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프기록 ; 달파란과 민성기가 말하는 즐거운 인생
펌프기록의 ‘사무실‘은 경성고등학교 바로 옆에 있었다
사무실이라니! 자유로운 정신으로 똘똘 뭉친 이들에게
‘사무‘라는 말은 너무나 끔찍하고 흉칙한 단어이다
‘테크노 그리니치 빌리지‘라고 해야 될까?
국내에 레이브 파티라는 문화를 심는 데 혁혁한 공헌을 한
이들의 본거지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마음이 설레일 수밖에 없었다
짠~ 문을 열고 들어서자, 차분한 인상의 미녀가 우릴 반긴다
이 미녀는 하이텔 동호회 “GROOVE”의 전 시삽이자, 달파란 씨의 동생인 강미라씨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재미있고 신기한 것들이 가득하다
키보드, 믹서,… 여기가 우리의 한계였다
그 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들이 많았다고 해두자
편해 보이는 소파에 앉아 기다리니, 달파란 씨가 밍기적 거리며 나온다.
좀 지쳐 보이는 모습이었다. 사진을 찍겠다고 하자,
“엇, 세수 안한지 이틀이 넘었어요“라며 거부한다
“아니 뭐 나름대로 괜찮으신데요“라고 말하자
세상에서 제일 황당한 거짓말을 다 듣겠다는 표정이다
물론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하하핫!
살찐 소파에 앉아서 케이블 티비를 보고 있노라니
건너편 방에서 트랜지스터 헤드(민성기) 씨도 나온다
트랜지스터 헤드는 얼마 전 파스텔 뮤직에서 “Housology”라는 앨범을 냈다
백지영의 앨범을 낸 파스텔에서 트랜지스터 헤드 앨범도 낸 것도
내게는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어쨌거나 트랜지스터 헤드는 별로 트랜지스터스럽지 않게
인간적이고 아주 인상좋은 ‘헤드‘의 소유자였다
# 1. 펌프기록? 모여라, 파티하자!
퍼슨웹 : 자 저희는 지금 Housology라는 앨범을 들고 새롭게 나타난 트랜지스터 헤드와 전에는 삐삐롱 스타킹에서 활약하다가 지금은 테크노 디제이로 변신하신 달파란 강기영 씨가 모여 결성한 펌프기록에 와 있습니다. 그럼 펌프기록이라는 단체가 처음에 어떻게 결성되었는지 그 배경 좀…
달파란 : 미라야. 일루 와라.
강미라 : 달파란이 오빠고, 테크노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죠. 처음에는 레이브 파티가 있어야 된다는, 그런 생각 때문에 같이 모였어요. 그래서 아우라소마도 같이 시작하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문스트럭 이라는 파티도 개최를 하게 됐죠.
퍼슨: 문스트럭과 아우라소마는 한국의 레이브 파티를 대표한다고들 하죠? 내부에서 바라보는 파티는 어때요?
강미라 : 사실 처음 시작할 때는 외국적 상황과 한국의 상황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될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이런 저런 선례를 만들면 그게 바탕이 되겠다 싶었죠. 한 1년 동안 하면서 레이브 파티라는 걸 사람들에게 알렸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봐요.
퍼슨 : 펌프기록의 구성원은요?
달 : 많이 있는데, 꼭 정해진 멤버, 정해진 시간에 왔다갔다 하는 사람은 없어요.
퍼슨 : 그럼 펌프기록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
강미라 : 달파란, 트랜지스터 헤드, 디제이 에이샤, 디제이 기준.
달 : 그렇더라도 모두 개인적으로 한다고 봐야죠.
퍼슨 : 개인적으로?
달 : 펌프라는 것은 뭐 행사를 주체한다거나, 개인의 이름이 다 일일이 들어갈 수 없으니까 쓰는 이름이죠. 그런 의미가 더 큰 거 같아. 아직까지 우리도 뭐라고 정해진 게 많지 않으니까, 기획사라고도 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고.
