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팔리는” 작가가 된다는 것
손정수 : 최근작 『목화밭 엽기전』이 영화화된다고 하는데, 영화의 원작이 된 문학작품의 작가로서 어떤 느낌이 드는가?
백민석 : 우선 계약금을 받았으니 돈이 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영화화되면 혹시 책이 더 많이 팔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기고.
손정수 : 그런 느낌 말고는 없나?
백민석 : 뭐 다른 게 있어야 되나?
손정수 : …….
백민석 : …….
손정수 : 원작을 충실히 옮기는 방향으로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고 있다던데, 원작자 입장에서 볼 때 소설과 영화의 관계란 뭔가?
백민석 : 좋은 영화가 되려면 원작을 망가뜨려야 되는 거 아닌가. 물론 소설도 망가뜨리면서 영화도 엉망인 거, 그건 걱정이 된다.
좀 다른 문제인데, 『목화밭 엽기전』이 나온 이후 걱정이 하나 생겼다. 이렇게 쓰면 “영화가 되는구나, 팔리는구나, 혹은 신문에 나오는구나“, 이런 느낌이 나도 모르게 든다. 자꾸 그쪽으로만 나가지 않을까 그런 게 걱정된다. 아마 이런 생각은 자신의 작품이 영화화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했던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닐까.
손정수 : 이때까지 영화가 원작 그대로 갈 때 대부분 실패했다. 요즘 국내 영화의 추세로 본다면 소설보다 영화가 훨씬 엽기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을 것 같은데…?
백민석 : 글쎄, 나로서는 영화화되는 게 왜 화제가 되는지조차 의문이다. 문지(문학과 지성사)에 갔더니 작가들이 부러워하면서 영화 얘기를 많이 하던데, 다들 먹고 살기 힘드니까 그런 건가?
백민석은 경제적인 문제를 비롯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시종일관 매우 솔직한 태도를 보였다. 현실적인 문제에 초연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초연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것과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이 지식인이나 문학가들의 통념일 테다. 그에 비하면 현실적인 문제를 사고의 중심에 두는 그의 이러한 태도는 다소 특이하다고도 할 수 있다.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다시 물어 보았다.
손정수 : 그럼, 이렇게 물어보자. 『목화밭 엽기전』으로 만(萬)부 작가가 된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
백민석 : 어쨌든 기분 좋다. 그런데 만부가 나간 건 사실인가?
손정수 : 현재 8000부정도 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 직장으로 말하면 평사원에서 대리 정도로 승진한 셈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이제 제도에 더 깊숙이 몸 담그게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 본다면 만부 작가라는 사실이 기쁘기만 할 수 있을까.
백민석 : 글쎄 그거 말고 또 뭐가 있나? 물론 이런 건 출판사의 홍보력이라고 생각한다. 광고의 힘 말이다. 그런데 만부 작가가 되면 제도권 안으로 들어간다고?
이 믿거나말거나박물지들을 쓰면서 내가 걱정했던 것은 실은, 얼마나 잘 쓸 수 있을까가 아니라, 청탁이 들어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그 걱정은 실제로, 몇 번 끔찍스럽고 부끄러운 현실로 나타나기도 했고 덕분에 단편집 없이 장편만 두 권 먼저 낸, 낯선 전력을 쌓기도 했다.
–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 ‘작가 후기‘ 중에서
손정수 : 책 후기 같은 데 청탁이 오지 않을까 두렵다고 쓴 적이 ( 믿거나말거나박물지들을 쓰면서 내가 걱정했던 것은 실은, 얼마나 잘 쓸 수 있을까가 아니라, 청탁이 들어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그 걱정은 실제로, 몇 번 끔찍스럽고 부끄러운 현실로 나타나기도 했고 덕분에 단편집 없이 장편만 두 권 먼저 낸, 낯선 전력을 쌓기도 했다.
