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데이날 만난 사람들

미조직 여성노동자를 위하여 <전국여성노조 서울지부장 이정자 씨>, 부당해고 철회 농성 2년째 <한화정보통신 해고 노동자 정미정 씨>, 민주노동당 관악 동작 지부 <사무처장 신장식 씨>, 1학년이 뭘 아냐고요? <서울대 법학부 1학년 반미현 씨>, 서른 여덟 살 총각, 대전 택시 노조 <윤용범 씨>

1. 미조직 여성노동자를 위하여

전국여성노조 서울지부장 이정자 씨

 

4 29일 카메라와 녹음기를 챙겨 서울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민주노총 주최 메이데이 기념 집회에 나온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버스가 갈월동을 지날 무렵인쇄노조의 깃발을 든 노동자들 열댓명이 서울역을 향해 걸어 가는 모습을 보았다. 거리에서 인쇄노조의 깃발은 초라하고 그 깃발 아래서 걷고 있는 그들의 행색도 초라하다.

언제부터인가 메이데이 집회는잔치가 되었다. 누군가들은노동자들의 생일이라고도 했다.그래서 오늘 그들은 초라하지 않다. 잔치집에 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역에 도착한 건 1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본 집회는 2시부터였는데 벌써 잔치의 분위기는 완연했다. 날씨는 더없이 화창했고, 사람들의 표정도 밝았다.

하긴 의례적인 축사와 투쟁결의문을 읽고 듣는 본집회가 잔치랴.

캐쥬얼한 봄나들이 옷을 입고 약속한 장소에 모이고, 모여서는누구야 왔니?’ ‘누구는 아직 안 왔니?’ – 공장이나 사무실에서만 보던 창백하던 얼굴들을 이렇게 밝은 햇볕아래 웃으며 만나는 그것이 잔치일 테다. 

음악을 틀어놓고 무대 뒤편에서는 문선대 사람들이 마무리 연습에 열중하고 있고, 별나게 힘든 사연이 있는 노동자들은 시민들과 다른 동료들을 향해서 유인물을 나누고 선동을 하고 있다.

역 광장에는 원래 이 곳의 주인인 사람들도 다 있다. 노숙자들, 그리고예수 천국, 불신지옥팻말 든 아줌마 아저씨들, 그리고 어디론가 기차를 타고 가기 위해 들뜬 걸음을 재촉하는 시민들. 그들은 오늘 이 잔치의 주인인 노동자들과 자연스레 어우러졌다.

 

어디선가 멀리서 보기에도 화사하기 그지없게 챙 넓은 흰 모자를 쓰고 그 위에단결투쟁빨간 띠를 길게 두른 노동자들이 나타났다. 여자들만 있다. 

좇아가서 만난 사람은 이정자 씨였다.     

 

퍼슨웹> 안녕하세요!! 지금 일하고 계신 곳은요?

 

이정자 씨> , 전국여성노동조합 서울지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퍼슨웹> 지금까지 계속 노동일 하고 계신 건가요?

 

이정자 씨> 처음 공장에 들어가서 일한 건 87 11월달입니다. 97 10 31일날 <나우정밀>에서 퇴사했습니다.

 

퍼슨웹> 퇴사하시게 된 것은? 어떤 연유로?

 

이정자 씨> 공장 이전 문제 때문에저희는 다 가정주부이기도 했거든요. 공장이 경기도 화성으로 이전하면서 따라가질 못했죠. 그 대신 회사와 교섭을 통해서 위로금을 받고 일괄 사직했죠.

 

퍼슨웹> 여성노조에서 일하시게 된 건 어떤 계기에서였나요?

 

이정자 씨> 제가 <나우정밀> 노조에서 한 4년 간부로 활동을 했었거든요. <나우정밀>에서 노조의 필요성을 알고 작은 역할이나마 보태고 싶었지요. 그래서 간부 활동도 했지요.

그 때만 해도 제가 노동운동을 계속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지요. 그러다 퇴사를 하고 집에서 1 6개월 쉬는 동안, 지역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제가 활동한 <나우>노조는 힘이 센 노조였거든요. 근로조건이나 조합활동이나 단협 같은 게 잘 돼 있었지요. 그래서 노동자들이 다 그런 줄로만 알고 있다가대부분의 여성노동자가 굉장히 열악한 영세사업장에서 미조직 상태로 또 비정규직으로 일한다는 걸 알았지요.  아주 고통스럽게 살고 있지요.