퍼슨 : 회사 보다는 놀이터? 그런 거?
달 : 그런 셈이죠. 뭔가 생기는 곳. 그럴려고 하는 집단인데, 아직 익숙하지 않으니까 자연스럽지는 않군요.
강 : 소속감은 가지지만, 그 때문에 분위기가 경직되지는 않는 곳.
퍼슨 : 요즘 테크노파티를 기획한다는 회사들도 많잖아요?
달 : 회사의 개념으로 키우고 싶지는 않아요. 처음 생각도 그랬고. 이거 만들기 전에도 여러 사람이랑 대화를 했는데, 뭐가 필요할 것 같냐고 물으면 맨 먼저 환경이 필요하다는 대답들이었죠. 그 결과물인 셈인데. 뭐 내가 앨범을 내는데 라벨에 붙일 이름이 필요했던 것도 계기라면 계기일 수 있죠. 그건 말 그대로 계기인 거고. 하여간 이런 공간이 우리들한테도 아직 익숙하지 않은 건 분명해요.
퍼슨 : 그렇다면 이런 분위기가 익숙해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건 있나요?
달 : 그러니까 이런 건데. 회사에서 뭘 하고 놀아야 되나? 노는데 회산가? 아직 우리 사회가 그렇잖아요. 일은 일이고 휴식은 휴식이고. 취미 또 따로 있고. 뭐랄까, 산업사회? 근데 앞으로는 산업사회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라니까, 그런 것 말고 다른 게 필요한 건 사실인데. 점차 이런 집단도 낯익은 곳이 되겠죠.
# 2 테크노가 전부는 아니다
퍼슨 : 펌프기록이 생각하는 테크노란?
달 : 테크노라는 음악은 사실 하나의 텍스트죠. 나는 사실 테크노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테크노라는 걸 주제로 삼은 이유는 상대적으로 우리 나라의 테크노라는 문화가 너무 약하고,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는 것 뿐이었어요. 앞으로 테크노가 어떤 식으로 어떻게 바뀌든 크게 상관 안해요. 문제가 되지도 않구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 과정이 즐겁고, 또 거기서 성취감이나 만족감을 얻을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퍼슨 : 달파란과 트랜지스터헤드가 함께 LP를 만든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런 작업들과 레이브 파티기획 등의 작업들이 펌프의 이상과 일맥상통하는 건가요?
달 : 그렇죠. 돈을 많이 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만들어나가는 방법을 찾는 거. 또 그렇게 하는 거. 그 과정이나 행위 자체가 중요한 거죠. 앨범을 내고 비닐 판을 내고 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뭐 이런 것도 하고 저런 것도 하고, 그런 거죠.
퍼슨 : 민성기씨가 테크노 음악에 빠져들게 된 계기가 뭐죠?
트 : 특별한 계기 같은 건 없고 그냥 어렸을 때부터 계속 들어온 음악이라, 이런 걸 언젠가는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을 뿐이지 뭐, 특별한 계기 같은 건 없어요.
강 : 그러니까 내가 아는 민성기는 원래부터 그게 좋아했던 거야. 자기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던 거지. 이게 어떻게 만들어지는 거고, 이런 소리가 어디서 나오는지 이런 걸 알려고 무진장 노력을 많이 했나봐요. 그래서 한국에서 같이 그런걸 얘기할 수 있는 상대가 너무 없으니까 혼자서 막 찾아 돌아다닌 거죠. 아, 이런 거 이런 게 있고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이러다 지금까지 온 거구. 그러니까 사실은 신인 아닌 신인, 뭐 그런 거죠.
퍼슨 : 대부분의 사람들, 그러니까 펌프기록에서 주최한 레이브파티에 참석했던 사람들에게는, 펌프기록에서는 테크노만 한다, 그런 고정관념이 있거든요?
