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곤 – 21세기청년작가회의

폐광촌의 젊은 미술관. 맨 먼저 눈을 뜨는 것은 하얀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는 흰 빛의 창고. 하늘은 천혜의 배경이다. 멀리서 볼 때 비늘처럼 반짝거리게끔 외벽에 비닐을 붙인 것도 있다.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투명한 비닐봉지에 담긴 물방울들이 방과 부엌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바람에 쓸려간 것일까. 하늘과 맞댄 방 한 편 바닥에는 둥그런 볼록거울이 놓여 있다. 그곳으로 하늘이 보이기도 하고, 벽에 붙여 놓은 작가의 나신이 비치기도 한다. 쪼그린 채 무릎을 감싼 몸. 잠깐이지만 내 알몸이라고 착각을 한다.

1. 정선 가는 길     

 

 

 

강원도 오지에 미술관이 열린다. 그것도 이미 절반 이상이 떠나버린 폐가 더미 위에. 탄광촌 미술관, 우리가 그곳을 찾은 것은 8월 12일. 8월 5일부터 8월 13일까지 열렸으니까, 폐막일 하루 전이다.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에서 열린다는 것만을 알 뿐이다. 산등성이가 시야를 가로막고 구비구비 고갯길이 나온다. 그리고 누군가 짧게 내뱉는다. 아, 강원도.

 

 

 

인생에서 더 이상 시간이 흐를 것 같지 않을 때 ‘막장’이라는 표현을 쓰던가. 그러나 정선의 탄광촌에서 다시금 시계 바늘이 돈다. 휴게소의 화장실은 열대수로 채워지고 있으며 도로는 분주한 트럭이 뿜어내는 먼지 열기로 가득하다. 카지노가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탄광촌이 열리는 고한읍의 (주) 삼탄 구사택도 그런 몸살을 앓고 있다.

 

 

 

이른 새벽 안개에 쌓인 검은 산을 본 일이 있는 사람은 안다. 매끈한 석탄으로 된, 나무 한 그루 없는 산의 모습을. 고한읍으로 들어서는 길에는 회색 석회로 쌓인 산들이 시선을 잡아 당긴다. 하지만 거기에도 읍다운 촌락들이 모여 있고, 한편에서는 벌써 간판을 올린 작은 카지노도 보인다. 소란스러움. 도로를 오가는 중장비와 트럭들, 뼈대를 드러낸 채 한 층 한 층 올라서는 건물들. 어느새 탄광촌에 어울림직한 것들은 주변으로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산비탈에 내 걸린 깃발들. 가로등을 벗삼아 줄줄이 매달린 직사각형의 대형 깃발들이 보인다. 그림은 깃발이 되어 바람을 품는다. 족히 300여 점은 되리라. 그리고 국화빵같이 똑같은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집들이 120여 채. 사열하듯 열 맞춰 서 있다. 어떤 것들은 덮개 없이 뼈대만 겨우 간직한 지붕들도 있다. 여기에도 흥청거리던 시절이 있었던가. 집집마다 벽에 낙서(?)같은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어떤 것은 불이 난 듯 붉게, 어떤 것은 바다에서 금방 나온 듯이 푸른 물이 들었다. 그것들이 오늘 우리가 볼 그림이고, 그곳이 우리가 찾던 미술관이다.

 

  

 

운영진의 한 분인 이수철씨가 우리를 맞는다. 그의 안내로 전시장을 돈다. 옥수수며 깨 등이  탄광 사옥들 사이의 밭에서 자라고 있다. 불과 4, 5 미터 간격으로 늘어선 틈새에 만들어진 밭.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징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간혹 밭을 매거나 빨래를 하는 아주머니들을 보기도 한다. 맨 먼저 눈을 끄는 것은 하얀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는 흰 빛의 창고. 하늘은 천혜의 배경이다. 멀리서 볼 때 비늘처럼 반짝거리게끔 외벽에 비닐을 붙인 것도 있다.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투명한 비닐 봉지에 담긴 물방울들이 방과 부엌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바람에 쓸려 간 것일까. 하늘과 맞댄 방 한 편 바닥에는 둥그런 볼록거울이 놓여 있다. 그곳으로 하늘이 보이기도 하고 벽에 붙여 놓은 작가의 나신이 비치기도 한다. 쪼그린 채 무릎을 감싼 몸. 잠깐이지만, 내 알몸이라는 착각을 한다.