, 그래서 제 자신이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 앞으로 좀더 치열하게 각성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여성노조에 들어와 일하게 되고 어쩌다 보니 서울 지부장까지 맡게 됐네요. (미소)

 

퍼슨웹> ,,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 대부분 여성노조에 대해서 잘 모를 텐데요여성노조가 따로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이정자 씨> 우리 여성노동자들이 대부분 조직되지 못한 채 개별화되어 있고요. 그리고 대부분 영세사업장에서 주로 근무하다 보니 노조를 통해 주체로 조직되지 못하고 있지요. 그러다보니까 권리의식도 굉장히 희박하지요. 자기 권리가 뭔지 자체도 모르는 경우가 많지요. 이런 현실이다보니까 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지요.

그래서 어떻게든 여성노동자들을 주체로 세워서 권리의식을 높이는 게 여성노조의 역할입니다. 한마디로 흩어져 있는 여성노동자들을 모아내는 일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퍼슨웹> (끄덕끄덕) 그럼 현재 여성노동자의 조직율이…?

 

이정자 씨> 전체 여성노동자를 500만쯤으로 본다면요, 4.5%정도만 조직되어 있지요.

 

퍼슨웹> 민노총이나 한노총이란 큰 조직이 있는데요?

 

이정자 씨>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있기는 해도, 대기업 중심이고 남성 노동자 중심이지요. 그래서 우리 여성노동자들의 고용 현실과 맞지 않는 거죠. 또 사회적으로 볼 때, 여성노동자들은 일반적인 여성문제 같은 데 노출이 되어 있지요. 또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이 남성에 비

해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한국적 특수성이 있고요. 가정에선 가사노동  때문에 이중의 부담에 시달리지요. 이런 고통 때문에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별도의 조직이 필요한 겁니다.

 

그렇다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과 연대에 관한 문제는 올해 노동운동의 큰 화두이다.  이정자 씨 말대로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은 대기업 소속의 남성노동자들 중심이다. 민노총의 조직율은 전체 노동자의 5%에 불과하지만, 300인 이상 고용 기업 노동자는 80%가 민노총이나 한노총으로 조직되어 있다. 비교적 높은 교섭력으로 안정적인 근로조건을 확보해온 이들은 혹자가 말하는 것처럼노동자계급 상층이다.

 

그러나 한편 IMF 경제 위기는 수많은 불완전고용 노동자를 만들어냈다. 그리고노동자계급 상층도 항상적인 고용 위기에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이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유례없는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10인 이상 사업체에 종사하는 노동자와 1-4인 규모의 사업체에 종사하는 노동자 간에 무려 40%에 달하는 임금 격차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주지하듯 소규모 영세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노동법의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퍼슨웹> 그러면 민주노총이나 상급 노조와 마찰이나 갈등 같은 건 없나요?

 

이정자 씨> 아직 그런 문제는 없고요. 저희가 민주노총을 아직 상급단체로 정하지는 않았지만, 참관노조로 들어가 있어요. 저희는요, 처음부터노동자는 대동단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어요.

지난 1월달에노원구에 있는 동부혈액원이란 데가 있는데, 거기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간호사 15명이 부당해고를 당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1월달 내내 같이 싸워서 복직하게 도와드렸어요. 그 이후에 그 쪽에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서울기간지부(??)가 있는 걸 알았지요. 그래서 거기에 간호사들을  조합원으로 보내드렸어요.

그래서 이런 일을 보면 알겠지만조금만 서로 양보하고대동단결이라는 원칙만 갖고 있으면 문제가 없을 거 같아요.

 

퍼슨웹> 가정일도 하셔야 될 것 같은데 활동하는 데 개인적인 어려움은 없으세요?

 

이정자 씨> (웃으며) 여러 가지로 많이 힘들죠. 저희 가족들 희생이 크지요그래요. 엄마가 밖에 나가서 일하는데남편이나 아이들이 엄마가 하는 일이 정확하게 뭔지, 어떤 의미가 있지는 정확히는 이해는 잘 못해요. 그래도 엄마를 믿어주는밖에서 엄마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거다 하는 엄마를 믿어주는 마음이 있으니까 불평불만을 잘 안하죠. 저희 남편도 빨래도 청소도 해주고, 다 해줘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하죠. 호호호호.

 

퍼슨웹> 요새 살기는 어떠세요?

 

이정자 씨> 저희 애들 아빠는 벌이가 넉넉지를 못해요. 예전부터 워낙 조그만 영세기업에 다니니까. 근데 뭐, 돈에 욕심 내고 연연하자면 이런 일 못하죠. 저희 가족은 다섯 명인데, 남편하고 아들 하나 딸 둘다 별로 욕심이 없는 사람들 같아요. 그래서 그냥 이렇게 즐겁게 살아요. 호호호.

 

이 아줌마 운동가는 젊지도 않고 미인도 아니다. 그러나 이 웃음 많은 아줌마에 단박 반하고 있다. 욕심 없이 즐겁게 산다니그래서 이런 썰렁한 질문도 하나 했다.

