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길아. 우리도 낚시대 빌려서 낚시나 할까나?”
“난 낚시 같은 건 절대 못해. 지겨워서 그거 어떻게 기다려.”
음. 그것도 역시 나랑 똑같군.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운길이는 능숙한 낚시꾼이었다.
1.우리는 물왕리로 간다
4월 13일 아침 일찍, 투표장으로 가는 대신 나는 신도림역으로 향한다. 8시 45분, 약속 시간 보다 15분이 늦었다. 이미 봉고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운길이가 환하게 웃는다. 어여 오라고 말하는 걸까. 멀리서 보건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늦었다고 투덜대지 않는 운길이가 참 편하다. 불쑥 투표 얘기부터 물었다. 오늘 같은 날 첫인사는 뭐니해도 선거 얘기 아닌가.
– 투표했니, 운길아?
– 아니. 관심 없어. 형은 했어?
나? 관심은 많지만 찍을 놈이 없어 애써 외면했다. 정당명부제라도 있었으면 모를까. 왜 귀중한 내 한 표를 어줍짢은 놈들한테 주나. 정말 관심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부천에 사 운길이 동네에는 김문수가 나왔단다. 나라면 했을까? 아마 안했을 거다.
– 근데 오늘 우리 어디 가서 장사하냐?
– 어디로 갈까? 그냥 오늘 하루 놀지 뭐.
얼라? 이 무슨 소리야. 오늘 인터뷰 주제가 “내 친구 노점”이야, 이 녀석아. 내 그렇게 말했건만. 운길이 말이 원래는 오늘 도림동에서 할려고 했단다. 근데 나 데리러 오는 길에 맘이 바꼈단다. 오늘 한적한 곳에서 쉬는 게 좋겠다고.
– 야 너 장사 그렇게 해도 되냐?
– 어때. 어제도 장사 안하고 그냥 놀았어.
운길이는 ‘그냥’이라는 말을 참 자주 한다.
– 왜?
– 몰라. 난 하기 싫으면 때려 죽여도 안하거든.
– 뭐 하고 놀았는데? 대낮부터 술 마셨냐?
– 아니. 저수지에서 그냥 물보고 있었어. 맥주 캔 마시다 잠자다…
그냥 하기 싫더란다. 그래서 시흥에 있는 저수지에서 봉고차 대 놓고 멍하니 물만 보고 있었단다. 가끔 낚시하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그것도 안면 있는 건빵장수가 볼까봐 한적한 데 차 대고 ‘놀았단다’. 순간, 28살 운길이의 얼굴에 외로움이 그림처럼 묻어난다.
– 야 그래도 오늘 장사 해야 돼, 임마.
– 하긴 하지. 별로 장사가 안 돼서 그렇지.
– 어제는 어디서 했는데?
– 안양. 요즘 계절 바뀌는 때라 잘 안되네…
– 그래서 오늘은 어디로 가냐?
– 어제 갔던 데. 시흥 물항리.
우리는 운길이가 살고 있는 부천을 다시 지나 시흥으로 간다. 집 근처 주차장에서 고개를 힐끗 돌리더니 매형들 나갔네? 그런다. 매형들은 휴일이라 낚시 갔단다. 사실은 운길이도 같이 갈려고 했단다. 나 때문에 엄한 장사나가는 셈이다.
큰 매형, 작은 매형 모두 노점을 한다. 운길이보다 규모도 크고 작은 누나는 공장도 한단다. 요즘 사업 확장을 할까 말까 고민 중이다. 매형이랑 운길이 모두 의류쪽이다. 운길이가 노점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다 매형들이 노하우를 가르쳐줬기 때문이다.
– 다들 내가 노점 하는 거 놀랍대. 처음엔 나도 안할려고 했거든.
– 언제부터 했지?
– 한 4개월 됐나? 재작년부터 해보라고 했는데, 정말 하기 싫었거든.
– 근데 왜 시작했냐?
– 직장 못 구하고 계속 노는 것도 지겹잖아. 이력서 쓰는 것도 지겹고.
재작년까지 운길이는 문공사라는 출판사 창고에서 출,반납되는 책을 담당했다. IMF로 감원 바람이 불 때, 알아서 나왔단다. 알고보니 자기와는 관계없는 감원이었지만. 그러다 고향에서 농사짓던 형이 손을 다치는 바람에, 한 일년 농사 지으러 내려갔다. 운길이는, 농사는 죽어도 못한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어, 이놈 나하고 완전히 똑같네. 하고 싶은 것 보다 하기 싫은 거, 못하는 거 투성이잖아. 그리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단다. 똑같은 이력서만 축 내는 생활이 계속 됐고, 결국엔 용돈이나 벌자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이 일이다.
