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천안문 사태?
난 그때 북경대 학생회장이었다!
공경동(孔慶東). 이 사람은 중국 북경대학 교수다. 나이는 37살. 이화여대에 객원교수로 와 있는 모양이었다. 몇 가닥 되지 앉는 콧수염을 길게 기른 것이 인상적인 외모였다. 사전에 듣기로 공경동 이 사람은, 중국에서 상당히 이름 있는 대표적 지식인이란다.
중국어 통역을 해 줄 친구와 함께 숙소로 갔다. 짧고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곧장 이화여대 후문 쪽에 있는 한국 식당으로 갔다. 중국말을 아는 두 사람 사이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길게 이어졌다. 난 약간 어정쩡하게 듣고 있기만 했다. 왜, 그런 거 있잖아, 몰라도 아는 척 슬쩍슬쩍 눈웃음쳐야 하는 거. 그러고 있다가 끼어들기 시작했다. 386이라는 말이 흘러나온 탓이다. “…싼 빠 리우…”
삼불(三不): 싼 빠 리우, 중국에도 386이라는 말이 있나?
뚱(東): 아니 없다. 한국에 와서 들었다
.
삼불: 한국에선 386이란 용어가 등장한 지 꽤 되었는데…
뚱: 중국에서도 80년대의 대학체험이 상당히 중요하다. 386이라는 말은 없지만, 8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 함께 나누는 어떤 집단적 자유, 그리고 비록 6.4(천안문 사태를 가리킴)라는 좌절로 귀결되었지만, 권력에 대한 저항의 체험은 뭐라고 분명하기 힘든 심리적 유대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도, 90년대 대학을 다닌 세대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이기적인 자세에 대해서 다소간 못마땅하게 여기는 감정이 있다.
불: 듣자니, 당신도 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주모자로 찍혔다던데? 당시 당신이 구체적으로 한 일이 뭔가?
뚱: 음.. 잡힐까봐 계속 도망다녔다.
불: 당시에 수배중이었나?
뚱: 6.4일 시위 군중을 무력진압하고 나서 발표한 ‘특급 주모자 8인‘에는 내 이름이 없었다.그래도 얼마간은 혹시나 싶어 도망 다녔다. 나중에 학교에 복귀했다.
불: 그 8인 명단에 당신이 있었다면, 어찌되었을까?
뚱: 글쎄, 하나 확실한 건 이 자리에는 없었을 것이다.
불: 당시 구체적으로 뭘 했나?
뚱; 북경대학 학생회장이었다.
불: 북대 학생회장이었다면 지도부였을텐데…. 운이 좋았던 건가?
뚱: 그 한 해 전에 나는 학교 측에서 인정한 공식 학생회장을 일 년 했었다. 이듬해 뽑은 학교 측의 공식 학생회장을 학생들이 회의를 열어 불신임하고 전임 회장이던 나를 다시 학생회장으로 선출했다.
불: 두 번이나 했다는 소린가?
뚱: 웃기지만, 전무후무한 최초의 중임회장이었다. 한 번은 공식, 한 번은 비공식이다.
불: 시위 진압 후 핵심 체포자 명단에서 빠진 이유는?
뚱: 초기에는 북경시내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위가 비교적 조용하게 시작되었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지방에서 많은 학생들이 상경하여 통제가 불가능해졌다. 나는 초기에 지도부로 지목되어, 중반 이후에는 숨어 다니느라 오히려 지도부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자세한 상황에 대해선 말을 꺼리는 듯했다. 하긴, 지금도 중국에선 천안문 사태를 공식적으로 언급했다간 곧장 철창신세를 각오해야 한다니까.
불: 지금도 당신은 중국 정부 당국에 찍혀 있다던데?
뚱: 출판한 책이 좀 문제가 됐다. 정부의 교육정책을 비판한 논문들을 묶어서 낸 책인데 논조가 좀 거슬렸던 모양이다.
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건드렸나?
뚱: 교육문젠데 뭐 그렇게 민감한 문제까지 있겠나? 다만 당국자에 대한 비판은 통상적인 수위를 좀 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봐야 뭐, 기껏해야 불려가서 조사를 받는 정도다.
불: 한국으로 오게 된 것도 그 때문인가?
