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동 + 유승배 + 이춘백

내방역 근처 오돌또기 사무실을 찾았다. 한겨레 그림판에서 받았던 통쾌함과 그의 만화집들에서 받았던 감동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직접 박재동 씨를 만났을 때 내심 떨렸다. 박감독은 생각보다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성성한 은발이 물결을 치는 머리칼 탓이었을까, 인터뷰 동안 가끔 사색에 잠기는 모습은 시인이나 철학자 같았다. 박재동 감독(49세), 그리고 오돌또기의 중요한 스텝들인 유승배 배경감독(44세), 이춘백 인물감독(37세)과 함께 둘러 앉아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화 작업실와는 다른, 보다 계통있는 애니메이션 작업실이라 그랬던 걸까, 아님 질문이 너무 진지했던 것일까, 아무튼 이야기는 생각보다 훨씬 차분하게 진행됐다.

1. 내 사랑. 애니메이션

 

  

 

만화영화 제작소인 ‘오돌또기’에서는 올해 초 <고인돌> 비디오 애니메이션을 제작했고, 그전에도 <알파?? 몬스터>, <아구찜과 바가사리>, <박재동의 TV만평> 등 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오돌또기’는 당초 <오돌또기>라는 제목으로 제주도의 비극을 다룬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었다. IMF 등으로 사정이 어려워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오돌또기>의 설정이나 시나리오 초고가 준비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처음부터 참여한 유승배, 이춘백 감독님의 경력을 물었다. 둘 다 짧게 ‘경력이랄 게 없다’고 대답했다.

 

 

 

박재동 : 유승백 감독은 애니메이션 경력이 20년이 넘는다.

 

유승배 : 쩝, 20년 정도.

 

 

 

박재동 : 이춘백 감독은 8년 정도 되죠. 현장에서 뼈가 굵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하다. 특히 나처럼 생각과 뜻만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정말 중요한 스텝이다.

 

 

 

실제 어떤 작업을 하는지 물었다.

 

 

 

이춘백 : 나는 인물이 움직이는 부분을 담당한다. 유감독님은 인물의 배경, 칼라를 담당한다. 그 외에도 다른 부서들이 많다. 어떻게 보면 이 둘이 핵심적인 부서다.

 

 

 

난다킴 : 작업할 때의 가장 큰 어려움은? 외국과 비교를 한다면?

 

이춘백 : 일차적으로 기획과 비용, 그게 크다. 우리 나라는 계속 하청일만 해 왔다. 유감독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하청일만 하다보니까 회의도 느끼고 그래서 창작쪽으로 전환을 했다. 하청을 해 봤기 때문에 아는데, 외국은 그만큼 기획 같은 부문에 투자를 아주 많이 한다. 그리고 저변 문화도 크게 발달이 되어 있어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수 있는 소재가 매우 풍부하다. 인력도 아주 많다. 그런 식으로 오랫동안 해 왔기 때문에 노하우도 당연히 풍부할 수 밖에. 거기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일천한 상태다.

 

반면에 하부적인 부문에 대한 노하우는 우리 나라에도 많이 쌓여 있다. 대부분의 인력이 그쪽이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건 기획과 같은 창의적인 부문이다. 지금은 대학에 애니메이션 학과도 많이 생겼으니 시간이 흐르면 그런 인력이 많이 보충될 수 있을 거다. 다만 지금 단계로서는 아직 기획 인력이 많이 부족하다. 자본 문제는 물론이고.

 

 

 

난 : <고인돌>은 비디오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는데,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한계가 있어 안 만든건가?

 

유승배 :  극장용도 기획 중이다.

 

 

 

난 : 그래도 언제쯤 극장용을 할 건지?

 

박재동 : 극장용? 지금 기획하고 있는 <바리공주>가 그거다.

 

 

 

<바리공주>는 장선우 영화감독이 애니메이션에 뛰어들면서 오돌또기와 같이 제작하게 되는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며칠 전 제작발표회가 있다. <바리공주>에 대해서는 뒤에 박감독에게 묻기로 했다.