2. 운길이는 낚시꾼
10시.
물왕리 저수지는 꽤 컸다. 여의도 광장만할까? 날 위해 운길이는 저수지를 한 바퀴 도는데 낚시꾼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을 보면서 운길이랑 나는 괜시리 동질감 같은 걸 느꼈다.
– 저 사람들도 투표 안했겠지, 응?
– 아, 텐트 봐. 어제부터 있었던 게지.
– 그렇지? 참 많지 응?
내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운길이는 가족끼리 와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다. 부럽니, 운길아? 멋쩍은 운길이는 부러운 건 아니라고 했다. 그냥 보기 좋단다. 우리는 비포장된 저수지 주변을 천천히 구경삼아 돌았고, 거기엔 즐비한 라이브 카페가 연인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난 여기 오는 연인들이 부럽단다, 운길아.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운길이가 이런 카페에서는 커피 값이 얼마나 하는지 아냐고 물었다. 몰라. 가본 적이 없거든. 운길이도 모른단다. 쨔식. 그러면서 왜 물어봐. 카페를 바라보는 건너편으로 국도가 지나간다. 우리가 오늘 장사를 할 곳은 그 국도변이다.
-왜 도로 옆에 치는 거냐?
– 내 손님들은 전부 남자야. 낚시 하러 온 사람들이 운동복 사겠어? 운전사나 영업 사원들이 주로 사거든. 츄리닝 보면 자기도 집에 가서 이거 입어야지 하는 맘이 생기잖아.
– 아줌마들은 안 사냐?
– 와도 귀찮아. 괜히 꼬치꼬치 따져 묻기나 하고.
– 그럼 아가씨들도 안 오겠네?
아쉬워 하는 날 보더니, 놀러온 아가씨들이나 잘 보라고 했다. 간혹 가다 학생애들이 사러 오기도 한단다. 애들한텐 좀 싸게 준다나 어쩌다나. 하긴 맘 내키는 대로 부르는 게 정찰이 라니까. 겨울엔 꽤 쏠쏠하게 남는다고 했다. 몇 벌만 팔면 하루 장사 다 한 셈이라는데, 요즘엔 신통치 않단다. 오늘 나도 오고 그랬으니까 잘 팔려야 할텐데… 국도변, 폐허가 된 어느 음식점 앞 공터에서 한 20분 걸려 가게를 꾸몄다. 나도 돕는다고 돕 긴 했는데 별로 도움이 안되는 눈치다. 운길이가 직접 만든 쇠옷걸이를 쭉 연결하고 나서 츄리닝 20여벌을 건다. 그리고 나서 바람에 날리지 말라고 옷 사이로 끈을 댄다. 10여미터 떨어진 곳에 몸통이 두툼한 옷걸이에 츄리닝을 입혀 놓았다. 마지막으로 비닐봉투와 총채를 꺼내 놓으니 장사 준비는 다 끝났다. 이제 뭐 하나?
– 운길아 우리도 낚시대 빌려서 낚시나 할까나?
– 난 낚시 같은 건 절대 못해. 지겨워서 그거 어떻게 기다려.
음. 그것도 역시 나랑 똑같군.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운길이는 능숙한 낚시꾼이었다.
– 이제 뭐 하냐?
– 그냥 기다리는 거지 뭐.
– 손님 언제 오는데?
– 올 때까지 기다려.
– 뭐 하면서 기다리냐?
– 술이나 한잔 하는 거지. 아님 자든가.
아직 11시도 안됐는데 무슨 술이냐? 그렇지만 난 시키지도 않았는데 근처 가게에 가서 필름 이랑 맥주 캔이랑 사왔다. 내가 봐도 그냥 있으면 심심할 것 같았거든. 맥주 사러 갔다 온 사이 트럭 하나가 왔다. 옛날 보리건빵을 파는 트럭이었다. 운길이가 반갑게 맞는다. 운길이는 건빵장시라고 불렀다. 해군 의병대 출신이라는 꺾다리 아저씨는 운길이를 츄리닝이라고 불렀다. 그 건빵장시 아저씨는 10분도 안 돼 가게를 차리더니 우리쪽으로 온다. 어느새 운길이가 가게를 다녀왔다. 내가 멀쭘하니 서 있는 사이 벌써 봉고차에는 술판이 차려졌다. 둘 다 익숙한 눈치였다. 맥주 캔 하나 비우고 소주 몇 잔 먹었더니 금새 불콰해졌다. 이것도 괜찮군. 저수지 위로 부는 바람이 살갑게 다가온다. 운길이와 나는 한시간 넘게 입질을 기다렸 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 사이 건빵장시는 여러 봉투 팔았다.
