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바람 이박사, 아세요?
거 있잖습니까, ‘키움닷컴‘ 선전에도 나오는 뽕작메들리 가수 신바람 이박사요.
한두 번쯤 이박사란 사람에 대해 들어보셨을 테지요.
‘갈아만든 배‘ 선전에 나오는 “오늘도 신나게 학교에 가방을 둘러메고 짠짠짠…”하는 노래. 그것도 이박사가 부른 노랩니다. <하이스쿨 록큰롤–등교편>이라는 노래지요.
이박사의 본명은 이용석. 47세, 160cm, 45kg의 왜소한 체구를 가진 뽕짝 가수입니다.
89년도에 뽕짝 메들리 테입을 취입한 후로 그와 비슷한 수십 개의 테입을 냈구요, 95년도엔 급기야 일본에까지 건너가서 활동한 ‘국제가수‘입니다.
98년도에 다시 귀국했는데 요즘처럼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지요.
네티즌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게 올해 5월쯤인데 불과 넉달 사이에 이박사는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각종 통신 상의 팬클럽을 다 합치면 한 만 여명 된다고 그러는군요. 저도 그 팬 중의 한 명이지요.
그 전에도 알만한 사람은 알음알음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몇 년 전 시트콤 <세여자 세남자>에서 홍경인이 ‘홍박사‘란 이름으로 가수 데뷔를 하는 내용이 있었지요. 그리고 영화 <거짓말>의 배경음악으로 쓰인 달파란의 <청산유수>. 이것도 이박사의 <청산유수>를 테크노로 편곡한 것이었죠.
“휘파람을 불며가자 어서여 가자 송아지가 엄마찾는 고개를 넘어..” 이런 거였는데, 아시나요?
그런 이박사가 이번엔 좀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인터넷에서 음악을 뒤지다가 누군가 이박사의 음악이 일본쪽에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입소문은 순식간이었습니다. 그가 일본에서 부른 노래가 화제가 된 것이죠. 기발한 가사와 신나는 테크노류의 리듬이 요즘 시대에 맞아 떨어진 모양입니다.
급기야 그 인기를 업고 소니뮤직 코리아에서 제대로 된 음반이 나왔습니다. ‘가재발‘이라는 두 명의 젊은이와 손을 잡고 만든 이 음반의 타이틀 곡이 <스페이스 환타지>)라는 노랜데, 이건 사실 97년 일본에서 부른 동명의 곡을 새롭게 편집한 것이지요. 또한 30곡의 메들리가 들어있는데 이것도 95년도에 일본에서 처음으로 발표한 <뽕짝 대백과사전>이라는 음반에서 조금만 손을 봐서 가져온 것입니다.
이 새 음반과 이박사의 두각을 놓고 사람들은 말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가 뽕짝메들리 테입으로 호구하며 살 때는 아무말 않다가 그것이 메이저레이블의 시디로 나오면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넓혀가니 뭔가 부적절해 보이는 모양입니다. 강헌 씨는 ‘대중문화의 명백한 퇴화‘라고 말했고 달파란 씨는 ‘이박사가 마이너문화 – 키치로서의 오리지날리티를 상실했다‘고 안타까워 합니다.(동아일보 9월5일자)
그러고 보니 이번 인터뷰가 이박사와의 세 번째 만남입니다. 교대역 부근에 있는 소니뮤직코리아 본사 회의실에서 이박사를 만난 거지요.
자, 그럼 저와 함께 이박사를 만나 보실까요?
면식범 : 오랜만입니다, 박사님. 저, 기억나세요? 지난 캠프때 노래자랑에도 나갔는데…
이박사 : 아, 알죠. 그럼요. 의정부서는 불편하지 않으셨어요?
면 : 캠프 때는 정말 좋았습니다. 박사님은 그 뒤로 어떻게 지내시는지?
이 : 특별히 공연은 없고 요즘은 주로 인터뷰를 많이 해요. 10월과 12월에 큰 공연 계획이 있는데. 10월에는 우리나라 대학로에서 1주일간 라이브할 계획이예요. 전국 투어는10월 들어가면 준비할 꺼고. 극비리에 진행중이라서…
면 : 지난 캠프때 어떠셨어요? 그전에 이렇게 크게 한 적은 없었는데…
이 : 야외 단합대회치고는 많이 모인거죠. 일단 그날은 전체가 다 온 게 아니고… 교통편이 안되서 대표, 운영진만 추려가지고 온 거죠. 부산팀들은 관광차로 와서… 대단히 고마운 분들이죠.