 

 

 

유승배 : 극장용은 기획을 대충대충할 수 없다. 거기 들어가는 돈이 엄청나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을 시켜야 된다. 잘못하면 말아먹을 수 있으니까. 망하면 안된다. 망할 거면 만들 이유도 없고… 그러니까 기획단계에서 계속 수정을 해 나간다. <고인돌>이 언제 극장에 올려지느냐는 말하기는 어렵다. 문제가 계속 발생이 돼서 수정해 나가고 그러니까…

 

 

 

난 :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그간 여러 가지 애니메이션 제작이 있었는데, 어떻게 평가하는지?

 

박재동 : 최초의 성인용 만화 영화다 해서 만든 거는 아주 조악해서 사람들이 보고 실망했다. 돈도 아주 작게 들여 날림으로 만들었고. 그 다음에 농구만화가 있었다. <헝그리 베스트 5>는 일본에 하청을 준 것이었다. <홍길동>도 일본과 합작한 것이고… <붉은 매>, <둘리>, <이순신>, <임꺽정>, <아마게돈>, <전사 라이언> 등이 나왔지만, 대체로 적은 자본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퀄리티가 높지 않았고, 악순환이 많았다. <둘리>가 그나마 성공했고, <홍길동>도 본전은 뽑았다고 하는데, 그동안 성공이 극히 적었다. 지금 아이들의 눈높이는 굉장히 높아져 있는데, 만드는 수준이 못미친 거다. 다른 사람이 만든 것에 대해 함부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사실상 나와 있는 데이터로 볼 때 성공작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 제2단계로 도전하는 단계라고 보면 무난할 거다. 우리도 <오돌또기>나 <바리공주>를 준비하고 있고, <고인돌>도 계속 천천히 준비할 것이다. 또 다른 팀에서도 여러 개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옛날처럼 하지 않는다. 옛날에는 돈을 아주 적게 들여서 거의 비디오 만드는 수준으로 만든 게 대부분이었다. 그런 건  대부분 실패했다. 지금 단계에서는 좀더 침착하게 준비를 하는 풍토다. 자본도 많이 투여하고… 대신 위험 부담도 많다.

 

그렇지만 아무튼 여기저기에서 준비를 꾸준히 하고 있다. 3D같은 기술도 쓰고 있고… 우리도 그 중에 하나지만 제2단계의 도전이 과연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준비는 하고 있지만 과연 그 중에 몇 편이 성공할 지는 모르겠다. 아마 1단계보다는 나을 거라고 보는데 알 수는 없다. 열어 봐야 아는 거지.

 

 

 

난 : 배경을 만드는 데 특별히 고민하는 게 있나?

 

유승배 : 고민 많이 한다. 디즈니 같은 경우는 1년에 하나씩 개봉이 되지 않나. 그러나 사실 그게 제작기간이 1년 정도가 아니라 몇 년에 걸쳐서 만드는 거다. 우리가 볼 때는 매년 개봉을 하니까 1년에 하나씩인 것 같을 뿐이다. 자본도 우리랑 비교 할 수가 없다. 보통 2, 3백억씩 들어가는 자본이니까. 우리가 만약에 2, 3십 억씩 들여서 만든다고 해도 게임이 안 되는 거다. 그렇다고 안 만들 수는 없는 거고. 그쪽이랑 경쟁을 해야 하지 않나. 현실이 열악하다, 경제사정이 나쁘다, 이런 걸 떠나서 경쟁을 해서 이겨야 되는 건데, 그게 제일 고민이다.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면 좋지만, 그렇지 않고도 우리 나름대로 괜찮은 걸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치이타 : 애니메이션 연출가로서 배경감독이 되려면 필요한 자질이라든가, 각자 어떻게 이 세계에 입문하시게 됐는지?

 

유승배 : 애니매이터가 되는 길…(웃음)

 

이춘백 : 처음부터 애니메이션을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은 없었다. 학교 졸업하고 뭘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어릴 적 친구가 먼저 애니메이션을 하고 있었다. 그 친구 소개로,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해서, 잘 됐다 그래서 한번 해봤더니 재미있더라. 그래서 계속 하게 됐다.(웃음)

 

박재동 : 친구를 잘 만나야 돼. (일동 웃음)

 

 

 

난 : 원화부터 시작했나?

 

이춘백 : 아니다. 애니메이션 제작 단계에서 여러 가지 과정이 많은데, 맨처음 시나리오, 스토리가 있고, 그 스토리에 맞춰서 캐릭터와 배경 설정, 소품들… 그 설정과 스토리를 따라서 스토리보드, 콘티를 만든다. 그것까지를 보통 ‘프리 프로덕션’이라 한다. 그게 완성되면 ‘메인 프로덕션’에 들어가면서 여러 사람들한테 일이 쫙 풀어진다.

