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주택은행 노조원들

오랫동안 노조원으로 활동하였지만, 지금은 간부라 노조에서 탈퇴한 20년 은행원을 만나 말씀을 들었다. 정부를 신뢰할 수 없고, 실제 파업이 일어날지는 아직 미지수이며, 일어난다고 해도 짧은 시간 동안일 것이라는 생각을 들었다. 바쁜 시간에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고마웠지만, 현직 노조원이 아니라는 점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현재 노조에서 활동중인 분을 만나기 위해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7월 5일, 예고된 금융노조 파업 6일 전. 퍼슨웹은 파업을 앞둔 노조원의 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을지로 은행가를 향했다. 부실은행으로 찍힌 외환은행 건물로 들어섰다. 건물 1층 로비에는 파업을 준비하는 노조원들의 단식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노조원으로 활동하였지만, 지금은 간부라 노조에서 탈퇴한 20년 은행원을 만나 말씀을 들었다. 정부를 신뢰할 수 없고, 실제 파업이 일어날지는 아직 미지수이며, 일어난다고 해도 짧은 시간 동안일 것이라는 생각을 들었다.

 

바쁜 시간에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고마웠지만, 현직 노조원이 아니라는 점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현재 노조에서 활동중인 분을 만나기 위해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그러다가 이 분을 만났고, 실명을 밝히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인터뷰 허락을 받았다. 사진도 찍을 수 없었다. 대신 우리도 조건을 내걸었다.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이 사람은, 외환은행에 근무한 지 15년, 나이는 35, 이름은 盧組員, 물론 가명이다.

 

 

1. 의료 대란과 금융 대란

 

노조원(이하 노): 나의 솔직한 심정은 이렇다. 얼마 전 의약분업 문제로 의사들이 폐업을 했다. 의사들이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동원하고 그럴 법한 논리로 자신이 정당하다고 강변했지만, 결국은 뭔가? 내 밥그릇을 챙기겠다는 거 아닌가? 난 노조원이지만, 이번 은행 파업도 똑 같다고 본다. 다 밥그릇 싸움이다.

 

삼불이(이하 삼): 그래도 둘은 다르지! 현재 은행원들은 직장에서 쫓겨나면 생계를 위협받게 되니, 생존권 문제 아닌가? 의사들이야, 의권이네 행복권이네 하면서 떠들었지만, 이전보다 덜 벌거나 적게 버는 게 싫어서, 옷 벗겠다는 것인데, 둘은 같다고 하긴 어렵지 않나?

 

노: 물론 다르다고 우기면 다른 거지. 그래도 역시 난 ‘지 밥그릇 지키기’라는 점에서는 똑같다고 본다. 물론 의사들이 좀더 비겁하지. 지 밥그릇 챙기는데, 환자를 볼모로 삼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삼: 그거야 의사들 직업이 사람과 관련이 있어 그런 거고, 은행도 파업하면 그 여파가 엄청날 건데?

노: 하기야, 전산망 장악하면, 돈도 못 빼고, 난리 날 가능성이 높다.

 

삼: 당신 발언은 다소 냉소적으로 들린다. 이번 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노 : 물론 그건 아니다. 아마 나는 끝까지 버티는 쪽일 거다.

 

삼 : 아니? 그럼 다소 모순된 태돈데…? 혹시 노조 집행부나 금융노련에 불만이?

노 : 솔직히 그런 게 없는 건 아니다. 금융노조는 한국노총 소속인데 노총은 전반적으로 파업에 미온적인 거 같다. 이건 또 은행원들의 속성이기도 한데 은행원들은 자신이 노동자라는 인식이 약하다. 오직 근로자라 생각한다.

 

삼 : 의사 폐업이나 은행 파업이 매한가지라 한 말, 정말 그렇게 생각해서 한 말은 아니라고 이해해도 되나?

노 : ………

 

삼 : 얼마 전에 의사들 앞에선 설설 기던 정부가 롯데호텔 노동자들은 폭력으로 진압했는데, 은행 파업도 불법이니 그렇게 될 거 같나?

노 : 사태가 롯데처럼 되어 2-30명 깨지고 실려가면 분위기가 분명 달라질 거다. 아까도 말했지만 은행원들은 자기들이 노동자라 생각 안한다. 그런 자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지… 그래도 밥그릇 싸움은 밥그릇 싸움이지.


2. 98년의 파업, 그때 그 상처

 

삼: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하자. 정말 솔직한 판단을 듣고 싶은데, 11일에 은행 파업이 실제 일어날 것 같나?

노: 물론 내 개인적인 판단이기는 하지만, 난 아니라고 본다. 아마 10일 밤 늦게나 혹은 새벽에 ‘극적인 타결’입네 어쩌네 하면서 정리될 거다.

