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 – 삼성생명 해고자

삼성역 삼성금융플라자 앞에서 시위 중이던 정희씨(가명)을 만났다. 그녀는 서른 여덟 살의 기혼 여성으로 삼성생명에 18년을 근무하다가 지난 98년 정리해고를 당했다. 그때 함께 짤린 삼성생명 해고자들과 원진복귀 요구 중이다. 대우가 무너지고, 현대도 휘청거리는 지금까지 삼성은 철옹성처럼 굳건할 뿐만 아니라 주가를 더 높이고 있다. 삼성이여 영원하라!

1. 삼성에서 노조 만들기

난다(이하 난) : 안녕하세요? 이런 데서 시위하고 있는 줄 몰랐다.
정희(이하 정) : 원래 삼성 본관에서 해야 하는데, 우리 나라 집시법이 해괴해서 이렇게 떠돌면서 하고 있다. 내일은 합정동에서 한다.

 

난 : 왜?
정 : 외국 대사관 근처에서 시위 집회를 금하고 있다. 삼성에서는 거의 헐값에 외국 대사관들을 자기 건물에 모셔다 놓고있다. 올해 3월에 엘살바도르 대사관을 유치해놨다. 그래서 본관에서 시위하면 남대문 경찰서에 고발이 들어가서, 8명만 모여 집회해도 50만원의 벌금을 때린다. 우리 나라 땅에서 우리가 우리 주장도 못한다. 이건 불합리하다고 요즘 집시법을 바꾸려는 추세로 알고 있다.

 

난 : 시위하기 힘들겠군.
정 : 한남동 이건희 집에 가기도 하는데, 거긴 완전히 세콤 같은 애들이 버티고 있다. 사경호원처럼 철통같이 막아서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거기도 얼마전에 노조 만들다가 깨지긴 했는데, 자기네들도 해보니까 이제 우리를 이해하는 것 같다. 처음엔 우리를 무슨 불한당처럼 여겼다. 근데 자기네들도 열악한 조건에서 24시간 근무하지, 고용직이다 보니까 불안하지 노조의 필요성을 느꼈을 거다. 나도 삼성을 나오고서야 노조가 얼마나 필요한지 알았다.

 

난 : 삼성은 노조를 허용하지 않는 재벌그룹으로 유명하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데.

정 : 사실 삼성이 사원들에게 그런 교육은 정말 열심히 시켰다. 자기네들이 투명하고 깨끗하게 일처리해주고, 일만 열심히 하면 평생직장이 되도록 다 알아서 해 줄거니까 노조같은 거는 필요없다구. 나도 이건희를 우상처럼 생각했었다. 삼성 사람들은 다 그런 환상을 가지고 있다.

 

난 :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정 : 절대루. 정말 거기에 대해서는 할 말 많다. 노조가 있었으면 98년도에 우리가 그렇게 힘없이 당하지 않았을 거다. 그런 점에서 현대랑 너무 비교가 된다. 98년도에 IMF라구 적자 타령하며 해고될 때 1700명이 해고됐는데, 1200명이 여사원이었다. 사내 결혼자, 관계사 근무자, 맞벌이, 기혼 여성, 신용불량자, 승급을 늦게 한 자·못한 자, 이런 식으로 해고 대상자를 골랐는데, 그러니 10년 이상 근무한 여사원은 전원 해당됐다. ‘후배를 위해 선배가 희생해라’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며 여사원들을 내몬 거다.

 

삼성생명은 삼성의 젖줄이다. 삼성 계열사의 자금줄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젖줄이 알고 보니 이씨 가문의 아들을 살찌우기 위한 거였단다. 그 젖줄을 키우느라 젊은 처자들이 피땀을 흘렸던 건가.

 

난 : 이렇게 싸우고 있다는 걸 다뤄주는 매체는 별로 없겠다.
정 : 우리의 요구를 꾸준히 알리려고 했지만, 4대 일간지 같은 큰 데는 언론이 워낙 통제되어 있다. 조선일보에 한번 삼성생명 강제퇴직의 진상과 복직요구에 관한 광고가 나간 후명예훼손죄로 고발이 들어갔고, <한겨레> <동아> 등에서는 우리 홈페이지주소 같은 단순 광고도 접수해 주지 않았다.