 

 

 

검은 때 낀 삶의 흔적도 미술품이 된다. 폐가는 탄광처럼 어둡고 좁게 꾸며졌고, 길목에는 광부들의 검은 장갑이 굴러 다닌다. 썼음직한 양철 냄비도 그대로 걸려 있다. 라는 제목의 작품은 방 내부에 장승과 솟대들로 가득 채워 져 있다. 불현 듯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은 왜일까. 그러고 보니, 장승은 머리에 새장을 얹고 그 안에 또 한 마리의 새가 다소곳이 앉아 있다.

 

 

 

외국 작가들의 작품도 적지 않다. 중국, 일본 뿐 아니라 멀리 러시아, 아르헨티나에서도 왔다. 어떤 일본 작가가 꾸며 논 사옥에서는 제니스 조플린의 음악이 시끄럽게 흘러나온다. 벽면은 온통 신문으로 도배되어 있다. 낡은 LP 플레이어는 음악 뿐 아니라 옆 방에서 보내는 정보들 마저도 LP에 새기고 있다. 일종의 퍼포먼스인 셈이다.

 

 

 

미술관은 크게 <황금박쥐전>과 <표류기전> 그리고 <황금전>으로 나뉘어 있다. 70년대를 기어 본 사람은 안다. 빨간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뛰어 다니며 부르던 그 노래, 황.금.박.쥐. 표류기 역시 그 시절 즐겨 읽었음직한 <15소년 표류기>에서 따온 제목이다. 그들이, 우리가 아직도 어디선가 떠돌고 있는가. 이곳 사북지역과 똑같이 석탄이 사양산업으로 밀려나며 폐광촌이 된 일본 아리아케 탄광을 찍은 일본 사진작가들의 작품도 걸려 있다. 그곳에 붙은 <황금전>이라는 이름은, 그러므로, 역설적이다.

 

 

높이 선 솟대 끝에는 뜻밖에도 삽이 걸려 있다. 그 옆 놀이기구에는 아이들의 미소 대신 광부들의 모자와 마스크가 우울하게 걸려 있다. 지난 시절 경제 성장의 어두운 갱도에서 힘겹게 탄차를 밀던 탄광 노동자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은 지나치게 감상적인가. 한데 뭉뚱그려진 시대의 초상 뒤로 하늘이 푸르다.

 

 

 

욕심을 버리기로 한다. 400여명이 참여했다는 이 거대한 미술관을 감당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부족하다. 형제로 보이는 두 꼬마들이 미술관을 들락거린다. 그 아이들은 거기서 누구의 얼굴을 보았을까. 우리를 안내하는 이수철씨에게 묻는다. 이 그림들을 누가 보길 원하느냐고. 대답 없는 그의 시선을 쫓으니 아이들의 투명한 얼굴이 있다.

 

2. 닫힌 미술관을 열고

 

 

 

주관 단체인 21세기 청년작가회의의 회장인 김해곤 씨를 만났다.

 

 

 

삼부리 : 21세기 청년작가회의는 어떤 단체인가?

 

김해곤 : 98년도에 작가들끼리 모여서 만든 단체다. 미술의 대중화를 위해서, 또는 이 시대에 맞는 미술운동을 해보자는 뜻으로 만들었다. 그동안 여의도 고수부지와 보라매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일반인들에게 직접 그림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원래 미술관이 그렇잖은가. 고정화되고 권력화되고. 관람자 역시 특정 소수였다. 우리는 생각이 좀 달랐다. 미술이라는 건 누구든지 관람할 수 있는 것이고 미술관 또한 그렇다. 순회하는 미술관, 움직이는 미술관을 만들자, 일반인들에게도 그림을 보여주자는 것, 이게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이다.

 

 

 

삼 : 대중들의 반응은 어떤가?

 

김 : 작년엔 아주 반응이 좋았다. 주로 깃발을 사용했다. 여기서 깃발은 그동안 민중미술에서 다루어졌던 깃발이 아니다. 전쟁터의 깃발일 수도 있고 만장일 수도 있다. 깃발은 환경친화적이면서 일반인들이 그림에 쉽게 다가설 수 있는 도구로서 적합했다.

 

 

 

예전에는 이런 그림들이 굉장히 컸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생소해 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텔레비젼의 보도를 보고 찾아왔으나 도무지 그림을 찾을 수가 없다고 불평하더란다. 바로 깃발 옆에서.

