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다 할아버지들

김대중이 박정희 기념관을 만든단다. 정부에서 200억이나 내놓고 외국인들 잘 보라고 월드컵 경기장 옆에다 멋드러지게 만든단다. 씨바 도데체 누구야? 막걸리 먹던 할배들 아님, 도대체 누가 박정희가 그립다는거야? 긴 말 필요없이, 파고다로 마이크를 들고 가자. 할배들, 정말 박정희가 보고 싶소? 누가 자꾸 침 묻은 박정희 무덤을 파헤치오, 대체!

1. 지금 박정희 인가?

 

파고다 공원에는 할배들이 많다. 할머니는 딱 한 명 봤다. 언젠가부터 할배들은 총도 없이 시내 한 복판을 점령했다. 바둑과 장기를 두는 할배들도 많지만,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전깃줄의 참새마냥 앉아 있는 할배들도 많다. 점령 뒤의 피로인가?

 

인터뷰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반 시간을 쭈빗거린 끝에 겨우 마이크를점령군할배들에게 들이 밀었다.
할배, ‘점령군 짱인 박정희의 기념관을 만든다는 데 찬성하실라우?

 

정부 지원금으로 만든다는 건 말이 안돼.



홍당무> 정부에서 만드는 게 아니라면 찬성 하시겠습니까?



경제면에서는 칭찬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아직 이르다구. 박정희 한지 몇 년이나 됐다구. 민간에서 한다고 하면야 별 수 없지. 지지하는 사람들이 하는 건 뭐라 할 수 있겠나.

 

> 결국 지금 계획된 기념관에 대해서는 반대 하시는군요?



암만. 국민 세금을 거기다 쓰면 되나. 아직 시기가 일러. 나중에는 만들 수도 있지. 후대 사람들이 판단할 지는 모르겠지. 박정희 죽은 지 얼마나 됐다구, 지금은 아냐.

 

(옆에 있는 할아버지도 생각은 비슷했다. 다만 만들고 싶으면 대통령 기념관을 만들라는 거였다. 특별히 박정희 것만 따로 만들 필요가 있냐는 거다.)

 

내 생각엔 역대 대통령 기념관을 만드는 게 타당하다고 봐요. 지금 여론도 그렇잖아요? 별도로 만들 필요는 없죠. 박정희 것만 만드는 건 찬성하지 않아요.

 

(어디가나 그렇듯 줏대 없는 할아버지도 있다.)

 

만들어도 그렇고 안 만들어도 그렇고 그래. 찬성할 필요도 못느끼지만 반대할 이유도 없지. 만들고 나면? 가 보지. 가 보기야. 어떻게 만들었는가도 보고 말야, 허허허.

 

(좀 화끈한 할아버지는 없나? 파고다에서는 좀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눈을 크게 뜨고 뒤져보면, “철권 박정희팬이 없는 건 아니다.)

 

김영삼 대통령 말은 사람을 많이 죽여서 반대한다고 하는데, 사람 안 죽이면 혁명이 안 일어나요. 다른 나라도 다 그래. ()를 죽이고 대()를 살려야 한다고 봐요. 공로가 많으니까 당연히 만들어야 되는거야.

 

> 어떤 공로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새마을 운동해서 지붕 다 바꿨지, 도로 넓혀 줬지, 먹을 거 줬지. 그 보다 어떻게 더 해 줘.

 

> 유신독재를 이유로 반대하는 여론도 적지 않은데요.



우리나라 사람은 독재 안하면 못 다스려요. 유신도, 반독재 측이 유신 만들었다고 봐야돼.

 

(아니, 이 할아버지가 푸코를 읽으셨나?)

2. 와나, 박정희 ?

 

외로운 할배들 말고 무리지어 앉아 있는 할배들을 찾아갔다. 딱히 뭐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거기에도 패거리가 있고 보이지 않는 경계들이 존재한다. 경험 없는 나는 무작정 아무 곳이나 들쑤셔 본다. 네 명의 할배들이 나무 밑에서 신문을 보면서 한담을 즐기고 있다. 이리저리 말을 돌리다 드뎌(!) 하고 싶은 질문을 던진다.

  

 

 

> 박정희 기념관을 만든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할배 A : 정치적으로는 쿠테타하고 혁명을 했으니까 오류가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칭찬할만한 것도 있지.

 

할배 B : 아녀, 정치적 목적이여. 사실이 그런디.

 

할배 C : 기념관을 만든다고 하면 역대 대통령을 다, 한 건물에다 다 해놓는 게 원리원칙이다, 이거야.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잘 했든 못 했든 대통령은 대통령인 거라. 연구하고 좋은건 따고 나쁜 건 버리고 이럴 수는 있지.

 

A : 그러니까 이 사람 말은, 그 중에서도 특별한 사람을 만드는 게 필요하냐구
C :
그건 잘못된 거라니까
.
B :
실지 살아본 사람들 아니면 막연한 얘기들 한다말여. 박대통령이 죽인 뒤에 보니께 경제 일으킨 거 누구나 다 말한단 말여. 나쁘게 핸 것도 많거든? 그때 안 당해본 사람은 잘 몰라.