–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 ‘작가 후기‘ 중에서 ) 있는 것 같은데, 지금은 그 때랑 많이 다르지 않은가.
백민석 : 근데 사실은 지금도 그런 걱정이 된다. 물론 예전만큼 그렇지는 않지만.
2. 나는 아직도 구석에 앉는다…
백민석은 평촌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몇 년 전까지 같이 살던 할머니가 3년 전쯤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 유독 병원 장면( 97년 8월 11일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가 나왔을 때, 나는 한국 보훈병원 영안실에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였다. (…) 뭔가 쓸 때마다 뭔가 낼 때마다, 병원이 나오고 중환자실과 영안실이 등장한다. 94년, 95년에도 그랬고 96년, 97년에도 그랬다. 이젠, 병원 중환자실 영안실이란 말만 들어도 마음이 정겨워진다.({불쌍한 꼬마 한스}, pp. 5∼7) ) 이 많이 등장하는 것 또한 이러한 그의 체험에 기인한다.
손정수 : 지금 혼자 살고 있는데… 소설가의 생활은 좀 남다른가?
백민석 : 아니, 내 생활은 아주 단순하다. 아무 때나 느즈막하게 일어나서 아침 먹고 음악 듣고 책 읽고 글쓰고 그냥 자고… 그런다.
손정수 : 생활 말고 생계는?
백민석 : 『목화밭 엽기전』 이후에는 좀 유복해졌다. 책 계약금도 받고 원고료도 있고.
손정수 : 지금은 그렇더라도, 처음에는 초판도 다 못 팔았던 작가 아니었나. 그땐 무척 어려웠을 텐데.
백민석 : 그 때는 할머니 연금이 있었다. 50만원.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이제 굶어죽겠구나 했다. 그런데 그 때부터 청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 한 달 월수입이 할머니 살아계실 때와 비슷하다.
손정수 : 그게 얼마인가.
백민석 : 50만원쯤. 하하. 지금은 좀 나아졌다.
손정수 : 언젠가 생활에 지장이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백민석 : 난 50만원이면 충분히 산다.
손정수 : 모든 사회생활이 그렇겠지만, 문단 술자리 같은 데 가 보면 신인들은 구석에 앉아서 별 얘기도 못 하고 처박혀 있는 게 보통이다. 그런 신인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옛날 생각도 나고 그러는가.
백민석 : 내가 바로 그런데!. 아이 참 나. 내가 그래요. 지금도 그래. 하하.
손정수 : 문단 활동이 불편한가?
백민석 : 몇 년 동안 많이 시달렸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조용하게 있으려고 한다. 가끔 출판사나 가고. 그래도 다행인 게 작가들 술 사주는 출판사가 아직도 있다. 이제는 조금씩 사람들 많이 만나려고 한다. 여자도 사귀고 싶고.
손정수 : 결혼은?
백민석 : 해야 되는데……
3. “신세대 작가” : 연대의식 없음의 연대감이란 건 없을까?
손정수 : 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가?
백민석 : 다른 거 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공부도 못 했고 앞날은 불투명했다. 대학에 보내 줄 사람도 없었지만, 나 스스로 갈 생각도 없었다. 그리고 할 얘기가 많았다.
그런데 주위에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친구들이 있었지만, 얘기하면 괜히 바보 소리나 듣을 테니까, 하고 싶은 얘기를 글로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다 취미가 붙기 시작했고…
손정수 : 처음 소설 쓴 것은?
백민석 : 고등학교 때.
손정수 : 재능이 있다고 느꼈나?
백민석 : 그런 적 없었다. 졸업하고 처음 쓴 작품 얼마 전까지 갖고 있었는데, 읽어보면 엉망이다. 지금 각종 출판사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는 투고작들, 그거 반에도 못 미친다.
대학(서울예대) 들어가서 좀 나아졌던 것 같다. 난 재능이 있다거나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손정수 : ‘이만하면 됐다‘라는 느낌을 가지게 된 건 언제인가?