 

난 : 우리 사주 같은 걸로 삼성은 노동자도 부자라는 소문이 있는데?
정 : 그거는 일방적인 매도이다. 회사에선 원직복직은 절대 안 된다고 하면서, 너희는 우리 사주 때문에 복직하려고 하는 거 아니냐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삼성생명에만 18년 근무했다. 사람들 모두 거의 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19살 때부터 근무한 사람들이다. 회사에서는 우리가 주식공개에 눈독을 들여서 복직 신청을 한다고 주장하는데, 사실 삼성은 5년 동안 주식공개를 당근처럼 써왔다. 올 가을에 한다, 내년에 한다는 식이다. 사실 나도 그 당근에 혹했던 게 사실이다. 누가 안 그렇겠냐? 예전에 전국의 6개 생보사가 갑자기 30 몇 개로 늘어나면서 신설사에서 스카웃 제의도 많이 들어왔었다. 삼성생명 근무자들은 일 잘 한다고 소문이 났으니까. 하지만 장기근속자들은 일이 힘들어도 주식공개라는 당근에 묶여 옮기질 않았다.

 

난 : 회사 쪽에 유리한 제도라는 거군.
정 : 동방생명 시절부터 입사했는데, 그 시절에는 토요일도 없고, 일요일도 매주 나오면서 일했다. 초창기 영업소마다 컴퓨터가 1대밖에 없어 미리 자료를 뽑아나야 설계사 아줌마들이 들고 나가 일할 수 있었다. 앙케이트를 받아와도 일일이 수작업으로 했어야 했고. 집에까지 일거리 갖고 가는 날이 많았다. 코피 쏟고 위장병 걸리는 사람도 많았고, 장기근속하면서 건강 해치는 사람도 많았다. 전산화되면서는 그 많은 자료를 일일이 입력했다. 그래도 당시에는 회사에 불만 없이, 당연한 걸로 여겼다.

 

정희 씨의 말에 따르면 동방생명은 그쪽 계통에서 규모도 제일 컸고 내실도 있어서 과거의 감원 열풍에도 끄덕 없었다고 한다. 그런 자부심과 신뢰가 회사에 대한 긍지로 이어졌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여직원들의 경우 결혼과 함께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부담 때문에 결혼 적령기마저 놓치고 회사를 다닌 미혼 여성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홀어머니 모시고 삼성생명에서 줄곧 근무한 50대의 노처녀마저도 지점장은 사직서를 받으러 다녔다. 그녀는 그런 회사에 대해 ‘악랄하다’고 덧붙였다. 

 

정: 더구나, 고등학교 때부터 자기가 평생 살다시피 한 곳이라 애착도 큰 거다. 그래서 회사가 어렵다 쓰러지겠다 하니까, 회사를 살리려고 나왔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삼성 자동차 직원이 더 많은 위로금을 받고 퇴직한 것만 봐도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망한 자동차에 우리 땀으로 번 돈 쏟아 붓고, 어떻게 그 망한 자동차가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냐.

 

난 : 퇴직 당시 몰랐나?
정 : 이사가 슬라이드랑 그래프랑 가지고 지점마다 방문하며 설득했다. 지역본부별로 사상초유의 퇴직설명회를 벌였다. 그래서 더더욱 노조가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정말 크다. 우리 짤리고 나서도 동양투자신탁을 인수해서 삼성투자신탁이다, 대구은행·한미은행 인수다 해서 우리가 벌어준 돈으로 삼성은 잘만 살고 있다. 이건희 아들이 삼성생명 주식을 9천원에 받았는데, 말이 되냐, 우리가 십여 년 동안 피땀 흘려 키운 값이 완전 똥값돼서 아들한테 상속된 거다. 98년 2월부터 삼성생명 주식을 이건희는 이재용에게 넘기려고 준비했다.

삼성 건물에 입주하고 있는 국세청은 삼성의 현란한 무공을 따라가지 못한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은 경영에 참가하지도 않는 유학생의 신분이면서도 5년만에 국내 최고의 재산가로 떠올랐다. 이병철 전 회장에서 이건희 회장으로 성공적으로 이어졌던 삼성의 승계는, 이재용 차례에서 그 현란한 테크닉과 치밀한 결과를 보여줬다.

2. 왕자 이재용, 젖소의 가슴을 움켜쥔 사연

지난 7월 6일 에 방송된 내용에 의하면, 95년 말에 61억의 현금을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한테 증여를 했고, 그 중에서 16억을 증여세로 내고 나머지 45억 원 정도를 가지고 지난 한 5년 반동안 불려온 재산이 3조가 넘었다. 이재용은 95년, 비상장 계열사인 에스원과 삼성 엔지니어링 주식을 대량 매입했고, 그 후 얼마지 않아 두 회사는 곧 상장되었고, 재용씨의 보유주가는 10배 이상 뛰어올랐다.
주가가 쌀 때 약간의 증여세만 내고 취득한 후에 내부거래를 통해 기업가치를 높여 상장시켜 팔고, 다시 그 돈 갖고 또 다른 비상장 회사를 취득해 또 팔고. 그런 방식으로 재산을 불린 것이다.
이재용은 남긴 돈 605억원으로 계열사인 중앙개발, 현 삼성 에버랜드의 전환사채를 발행받고, 6개월 이후 주식으로 전환해, 62.1%의 지분을 가진 최대 주주로 부상했다.

