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웃사이더의 표정

진중권 씨는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 했다. 2000, 그리고 서울 땅에서 사회주의자를 자처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사회주의자에 대해 내가 가진 막연히 커다란 이미지 탓인지, 아니면 또다른 편견 탓인지 사회주의자가 진중권 씨의 삶에 딱 들어맞는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진중권씨가 자유주의적 원칙을 옹호하는 대목에선 정말 그답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극우적인 집단과의 논전에서 그가 들고 다니는 자유주의라는 무기 때문만은 아니다. 진중권식 자유주의는 정말 녹록한 게 아닌 듯했다. 그는 몸으로 자유주의를 사는 듯했다. 외국에서 일본인 여자와 만나 결혼해서 살고 아이를 놓고, 권력화된 제도 바깥에서 저항하고 비판하며 배낭하나 달랑 매고 인터뷰 자리에 나타난 그는 글로는 알기 어려웠던 이런 삶의 방식을 거침없는 태도로 말해 주었다. 사실 입으로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면서 권력에 기생하고, 대학교수로 보장된 보수적 이익에 집착하는 먹물이 얼마나 많은가!

 

 

 

1. 사회주의자

 

진중권씨와 인사동에서 만났다. 인사를 나누고 근황을 물었다. 별로 말을 아끼는 성격은 아닌 듯 싶었다. 기냥 머리 치고 꼬리 자르고, 칼 들고 곧장 들이치며 질문을 시작했다. 진중권을 만나기로 했다니, 주위 사람들이 그 사람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첫 질문은정체를 밝혀라!’로 해야지 하고, 마음 속으로 작정을 했다.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삼불이(이하, ):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당신은 무슨 주의자냐?

진중권(이하, ): , 사회주의자다.

 

진중권씨의 대답엔 일말의 주저도 없었다. 곧장사회주의자라는 명찰을 꺼내 붙였다. 물론 우리가 붙인 건 아니고, 본인이 직접 만든 명찰이었다. 어떤 알리바이도 대지 않고, 어떤 비유도 쓰지 않은 채 나온 답변이라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 사회주의자라, 공식적으로 표명한 적은 없지 않나?

: 사회주의자다, 아니다 라는 식의 명찰보다는, 구체적 현실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사회주의는 이념적 목표다.

 

: 언제부터 스스로 사회주의자라 생각했나?

: 대학 2학년, 맑스의 『정치경제학비판』과 『공산당선언』을 읽고 나서다.

 

: 선배들의 학습을 통해서?

: 아니, 난 개인적으로 학습했다.

 

혼자 책을 읽다가 사회주의자로 개종했다니, 지식인답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엔 번역본도 없었고, 선배 없이 야간에 자율학습을 했다고 하니, 그럼 외국어를 직접 읽었다는 말인데, 외국어를 잘 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도 있고 해서 물었다.

 

: 당신 선후배가 당신을 언어의 귀재라고 하던데? 영어, 독어, 불어, 러시아 등등.

: 옛날 일이지. 남들보다 말을 조금 빨리 익히는 편인 듯하다. 러시아어는 2달 공부하고 바로 번역을 시작했으니. 그냥 독해만 하고, 말을 잘 하는 건 아니다.

 

: 대학 시절엔, 조용한 사람이었다던데?

: 말을 많이 했는데, 눈에 잘 띄지 않았던 것뿐. 그 시절에야 운동권이 목소리가 제일 높았으니까.

 

솔직한 인상을 말하자면, 진중권 씨는 분명 말수가 적은 사람은 아니다. 그 반대에 가까웠다.

 

: 국내에서 활동하다가 90년대 중반인가 유학갔다던데?

: 석사과정 마치고 여러 단체에 있다가, 독일로 갔다. 유학 자금이 필요해서 『미학 오디세이』로 돈을 좀 벌고 갔다.

 

: 책 팔아 생활할 정도의 돈이 마련되었나?

: IMF 터지기 전까지는 충분히 가능했다.

 

: 왜 독일로 갔나?

: 베를린 자유대학이었는데, 사실 난 공부에 별 관심도 없었고, 학위를 하겠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갔다. 다만, 동독 사람들을 만나고 싶기는 했다.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방황하다가 구체적 계획 없이 그냥 간 거다. 가서 처음 3년간은 무작정 놀았다.

 

: 독일에서는 어떻게 노나?

: 놀기 좋다. 외국 사람들이 많으니, 서로 파티하고, 어울리고 하면서.