 

삼: 별로 파업 가능성이 높지 않다?

노: 난 안 믿어. 98년도 파업할 때도, 명동성당에서 밤 늦게까지 난리 치고 다 그랬는데 결국 새벽에 타협 보고 끝냈다. 당시 나도 명동성당에 있었다.

 

삼: 은행 구조조정 때 말인가?

노: 그렇다. 그후로 나 사실 노조를 안 믿는데, 뭐냐면, 사실 노동귀족이라는 거 그때 처음 느꼈다. 당시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이, 그 사건 있고 나서 금융노련 부위원장, 아니 사무총장인가, 어쨌든 그렇게 갔어. 외환은행 노조가 한 번도 그렇게 데모하고 한 적이 없었거든. 이전 노조위원장들은 남들 하면 따라가고 관두면 자기도 관두고 뭐 그런 식이었다. 그런데 98년 노조위원장은 끝까지 버티고 남았다. 아마 끝까지 남은 은행이 외환은행, 조흥은행이었는데, 합의 안 하고 강하게 버텼다.

 

삼: 마지막에 합의했다?

노: 최후로 합의했지. 제일 먼저 도망 간 게 제일은행이었다. 그때 문제가 된 은행들이 6개, 제일은행, 서울은행, 상업은행, 한일은행, 외환은행, 조흥은행이었는데, 제일은행이 이름 값 하겠다고 제일 먼저 도망가니, 이어서 서울은행 도망가고, 또 상업하고 한일은 합병한다고 하니까 또 도망가고, 그러니 외환하고 조흥이 버티다가 마지막에 합의하고 끝냈다.

 

삼: 그후엔?

노: 뻔하지. 외환은행이 33%, 조흥은행이 33% 짤리고. 먼저 도망간 제일은행은 27%, 그러니까 빨리 합의했으니까 외환이나 조흥보다 적게 짜르겠다고 한 거지. 외환이나 조흥은 33%니까 피해를 가장 많이 본 거고.

 

삼: 오래 버텼다고?

노: 그렇지. 금감위에 미움받아 찍힌 거지. 인원 감축할 때 조건을 완화시켜 주지 않은 거지. 근데 그 노조위원장은 33% 짤리게 한 게 뭐 자랑스럽다고, 파업 끝나고 나서 금융노련 간부로 옮기는가 말야?

 

삼: 일종의 영전이라고 생각한다?

노: 그 사람으로서는 그 싸움이 경력이 된 거지. 그 사람 서울대 영문과 나왔어. 내가 듣기로 집안이 다 운동권이래. 형제들도 사회운동, 노동운동 하고, 그래서 자신도 관심이 많고 자기도 그렇게 하고 싶어 한 듯해. 그런 면에서 그 사람의 열정이나 헌신성은 인정하는데, 그 끝이 안 좋았거든. 자기를 따라 오래 버텼고, 그래서 결국 33%나 짤려 나갔는데, 그때 하필 금융노조 간부로 옮겼으니, 영전하듯이 말야. 노조 활동에서 선명성을 보장받아 자신은 영전하고, 남은 노조원들은 더 많이 짤렸고.

 

삼: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이해할 수도 있지 않나?

노: 난 사석에서 그 사람 만나면, 개새끼라고 생각한다. 내 동료가 33% 짤린 덕택에 그렇게 되었으니. 난 그 사람의 처신이 잘못된 거라고 본다. 그 사람은 그 자리를 거절했어야지. 그 사람은 노조원들을 위했다기보다는 결국 정치를 하고 싶었던 거지. 난 그렇게 생각해.

 

삼: 어차피 정치성을 가져야 하는 거 아닌가?

노: 나 그 사람과 약간의 친분도 있었다. 술 자리를 같이 한 적도 많았고. 이전 위원장들하고는 다르더라고. 사람이 믿을 만하고. 이전 노조위원장은 거의 어용이나 다름 없었거든. 위원장을 맡으면 은행에서 다 뒤를 봐 주는 게 관례였다. 향후 출세를 보장해 줬다. 해외 근무 같은 거 시켜주고, 해외 근무도 좋은 데, 미국·캐나다·호주, 이렇게 3개국하고, 영국까지. 이 나라가 제일 좋거든요. 승진도 빨리 시켜주고. 늘 그랬다. 그 사람은 그걸 바라지도 않았다. 은행에서도 그 사람이 되는 데 반대가 심했고.  

삼: 음…..

 

 

3. 관치금융요? 그 최대수혜자는 은행!

 

 

삼: 이번 파업의 핵심은 ‘관치금융’ 철폐라고 보면 되나?

