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아

문인들에게

양다리는 그리 낮설고 이례적인 게 아니다

하지만 두 가지 직업에

양다리를 걸핀 문인들 중에서도 유독 그녀는 공무원이다

그건 참으로 색다르다

왜냐하면 우리의 위대한 상식에 따르자면

소설가가 지닐 법한 직업이란

교수나 출판사 직원 또는 번역가

그 주변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공무원 배수아를 만나기로 했다

1. 사진 알레르기

 

 

 

7 1, 일산 주엽역 근처 파파이스 2. 그리고 12. 먼저 도착한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인 채, 핸드폰으로 장난치고 있다.

 

 

 

웜건([email protected]) : 안녕하세요. 배수아씨죠? 뭐 하세요?

 

배수아 : 심심해서 놀고 있었어요.

 

 

 

웜건 : 사진 기자님은 한시간 후에 도착할거예요.

 

배수아 : 사진 찍는 거라면 저 안 할래요

 

 

 

웜건 : ? (아뿔싸!) 사진 싫어하세요? 

 

배수아 : , 사진 싫어해요. 사진 찍어야 되는 거면 정말 안 할거예요.

 

 

 

배수아는 차분하게, 그러나 나를 위협하듯 말했다. , 처음부터 꼬이는군.

 

그녀는 사진 찍히기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부류에 속했다. 그런 그녀를 인터뷰라는 죄목으로, 굳이 사각의 틀 안에 가두어도 좋을까? 나 또한 카메라 렌즈 알레르기를 앓고 있다. 뭔가 불안하면서도 그녀를 설득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요즘 출판사들은 작가의 프로필 사진에 꽤나 정성을 들인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배수아의 얼굴이란 그렇게 만들어진 사진의 하나일 것이다. 그녀에겐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그녀는 분명 인상적이다. 그녀의 생김새가 궁금하다면, 역시 그녀의 소설집 표지를 찾아 보라. 거기에 그녀와 닮은 얼굴 하나가 있다.

 

 

 

배수아 : 전 별로 말이 없어요. 듣는 걸 더 좋아하죠. 그래서 사람 만나서 인터뷰하는 거 잘 못해요. 차라리 E-mail로 오고가는 서면 인터뷰가 저한텐 오히려 편하죠.

 

 

 

웜건 : 서면 인터뷰가 편할 때도 있지만, 직접 만나 느끼는 표정이나 인상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배수아 : 그래요.

 

 

 

웜건 : , 부담 없이 대화를 나누었으면 하는데.

 

 

 

맥주와 두부김치 혹은 소주와 과일안주처럼, 그녀는 어딘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듯한 두 개의 직종에 종사한다. 그녀는 병무청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면서 동시에 소설가다. 공무원은 8년차고 소설가는 7년차다. 그녀는 그러니까 7년 째 두 가지 직업을 병행해온 셈이다. 공무원으로서는 말단을 벗어날 수 없으며 소설가라는 직함은 어딘지 공식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다.

 

 

 

웜건 : 전에 투잡(two-job)에 관련된 글을 쓰셨죠? 배수아씨는 소설가와

공무원이라는 두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데, 오늘은 소설가보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그리고 투잡이라는 생활에 초점을 맞추고 싶은데요

 

 

 

배수아가 다시 고개를 숙인다. 눈을 내리깐 그녀가 입을 다문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답답한 채로 흐른다.

 

 

 

배수아 : 제일 하기 싫어하는 얘긴데

 

 

 

웜건 : (!)

 

 

 

나는 공무원 배수아와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오늘 소설가 배수아에게 또 다른 수식어를 덧붙일려고 나온 건 아니다. 그런 건 이미 있을 만큼 있고,  내가 아니라도 그러고 싶은 이들 또한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마디에 보기 좋게 거부당했다. 인터뷰의 엉큼한 속내쯤이야 이미 알고 있다는 눈치다. 아뿔싸! 진짜 꼬이네.