뚱: 그렇진 않다. 나는 북경대와 이대 사이의 교수교환 프로그램으로 원래 올해 한국으로 나오게 되어 있었다. 나 대신, 북경에 계신 선생님이 약간 귀찮은 일을 겪으신 모양인데 별 문제 없으리라 본다.
통역 친구 설명으로는 중국 정부가 올해를 내부적으로 지식인들의 사상통제를 강화하는 해로 방침을 세우고 그동안 정부에 대해 “까불었던” 지식인들을 꽤나 엄격하게 단속하기 시작했단다. 북경에 계신 선생님이란, 노신(魯迅) 연구자로 유명한 북경대 중문과의 전리군(錢理群 첸리췬)교수이다. 문제가 된 그 책의 책임편집자가 전리군이다. <광명일보>라는 신문에서는 전리군의 사상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연재기사를 실었단다. 중국신문은 사실상 관영이기 때문에 신문에다 비판기사를, 그것도 연재씩이나 하면서 실었다는 것은 정부측이 상당히 벼르다가 비교적 점잖은 방법으로 경고장을 날린 것이라 한다.
2. 우리가 한국을 아냐고?
축구와 바둑은 알지!
불: 솔직히 일반 중국인들이 한국에 관심이 있나? 솔직하게 말해 달라.
뚱: 동북 쪽, 그러니까 북경 북동 지방(산동성 이북) 사람들은 조금 관심이 있는 편이다. 그렇지만,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거의 관심이 없을 거다. 한국은 자기 나라를 알리려는 노력을 거의 안 하는 것 같다. 조선(북한)은 열심히 선전하는데.
그럴 줄 알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이란 나라를 알기나 하겠나 싶다. 문득 떠오른 이야기 하나… 중국문학 전공의 친구 한 명이 중국 남경(南京, 난징)에 내려 택시를 탔단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운전기사가 물었단다. 혹시 일본인이냐고 덧붙이며. 그 친구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운전수의 대답이, “한국? 어디에 있는 나라지? 혹시 동남아시아에 있나?”였단다.
더 황당한 이야기 하나… 중국어를 할 줄 아는 한국 여행객이 식당에 갔는데 주문받는 아가씨가 다소 특이한 중국어 발음에 호기심을 보이면서 어디서 왔냐고 물었단다. “나, 한국에서 왔지.” 의기양양한 대답을 들은 중국의 복무원 샤오지에(써빙하는 아가씨를 중국에서는 복무원이라고 한단다. 샤오지에는 아가씨, 즉 小姐의 중국식 발음), “아, 한국에서 왔구나.” 대답을 듣고는 곧장 알겠다는 미소를 짓고 돌아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저 쪽에서 아까 그 복무원 아가씨가 다른 복무원 아가씨와 언쟁을 벌이고 있지 뭔가.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봐도 빠른 사투리로 하는 말이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나. 잠시 후, 씩씩거리면서 다가온 두 중국 아가씨,
아가씨1: “한구어(한국은 중국발음으로 읽으면 한구어가 된다)가 광동성에 있는 게 맞지요? 글쎄, 얘는 자꾸 알지도 못하면서 산서성에 있다고 있다고 우기지 뭐예요.”
한국인: 한국은 중국이 아니라 외국이에요.
아가씨1: 야, 너 한국 들어봤냐?
아가씨2: 헹, 농담하지 마세요. 산서성에 있어요!
한국인: 농담 아닌데….자요, 여기 여권을 보라니깐요.
아가씨들 : 헹, 그게 뭔데요. 어디서 이상한 가짜 신분증을 사 가지고 속이려고 들다니…
한국이 그렇게 중국에서 안 유명한 국가란 말인가? 하지만 축구열기가 거의 유럽 수준이라는 중국이 번번이 물을 먹는 한국 축구를 모르지는 않겠지 싶어 축구 얘기를 꺼냈다.
불: 한국 축구는 알려져 있지 않나?
뚱: 그건 많이 소개되어 있다.
불: 일반인들이 축구에 관심이 많나?
뚱: 관심이야 무지하게 많지.
불: 축구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돈가? 國技라고 할 수 있나?