– 운길아, 우린 왜 아무도 안오냐? 저 아저씬 꽤 파는구만.
– 괜찮아. 저거 한 봉투 팔아봐야 천원 남아.
저 사람 열 개 넘게 팔아봐야 나 하나 파는거 못당해.
히히. 이 녀석, 무지막지한 폭리를 취하는구나. 하여간 운길이는 느긋했다. 방위출신인 운길이와 나는, 참 운길이는 단기사병으로 쓰라고 우겼다, 건빵장시의 의장대 자랑을 약간은 지겨울 정도로 들어야 했다. 행사 때문에 청와대도 몇 번인가 갔다 왔단다. 담배에 청와대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몇 잔 더 들어가니까 무지무지 졸립다. 몇 번인가 지나 가는 사람을 손님으로 착각한 운길이가 들락날락 거렸지만 결국 입질은 헛질이었다. 인터뷰 좋지만 우선 한숨 자야겠다 싶어 차 안에 누웠다. 이번엔 바람이 기억조차 희미한 누군가의 손길을 흉내낸다.
– 에잇, 간지러워.
3. 내 친구 노점에는 손님이 없다.
1시 40분.
이런. 내가 놀란 건 시간이 너무 흘렀기 때문이 아니라 점심 시간을 훌쩍 넘겼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좀 팔았냐고 물었더니 그냥 웃는다. 이런 이런. 힘내라는 의미로 내가 호기를 부렸다. 가자, 점심 사줄께. 그랬더니 또 웃는다. 엇, 날 비웃네? 짜장면 정도는 사줄 수 있지, 뭐 이런 심뽀였다. 근데 막상 가자니 옆에 앉은 건빵장시가 맘에 걸렸다. 아니나 다를까 운길이가 같이 가자고 부른다. 혹시 도시락 싸오지 않았을까? 난 그런 추측도 해보았지만, 아까 얘기로는 혼자 산다고 했다.
까짓껏 짜장면 한 그릇 더 사지 뭐. 배달 안되나? 그런데 운길이는 건빵 장시를 보더니 이상한 말을 하는 거였다. 같이 가요, 오리탕이나 하나 먹게요. 둘이서는 다 못 먹어요. 어, 운길아. 오리탕이라니…
운길이는 한사코 자기가 산다고 우겼다. 한 벌이라도 팔았으면 못이기는 척 하면서 그러라고 했을 텐데. 미안해서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신용카드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거지 뭐. 운길이는 저녁에 자기가 술 한잔 사겠다고 했다. 또 먹냐? 매운탕 소짜 하나 시켜서 소주 한 병 금방 해치웠는데? 오늘처럼 술 먹다가는 장사하기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내가 약간은 다그쳤던가? 운길이는 웃으면서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그렇단다. 눈물 날라, 쨔샤. 낚시 하러 온 사람들이 꽤 늘었다. 건너편에서는 자가용들이 줄을 지어 카페로 들어간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 친구 노점에는 손님이 없다.
운길이가 건빵장시에게서 간이용 의자를 두 개 빌어왔다. 우리는 가게 뒷 편, 그러니까 츄리닝 뒤에 숨어 앉았다. 운길이 옛날 얘기나 들어볼까 하고.
– 고향이 어디지?
– 전남 순창
– 서울은 언제 올라왔는데?
– 중 3때 추석 지나고.
– 가출한 거지?
– 그 나이면 왜 학교 가기 싫잖아. 그날도 그냥 학교 하루 제낀 거였는데, 친구 하나랑 좀 멀리 가서 놀자 해서 부산에 갔거든. 근데 날이 지나간거야. 집에 가기 겁나니까 아예 서울로 올라온 거지 뭐.