백민석 : 1995년 데뷔작 『헤이, 우리 소풍간다』!
손정수 : 90년대 초반에 등단했던 같은 또래들의 작가들에 대해 문단은 신세대다, 새로운 흐름이다 이런 평가들을 하곤 했다. 그렇다고 그런 흐름의 실체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건 그들이 하나로 모일 수 없는, 그러니까 상당히 비대중적인 실험을 하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
당신과 그들 사이의 어떤 연대감 같은 게 있나?
백민석 : 내 생각에 문학적인 연대의식은 없었다. 다른 작가들도 이런 생각에 반대는 하지 않을 것 같다. 처음 시작할 때는 한 열 명 정도. 다들 이제 어른이 된 것 같다. 그 중에 뒷심이 딸려서 쉬는 작가도 있고 그 중에는 처음 태도를 계속 유지해 가는 사람도 생기고 기성문인이라고 대접을 받는 작가도 생기고… 물론 공통적인 게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걸 문학적인 연대감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인간적으로도 그렇다. 친한 사람들 중에도 그룹이 나뉘어져 있었고 나는 그 어느 그룹하고도 별로 친하지 않았다.
손정수 : 그렇다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된 지금과 그때의 차이는 뭔가?
백민석 : 처음 소설 쓸 때는 ‘이거 아니면 안 돼‘라고 생각했다. 이 책이 만일 출판이 안되면 난 뭐된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편하게 생각한다. 누가 날 쫓아내겠어, 이런 생각도 하게 되고. 여유가 많이 생겼다. 지금도 쫓기는 기분이기는 하지만. 나, 보기보다 단순하지 않다
손정수 : 텔레비젼이나 비디오도 보나?
백민석 : 뉴스정도 본다. 난시라서 비디오나 텔리비젼을 오래 보지도 못한다.
손정수 : 책은 어떤 책을 주로 보나?
백민석 : 아무 거나 본다. 전문적인 학자가 아니니까.
손정수 : 그래도 뭔가 집중하는 장르가 있을 거 아닌가?
백민석 : 굳이 말한다면 인문학.
손정수 : 최근에 인상깊에 읽은 건?
백민석 : 얘기 안 하겠다. 하하하. 밑천이니까.
손정수 : 언젠가 커트 보네커트((“커트 보네거트(Kurt Vonnegut)라는 미국의 소설가가 있다. 이 책의 몇몇 부분은, 그에게 무언가를 표하고 싶어 의도적으로 씌어진 것이다. 나이 예순이 넘어서까지 신세대소설(우리 나라 평론가들 식으로 읽어서)을 쓰고, 하버드대 교수가 되고서도 주변부 문학인의 시각을 고수하는, 기이한 작가다.” – 『불쌍한 꼬마 한스』 작가 후기))얘기도 한 것 같은데…
백민석 : 우리 문화 풍토에서는 미국 문화를 경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알고 보면 미국 문화의 역사는 결코 짧은 역사가 아니다. 근대적 경험의 경우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포(E.A. Poe) 같은 경우는 오히려 불란서 문인들에게 역으로 영향을 미쳤을 정도다.
영화도 마찬가지고 음악도 그렇고. 락음악도 영국에서 대부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재즈나 이런 걸 보면 중심은 미국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의 소설, 그 중심에는 미국의 중산층 감각이 들어 있다. 피츠 제럴드나 레이몬드 카버 같은 계보가 그래서 더 중요하다.
이런 세계도 있다, 그런 생각에서 얘기한 거다. 많지는 않지만 커트 보네거트 번역도 꽤 있다.
손정수 : 그 외에 영향을 받은 작가나 좋아하는 작가는?
백민석 : 내가 좋아하는 작가… 굉장히 많다. 카프카, 이오네스코, 황지우, 기형도, 최수철, 포, 조이스.