뚱: 그래도 국기는 탁구라고 봐야 된다. 사실 우리 탁구 실력이야 세계 무대에 가도 맘만 먹으면 전 종목 석권이 가능한 정도다. 근데 우리만 매일 전종목을 다 석권하면 탁구가 재미없어지고 세계적으로 인기도 떨어지니까 일부러 금메달 한두 개는 잃어주는 거다.
이 대목에서 난 겉으로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속으론 약간 열받았다. 축구로 맞서자는 생각이 들었다.
불: 공한증(恐韓症:한국을 무서워 하는 병)이란 말 들어 봤나? 중국 축구는 한국만 만나면 힘을 못 쓴다던데…
뚱: 그렇다. 우리가 실력 면에서 꼭 그렇게 격차가 큰 것도 아닌데, 한국한테는 무지 약하다.
불: 왜 그런가?
뚱: 아무래도 한국 축구의 “목숨 걸고 뛰는 정신력“을 못 당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여기와서도 많이 느끼는 거지만, 한국 사람들은 확실히 무슨 일을 하면 사소한 일에도 목숨이라도 건 것처럼 미친 듯이 한다.
불: 그래서라고? 그건 너무 과도한 해석인데?
뚱: 아 참, 북경대의 동료교수 중에 축구광이 있는데, 중국이 한국에 그렇게 맥없이 무너지는 것은 오행사상(土,金,水,木,火)으로 설명할 수 있단다. 한국은 유니폼을 짙은 색 하의에 붉은 색 상의로 입는다. 붉은 색은 불이고 푸른 색은 물을 뜻하는 데, 물 위에 불이 있으니 이것은 기름에 불이 붙은 형상이다. 그러니 이 기름불(火)을 끄려면 모래나 흙을 나타내는 황색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데, 중국 대표팀은 주로 흰색을 입는다. 불과 흰 종이(옷감)가 맞서는 꼴이니, 중국은 무조건 지게 돼 있단다.
유니폼 색깔이 그렇게 결정적이란 말인가? 어쨌거나 재미있다. 인구가 많다보니 별의별 희안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다 있는 모양이다. 축구 이야기로 자존심을 좀 세워놓았으니 여세를 몰아 바둑 이야기를 꺼냈다.
불: 바둑 둘 줄 아나?
뚱: 물론, 유일한 취미다. 대단히 좋아한다.
불: 한국에서도 바둑을 자주 두나?
뚱: 바둑 상대가 별로 없어서. 하지만 이창호하고 한 판 둔 적이 있다.
불: 그 유명한 이창호?
뚱: 이화여대에 프로 기사들이 와서 지도대국을 한 적이 있다. 우연히 게시판에 적힌 이창호라는 한자 이름을 보았다. 바둑 기사 가운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떻게 그냥 지나가겠나? 지도대국 장으로 이창호 얼굴이라도 보려고 찾아갔다. 구경을 좀 할 수 있냐고 했더니, 직접 대국을 해도 된다고 하지 뭔가? 여러 사람과 두는 다면기 지도였다. 이게 꿈이냐 생시냐 하면서 이창호와 지도대국을 했다. 끝나고 나서는 정중히 싸인도 부탁했다. 내 평생 누군가에게 싸인 받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정말 기분 좋았다. 하늘이 마련해 준 만남이라고나 할까. 한국에 온 가장 큰 보람을 꼽으라면 나는 이창호를 만난 걸 꼽겠다.
불: 와, 좋았겠다. 직접 만나니 인상이 어땠나?
뚱: 무표정인 채로, 바둑을 두는 모습이었다. 깊은 수양이 돼 있는 사람이었다.
불: 별명이 돌부처인데.. 들어봤나?
뚱: 중국에선 소년 강태공이라고도 한다.
불: 중국에도 바둑 인구가 많나?
뚱: 한국식으로 말하면, 80년대 학번에 바둑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섭위평이 일본 사람들 하고 붙어 11연승을 올리면서 바둑의 인기가 급상승했다. 내 또래 사람들이 그랬다.
불: 창하오, 마샤오춘, 위빈은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뚱: 중국의 실력자들이다.
불: 얼마 전 LG배에서 위빈이 유창혁을 누르고 우승했다.