 

: 부인도 외국 분인 걸로 알고 있다. 독일에서 만났나? 멋진 로맨스는 없었나?

: 독일에서 만났는데, 우리 로맨스 같은 거 없었다. 그저 좋은 친구였다.

2. 우익 똘반 아이들? 진짜 불쌍하지….

 

삼불이: 당신을 유명하게 한우익 똘반 아이들에 대한 공격은 독일에서 시작했나?

진중권: 아마 97년 무렵이다. 나한테 원고 청탁이 왔는데, ‘악마주의에 대해서 쓰라고 했다. 19세기 예술가나 작가들의 악마주의적 상상력 같은 거였다.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글이낭만주의적 영웅어쩌고 하면서, 박정희를 미화하는 특집에 실리는 거였다. 허나 어쩌나, 어쨌든 원고는 보냈으니. 그래서, 내 의견을 한 4-5페이지 정도 첨부할 수 있게 해달고 했다. 그쪽에서 오케이 했고. 그래서 보냈는데, 편집회의에서 짤라 버렸지. 그 자리에 이인화도 있었다고 했는데 그냥 가만히 있었데. 완전히 열 받아서, 편집위원 명단을 알려 달라고 난리를 쳤더니, 다른 잡지를 소개해 주겠데.
그곳이 <문학동네>였거든. 그래서 접촉이 되었는데, 그쪽에서 요즘 조갑제가 박정희 찬양하는 글을 쓰고 있으니, 그걸 비판하는 글을 청탁하더라고. 그래서 썼는데, 지들이 먼저 부탁해 놓고는 나중에 못 싣겠다는 거야. 아마 <문학동네>하고 <조선일보> 사이의 협력 관계에 문제가 생길까 싶어서였겠지. 여기서 완전히 돌아버려서, 이곳저곳 더 알아봤지. 그 글이 돌고 돌다 <인물과 사상>에 들어갔고, 거기서 연락하기를, 자신은 언론의 자유를 화끈하게 보장하니 막 쓰라는 거야. 자료도 보내주면서. 그래서 연재하게 됐지. 나중에 정보를 입수했는데, 10.26 10주기를 기념해서 박정희 전기가 나온다길래, 거기에 맞불을 놓자 해서, 2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그 짓만 했지.

 

: 힘들진 않았나?

: 재밌었다. 나 혼자 재밌어서 낄낄거리고 그랬다. 마누라는 우리말을 모르니당신 돌았어?’ 하고, 그 사람이 그러는데 내가 잠자리에서도 낄낄거렸대.

 

: 그럼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가 뜰 줄 알았다?

: 그것보다도 걔들 글이 재밌잖아. 웃기고. 완전 코메디 수준이지.

 

: 당신은 스스로 사회주의자라 하지만, 우익 똘반 아이들 공격하는 글이사회주의적이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야만, 미개, 비논리, 비합리 등등 당신이 쓰는 용어나 논리는 오히려 자유주의에 가깝지 않나?

: 걔들과의 싸움은 이건상식과 비상식의 싸움이지, 무슨 세계관 대결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사회주의가 얼마나 좋은 건데라는 식의 반론은, 닭짓이다. 걔들하고 세계관 대결을 벌인다 하면, 그건 결판이 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결판이 날 수 있는 논리의 영역으로 걔들을 끌어들인 거다.

 

: 그 말은 자유, 관용, 공존 등 자유주의적 원칙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진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믿는다는 말로 이해해도 되나?

: 당연하다. 일단 동서독을 보더라도, 그렇지 않은 사회는 매력이 없다. 재미도 없다.

: 정리하면, 당신은 결국 한국 사회는 수준 이하고, 그런 상황을 못 참겠다는 생각인가?

: 그렇다. 일단 우익 똘반과 같은, 그 친구들 없애버려야 한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들 하니까. 일단 걔들은 고립시켜야 한다. 그리고나서 우리 사회가 이념적으로 다양해져야 한다. 한국의 좌파들은 자꾸 세계관의 차원에서 고상한 말만 한다. 구체적인 정책을 내어놓지는 못하면서 말이다.

 

: 당신이 비판하는 방식은, 논리 이전에 있는 어떤 것을 들추어내거나, 부분과 부분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그 논리의 모순을 폭로하는 방식이다. 그럼, 당신은 실제 누구나 공유할 수 있고 누구나 참이라고 믿는 논리의 세계가 있다고 믿는 쪽인가?