 

> 박정희 대통령이 잘못한 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A : 유신을 한 거. 체육관에서 국회의원 선출한 거, 그거 오점이지.

 

C : 혼자 오래할라고 한 것도 독재고, 바른 말 좀 할라면 다 때려 죽이는 것도 독재지.

 

할배 D : 무슨 소리들 하는거야. , 그러잖어. 서양사람은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산다말여. 그런데 뭐여, 동양사람은 안그래. 서양식으로 하면 어떻게 나라를 수습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좀 눌러야 돼.

 

(잠자코 신문을 보던 할배 D가 끼어들었다. 세 할배들은 뜻밖의 반격을 받았다는 듯이 적잖이 놀라는 눈치다.)

 

A : 박정희 찬양이구만.

 

D : 내 말 들어봐. 우리도 여기서 밥 타먹잖아. 줄 서는 거 보면 개판이라고. 옛날에 개성고을에서는 원님이 거지들 모아서 다 매를 때렸어. 그래서 개성 고을에는 거지가 하나도 없었어. 그런 식으로, 정치라고 하는 것은 그 지역에 맞는 정치가 정치지. 서양에서 좋으니까 우리한테도 좋다, 그런 착각이 어딨어?

 

A : 그게 박정희가 말하던 거 아냐?

 

(그렇다. 그건 박정희가 말하던 이른바한국식 민주주의의 논리 그대로다. 할배 A는 그걸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파고다 공원을 점령한 할배들은 어리숙한 여느 할배들과 다르다. 나이에 걸맞지 않는 날카로운 눈매와 지칠 줄 모르는 입심. 게다가 사태를 정확히 꿰뚫는 논리력까지 갖추고 있다.)  

 

D : 아니, 독재를 하자는 게 아니고, 강하게 누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지.
B :
그게 독재 아냐
?
D :
아니라니까. 대처랑 드골이랑 봐. 민주국가면서 강력하게 하니까 잘 되잖아. 그거야.

 

(할배 D도 만만치 않다. 그는 역사 속에 잊혀진 박정희의 한국식 민주주의론을 슬그머니 끄집어 내더니, 대처와 드골의 국제적 사례까지 서슴지 않고 들이댄다. 할배 D의 논리적 귀결은 결국 새로운 박정희를 요구하는 것 아닌가?)

 

B : 무슨 소리하는 거야. 법대로 하면 누르질 않아. 법대로 안하니까 누르는 거지.  
D :
아니, 내 얘기는 방법론적으로 강한 지도력이 필요하다, 이 얘기지
.
B :
강하다는 게 뭐야? 법을 초월하면 그게 독재 아냐.

 

> 새로운 박정희가 필요하다고 보세요?

 

A : 칭찬을 한다고 하더라도 부활한다는 건 문제가 있어.
B :
경제 발전했다는 건 모르겠지만, 다시 나타난다는 건 곤란하지
.
C :
그냥 그때 필요한 인물이었지
.
D :
, 지금 나라 꼴이 왜 이 모냥인지 다들 몰라서 그래? 방법론적으로다 강한 지도력이 필요하다니까.

 

(결국 할배 D는 그 놈의 다수결 원칙에 따라 찌그러졌다. 하지만 목소리가 듣기 거북할 만큼 컸던 그 할배는 내가 그 자리를 떠난 뒤로도 할배 세 명에 맞서 여전히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이번에 만난 할배들은 밀양 출신의 할배들이다. 서울에 사는 할배 A와 밀양에 사는 할배B에게 물었다. 할배, 박정희 기념관 정말 만들어야 됩니까?)

 

A : 기념관 만든다 카는거 요번 대통령이말야, 김대중이가 해준다 기랬어. 해준다 캤는데 박근혜가 안한다 이기라. 우리 아버지 기념관 말야, 정부에서 안해도 한다했어요. 역사에 다 나오삐는 긴데.

 

> 할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 해줘야지! 보리고개 넘겨줬는데!

 

(모시로 시원하게 해 입은 할배 A는 아무래도 박근혜의 팬인 듯 싶다. 몇 번이고 박근혜와 육영수의 이름을 들먹였다. 그런데 뜻밖에 양복을 입은 할배 B가 목소리를 높였다.)

 

B : 십년 동안에 칭찬할 정도로 했고, 그 다음에는 지가 망할 짓 지가 했다 말야. 70년대까지는 제대로 했는데, 그 다음엔 안됐거든. 유신 안 했어요? 유신! 독재 안 했어요, 독재!

 

> 할아버지는 박정희 기념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B : 만들 필요도 없다고 봐여. 지가 잘못해가 지가 망한긴데, 유신 땜에 망했어, 박정희가. 지가 하고 지가 망한 건데.

 

A : 아니라, 참모들이 그런기라. 독재라는키는 것도 박정희 마음대로 몬?div id=”article-content” class=”text-content”>

3. Give & Take, 박정희

  

생각했던것 만큼 할배들은박정희를 그리워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정치 현실에서 볼 때 박정희식 통치가 필요하다는 논리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할배들은 왜, 박정희 기념관을 찬성하는 것인가? 그 대답은 호남 억양의 사투리를 쓰는 일군의 할배들에게서 나왔다. 할배들은 박정희 기념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 별로 좋은 거 아니지.