손정수 : 당신 이후에 등장한 작가들 작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백민석 : 나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의식적이든 의식적이지 않든 우리 세대가 시도했던 것이 문화적 기호들을 소설의 기법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시도로서의 의미가 있었을 뿐 완성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다음에 나온, 보다 젊고 늦게 시작한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우리가 시도했던 것들을 더욱 복잡해지고 더 현실감 있게 표현한 것 같다. 그래서 부러워할 때도 있다.
4. 어차피 소설가란 소설 팔아 밥 먹는 사람 아닌가?
이제 문학은 예전과 같은 영향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활자매체를 숭배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세상에 널려 있다. TV, 게임, 영화, 인터넷… 문학은 어쩌면 대표적인 사양산업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손정수 : 문학은 사양산업일지도 모른다. 사양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느낌 없나?
백민석 : 글세. 아마 십 년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 같다. 십 년 후에는 아마 다른 일을 해야할지도 모르고.
손정수 : 그렇다면 역시 막막하거나 불안하다는 느낌도 있을 법 한데.
백민석 : 이 상태로 십년이면 괜찮을 거 같다. 처음에는 할머니 돌아가시자마자 다 때려치우고 취직하려고도 했지만.
손정수 : 작년 어떤 출판사 망년회에서 소설 안 쓰고 시나리오 쓰겠다고 말했던 거 기억나나?
백민석 : 술 취하면 아무 소리나 막 한다.
손정수 : 다소간의 절망이랄까 그런 게 있었던 거 같던데……
백민석 : 물론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걸 잘 할 수 있을까? 안 그런 거 같았다. 돈이 될 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고.
손정수 : 당신에게 문학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
백민석 : 우선 생계수단. 이 점이 나에게는 굉장히 중요하다.
백민석 : 80년대에 비해 문학의 사회적 영향력이 상당히 줄어든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영향력이 아주 없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손정수 : 당신 작품은 상당히 실험적인 경향이 짙다. 『목화밭 엽기전』 같은 것도 지적인 실험의 일종으로 볼 수 있을 테고. 그렇지만 소설도 역시 상품의 하나다. 당신 소설을 ‘악마의 소설‘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작품과 거리가 있는 자극적인 어구가 항상 끼어들게 마련이다.
소설 또한 하나의 팔려야 될 상품이니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어떤가?
백민석 : 글쎄, 앞으로는 두 가지 경향이 선명하게 나눠질 거라고 생각한다. 독자들이 읽는 작가와 작가들이 읽는 작가로. 물론 작가들이 읽는 작가는 당장 독자들에게 읽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길게 보면 이런 영역이 큰 의미를 갖는다.
그런 식으로 해서 문화라는 것이 발전하는 것 아닌가. 이런 걸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어쨌든 많이 팔린다고 해서 문학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손정수 : 당신은 두 가지 길 중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발자크처럼 한편으로는 대중적인 작품을 쓰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성 있는 작품을 쓰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백민석 : 내 주제에 뭘 그런 걸 생각하나.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할 문제 같다.
5. 이 인터뷰는 나에 대해서 아무 것도 말하지 못할 것이다
손정수 : 1990년대 들어오면 문창과가 소설계의 주류를 차지하게 된다. 앞으로도 더욱 그럴 것 같다.
백민석 : 문창과 말고 다른 과가 되야 된다는 얘긴가?
손정수 : 그런 얘기가 아니고, 문학이 사상적으로 탈색된다든가 현실과 부딪히는 부분이 줄어든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있다는 건데…
백민석 : 그걸 어떻게 증명하는가? 그게 문창과 때문인가! 문창과가 아니라면 다르게 되었을까? 그래서 우리보고 뭘 어쩌라고. 그리고 그것도 다 기성 평론가들이 뽑은 거 아닌가! 우리가 뭘 잘못했는가. 그냥 추세인 거 같다. 그쪽으로 몰아간 느낌도 있고… 80년대 끝나고 문학을 그쪽으로 몰아갔던 것 아닌가!