 

 

 

김 : 그게 그동안 잘 정제된 사각틀에, 천이나 종이를 이용해서 그린 것들만 미술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미터 이상되는 그림들이 밖에 나와있으니까, 그 사람들에게는 그게 그림으로 안 보이는 거다. 그렇지만 많이 달라졌다.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일반인들이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도 어렵다고 꺼려하기 때문에, 부대행사도 많이 만들었다. 보통 한 번에 다섯 가지 정도의 부대행사를 한다는데, 이번 탄광촌에서는 영화제도 함께 준비되었다. 작품성이나 예술성도 필요하지만, 지역주민들에게 영화는 좋은 흥미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탄광촌을 무대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 : 이번에는, 서울에서만 하지말고 지방에 내려가자, 지방에도 미술문화를 보급해보자,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작년 99년 3월부터 약 16개월 정도 준비했다. 개인적으로는 스무 번 이상 답사를 했다. 이 곳은 올 10월이면 모두 철거가 된다. 근대 산업사회의 메카였던 이 곳 탄광촌에 카지노가 건설된다. 하나의 커다란 주제라고 생각했다. 많은 이야기거리를 담고 있고…많은 작가들이 미술관을 만들기에도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랬던가. 각 사택마다 작품을 설치한 것은 작가 개인의 해석과 작업에 전적으로 맡겨졌다. 당연히 주제는 저마다 달랐다. 직접적으로 탄광촌의 삶을 환기시키는 작품도 있었지만, 유독 돈을 직접 소재로 삼은 것들이 많았다. 가령 만원짜리 지폐를 팔뚝만하게 확대해 외벽에 더덕더덕 붙은 곳도 있었다.

 

탄광촌의 생활고를 뜻하기도 하지만, 카지노라는 환락산업, ‘돈 놓고 돈 먹기’ 놀이가 대안 공간이 된다는 것을 빗댄 건 아닐까.

회장님은 탄광촌 미술관의 의미를 요약해 주었다.

 

 

 

김 : 요약해서 말하자면, 탄광촌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인 고찰을 통해서 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확인, 그 다음에 미술관의 기능에 대한 문제제기의 장이기도 하고, 또 미술로 열어 가는 지역문화 축제이다. 그리고 그간 미술관들의 기능에 대해서 말했지만, 고정화되었고 권력화되었던 것을 깨뜨리고, 그 어떤 곳도 미술관이 될 수 있고, 그 누구도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곳은 지역적으로 오지라고 하지만, 지형적으로 오지이면서, 문화적으로도 상당한 오지라고도 할 수 있다.

 

 

 

삼 : 21세기 청년 작가 회의라고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상식적인 판단으로 미술의, 미술에서의 민주화를 추구한다고 이해해도 되나?

 

김 : 그렇다. 지금까지 없었던 영역을 넓혀간다고 볼 수 있다. 흔히 대안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대안은 그 동안에 있었던 것들에 대한 반대하는 입장에서의 대안이 아니라, 새로운 공간을 확대시켜 나가는 것, 영역을 확대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삼 : 그러면 21세기 청년 작가회의는 기본적으로 제도나 주류는 아니고, 비주류나 성장적인 성격의 사람들이 강하다는 말인 것 같다. 아무래도 모임을 가진 큰 이유는 기존의 미술계의 관행이나 기존의 관객들의 태도에 대한 불만 이런 것이 적잖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은데, 간략히 이 행사와 관련해 말해 달라.

 

김 : 뭐 지금까지 해왔던 미술 관행에 대해 불만만 있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잘못되어 왔던 건 사실이다. 미술의 등용문이라고 할 수 있는 공모전이랄지 이런 것들이 상당히 편협했다. 미술의 다양성을 막는 게 공모전이다. 공모전 전시회에 가보면 이해가 되겠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 사람의 작품전 같은 느낌이 상당히 많았다.

 

이제 시대에 맞는 미술이 태동할 때가 됐다. 꼭 그런 것을 싫어해서가 아니다. 외국같은 경우에는 수십 년 전에 이와 같은 미술 형태가 일어났었고, 이미 우리 나라에도 있다. <야투>라고 있고, <대성리전>이라고 유명한 그룹도 있다. 그들이 자연을 중심으로 했다면, 우리는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대중이 있는 곳에서 전시를 해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가장 중요한 것은 미술의 대중화이다. 대중화, 일반인들을 무시하는 미술운동이란 존재하기 힘들다. 일반인이 없는 미술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야외로 나와서 대중들과 친해지려 하고, 그들에게 미술을 가르쳐 주고, 어색한 것들을 유연하게 풀어주려고 부대행사, 공연도 하는 거다.

