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 – 나는 꼬뮌을 꿈꾼다

“이것이 진짜 경제학이다”를 줄여 만들었다는 이. 진. 경 이라는 이름이 폭풍처럼 몰아쳤던 때가 있었다. 이진경이라는 이름을 눈으로, 혹은 짐작으로 찾아낼 수 있었던 시절, 이 시절이 지난 후, 언젠가부터 이진경은 <상식 속의 철학, 상식 밖의 철학>,<철학과 굴뚝청소부>의 저자로 다시 등장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자기의 청년 시절로 기억하는 먹물들이라면 이진경이란 이름 앞에 범연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본명 박태호.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을 출간, 분석 범주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하여 한국 사회의 성격을 분석하고 변혁 전망을 제안하는 포괄적 이론 체계를 보여줌으로써 일대 충격을 던졌다. 이때부터 이진경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현실과 과학}[노동계급] 등에 주로 글을 쓰다 1990 1월 노동계급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출소 이후 {철학과 굴뚝청소부}{필로시네마, 혹은 탈주의 철학에 대한 일곱 편의 영화}를 비롯해 {수학의 몽상}{철학의 모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저술 활동을 했다. 지금은연구공간 너머+수유연구실에서 공부와 강의를 하고 있다.

 

 

1 . 21세기 새로운 막스의 얼굴을 갖고 싶다

 

 

이것이 진짜 경제학이다. 이 문장을 줄여 만들었다는 <이진경>이라는 이름이 폭풍처럼 몰아쳤던 때가 있었다.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 이론지 {현실과 과학}, 지하 선전지 [노동계급]에서 이진경이라는 이름을 눈으로, 혹은 짐작으로 찾아낼 수 있었던 시절. 1988년에서 1990년에 걸친 이 시절이 지난 후, 언젠가부터 이진경은 {상식 속의 철학, 상식 밖의 철학}{철학과 굴뚝청소부} 같은 책의 저자로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모두 자기 청년 시절로 기억하는 먹물이라면, 이진경이라는 이름 앞에 범연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그래서인지 이진경을 만나러 가는 길에서부터, 너무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나 보다. 이진경이라는 이름이 정말 이것이 진짜 경제학이라는 뜻인지, 끝내 물어보질 못했다.

 

권보드래: 신원조사 몇 개부터. 고향은요?

이진경: 내가 나고 자란 곳을 묻는 거라면, 서울.

: 출신 성분은?

: 몰락해 가는 소부르주아. 완전히 프롤레타리아로 넘어가지도 않고 계속 몰락 중인.

: 모범생이었는지?

: 그렇게 말할 순 없지. 선생한테 대들다 눅신하게 맞은 것도 여러 번이었으니.

: 요즘 저술 활동은 거의 모범적인데. 저서가 열 권이 넘는 듯?

: 혼자 쓴 것만 쳐서 열 권 좀 넘는 정도.

: 주로 출옥 후에 쓴 것 아닌가?

: 그렇지. 91년 말 출옥하고 나서, 생각을 좀 정리하다가 93년경부터 {상식 속의 철학 상식 밖의 철학}{철학과 굴뚝청소부}{필로시네마} 등을 잇달아 쓰기 시작했으니까.



: 투옥 전에 쓴 글은 성격이 달랐다고 기억하는데.

: … 87년경부터 혁명을 꿈꾸면서 직업적 혁명가 조직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웠지. 그게 노동계급 조직 결성으로 이어진 거고. 80년대 말에는 혁명론, 노동자 교육론, 운동 방향에 대한 제언 등을 많이 썼지.

 


이른바 노동계급 조직 사건. 딱히 조직 이름을 붙인 적은 없지만 [노동계급]이라는 기관지를 발행한 덕에 그런 이름을 얻었다. 이진경은 1990 1월 노동계급 조직 중앙위원으로 구속, 2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다행히(?) 보안법이 개정되는 덕에 예정보다 줄어든 감옥살이였다.