 

퍼슨웹> 메이데이를 맞은 노동자로서 소망이 있으시다면요?

 

이정자 씨> 메이데이를 맞아서한국의 노동자들이 특히 그중에서도 여성노동자들이 열악한 상황에 있다는 게 많이 알려지고이후에는 세계 노동자들이 누리는 보편적인 가치를 우리 여성노동자들이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퍼슨웹> 오늘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2. 부당해고 철회 투쟁 2년째

한화정보통신 해고노동자 정미정 씨

 

서부역 쪽으로 발길을 옮기다 <원직복직> 머리띠를 두르고 대열을 이룬 채 구호를 외치고 있는 노동자들을 보았다. 그 중 한 여성노동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기자는 쑥스러워 하는 그를 대열에서 이끌어 내어 한켠으로 이끌었다.  

 

퍼슨웹>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계신 건지 말씀을 해 주세요.

 

정미정> 한화그룹 한화정보통신 구로공장에서 해고되었고요. 지금 상태는… 5 20일이면 해고된 지 2년째가 되고요. 천막농성투쟁을 한 지 만 1년입니다. 메이데이날 해고투쟁이 장기간 계속되고 있는 걸 알리고, 한화그룹의 노동탄압이 알려져 있지 않은 거에 대해서 진상을 알리기 위해 나왔습니다.

 

2년이 넘었으니, 사연이 무척 길다. 한화정보통신은 PCS단말기를 만드는 회사다. 류시원인가 하는 넘이 이 회사 PCS폰 광고에 나왔던가?

98 4, 오트론이라는 이름의 한화 계열 전자회사에 다니던 정미정 씨와 동료들은 부당해고 당했다. 밀린 상여금을 받게 해달라고 노동부에 진정서를 낸 것이 이유였다.

 

싸우는 도중에 오트론은 구조조정 대상기업으로 선정되어 퇴출 판정을 받았다. 한화그룹은 290여명 되는 오트론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면서 그들에게 일괄사표를 받고 다시 구로공장 신입사원으로 채용하는 편법을 썼다. 정부의 채용장려금 5억원을 받아가면서. 세상엔 눈먼 돈이 왜 이리도 많나! 

그런데 이때 미정 씨 등 12명만 재입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들은 오트론이 파산선고를 할 때 끝까지 밀린 임금을 달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해고자들은 그 뒤 “오트론이 사실상 한화그룹 계열사였던 만큼 회사 이름이 바뀌어도 직원을 모두 고용승계해야 한다”며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그리고 이 요구는 노동위원회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회사는 곧바로 12명을 재입사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회사는 이 때부터 아주 악랄한 방법을 썼다. 해고자들을 `왕따 사업장에 따로 배치하고 전혀 일을 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과 전혀 만나지 못하도록 막았던 것이다. 했다. 회사측은 이들이 작업장에 들어가는 것도 식당에 들어오는 것도 막았다. 복직 첫날 이들이 구내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으려 하자 관리자들은 이들의 식판을 엎어버렸다고 한다. 이때부터 미정 씨들은 점심시간을 피해 따로 식은 밥을 먹어야 했다.

관리자들은 노동자들을 동원해 사흘 동안 `왕따 사업장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너희들이랑 밥 같이 못먹는다”무슨 염치로 월급 받아가냐고 `핍박했다고 한다. 이 당시의 사연은 <한겨레 신문>에도 보도된 바 있다.

 

(인터넷 한겨레 6 4일자 참조 http://news.naver.com/read?id=1999060400000065014)

 

퍼슨웹> 이 때 기분이 어땠나요?

 

정미정> 가슴이너무 아팠죠. 너무 너무 화가 나서 미치는 줄 알았어요. 사람이 사람을 그런 식으로 대접해도 되나요

 

미정 씨의 눈가가 붉어졌다.

쥐꼬리만한 기본급만 받으면서 버티던 9개월 동안의 왕따 생활은 99 8월에 끝이 났다. 드디어 회사가 정식발령을 낸 것이다.

한화정보통신은 해고자들을 성남 공장으로 발령을 냈다. 이사갈 형편이 못돼서 못 가겠다고 하자얼씨구나기다렸다는 듯 해고 통보를 내렸다.

그 때부터 회사 정문 곁에서의 천막 농성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퍼슨웹> 지난 번 뵀을 때 보다 더 여위셨는데 힘드시진 않으세요? (기자는 사실 미정 씨를 농성장에서 본 적이 있다.)  

 

정미정 씨> (미소를 지으며) 글쎄요. 개인적으로 몸이 힘든 면은 있는데, 저희 투쟁이 되게 길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연대가 끊이질 않아요. 그래서 함께 하는, 매일 보는 동지들이 있기 때문에 힘든 게 별로 안 느껴지는 것도 있습니다.

