더 크게 보고자 해서… 100억짜리 회사를 200억에 팔고 싶다 그런 거. 그런 건 그 사장들 욕심 때문에 그런 거잖아요. 돈 욕심은 일단 버리고 자기가 벤처 기질은 있는가, 경험은 풍부한가, 또 회사를 만들었을 때 잘 될만한 주변의 인력은 충분한가 이런 걸 챙겨봐야 될 거 같아요. 자기한테 그런 걸 물어서 아니라면 안 해야죠. 그리고 대기업 간다고 꼭 나쁜 건 아니잖아요? 다 벤처 창업을 해야 되는 것은 아니죠.


 > 사회적인 경험이 제일 중요하다, 그렇게 말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아, 그러면 김경진 너는 어떻게 했냐고 물어볼 건데요. 또 그런 게 없어도 가능한 게 벤처가 아니냐고 묻는다면?
역으로 제게 묻는다면, 나름대로 아이디어가 있고, 벤처를 할 수 있는 열정이 있고, 일을 저지르고 보는 성격이 있다고 해도… 세월을 뛰어넘을 수는 없는 건 사실인 거 같아요. 남들이 10년, 20년만에 쌓은 연륜이나 경험 같은 거는 제가 1년만에 노력을 한다고 해도 쉽게 되질 않으니까요. 그래서 노력은 하지만, 제가 그 세월을 뛰어넘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해도 한꺼번에 뛰어넘을 수는 없죠. 그래서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서 그런 걸 쌓아갈려고 해요. 
어떤 때는 사람 관리하는 책 보고 그러다가 씹어 먹고 싶을 때고 있거든요. 혹시 먹으면 잘 할 수 있을까(웃음). 그만큼 답답하기도 하지만, 책을 씹어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닌 것처럼 경험으로 쌓아가는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그걸 카바할 수 있는 해결책은 회사에 친구나 후배만 두는 게 아니라, 저보다 나이도 많고 경험이 많은 분을 모셔오는 거겠죠. 그런 분들한테서 제가 잘 모르는 조직이나 경영에 대한 답이 나오거든요. 그런 게 솔루션이죠.


> 회사 내부의 인간 관계도 쉽지만은 않을 텐데요.
처음에는 회사 직원들이 다 친구들이니까 마치 동아리 같은 거예요. 일하다가 사라져서 어디 갔나 보면 영화관에 갔다 왔고. 그래서 처음엔 “그래, 힘든데, 날 도와주는 건데” 그렇게 생각했죠. 말을 못했죠. 그랬는데 법인화하고 한 3개월 있으니까. 회사가 아니라 동아리가 되어 간다 그런 걸 깨달았죠. 수업 듣는 애들도 있으니까, 수업 갔다오면 라면 끓여 먹고. 진짜 동아리죠. 밤 되면 사무실에서 술마시고… 안 되겠다. 싶었죠. 하루 아침에 그걸 바꿀 수는 어렵지만. 그래서 좀 잔인한 이야기지만, 다 모아놓고 심각하게 말했어요. 경력 삼아 쌓으려고만 하는 거면 이제는 나가라. 그래서 경력 삼아 있었던 애들은 아무 말 없이 나가더라고요. 
그리고 사람을 뽑을 때도 아는 사람을 통해서 뽑지 않고 공채로 뽑았어요. 사람이 한 명 새로 들어올 때마다 분위기를 조금씩 바꿔 나갔죠. 시말서도 받아 보고, 회의하면서 지각하는 건 도저히 못 봐준다, 그러니까 여태까지 맨날 지각하던 사람들도 같이 긴장하는 거죠. 다들 지각하고 그랬으니까. 그러다 보니 호칭도 바뀌더라구요. “경진아 경진아” 그러다 점차 사장님 쪽으로. 저도 개인적인 일은 “누구야” 하고 공적인 일은 “팀장님, 누구 씨” 하고 부르게 됐죠.