 


: 묘하게 1990년 정도를 경계로 단절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편이다. 80년대 학번은 {사사방}, 90년대 학번은 {철학과 굴뚝청소부}로 이진경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것 같고.

: 단절을 말하는 사람들은 대개 80년대와 90년대의 내 모습을 모두 아는 사람이다. 90년대의 나를탈주의 철학으로 규정하고, ML주의자가 어찌 그럴 수 있느냐는 식의 논법을 많이 쓰지. 그러나 80년대의 운동이야말로 탈주적인 삶, 가장 지배적인 탈주의 방식이 아니었다 싶다. 기존의 지배적 체제,가치,;권력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이 바닥에 깔려 있던 거니까. 탈주로서의 삶이라는 면에서는 연속적이라고 생각한다.



: 말 그대로 연속적이란 말인가?

: 단절 없는 연속일 수는 없겠지. 80년대 운동의 지향점이 사회주의였다면 그건 90년에 결정적으로 붕괴되었으니까. 그럼 새로운 삶을 꿈꾸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게 피할 수 없는 질문이었던 거지. 맑스나 레닌으로 사유되지 않는 부분을 사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대성이라는 주제로 이 문제에 천착하려 한 거고. 나로서는 80년대와 90년대는 연속 안에 있는 불연속이다.



: 지금도 사회주의자라고 할 수 있나?

: 80년대에 답할 때와 강도나 뉘앙스가 다르겠지만, 부정하진 않겠다. 사회주의자라기보단 꼬뮌주의자라는 게 적절하겠지.


: 꼬뮈니스트? 공산주의자라고 보통 하지 않나?

: 공산주의가 경제적 생산양식에 편향된 의미라면, 공동체적 삶인꼬뮌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의 꼬뮌주의는 다르다. 구분해서 쓰고 싶다.


: 지금은 사실 푸코주의자나 들뢰즈주의자에 가깝지 않으냐고 묻는다면?

: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뭐 그래도 좋고. 푸코나 들뢰즈를 통해 맑스,레닌에게서 배우지 못한 것을 많이 배웠지만, ‘―주의자라긴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다. 푸코, 특히 후기 푸코에는 분명히 거리를 두고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적대라는 개념을 분명히 하지 않아 논리적 궁지에 빠진 게 후기 푸코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들뢰즈나 가따리는 스스로 맑시스트임을 천명하고 있으니, 푸코주의자다 들뢰즈주의자다 하면서 <전향>을 공격하려는 거라면, 글쎄. ‘―주의자라는 말을 남용해 보면, 들뢰즈는 맑스주의자일 뿐 아니라 스피노자주의,니체주의,베르그송주의자이기도 하다. 거기서 내가 관심을 가진 건 그의 맑시스트적인, 그러면서도 맑스에 없는 면모이고. 새로운 맑스의 얼굴을 갖고 싶은 거지.

2 . 꼬뮌, 우애적 관계로 맺어진 세계

 

 

: 90년대 이후 푸코나 들뢰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건 사실 같은데. 왜 그쪽으로 갔는지?

: 80년대에 갔던 길은 끊겨 버렸다. 사회주의의 몰락을 맑스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다. 역사의 불회귀점을 건넜다고 했는데 그게 뒤집혀 버린 거니까. 맑스주의 자체의 역사에는 자기도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공백이 있다. 기존 맑스주의 안에 없지만, 그럼에도 사유되어야 하는 중요한 영역이 있다는 거다. 그걸 무의식과 주체의 문제라고 판단했다. 푸코와 들뢰즈의 작업이 이에 해당하니까, 많이 배웠지.


: 사회주의 붕괴로 모두 무로 돌아갔다고 주장하는 건가? 그럼 이전의 사회주의는 대체 뭐였을지?

: 독자적인 생산양식이지, 자본주의로 환원되지 않는. 그러나 경제적 생산양식 아닌 또 다른 생산양식이 있다는 거지. 주체 생산양식이라고 난 부르는데. 이전의 사회주의는 <근대적> 사회주의였다고 생각한다. 경제적 생산양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주체 생산양식에선 <근대적>이었다는 거지.