면 : TV에 나갈 의향은 있으세요? 전에 TV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신 기억이 있는데요.
이 : TV같은 건 그렇게 많이 생각 안 해봤어요. 왜냐면 내가 라이브가수니까… 음악을 들려주는 것을 원하는 것이지 내가 테레비에 자주 출현해가지구, 그냥 여기도 번쩍, 저기도 번쩍, 이런 건 사람이 좀 질리잖아요… 나 자체도 방송 프로그램마다 구구절절히 쫓아다니면서 하고싶은 마음은 별로 없어요. 가수라면 노래를 부르는 게 가수지… 내가 매니저 분에게 얘기를 많이 하죠. 테레비 같은 데 많이 나가는 건 원치 않는다, 이 방송 나오고 여기도 나오고 여기도 나오면, ‘여기도 나오고 여기도 나오네‘ 그러면 사람이 싫증이 나니까… 이제 좀 반짝하다가 안 나오다가 또 궁금할 때 즘 나오면 그게 궁금증을 더해주고…
면 : KBS에서는 <스페이스 환타지)가 방송부적합 판정을 받았다면서요?
이 : 크게 구애 안받아요. 그게 뭐, 방송이 KBS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도 많으니까. KBS를 위주로 해 가지고, 뭐, 가수가 되니 안되니 하는 생각은 안 해봤고… 그렇게 크레임이 걸리면 할 수 없는 것이고…
면 : 섭섭하지는 않으셨어요?
이 : 아주 그렇게 100푸로 만족치는 않지. 그래도 가수니까… 그렇지만 그게 다 장단점이 있으니까. 거기서 크레임이 걸렸으면 그런가부다. 다른 방송국에 나가서 또 열심히 하는 것이고.
면 : 팬들은 섭섭해 하기도 하고 화도 난다고 그러더라구요.
이 : 그렇겠죠. 팬들은 욕심은 다 있으니까. 팬들은 나에 대해서 다 원하겠지만 나는 될 수 있으면 듣는 쪽으로 해 줄려고… 듣는 쪽으로가 아니라 테레비에 나가, 있는거 다 보여주고 그러면 또 그렇잖아요? 듣는 쪽으로 계속 하다가 탁 튀어나와서 한 번 해주고 그런 것을 원하죠.
면 : 그럼 라이브를 계속하시겠네요.
이 : 라이브, 좋잖아요? 틀에 박힌 쇼가 아니라, 야외무대에서 하는, 생각지도 않은 쇼를 좋아해요. 그래야만 팬들도 좋아하고… 똑같은 레파토리가 나오면 재미없잖아요?
애드립도 그래요. 저, 애드립 할 적마다 다 틀리게 하려고 그래요. 이 장소에서는 이렇게 하고 저 장소에서는 또 저렇게 하고. 그러면 “어 그 노래는 분명히 여기서 ‘앗사~~’ 가 들어가는데 여기서는 ‘오르르휘‘가 들어가네? 이런 식으루다가, 바뀌게끔.
여기서 이박사의 에드립을 좀 정리해 볼까요. 뭐니뭐니 해도 이박사의 애드립의 절정은 ‘좋아 좋아‘와 ‘오르르르휘‘라고 하겠습니다. ‘띠디디리 ~~ ‘, ‘앗싸‘ 이런 건 기본이고 ‘미쳐 미쳐‘, ‘미쳐 좋아‘, 일본가서는 ‘요시 요시(좋아 좋아)’ 등이 쓰였고, ‘배고파 미쳐‘, ‘힘들어 죽겠다‘, ‘하나도 못하면서 여러 가지 하네‘, ‘제정신들이 아니야‘ 이런 구절도 귀를 끕니다. 그중에 ‘자꾸 쓰레빠가 벗겨지고 난리야.’ 이건 기가 막히죠.
2 . 된장은 된장이다
면식범 : 뽕짝이라는 장르가 그렇게 공연하고 함께 놀기에는 참 좋아 보입니다.
이박사 : 그럼요. 아무 때나 부를 수 있고, 아무 장소에서나 되니까 적응이 빠르지. 단지 정통 음악이 아니니까…. 정통 음악은 한 번 듣지, 두 번은 못 들어요. 나는 그거 탈피시킬려고… 똑같은 노래도 이제 나 나름대로 연구를 해서 애드립을 집어넣으면, 아, 분명히 요기 나갈 때는 ‘앗싸 좋아‘ 했는데 요기선 ‘어쭈구리‘가 나오네? 이렇게 반대로 나가니까…
면 : 그러면 호감은 가지만 음악이 정통성을 잃고 노래도 아닌 이상한 것이 되지 않을까요?