달 : 당연하죠. 우리가 뭘 한다고 얘기를 안 했으니까. 사람들은 단순하게 표현되는 것만 보고 그 자체만 얘기하지, 그 속까지 들어가고 싶어하는 건 아주 지독한 사람들 아니면 힘들죠. 사람들이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어하지는 않죠. 작년까지는 레이브에 힘을 쏟아서 그렇게 비쳐지는 걸 테고. 올해부터는 다시 새로운 시도도 할 건데. 만약에 어필이 된다면 사람들이, 어? 저런 거도 하네, 라고 생각하겠죠?
퍼슨: 그런 걸 좀 불식시켜주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달 : 난 상관없어요. 오히려 난 그런 식의 상황을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식으로 알려졌다가 우리가 또 딴 거 하면 더 재미있을 수도 있거든. 그래서 괜찮아요.
퍼슨 : 펌프기록은 특별한 것을 하고 싶은 사람들 모두에게 문이 활짝 열려 있다?
달 : 대신 아무나는 안 받아요. 봐서 도움이 되겠다는 사람만 받을거에요. (웃음)
퍼슨: 그럼 어떻게 되어서 지금의 구성원들이 하나씩 모이게 됐나요?
달 : 그 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어찌어찌 알게 된 사람들 중에 서로 얘기가 통하는 사람들이 놀러오면, 너 해라, 나 못한다, 이러면서 모이게 된거죠.
# 3 질주하는 소수와 느려터진 매체
퍼슨 : 달파란씨는 이전에 시나위에서 활동했었고, 삐삐롱스타킹이라는 밴드도 결성해서 활동했었죠? 지금은 매체에서 ‘테크노 전도사‘로 불려지는데. 달파란씨가 보기에 한국에서 테크노라는 문화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엇길로 새는 건 아닌지? 어떻게 보세요?
달 : 그건 테크노뿐만이 아니구요. 열심히 하고 있는데 딴 방향으로 흘려가고 있는 게 한 두개가 아녜요. 정확하게 전달된다거나 적절한 속도로 전파된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죠.
퍼슨 : 그렇게 엇길로 새는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달 : 우선 사람들이 정확한 정보에 대한 관심이나 노출이 거의 없다고 봐요. 특히 우리 나라,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는 TV나 몇몇 주류 매체가 발휘하는 영향력이 엄청나죠. 그 매체들이 잘하면 좋은데, 내가 보기에는 전혀 안 그래요. 내용이 없거든.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매체에 거의 하루종일 노출되어 있어서 다른 걸 취할 틈이 없잖아요? 그래서 다양해질 수 없는 거고. 커다란 흐름 이외에 작은 흐름들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관심도 없고 그 작은 흐름들이 퍼뜨려 질 수 있는 길도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퍼슨 : 다양한 개인적 차원에서는 많은 결과물이 나오고 있는데 매체가 흡수를 안 해준다는 건가요?
달 : 매체가 그걸 흡수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게 정확하겠죠.
퍼슨 : 그럼 펌프기록이 소수문화운동집단, 다시 말해 그런 문화운동의 촉매작용이 되길 바란다는 거군요.
달 : 그렇게 되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런 것들이 대규모일 필요는 없다구 봐요. 오히려 이 정도 규모로 그 숫자가 많아지면 좋겠죠.
트 : 전 도시의 사막화라는 걸 생각해요. 도시 환경의 악화라는 것 말고도 문화적인 창조 활동이 메말라가는 것 말이죠. 약간의 흙에 잡초라도 자랄 수 있는 공간을 참지 못하는 거, 일방적으로 콘크리트로 다 깔아버린단 말야. 우리가 이런 작업을 하면서 부딪혀야 하는 어려움에 대해서 지난 1년간 많이 생각을 했어요. 물질적 빈곤이 정신적 초조를 부르고, 삶의 모델은 국가가 제시하는 대로 따라간단말예요. 그거 바꾸기 정말 힘들거든요. 어찌보면 총체적 빈곤이라고 해야할까. 인적인 인프라나 정보가 다양한 방면에 퍼져 있는게 아니라 좁게 집중되어 있거든요. 걱정 할만하죠. 어떤 책에서 본 건데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했을 때는 동조세력도 많고 나름대로 지하조직도 튼튼했기 때문에 혁명이 완수될 수 있었대요. 그런데 남미 같은 곳은 그만한 지적 인프라도 없고 노선이나 방향 같은 것도 없으니까, 그냥 그렇게 살아야 되나보다 하는 인디오나 농민들한테 혁명사업을 가장 먼저 시도했던 게 단파라디오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였죠. 산이 많은 지형이니까 아무래도 높은 데서 송출하면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으니까. 우리 입장도 지금은 쇼를 만들고 앨범을 만들고 파티를 기획하고 그러는 게 아니라, 사실은 라디오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싶은 거죠.
