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애 – 한빛은행 비정규직 노동자

96년 5월 한일은행에 입사했던 이정애씨(26)씨는 98년 1차 구조조정과 함께 지금의 한빛은행 소속이 되었다. 한빛은행은 예전의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이 합쳐져 만들어진 은행이다. 한빛은행은 이번 파업에 거의 90 %의 노조원이 참여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번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다른 지점과 마찬가지로, 7월 11일 아침, 동료들은 연세대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관리자들을 제외하면 일선의 행원은 그녀 혼자였다.

금융파업 그후한빛은행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인터뷰

 

협상이 결렬되고 파업인 선언되었으나

은행창구가 멈춘곳은 하나도 없었다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 아니 동참 할 수 없었던

비정규 은행직원들이 빈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었다

 

<퍼슨웹>은 지난 7월 초

파업을 앞둔 은행노조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심정과 전망을 들여다 보았다

 

이번에 우리는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이 아니라

그들 대신 창구를 자켜야 했던 은행원을 만나

파업 뒷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퍼슨웹>의 자유게시판에

금융파업은 나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던

한빛은행의 이정애씨가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이다

 

 

96 5월 한일은행에 입사했던 이정애씨(26)씨는 98 1차 구조조정과 함께 지금의 한빛은행 소속이 되었다. 한빛은행은 예전의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이 합쳐져 만들어진 은행이다.

한빛은행은 이번 파업에 거의 90 %의 노조원이 참여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번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다른 지점과 마찬가지로, 7 11일 아침, 동료들은 연세대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관리자들을 제외하면 일선의 행원은 그녀 혼자였다.

 

* 본점에서 한 명이 파견왔는데요, 기계를 다루지 못하더라구요. 저 혼자 다 했어요. 고객이 5백명이 넘으니까 마지막에는 진짜 쓰러질 것 같더라구요.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너무 화가 났어요. 한편으론 자괴감도 들고요. 내가 왜 이 짓을 하나하고 말이죠.

 

  이번 파업 과정에서 이른바 우량은행의 노조들은 98년도와 마찬가지로 파업을 눈 앞에 두고 등을 돌렸다. 회사의 회유와 협박이 먹혀든 것도 있지만, 아직까지 기업별 이해의 차이를 넘어서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한빛은행처럼 부실은행으로 찍힌 은행들은 끝까지 완강하게 버텼다. 그런 만큼 일찌감치 등을 돌린 은행 노조들에 대한 그들의 비판과 원성은 매우 격렬했다. 지난 3월 기업별 노조를 해체하고 단일 노조로 합쳐진 산별 단일 노조로 출범한 금융노조였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컸다.

 

  그러나 여기에 또 다른 모순이랄까, 문제가 잠복되어 있었다. 우량이든 부실이든 금융노조는 어디까지나 정규직 은행원들의 이해에 국한되어 있었다.

 

* 아뇨. 화는 오히려 제가 냈어요. 너무 힘들었다구. 말이나마 다들 고생했다고 하더군요.

  이씨는 파업에 반대하는 것도, 찬성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그런 판단 자체가 그녀의 의지 밖의 문제였다. 그녀는 6개월만에 한번씩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비정규직이었다.

 

  창구를 지키는 그녀에게 손님들은 혼자 남아있는 그녀의 존재를 의아스러워했다. 남들은 다 파업하는 데 왜 혼자 창구를 지키냐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정규직 행원이 아닌 자신의 처지에 대해 자괴감이 들었다고 한다. 누구보다 성실한 자신이지만, 마치 능력이 모자라서 계약직의 임시 직원이 된 것처럼 생각할까봐.

 

* 노조에서 지점으로 순회를 왔었죠. 저는 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에 참여 못하겠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예전이랑 틀리다, 무임승차하면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구조조정 일순위다라고 강하게 말하더군요. 무조건 집회 참여하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7 1일 보라매 집회에는 참여했죠.