계획도 없이 서울에 온 운길이 일행에게 무슨 돈이 있었으랴. 부산에서 서울로 온 날 운길이는 누나를 찾았다. 누나는 운길이를 순창행 고속버스에 태웠다. 그런데 마침 바쁜 일이 있어서 버스에 올라타는 것만 보고 돌아섰다. 버스가 출발하는 걸 못참고 이네가 다시 일어섰 다. 막상 돌아가려니 겁이 나더란다. 결국 운길이네는 순창 가는 고속버스 대신 서울 시내버스를 타고 만다. 어디로 가는 버스인채도 모르고. 그게 장안동 행이었다. 운길이의 서울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 와서 뭐 했냐?
– 지갑 만드는 공장 들어갔어. 장안동에 있었는데, 나이 속이고 들어갔지.
– 얼마나 받았는데?
– 15만원정도 받았던가. 그래도 사장님이 마음이 좋았어.
– 애들인데도 취직이 됐네?
– 그땐 쉬웠어. 사람이 모자라니까 다 받아줬어.
– 생활은?
– 낮엔 일하고 밤엔 기숙사에 가만히 있었지. 같이 올라왔던 친구놈 말고 달리 아는 사람이 있나? 주말엔 거기 있던 형들 따라 다니긴 했지만서도.
첫 가출은 다섯 달만에 끝났다. 친구가 가족한테 연락하는 바람에 누나가 찾아온 것이다.
– 집에 가서는 다시 학교 다닌거야?
– 집에 잡혀간 게 졸업식 며칠 앞이었는데, 졸업은 시켜주데? 앨범이랑 졸업장도 받았어. 시험도 안봤는데, 집에서 손써서 고등학교 입학도 됐고.
– 다른 친구들도 가출 많이 했니?
– 원래 우리 나가기 전까지는 조용했는디… 우리 이년 선배 한 명이 한 이삼일 가출했었고, 일년 선배는 쪼까 늘었구. 우리 동기 중에서는 우리가 맨 처음 나갔거든? 근데 와서 얘기 들어보니까 다들 이삼주씩은 갔다왔다 그러더라구. 한 30프로는 될껄.
– 니네가 불을 질렀구나. 고등학교는 잘 다녔냐?
– 아니지. 하루 가고 나니까 안되겠더라고. 그래서 그날밤에 말했어. 도저히 못다니겠다구. 그리고 나서는 서울에 있는 누나네 올라온 거야.
– 그래도 장안동에서 지낼 때가 좋았나보지?
– 뭘 해야겠다는 건 아니고. 무작정 동네에 있기 싫다, 떠나자 그런 거였어.
– 다시 서울에 올라와서는 뭐 했니?
– 내가 올라오고 나서 한 사흘 있으니까. 왜 나랑 같이 가출했던 그 친구놈이 올라오더라구. 지도 한 이틀 학교 나갔는데, 내가 학교도 안나오고 그러니까 물어봤나봐. 윗동네 아랫 동네니까 금방 소문나잖아. 연락이 온거야. 저도 서울 왔다구. 헤헤헤. 걔랑 놀았지 뭐.
– 다시 취직한 건 아니구?
– 집에서 놀다가, 우리 검정고시 볼까 하고 장난으로 말했는데 진짜로 시험 봤어. 그 다음해 6월인가 8월에. 시험 됐어도 따로 할 일이 없잖아. 공부하기 싫었으니까 대학 간다는 건 꿈도 안꿨고. 그러다 기술이나 배울까 어쩔까 하다가 직훈이나 가자, 그래서 선반 배웠지.
– 직업훈련소 말이지? 거기 생활은 어땠냐?
– 한 일년 있었는데, 군대식이었어. 기숙사 생활 말야. 평일날은 못나가고 주말만 외출되는 식이지.
– 그래도 거기서는 도망가지 않았네?
– 당연하지. 기술 배울라고 들어갔응께. 그래도 재밌었어. 정수 직훈 다녔거든. 70년돈가 72년돈가 생긴 덴데, 기능올림픽 나갈래면 국가대표 뽑잖아, 그 사람들이 연습하는 데야.
기술 배우는 재미는 있었어. 그 재미로 버틴거지.
– 나오면 취직은 바로 됐니?
– 일년 다니면 필요한 자격증 따고, 취업 바로 돼. 난 선반하고 가공 자격증 땄지
4. 스무살, 구로에서
4시가 가까웠다. 운길이와 나는 시종 킬킬 대며 이야기를 했고, 가끔씩 근처 마을회관으로 투표하러 가는 사람들이 지나가곤 했다. 어느 틈엔가 건빵장시가 우리 곁에 와 있었는데, 츄리닝, 하며 부른다. 손님이 온 것이다. 드디어 한 벌 팔았다.