> 그런 변화하는 과정에서 어떤 심정을 느꼈어요? 그런 변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나요? 
사람 짜르는 데 기쁘진 않죠. 그렇지만 회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만 남아야 하잖아요. 저희는 벤처기 때문에 월급을 많이 주기도 어려운데. 메디슨의 이민화 회장님이 “초생명 기업”이라는 걸 강의하는 걸 들었는데, 메디슨에 계열사가 많은데 한 기업이 전체를 이끌어 나가는 게 아니라, 능력 있는 부분이 다른 부분을 이끌어 나가고, 또 생명이 다한 부분은 퇴출되고 그런 과정을 겪어야 기업의 활력이 유지된다… 그런 강연을 하시는 걸 들었어요. 필요없는 건 과감히 짤라야 한다는 얘기가 가슴에 남았죠. 그래도 애를 어떻게 짤라 그런 고민을 많이 했는데… 
지금도.. 어떤 사람이 능력이 부족하다 싶으면 그 사람의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도 마련해야겠지만 대체 인력을 뽑아서 위기감을 느끼게 하죠. 잘 하는 사람이 둘이면 더 좋은 거고… 그런 식으로 발전시키려 하는데. 그런데 걱정하는 게 사람들이 능력 좋은 사장을 뽑아 놓고 저더러 나가라고 하지 않을까 하는 거죠.(웃음)

 

 3. 나아가기


 
젊은 여사장이 느끼는 어려움은 대외적인 부분에도 있을 것 같다.

그게 더 힘들어요. 사업하는 데 중요한 게 술자리니, 접대라 그러는데. 저희는 원래 접대를 안 했어요. 분위기가 되면 우리가 밥을 사는 정도고. 그런데 사적인 자리가 회사 간의 관계를 보다 좋게 만들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다들 저를 어렵게 생각하든가, 아니면 반대로 비즈니스 파트너로 안 보든가 하는 거예요. 술자리 같은 것은 아예 생각도 안 하고, 밥 먹으러 가는 걸 부담스러워 하는 분도 있고… 또 경우에 따라서 좀 친해지면 반대로 저를 여자로 보려고 하는 분들도 있죠. 그런 때는 분위기를 봐서 영업팀장님이나 다른 팀장님들이 대체 인력 역할을 하죠. 기자들은 직접 사장이 만나야 되는데, 저희는 그런 편이어요. 우리 이런 거는 잘 못한다, 이런 데서 빵구났다, 그런 걸 솔직히 말씀드리면 더 편하게 받아들이시구 기사화도 잘 해주시고 그러죠.


 > 사장이 젊은 여성이 사장이라는 게 회사 색깔을 만들었을까요? 솔직하고 담백한 그런 분위기…?
어떤 분들은 저희 회사가 다 여자만 있는 줄 알아요. 그래서 맨날 미팅하자 그러더라구요. 남자 직원도 데리고 나갔죠. (웃음) 회사 분위기가 좀 나약해 보인다거나 이런 게 있다는데, 실제로는 안 그러려고 노력하죠. 가령 우리가 잘 못하면 거봐, ‘얘네는 사장이 어린 여자애라 그래. 거봐 그럴 줄 알았어’ 똑같은 잘못을 해도 이런 식으로 말할 때도 있고 또 반대로 똑같이 잘 했는데 더 주목받고 칭찬 받는 면도 있고 그래요. 칭찬도 크게 받고 욕도 크게 먹는 거죠. 회사 분위기 자체는 남녀 평등을 강조하기도 하고, 또 실제로 남자 보다 여자들 목소리가 더 크기도 하죠. 남자 직원들이 좀 처져 보인다는 말을 듣기도 하죠.


 참고로 인터 카드넷에는 여자 직원이 5명, 남자 직원이 4명이다. 
1년만에 평범한 여대생에서 업계에서 알아주는 CEO가 되었다. 주변의 관계도 달라졌을 것이고, 자기의식도 변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 물었다.

 

작년에 같이 창업한 친구랑 그런 이야길 했어요. 우리가 23년을 살면서 이렇게 열정적으로 산 적이 있는가. 사이트 만들고 창업하고 제휴하고 정말 보람되기도 했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거 같아요. 많이 변한 것도 있어요.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주 편하지는 않아요. 예전에는 스스럼없이 만나고 밥 먹으러 다녔는데, 농담이긴 하지만 요즘에는 “사장님이 떡볶이를 먹어도 됩니까” 하고 (웃음) 또 애들 만나거나 모이면 꼭 제가 밥을 사야 되고… 인간적으로 친했던 사람들하고 약간 벽이 생긴 거 같기도 하고요. 쟤는 벤처 사장이야 이런 말. 
늘 말하는 건데 저는 아직 성공한 게 아니거든요. 이제 한 발 내디딘 거거든요. 다들 너무 성공신화처럼 비추니까 아직 성공하지 않은 사람 입장으로서는 부담이 많이 되죠.