 

워낙 사람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한두 사람한테 집중돼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또 빨리 끝내야 그만큼 자본이 적게 들어가는 거니까, 많은 사람들한테 일이 풀어진다. 그때부터 시작되는 게 레이아웃으로, 어떤 장면 장면에 뼈대가 되는 그림들과 배경들을 잡아준다. 그 레이아웃이 되면 원화를 한다. 또 한편으로는 배경부에서 배경 칼라를 페인팅한다. 원화는 어떤 동작을 연출하는 것으로, 큰 흐름을 잡아주는 거다. 그 원화를 가지고 동화를 더 잘게 부드럽게 쪼개준다. 원화 부분에서는 연출이라는 개념이 들어간다. 감독이 이런 동작은 이렇게 한다든지 이 동작의 타이밍은 어느 정도 준다든지, 이 정도에서는 어떤 호흡을 어느 정도 준다든지 그런 게 들어간다. 동화까지 끝난 것을 다시 칼라를 입힌다. 그런 다음에 배경과 합성을 하고, 카메라 촬영을 한다. 배경음악과 사운드 더빙이 맨 마지막으로 들어간다.

 

내가 맡은 부분은 원화, 연출이다. 제일 처음엔 레이아웃부터 시작했다가 동화를 조금 하다가 원화를 하게 됐다. 애니메이션하는 데 필요한 자질이 있다면 끈기라고 할 수 있다.

 

유승배 : 지구력이 상당히 필요하지.

 

이춘백 : 그것도 적성이라면 적성일 수 있다. 그림만 잘 그려가지고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어떤 일에 대한 재미랄까 그런 걸 나름대로 가질 수 있어야지 그 힘든 작업을 버틸 수 있으니까.

 

 

 

치 : 콘티 연출과 원화 연출이 겹치는 게 많은가?

 

이춘백 : 분리되는 건 아니다. 워낙 여러 사람이 참여하니까 콘티 하는 사람 따로 있고 원화 하는 사람 따로 있어서 분리된 듯이 보이는데 사실은 계속 연장되는 거다. 콘티가 어느 정도의 기초 뼈대를 쌓아놓으면 원화에서 살을, 벽을 바르고 이런 식으로 계속 첨가하고 쌓여 나가는 작업이다.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야지.

 

 

 

치 : 영화 연출과 애니메이션 연출의 차이가 있다면?

 

이춘백 : 영화 연출은 안 해봐서 잘 모르지만, 애니메이션 연출의 특징이라면 타이밍이 중요하다. 영화는 배우가 연기를 하면 자연스럽게 타이밍이 다 완성되지만, 애니메이션 같은 경우는 그림 한 장 한 장을 그려서 이어붙이는 것이기 때문에 같은 동작이라도 매수에 따라 달라진다.

 

가령 고개를 돌릴 때 이 동작을 3장으로 그리느냐 10장으로 그리느냐에서 연출이 확 달라지는 거다. 그림이 작으면 작을수록 빨라진다. 아주 적절하게 타이밍을 만들어줘야, 사람들이 감독이 연출한 걸 그대로 전달받을 수 있고, 그게 제대로 안되면 애니메이션 자체가 맥이 빠질 수도 있다.

 

 

 

난 : 원화 연출하는 데 특별한 자질이 있나?

 

이춘백 : 뭐든지 그렇겠지만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 항상 사물을 그냥 보지 않고, 당구도 빠지다 보면 사람 머리가 공으로 보이듯이, 그것도 하다보면, 저 사람이 앉는다 선다하면 설 때, ‘아 그림이 몇 장이 들어갈까’ 뭐 이런 식으로 연구를 평소에 많이 해야 한다.

 

 

 

난 : 배경 연출은 어떤가?

 

유승배 : 배경도 비슷하다. 술집이면 술먹는 분위기가 나야 되지 않나. 어딜 가든지 그런 효과들을 많이 생각한다. 빛은 실제로 이렇게 떨어지는구나 하는 식으로… 그런데 그걸 맨날 보면서도 그릴 때면 자꾸 까먹기 때문에, 항상 공부해야 한다. 실제 상황은 이렇구나…하고 머리에 자꾸 입력시킨다.