– 처음 취직한 데가 어디냐?
– 구로 1공단에 있는 한국 마벨이라는 회사야. 카 오디오 만드는 데였지. 내가 있던 부서는 금형부라고, 카셋트 내부에 있는 철판 찍어내는 일했어.
– 규모는?
– 중소기업이었거든. 다 해서 천오백명 정도 됐나?
– 할만 하데?
– 직훈 들어가기 전에는, 자격증 따면 길이 확 트인다, 그렇게 생각했거든. 근데 선배들이 직훈 와서 해주는 얘기가 안그렇더라구. 자격증이라고 해 봐야 운전면허증 같은 거니까. 어쨌든 도면대로 가공해주는 거였는데, 매일같이 똑같은 모양으로 깍아내니까 좀 지겹기도 했지.
– 거긴 언제까지 다녔는데?
– 한 2년 정도 다녔나? 실제로 일한 건 일년?
– 무슨 말이야?
– 말하자면 짤린 거 비슷한데. 회사가 시끄러워지니까 시골에 연락해서 부모님이 올라오셨지.
– 좀 더 설명해봐. 뭔 말이야?
– 진짜 꼬치꼬치 따져 묻네. 그냥 넘어가지…
운길이는 이 대목에서 한참을 횡설수설했다. 잊어 버린 걸까? 누구에게나 그런 일 한 두 가지 정도 있지 않을까? 연애든 뭐든. 불에 덴 것 같이 호된 경험. 어쩌면 운길이가 그 시절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 91년도였는데, 내가 다닐 무렵 그 지역사람들이 마벨 노조 바꿀려고 많이 들어와 있었어. 간판만 있는 노조라 사람들이 벼르고 들어왔던가봐. 그 전에는 그렇게 들어오기도 힘들었대. 입사절차가 워낙 까다로웠다지? 근데 이상하게 내가 들어갈 무렵에는 건성으로 한거야. 내가 아는 형은 교회에 다닌다고 그러니까 주기도문 외워보라고 그러드래. 그래서 그거 외우고 들어왔다더라구.
– 너도 노조에 대해서 알고 있었냐? 이제 갓 들어간 놈이?
– 직훈에서 노조 얘길 대충 들었거든.
– 누구한테?
– 거기 선생한테서. 들어간 지 얼마 안돼서였는데, 우리 금형부에 있는 형한테 우연히 노조 에 대해서 물어봤어.
– 뭐라고 물어봤는데?
– 아, 난 우리 회사에 어용노조가 있는지도 몰랐구. 그냥 직훈에서 들은 얘기 물어본 거 였지. 같은 부서에서 선반 밀링 하는 형이었는데, 점심시간에 족구 안하고 앉아 있길래 무슨 이야긴가 하다가 그냥 물어봤지. 근데 그 형이 깜짝 놀라는거야. 자기네가 들통난 줄 알구. 나중에 술 한 잔 하자고 하대? 그래서 알게 됐어. 얘기 듣고 난 내 또래 네 명이랑 모임 만들고.
– 무슨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 민노추.
– 민주노조 추진위원회?
– 응. 난 따로 그 형한테 혼자서 교육받고, 친구들이랑은 철학이랑 경제학이랑 얇은 책으로 공부하고 그랬지.
– 비공개조직이었을테지?
– 한 스물 다섯 명 정도 됐는데, 소모임끼리 서로 몰랐어. 민노추 뜨기 전 한 달 전쯤 야유회 갔는데 그때 처음 모두 모였지.
내가 봐도 운길이는 투사 스타일은 아니다. 싸움보다는 아마 사람과 술이 좋았던 게 아닐까? 어쨌든 운길이는 학습을 하면서 조금씩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관리자들의 대우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 한다. 소모임을 한 일 년쯤 했다. 민주노조추진위가 공개 된 것은 그 무렵이었다.
– 민노추가 반공개로 띄워졌어. 위원장 뽑고 간부들 다 뽑고. 그랬는데, 산업체 야간학교 다니던 학생이 쓰러진 거야. 그러면서 이상하게 일이 급진전 돼부렀어.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갑자기.
– 동료들 반응은 어땠는데?