노: 관치금융이 문제라고 사람들이 주장하지. 그렇지만, 이 주장도 가만히 생각하면, 다소 웃기는 말이다. 정부나 관료들이 이 기업에 대출해 주고 저 기업을 돌봐주고,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게 관치금융인데, 정말 까놓고 말하면, 정부나 관료들이 시키는 대로 하면 그 대신에 분명히 얻는 것도 있었다. 관치금융 아래서 잘 먹고 잘 산 것도 사실 은행이다. 왜냐면, 해 달라는 대로 해 주면 다 돌아오는 게 있거든. 자리도 보장해 주고, 직원들 임금도 올려주고, 직원들이 시키는 대로 하니까 또 시키는 대로 잘 하게 하려니까 그렇게 된 거다.

 

은행이 상대적으로 다른 직종에 대해서 대접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근무 여건 좋고 복지시설이 잘 되어서 혜택 받았다. 그게 다 뭐냐면, 정부나 정치권에서 하자는 대로 하니까 결과적으로 생긴 것도 많았고… 대출해 주고 커미션 받아 먹고.. 은행장이 자기가 결정하기는 하지만, 대출 서류는 아래에서 올라와야 되잖아. 그러니까 올리라고 말해 놓고 서류 올린 아래 사람한테 떡고물 나눠주고, 좋은 자리 보장해 주고, 뒤 봐주고. 결국 주고받는 게 있으니까, 그렇게 되는 거다.

 

삼: 결국 은행도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노: 물론 다소 과장일 수는 있지만, 그 관치금융 덕택에 은행도 유리한 조건이나 혜택을 많이 누리며 지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제 내 밥그릇이 위태로우니까 ‘관치금융’ 문제를 들고 나오는데, 이거 어쩌면 자가당착적인 거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은행도 지금까지는 그런 문제 한 번도 반성하지 않다가 내 자리, 내 밥그릇이 위험하니까, 이제서야 그런 문제를 내세운 거다. 물론 관치금융 하면서 반대급부가 없었으면 모를까, 반대급부 있었거든.

 

삼: 반대급부라고 하지만, 그것도 은행의 소수들 이야기 아닌가? 이번에 정말 직장에서 ?i겨날지도 모른다고 불안해 하는 많은 사람들, 창구를 지키는 여직원이나 말단 직원들이 그러한 혜택을 제대로 누렸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나? 은행 내부에서도 반성이 필요하다는 말은 이해가 되나, 그 화살도 소수의 상층 간부들을 향해야 하는 거 아닌가?

노: 그래서, 내 말이 그거다. 괜히 관치금융이니 이런 자가당착적인 깃발 들지 말고, 그냥 내 밥그릇을 챙기겠다고 그냥 솔직하게 나서는 게 낫지 않냐 이 말이다.

 

삼: 그건 너무 지나친 거 아닌가? 정부나 국가기관이 또 여론을 교묘히 조작해서 몰아칠 가능성이 많은데, 그걸 막아내기 위한 명분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 않나? 실제 목표는 밥그릇이라 해도 말이다. 뻔한 현실을 너무 고지식하게 대응하는 거 아닌가?

노: 왜냐면, 일선 현장에서 일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거다. 여러 영역에서 일을 했고, 경력도 적지 않아 이제 어느 정도는 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당신들, 우리나라 은행장들의 골프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아나?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 은행장들의 평균 타수가 싱글이다.

 

삼: 싱글이라면, 9 오버파 미만이라는 말이지?

노: 그렇다. 골프 조금 아는 사람들이라면, 짐작할 수 있다. 이 정도 타수를 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지… 싱글을 치려면 1주일에 최소한 3-4번은 골프를 쳐야 된다. 지점장이라는 사람, 아침 9시에 출근해서 6시까지 일해야 하는 사람 아닌가? 그만큼 업자들이 상납을 많이 해 왔고, 상납의 대가로 대출도 잘 해 줬고, 그러면서 그 사람들이 일도 안 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다 정치적으로만 풀려고 했던 거고. 업자들하고 결탁해서 정치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으니 그런 거다. 이런 관행이 은행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데, 이런 과오를 은행 쪽에서 인정하지 않고, 관치금융만 내세운다, 이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삼: 그걸 인정하라고 하지만, 그 인정을 일반 은행원들에게 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일반 하급 은행원들이 뭐 그리 혜택을 누렸는가 말이다. 이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

노: 그러니까 순서가 틀렸다 이거지. 자기가 과오를 먼저 인정하고, 그런 다음에 관치금융이니 어쩌니 하고 나서야 한다 이 뜻이다. 그러고 나서, 최소한의 생존권을 이야기하고 ‘나도 먹고 살아야 한다. 그러니 이해 좀 해라!’ ,이러는 게 순서다 이 말이다.