 

 

 

난 : 유감독님 경우에는 어떻게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게 됐나?

 

유승배 : 하–(한숨), 20년 전에는 그림 그려서 먹고 살 게 많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만, 20년 전에는 더 열악했다. 그림은 좀 그릴 줄 아는 것 같았고 이걸 직업으로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직업이 많지 않은 거다.

 

그런데 누가 만화 영화를 만드는데 외국걸 만든다는 말을 들었다. 관심은 없었지만 한번 가보자 싶어 배경 사무실을 가보게 됐다. 가보니 배경그림들이 벽에 쫘악 붙어 있었는데, 깜짝 놀랐다. 만화 영화 볼 때랑 실제 작업하는 걸 볼 때랑 많이 다르다. 거기서 뭘 가지고 그렸냐면 포스타 칼라였다. 일본 만화는 그걸로 그리는데, 정말 내가 봐도 희한하게 그려놓은 거다. 포스타 칼라라면 항상 디자인된 그림만 생각했는데, 희한하게 사실적인 분위기가 나게 그려놨더라. 아, 이거 이 직업이 매력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림을 보고 혼자 생각하기에 ‘아, 이거 일주일이면 되겠다’ 그렇게 생각을 했다. 일주일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테스트를 치루고 들어가서 지금까지 왔는데, 일주일은 커녕 지금까지도 굉장히 어렵다. 점점 더 어렵고. 한 분야를 깊이 들어가면 굉장히 어려운 것 같다.

 

 

 

난 : 그럼 처음에 배경을 한 건 우연?

 

유승배 : 그 당시에 만약에 동화나 이런 사무실 갔으면 그쪽 애니매이터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웃음) 나는 처음부터 붓을 잡으면서 배경을 계속 했다. 근데 워낙 칼라 만지는 것을 좋아하니까 그쪽 길로 가게 된 거다.

 

 

 

난 : 그림에 대한 재능도 필요한 건 사실 아닌가?

 

유승배 : 엄청나게 필요하다. 그래도 응댕이가 무거워야 한다. 스케줄이 있는데, 그 안에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정답이 없다. 그림을 오래 신경 써서 만들면 좋게 되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까 잠 안자고 철야하고 그러다 보니 체력도 좋아야한다. 운동 잘해서 되는 게 아니고, 딱 앉아 가지고 계속, 계속(고개를 박고 붓을 잡는 시늉)

 

 

 

난 : 출퇴근 시간은?

 

유승배 : 대충 정해져 있다.

 

 

 

난 : 개인에 따라서는 철야도?

 

유승배 : 그렇다.

 

 

 

치 : 저쪽에 보니까 침낭도 있더라. 배경에서 미장센과 조명 등을 다 하나?

 

유승배 : 설정할 때 기초 단계에서 할 일이 많다. 일반 영화 같으면 구조물이 없으면 세트를 만드는 것처럼, 다 그려서 만드는 거니까… 배경에 관한 거는 나도 많이 만들고 딴 사람도 만든다. 움직임은 연출에 따라 필요한 것도 같이 만든다. 나중에 배경쪽에 칼라링을 입히는 건 내가 한다. 양이 많으니까 밖으로 줄 수 있는 건 외주도 준다. 여기서는 주로 기획 단계의 일을 많이 한다.

 

 

 

난 : 원본이 있다고 해도 새로운 창작이 들어가지 않나. 자기가 해보고 싶은 게 있지 않나?

 

이춘백 : 가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건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해결해야 한다. 원작하고 다른 맛을 주자, 내지는 원작을 충실히 살리자 이런 건 기획단계에서 핵심인물들이 모여서 확실하게 정해 놓고 간다. 개인 생각을 집어 넣을 여지가 충분히 있긴 있지만, 큰 틀은 정해 놓는다. 워낙 여러 명이 하니까 저마다 개인 생각을 넣을 수 없는 거는 당연하다.

 

 

 

난 : 영화보다 충돌할 수 있는 여지가 더 큰 것 같기도 한데…

 

이춘백 : 그렇다. 안 맞으면 바로 수정한다. 완성품을 거의 만들었어도 안맞으면 다시 수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연출 같은 경우도, 캐릭터의 성격에 따라서 이 친구는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애다, 그러면 항상 그 기조를 유지해 줘야 한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나누어서 하다 보니까 어디에서는 빠른 동작으로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감독이 일일이 체킹해서 고쳐나가야 한다.