퍼슨 : 문화혁명을 꿈꾼다?
트 : 그건 아니구요. 혁명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어요. 앞으로 거대한 바람 같은건 일어나지도 않을 거고. 사람들이 그만큼 약아졌거든요. 두 개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보다는 백 개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게 훨씬 낫잖아요? 그 백 개 중 하나의 집단이 되고 싶은 거죠. 영국의 멘체스터 사운드니 디트로이트 사운드 같은 도시 단위의 문화 집단도 그 중의 하나일테고. 난 서울이라는 공간 내에서도 이런 시도를 하는 사람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데요. 한국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세계로 진출하는 그런 것도 아니죠. 다만 이 서울 안에서 어떤 하나의 조류를 형성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해요.
퍼슨 : 이번 앨범이 첫 앨범이잖아요. 작업하면서 어떤 걸 얘기하고 싶었어요?
트 : 민성기라는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을 그냥 만들었을 뿐이에요. 듣는 사람을 위한다기보다는 내 자신을 위한 음악. 입력레벨을 넘어서 듣는 사람이 귀가 좀 아파도 만드는 내가 재미있면 그만이죠.
# 4 싫증이 나면 어쩌죠?
퍼슨 : 앞으로 성기 씨도 다른 관심사가 생기면 굳이 테크노를 고집하지 않고 그쪽으로 이동할 수도 있어요?
트 : 전 좀 달라요. 음악은 계속 할거예요. 다른 게 생길 수도 있지만, 음악은 변함없이 할 거예요. 음악에 대해서 내가 갖고 있는 느낌은 계속 유지할려구요.
퍼슨 : 펌프기록에서 제일 중요한 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거잖아요. Aphex Twin 도 기계가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너무 궁금해서 기계 속에 한번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게 내가 음악을 하고 싶었던 이유다, 그런데 이제 다 알았으니 이제 은퇴한다, 라고 했잖아요. 이런 식으로 정말 좋아서 하고 있는 일들이 언젠가 싫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트 : 혹시 오즈마 계획이라고 들어봤어요? 왜 우주에 계속 신호를 쏴서 우주인들이 들으라고 일방적으로 송신하는 거. 음악은 내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오즈마 계획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내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런 음악을 함께 한다는 건 불가능하더라구요. 처음엔 가능하겠다 싶었는데. 너무 짧은 생각이었죠. 암튼 죽을 때까지 난 내가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은 메세지들이 있을 거다 생각하는데, 그걸 계속 보내기 위한 게 내 음악이예요.
퍼슨 : 댓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는 좋은 의도라고도 할 수 있지만, 한편에서는 나르시시즘이라고 비판을 할 수도 있겠군요?
트 : 나 자신의 객관화도 물론 필요하죠. 내가 골방에 틀어박혀서 무슨 사운드라고 만들어낸다면, 나랑 김벌레씨나 김도향씨같이 명상 음악하는 사람들이랑 다를 것도 없겠죠? 그래서 나도 나름대로의 보편성을 얻고는 싶어요.
퍼슨 : 보편성 ?
