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와 함께 보낸 이틀밤

녹음기와 카메라를 들고 들국화를 찾아가기로 했다. 한밤의 올림픽대로를 달렸다. 그들은 미사리의 카페촌에 있었다. 밤 12시부터 공연을 한다고 했다. 미사리가 가까워오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들국화가 누구던가! 흔한 말로, 그들은 정말 그 시대의 '신화'였다.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등등 주옥같은 노래 하나 하나가, 그리고 희대의 보칼리스트 '전인권'으로 대표된 그들의 카리스마가 그랬다. 그 옛날에 관해 묻는다면 참 할 말과 들을 말이 많을 것 같다.

 첫째 밤, 안녕하세요, 들국화!

 

녹음기와 카메라를 들고 들국화를 찾아가기로 했다. 한밤의 올림픽대로를 달렸다. 그들은 미사리의 카페촌에 있었다. 12시부터 공연을 한다고 했다. 미사리가 가까워오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들국화가 누구던가! 흔한 말로, 그들은 정말 그 시대의신화였다.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등등 주옥같은 노래 하나 하나가, 그리고 희대의 보칼리스트전인권으로 대표된 그들의 카리스마가 그랬다. 그 옛날에 관해 묻는다면 참 할 말과 들을 말이 많을 것 같다
.
우리는 한때 모두 들국화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10대 시절이나 대학 초년병 시절의 추억담까지 곁들여서, <추억! 들국화> <들국화 골든> 같은 인터뷰를 하면 되는 건가. 왜 하필 미사리인지미사리엔 3, 40대 아줌마 아저씨들이 판을 치고 앉아서, 거의 유물이 되다시피 한 흘러간 노래들이나 듣고 있다고 했다
장대한 신화와 카리스마가 벌써 가요사 박물관처럼 된 미사리에 안치되어도 되는 건지?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자란 우리들도 그 박물관 관객이 되면 딱 어울릴 그만큼 나이가 들어, 그 유물을 어루만지면추억하면 되는 건지?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이틀 밤에 걸쳐 들국화를 만나며 좀 방향이 바뀌었다. 사실 그 밤 이전에는 들국화가 시도하는컴백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9 2, 3일의 예술의 전당 공연에 대해서만 들었을 뿐이지, 전국 순회 투어가 계획되고 있으며 컴백 앨범과 후배 라커들에 의한 헌정 앨범도 준비되고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
그리고 들국화에 대한 생각의 방향을 틀게 한 건 화려한컴백의 계획들 뿐만은 아니다. 물론 전인권의 음색은 이전과는 분명히 달라졌고 다른 멤버들의 외양도 나이가 든 쪽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감에 차 있었고 호기로웠다. 신화는 아직 박물관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2000년 가을의들국화컴백은 복고인가? 부활인가?

 

최성원 씨가 먼저 나와 전인권, 주찬권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사리로 나오게 된 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최성원 씨가 답했다. 지난 4월부터라 한다. 2월에 전인권 씨가 출소한 뒤 얼마간 몸을 추스리고 바로 노래하기 시작했단다. 9 2·3일에 있을 공연 연습을 겸할 수 있어 일석이조란다. 두 해 전엔가 본 전인권 솔로 공연 생각이 났다. 그 때 전인권은 옛날의 그와는 크게 달랐다. 세월 탓인지 건강 탓인지, 목소리는 안 좋은 쪽으로 변해 있었다.

요새 전인권 씨 컨디션은 어떤가요?
최성원 씨의 대답은 재빨랐다. “기대해도 좋다“. 뿐만 아니라 들국화 전체 멤버의 연주와  팀웍이 전성기 때의 90% 이상이라고 했다. 오호! 우리는 이런 자신감을 믿고 싶은 쪽이다. 아직도 들국화의 노래는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잘 저장되어 있기 때문일 터이다.