 

미정 씨는 키도 작고 몸도 여위었다. 피로한지 안색도 별로 좋지 않다. 그래서 그가 두른 붉은 띠가 갸날픈 그녀를 오히려 더애처롭게보이게 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이는 분명 실례다. 저렇게 미소짓는데. 

 

퍼슨웹> 원직복직 외에도 요구 사항이 있습니까?

 

정미정 씨> 예에현재 노동조합은 88년에 결성된 건데, 한국노총 소속인데 굉장히 어용적입니다. 임단협 교섭권을 노조 집행부가 포기하고 회사에 넘겨준 상태이기 때문에 노동조합 민주화를 해고투쟁과 함께 요구하고 있습니다.

 

퍼슨웹> 같이 해고 투쟁을 하고 있는 다른 분들은?

 

정미정 씨> , 말했지만 세 명인데, 이상희란 친구와 장명임이란 친구. 그렇게 같이요.

 

퍼슨웹> 그럼 계속 그 천막에서 다 주무시고 생활을 하시는 건가요?

 

정미정 씨> 세 해고자가 천막에 기본적으로 농성자로서 있고요. 가끔 한 번씩은 집에 들어가서 세수하고 목욕하고 옵니다.

 

퍼슨웹> 처음부터 한화정보통신에 근무했나요?

 

정미정 씨> 지금 같이 싸우는 해고자가 세 사람인데 중에 한 사람은 근속 연수가 짧고요, 두 명은 근속연수가 6년 정도 됩니다. 다른 데서 일도 했지요.

 

퍼슨웹> 지금 나이가….? (실례)

 

정미정 씨> 제가 지금 서른 셋입니다. 다른 두 명은 서른 하나, 서른이고요. 다 노동 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이죠. 

 

퍼슨웹> 노동 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그 사업장에서 있었나요?

 

정미정 씨> 지금 해고된 사람들은 다 한화 구로공장에서부터 싸움을 시작했어요. 거기서 대의원 활동을 했기 때문에 운동을 시작한 거지요.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해서 이런 질문들을 꺼냈지만 별로 여유가 없다. 꽤 시간이 흐르는 사이 미정 씨의 동료들은 쉴 사이 없이 구호를 외치고 있고 본 집회는 시작되려 한다. 대열로 돌아가고 싶어 마음이 바빠진 미정 씨를 붙잡았다.

 

퍼슨웹> IMF가 끝났다고들 말하는데, 거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미정 씨> 자본가들에겐 위기가 끝났는지 모르지만 노동자들에겐 생활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어요

 

퍼슨웹> 아무래도 가장 큰 바램은 원직복직되시는 거겠네요. 또 다른 소망이 있다면요?

 

정미정 씨> 메이데이가 총파업투쟁으로 활짝 열렸으면 하는 게 꿈이죠. 호호.

 

퍼슨웹> 그런 거 말고 앞으로 계획이나 다른 개인적인 소망이 있다면요?

 

정미정 씨> 글쎄요투쟁하는 과정에서 동지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면요그게 개인적인 바램이라면 바램이어요.

 

서른 셋. 노처녀. 힘들기도 할 것인데 누군가를 만나고 안정하고 싶다는 말인지. 이런 말을 그렇게 표현한 것인지.

화창한 날 열리는 잔치가 무겁게 느껴진다.

3. 민주노동당 관악동작지부

사무처장 신장식 씨

 

서부역 쪽 지하철역 입구에 아까부터 작업용 화이바를 쓰고 플랭카드를 펼쳐들고 외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민주노동당 관악동작지부> 글귀가 플랭카 속에 있었다. 그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그래서 가고 있는데, 엥!!
낯익은 잠바차림 말상[馬相 – 예전에 백기완 선생이 그를 이렇게 부르는 걸 본 적이 있다.] 하나가 사람들 속에 섞여 본 집회장 쪽으로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다. 다짜고짜 불렀다.
“위원장님!”
동시에 셔터를 눌렀다. 걸음을 옮기며, 내가 좋아하는 그 말상은 한껏 주름을 만들어 카메라를 향해 환히 웃어주었다. 따라가 붙잡고 싶지만 도대체 겨를이 없다.    
 

 

신장식(31세) 씨를 만났다.

 

퍼슨웹> 자신을 소개해주세요.

신장식 씨> 저는 민주노동당 관악 동작 지부 사무처장을 맡고 있고요. 지난 총선에 민주노동당 관악을 지구에 출마했었습니다. 신장식입니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선거 쪽으로 흘러갔다.

 

퍼슨웹> 8% 넘게 받으셨다면서요?

신장식 씨> 에- 정확하게는 8.41%. 팔 천 육 백 서른 다섯(8,635)표요.