: 내 비판 방식은 일종의 게임이다. 사실 장난이다. 논리는 그 게임의 규칙 같은 거다. 솔직히 난 그들을 놀려먹는 거다. 도덕적 단죄 같은 건 안 한다. 도덕적 단죄를 하면 부담이 생긴다. 내가 도덕적으로 결함이 없어야 된다는 사실이 부담이다. 누가 더 선하고 깨끗한가, 이런 싸움으로 가고 싶지 않고 가봐야 도움도 안 된다.
그냥 만지고 주물럭거리면서, 내 전공이 미학이니까, ‘미학적으로 풍자하고, 그런 게 내 적성에 맞다.

 

: 당신한테 걸린 사람들, 예컨대 조선일보의 조갑제, 소설가 이인화, 이문열 등등이 그런 사람인데, 솔직히 그런 사람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 진짜 불쌍하지. 인생을 왜 그렇게 사느냐 말야. 그 사람들, 지배욕, 권력욕으로 사는 사람들이거든. 그렇게 살아야 사는 거라고 믿으니, 진짜 불쌍하지. 지배하고 권력을 지녀야만 잘 사는 건가 말야. 그렇지만, 그들이 지금 이 시기에 한국에서 살고 있다는 건 최고의 혜택이다.
그런 어처구니 없는 비상식과 몰염치가 통하는 시대, 통하는 사회니까 말이다. 그러나, 또 최대의 불행이기도 하지. 나 같은 놈과 같은 시대, 같은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

 

: 당신이 행한 비판에 대해서, 당신이 인정할 만한 반론을 받아본 적이 있다고 생각하나?

: 없다. 당연히, 있으면 안 된다. 처음에 준비할 때 철저히 준비해서, 그 주장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인정할 만한 반론이 나오면 그건 내가 잘못 한 거지. 완벽한 승리를 자신할 수 있을 때 나서야 한다. 시각에 따라 다른 반론이 가능한 것, 그런 건 건들지도 않는다.

 

솔직히 난 진중권 씨가 사회주의자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주장하기는 하지만, 나의 편견 탓인지 실제 진중권 씨의 삶에 딱 들어맞는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진중권씨가 자유주의적 원칙을 옹호하는 대목에선 정말 그답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중권식 자유주의(?)는 실상 녹록한 게 아닌 듯했다. 외국에서 일본인 여자와 만나 결혼해서 살고 아이를 놓고, 권력화된 제도 바깥에서 저항하고 비판하며이런 삶 자체를 실제 살고 있는 사람이니까. 입으론자유주의자를 자처하면서 집중화된 권력에 기생하고, 대학교수로 보장된 보수적 이익에 집착하는먹물이 얼마나 많은가!

3. <인물과 사상>, <아웃사이더> 사람들

 

이제 돌아갈 수 없는 문제를 던져야 할 때이다. <인물과 사상>의 강준만, <아웃사이더>의 김규항·김정란 등과 함께 일하곤 하는데, 도대체 그들과 본인이 서로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하는지 말이다.

 

삼불이: 당신을 강준만 부류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 사람은 공공연히 자신이 자유주의자라고 하는데, 그 사람에 대한 당신의 솔직한 견해는?

진중권: 기본적으로는 긍정적이라 판단한다. 다만, 지나치게 친민주당이 아닌가 하는 우려는 있다. 또 하나, 인물론을 전개하는 데 너무 평가적이다. 사람은 변할 수 있는데, 그 여지를 너무 줄인다는 인상이다.

 

: 김규항, 김정란, 홍세화 씨와 <아웃사이더>를 냈는데, 당신은 늘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하나? 조직 활동과 관련된 체질은 어떤가?

: 조직 활동과 아웃사이더로서의 활동, 둘 다 잘 할 수 있다. 조직적 훈련을 받아본 적이 있으니까.

 

: 다소 미묘한 질문이 되겠는데, <아웃사이더> 동인에 김정란 씨가 껴 있다는 건 이해가 안 된다. 최소한의 합의점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김정란 씨의 글은 투정, 극단적으로 말하면그 속에 들어가고 싶은데, 배제되었다는 식으로 읽힌다. 그래서 오히려 <아웃사이더>에나 안티 조선일보 쪽에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그전에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김정란 씨가 쓴 글에 대해서 나도 불만이 많았다. 개인적인 문제와 대의가 명확하게 구분이 안 되어 있었고. 또 정치적 담론과 문학적 담론이 구분되어 있지도 않았다. 내 주변에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9/10였다. 그 다음에 사람들한테 김정란 씨에 관한 온갖 부정적인 사적인 이야기까지 다 들었다.