 

  그렇지만 이씨는 자기 처지에서 볼 때 노조가 무용지물이라고 했다. 그녀와 같은 비정규직에게 노조는 오직 정규직의 이해관계를 처리하는데도 손발이 모자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노조원이 아니라고 전혀 손을 안대요. 말로는도와주자그러지만, 회사에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건 아니죠. 모든 게 직원 다음이에요. 급여인상이라든가 명퇴 같은 문제에 바쁘니까. 만약 롯데호텔처럼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분명히 요구했다면 나도 두 팔 걷어붙였죠. 하지만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아요. 정규직은 휴가원을 제출하고 참여하면 되지만, 우린 사직서를 쓰고 참여해야 하는걸요. 그렇지만 노조에선같이 하자는 말만 반복했어요.

  1년만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인사부장의 약속을 믿고 출발한 그녀의 은행원 생활은 4년이 훨씬 지금도 처음과 마찬가지로 계약직이다. 정규직으로의 전환이 실적으로 평가될 것이라는 생각에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6개월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고 있다.

 

* 물론 비정규직 행원 모두가 우리와 같은 처지는 아니구요. 우린 처음부터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았거든요. 그렇지만 아주 소수만 정규직으로 전환됐는데, 그건 다 연줄있는 애들만 됐죠. 일년에 한 두번 정규직으로 바꿔준다는 말만 계속 흘리고이제는 희망이 없다고 봐요.

 

  그녀에게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6개월은 너무도 짧다. 잊어버릴만 하면 금새 6개월 기한이 돌아온다고 한다. 그러면 계약서를 또 다시 작성해야 한다. 물론 은행에서 원하지 않는다면 재계약은 불가능하다.

 

* 우린 파트타임이잖아요. 임금도 시간급으로 받고하지만 실제로 정시 출근, 정시 퇴근하면 짤려요. 시키는 대로 다 해야죠. 우린, IMF 이후 연월차 수당도 없어졌어요. 정기 휴가도 없구요. 얼마 전부터 월차를 한꺼번에 몰아서 쓸 수 있게는 됐지만. 정규직은 지금 IMF 이전 상태로 다 복귀됐거든요? 근데 우리는 아직이에요. 더 나뻐졌으면 나뻐졌지

 

  자신들의 노조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노동부에 전화를 걸었더니 파견업체에서 파견된 비정규직에만 해당될 뿐, 자신들은 관계가 없다고 했다. 지점장이너희는 정규직과 달리 언제든 짤릴 수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으름장을 놓을 때는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혼자 살려고 버둥대는 것 같이 노조에서 보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파업 들어가기 2, 3일 전부터는 사이도 서먹서먹해졌다.

 

 * 직원은 노조가 뒤에 있으니까 무슨 보장이 있지만, 우리는 아무 보장도 없으니까 맘대로 움직일 수가 없잖아요. 비정규직 문제를 노조에서 끈질기게 요구를 할거냐, 파업을 나갔을 때 뭔가 보장할 방법이 구체적으로 있냐, 이렇게 물어보면 아무 말도 못하거든요. 그러면서 무작정 나가라고 하면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는 거 아니에요?

 

  파업 당일, 혼자 5백여 명의 고객을 감당하느라고 파김치가 되었다는 이씨. 그러나 몸보다 마음이 몇 갑절 아팠단다. 자신이 당당하게 파업에 참여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던 것일까? 몰래 울기도 많이 울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는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희망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을 바랄 뿐이다. 그러면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편할 것 같단다. 자신이 단지 계약직일 뿐이란 걸 드러내고 싶다는 의미일까?  

 

  1987년 이후 노동조합은 사회를 움직이는 주요한 세력의 하나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그 성장은 대체로 기업별 노조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므로 현재 기업별 노조를 해체하고 산업별로 통합하는 것은 하나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렇지만 기업별 노조를 해체하고 하나로 모인 금융노조는, 이번 파업에서 역설적으로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처럼 노조가 자기 기업의 이해에 묶여 있을 때 노동자는우리회사와다른회사의 노동자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노동자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로 뿔뿔이 갈라질 것이다. 그러한 분열이야말로 노동자의 파업이집단 이기주의로 매도당하는 데 있어 크나큰 원인이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