– 좋았지. 식당에서 가입원서를 받았는데 엄청 많이 받았어. 한 200장 가까이 받았나?
– 회사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텐데?
– 떠가지고 며칠 있다가 회사에서 알았나봐. 관리자들이 출근을 막더라구.
– 가입원서 쓴 사람을 전부?
– 처음에는 그랬거든. 회사랑 협상을 했지. 각서를 쓰라고 하더라구? 근데 다 쓰고 나니까 골라낸 거야. 맨 처음 스물 몇 명만.
– 너도 거기 낀 거네?
– 응. 금형과가 중심이었거든. 그래도 나머지 사람들이 같이 안들어가고, 우리 들여보내면 들어간다고 하면서 밀고 들어갔지. 그런데 들어가도 우리는 일하러 갈 수 있나? 그 사람들은 다 일하러 가고, 우린 그냥 잔디밭에 앉아 있다가 나왔지. 점심시간 되면 사람들이 우리 볼라고 정문 앞으로 쫙 모여. 그동안 이런 일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한테 얘기해주고…
– 얼마나 계속 그랬는데?
– 꽤 오랫동안 그랬어. 한 일년 정도 했지.
– 먹고 사는 것도 문제였을 텐데?
– 처음에는 출근투쟁하고 하루종일 정문 앞에서 농성하다가, 나중에는 출근투쟁하고 각자 일하러 가는 식이었지. 그러다 아예 열 몇 명이 같이 살아버렸어, 집 하나를 전세내서.
5. 내 꿈은 날마다 바뀐다
계획과 달리 시작된 싸움은 회사의 반격으로 주춤하고 지리한 소모전 양상이 되어 버렸다. 운길이는 그 중에서도 가장 막내였다. 겁이 나더란다. 관리자들이 쫓아내면 담장을 넘고, 또 쫓겨나면 정문 앞에 주저앉아 농성을 했다. 그래도 회사 동료들과 주변 노동자들의 도움으로 일 년을 버텼다. 총무과 사무직들도 나중에는 간부들 모르게 계란 같은 걸 사서 건네주곤 했다.
그렇지만 결국 운길이는 시골에서 올라온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다시 순창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한 달 후 다시 올라와서 새로 직장을 얻었다.
마찌꼬빠에서 한 일년 반 정도 기계를 잡다가 생산기술연구원에서 자동화설계를 한 육개월 정도 배우기도 했다. 그러다 ‘국가의 부름’을 받았다. 제대 후 취직한 곳은 웅진출판사였다.
– 왜 갑자기 출판사에 들어갔냐?
– 선반잡기 싫더라고. 처음에는 기계계통으로 들어갈려고 이력서 내고 면접도 보러 갔거든? 근데 선반 돌아가는 거 보니까 사람 환장하겠더라고. 3년 6개월 했는데. 다른 거 배워보자 그런 맘으로 어영부영하다 웅진 들어간거지.
– 웅진은 얼마나 다녔지?
– 임시직으로 한 일년?
– 기계 다룰 때랑 많이 다르디?
– 친구들이 많아서 재밌었어. 색다르기도 했고. 몸도 기계할 때보다 힘들지 않고.
– 뭐하는 일이었는데?
– 반품 들어오는 거 정리하는 일이었지. 일 없을 땐 신문도 보고 책도 보고, 편했지.
운길이의 직장 생활은 문공사라는 출판사에서 끝난다. IMF로 직장을 잃었을 때는 집에 내 려가서 일년 동안 농사를 거들었다. 나는 물론이고 운길이 자신도 언제 뭐 했고 언제 그만 두었지는 헤아리는 게 너무 힘들었다. 중학교 이래로 어느 일도 3년을 넘기지 못한 탓이다. 학교만 다닌 나와는 정반대다. 그래서 운길이는 이력서 쓸 때도 한참을 계산해야 했단다.
– 형, 머리 안아파? 뭔 인터뷰를 그렇게 오래해?
– 술이 덜 깼나. 나도 머리 아프다, 야. 근데 손님 진짜 안오네?
– 슬슬 걷자구. 가서 술이나 한잔 혀.
결국 운길이는 그날 달랑 츄리닝 한 벌 팔았다. 자리도 자리지만, 나랑 운길이가 손님이 오건 말건 딴청을 부리고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노점을 펼 때 보다 걷는 게 훨씬 빨랐다. 난 총채를 들고 츄리닝에 달라붙은 먼지를 털었다. 운길이가 잽싼 솜씨로 옷걸이며 옷들을 정리했다.