 

 

 

난 : 장편 애니메이션은 그런 작업이 계속 되니까 훨씬 어렵겠다.

 

이춘백 : 시간에 비례해서 단순히 배가 되는 건 아니다. 시간이 두 배 늘어 났다고 해서 두 배가 아니라 여덟 배쯤 되니까, 제곱이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거라고 할 수 있다.

 

유승배 : 이런 복잡한 작업을 외부에서는 잘 모른다. 지금은 카메라 같은 걸 디지털로 다 한다. 옛날에는 사진 카메라같은 거였는데, 굉장히 큰 애니메이션 촬영기 있잖나. 그때는 촬영감독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디지털 감독이라고 한다. TV 애니메이션만 생각하

2.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

 

 

 

난다킴 : 앞으로 한국 애니메이션 전체의 발전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

 

유승배 : 제대로 된 걸 하자!

 

이춘백 : 여름마다 디즈니에서 나온 걸 보지 않나. <이집트 왕자>니 <엘도라도> 이런 걸 보면, 그게 아주 내용이 좋다든가 재밌다든가를 떠나서 우린 그걸 만드는 사람이니까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된다. 보고 나면 힘이 쑥 빠진다. 게임을 하려면 어느 정도 대등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자신감도 잃는다. 그렇지만 꼭 그렇게만 생각할 거는 아닌 것 같다. 다른 방법으로 잘 만들 수 있는 걸 생각하는 거다. 시나리오 같은 것도 우리는 아주 탄탄해야 한다. 다른 노하우가 그쪽이랑 경쟁이 안되기 때문에. 그런 쪽에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 또 그림 같은 경우에는 연출 같은 것도 우리가 갖고 있는 노하우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할 거다.

 

옛날에 장편 만드는 데 돈이 얼마 들어갔다고 하면 사실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 얼마 안 갔다. 사업을 주최하는 측에서 이익을 많이 남기려고 했다. 그림 그리는 사람한테 열악한 환경에서 좋은 그림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좀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고, 실제 가격 같은 것도 제대로 해주고, 그런 것도 많이 개선을 한다면. 뜻이 있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우리 나라 사람들도 돈보다는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그런 터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런 터를 자꾸 만들어 주다보면, 뭐 한번으로 콱 잘 되겠나. 몇 번 하다보면 잘될 거라고 믿고 있다.

 

 

 

이번에는 박재동 감독에게 마이크를 돌렸다.

 

 

 

난다킴 : 예전에 시사만화를 그리다가 어떻게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되었는지.

 

박재동 : 나같은 경우 시사만화를 하면서 느낀 게, 시사만화라는 게 굉장히 중요하지만 우리 삶에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앞으로는 문화의 시대, 정보의 시대인데, 그 문화의 시대에 중요한 생산품이자 가장 첨단이고 가장 대중적이고 파워풀한 그런 작품, 물건이 바로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은 기술과, 정신적인 것, 자본이 총합된 가장 어렵고 고도한 생산품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문화의 시대에서 한 사회가, 어떤 나라가 그러한 작품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가 바로 그 나라의 문화 역량이라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고 있고 우리도 그 중의 한 팀이라고 보면 된다.

 

 

 

난 : 사회적으로 만화에 대해 만화산업이라고 보는 식으로 인식도 높아졌고 학과들도 많아졌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박재동 :  학과가 사실 많다. 이 학교 저 학교 경쟁적으로 학과를 개설하고 있다. 학생들을 모집하기는 하는데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교수가 부족하다. 딴 일도 하는 사람이 가르치니 제대로 된 교육이 쉽지 않다. 만화를 배우러 갔는데 일러스트레이션 같이 딴 걸 하는 경우도 많다. 또 그 학생들이 나와서 다 어디에 소용될 것인가도 문제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거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만화가 이렇게 각광 받고 있다는 것 자체는 반가운 일이다. 한편으로는 반가운,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폭발적인 붐이기에 반갑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기도 하다.

 

 

 

난 : 예전의 문하생 제도와는 달라지지 않겠나.