이 : 팬들도 박수치고, 나도 놀아주고. 흥겹게 그렇게… 편한 무대 그런게 좋지, 그냥 틀에 박힌거, 그냥 음악 나오면, 딱 맞춰 경례하고 노래부르고 들어가는 거 나는 싫어해요.
예를 들어서 이박사가 <가요무대>에 나와 가지고 ‘두만가앙~~~푸른물에 ‘, 이렇게는 못하는 거라. 그냥 있는 그대로 라이브같이 쇼를 하는게 나는 좋은데, 보는 사람은 그걸 다 좋아 하는게 아니니까… 이박사는 다 좋고 재밌게 하는데 정통성이 빠지는게 아니냐, 멀리하는게 아니냐, 그런 소릴 듣 긴 들어요.
악보대루다 노래를 하게 되면, 자기 나름대로의 희열은 없는 것이지… ‘나는 이게 좋은데‘ 하는 걸 살릴 수 없으니까. 내 식대로, 악보대로 하되, 내 식대로 불러주면, 사람들이 보면 쉽거든. ‘야, 이런 건 신기하다‘ 하면서도, 호감이 가고. 그러니까 나는 사람들에게 ‘아, 내 음악은 이렇습니다. 내 음악은 정통 성이 있으니까 절대 다른 쪽으로 가지 말고 정통으로 가야됩니다‘, 이런게 아니라. 흐름 자체가, ‘편하게 가십시 오‘. 다 틀리니까, 개개인마다… 그걸 내가 해주는거야.
면 : 그런 점을 팬들은 좋아하는 거 같더군요. 캠프 때 다른 사람들 만나봐도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하더라구요. 옆집 아저씨 같다. 편하다. 연예인 같지가 않다. 이런 반응이었습니다.
이 : 나는 꾸미는 게 싫어요. 나로 인해서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면, 그건 원숭이란 말이야. 재주보러 오는거니까. 상대방 기분을 다 내가 뺏어버릴 수 없잖우. 안그래요? 상대방에게도 좀 나눠 줘야지. 그래서 라이트를 나에게 비추지말고, 나도 당신네 보고 하겠다. 그랬잖아? 일부러… 그런 걸 좋아해요. 꾸밈이 없 는거야.
실제로 그랬습니다. 의정부서 이박사는 자신에게 맞춰진 2개의 라이트 중 하나를 관객쪽으로 돌려놓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얼굴을 좀 봐야지…”이렇게 말했지요.
면 : 그런 분위기는 관광버스 때 놀던 그 분위기를 뿌리로 하는 것 같군요.
이 : 그렇죠. 관광버스 손님들 무시하면 안돼요. 이미 그분들은 10년 전에 나에 대한 노래를 충분히 알았으니까. 그분들이 따지고 보면 원로는 원로야. 신세대는 몰라서 그렇지. 뽕짝 테크노를 몰라서 그렇지, 뽕짝 디스코는 알고 있었거든. 오히려 더 빠른거지. 내가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하는데, 신세대들은 뽕짝 테크 노를 이제야 알고 좋아한다면 옛날 어른들은 이미 10년 전에, 그게 뽕짝 디스콘데, 벌써 메들리의 맛과 이박사의 애드립을 알고 있는거야. 그래서 분위기에 맞춰 춤을 추게 되는 거고. 그래서 외려 어르신네 분들을 보면, 역시 연륜은 못 속 이는구나, 연륜이라는 게 무서운 거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면 : 역시 박사님은 축제마당같이 한데 어울려 노는 걸 좋아하시네요. 서구식으 로 무대에 올라가서 인사하고 노래하는게 아니라, 마당놀이 같이 경계 없이 한데 어울리는 음악이랄까요? 음악도 음악이지만 노 는 마당 자체가 특징이랄 수 있군요.
이 : 그렇지, 그런 걸 좋아해요. 그렇죠… 집안 식구 파티같은 거. 대신에 너무 저질적으로 보진 말라 이거지. 나는 음악을 강조하는 거 보다는, 이박사가 손님들 마음에 심어주고 찔러줄 뿐이지 음악을 무시하는 건 아니란 말이지. 나도 연조를 따지면 오래됐으니까.
면 : 가수중에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요?