 

3. 대중의 바다에서 헤험쳐라

 

 

 

삼 : 탄광촌은 사북말고도 많은데, 유독 여기를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김 : 우리 전시 형태를 보면, 한 사택을 이용해서 한 작가가 개인전을 하고 있다. 173개 동이라는 사택이 응집돼 있는 곳은 이곳밖에 없다. 일단 공간이 좋았고, 또 ‘삼탄’이 역사가 좀 오래 되었다. 그래서 이곳을 택했다.

 

 

 

삼 : 이렇게 미술관을 만들었을 때 관객이 제일 중요할 텐데, 누가 미술관을 찾아주길 바라는가.

 

김 : 이곳이 문화의 오지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이런 전시를 한다고 할지라도 일단은 정서의 차이가 있고, 또 미술에 대한 관심이 적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관람할 것이라고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가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서 서울이랄지, 또는 이곳에 오는 관광객들에게 보여주자는 의도가 컸다. 그렇지만, 진정한 의미에서는 이곳 지역 주민들이 많이 관람을 해주시길 바라는 거다. 사실은 그게 바람직한 거고, 또 그래야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 없듯이, 한번에 이런 전시를 통해서 그들을 다 불러들인다는 것은 무모한 바람이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미술운동이란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는 데서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이 전시를 이런 데서 자주 열어줌으로써 이 분들도 미술에 대한 관심을 갖는다는 좋다고는 생각한다.

 

 

 

삼 : 당장 눈앞에 보이는 효과는 작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꼭 탄광촌만이 아니라도 이와 유사한 미술행사를 계속 펼쳐나가고 싶다, 그런 뜻인가.

 

김 : 맞다. 지역 순회 사업이고, 움직이는 미술관, 순회하는 미술관 그런 형태로 가서, 때로는 정말 대중이 많은 곳으로, 또 때로는 대중이 적지만 굉장히 의미가 있는 공간으로 가서 전시를 하려고 한다.

 

 

 

삼 : 이번에 몇 분 정도 참여하고 있나?

 

김 : 현재 참여인원은 400명 정도 된다.

 

 

 

삼 : 아까 미술관을 둘러보면 대부분 다 설치미술이던데, 설치작품은 경비나 개인의 노력이 많이 들 테고, 또 기후에 따라 영향받는 것도 클 텐데, 관리하는 데 힘들지 않나?

 

김 : 여기 전시하는 데 제일 힘들었던 것은 지역주민과의 마찰이었다. 둘러보았겠지만, 모든 곳에서 농작물을 경작하고 있다. 농작물을 훼손하는 것이 문제였다. 또 어려웠던 일은 각 동에 전기공급이 되야 하는데, 행사 오프닝 전에 삼일 동안 비가 너무 많이 내렸기 때문에 전기공급이 잘 안돼서 설치가 굉장히 늦어졌다.

 

그리고 여기에 드는 예산도 굉장히 컸다. 협찬금으로 총 2천만 원 정도를 받고, ‘새로운 예술 추진위원회’ 공모에서 우리가 당선돼서 천만 원 가량 지원금도 받았다. 나머지는 작가들이 자비로 회비를 모아 가지고 했기 때문에 작가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여기까지 와서 전시를 하는 작가들이라면 그분들의 마인드는 충분히 있고 훌륭하다고 판단 내릴 수 있다.

 

 

 

삼 : 크게 보면 미술 판매보다 미술보급, 문화·미술의 대중화, 문화의식의 고양 쪽에 가까운데, 이렇게 생계나 벌이와 직접 무관한 작업을 400명이나 되는 작가가 참여하는 이유가 무언가. 재료나 경비도 만만치 않을텐데, 거기다가 회비까지 내시면서 참여하다니.