 

웜건 : 점심 전이죠?

 

원래 이 자리는 내 선배가 점심을 사는 자리였다. 낯을 가릴 것 같은 배수아와의 인터뷰를 자연스럽게 하려고 선배의 도움을 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늘 배반하는 법! 선배는 오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점심까지 내게 떠넘겼다.

 

 

 

배수아 : , 근데 어쩌죠? 인터뷰 시간이 점심 먹는 시간 정도 밖에 안 날 것 같은데.

 

웜건 : 인터뷰야 한두 시간 정도 얘기 나누면 되는 걸요. 바쁘신가 보죠?

 

배수아 : 아니요. 어제 집에서 있으면서 일을 마쳐야 했었는데. 하루종일 잤어요. 그전 날 밤새 놀았거든요. 밤을 샌 다음 날은 꼭 하루종일 자야 되요.

 

 

 

그녀는 잠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만큼 많이 잔다. 그래서 잠을 자지 않거나 자지 못한 다음날은 어김없이 하루종일 잠을 잔다. 잘 수 있는 여건이 안되면 하루종일 비몽사몽 한다. 수면 부족은 아무튼 그녀에게 치명적이다. 잠이 그녀를 원하듯 그녀 또한 잠이 여러 가지로 요긴하다. 그녀 또한 세상사는 모든 사람들처럼, 가끔씩 지독하게 우울하다. 그럴 땐 초점 잃은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앞을 바라보는 대신, 수면제를 먹는다. 그러므로 수면은 그녀에게 마치 구급 약상자와도 같다.

 

 

 

웜건 : 일이 많은가 보죠?

 

배수아 : 항상 그렇죠, . 내일까지 제출해야 돼서요.

어제 일을 다 끝내고 오늘은 여유 있게 쉴 작정이었는데. 저녁엔 또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 그 사이에 조금이라도 일을 해두려고요. 일이란 게 다 그렇죠. 사람 사정 봐주나요.

 

 

 

물론 그렇다. 일에는 언제나 마감이 따르는 법이고 그와 함께 스트레스도 따라 붙는다. 그것들은 마치 큼지막한 입으로 컹컹대는 사냥개 마냥 저 앞에서 일하는 자를 감시한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더구나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란 더욱 간단치 않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2. 여권 속의 그녀

 

 

 

그 근처에는 아는 곳이 없단다. 스파게티를 좋아하냐고 물어본 그녀는 자신의 아파트에 주차된 자기 차로 근교에 나가자고 제안했다. 싫을 게 없었다. 그녀와 나란히 걷는다.

 

 

웜건 : 일산에서 사신 지 꽤 되었나요? 혼자 사시죠?

 

배수아 : 3년 정도 됐죠. 혼자 산 지는 10년 정도 되었나? 직장이 김포에 있어요. 김포공항이요. 서울에 있을 필요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직장이랑 가까운 이곳으로 이사왔죠.

 

 

국제선을 타본 적이 있는 대한민국의 예비역 남자들이라면 혹시 배수아의 싸인과 도장을 받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여권의출국확인 제외대상‘, 그러니까군복무필자 확인란에서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웜건 : 집은 맘에 드나요?

 

배수아 : (웃으며) 너무 좁아요. 어차피 전세고 혼자 사니까 언제든지 지도 펴놓고 이사갈 궁리는 할 수 있죠. 그리고 이 곳에 처음 이사와서 좀 황당했어요. 전 공중파는 거의 안보고 케이블 TV를 주로 보는데 안 나오더라고요.

 

 

웜건 : 케이블 TV?

 

배수아 : , 집에 있으면 TV나 음악을 켜놓거든요.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 있죠? 아니면 음악 채널을 보죠.

 

 

웜건 : 배수아씨 소설 중에다큐채널, 수요, 자정이라고 기억나네요. 혼자 사신 지 꽤 오래되었는데, 싫증나진 않나요?