손정수 : 『내가 사랑한 캔디』에 나오는 시위 장면 ( 집결 신호에 따라 反長과 나는, FB조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화염병에서 흘러내린 신나와 휘발유 혼합액이, 내 약간 덴 손을 차게 식혀 주고 있었다. 여자애들이 새카맣게 지하철 역 계단을 뛰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 아이들이 멘 색에는, 화염병들이 한가득 담겨 있을 것이다.
시위대가 사거리 중앙을 메우기 시작했다. 전투조를 지휘하던 그 사내가, 내 앞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사내의, 반쯤 꺾인 허리와 깃대가 콧등을 시큰하게 했다. 사내의 얼굴은 이마부터 턱까지, 어디선가 흘러내린 핏덩이로, 둘로 쪼개져 있었다. 사거리 건너 동대문 쪽에서는 날이 늦었으니 해산하고 귀가하라, 는 선무 방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다연발최루탄 발사차 전조등들만이 그 어두운 사거리에서 번쩍이고 있었다.
전경들이 전진해 오고 있었다. 아까처럼 사정없이 몰아 대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단지, 이 귀찮을 뿐인 타조떼들을 자기들 눈, 그리고 정치인들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먼 곳까지 흔적도 없이 날려 버리는 것일 터였다. 전투조들이 오를 맞춰 섰다. 사내가 다가와, FB조들이 들고 있는 화염병 하나하나에 불을 붙여 주었다. 사내 심지의 불꽃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게 불타고 있었다. 우리 역시, 믿기지 않을 정도의 공손한 태도를 그 불꽃을 받아들였다.”(『내가 사랑한 캔디』, pp. 112∼113) ) 은 자기 체험이 반영된 부분이지 싶다. 그때의 당신이란 뭐냐?
백민석 : 스물 한 살인가 그랬을 텐데 그 때 뭘 알았겠는가. 워낙 호전적인 성격이기도 하고. 선배들 악랄한 꼬임에 빠져서…
손정수 : 내 생각에는 그러니까 90년대 초반 학번들은 모호한 데가 있다. 80년대 정치의식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내가 사랑한 캔디』가 당신 또래들의 정치의식을 표현한 거 아닐까?
백민석 : 나쁘게 얘기해야 되나? 나쁘게 얘기하면 가벼워진 거다. 달리 말하면 한 가지에 집중했던 세대가 아니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손정수 : 선배들 꼬임에 넘어갔다고만 말할 수 없는 뭔가가 있지 않나?
백민석 : 물론이다. 우리 세대는 금서가 풀린 세대다. 고등학교때 『말』지를 읽다가 선생님께 뺏기고 맞은 기억이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가난하게 살았다. 반사회적인 그런 게 조금씩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때 내가 글 써서 보여주곤 했던 선생님이 전교조하다 구속된 적도 있다.
손정수 : 『내가 사랑한 캔디』에 나오는 그 선생님?
백민석 : 그렇다. 대학 들어가기 전에 김남주 선생님께 글 배웠던 것도 영향을 받았고.
대학 들어가기 전에 김남주 선생님께 글 배웠던 것도 영향을 받았고……
손정수 : 어딘가에 김남주 선생과 오규원 선생과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두 방향 사이에 내가 있다고 썼던 것이 기억나는데……
백민석 :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는데……
손정수 : 『헤이, 우리 소풍간다』에 나오는 철거 장면을 놓고 지나치게 사회적 의미를 강조하는 비평도 많던데, 거기에 대해선?
백민석 : 그건 과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세대가 윤흥길의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나이>처럼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손정수 : 당신을 컬러TV 세대라고 하는 평가에 대해선?
백민석 : 맞다고 생각한다. 아니, 맞고 틀리고가 없고… 그냥 평론가 선생님들이 하시는 말씀이니까… 나는 불이익 당하기 싫다.