뚱: 나도 알고 있다. 유창혁이 이창호를 꺾고 결승에 오른 걸로 알고 있다. 유창혁이 위빈에게 졌으니, 한국 사람들 속상했겠다. 아마 이창호가 결승에 올랐으면, 위빈이 우승하긴 어려웠을 거라고 본다.
정말 이창호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이창호를 이렇게 인정하니 나도 더 할 말이 없었다. 바둑 가지고 잘난 체 좀 하려고 했는데, 수가 틀려버렸다.
불: 한국 바둑은 요새 세계 최강이다. 왜 한국 바둑이 강하다고 생각하나?
뚱: 이론이나 기술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별 차이가 없다고 본다. 그렇지만, 뭐랄까, 정신력, 한 수 한 수에 목숨을 걸고 두는 태도 같은 데서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불: 바둑에서도 정말 그런 걸 느끼나?
뚱: 그렇다. 아까 이야기한 축구와 마찬가지다. 그건 일종의 민족성 같은 거라고 본다. 중국이 한국하고 축구 시합할 때, 정말 안 좋은 상황이 뭐냐면, 중국이 먼저 골을 넣는 경우다. 그럼, 중국은 해이해지고 한국은 엄청나게 열심히 경기에 임한다. 그러다가 결국 여러 골 차이로 중국이 진다. 그냥 먼저 안 넣고 오래 끌면 그냥 그렇게 시합하면서 한두 골 차 정도로는 막을 수 있는데 괜히 선취골을 넣었다간 망신만 더 크게 당한다.
불: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뚱: 이창호하고 바둑둘 때, 내가 6점 깔았다. 이창호가 나를 포함해 세 사람하고 다면기를 벌였다. 한참 두다가 집 계산을 해보니, 2,30집 정도 차이가 나서 난 돌을 던졌다. 근데 다른 한국 사람은 3,40집 지고 대마도 다 죽어 있는데 끝까지 두더라. 난 거기서도 한국사람들의 그런 성격을 느꼈다.
불: 그래도 이창호 바둑은 재미는 별로 없다. 유창혁 바둑이 더 인기가 있는데…
뚱: 아니다. 진짜 경지에 도달한 바둑이다. 보통 사람들은 화려하고 전투적인 게 재미있겠지만, 진짜 높은 경지에 이르면 사소한 기교는 다 사라지고 담백하고 평범해 보인다. 노자나 장자가 이야기하는 대교약졸(大巧若拙)의 경지 말이다.
아이구, 그래 니 잘났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든 건 아니었다. 정말 민족성이라는 게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일제시대를 전공하는 역사연구자한테 들은 말이 생각난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두 가지 면에서 우리 민족에게 놀랐다고 한다. 하나가, ‘조선인들은 진짜 힘이 세군‘이고, 다른 하나가, ‘조선인들은 어학 실력이 너무 뛰어나다‘는 것이란다.
3. 중국이 지역 감정과 민족문제?
그거 오해야
불: 당신은 어디 출신인가?
뚱: 하얼삔이 고향이다. 내 할아버지는 산동성 출신인데, 북쪽으로 이주했다.
불: 하얼삔?. 언제 북경으로 왔나?
뚱: 83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불: 중국도 북경대에 들어가려면 공부 잘 해야 하나?
뚱: 省 전체에서 3,4등 안에 들어야 된다.
불: 당신도 공부 꽤나 하는 축이었겠다?
뚱: 흑룡강 성에서 모의고사 1등을 몇 차례했다. 중국에서는 북경대학의 학과별 입학 인원을 성별로 배당하는데, 중문과는 흑룡강성에 1명이 배당되었다. 나는 거기 가고 싶어서, 내가 중문과에 지원할 거라고 소문을 냈다. 다른 애들이 지원 못하게.
불: 북경대 내에서 중문과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뚱: 내가 입학할 당시에, 중문과는 최고 인기학과였다. 50명이 정원인데, 그 가운데 9명이 자기 성의 1등이었다.
불: 요즘은 안 그렇겠지?
뚱: 80년대 말부터 하향세다.
흑룡강 성 출신이라, 모르긴 해도 아마 공경동 이 사람도 촌놈일 것이다. 저 북쪽 변두리 촌놈이 북경에 가서 고생 꽤나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중국이 얼마나 넓은가? 지역 차별도 정말 심할 거고. 슬쩍 찔러봤다.