 

퍼슨웹> 상대 후보가 이해찬이었다는데, 지역 토론회도 안 나오고 그랬다는데 솔직히 그 인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신장식> 에, 뭐랄까? 그분이… 야당 투사 시절의 오기와 여당의 교만함을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게 아니냐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쩔 때는 막- 여당후보로서 가져야될, 운동 선배로서 가져야될 포용력을 보여주고 그래야 되는 게 아니냐 싶은데 너무나도 정치적인 계산만 하고 오기와 교만함, 그거여요 한마디로.

 

퍼슨웹> 8% 득표에 대한 지구당 차원의 평가는요?

신장식> 가능성과 희망을 봤다… 아쉽지만!

 

퍼슨웹> 일반적인 평가랑 똑같네?

신장식> 아니, 근데 실제로 많이 아쉬웠어요. 후보 입장에선 더 아쉽죠… 저는 13-15% 정도는 얻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수도권에서 정형주 후보를 제외하고는 최다득표수를 기록했기 때문에 자신감을 많이 얻었죠. 하하. 암튼 가능성을 봤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 교만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요. 전술평가 이런 거도 좋지만 근본적으로 아주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투표 성향의 분석이라든지, 어떤 정책이 득표 요인이 됐고 어떤 게 제대로 설명되지 못했는지 이런 게 분석될 필요가 있을 거 같아요.

 

퍼슨웹> 장식 씨네 선거구에선 학생들이 선거운동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학생들은 어땠나요?

신장식> 학생들이 열심히 했죠. 아주 재밌고 즐겁게 했죠.

 

퍼슨웹> 그래도 아쉬운 점은 없었나요?

신장식> 학생들이 제가 활동할 때보단 굉장히 어려운 조건에 있더라고요. 학생운동 자체가 많이 위축되어 있으니까요. 굉장히 어려운 가운데 우리는 요구는 많이 하고… 그 쪽에서는 고생은 많이 하는데 자기들도 미안해하고. 우리도 미안해하고… 서로 미안해하면서 운동을 했어요. 그러다 나중에 고학번들이 더 많이 와서 일을 하고 그랬죠.

 

울산 북구 이야기를 물었다. 민노당은 어떻게 후유증을 수습하고 또 한 걸음 나아갈 것인지…

 

퍼슨웹> 딴 이야긴데 진짜 울산 북구에서 될 줄 알았나요?

신장식> 울산이요? 반신반의했죠.

 

퍼슨웹> 울산 북구에서 한나라당에게 진 게 꼭 지역 감정 탓만은 아니겠죠?

신장식> 당과 대중을 괴리시켰던 판단… 절차는 물론 하자가 없었지만, 하지만 대중조직이 아니라 정당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판단에 대해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치적 판단에는 오류가 있었다는 점을 정확하게 집고 넘어가야 나중에 이런 오류가 반복되지 않을 거다고 생각했어요.

 

퍼슨웹> 그런 이야길 중앙에 가서 했나요?

신장식> 예… 어제 중앙위원회에서도 그런 이야기했어요.

 

퍼슨웹> 하하. 민주노동당이 법적으로 등록 취소되었는데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한 말씀..

신장식 씨> 예, 저희 어제(4월 28일) 제4차 중앙위원회가 있었는데. 재등록 절차를 밟아서 바로 5월 중순이나 말경에 재창당하는 걸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6월 8일날 지자체 재-보궐 선거가 있는데 그 때 당의 이름을 가지고 당당하게 또 한번 정치투쟁 해보자 그렇게 결의했습니다. 


 
퍼슨웹> 5월 총파업이 결의되었다고 들었는데, 지금 민주노동당 같은 경우에 지나치게 당 사업만에만 주력한다는 비판도 있는데 여기에 대해선?

 

 

신장식 씨> 뭐, 오히려 그것에만 주력한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거기에서 얼마나 총파업에 대해서 이야길 하고 어떻게 전선을 제대로 쳐내는가가 문제지요. 선거에 대응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선거 속에서 우리가 어떤 전선을 만들어내는가로 평가할 지점이라 생각하고요.
이번 4월 총선에서 실제로 저 같은 경우도 “고용안정 실현, 빈부격차 해소”- 요 딱 두 가지가 핵심 슬로건이었고요. 민주노동당 21명 후보가 다 “부패정치 청산, 고용안정 실현, 빈부격차 해소” 이런 요구를 가지고 싸움에 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걸 제대로 했는가에 대해서는 다른 평가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건 아니거든요. 21명 적은 수 후보로 정치 전선을 만든다는 게 사실은 상당히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열심히 했고요. 우리 5월 총파업에도 가장 열심히 뛰기 위해서 오늘도 이 자리에 같이 나와서 열심히 “총파업 승리하자!”(팔을 들어 흔들며) 이런 주장하고 있는 거지요.