 > 어떤 목표를 갖고 계십니까?

일 해보니까 여자들이 일하기 힘든 게 맞아요. 비즈니스 문화나 사회 분위기가 자체가 남성 중심이니까요. 제가 아주 친한 여자 기자분이 있는데, 어떻게 친해졌냐면 특별히 제가 접대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 같이 떡볶이 먹고 핀 고르러 다니고 그랬어요. 그것도 어떻게 보면 여자끼리만의 접대 문화일 수도 있거든요. 
비지니스를 하는 여자들이 더 많이 생겨서 제가 하는 그런 방식이 특별한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일반적인 게 됐으면 좋겠어요. 여자 CEO들 모임도 있는데, 그런 것도 그들이 소수라서 뭔가 불만이 있어서 모이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여자 CEO란게 특별하지도 않고, 여자란 말이 앞에 붙지도 않고 그냥 CEO로 불리게 되는 때가 왔으면 좋겠고, 그런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예전에는 여성 인큐베이팅 센터 같은 걸 만들고 싶었거든요? 지금은 그냥 인큐베이팅을 만들고 싶어요.


 > 카드코리아를 어떤 회사로 만들고 싶습니까?
사람들을 만나보면 회사 나가고 일하는 걸 즐거워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거 같아요. 돈 많이 받는 사람들은 많이 받는 대로, 조금 받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행복해서 일하고 하고 싶어서 일 하는 게 아니라, 돈 때문에 또 뭣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저희 회사가 일한 만큼 받기도 하고 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회사, 회사 다니기 좋아하고 행복해 하는, 또 회사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회사가 되었으면 해요.


 > 그게 사장님의 경영 철학입니까?
그 교수님이 말씀을 하신 것 중에 제가 기억하려고 하는 게, 돈을 벌되 어떻게 버느냐가 하는 거죠. 어떻게 버느냐가 아니라면 그 교수님 말씀처럼, 경영학 공부하는 거 때려 치고 다 마약 밀매하러 가야한다, 그런 거죠. 어떤 클라이언트나 온라인 회원이나 그 사람들이 다 우리가 돈 벌게끔 해 주고, 무료로 카드를 보낼 수 있게 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 성공하신 게 아니라 그랬는데 어디까지 가면 성공하는 건가요?
금방 말한 대로 다들 일하고 싶어하는 회사를 만드는 게 1차적인 성공이지요. 그걸 뒷받침 할려면 또 일한 만큼 보상을 해주고, 그 보다 조금 더 많이 주면 회사를 좋아할 수도 있겠다 싶은데… 회사가 돈을 좀더 많이 벌어야 되겠지요. 지금 저희 회사 단기적인 목표가 세계화예요. 인터넷이 글로벌한 건데 아직은 지역적인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거든요. 우리나라에서 하던 방식으로 중국이나 일본에 가서 할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일단은 중국이랑 일본 쪽으로 진출해서 차차 글로벌한 시스템으로 만들어가는 거… 그런 게 인터넷이잖아요? 지금 북경에 진출한 상태고 이후에 일본으로 나가려고 알아보고 있어요.


 > 그 모든 일을 9명이 감당할 수 있어요?
아니죠. 지금도 헉헉대고 있는데. 사람을 더 뽑아야 하는데. 20명 정도가 필요해요. 사실 제 능력으로는 지금 9명도  벅차요. 그래서 12-3명 정도 되면 경험 많고 진짜 능력 있는 CEO가 나타나고 저는 원래 잘하던 부분, 기획이나 개발 쪽으로 다시 돌아갈려구요. 물론 지금도 실무는 하고 있지만 지금은 대표일 때문에 한계가 있으니까요.