불: 흑룡강 출신이라서 불이익을 받지는 않았나?
뚱: 동북 3성,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은 서로 잘 지낸다. 물론 북경 애들은 약간 거드름 피우지만, 그걸 가지고 자꾸 잘난 체 하면 아직도 한 판 붙는다.
불: 중국에는 지역차별이 심하지 않나?
뚱: 출신 성이 어딘가는 중요하다. 같은 성 사람들끼리는 서로 잘 챙겨준다. 유대도 강하다. 동북 3성 사람들은 세세하게 나누지 않고 크게 동북으로 묶어서 서로 잘 뭉치는 편이다.
불: 중국의 강북과 강남 지방은 문화적 차이가 심한 편 아닌가?
뚱: 심하다. 그렇지만, 그런 차이가 권력문제와 연관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치적 차별이 심하다고 할 수는 없다. 상해 지방과 동북 지방은 정서적으로는 서로 막 비웃고 무시한다. 동북사람들은, 상해 애들은 밥도 쪼그만 종지 같은 데다 먹는다고 쫀쫀하다고 놀린다. 상해사람은, 동북사람들 밥그릇을 보고는 저게 인간이 먹는 밥그릇이냐고 놀란다. 밥만 많이 축내는 무식한 촌놈이라고 욕한다. 뭐 그런 정도의 정서적 차이일 뿐이다.
불: 한국의 지역감정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나?
뚱: 못 들어봤다.
불: 한국에서는 영호남 사이의 지역감정이 정치적으로도 굉장히 민감한 문제다. 중국에는 그런 경우가 정말 없나?
뚱: 호남이라… 중국에도 호남(성)이 있다. 물론 영남도 있다. 모택동이 호남성 출신이다. 그렇다고 호남성이 무슨 덕을 본 것은 없다. 호남성은 여전히 비교적 낙후한 지역이다.
불: 그래, 그럼 지역감정은 몰라도, 민족 대립이나 민족 문제는 심각하지 않나?
뚱: 아니 민족 문제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심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불: 에잉? 별로 심각하지 않다고? 그거 이상한데… 중국의 민족문제야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늘상 걸고 넘어지는 문제가 아닌가?
뚱: 공산당의 소수민족정책은 비교적 공정하고 공평하다. 소수 민족들이 오히려 공산당을 더 지지하는 편이다.
불: 왜 티벳만 하더라도 지도자들이 망명하고, 중국에서 독립하겠다고 나서서 심각한 문제라고 들었는데?
뚱: 티벳 문제는 역사적 뿌리가 깊은 상당히 복잡한 문제다. 미국에서 늘상하는 선전만 들어가지고선 티벳 문제를 파악하기 힘들다. 지금 망명해 있는 티벳의 지도자들이란 작자들은 대부분 이전 시기의 귀족들이거나 상류 계층인 승려들이다. 그런 부류가 공산당에 반대하는 거다. 옛날의 기득권 세력인 이들 지배층이 중국 공산당이 티벳을 점령하면서 자신들의 물적 기반을 다 상실했으니 당연히 공산당에 목숨을 걸고 저항하는 것이다. 실제로 티벳은 공산당이 진주하기 전까지 거의 노예제 사회였다. 소수의 종교귀족을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노예에 가까운 경제적 정치적 무권리 상태에 있었다.
불: 그렇다면 일반 티벳사람들은? 공산당을 환영한다고 보나?
뚱: 내 생각엔 일반 사람들은 최소한 공산당에 그렇게 적대적이지는 않다고 본다. 소수 민족에 대한 공산당의 정책은 비교적 일관성 있는 편이다. 인구정책만 해도 한족은 한 자녀 밖에 나을 수 없는 데 반해, 소수민족에게는 두 자녀까지 허용한다. 또 각종 정부기관 등에는 직급별로 반드시 소수민족 출신 인사의 비율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소수민족 출신이 오히려 승진이나 출세에 유리한 경우가 많다. 한족 가운데 사돈의 팔 촌이라도 소수민족이 있으면 빽을 써서 소수민족으로 민족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 중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애를 두 명 낳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특권이다.