 

 

난 : 해고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일순위인가?
정 : 말로는 합의 퇴직이지만 정리 해고 과정에서 완전히 여성 노동자들 대상으로 해고 리스트를 작성했다. 해고 과정에서 회사에서 여러 가지 압력을 넣다. 일차로 퇴직 등록을 하면 기본급 등 퇴직금을 100%로 준다고 꼬시고, 2차로 등록하면 12개월분에서 9개월만 준다고 을렀다. 그래도 할당량이 안되면 회사에서 찝어서 짤랐다.
게다가 삼성의 퇴직금은 누진이 아니라 딴 데보다 약하다. 그런데 문제는 회사를 다니면서 대출신청한 사람들이 많을 것 아닌가. 대출이 있는 사람은 만기 연장이 안되고, 일시 상환을 요구받아 부담이 컸다. 대출을 감하고 나면 퇴직금이 얼마 안되거나, 심지어 마이너스 되는 사람도 있었다. 게다가 IMF라구 시중 은행들이 대출도 안 하니까, 막막한 거였다.

 

난 : 지금 구체적으로 어떤 싸움을 하고 있나?
정 : 소송 중인 게, 삼성에서 몇 년 동안 준비했던 <인력 조정 시행 대책>이라는  ‘살생부’다. 희망퇴직이라 해놓고 신청일자 전에 명단이 통보되기 시작했다. 사표의 퇴직 사유란에 ‘개인 사정 혹은 합의 퇴직’이라고 조항을 못 박아 놓고, 선택의 여지가 없게 만들어 자필 서명을 받았다. 그리고 밑에는 언론이나 다른 곳에 공개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달아 놓았다. 이런 과정이 폭력적이었고, 부당한 압력이었다는 거다. 해고에 대한 무효 확인 소송을 하고 있고, 삼성에 원직복귀 요구 중이다.

 

난 : 꼼짝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던 건데…
정 : 그게 삼성에 노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도 거기 있을 때는 노조가 왜 필요한지 몰랐다. 그런데 밖에 나오니까 정말 사정이 다른 거다. 우리가 진짜 억울한 거는 우리가 98년도 하반기에 억지로 퇴직서 쓰고 나오니까 99년 2월에 두세 달만에 IMF가 끝났다는 거다. 98년 12월만 해도 IMF라고 보너스가 100% 삭감되고 그랬는데, IMF 끝났다니까 임직원들 전원 보너스가 올라가고, 자축 파티까지 벌렸다. 그리고 3조 4천억원이 적자라고 애걸복걸하더니만 두 달 후에 천억이 흑자라는 게 밝혀졌다.
완전 사기다. 다른 생보사가 다 망하고 나서 사상 최대의 흑자까지 내고 있다. 그리고 사원 해고하면서 까지 감원했으면, 새로운 인원 채용은 말았어야 하지 않나. 삼성 물산이나 삼성 자동차는 천 명씩 새로 고용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월 100만원 이상 받던 계약직들이 하루 일당 2만 3천원짜리 일당직으로 전락해 버렸다.

삼성 에버랜드는 삼성그룹의 엄청난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의 노른자위이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 지분 26%중에서 20%를 내놓으면서 이재용의 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의 최대 주주로 부상한다. 삼성생명은 삼성의 주요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고 막대한 자금력을 지니고 있었다.
에버랜드가 이재용 개인회사나 다름없고, 그리고 에버랜드가 삼성그룹의 자금줄인 삼성생명의 20%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으니, 그렇다면 이재용은 에버랜드를 통해서 삼성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고, 삼성생명은 각 회사의 삼성 계열사의 자금줄이므로, 그는 명실상부하게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을 만한 지분을 물려받은 것이다.

 

난 : 일당직이라는 건?
정 : 합의안을 99년 6월에 제시한 게 있는데, 복직과 우리 사주는 절대 불가능하다, 대신 판촉물 장사나, PT(계약직)이나 삼성계열사(증권, 캐피탈, 투자신탁 등)에 촉탁직으로 취업 알선 해준다, 설계사로 근무하면 초기보급수당을 우대해준다 등등을 내놓았던 거다. 꽃가게를 개업하면 꽃을 팔아준다 그런 거다.