 

: 그런데도 함께 하게 된 이유는? 그 사람도 <조선일보>를 까는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

: <조선일보>를 까는가 아닌가 문제 수준이 아니다. 우리 문학판 전체의 문제다. 문학판에서는 아무도 김정란 씨 같은 글을 써 주지 않는다. 김정란을 욕하는 문학평론 하는 한 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그럼 네가 그런 글을 써보겠냐. 그 친구는 못하겠다고 했다, “먹고 살아야 되기 땜에“. 그런 건 잘못된 거 아니냐? <문학동네>하고도 싸움이 붙었는데 황당했다어쨌거나 나는 지금 올바른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뜻을 합했으면 그 사람을 끝까지 보호해야 한다는 거 아닌가.

 

: 막상 문학판에서는 뒤에서 군지렁대는 말은 많지만 공식적으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 그놈의 문학판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거기 정말 끔찍해, 끔찍해. 어떻게 그런 인간들이 시를 쓰고……

 

: 좀더 자세히 말해 줄 수 있겠나?

: 아니전반적인 분위기가! (정말 끔찍하다는 표정과 제스처를 썼다) 만나서 술자리에서 한다는 얘기라든지 누구 씹는 이야기라든지 보면 문학적이기는커녕 기본적으로 몰상식 그 자체다. 또 그 무딤, ‘감성없음성‘, 또 발언의싸가지없음성‘, 마초 근성까지.

 

이 대목에서 진중권씨는 정말 넌더리가 난다는 표정을 계속 지었다. 말 하는 것조차 귀찮고 역겹다는 인상을 풍기면서.

 

: 정말 끔찍했던 모양이군.

: 예술가들은 감성으로 정치적인 문제까지 알아차려야 되지 않나. 근데 기본적인 감성이라는 건 없는 동네더라고. 몇 가지 말장난으로 먹는 동네고…. 또 그 권력! 아유, 정말 끔찍하다. 그래서 따져보면 김정란 욕하는 사람들이나 김정란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다른 사람들한테 김정란에 관한 말을 많이 들었지만, 내 판단은 최종적으로 OK였다.

4. 미학연구자 진중권

읽고 쓰며 자유롭게 산다

: 비트겐슈타인 공부를 한다며?

: 근대 철학을 완전히 박살낸 사람이 비트겐슈타인이다. 데리다도 사실 비트겐슈타인 읽었거든. 데리다 <목소리와 현상>에 나오는 논증, 그거 다 비트겐슈타인이 한 거다. 근데 비트겐슈타인에 대해서 한 마디도 안 하거든, 그게 비트겐슈타인을 읽었다는 증거지. 포스트모더니즘이 쓸 데 없는 비합리주의나 상대주의로 흐르지 않게 할 근거가 비트겐슈타인 안에 있는 거 같다.
그거를 언어철학적으로 접근하는 게 내 철학적 프로젝트다. 그리고 모던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비판이 노출증적으로 흐르지 않게 언어철학적 기반을 마련하는 거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정말로 유용한 분야가 사실은 예술이나 미학 분야다. 지금 보면 그 친구들 글쓰기가 문학적 글쓰기로 변해버렸지만, 포스트모던의 사상은 사실은 옛 아방가르드 예술적 실험 같은 걸 철학의 영역에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 미학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많은 분야 거다.
 

 

: 박사 논문은 안 쓰나?   

: 써서 어디 갈 데도 없고 받아주는 데도 없고내가 일단 거기 담을 쌓았기 때문에근데 박사는 하고 싶어. 근데 안 붙여 주더라고, 짜증나게이것도 과욕인지아집인지

 

: 한다면 어디서?

: 독일은 이제 갈 수가 없고, 할 수 있다면 일본에 가고 싶다.

 

: 부인도 일본 사람이니부인은 뭘 하시나?

: 미술사 전공했어. 지금은 애 낳아서 키우고 있고. 얼마 전에 애를 낳았다. 나야 항상 집에 있으니 애를 같이 봐야지. 기저귀 갈고젖 주는 거 빼고는 다 할 수 있지 않겠나?

 

: 제도권 학자가 되는 건 완전히 접고 있는 거네.   

: 굳이 안 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받아 주지도 않을뿐더러. 들어가면 또 이걸 해야 되니까.(손을 맞대어 비빈다) 내 인생에 특별히 도움될 거라고 생각이 안 든다.