불: 그럼 외국에서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해석한다는 뜻인데?
뚱: 그런 면이 많다고 본다. 중국엔 한족을 제외하곤, 55개 소수민족이 있다. 그 가운데 고유문자를 가진 민족은 몇 개 되지 않는다. 어느 날 모택동이 지시를 내려 모든 소수 민족이 자기 민족의 문자를 가지도록 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문자가 없는 민족에게는 학자를 파견하여 문자를 새로 만들도록 했다. 이렇게 공산당은 기본적으로 소수 민족 문화를 유지, 보존하려는 우대 정책을 일관되게 펴왔다.
불: 결국 민족 문제가 심각해질 상황이 아니라는 말인가?
뚱: 맞다. 공산당은 소수민족 우대 정책을 펴는데, 오히려 더 문제가 있다면 민족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 내부의 세대 문제일 것이다. 상당히 많은 경우 소수민족의 젊은 세대들이 자신의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버리고 한족화 해버리는 경향을 보인다. 이렇게 몇 세대가 지나면 소수민족 가운데 상당 수가 소멸해 버릴 지도 모른다는 것이 지금 소수민족 내부의 노,장년 세대가 가지는 우려다.
불: 조선족의 경우는 어떤가? 다른 민족과는 달리 외부에 같은 민족이 세운 국가가 있으니까 중국 내 조선족이 이남이나 이북 같은 외부와 연결해서 독립을 추진한다거나 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잖은가?
뚱: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선,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는 동북3성, 특히 조선족자치주가 있는 길림성 연길 지역은 조선(북한)과 인접해 있는데 중국과 북한은 그런 분쟁을 발생시키기에는 지나치게 밀접한 관계에 있다. 지금 중국이 아무리 한국과 수교하고 관계를 발전시켜간다고 해도 북한이 중국과 소원해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말 그대로 혈맹 아닌가?
4. 당신의 사상적 성향은?
나, 신좌파라 불리지!
불: 한국 오기 전에 한국에 대해 알고 있던 것과 한국에 온 이후 느낀 점이 차이가 있나?
뚱: 북경에 한국인도 많고 해서 한국에 대한 정보도 많이 들었다.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불: 전혀 차이가 없단 말인가?
뚱: 아, 한 가지 놀란 것이 있기는 하다. 한국 학생들의 反美 감정이 이렇게 강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학교 곳곳에 붙어 있는 반미구호가 적힌 벽보를 보면서 사실 상당히 놀랐다.
불: 중국의 중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인상은 어떤가?
뚱: 별로 안 좋다.
불: 좀더 자세히 말해 주면?
뚱: 한국인들에 대한 인상을 흐리는 대표적인 문제가 두 가지 있다. 첫째, 한국인은 중국에서 돈이 좀 있다고 거들먹거린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돈이 더 많은 일본인이나 서양인들보다도 훨씬 돈 있는 척을 하고 다닌다. 둘째로 중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들은 현지직원에 대한 처우 면에서 자주 문제를 일으킨다. 중국인 직원을 강압적으로 대한다거나 강제로 근무시간을 연장하고, 이를 거부하면 구타한다거나 하는 일이 빈번하다. 특히 회사사정이 어려워졌을 때, 직원들은 내버려두고 사장 혼자서 몰래 돈을 빼돌려 도망치는 일이 중국언론에 자주 보도되곤 한다. 중국인 사장이라면 이렇게 무책임한 짓을 하지 않는다. 아무리 사정이 급하더라도 최대한 뒷수습을 해놓고 떠난다.
불: 한국 사람의 일반적 기질은 어떻다고 생각하나?
뚱: 중국사람 입장에서 볼 때, 정말로 성격이 급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여러 번 든다. 좀 여유있게 지낼 수도 있을 법한데, 왜 그렇게들 급한지. 중국에서도 느껴오던 바지만, 한국에 와서 그런 걸 더 심하게 느꼈다.
불: 학생들 경우는 어떤가? 마찬가지라고 느끼나?