 

퍼슨웹> 계속 지역 활동을 해온 걸로 들었는데 앞으로도 관악을 지역 활동을 합니까?

신장식 씨> 예, 저희들 지부 체계로 되어 있으니까 관악을 지구당뿐만 아니라 관악 동작 같이 활동을 하고요. 저희들이 선거에서 전략지구로 관악을을 선정한 거니까 아무래도 관악을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되는 건 사실이겠죠.

 

퍼스웹> 메이데이를 맞아 하고 싶은 말은요?

신장식> 에, 지금 정치투쟁에서나 대중투쟁에서나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대해 파열구를 못 내고 있는 게 우리 형편인 거 같아요. 5월 총파업을 어렵게 결의했는데… 신자유주의가 워낙 큰 흐름이라 단번에 되지는 않겠지만 반드시 5월 총파업을 성사시키고 민주노동당도 정치투쟁에서 열심히 해서, 신자유주의의  대공세에 대해서 올해는 좀 파열구를 내야 되겠다는 게 바램입니다.

목소리도 걸걸하고 외모도 그에 못지 않은 신장식 씨는 옛날 말로 하면 “학출”이다. 서울대 정치학과와 그 대학원을 나왔다. 철거 문제가 많은 관악구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지난 지자체 선거에도 출마했었다. 석사 논문을 쓸 거냐고, 공부를 계속할 거냐고 물었더니 영어 원서 볼 일이 갑갑하다며 “하하하하” 웃었다.

 

 

4. “1학년이 뭘 아냐고요?”

– 서울대 법학부 1학년 반미현 씨

집회가 시작되었다. 다시 발길을 본 집회가 열리는 쪽으로 옮겼다.
오늘 집회장에도 대학생들의 깃발은 여전하다.
소위 “N세대”는 어쩌면 19세기적인 이 잔치를 어떻게 느낄 건가.

 

퍼슨웹> 소속과 이름, 나이를 말씀해주세요~

반미현 씨> 저는 서울대학교 법학부 1학년, 스물 한 살이고, 반미현입니다.

 

퍼슨웹> 오늘 집회에 어떻게 참가하시게 됐나요?

반미현 씨> 먼저 학교에서 <4.30 메이데이 실천단 동반자>란 걸 결의해서 그분들과 함께 나오게 됐구요. 옛날부터 노동자들이 얼마나 억압받고 불공평한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당연히 연대해서 도와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왔습니다.

 

당연히… 도와드려야 된다? 너무 당연해서 약간 말문이 막히는 느낌이다.

 

퍼슨웹> 선배들한테 들은 얘기 말고 솔직한 자기 느낌을 듣고 싶은데요…

반미현 씨> 느낌은 선배들한테 배우고 들은 게 더 깊어졌다고 할 수가 있는데요. 물론 대다수의 대학생들도 노동자들의 삶이 얼마나 열악한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행동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저 같은 경우는 대학 들어와서 그런 분들의 삶 – 서울대 옆에 있는 봉천동 철거촌의 삶과 저희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설노조 파업 등을 보면서 그 분들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일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퍼슨웹>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 대학 입학하자마자 계속 이런 활동에 끼고 있는 거 같은데… 혹시 부모님은 이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반미현 씨> 부모님께는 아직 말씀을 못 드렸고요. 대학 들어와서부터 활동하게 된 건 맞거든요.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정당하고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모님들께 알리는 일도 그다지 겁나지는 않습니다. 하하.

 

퍼슨웹> 부모님께서 뭐라고 하실 것 같아요?

반미현 씨> 물론 부모님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보시고 반대를 하실 것 같은데요, 그분들이 수긍하시도록 말씀을 드려야겠지요.

 

퍼슨웹>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인 집회에 나온 기분이 어때요?

반미현 씨> 음- 기분이 글쎄 감동이랄까, 하하. 되게 감동을 받는 부분도 있고요.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이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게 저한테 힘도 되고, 한편으로는 제가 그들한테 힘이 될 수 있다는 게 되게 좋은 거 같아요.

 

아무런 거침이 없다. 아직 어리기 때문인지 원래 단단한 사람인지 알 수 없지만. 또는 집회장이 일시적으로나마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원하는 것보다 훨씬 교과서적인 대답만 듣게 된다. 

 

퍼슨웹> 솔직히 대학 1학년이 이런 생각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친구들하고도 이런 이야기를 쉽게 하나요?

반미현 씨> 친구들 만나서 이런 얘기 꺼내면 분위기가 서먹해지기 때문에 많이 하지는 못해요…

 

퍼슨웹> 왜 서먹해진다고 생각하세요?