6. 귀여운 아웃사이더 또는 순치된 아웃사이더
손정수 : 소설가들은 대체로 자기 작품에 대한 비평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소설가와 비평가의 관계는 불평등하다.
당신 자신에 대한 비평들, 독자의 반응들, 하다 못해 신문 기사들에 대해 할 말 없나? 어떤 때는 칭찬이든 비판이든 자기가 말하고 싶었던 거랑 전혀 엉뚱한 얘기들을 하기도 할텐데
백민석 : 그런 경우도 있다. 그래도 가만히 있는다. 불이익 당할까봐.
손정수 : 평론가들 눈치도 봐야 돼고 책 팔리는 거 신경도 써야하고 체질적으로 아웃사이더라는 표현하고 잘 안 맞는 거 아닌가.
백민석 : 격렬한 아웃사이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부비판자 정도?
손정수 : 팬레터 같은 거 받나?
백민석 : 누가 내 책을 읽고 팬 레터를 쓰겠는가. 안 온다. 내 작품에 대한 평론이 펜레터라고 생각한다.
손정수 : 정말 없나? 생각나는 거 하나만 이야기 해 달라.
백민석 : 소설가 하면 한 달에 얼마 버냐고, 자기도 하고 싶은데, 직장도 다니고 있는데, 생활이 되냐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보낸 사람이 있었다.
손정수 : 30대가 된 지금, 당신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백민석 : 나이 먹어서까지 추한 모습 안 보이는 사람.
손정수 : 귀여운 아웃사이더로?
백민석 : 모르겠다. 하하, 모르겠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웃사이더가 아닌 것 같다.
손정수 : 어쩌면 30대로 넘어가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자연스런 삶의 과정이라고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삶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문단이라는 시스템이 아웃사이더 기질이 풍부한 당신 같은 사람을 순치시킨 결과라고 해야겠나?
백민석 : 듣고 보니 그런 거 같다.
백민석은 스스로를 호전적인 사람이라고도, 또는 아웃사이더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자신, 이런 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같다. 진정한 아웃사이더로 문단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손정수 : 가볍게 마무리 해 보자. 문지 사이트 게시판에 어떤 독자가 백민석 사진을 봤다, 그야말로 엽기적이더라, 이런 평을 쓴 걸 본 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김연수는 당신을 타이슨이라고 묘사한 적도 있는데…
백민석 : 반성하고 있다. 하하하! 그게 나는 잘 안 된다. 어떻게 하면 인상이 좋게 보이나? 살을 좀 빼야 되나?
손정수 : 오늘 이거 마치고 가면 뭐하는가?
백민석 : 오늘 내로 또 잡문을 하나 써야 된다.
백민석은 저녁 먹자는 제안도, 맥주를 한잔 하자는 제안도 정중히 사절했다. 써야 할 글이 많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목화밭 엽기전』 이후 그는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새로운 의지를 갖게 된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러한 의지는 처음 글을 쓸 때에 품었던 의지와는 성격이 같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는 문단의 중심에 놓인 소설가들을 나열할 때 좀체로 빠지지 않는 유력한 작가의 반열에 올라 있다. 말하자면 아마추어가 아니다. 그만큼 타인들의 반응에 대해 신경도 써야 하고 자신의 처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처지에 놓인 것이다.
어쩌면 어느 분야에서든 나이 서른 살 즈음이면 놓여 있을 그러한 애매한 입장에, 순수한 열정만으로 충만한 것도 아닌, 그렇다고 그러한 열정을 모두 잃었다고 생각하기는 두려운 그러한 어정쩡한 입장에, 나도, 그도 함께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씁쓸한 느낌과 더불어 맥이 조금 빠졌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세계는 변했고, 사람도 변했고, 그래서 할 일이 너무 많은 것을. 우리는 순진한 치기와 세상을 향한 막연한 거부감을 걷어낸 자리에서 다시 출발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