 

: 글면 당신이 지금 주로 하는 일이 뭐냐?

: 글 쓰는 거지. 그게 가장 중요하고. 요즘은 출판사에서 이론서는 웬만하면 안 내줄라 그런다. 만날 나더러는 대중용 뭐를 써라 그러는데. 짜증나지. 이론서 작업을 계속 해볼 생각이다. , 피아니스트한테 맨날 팝송만 치라하면 짜증나지 않겠나? 물론 팝 공연하면 몇 천 몇 만이 오겠지만, 독주횔 한다면 몇 명이나 콘서트에 오겠나. 나와 같은 이론적 관심을 가진 사람이 전세계적으로 한 500명이나 되겠나. 뭐 그런 문제다.  

 

: 생활비는 어디서? 원고료나 인세?

: 그렇지 주로. 근데 내 아내도 그렇고 생활에 대해선 큰 기대는 없다. 만족하면서 살고.
자동차도 없고 삐삐도 없고. 없이 살 수도 있거든. 좀 불편하긴 하지만. 카페 같은 데 가면 비싸니까 자동판매기 커피 뽑아서 길바닥에서 이야기 하고.

 

: 김포에서만 지내고 서울에 잘 안 나오냐? 집에서 읽고 쓰고…?

: . 가끔 같이 산책 나가고 날 좋으면 와인 잔 두 개 들고 나가서 논바닥에 앉아서 와인 한 잔 마시고

 

: 김포에 사는 별난 이유라도 있나?

: 아니! 우리가 조그만 건물을 하나 갖고 있었는데 전 재산이었지. 그걸 팔아서 동생 장가 가는 데 보태고 남는 거로 집 살라 그러니까, 모자라지. 외곽으로 갔지. 싸니까. 난 유학하면서도 벌어서 가족을 부양했지. 히히.

 

: 성장환경은 어땠나?

: 그렇게 가난하지 않았는데, 어렸을 때는 아주 가난했다.

 

짐작하겠지만, 진중권 씨의 벌이가 신통찮은 듯했다. 생계는 겨우 꾸려가지만 여유는 거의 없다고 했다. 사실 무엇보다도 이 대목에서 좀 안타까웠다. 진중권 씨에 대한 오호의 감정은 다양하겠지만, 이런 사람이 계속 정력적으로 활동한다면 더 재밌고 즐거운 사회가 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5. 글쓰기와 삶의 전략

 

: 당신이 글쓰고 비판하는 방식이 요즘 젊은 학생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진지하게 탐구하는 책은 거의 안 읽고, 강준만이나 당신 같은 글투로 쓴 책을 주로 읽는다 한다. 남의 말을 꼬투리 잡고, 빈정대고, 까발리고, 폭로하는 식의 어투가 확산되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무슨 책임감 같은 건 안 느끼나?

: 내 글을 읽는데, 겉모습만 보아서는 곤란하다. 난 비판하기 위해 아주 치밀하게 읽고 구상한다. 그 논리의 구성과 따지는 안목을 보아야 한다. 또 도덕성이 중요하다. 누군가를 비판할 때, 내가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선하다는 식의 태도는 취하지 않는다. 이런 걸 보지 못하고 표피적으로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그렇다고, 그런 문제의 책임을 나보고 감당하라는 것은 좀 지나치다. 그러지 말라고 내가 떠들고 다닐 수는 없지 않나.

 

: 맨날 남 조지기만 하는데 조지지 않고 존경하는 사람이나 인정하는 사람은 없나?

: 존경의 감정은 안 갖는 거 같다. 누구한테도. 그런데 인정하는 사람은 많지. 내가 씹었던 사람들 말고.. 이영희 선생, 양동휘 교수라든지 꿋꿋하게 공부하는 사람들.

 

: 당신에게 철학적인 기본 입장이 있다면?

: 이름을 붙여 말하긴 뭐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입장에 많이 동의하는 편이다.  

 

: 지적 충격의 계기들은?