: 근대라는 말로 너무 많은 걸 뭉뚱그리는 건 아닌가.

: 자본주의에도 여러 종류가 있잖아. 파시즘·사회민주주의·비자발·반봉건 등. 그렇다고 자본주의라는 말의 의미가 사라지진 않는다.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의 지반이 무언가를 찾자는 거지. 반대로 말하면 오히려 미세한 차이에 관심이 많기도 해. 전체주의와 파시즘의 차이 같은 것.

: 공통된 지반으로서의 근대란 뭘 말하는 건가?

: 근대적 삶의 방식이자 근대적 주체생산 방식이겠지. 내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사회주의는 대체 왜 망했을까, 자본주의는 왜 안 망할까라는 거다. 간단하다. 경제적 생산양식으로서의 사회주의와는 달리, 분명 근대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 사회주의의 경제계획이나 법률 등은 극히 근대적이었으니까. 이걸 이해해야 사회주의의 몰락을 이해할 수 있다.


: 근대를 뛰어넘을 가능성을 찾았나?

: 꼬뮌주의. 공산주의라고 할 때는 경제적 개념이 돼 버리는데, 그걸로만 환원되지 않는꼬뮌말야. 함께 살아가는 행위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꼬뮌주의라고 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있다. 예수나 프란치스꼬회나 프리메이슨 당 등이 보여준 거지. 우애적 관계로 삶의 방식을 재편하자는 제안. 보다 나은 삶에 대한 꿈이 있는 한 이런 운동도 영원할 거다. 꼬뮌주의는 희망의 원리이며, 그런 의미에서 영원하다

: 공산주의만큼 강렬한 꼬뮌주의도 없었던 것 아닌가? 공산주의의 목적이란 결국 새로운 인간형과 새로운 사회질서의 창출 아니었나?

: 맑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생산양식과 인간의 변혁이 모두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런 지점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도 공산주의적 인간형을 모색했던 것 아닌가?

: 휴머니즘이나 인간학은 내 동기가 아니다. <인간>이라는 모호한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건 없다. 문제는 인간 자체가 아니라 특정한 주체로 선 인간이다. 그리고 이 특정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서는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경제적 생산양식만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다. 생활양식의 구체적 조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 구체적으로 뭘하란 말인지 모르겠다. 유유자적 비판적 의식만 간직한 채 살아가라는 말처럼도 들리고.

: 그런 태도가 문제다. 누군가 잘 정리해 주면 좇아가겠다는 식의 생각 말야. 그런 명령복종 체계에서는 자발적으로 삶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주체가 탄생할 수 없다. 각각의 영역에서, 자율적으로, 이 고식적인 삶을 깨는 데 필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예컨대 나는 시공간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삶을 위한 노력을 평가하고 제안해 나가고 있다. 이것도 구체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생활양식의 문제는 인위적으로 명료화될 순 없으니까.
 

 

: 그래도 지금까지 모든 혁명은 집단적 운동이었는데, 체계적 계획 없이 꼬뮌주의의 실천이 가능할까. 자족적으로 끝나는 건 아닌가.

: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누구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계획의 구체성이 공상성을 극복하질 못했던 거다. 계획이 있다고 과학적인 건 아니다. 꼬뮌주의의 테제란 화폐에 대해 투쟁해야 한다는 정도겠지. 규칙이나 명령에 익숙한 삶의 방식을 깨 나가야 한다는 것하고. 어디서나 이런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결코 국지적이거나 모호한 테제는 아니다. 계획이 명료하면 문제가 해결되나? 강령이 바뀌면 사회주의의 역사가 바뀔 수 있나? 중요한 건 삶의 방식, 사고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 일상적이고 항상적이라는 점 때문에 실현하기 어려운 점도 있지 않나? 그 동안 다양한 조직 경험도 했을 텐데, 어떻게생각하는지?