뚱: 학생들도 일반적인 한국인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일본이 한국을 지배한 것이 아니라 한국이 일본을 지배했으면 어땠을까? 아마 거의 일본을 초토화했을 것 같다. 완전히 깔아 뭉갰을 것이다. 그랬다면 일본은 아직도 일어서지 못하는 앉은뱅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랬으면 아직도 우리는 부끄러워 얼굴을 못 들고 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불: 현재 중국 지식인 사회에 리더라고 할 만한 사람은 누구인가?
뚱: 글쎄, 천안문을 거치면서 지식인들이 암묵적으로 공유해오던 어떤 사상적 기초 같은 것이 사라져버린 것 같다. 사상적 정치적 입장에 따라 80년대의 “계몽적 지식인” 내부에서 다양한 입장차이가 생겨났다. 그런 각도에서 본다면 딱히 누군가를 중국 지식인 사회의 리더로 꼽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불: 최근 중국에서는 신좌파–자유주의 논쟁이라고 불리는 지식인 사회 내부의 논쟁이 있었다고 들었다. 당신도 이 논쟁에 관여했다던데.. 이 논쟁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를 해줄 수 있겠나?
뚱: 80년대 시작된 개혁 개방 이후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확대되면서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심각해졌다, 이런 사회 문제를 두고 반정부적 성향을 띠는 진보적 지식인 내부에서 크게 입장이 둘로 갈렸다. 한 쪽은 이런 문제들은 정부의 정책이 아직 충분히 자본주의화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철저한 법제화, 제도화를 통해서 사회주의 시절부터 유산으로 내려오는 공산당 관료들의 부정 부패, 사회에 만연한 연줄대기(중국어로 ??시 關係) 등의 부조리를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보다 강력한 시장경제와 법치를 도입하기를 주저하는 공산당 내부의 보수적 기득권 세력들이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일차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시장경제와 그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효율적인 법질서 정비, 정치적 자유의 확대를 주장하는 이런 입장을 소위 자유주의자 그룹 혹은 자유파라고 부른다.
신좌파로 불리는 사람들은 ‘자유‘의 확대가 관건이라는 이런 견해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다. 현재 중국 사회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자본의 논리가 제약없이 관철되면서 과거 사회주의 시절 최소한의 기본적인 의식주는 걱정하지 않고 살았던 사람들이 느닷없이 아무런 사회적 보장정책 없이 거리로 나앉게 되었다는 데 있다고 본다. 이제 막 출발한 중국에서의 시장경제=자본주의는 고삐풀린 망아지 마냥, 아무런 제약도 없이 마음껏 자본의 논리를 관철해가고 있는 셈이다. 신좌파의 입장은 이런 제약없는 자본의 논리를 국가가 개입해서 제어할 것을 주문한다. 국가에 의한 시장에의 개입이라는 고전적 수정자본주의 혹은 복지국가적 모델이 중국사회에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신흥자본가 세력과 결탁해 있거나 스스로 자본가로 변신한 공산당 관료들에 대한 비판과 통제가 관건이라고 본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자유의 확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의 축소‘에 있다고 보는 셈이다.
불: 당신 입장은 어느 쪽인가?
뚱: 많은 사람들이 나를 신좌파 쪽으로 분류한다. 왕휘(왕후이 王暉), 광신년(쾅신녠 曠新年) 등 신좌파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논객들과 친분도 있는 편이고… 하지만 자유파에 대해서도 공감하는 바가 적지 않다. 가급적 그 쪽 견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려고 하는 편이다. 두 진영 사이의 논전이 불필요했다고 보지는 않지만 다소 성급하게 상대방 주장을 단순화하거나 불필요한 인신공격(주로 정부측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의심)으로 논점을 흐린 점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나더러 자유–신좌파라고 부르면서 절충적 입장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불: 한국에 온 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꼽으라면?
뚱: 한 달 쯤 전에 광주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학회가 끝난 후 주최 측에서 간단히 광주주변 관광을 마련했는데 망월동 묘지도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그곳은 내가 한국에 오면서 제일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당시 상황이라든가 오늘날 그곳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 같은 것을 잘은 모르지만 뭐라고 말하기 힘든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아직까지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불: 마지막으로,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의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뚱: 글쎄,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굳이 말하라면, 난 ‘희생‘이라고 하겠다. 한국의 민주화도 그런 희생을 통해 가능하지 않았나. 그게 지식인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한국과 중국을 비교할 때 중국에 결여된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