 

배수아 : 독립하면 자유가 생기죠. 대신 많은 중요한 문제를 혼자 결정해야 되는 어려움이 생기죠. 그래도 그 편이 아직까진 편해요. (웃으며) 그리고 지금은 삼돌이가 있어요.

 

 

웜건 : 삼돌이요?

 

배수아 : 이름이 너무 촌스럽죠. 아주 커다란 똥개예요. 한 달 전에 전주인한테 인계 받은 건데, 개가 전혀 애교가 없어요. 저도 그리 귀여워하는 편도 아니고 해서 서로 멀뚱하게 쳐다보고 지내요.

 

 

이제 그녀는 운전을 하고 있다. 다시 찔러 본다.

 

 

웜건 : 투잡에 관해 쓰셨던 글은 꽤 재밌게 읽었는데요.

 

배수아 : 그 글 읽었어요? 글쎄요, (웃으며) 뭐라고 해야되나. 그땐 좀 잘난 척하는 기분으로 썼던 것 같은데요.

 

 

웜건 : 요즘 보면 하나의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는 투잡족이 늘어가고 있는데요. 배수아씨는 자신의 투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죠?

 

 

공무원 배수아가 또 다시 침묵한다.  그리고 나도 말없이, 그녀가 말하길 기다린다.

 

 

배수아 : 오죽하면 투잡을 하겠어요. 모든 이의 꿈은 노잡, 그러니까 백수 아닌가요. 전 보다시피 (활짝 웃으며)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소녀 가장이라고요. 소설만 써서 살아갈 순 없쟎아요.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다른 일을 해야만 되는 거죠.

 

 

너무 싱겁지 않은가?

 

 

배수아 : 어떤 사람은 저한테 카프카 흉내내는 것 아니냐고도 하죠.

 

웜건 : 저희가 인터뷰한 백민석씨는 월수입이 50만원 정도 된다고 하던데, 그리고 전에 하성란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샐러리맨 월급 정도는 간신히 된다고 하더라고요. 배수아씨는 어떠세요? 

 

배수아 : 그래요? 어떻게 계산이 되나보죠. 저는 전혀 계산이 안 나오던데. 모든 작가들이 저랑 같진 않겠죠.

 

 

아무튼 그녀는 소설가로서 비평가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그녀를 둘러싼 비평적 미사여구와 수식어를 보건대, 그녀는 아마도 현재 한국 문단에서 꽤 괜찮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나 보다. 여기서 난, 그녀의 소설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한다. 그녀 또한 자신의 소설과 라이프 스타일은 별개라고 했다.

 

 

웜건 : 아까 카프카 얘기도 나왔지만, 배수아씨가 특이한 건 두 가지 직업 중 하나가 공무원이어서 그런 것 같은데.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배수아 : , 제가 두 몫을 해내는 것이 두드려진다는 건 인정하지만,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가정 주부인 여성작가들도 충분히 어려운 두 몫을 해내고 있잖아요. 

 

 

문인들에게 양다리는 그리 낯설고 이례적인 게 아니다. 하지만 두 가지 직종에 양다리를 걸친 문인들 중에서도 유독 그녀는 공무원이다. 그건 참으로 색다르다. 왜냐하면 우리의 위대한 상식에 따르자면, 소설가가 지닐 법한 직업이란 교수나 출판사 직원 또는 번역가, 그 주변이기 때문이다. 

 

이런 걸 묻는 게 그녀는 귀찮다. 별 달리 할 말이 없어서란다. 그녀는 적당한 직업을 갖기 위해 공무원 시험을 봤고, 시험에 붙었으니 공무원이 됐을 뿐이란다. 시험에 붙자, 주위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그게 얼마나 갈까, 하고. 그러나 그녀는 모든 예상을 뒤엎고 지금까지, 그러니까 무려 8년이나 그 생활을 유지했다.