: 외부의 적과는 싸우기 쉽다. 문제는 내부의 적이다. 그러므로 혁명은 훨씬 힘들고 근본적이다. 기존의 운동방식도 여전히 필요하지만, 어떻게 자율적인 질서를 확보하느냐는 각자의 영역에서 파고들어야 할 문제다.
 

 

: 탈주가 비판의 제스처에 그치지 않고 삶의 문제가 되기 위해서는 무겁게 자극해 오는 힘 또한 있어야 할 텐데, 어떨까?

: 일상과 싸우려는 의지 없이 혁명적 구절 몇 개 갖고 혁명 대오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공부한 게 맑스주의라, 혹은 노동운동이나 시민운동에 관여하고 있으니까 진보적이고 혁명적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실상은 맑스주의와 전혀 상관없는 공부를 하는 사람이 훨씬 진보적일 수도 있다. 문제는 뭘 공부하고 어디서 활동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다. 어떻게 삶을 갱신하고 변화시키는 실천을 하느냐지.
 

 

: 그런 실천을 <탈주>라 부르는 건가?

: 내가 말하는 탈주란 세상<으로부터> 탈주하는 게 아니라 세상<> 탈주케 하는 거다. 긍정이고 창조다. 지배 체제가 이걸 포섭하면 빠져나가고 또 빠져나가고.
 

 

: 개개인의 탈주라는 게 자본주의에 먹혀버릴 가능성이 크지 않나. 무기력해 보이기도 한다.

: 무기력하기보다 힘들다. 빠져나갔다가 잡히고 또 같은 과정을 반복하게 되니까. 자칫 허무해질 수도 있지만, 그런 식으로 자유의 공간을 계속 만들어가야 한다. 그걸 포섭하다 보면 지배 체제 자체에 느슨한 구멍이 자꾸 생기기 마련이니까.
 

 

: 그래서야 세계의 근본적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 자본주의 이후 사회주의, 그 다음 꼬뮌주의이런 식으로 생각해선 결코 꼬뮌주의가 올 수 없다. 꼬뮌주의는 기약할 수 없는 미래의 일이고, 당장 급무는 자본주의를 뒤엎는 일일 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안에는 수많은 외부가 있다. 구멍 같은 게. 꼬뮌주의란 이 구멍을 계속 파는 거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넘어가면 좋고, 적어도 그렇게 꼬뮌주의를 현재형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3 . 삶의 변혁, 끝없는 과정

 

 

이진경의 말은 달변이라고 하면 꼭 좋을 말이다. 막힘이 없고 논리적이며, 주술 관계 하나 함부로 어긋나는 데 없이 깔끔하다. 머릿속에서 이미 수없이 자문자답한 문제에 답하는 것 같다. 이 깔끔하고 유창한 언어를 교란시키기 위해서는 <날것>을 들이대야 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모든 순간 순간을 <탈주>라 부를 수 있는 행동으로 채워나가고 계신지요? 어디 사시죠? 가족은? 80년대의 탈주가 그토록 위험했는데, 지금의 탈주란 이렇게 평온해도 되는 건가요?… 이런 질문이 과연 단단한 논리의 벽을 얼마나 뚫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그런 질문은 하나도 던지지 못했다. 계속 말꼬리 잡고 늘어지다가, 이 때쯤에는 좀 슬퍼졌기 때문이다. 나는 뭣 땜에 이리 추궁하듯 당당한가? 어떤 사람이 80년대를 열심히 살았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추궁당해야 할 이유가 있는 건가?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나, 왜 열심히 산 사람을 향해책임져!” 하고 아우성치려 하는가?  이진경이라는 사람은 여전히 성실하고 진지했으며 철두철미 열심히 사는 것 같았다. 그렇게 보였다.

 


: 자본주의 사회지만 난 그렇게 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 <>가 아니라 <우리>. 집단화되면 자본주의와의 접촉면을 극소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도시 실업자와 노동력 부족 지역의 연계나 지역 화폐 운동 같은 데 관심이 많다.
 

 

: 소수자로서의 선언처럼 들린다. 자본주의 사회는 계속되겠지만, 결단한 소수는 자본주의적 삶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식으로.