이 : 그런건 없지. 누가 나를 라이벌을 느낄지 몰라도.
면 : 다른 메들리 가수와는 관계가 어떠세요?
이 : 그분들과는 경쟁이 없어요. 그분들이야 자기 하는 게 있는 것이고 나는 나만 하는 게 있는 것이지. 다른 메들리 가수가 나보다 더 나은 게 나왔다 그래도, ‘어쭈 나도 더 잘해야지‘, 이런 생각은 없 어요. 그 사람들도 평생 고생해왔기 때문에 잘됐으면 좋겠구… 나는 내식대로 그냥 하는거구. 절대 욕심 내지 않 아요. 남의 걸 탐내진 않아요.
면 : 노래 부르는 사람들은 많은데요. 메들리 가수도 많고. 다른 뽕짝가수와 다른 점이 있나요?
이 : 다른 점이 있다면 리듬 자체가 빠르구. 좀 비트가 강하죠. 하이 클라스(고음 을 말하는거 같습니다. 하이텐션이라고도 하던데)가 좀 높고, 그 담에 저음이 있고. 애교스러운 간지러움은 없어요, 내가. 상대방 가슴을 찔러주는 가창력을 내가 많이 쓰는 편이예요.
면 : 고음을 많이 쓰신단 얘기군요. 그런 목소리는 민요, 특히 서도창과 비슷하 던데. 특별한 발성법이라도 있습니까?
이 : 서도민요 좀 했죠. 어머니께서 하셨던 게, 경기민요였구. 그 담에 제가 73년 도에, 세운상가 건너편에 보면 이창배 선생님이라고 계십니다, 그분한테 73년도에 조금 했습니다. 그분이 서도소리 1인자거든. 그러고 그 다음에 가요는 KBS 노래자랑 처음에 나왔을 때 심사보던 임종수 선생한테서 73년도에 사사를 좀 받았고. 그때 악보공부를 했죠.
민요의 창법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민요는 맛이 있게 굴려줘여 되구, 감 칠맛 나게 땡겨주고 쳐줘야 되는거구. 가요는 안그렇잖아요? 가요는 흐름만 따라주면 쉬우니까.
면 : 국악식으로 말하면 뽕짝 이박사류(이박사 <새타령>), 이렇게 불를 수도 있겠네요.
이 : 내가 좀 민요 맛을 많이 내는 목소리죠. 전통트 로트의 맛을 내면, 나에 대한 장단점이 안들리지. 좋은게 있고 나쁜게 있잖습니까? 그런데, 정통 가요 식으로 하면 나의 장단점이 안 나타나는데, 민요 맛을 곁들이면 그게 나타나요. 그러니까 저음 나올 때는 허스키보이스가 나오는 것이고, 고음은 아주 깔끔하게 나가면서도 굴리는 게 있죠. 좀 특이하죠.
우리나라는 4:6제라고 보면 되요. 민요가 넷 들어가죠. 우리나라는 민요를 좋 아해요. 민요의 흐르는 맛을 따르더라구. 23년간 음악을 해오면서 보니까. 가요나 뽕짝이나 팝송이나 민요가 들어가요. 난 그걸 알고 있어요. 내가 민요를 좋아하기 때문에.
어떻게 아냐면, 민요는 꼭 저음을 쓰거든. 남도, 서도, 경기민요, 모두 하이 크라스만 쓰는게 아니라 저음도 쓰거든. 우리나라는 어떤 노래라도 저음을 써요. 내가 김경호씨 노래를 좋아해요. 그 사람이 엄청난 고음이잖아? 그래도 나중에 저음도 쓰잖아. 그래야 노래가 되거든. 저음을 쓰고 싶어 쓰는 게 아니라 어 떻게 하다보면 저음이 나와. 민요가 원래 그렇거든. ‘얼씨구 좋네절씨구 좋네..아아아아리라앙…’ 이렇거든.
73년 음악할 때부터 알기 시작했는데 우리나라는 민요든 가요든 음악을 좋아 하는 민족이에요. 특히 아리랑 흐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그 흐름이 그대로 우리 가요에 숨어있는 거예요. 노래를 보면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얼씨구 만나보세‘ 이런 거거든.
3. 테크노가 별거냐?
면식범 : 이번 음반은 테크노가 가미되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연령층이 제한될텐데 박사님이 말씀한 대로 한 데 어울려 놀 수 있을까요?