 

김 : 아마도 젊은 작가들 중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 같다. 다들 힘들고 경제적으로 어렵고 그렇지만, 일단 컨셉이 좋고 그들도 느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미술시장이 부족하고, 개인적으로 전시를 하다보면 관람객들이라고는 가족들이랄지 친구들 이런 사람들 말고는 일반인들이 없다. 그러니까 작가들이 전시회를 하고 나서 공허해하고 차라리 그럴 바에는 밖에 나가서 진정한 대중과 만나보자, 진정으로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만나보자, 이런 것들을 젊은 작가들이 굉장히 좋아한 것 같다. 그러니까 노고를 감수하고 경제력도 힘든 상황에서 이 모든 것들이 나온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삼 : 개인적으로 여기 와서 받았던 가장 큰 인상이 일종의 엉뚱한 곳에 미술품이 있다는 충격이다. 미술관은 깨끗한 공간, 화려한 조명이 있고, 그리고 뭔가 미술품의 가치는 전시되어 있는 공간의 고상함에서 마련되는 듯한 훈련을 받아왔다고 할 수 있어서, 있지 않아야 할 자리에 미술품을 가져다 놓아 솔직히 내 기존 관념이 잘못됐을지도 모른다는 충격도 줬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작가들의 중요한 작품들의 의도 자체를 잘 이해 못하게 되고, 격이 낮은 작품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한편으로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것 같다. 이게 내 잘못된 상식일 수도 있을텐데…

 

김 : 설치미술이라는 게 자칫 잘못되면 생각한 대로 너무 성의 없어 보이기도 하고, 값싸 보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탄광촌 미술관을 운영하면서 기본으로 잡았던 컨셉이었다. 이곳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과 이 폐가를 이용해서 그들의 흔적을 어떻게 새롭게 작가들이 재조명해줄 수 있는가가 중요했기 때문에, 오히려 잘 정제되어 있고 정말로 미술관에 있어야 됐을 작품은 이 공간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주제가 탄광이었기 때문에 탄광과 관련되어 있고 광부들이 살다간 흔적을 이용해서 작가들이 어떻게 새롭게 확인하고 해석해 낼 수 있느냐에 따라서 작품이 굉장히 달라진다. 그런 부분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작가들이 만약에 모든 흔적을 버리고 미술관에 있어야 할 작품들을 가져온다면 그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여기 있는 흔적을 가장 잘 이용해서 작품을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삼 : 폐막에 앞서 평가를 한다면?

 

김 : 우리들이 처음 생각한 것보다는 작품들이 굉장히 훌륭했다. 또 일본 작가들 같은 경우에는 15명이 오픈 전에 와서 설치하고, 폐막까지 보고 간다. 그들의 작품에 대한 정열이 아주 훌륭했고, 한국 작가들 역시 너무 열심히 해주어서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 또 이와 같은 전시를 통해 많이 성숙했고, 작가들도 느끼는 것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삼 : 이런 유의 미술 대중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할 거라 생각하는데, 앞으로의 계획이나, 미술을 대하는 대중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면?

 

김 : 이번 행사가 끝나면 예정이지만 10월에 여의도에서 다시 깃발을 중심으로 야외 미술제가 열릴 것이다. 그리고 일반인들에게 우리가 당부하고 싶은 것은 미술을 너무 멀리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다.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가사 없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클래식을 들을 때 전부 다 들으면서 자기 나름대로 자기가 해석을 하지 않는가. 작곡가의 의도와 다르게… 미술도 마찬가지다. 주제가 있고, 어떤 작가가 이런 의도대로 전시를 했다 할지라도, 일반인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일단 미술을 편하게 생각하고 쉽게 접근해 주시길 바란다. 또 작가들은 항상 열려있다. 일반 대중들이 와서 작가들에게 질문했을 때 누구보다도 고마워하는 것은 작가들이다. 아마 친절하게 대답해 주지 않을까.

 

 

 

삼 : 남은 기간 동안 행사를 잘 마치고, 앞으로 미술의 대중화를 위한 활동 기대합니다.

 

 

 

 

 

김해곤 회장과의 인터뷰가 끝나고, 탄광촌 미술관의 전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임대식 씨를 만났다. 그가 말하기를 행사가 끝나면 작가들과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작품의 일부는 철거되기도 하지만 일부는 남아 있을 거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카지노 공사가 시작되면 전부 철거될 거라고… 그럼 이 탄광촌의 풍경도 사라질 거라고 한다.

 

 

 

한마디만 덧붙이자. 정선 출신의 친구가 내게 해준 말이다.

“그곳 사람들은 거기에 미술관이 남아있건, 카지노가 들어서건 관심이 없다. 그들은 오히려 그곳을 떠나고 싶어하고, 아예 그곳의 생활이라는 건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한다. 한 푼이라도 더 받아 빨리 뜨고 싶어할 뿐이다.”

탄광촌 미술관의 그 많은 의미들 가운데,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한마디 말은 무엇일까. 탄광촌 미술관을 한번의 퍼포먼스로 보고싶지 않은 까닭에 그의 말 또한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