트 : 지금 서구의 세련된 사운드나 세련된 템포들은 지켜주면서 그 내부에서 내가 담고 싶은 걸 담는다, 이 정도 아닐까요? 남들이 볼 땐 어떨지 모르지만, 난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작업하려고 노력하죠.
퍼슨 : (웃으면서) 그럼 달파란이 객관적으로 보는 트랜지스터 헤드는 어떤가요?
달 : (웃으면서) 뭐랄까. 밖의 영향을 덜 받으면서 자기 관심사를 해 내는 거. 중요한 건 뭘 하는가가 아니라 그걸 하면서 과정 자체를 즐기는 거겠죠? 이 인터뷰도 그렇다고 보는데?
퍼슨 : 그럼, 달파란은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작업이라든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만족하나요?
달 : 그렇죠. 지금 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구요. 그 안에서 일어나는 분노라는 건 아주 사소해요. 그냥 친구들끼리 싸움하는 그런 정도죠.
강 : 펌프기록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마음을 조금만 급하게 먹어도 일이 힘들어져요. 그렇다고 뭐, 마냥 때만 기다리고 있는건 아니고. 준비를 하되 상황에 맞춰서, 우리가 하는 일들이 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을 항상 해요. 사실 이런 인터뷰도 펌프기록이 한 5년 이상 지나가고 난 다음에 나올 수 있는 얘기들이라고 생각되거든요.
퍼슨 : 지금까지 말한 걸로 보면, 펌프기록은 이 사회의 문화에 대해서 일종의 책임감을 지니고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달 : 그렇지만 난 책임감 같은걸 느끼는 분위기 감추려고 노력해요. 그러면 오히려 우리가 하는 일에 방해가 될 수도 있거든요. 책임감 때문이 아니라 그냥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 계속 많이지고 모일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거죠. 자칫 중압감이 거대자본에 대한 유혹으로 빠질 수도 있으니까.
퍼슨 : 그렇지만 자본과의 관계를 전혀 외면할 수는 없을 텐데?
달 : 그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자본이 우리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자본을 움직이는 시대가 올 거라고 봐요. 사실 이런 작업들이 단돈 10원이라도 자본이 투하되지 않으면 안되잖아요? 그걸 완전히 무시한다는 건 우습죠. 그럴려면 나라가 되집어져야 되는 건데. 그러니까 돈 때문에 자기 작업이 휘둘린다는 건 경계해야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본을 무시할 것 까지는 없다고 봐요. 하여간, 여우처럼 생각하고 움직일 필요가 있는데…
퍼슨 : 마지막으로 펌프기록을 한번이라도 들어본 사람들, 펌프의 작업의 결과물에 한번이라도 접해본 사람들, 그리고 펌프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씩 해주세요.
달 : 앞으로 많이 기대해주세요. 더 재미있는 일들이 많을 겁니다.
트 : 사회전체가 만담화 되가는 경향이 있는거 같아요. 요새는 TV보니까 탤런트, 가수, 개그맨, 아나운서 할 거 없이 다들 웃기는 얘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거 같더라구요. 그런 거 좀 경계해야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달 : 아니, 웃겨도 좋은데 웃기는 질이 너무 좀 이상한거 같아요. (다들 웃음) 나 어렸을 때 미국 코메디를 많이 봤거든요. 요즘도 다시 하는거 같은데 그땐 잘 몰랐지만 지금은, 이렇게 말하면 쟤 또 건방지다고 말 들을지도 모르지만, 지적으로 충족을 시켜주는 그런 게 있어요. 근데 요즘 우리나라 연예인들은 좀 짜증나요. 단순하게 웃기는거 같아.
강 : 지속적으로 지켜봐 주시고 항상 관심 가져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땡큐!
문을 나서고 아까 내려왔던 계단을 이제는 올라가며, 바깥의 밝은 세상을 만나며 드는 생각. 지하에서 벌어지는 열정의 기록에 무심한 지상은 언제나 관심을 갖게 될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 지하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음을 이미 확인하지 않았던가. 변방의 북소리가 사람을 끌어 모으는 일,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