이박사 : 그렇죠. 테크노가 비트 있지. 정통 뽕짝으로 가면 40세 이상만 즐길 것인데, 테크노는 신세대 쪽이란 말이야. 어르신네분들은 이박사의 뽕짝 디스코만 들었지 뽕짝 테크노는 안들어봤단 말이지. 이번이 첨이란 말예요. 그래서 얼마 전에 테레비 인터뷰에서도 말했지만 먼저꺼는 디스코, 리듬이 약한 디스코 사운든데, 요번에 나온건 사운드가 좋은 테크노다, 그렇지만 어르신네들도 테크노를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이 부른 것도 있지만, 이박사가 부른 테크노란게 어떤 건지 좀 알고 계십시오. 테크노도 이런 게 있는 것이구나. 테크노 음악에 뽕짝을 입히니까 듣기는 좋지 않느냐? 신나구.
원래 테크노란 게 뽕짝에 들어가면 안 되는 거에요. 팝송에 들어가야지, 영어에 들어가야 하는 거야. 근데 뽕작에 입힌 건 내가 처음이지. 우리나라는 원래 민족이 음악을 좋아하는 민족이고 뽕짝을 좋아하는 민족이니까. 그게 적응이 되는거죠. 외국에서는 안 멕히지…미국같은데서? 거기서는 아주 이상하겠지.
면 : 테크노 뽕짝을 나이드신 분들이 정말 좋아하실까요. 10대 중심으로 가다보면 중장년층의 팬들을 잃지 않을까요?
이 : 나도 그래서 40대 이상 되시는 분에게 물어봤어요. 선배님들이나 친구들에게 물어보니까, ‘좋더라, 새롭더라. 이런 것도 뽕짝에 들어가도 되는구나‘ 이런 소리들을 해요. 테크노라고 해서 10대만 좋아하는 음악이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가사인줄 알았다는구만. ‘이박사가 테크노 한다고 그래서 가사가 빠르고 그럴 줄 알았는데, 들어보니 쉽네, 이렇게 테크노에도 빨리 적응이 되네‘, 이런 소릴 들었어요. 테크노가 들어가면서 뽕짝의 범위가 더 넓어진 거죠.
이번에 내가 모니터를 해봤는데, 오히려 40대 이상 중년분들이 좋아해요. 요즘 새벽 5, 6시에 동산에 가면 보통 40세에서 60세까지 500명씩 모이거든. 그때에 이박사 노래가 들어가. 거기서 내 음악을 틀어놓고 에어로빅을 한대. 그러면 됐죠? 평소에 40되는 아줌마들이 에어로빅을 영어로 된 노래로 했거든.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근데 이박사 노래가 거기 들어간다고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기분이 좋은 거지.
면 : 테크노 전략이 성공한 셈이네요.
이 : 그게 좀 더 확산이 되어야겠지만 연세 많은 분들도 좋아한다니까. 성공이라고 생각을 해야죠
면: 근데 테크노의 옷을 입힌 게 오히려 젊은층의 일부 팬들은 불만인거 같던데요. 이전의 이박사를 잃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걱정…말하자면 어떤 변질을 우려하는 것이지요.
이 : 왜 불만이냐면 나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게, 평소에 내가 한국에서 냈던 그런 음반이 아니고, 일본에서 활동하고 곡을 엠피스리로 따가다가 원판을 듣게 되면서부터인데, 지금 나온 건 일본말이 아니니까, 아무래도 틀리지.
원래 그렇잖아요? 된장찌개 원조가 있으면 그 뒤에 나온 게 원조를 못 따라 가듯이… 내가 일본에서 음악을 이렇게 만드니까. 그전 꺼 듣다보면 ‘아무래도 먼저께 좋은거 같은데 먼저께 더 감미로운 거 같은데‘, 이런 게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이걸 안 냈으면 그게 좋았겠지. 근데 사람이 그렇지 못하잖아. 취향이 다 다르니까. 일본에서 내가 냈던 음반은 속삭이는 쪽이에요. 일본사람들은 가창력도 좋아하지만, 속삭이는 쪽을 좋아해요. 하얀 백지에 장미꽃 한송이를 살포시 올려놓은 거 그런 걸 일본사람들은 좋아해. 그런 식으로 했어요, 일본에서는. 그런데 한국은 또 다르잖아. 가창력을 써야되고 힘차게 핵심을 찔러줘야되니까 음악이 틀리지. 아무래도 대조적이지.