: 대학 다닐 때는 맑스 정치경제학이나 <공산당 선언> 읽고 뿅 갔지. 더 어릴 땐 니체였던 거 같고. 니체를 세 번 접했는데. 학부 때 굉장히 끌리는 면이 많고 사람 마음 편하게 해주는 거 같더라고. 그거로 운동권 친구들 많이 놀려주고 그랬지. 내 수준에서 이해한 거 가지고니들 그거 다 권력의지야, 대의 좆까지마.” 그랬지. 하하.
다음엔 루카치 <이성의 파괴>로 읽었는데 군대 가서였다. 루카치는 맑스주의의 관점으로 니체 철학을 파시스트 철학의 선구로 딱 규정하더라고. 그래서 완전히 네가티브하게 이해를 해 보기도 했고. 그러고 나니 그런 구절만 보이데. 그 다음엔 요즘 포스트모더니스트 애들이 떠드는 거 가지고 한 번 이해해봤지. 맥락 자체엔 동의하지 않지만 니체 철학에서 건질 건 많다고 본다.

 

: 유학 가서는 그런 경험이 없었나?

: 데리다의 <법의 힘>이라는 책. 세 개의 법철학이라 해서 바이마르 법에 대한 발터 벤야민의 좌파적 비판, 또 칼 슈미트의 우파적 비판이 내용인데, 데리다는 알 듯 모를 듯 결론을 냈다. 그런데 거기서 텍스트 읽기의 예술 같은 걸 느꼈다. 세미나 시간에 보면서 팍 느낀 건옛날에는 철학적 담론이라는 게 세계관의 표현이라 이해했는데, 그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깨졌다. 추상적인 철학적 이야기나 논리가 현실의 법 논리나 정치적 투쟁과 어떻게 매취되는가 하는 거세상이 다시 보이더라고. , 그렇게 읽는 거구나. 유학 가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 그거야.

 

: 우리나라 지적 풍토에서 제일 약한 게 텍스틀 읽어 내는 힘 자체가 없다는 거냐?

: 바로 그거다. 텍스트를 못 읽어. 텍스트를 읽는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는 거지. 추상적인 논리와 현실의 끈적끈적한 물질적 힘들이 어떻게 매치가 되고 어떻게 언어적으로 표현되고 텍스트로 생산되는가? 그 고리를 봐야 되는데. 걔들 비판하는 거도 밑에는 여러 가지 법철학적인 논리를 좍 깔고 그 스펙트럼을 바탕으로 파악한 뒤 현실의 논리나 현실의 텍스트로 들어가는 거지. 그 정치적 효과가 뭐냐? 재네들이 말하는 게 뭔지 그걸 폭로하는 거지.

 

: 한국 지식인에게 할 말은?

: 사람들이 사실 이런 거에는 관심이 없어. 공부하는 놈들은 당연히 왜 저 새끼가 저런 쓸 데 없는 닭짓 하느냐, 그렇게 타자로만 보고. 심지어는 타자를 얘기하는 그 친구들조차도 나를 타자로 얘기하잖아. 날 왕따로 만드는 거지.

 

: 외롭지는 않냐?

: , 외로울 필요 없어.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밥만 먹여 놓으면 혼자 잘 놀았다. 내가 젤 좋아하는 건 섹스하고 공상하는 거다. 혼자

: 혼자?

: , 그룹섹스에는 별로 관심 없다. 사랑하는 사람만 있음 되지. 하하하. 책 읽으면서 오르가즘 느끼고.

 

: 나름대로 굴곡도 많았던 거 같고 살 날도 많이 남았는데 당신의 삶이 한 전형이나 삶의 가능성인가? 당신 사는 방법을 자평한다면 어떤가? 나와 같은 삶의 형태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은 사회가 되는 걸까?

: 내가 사는 방식을 남들한테 권하고 싶지는 않다. 각자가 자기 방식대로 사는 건데. 근데 그런 거 있다. 자신의 삶 자체를 작품이라 간주하고 자신의 형식 원리에 따라 그걸 창조적으로 꾸며나가는 거그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도덕적인 측면에서도 자기자신의 도덕을, 사적인 도덕을 가졌으면 한다. 우리가 사는 걸 보면 미리 정해져 있다. 그래서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은 사회적 도덕이나 가치관에 억지로 꿰맞춰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을 긍정하고 자기 도덕을 만들어 나가고또 자기 도덕을 만들되 이상한 이기주의로 흐르지 않게끔 합리적으로 논증이 가능하게 만들어 나갈 수가 있다고 본다. 그러면 공장에서 물건 찍는 것처럼이 아니라 각자 자기 삶을 예술 작품처럼 만드는 거지. 예술에도 논리가 있잖아? 굉장히 다양한 가치관과 삶이 가능하다고 본다. 근데 막 사는 게 아니라 가꿔 나가는 그런 삶.

 

: 마지막으로 물어보자. 이 인터뷰 전체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대목이 있다면?

: <조선일보> 보지 맙시다. 아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