 

그녀가 소설가란 직업을 갖게 된 것도 그리 대단한 목적의식이 있었던 건 아닌 듯 하다. 그냥 끄적거린 글을 처음 접한 계간지에 보낸 게 그녀가 등단하게 된 내막의 전부다. 그녀는, 자신이 무지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고 한다.

3. 배수아를 닮은 배수아

 

 

백마, 예전에 화사랑이 있던 곳. 그녀는 지금은 그럴싸한 음식점들만 가득 들어차 있어 정이 가진 않는다고 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그 곳에서, 그녀와 나는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는다.

 

 

웜건 : 공무원 생활은 어때요?

 

배수아 : 그리 재미난 일은 아니죠. 틀이 짜여진 일이기 때문에 글을 쓰는데 도움이 안되는 면도 있죠. 지금 제가 일하는 사무실에는 창이 없어요.

 

 

웜건 : 건물 한복판에 있나요?

 

배수아 : 아무튼, 밖에 비가 오는지 눈이 내리는지 친구한테 연락이라도 오지 않으면 알 수가 없죠. 격일제로 일하거든요. 사무실에 있는 날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잘 몰라요.

 

 

웜건 : 문단 생활은 어때요?

 

배수아 : 글쎄요. 처음에 등단하고 낯선 문단 생활에 신기하고 정신 없어 했는데, 지금이야 다 똑같죠. 사람 사는 모습이 다 엇비슷하잖아요. 어떨 때 문단이란 곳이 더 인간적이지 않아 보일 때도 있죠, .

 

 

웜건 : 저는 직장 생활을 꽤나 힘겨워 하는 편이죠. 그래서 몇 년씩 직장을 다닌 사람들을 보면 좀 경이롭기까지 하거든요.

 

배수아 : 평생 다니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물론 직장을 다니다 보면 포기해야 될 것들이 많죠.

 

 

웜건 : 가령 어떤 것들이요?

 

배수아 : 여행과 잠적. 두가지 일을 하려면 먼 여행은 가급적 피하죠. 훌쩍 떠나는 일은 상상조차 어렵죠. 그리고 제 직장 전화번호가 노출이 되어 있기 때문에 잠적은 절대 불가능해요. 직장 전화를 안 받을 순 없잖아요.

 

 

웜건 : 다른 직업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나요?

 

 

공무원 배수아, 다시 정색을 한다.

 

 

배수아 : 전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제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게 지금 직장 일이고, 저의 유일한 취미가 글쓰기이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고 글을 쓸 뿐이에요. 물론 지금 직장 다는 것이 힘이 들고 고민스럽긴 하지만요.

 

 

직장과 취미. 아까부터 그랬지만, 그녀의 대답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웜건 : 먼 여행이 힘들다면 주로 어디로 놀러 가죠?

 

배수아 : 온천.

 

 

웜건 : ? 온천이요?

 

배수아 : 좀 우습죠? 나이 많은 아줌마 같이. 하지만 노천욕은 정말 좋아요. 마침 비가 오거나 눈이라도 내리면 정말 기분이 좋아지죠.   

 

 

 

 

 

그녀는 호러 무비를 무지 좋아하지만, 남들이 즐기는 결정적인 장면은 겁이 많아 전혀 보지 못한다.

공중파보다 케이블 TV가 더 좋은 그녀는 다큐채널과 음악채널을 주로 즐긴다.

번쩍이는 옷과 목소리 큰 사람은 끔찍이 싫다.

 

가끔 멀뚱하게 자기를 쳐다보는 삼돌이와 함께 직장 생활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혼자 산 지 꽤 오래된 그녀는 앞으로도 결혼 계획이 없다.

 

30대 중반의 독신녀 그녀는 누구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을 짊어진 채, 그렇게 살고 있다. 그리고 소설을 쓴다.

내가 본 공무원 배수아는 그렇다. 그것이 진정한 배수아의 모습이라고는 장담할 순 없다. 그녀가 소설가 배수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는 더 더욱 모르겠다.

 

어쨌건 그녀가 배수아를 무척 많이 닮아 있었다고만 말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