면 : 음악이 달라서 그렇다 해도 특히 이번 음반에 들어간 24곡 메들리는 영 불만인데요. 각 노래가 한 소절씩 빠졌있잖아요. 꺾어지는 목소리 자체와 유장한 애드립을 즐기는 사람들은 아쉽거든요. 1,2절이 가사는 비슷해도 해도 분명히 조금씩 다르고 애드립도 달라서 그게 이박사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왜 그렇게 되고 말았는지.
이 : 일본에서는 친구들이 한국말을 다 아는 건 아닌데, 내 노래를 많이 접해서 열이면 일곱은 한국말을 알아요. 근데 가사를 다 알아듣질 못해. 그래서 1, 2절은 똑같은 반복을 원해. 다시 불러주는걸 좋아해. 그래서 1절과 2절을 똑같이 했어요. 부르고 또 들으면 좋으니까. 그걸 팬들이 원했기 땜에. 그런데 한국은 다 알아듣는 가사라서 1절만 해도 알아들으니까. 그래서 2절을 뺀 거죠.
이 부분에서 이박사님은 자신이 없어보였습니다. 아마 스스로도 이번 음반에 불만이었지 않을까요. 혹은 기껏 준비한 음반의 반응이 예상과 다른 것에 당황하는 건 아닐지요.
사실 이번 음반은 무성의했습니다. 새로 만든 곡은 없었습니다. 가재발의 ‘오방‘이라는 곡이 새로 쓰인 곡이지만 거긴 이박사가 빠져있었고, 나머지는 일본 것의 재탕입니다. <스페이스 환타지>는 가사를 한글로 바꾸고 편곡만 조금 달리했을 뿐이고, 24곡메들리는 일본판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입니다. 이박사의 음악이 어떤 건지는 결국, 그 다음 음반에서 물어볼 수 밖에요.
면 : 박사님은 나름대로 고집이 있을텐데, 제작사나 팬의 의도나 특히 제작사의 의도가 들어가면 더 이상해지지 않을까요. 이번 음반도 그런 기미가 보인 거 같기도 한데요.
이 : 그렇진 않죠. 내 노래를 나만 들어서는 장단점을 알 수 없고, 팬들이 설문을 해서 알려주면 장점은 뭐다, 뭐가 부족하구나 하는걸 알려주니까 나에게는 도움이죠.
면 : 가재발처럼 다른 가수와 함께 작업하실 수도 있으신가요? 가재발의 개입이 역효과를 낸 것 같은데요. 이전과는 너무 차이가 있기도 하고 가재발의 테크노와 이박사님의 뽕짝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 : 맛과 기분에서 100프로 만족은 못돼죠. 예전에는 20년동안 키치 식으로다 옛날 분위기로 완전 뽕짝식으로 갔는데, 요번에는 젊어지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좀 바꿔야 겠구나, 젊은 사람과 함께 하려면 내가 마음적으로 젊어져야겠구나 해서 혼자하는 거보다 가재발이라는 랩을 잘하는 친구와 같이 해서 이번 음반이 나왔어요. 그러니 새로워요. 내가 집에서 혼자 환타지를 불러보니까 달라요. 그래서 내가 잘 택했구나. 내가 혼자 기분 좋아서 박수치고 이런거 보다. 옆에 있으니까 흥이 나더라구… 그리고 가재발이 옆에서 랩을 깔아주니 나도 같이 뛰게 되는거구. 내가 라이브를 해보니까 역시 같은 분위기가 나더라구. 그래서 내가 아, 잘했구나 이렇게 생각하죠.
이쯤 들을 때 이박사가 대단한걸 할 수는 없겠지만 정말 다양한 걸 할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들었습니다. 순진해 보이기까지 한 그의 모습은 다시 태어난 사람의 그것인지, 아니면 원래 이렇게 다종다양한 사람인지는, 솔직히 이번 인터뷰로는 알 수 없었습니다. 중요한 건 그가 현재,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인데 이게 어디로 갈지는 아직 모르죠.
4. 어디로 가시나요. 이박사님?
면식범 : 그럼 다른 음악도 계속 섭렵하시나요?
이박사 : 그럼요. 룸바도 있고 차차차도 있고 스윙, 지루박도있고, 노래는 엄청 많아요. 그치만 아직은 발표 안 하지. 미리 발표하면 사람들의 기대감이 없어지거든. 테크노는 그중의 한가지이지요.
다음 번엔 이렇게 안 나갈꺼에요. 비슷하게 나가면 재미가 없잖아요. 생각지도 않은 걸 연구해서 해 봐야지요. 근데 다음 음반은 팬들에게 다가가는 쪽으로 갈지 전체적인 걸 볼지 아직은 몰라요. 벌써 공개할 필요는 없지.