반미현 씨> 물론 생각은 갖고 있지만 쉽사리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요, 또 가치를 두고 있는 게 다르기 때문에, 이를테면 대학 와서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애들도 있고, 아니면 다른 사회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애들도 있기 때문에. 아무튼 관심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말하기가 힘든 거 같애요.

 

퍼슨웹> 오늘 친구들은 몇 명이나 나왔어요?

반미현 씨> 꽤 많이 나온 걸로 아는데요. 저희 반에서도 10명 이상 나왔구요. 대략 서른 명 되는 거 같애요.

 

퍼슨웹> 서울대 법대생이랑 노동자 사이에 거리가 멀잖아요, 혹시 이 자리에 오면서 그런 부분에 대한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지?

반미현 씨> 서울 법대생이라고 해서 왜 그들과 사이가 멀어야 되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퍼슨웹> 일반적인 시각으로 볼 때 당신들이랑 노동자들 사이에는 계급적인 차이, 계층적인 차이가 주어질 수밖에 없지 않나요? 이런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반미현 씨> 계급적인 차이, 계층적인 차이를 누가 만드는 건지 잘 모르겠고요. 그런 생각이 지금 형성돼있는 게 기득권들이 만들었고, 노동자들을 억압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고, 그래서 노동자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고 기득권들도 당연히 그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음- 법대라는 공간 자체도 기득권을 양성하는 곳이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멀다고는 생각 못해봤는데요. 만약에 이제까지 그랬다면 변해야 되는 거구요. 오히려 저희가 나서서 해야된다고 생각해요.

 

퍼슨웹> 서울대 법대 선배들은 졸업하면 비리를 저지르는 법조인이 되기도 하고. 아니면 뭐 적당히 진보적인 법률 운동한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굉장히 소득이 높은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게 진로가 한정되어서 살아가잖아요. 거기에 대해서 느끼는 점 있어요?

반미현 씨> 그런 걱정을 해본 것도 사실이구요. 3월달에 민노당 지지 활동을 하면서 그들이 기득권 세력이 됐을 때, 다시 보수정당이 되는 건 아닌가? 아니면 지금의 정치주류에 물들어 가는 건 아닐까? 이런 의문을 가졌고 염려도 되고 했었어요. 근데, 선배들이 말씀하시길 또 제가 생각을 정리하기로는- 그들이 만약에 그렇다하면 또다시 이런 운동이 일어나고 진보 세력의 운동이 일어날 꺼기 때문에 역사는 진보의 방향으로 변해갈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들이 보수세력의 물이 들면 또 그거에 대해 반대하는 진보세력이 생기겠죠.

 

퍼슨웹> 입학한 지 두 달 정도 지났는데, 운동하는 선배나 운동에 대해 보면서 회의가 들었던 순간은 없었나요?

반미현 씨> 선배들이 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셨나 싶은데요… 다른 일은 소홀히 하면서, 자기 책임 다 하지 못하면서 이런 활동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걱정을 많이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신입생 때부터 뭘 알면서 저러느냐라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선배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이런 데 나오는 게 다 알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사회에 대해서 더 알기 위해서, 더 배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꼭 다 알아야 뭘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퍼슨웹> 말씀 감사합니다.

 

순수하고 열정적이다. 순수함과 열정 앞에 놓여 있을 현실의 벽에 대해서 별 두려움을 갖고 있지 않다. 벽은 더 천천히 간교하게 나타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순수함과 열정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5. 서른 여덟 살 총각, 대전 택시 노조

윤용범 씨

 

집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인터뷰하기가 더 힘들어졌다. 민노총의 오디오 시설이 너무 빠방해서 스피커 소리를 피할 곳이 별로 없다.

집회장에서 좀 떨어진 곳에 혼자 앉아 쉬고 있는 노동자를 보았다. 눈길이 선량하디 선량해 뵌다.

 

퍼슨웹> 자기 소개를 좀 해주세요

 

윤용범 씨> 나이는 서른 여덟이고요, 대전에 있는승마유건이라는 택시회사에 근무하고 있어요.

 

퍼슨웹> 대전에서요?

 

윤용범 씨> 대전에서 식구들하고 다 같이 올라왔어요.

 

퍼슨웹> 가족들하고 다 같이 오셨다고요?

 

윤용범 씨> 아니, 가족이 아니고 각 사업장 단사에 있는 동지들하고 같이 대전 지역본부에서 마련한 관광버스 한 대 타고 같이 올라왔어요. 

 

스피커 소리 때문에 둘다 거의 사오정이다. 거의 소리를 지르며 이야기해야 했다.

 

퍼슨웹> , 그러면 계속 운전하셨는지요?