 이 대목에서 감동을 받았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사장”과 다르다. 사장은 회사의 소유주가 아니다. 많이 가질 필요도 없고, 자기 능력에 어울리는 부서에 가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 IT 업계의 불황이라 그러는데, 실감하시나요?
배너 광고가 줄었다는 거에서 제일 먼저 느끼죠. 저희는 광고 대행사가 있어 거기서 제시해 준 것 중에서 골랐는데, 요즘은 안 그렇죠. 그리고 예전에는 아는 회사에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펀딩 됐다고 축하파티 하고 그랬는데, 요즘에는 펀딩 받아도 주변 분위기가 안 좋으니까 자제하죠. 요새는 말 하나도 조심스러워요. 어디 가서 농담으로 이번 달 월급 어떻게 주나? 그러면 소문 쫙 나요. 하하하. 어디 모임 나가다가 한 달 빠지면 개네 회사 어렵다는데, 이런 말이 돌고 괜찮냐고 전화도 오고 그러죠.


 > 실제로 벤쳐 기업을 하는 분의 입장에서 국가나 정책 차원의 지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지원자금도 많고, 시설 지원도 많고 그런데. 그런 거 실제적으로 받으려고 하면 새치기하는 사람들도 되게 많아요. 그래서 타기가 쉽지 않죠. 이런 데 있으면 좋은 게 그런 정보들을 귀 뜀할 수 있다는 거에요. 정부에서 지원은 해 주지만, 충분한 건 아니고. 1-2억 정도의 시설 자금지원은 많다. 5년 후부터 돈 갚아나가고 그런 거니까, 신생 업체들에겐 도움이 많이 되죠.  


 > 지금 당장 어려운 점이 뭡니까?
요새 맨날 고민하는 것이 사람 관리예요. 말씀드렸듯이 문제점이 발견되면 그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을 백업해 놓는 게 필요하지만, 아무리 사장과 직원의 관계라 해도, 1차적으로는 동생과 오빠의 관계나, 동생과 언니의 관계잖아요. 그런 면에서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동생한테 혼난다는 느낌을 안 받도록 하면서 그 사람이 가진 문제점을 잘 해결하도록 하는 거죠. 그래서 이메일로 이야기를 많이 해요. 직원들 있을 때 공개적으로 말하면 얼마나 자존심 상해요? 그래서 개별적으로 나가서 이야기하자, 1:1로. 
그런데 9명 다를 1:1로 이야기를 하려면 힘들죠. 회사가 커지면 팀장들이 사람들을 관리해야 할 텐데, 아직 그런 단계는 아니고요. 일일이 만나면서 고민 듣고, 문제해결 하고 그러죠. 농담처럼 하는 얘기지만, 우리 회사에서 제가 제일 떼쓰고 어리광부리고 귀여운 짓하고 그래야 될 나이거든요.(웃음) 그런데 제가 모든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어리광을 받아주고 그래야 되는 게 저의 위치거든요. 그런 게 때로 이상하기도 해요… 저녁 때 집에 가면서 “아이 씨, 내가 제일 어린데” 그런 말을 혼자 해보고 하죠.(웃음)


> 내년에 결혼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결혼하시면 일 하시는 게 어떨까요?
(웃음) 두가지가 헷갈리는데, 하나는 제가 어디 가서 투정할 데가 없어요. 개인적으로 친했던 사람들은 조금씩 단절이 되어 가고 있는 거 같고…. 그래서 남자친구한테 고민을 다 풀고 그러죠. 사업이 점점 커지면 고민도 점점 커질 건데, 내가 너의 정신적인 의지가 되어주마, 그렇게 남자 친구가 이야기하죠. 그래서 결혼을 빨리 하면 좋겠다 싶은데. 결혼하면 아무래도 여자로서 해야 할 일이 많아지잖아요? 주변에서 결혼한 여자분들이 고생 많이 하는 것도 보고, 또 그런 분들이 ‘넌 결혼하면 지옥이야’ 그런 말도 하세요. 그래서 두 가지 중에 어느 쪽이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걸 알려면 결혼을 하고 봐야겠죠? 하하하!