그 때 주찬권 씨가 나타났다. 매우 선한 인상이다. 나중의 인터뷰에서 전인권 씨는 과묵한 주찬권 씨를 가리키며 얘는 드럼 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몰라! 그래서 어떤 땐 우리가 돌아버려라 했다. 주찬권은 그런 말에도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12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근데, 인권이는 오늘 술을 좀 하고 온다던데…” 하며 최성원 씨가 걱정하는 말을 했다.
공연 시간이 임박해서 전인권 씨가 나타났다. 상당히 취한 상태로 보였다. 걸음걸이는 느렸고, 인사를 나누자마자 소파에 몸을 힘겹게 기댔다.

공연장에 올라가서 카메라를 준비하고 있었다. 공연 준비를 하러 올라 온 최성원 씨가 뜻밖의 말을 했다. 전인권 씨가 너무 술이 취해서 공연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 곤란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전인권 씨도 나타났다.

, 미안한데낼 찍으면 안되나? 인터뷰는 오늘 하고…”    
그러나 인터뷰도 다음 날 다시 와서 하기로 했다. 물론 공연 모습도 카메라에 담지 못했고. 그러나 기다리는 관객들 앞에서 공연은 시작되었다. 우리도 그냥 관객으로 앉아서 공연을 봤다. 무대에 오른 전인권 씨가 가득 술이 든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죄송합니다. 한 잔 했습니다.” 관객들은 오히려 즐거워한다. 전인권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할 그런 관객들인 거 같았다. 전인권이 어눌한 목소리로 한마디 덧붙였다.
전 맨 정신이 싫거든요.”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공연이 끝나자 최성원 씨가 예의를 차리며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 미안해요. 내일 보자구요.” 주찬권 씨도, 그리고 전인권 씨도미안하다는 말을 건넨다. 서울로 돌아오는 새벽길에 생각했다. ‘천만에요가 아니라 만나서 반가워요! 안녕하시군요, 들국화.

 

둘째 밤, ‘그것만이 내 세상을 새롭게 알아줘!

 

공연이 시작되기 전의 과정은 첫날과 비슷했다. 최성원 씨가 오고, 주찬권 씨가 뒤를 잇고 전인권 씨는 마지막에 나타났다. 그의 취기도 여전했다. 그러나 어제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제 공연이 잘 안된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 공연은 어제와는 사뭇 달랐다. 훨씬 역동적이었고, 공연하는 멤버들이나 관객들이나 훨씬 깊이 음악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전인권 씨는 앵콜도 하나 더 했다. “사랑한 후에였다. 이 노래가 나오기 시작하자 인터뷰 촬영을 준비하던 퍼슨웹의 스텝 하나는 장비를 던져두고 공연장으로 달려가 버렸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라는 거였다.    

전인권 : 우리는 방송국 거부한 놈들이잖아, 싫다 너희들, 이거야. 걔네들 정말 촌스럽거든. 그러니까 그런(!) 분위기로 찍어줘
전인권 :
(다른 멤버들에게) 너무 재밌는 게. 우리가 헌정 음반을 제작할라고 했는데 다들 재미없게 노니까, 야설록이 끼면 진짜 뜰 거 같아.

주찬권: 하기로 했어?
전인권: 아니, 아직.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만나기로 했어.

(인터뷰어를 보며) 헌이 형(평론가 강헌 씨) 만나서 술 좀 먹었어.
전인권:
(인터뷰어에게) 나 술먹고 해도 되는 거지? 그것마저도 자유를 뺏으면 그건 후진 나라지!

공식적인인터뷰가 시작되고 카메라가 돌기 시작했다. 또 미사리 이야길 꺼내야했다.

– 미사리에 나오시면서 주저하시지는 않았나요
최성원 : 아니, 서슴없이. 연습도 겸해서.
전인권 : 이게 웬 떡이냐. 그랬지.

이번 공연의 의미에 대해서
전인권 : ~ 9 2, 3일 공연은 우리한테 참 의미가 많은데. 내가 어려운 일을 겪을 때 나한테 다시 힘을 줬던 두 사람과 함께 뭔가 감동을 주는 멋진 공연. 우리가 다시 시작하는 입장에서……
또 하나는 정말 이 땅에 공존이라는 의미를 심어주고 싶은 공연이야. 노래방 문화, 무슨 문화 무지하게 많아졌는데 정신적인 싱그러움과 다시 19살로 돌아가는 공연이 될 거야, 아니 될 거예요.