 

B : 이보쇼. 박정희가 18년 했으면 됐지, 모다러 더해. 차라리 양로원이나 고아원에 도와주는 게 좋아. 뭔 말을 하냐 말여, 자기 상관을 부하가 직접 죽여버렸는디 굳이 뭔 말을 해. 위대한 게 머가 있소?

 

(미지근하던 앞서의 할배들과 달리, 이 할배 B는 매우 강력하게 쏘아 붙였다. 박정희가 한게 뭐냐? 그 돈 있으면 불우이웃이나 도와라! 하마터면맞소, 할배!’ 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할배 A가 흥분한 할배 B를 진정시킨다.)

 

A : 요는 말야, 내포된 말야, 현 정권에서 영호남 화합차원에서 영호남이 화합을 하면 좋겠다, 그 뜻이여. 지역감정, 알지? 남북갈등보다 더 심한거. 영호남이 잘함으로써 남북화해처럼 말야, 그런 거 열개라도 져서 영호남 화해를 해서 되았으면 좋겄어. 하나 아니라 열 개라도 지었으면 좋겄어.

 

B : 우짜란 말야?

 

A : 이대로는 영호남이 서로 지역감정 해결할 수 있겠는가.

 

지역감정이라는 주제가 튀어나오자, 할배 B가 갑자기 할배 A의 의견으로 기우는 듯한 눈치가 보인다.

 

> 박정희 기념관이 지역감정이랑 무슨 관계가 있죠?

 

A : 지금도 경상도 사람들은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호남 대통령이다그렇게 얘기 하는거야. 많아요, 그런 사람들. 사실 박정희가 지역감정 만든 장본인이자나. 그 사람 때문에 호남 사람들이 많은 고초를 당하고 어려움을 당했는데. 그런 걸 제거하고 전라도 사람들이 박정희 기념관을 세워준다면 말야, 좋은 계기가 안 되겠냐, 이 말이야.  그런 내포가 있어요.

 

> 김대통령이 약속했다죠?

 

A : 김대중씨가 선거공약으로 세웠다고. 박정희한테 가장 피해를 본 사람이 세워준다고 하면 그 사람들도 생각이 있겠지.

 

B : 지역감정이 해소될 수 있다면 뭐든 해도 좋아. 되겠어, 근데?

 

A : 아니, 지역 따져서 감정적으로 갈러봐야, 선의의 피해자만 생겨요. 충청도, 강원도, 서울사람들. 국론통일을 해야 하는데, 지금 제일 문제가 지역감정 아니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지역감정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만들어야 한다니까.

 

B : 그래? 그럼 만들어야지.

 

결국 할배 B는 할배 A에게 넘어갔다. 뭐랄까, 박정희 기념관이 정치적 흥정이라는 생각이 퍼뜩 든다.

 

> 만약 지역감정 문제를 떠나서 박정희를 평가한다면?

 

A : 박정희는 독재자지. 사실 기념할만 한 거 없어.

 

B : 경제개발 말야, 혁명적인 거 했다고 한다말야. 우리 지금 나이 칠십 다되는 사람들 말야, 다 겪어 본 사람이야. 누가 뭐 했고 누가 했는지 다 알어. 그런데 박정희 같이 총칼, 무식한 놈들 없었으면 우리 나라, 일본 버금가.

 

A : 그럼, 태어나지 않을 사람들이 태어난 거야. 이 나라에 태어나선 안됐어.

 

지독한 자기모순이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나 기념관의 문제는 결코 지역감정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고 포용하는 문제가 아니다. 경제는 박정희가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지금 파고다에 굽은 허리로 햇볕을 쏘이고 있는 할배들, 당신들 자신이 만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박정희 기념관은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본 장교 출신이며, 자기 동료를 고발한 댓가로 살아남았던 자. 그는 4월 민주 혁명의 싹을 군화로 짓밟고 18년 권력의 철옹성을 쌓았다. 권력의 폭압과잘 살아보자는 구호가 새겨놓은 노예의 문신은 아직까지 우리의 살갗 밑에 그대로  남아 있다. 굶주림과 폭력 앞에서 침묵해야 했던 노예의 아픈 기억들. 할배들이 기억하는 경제의 신화란 노예의 망각된 기억일 뿐이다.

 

그렇다. 그는 아직도 우리 내부에 살아있다. 우리가 여전히 박정희라는 개인을 경제 신화와 결부시키고 그에게 영웅의 꼬리표를 붙여주고 싶은 충동질 때문에 괴로운 한, 그의 흔적은 엄연히 우리 안에 살아 있다. 그가 살아 있는 한, 그러므로 노예의 시퍼런 멍이 지워지지 않는 한, 기념관 따위는 절대 만들 필요도 없고, 만들어서도 안된다.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된다는 건 더더욱 안될 말이다. 자신이 역사를 파는 매춘부라고 떠벌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