 

난 : 개업을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정 : 임직원 중에는 퇴직하고 화원 차리는 사람도 많다. 회사에서 쓸 일이 많으니 팔아준다 이런 거. 우리하고는 거리가 먼 일들이다.

 

난 : 해고 노동자들의 원직 복귀 요구에 대한 삼성의 반응은 어떤가?
정 : 평생 먹을 거 줬는데 뭘 더 바라냐, 주식 탐나냐, 그렇게 대꾸한다. 그런 말 들으면 정말 배신감 느낀다. 만기도 안된 대출을 공제하며 우리 손에 몇 푼이나 쥐어 줬다고 그런 말을 하는지.
지방에 어떤 남자 사원은 집을 대출로 사다보니 대출 공제하고 마이너스가 돼서 자살했다. 이혼한 경우도 있고. 대구에서 어떤 과장은 살생부에 왜 자기가 올라가야 하냐 항의하고 엘리베이터 내려오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지금도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그래도 삼성은 희망퇴직이었다고, 법대로 해결하자고 하고 있다.

 

그 막대한 부와 권력의 대가로 지불한 돈은 처음 아버지에게서 받은 61억 원에 대한 증여세 16억 원이 전부다. 그리고 비상장 회사 삼성 SDS의 신주 인수권을 주당 7,150원이라는 낮은 가격으로 이재용 남매와 임원들은 살 수 있었다. 2000년 3월 15일 56만 원이라는 가격에 비해 볼 때 그 차액, 부당이득은 1년 만에 1조 7천억 원이나 되지만, 이런 부분에 세금은 한 푼도 물지 않았다. 당시 장외에서는 주당 5~6만원에 거래되었다는데,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삼성왕자니까!

 

난 : 재판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정 : 해고무효 소송을 했는데 1심에서 져서 2심 항소중이다. 노동부에서는 3개월 이내 항의했어야 한다며 수수방관이다.

 

난 : 재판부에선?
정 : IMF라는 어쩔 수 없는 국가적 재난이라서 딱한 사정은 십분 알겠지만, 회사가 어떤 협박을 했더라도 나오지 말았어야 한다는 식이다.

 

난 : 제 발로 나온 후에 무슨 할 말 있냐는 건가?
정 : 가령 목에 칼이 들어오거나 살인에 가까운 퇴사 협박이라면 몰라도, 그 정도까지 버텨야 했다라는 식이다.

 

난 : 허어!!!
정 : 청와대까지 청원을 넣어보았지만, 거기에서 중부사무소로 내려 보내더라. 거기야 경찰 끄나불이니까 그 사람들한테 우리는 귀찮은 존재, 암적 존재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우리는 이렇게 절박한데.
우리는 삼성의 젖줄이었다. 동방생명 시절부터 토요일, 일요일 없이 밤새며 일한 세대다. 내가 5년만 다녔어도 이러지는 않는다. 요즘 들어온 애들과 노동강도가 달랐다. 재판부에서는 우리 사정이 딱하지만 우리 편을 들어 주면 현정권의 방침을 거스르기 때문에 안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사회적 구조조정이랍시고 현정권에서 시행하는 건 기업측 사정 봐주면서 하구, 노동자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삼성 그룹에서 4만 명이 퇴직당했다. 현대는 300 명만 해고 되도 신문에 나는데.

 

 


3. STOP! SAMSUNG
 

난 : 퇴직하고 2년 동안 생활은?
정 : 퇴직금 까먹고 있는 거지. 들었던 보험이나 적금 해약해 먹고. 일을 하고 싶어도 할줄 아는 일도 없고 나이가 있어 취직도 못한다. 정식직으로는 못 들어가고, 구청에서 하는 공공근로 같은 걸로 일당 3, 4천원 받고 다닌다. 일용직이나 아르바이트 하거나, 학원을 다니는 사람도 있다. 아직은 원직복직까지 버틴다는 심정이다. 보험회사만 다녀서 일을 하고 싶어도 몸으로 때우는 것밖에 못한다.