 

윤용범 씨> 아뇨, 우리는 관광버스 대절한 거 그거 타고 올라왔다니깐요.

 

퍼슨웹> 아뇨, 아뇨, 살아오시면서

 

윤용범 씨> , 택시요?

 

퍼슨웹> (끄덕끄덕) ~

 

윤용범 씨> 택시 회사 근무한 지 한 3년쯤 됐어요.

 

퍼슨웹> 그 전에는요?

 

윤용범 씨> 아이 뭐, 10대 후반부터 노동일 시작해가지고, 여러 가지 일 전전하면서 많은 일들 경험했죠.

 

퍼슨웹> 그 중에서도 택시 하는 게 좀 낫나요?

 

윤용범 씨> 낫다기 보다는 노동이라는 게 노동자에게 주어진 것들이뭐냐 도찐, 개찐 다 엇비슷한 거 같아요. 작업 환경이나 여건만 조금씩 차이 있을 뿐이지 회사에서 당하는 처지나 노동강도나 임금 수준이라든가 제반 상황이 다 엇비슷한 거 같아요.

 

퍼슨웹> 근무조건이나 월급 받으시는 건 어떻게 되어 있나요?

 

윤용범 씨> 사납금제로 하고 있죠. 아직도. 회사에 일정액을 납입을 하고 그 외에 더 벌어들이는 음성적인 수입을 부수입으로 가져가는 걸로 되어 있죠. 

 

퍼슨웹> 그걸로 가족분들과 생활하시는 데 힘드신 건 없나요?

 

윤용범 씨> 그죠. 많이 힘들죠, 많이.

 

퍼슨웹> 집에서 혼자 일하세요?

 

윤용범 씨> 다행히 아직 저는 홀몸이라, 아직 결혼 못 했거들랑요.(미소)

 

퍼슨웹> – (안타깝다)

 

윤용범 씨> 그래서 크게 생활하는 데는 지장은 없는데 만약에 부양식구가 생기고 결혼을 하게 되면 진짜 굉장히 난감하고과연 뭐 기본적인 생계 유지도 원만하게 해 나갈 수 있을까 굉장히 걱정이 되는 형편이죠.

 

퍼슨웹> 이번 선거 땐 어떻게 하셨나요?

 

윤용범 씨> 선거요, 쩌어-. 대전지역에서는 유성에서 과기노조 위원장인 이성호 씨가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를 했었어요. 그래서 인자 민주노총 중앙연맹의 지침에 따라서 민주노동당 후보한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려고좀 하긴 했었는데근데 개인적으로는 민주노동당엔 별로 마음엔 없어요. 하하하.

 

퍼슨웹> 왜 마음이 없으시죠?

 

윤용범 씨> (약간 신중하게) 여러 가지그 뭐야? 실천이나 투쟁의 과정 속에서 조합원이나 대중들의 힘을 믿고 그들의 투쟁 동력을 좀더 강화시키는 모습이라기 보다는 어떤 뭐상층부의 협상이나 교섭 중심으로 치우치는 거 같은데 그런 거에 대해 불만이 많았었죠. 

 

퍼슨웹> , 올해 개인적인 소망은 어떤 게 있나요? 

 

윤용범 씨> 저 지금 조합에서 조직부장 일을 맡고 있는데요. 작년 8월달에 해고 되가지고 올 3 21일날 복직이 됐응게 한 7개월 여 동안 해고 싸움을 벌였었거든요지역에 저와 같은 해고자들이 <충청지역 해고노동자 협의회>라는 조직을 결성해서 공동의 복직 싸움을 같이 진행하고 있어요. 그래서 복직싸움 하는 노동자들이 모두 원하는 원직복직을 쟁취하고 그런 것들을 통해서 노동조합 활동이 좀더 강화되고, 조직력의 누수 현상 같은 게 지금 심각한데 그런 게 좀 근절되고 조직력이 강화되었으면 하는 게 바램이죠 

 

퍼슨웹> 메이데이 행사엔 몇 번째 나오시는 건가요?

 

윤용범 씨> 5.1절 노동절이 공식화되고 매번 중앙연맹 주최로 행사가 열린 이후로는 거진 빠지지 않은 거 같아요. 항상 올라올 때마다 느끼는 건데지역의 동지들 얼굴이 많이 바뀌는 게 아쉬운 모습이거든요오늘도 관광버스 타고 오면서 보니까재작년에 왔던 동지들 모습이 안 보이고, 또 작년에 왔던 동지들 모습이 안 보이고, 새로운 동지들 모습이 보이고수가 감소된 그런 게 개인적으로 아쉬움이죠

 

본 집회장에서는 총파업이 결의되었다. 

빈곤과 고용불안은 올해도 우리 가까운 곳에 그렇게 있다.

행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