 > 친구들하고 관계가 달라지거나 끊기는 게 섭섭하지는 않나요?
그런 게 제일 슬픈데. 새로운 친구들도 생겼어요. 제가 전문 비서 과정을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걔네들은 제가 사업하는 줄은 모르고, 그냥 회사 다니고 컴퓨터 좀 잘하는 애라고 알고 있었어요. 걔들이랑 놀러 가면 밥 먹을 때도 딱 몇 등분해서 내고. (웃음) 전 그런 게 좋거든요. 걔들이 하는 고민들도, 제가 일상적으로 살았다면 했을 그런 고민들이죠. “요번 달 카드값을 어떻게 막지? 취직하려는 데 대기업이 좋을까? 벤처가 좋을까?” 그런 이야길 하는 걸 들으면서 대리만족을 하죠. 내가 그냥 살았다면 저렇게 살았겠지, 그런 생각요. 그런 친구들 만나는 게 마음이 편해요.


 > 여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남자들도 자기 기업을 가지고 해 나가는 게 쉽지 않은데, 이는 어찌 보면 남들보다 적어도 1-20년 앞질러 사는 것일 수도 있겠는데? 
요새 늘 농담처럼 제가 남들보다 1-2년 더 빨리 창업을 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1-2년 더 빨리 죽겠다, 그런 말을 해요. 고민도 많이 하고, 고생도 많이 했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만큼 얻는 것도 있고 잃는 것도 있는데, 얻는 게 더 많아야 되잖아요? 
그래서 회사 처음 창업하면서 가졌던 마음들 – 올바르고 좋은 회사를 만들어야겠다, 그런 기본적인 생각을 잃지 않으려고 힘들 때마다 생각을 해요. 이렇게 힘든데 이런 거 왜 하지? 그런 의문을 스스로 가졌을 때 답변이 바로바로 나와야 되잖아요? 안 나오면 슬럼프가 1주일이건 한 달이건 오잖아요.


> 돌아보면 어떤가? 초심이 유지되고 있어요?
처음보다 오히려 나은 거 같아요. 회사를 해야 하는 이유에 더 살이 붙는 건데. 처음 마음이 변한 게 아니라, 거기에 더 살이 붙고 구체적으로 되는 거 같아요. 돈을 벌면 구체적으로 뭐가 더 하고 싶은지에 대한 안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거죠.


 > 좀더 구체적으로……
제일 처음에는 그냥 등록금을 낼라고 그랬죠. (웃음) 그 다음엔 직원들이 일한만큼 보상을 해줄만큼은 되야겠다, 그런 거였고요. 지금은 아까 말한 인큐베이팅이나 사업의 확장이죠. 이민화 회장님이랑 여름에 밥을 먹은 적이 있는데. 사람이 살면서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 거 같냐고 물으셨어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죠. 그랬더니 말씀이 자기가 주변에서 갑부들을 많이 봤는데, 개인적으로 갖는 돈은 10억 이상이면 그 돈이 그 돈이래요. 10억이나 100억이나. 아닐 것 같죠? (웃음) 이민화 회장님이 저한테 아버지처럼 잘 대해주시는데,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너는 돈 많이 벌면 10억만 가지고 나머지는 학교에 기부를 해서 여성 인력이나 후배를 양성하는 데 기여를 해라. 그래서 그런 게 하나 더 살 붙은 거죠. 
근데 10억 이상을 벌 수 있을까요? (웃음)


인터카드넷은 그리 큰 회사가 아니다. 총자본금은 1억 7천 정도이고, 기관투자를 받은 거 아니고, 엔젤투자만 받은 상태이다. 자라나서 이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그야말로 젊은 회사이다.


> 카드 서비스만 해도 경쟁이 치열할 텐데요.
뭐 하나 잘 된다 그러면 다 따라 하는 게 있잖아요? 카드 회사 숫자가 거의 미국만큼 돼요. 카드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고, 여기서 더 투자해서 뭘 얻는 것도 힘들기 때문에 해외로 나가려 하잖아요. 또 국내에서는 카드를 기반으로 해서 다른 아이템을 붙여야 될 거예요.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다. 인터뷰 자리에서 시종 느낀 것은, 김경진 사장의 생각은 젊고 순수하다는 것이었다. 일이 끝나고 삼성역 쪽으로 가는 길을 걸었다. 욕망의 정글과도 같은 그 곳 테헤란로에서 아직 그러한 젊음과 순수가 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테헤란로가 약간은 덜 밉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