5시가 조금 넘었다. 건빵장수는 해 떨어질 때까지 계속 할 모양이다. 얼마나 팔았을까? 운길이가 남아 있는 건빵을 헤아려 보더니 한 5만원 정도 벌었을 거라고 한다. 건빵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건너편 카페촌에도 자가용들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한다.
–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 이거 계속 해야지. 나이 먹어서도 계속 할 거 같지는 않지만.
– 요즘엔 장사 안된다며?
– 레져 용품으로 바꿀까 하고. 준비할려면 한 백만원 든다고 하더라고.
– 착실히 모아서 장가도 가야지?
– 그래야 되는데 잉. 어쩔 땐 일주일도 내리 노니까.
그럴 법도 하다. 분주하게 손님이 오고 가는 것도 아니고, 강태공 낚시 드리운 것처럼 손님이 오길 마냥 기다리려니 얼마나 지루한가?
– 그러니까 술이 필요하지.
– 매일 먹냐?
– 아침에 펴놓고 한잔씩 하지.
– 얼마나 먹는데?
– 처음엔 소주 한병씩 마셨는데, 해독이 빨리 안되니까 맥주캔으로 바꿨어. 며칠간 안마셨더니 심심하더라구. 그러다 심심하면 책 한번씩 보고.
운길이가 장사꾼이 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걸까.
– 물어보는 사람들 있으면 재밌어. 그냥 안보내고 다른 얘기라도 하고. 오분 십분 때우고. 열사람이면 한 시간 가잖아. 캔 하나 마시는데 한 십분 가고. 또 잠 때리고.
– 누가 물건 집어가면 어쩔려구?
– 그래도 난 자버려.
– 시내에서 할 때도 술 마시냐?
– 시내에서도 마시는데, 단속 뜨고 이러니까 맘 놓고는 못마시지. 이런 데야 자리 옮기라고 하면 걷고 그냥 쉬면 되니까. 불법주차도 아니고. 시내에서도 간판 붙여놓으면 그냥 가지.
– 시내에는 자릿세 없냐?
– 있겠지. 잘 몰라. 그런데는 안 가거든.
– 그래도 단속은 있을 거 아냐?
– 총선이라 그런지 단속을 안하더라구. 인자 시작하겠지.
– 벌금은 얼마나 되는데?
– 남들 얘기가 한 3, 40만원 된다네? 걸리면 일주일 정도 번 거 날라가는 거지.
운길이는 되려 단속반한테 츄리닝을 팔았단다. 안면도 익힐 겸 깎아주는 척 했단다. 결국 똑같이 받았지만.
– 기업형 노점도 있다며?
– 아까 건빵장시도 작아서 그렇지, 남들 대줘. 많이 못 파는 사람들 있잖아, 저 사람한테 몇 포대씩 사가는 거야.
– 많이 남나?
– 한 천원씩 떼 먹는 거지 뭐. 그러니까 자기 노점 하면서 도매하는건데. 인제 크게 하면 남부럽지 않은 사장이지.
– 너도 그렇게 해야 돈 벌겠다 응?
– 안해. 난 그런 모험은 하고 싶지도 않고.
뜬금없이 물었다.
– 운길아, 네 꿈은 뭐냐?
– 꿈? 날마다 바뀌는데 그걸 어떻게 얘기해?
운길이다운 대답이다. 갑자기 한번도 본 적 없는 몽골 사내의 얼굴이 운길이 얼굴 위로 겹친다. 나는 요즘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만약 운길이가 되물었다면 아마도 없어, 하고 말했을 지 모를 일이다. 언제부터 그랬던걸까. 지금 난 꿈이 없다. 갑자기 서글퍼졌다.
부천에 들어설 무렵, 6시가 됐다. 운길아, 라디오 켜라. 신나는 행진곡과 함께 당선 예측 방송을 한다. 아나운서가 민주노동당 2명이라고 한다. 와.
순간 운길이와 내가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우리는 역곡 앞의 조그만 통닭 집 텔레비젼 앞에 진을 쳤다.
날마다 바뀌는 운길이의 꿈을 안주로 삼아, 노동당 국회의원의 꿈을 안주로 삼아 그렇게 우리는 술을 마셨다. 그 날 운길이가 번 2만 5천원을 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