 

난 : 싸움이 길어지니까 어렵겠다.
정 : 우선 마음이 지친다. 회사에서는 시위하고 있는 장면을 사진 찍어 업무방해다 뭐다 해서 고소한다. 경찰도 이런 거까지 고소하냐 하면서도 일단 접수된 거니까 확인해야 한다고 종로 경찰서다, 남대문 경찰서다 오라가라한다. 이런 게 사람을 심리적으로 위축하게 만든다. 어쩌다 아는 사람 통해서 회사에서 알선해 줄 테니 시끄럽게 하지 말고 일자리를 가져라고 전화오기도 한다.

 

난 : 싸우면서 많은 걸 느꼈을 텐데…
정 : 당연히 회사와 집만 오가던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시위하는 학생이나 사람들을 보는 시각도 달라졌고, 민노총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나 주 5일 근무로 싸우는 걸 보면, 저렇게 힘들게 싸우면 그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편안히 일하는 사람들인데, 그런 걸 정부에서 알아서 해주는 걸로 알고 피터지게 싸워서 이뤄지는 걸 모른다. 급여 올리는 거라든가 다 밖에서 힘들게 애쓰는 것 때문에 우리가 혜택받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또 느낀 거라면 경찰서를 돌아다니며 생각했던 것과 실상이 다르다는 것, 약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이런 거다. 무엇보다도 수동적으로 있는 것보다, 내가 뭘 하고 싶은 건 힘들게 해서만이 할 수 있다는 걸 안 거다. 보람도 느끼고, 의지력이나 자심감이 생겼지.
복직이 되면 좋지만, 결과에 후회는 않았다. 세상살이에서 탄탄해지고, 바깥 세상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고나 할까. 적극적이고 열심히 살아가야겠다는 것 그런 건 남은 것 같다.

 

난 : 만일 복직이 된다면 삼성에 노조는?
정 : (잠시 뜸을 들이며) 노조를 만들어야한다는 필요는 절실하다. 회사에서도 그런 걸 신경쓰는 거 같다. 무엇보다도 일이 진짜 하고 싶다. 아마 회사의 부당한 것에는 참지 못하겠지만. 안에서도 임직원들이 필요하다, 때가 됐다라고 눈을 뜨고, 젊은 세대가 많기 때문에 옛날과 같지는 않다. 오히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느끼고 있다. 십자가를 맬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복직이 된다면 노조를 만들겠냐는 질문에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며 노조의 필요성은 인정한다고 했다. 회사 내부에서도 이미 그 필요성은 대부분 절감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노조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내부에서 더욱 클지도 모르겠다. ‘노조 없는 삼성’이라는 구태의연하고 낡은 생각을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그녀의 표현을 따르자면 ‘십자가를 맬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난 : 이재용의 재산축적을 비판하는 법대 교수들의 운동이 시작되었던데?
정 : 우리 삼성생명 해고자들도 함께 하고 있다. 우리는 투쟁을 담당하고, YMCA 등에서 금요일마다 서명을 받고 있다. 법대 교수들은 일정이 바쁘니까 몸으로 움직일 동력은 우리밖에 없다. 해고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불법세습을 하기 위해서 노동자를 죽이고, 노동자들이 일해 쌓아올린 회사를 마음대로 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연대할 수 있다고 본다.

 

난 : 원직복구 요구 뿐만 아니라 삼성 족벌경영 분쇄 운동까지 함께 하는 건가?
정 : 우리 나라는 삼성의 제국이 되어 가고 있다. 정부든 어디든 삼성을 건드리지 못한다. 이제 삼성도 변해야 하지 않냐. 오너 경영에서 전문인 경영으로 바뀌어야 한다.
삼성은 서른 한 살 난 이재용에게 세습 경영을 시키고 있다. 그 사람 세금을 16억 내고 4조원이나 증식시켰다. 이게 다 주가조작에 세금포탈을 해서 그렇게 된 거다. 우리 나라 국세청이 삼성을 못 쫓아간다. 이건희 개인 욕심만 채우고 있다. 노동자 눈에 눈물 흘렸으면, 자기도 흘려야 한다. 임직원들은 삼성이 큰 게 이건희 개인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밑바닥에서 노동자가 피땀이 흘려 된 걸 모르는 거다.

 

난 : 인터뷰에 응해 줘서 고맙다.

정희 씨는 삼성에 대해 쏟아 붓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삼성생명 해고 노동자들은 법대 교수들과 공동으로 삼성족벌경영 분쇄를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
정희 씨가 거침없이 쏟아내는 삼성 비판 앞에 다른 질문들은 유보할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는 온 몸으로 사회구조적 모순을 깨닫는다고 했던가. 이제 그들은 욕심 많은 과거의 우상으로부터 자신들의 땀으로 일궈낸 터전을 되찾기 위한 공격을 감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