면 : 그리고 궁금한 건 일본활동을 3년만에 그만둔 계기인데요. 음악의 한계 때문은 아닌가요?
이 : 뭐든지 전속이 있는데, 일본소니는 첨에 1년을 했어요. 1년은 금방 지나가잖아요. 내가 연장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는데. 소니측에서 1년이 지나기도 전에 2년을 더 연장하자고 그런거예요. 그래서 3년을 했어요. 3년을 하면서 아쉬움은 있겠지, 3년은 금방가니까. 일본팬들이 나를 굉장히 좋아했고 국제가수로 나를 아껴준 걸로 알고 있어요. 특히 신세대, 교포들이 나를 좋아했어요.
그만둔 건 전속기간도 있고, 한번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도 있어야 하고… 또 나는 한국사람이니까, 그 동안 한국에서 무명으로 오래지나 왔었고 일본에서 인기 끌었다고 해서 일본에 머물 수는 없는 거잖아요. 우리나라는 따로 있는데.
면 : 그럼 앞으로 일본 갈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이 : 아직은 비공개고, 일본과 얘기가 돼서 나를 찾으면 그대 가면 되는 거지, 내가 가고 싶다고 덜렁 가는 데는 아니지.
면 : 같은 노래도 한두 번이라고, 일본에서 음악의 한계점이 드러난 건 아닌가요?
이 : 근데, 내가 얘기 하고 싶은 거는 우리나라 이박사 팬들이 생긴 시기가 오히려 적절하다는 거예요. 일본은 그보다 좀 더 앞서 있었던 거 뿐이고… 우리나라에 팝송이 들어와서 힙합, 발라드, 랩이 들어왔는데 뽕짝이 맞아떨어지는 시기에 내가 나왔던 거죠. 일본은 3년 전에 테크노가 지나갔단 말이지. 유행이 그렇게 지나간 거지… 일본은 좋게 말하면 유행이 빠른 거고, 나쁘게 말하면 성급했던 거고.
이박사는 일본에서의 3년 활동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날 때쯤 분명히 테크노는 한 풀 꺾여있었다는 점인데, 이점이 아마 일본에서의 이박사를 다시 귀국시킨 요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추측해볼 수 있겠습니다.
뽕짝 테크노라고 했을 때 뽕짝의 문화가 없는 일본에서 테크노가 빠진 뽕짝은 아무래도 어렵지 않았을까. 그때 이박사는 가수가 아니라 코메디언같이 비춰지지는 않았을까. 일본에서 온 이에게 물어보았더니 이박사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코메디언 아니냐는 말을 하더라고 제게 전해주던데요. 억지로 유추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추측입니다. 어쨌든 한국에서는 테크노라는 수식이 빠진대도 뽕짝의 전통이 있으니 일본과는 다르지 않을까요.
면 : 우리나라에서도 테크노 뽕짝이 한 3년만에 소진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은 없으신가요?
이 : 내 음악이 좀 가다 시들시들 해지면 어떡하지 하는 건 안 해봤어요. 왜냐하면 뽕짝은 우리나라 꺼니까 절대 안 없어져요. 된장찌개 맛있다고 한 번 먹고 말거요? 천만에. 그래요, 안그래요? 한번 가서 맛있으면 그 집에 또 가, 언제든지!
뽕짝은 변하지 않지요. 자기 껀 씨가 있으니까. 우리나라 게 원래는 민요와 트롯트에요. 60년대는 그냥 가요라고 했는데 70년대 트롯트라 그러고 8-90년대에는 뽕짝이라고 그랬던 것인데, 원래 뽕짝이라는 건 없는거에요. 그냥 대중 가요죠.
그가 생각하는 뽕짝이란 그에게 있어서는 대중가요 그 자체일 것입니다. 뽕짝은 영원할꺼란 말에는, 사실 한국의 가요가 영원하다라는 뜻과 함께 이박사는 영원하리리는 염원도 조금은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박사가 그의 ‘뽕짝‘을 어떻게 변주할건가 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어긋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면 : 현재 추진 중인 2002년 월드컵송은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이 : 팬들이 난리가 났어요. 일본에서도 친근하니까 해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대학로에서 ‘우리나라 이박사가 월드컵송을 해줬으면 좋겠다‘ 라고 단식투쟁도 들어갔다고 하더라구. 며칠 전에 들었어요.