 

박재동 :  문하생제도는 지금도 있다. 작가들 밑에는 문하생들이 대개 도와준다. 왜냐하면 만화라는 건 작가 혼자서 다 그리기 어렵기 때문에 배경 그리는 사람, 색칠하는 사람 나눠서 하기에 자연히 문하생들이 있기 마련이다. 학교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기 어려우니까 문제인 것이지만, 문화센터라든지 다른 강좌들이나 개설된 점은 바람직하다. 문하생으로만 나오면 그 선생과 그림이 비슷한 것만 나오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는 바람직하다.

 

 

 

난 : 시사만화를 그리다가 애니메이션을 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이 있다면.

 

박재동 :  애니메이션을 통해 대안을 그려 보이고 싶은데, 그 대안이라면 형식적인 대안이 있을 수 있고 내용적인 대안이 있을 수 있다. 형식적인 것은 기술이나 그림 등에서 감동을 줄 수 있지만, 내용적인 대안은 아직 잉태되어 있지 않다. 인간에 대한 관심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고, 막연히 서구와 다른 동양적인 환타지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을 그리려면 애니메이션은 스토리가 필요하다. 그런 스토리를 갖추고 단편, 장편으로 만드는 것이 힘들다. 어떤 메시지를 스토리로 형상화해내야 하니까. 또 애니메이션은 어디까지나 협동제작이라는 차이도 있다.

 

 

 

난 : 예전에 보여주었던 사회적인 주제에 대한 관심은 여전한 건가? ‘우리만화발전을 위한 연대모임’같은 활동은?

 

박재동 :  현실적으로 사회적인 불합리와 폭력에 대한 항의는 계속되어야 한다. 보다 인간답게 살려는 길을 막는 세력이나 부당한 검열에 대한 철폐 요구는 그 모임에서 계속되는 주제다.

 

 

 

난 : 이번에 제작하게 된 <바리공주>는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

박재동 :  장선우 감독에게서 제의가 들어왔다. 경험있는 팀을 원했고, 우리가 결합하게 된 거다. 새로운 실험이 될 거다.

 

 

 

난 : <바리공주>라면 무속설화, 서사무가라고 불리는 그 내용이 아닌가?

 

박재동 :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우리의 전통 설화인데, 바리공주가 부모를 살리기 위해 약을 구하러 온갖 고생을 하며 서역으로 여행하는 이야기이다. 지극한 효성이라는 감동적인 부분도 있고, 선불교적인 해석도 들어가 현대적인 주제로 만들 예정이다. 서역이라는 배경이나 약을 구하는 과정에서 환타지적인 요소도 들어갈 거다. 25일에는 실크로드에 가서 답사도 할 예정이다. 굉장히 이국적이면서 신비적인 분위기가 그려질 거다.

 

 

 

난 : 좋아하는 만화영화가가 있다면?

 

박재동 :  미아자키 하야오 등. 특히 안노 히데야키의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이라는 만화는 굉장히 인상깊게 봤다. 기존 애니메이션의 방식을 부정하고, 출판만화와 섞어 구상을 해서, 자기만의 호흡으로 연출했다. 우리 시대 시각만화에서 가장 선진적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로 굉장히 독특한데, 앞으로 이런 방식이 필요하지 않나라는 생각이다.

 

         

 

난 : 앞으로 애니메이션을 통해 그리고 싶은 게 있다면.

 

박재동 :  인간의 내면이다. 나는 인간이 가는 길목 하나하나를 섬세하고 바라보고 싶고, 그 목적이나 사람들이 같이 만들어 가는 것에 대해 관심이 있지만, 작품을 앞으로 그렇게 많이는 못할텐데, 내가 정말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는 찾아봐야 할 것 같다. 그런 뭔가가 내 자신 속에서 생성되었으면 한다.

 

 

 

장장 2시간 반을 끈질기게 사무실에 죽치고 앉아 바쁜 사람들을 붙들고 이야기를 나눴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지칠만도 했을텐데, 역시 끈기로 그림을 그리는 분들이라 잘 참아주었다. 이 자리를 빌어 ‘오돌또기’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 진지한 고민과 열정을 보며, 조만간 한국 만화도 지금 열매를 거두고 있는 한국 영화처럼 롱런을 칠 날이 올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날 이렇게 환호하며 ‘이것이 진정 우리 나라의 애니메이션이란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