: 자본주의는 하나의 공리계다. 무릇 공리계란 새로운 공리가 계속 추가되다 보면 전혀 새롭게 탄생하게 돼 있지. 애초의 공리계는 붕괴하고.
 

 

: 혁명이 아닌 개혁, 그저 안에서 꿈지럭대는 데 그치지는 않을까?

: 관건이 되는 공리를 공격하면 공리계는 변화한다.
 

 

: 소수자로 조용하게 사는 데 그칠 위험은 없고?

: 소수자가 조용하다고? 소수자는 소란스럽고 시끌벅적할 수도 있다. 권력에서 소외되어 있다고 조용하랄 법 있나?
 

 

: 구체적으로 자기 자신은 어떻게 사나?

: 편안한 삶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으니까. 적게 일하고 적게 번다. 돈 버는 데 쓰는 시간은 최소한으로 하고, 하고 싶은 일 하는 시간을 늘리면서 산다.
 

 

: 저술가로서만 활동해도 먹고사는 게 가능한가?

: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회의적이다. 그래도 글쓰고 번역하는 걸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있긴 있지.
 

 

: 전문 연구자로서의 역할과 대중적 저술가로서의 역할 사이에 갈등은 없는가?

: 난 그저 내 나름의 화두를 찾을 뿐이다. 한 곳을 미친 듯이 파는 대신 이것하다 저것하다 한다. 글쓰기에서는, 운동할 때 갖게 된 문제의식인데, 쉽게 쓰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 기회가 닿으면 대학에 자리잡을 생각도 있는지?

: 교수 안하겠다는 신념은 없으니까. 특별한 노력을 안 한다 뿐이지. 난 대학에 관심이 있는데 대학은 나한테 관심이 없는 것 같아

 

: 박사논문 제목이 [서구의 근대적 주거공간에 대한 공간사회학적 연구]였죠? 사회학에 관심을 끊은 게 아니라면, 구체적으로 한국 현실을 탐구할 생각은 없는지?

: 근대가 전형적으로 나타난 곳을 택해 근대에 대한 이해를 꾀하는 게 더 생산적이리라고 생각한다. 맑스가 독일 대신 영국을 택했듯
 

 

: 너무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문제에만 몰두하는 것 아닌지. 삶의 조건을 조금씩 바꾸려는 구체적인 노력도 필요하지 않은가. 구체적인 개선과 진보를 등한시하는 건 아닌가.

: 현실 운동에 대해 발언하지 않는다는 비난으로 들리는데. 그럼 모든 사람이 운동에 뛰어들어야 한단 말인가? 운동 아닌 모든 건 무용하다는 말? 그건 위험한 얘기겠지. 어차피 내가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질 순 없다. 노동운동이나 정치활동도 해 봤는데,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구.
 

 

: 어쨌든 추상 수준이 높은 사유를 주로 하고 있으니까, 현실과의 접점을 찾지 않는다면 자칫 공상이 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 자기 삶을 변화시키면서 끊임없이 실험대상으로 삼는 정신이 필요하다. 연구공간 너머와 수유연구실에서도 꼬뮌주의적 삶의 방식을 실험하고 있는 셈인데, 아직까진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실패를 두려워하면 주사위를 던질 수 없겠지.
 

 

: 소수자 얘기를 계속 했지만, 실상 그렇게 말하면서 시대의 주류를 타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은 정치·경제적 변혁을 위해 밑바닥에서 헌신하는 쪽이 소수자로서의 삶에 더 가까운 게 아닐까.

: 노동운동·시민운동 등, 물론 중요하다. 다만 내가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수 없을 뿐이다. 소상하게 알고 관여하고 있어야 말할 수 있는 일일 테니까. 뭐든지 비판할 수 있는 철학자, 그건 웃음거리라고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보자. 80년대에 대한 부채의식이랄까, 혹 그런 건 없나?

: 내가 뭐 잘못한 게 있기라도 한가? 부채의식, 없다. 나는 80년대에 대해 정말 감사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