공존이라는 의미는요?
전인권: 우리나라에서 인간을 위한 문화는 모두 수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너무 한쪽으로만, 놀이문화만, 물론 음악도 놀이문화지만 노래방 문화, 미사리 문화 이런 쪽으로만 발전했는데, 우리가 잊어버린 거그러니까 살다가 죽는 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인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걸 제시할 수 있는, 박물관을 역사로(!?) 우리가 즐기면서 하는 그런 것도 같이 겸해서 노래방 문화가 발전된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니까.

– “안녕하세요, 들국화라는 공연 제목의 의미는?
최성원: 우리가 옛날에 활동할 때 낸 앨범 타이틀이안녕하세요 들국화에요. 기억하는 사람들은 알 거예요. 다시 만나는 거지요.

음반도 계획을 하고 계신가요?
전인권: 그건 당연하지. 10 1일부터 학전에서 약 15일간 공연을 할 거야. 거기서 신곡도 발표할 거고.

요즘 음악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최성원: 글쎄요. 뭐 아까 전인권이 얘기했듯이 그런 문화도 있어야긴 하지요. 그동안 다른 게 너무 없었으니까. 그런 걸 이제 시작하는 거죠. 여러가지가 다양하게 공존할 수 있기를 바라는거죠.

공연의 성공 가능성은?
최성원: 100%. 이미 성공했는데.

전인권: 거기다 덧붙인다면 386은 들국화. 그러구 586 386, 그렇게 가야될 거에요. 그렇게 갈 것이고. 386의 분노를, 386의 스트레스를 우리는 이해하고 있으니까. 386 586, 386은 들국화, 난 자신 있어요.

386은 들국화, 586 386!!? 전인권 씨의 농담 섞인 말속에 뼈가 담겨 있었다. 들국화는 386밴드란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색채를 그렇게 표현하고자 한 걸까   

주찬권 씨도 한 말씀을?
전인권: 이 친구는 드럼 외에는 아는 게 없어. 우리가 돌아버려. 하하하!

공연 컨셉과 레파토리도 궁금한데요
전인권: 신곡이 두 곡 들어갈 거고. 전체적인 컨셉이 축제 분위기야. 뭐랄까, 들국화의 심오한 음악과 축제의 분위기, 우리가 정말 바라던 축제, 자유로운 축제의 분위기로 갈거야.


세 분만으로는 부족하지 않나요?
최성원: <사랑과 평화>랑 같이 할거야. 기타는 사랑과 평화의 최이철. 건반은 사랑과 평화의 안정현. 드럼은 이번에 투 드럼인데, 누구지?
전인권: 성은 모르겠는데, 이름이 대웅이
.
최성원: 보조 베이스는 사랑과 평화의 장태용
.
전인권: 그러니까 전체적인 게 뭐냐면 들국화와 <사랑과 평화>를 합하는데 물론 공연은 들국화 콘서트.

헌정앨범이 준비되고 있다고 하던데
최성원: 우리한테 영향을 많이 받은 후배들이 우릴 위해서 우리 곡을 갖고 자기 스타일로 만들어서 우리한테 바치겠다 이런거지. 지금은 제작자를 물색하고 있어.
전인권: 제작자들이 뭐라고 하냐면 요즘의 풍토로 가자, 백화점 스타일로 가자는 거지. 우리는 그게 아니다, 소박하지만 거하게 가자, 이거거든. 여기에 맞는 제작자를 찾고 있는 입장이야.
(다시 정중하게) 찾고 있는 입장입니다.

가수 말고도 다른 사람이 참여합니까?
전인권: . 최민식이랑 이효정이라는 배우가 뭐라고 했냐면, 아니 들국화를 가수들만 좋아했나? 영화배우도 좋아했지. 그래서 그 영화배우들도 출연해서 우리랑 같이 노래할거고, 한 두 곡. 신동엽이도 같이 노래하기로 약속했어.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하게 된 이유는?
전인권: 예술의 전당에서 우리한테 해달라고 섭외가 들어와서 하는 거고, 예술의 전당 자체보다는 거기 야외무대가 죽인다고 해서 하는 거야.