‘2002년 월드컵송은 누가? 바로 이박사!’
이 구호는 현재 이박사 팬클럽에서 대형 현수막에 써서 축구경기장에 내건 것입니다. 한일전, 올스타 전에서도 쓰였습니다.
이 : 고마운데 그래도 꼭 했으면 하는 생각은 없어요 나보다 유명한 가수도 많고. 자기보다 위는 언제나 있는 거에요. 남보다 앞서고 싶지도 않고 떨어지기도 싫고. 그래도 기회가 오면 하겠지만 나보다 대형가수가 많으니까. 욕심부리지 말아야죠.
면 : 평양공연을 추진중이라는 소문도 들리던데.
이 : 아, 그건 기회가 닿으면 내가 하고 싶은건데. 구체적인 추진계획이 나온건 아니에요.
사실 내가 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정통민요거든? 장구 갖다 놓구 피리 아쟁 갖다놓고 내가 한복 입고서 할머니 할아버지들 눈물 나오게끔 하는 목소리가 따로 있어요. 그런 게 있어요. 아줌마 아저씨들 자지러져요. 지금의 뽕짝과는 다른 기가 맥힌 휠링이 있죠. 평양가서는 정통 트롯트가 뭔지, 트롯트의 맛이 뭔지, 테크노가 뭔지 알려주고 또 이박사가 리듬 타는 거와 애드립이 뭔지 알려주고… 그리고 민요를 해야죠. 이북민요도 기가 막힌 게 많으니까.
면 : 마지막으로. 이박사는 어디로 가나, 하는 것인데요. <스페이스 환타지>의 랩부분에서도 나온 거지만, “어디로 가나 어디로 가나 이박사님 말해줘요 모두들 어디로 가나” 이박사님은 신세대라고 하는 새로운 인기나 제작사의 의도에 끌려가지는 않나요? “원숭이, 나무에 올라가 꼬리를 흔들며 “(몽키매직 中 ) 춤추듯이.
이 : 나는 인기를 위해 끌려가진 않아요. 난 고집이 있어요. 팬들이 딸려오게 만들어야지. 그게 연예인이 아녜요? 마력을 가지고… ‘이상하게 딸려가는데..이상하게 이 노래가 듣고 싶은데, 어구, 저질스러워도 그래도 재밌잖아?’ 그래서 찾게끔…그렇게 해야지, 내가 중심이 없이 달려가면 안돼잖아요.
면 : 결국 뽕짝을 계속하시겠단 얘기시네요.
이 : 그럼요. 뽕짝이 우리나라 꺼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뽕짝이구, 제일 많이 보여 줄 수 있는 게 뽕짝이구. 나의 숨어있는 게 톡 튀어 나오는 게 뽕짝이구 그러니까. 그렇지만 맨날 뽕짝만 하는 건 아니거든. 다만 나는 리듬을 신나게 탈 수 있다는게 다른거구.
면 : TV가 아니라 작은 무대에서 계속 만나실꺼죠?
이 : 그럼요 계속 만나야죠. 10월 국내 공연, 12월 일본 합동 공연을 가장 큰 걸로 준비하고있고. 지방공연요? 그건 그때 그때 상황따라 바뀌는 거고. 세계일주도 돌았는데 우리나라는 쉬운거 아녜요?
인터뷰는 여기서 끝이 났습니다. 애초에 제가 물어보고 싶은건 대충 물어봤고 이박사도 그럭저럭 얘기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이박사는 변질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에서 이박사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이박사 스스로라기 보다는 외부의 힘에 끌려가지 않는가 하는 우려 말입니다. 이박사는 거기에 대해서는 긴 말 않고 아니라고 끊었습니다.
그러기를 저도 바라고 있습니다. 관광버스에서 놀던 것처럼 노는 것이 이박사의 정체성이라면, 음악이 어떤 것이든 상관 없이 그 정체성이 유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 것을 해줄 수 있는 ‘아티스트‘는 이박사 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의 우려가 기우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저의 우려 자체가 불필요한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이박사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지 않는 이상 그런 우려란 이박사를 박제처럼 즐기려는 욕심에 불과한 것일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정말 걱정인 건, 이박사의 바깥입니다. 얼마전 자생 팬클럽과 소니측에서 지원을 하는 공식 팬클럽 사이에서 작은 분란도 있었지요. 도(都)사공은 하난데 작은 사공들이나 배주인이 산으로 끌고 가려는 것은 아닌가 걱정입니다. 앞으로 더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