공연에 대해서 팬들에게 직접 한 말씀씩 해주시죠.  
최성원: 와서 좋은 시간을 같이 보내면 좋겠습니다.
전인권: 오랜만이다. 오랜만에 와서 오든지 말든지 좌우간, 와라!! 오랜만에 만나자
.
주찬권: , 이번에 다시 공연을 시작하게 됐는데요, 우리를 좋아하는 분들 오셔서 좋은 시간 보내면 좋겠습니다. 꼭 오시기 바랍니다.

공식적인인터뷰가 겨우 끝났다. 컴백 공연이 준비되면서부터 들국화에 대한 매스컴의 관심이 갑자기 높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멤버들은 근자에 위의 내용과 비슷비슷한 인터뷰를 수 차례 반복해야 했고, 정말 피곤한 말이라 덧붙였다. 카메라가 꺼졌다   

최성원: 그런데 이걸 어떻게 볼 수 있나?
전인권: 떠블류, 떠블류, . 그걸 알려 줘야지. 거 왜 씨오 쩜 케이알 뭐 이런거
.
주찬권: 하하하, 맞어 맞어.
(전인권을 보며) , 너 센데?
전인권: 텔레비전에서 맨날 떠블류 떠블류 쩜, 씨오 쩜, 케이알 쩜, 하잖아
.
주찬권: 나보다 낫네.

퍼슨웹 명함을 줬다.  
최성원: 난 이미 받았으니까, 너희가 받아라.
주찬권: 나도 하나 주세요
.
전인권: 나도 보고 싶어. 여러분이 우리의 좋은 모습을 느끼는 거 같아. 그러니까 내보낼 때도 좋은 모습을 부탁해. 우리가 밤일을아냐 아냐. 좌우간 좋은 모습을너무 내보내지 말고
(!?)
전인권 : , 근데 어젠 실수했다. 어제 (인터뷰를) 했어야 했는데
.
우리가 박통시대에 살았잖아텔레비라고 하면 웬지 거부감이 있어. 근데 오늘 얘기해보니까 참 편한 사람들이네. 내가 술이 좀 취해서 그렇나
?
주찬권: 허허허.

최성원: 그 전에 마구마구 찍어가서 황당하게 내보내는 걸 본 적이 많아. 사실 우리도 검열해야 해. (웃음)
주찬권 : 그래, 사실 나가기 전에 우리가 한 번 봐야하는데, 그런 게 많았어. 정말 잡지도 그렇고.

전인권 : 되게 황당한 게 많았어. 잠깐만, 한마디만 더 하자.

전인권 씨가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넣던 스텝을 붙잡았다. 그래서 다시 카메라가 돌렸다.  

전인권 : 뭐 더라, 기억이 안난다? 큐를 줘.

그냥 하시면 되요! -!. 전인권 씨가 정색을 하고 카메라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전인권 : 386이던 586이던그것만이 내 세상이란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를 좀 더 섬세하게 기억해주고 새롭게 알아줘. 들국화의 부탁이야, 이건.

우리는 믿고 하니까 편집 좀 잘 해줘…” 주찬권 씨의 마지막 부탁 말씀이었다.  

그래, 멋있게-. 들국화 멤버들은 자신이 누군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그들이 만들어내었던 신화와 카리스마, 그들이 끼친 영향, 그리고 현재의 자신들이 자리한 위치에 대해서까지 말이다.

장비를 챙겨 차에 오르려 할 때였다. 다른 차를 타고 어디론가로 출발하던 전인권 씨가 이제까지 줄곧 끼고 있던 썬글라스를 벗고 우리를 향해 차창 밖으로 외쳤다.

 “, 그거 나 술 취한 거까지 다 내보내도 괜찮아! 그냥 써! 안녕-!”

그렇게 들국화와 보낸 이틀밤이 끝났다. 새벽 3, 서울로 돌아온 퍼슨웹 스텝들은 해장국집을 찾아 바삐 소주잔을 기울였다. 아직도 우린 들국화 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