 

삼: 그래도 그건 일부 이상의 간부들에게 적용될 말이지, 일반 은행원들이 무슨 이득을 보나?

노: 아니다. 이득을 본다. 그 관행에 적극 참여해서 인사 고과를 높게 받고, 간부가 먹은 돈 일부를 풀면 그걸 가지고 회식하고 룸싸롱 다니고, 그러면서 잘 먹고 잘 놀았다. 또 업자가 지점장 한테 100만원을 줬으면, 밑에 사람들한테 직접 돈을 주지는 못해도 다 불러서 회식시키고 한턱 내는 게 관행이기도 하다. 업자는 그 돈을 부동산 투기나 증권을 통해 메꾸고, 산업 현장에 투여될 돈이 따로 헛도는 거지. 또는 지나치게 가격을 책정해 이윤을 크게 남기고.

 

삼: 총체적 부실이다?

4. 파업 효과요? 의심스럽죠!

 

삼: 98년과 비교해서 이번 파업은 분위기가 어떤가?

노: 분위기? 완전히 갈아앉은 편이다. 파업 해? 그래, 그럼 해 봐, 이게 일반 은행원들의 태도라고 하는 편이 솔직하다. 한다고 하니까, 하는 가 보다 그런다.

 

삼: 바깥에 알려진 바 하고 좀 다른데? 예상 외의 답인데?

노: 98년에 한 번 당했으니.

 

삼: 98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말 열심히 나서서 싸웠나?

노: 그렇다. 그때는 대단했다. 몰라, 바깥에서 보기에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은행원들은 보수적이고 안정지향적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건 과격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98년에 내부적으로는 아주 뜨겁고 열성적이었다. 그때에 비하면 현재 파업은 동네 집회 정도로 바라보는 수준이다.

 

삼: 내 주위에 주택은행에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 말로는 주택은행의 열기는 뜨거운 편이라고 하던데?

노: 우리는 한 번 당했으니, 자포자기하는 심정에 가깝다. 이래도 별 수 없을 거라는 반응이 솔직한 심정이고, 그래서 열의가 없다.

 

삼: 외환은행은 별로 열의가 없고, 주택은행은 뜨겁고?

노: 그거야 주택은행은 처음 당하니까 그렇지.

 

삼: 그럼 반쯤은 최악의 상황을 각오를 하는 거야? 그럼 이번 파업으로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노: 말 잘했다. 반쯤은 각오를 하고 있다. 결국은 합병으로 가게 될 거다. 사람들 그건 다 알고 있다. 왜냐면, 은행원들 그 당위성은 솔직히 인정하는 편이거든.

 

삼: 바뀌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인정한다고?

노: 그렇다. 바뀌어야 한다는 건 인정하는 편이다. 다만, 그 당위성이 내 밥그릇과 곧장 연결되니까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일 뿐이다. 해야 한다는 건 안다. 다만, 내 밥그릇이 안 짤리고 할 수 있는 법은 없나, 이게 문제의 핵심이다.

 

삼: 근데 정부는 물론 말을 자주 바꾸기는 했지만, 밥그릇은 안 뺏을 테니 하자!, 이렇게 주장하는 거 아냐?

노: 말이야 그런데, 그 말을 우리는 믿을 수가 없는 거죠. 98년에 한 번 배신을 당했으니까.

 

삼: 얼마 전에, 금감위원장인가, 합병이 아니라 통합을 하겠다고 한 게 그런 맥락인가?

노: 그거 약간 말 장난 같지만, 실제 통합이 합병보다 강도가 더 높은 거다. 그 사람이 결국 실수한 건데, 노조측에서는 정부의 본심이 드러난 거다고 해석하지. 그러니 마구 공격하는 거고.

5. 파업 예상요? 거의 이렇게 될 겁니다!

 

삼: 그럼, 이런 질문은 어떤가? 금융 일선 현장에서 활약하는 은행원으로서, 재경부 장관이나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같은 정부 관료들에 대해서 솔직히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봐도 그 사람들, 말을 자주 바꾸는 편인 듯한데?

노: 경제 관료들, 관료 엘리트로 줄곧 대접받으면서, 또 스스로 최면 걸면서 살아온 사람들이고, 그렇게 수십 년 지내온 사람들이 다 자기 잘 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확신범 수준 아닌가? 남의 말 안 듣고, 독선이 강하고.. 그래서 난 별로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차라리 YS같이 모자라는 사람이 낫지, 전두환처럼 확신범들은 뭐 대책이 없는 거지. 경제 관료들도 다 그렇다고 봐.

 

 

삼: 그 말은, 결국 정부는 고집스레 자기 뜻대로 관철하려고 할 거고, 합병은 대세로 귀결될 거라고 보나?

노: 그렇게 믿고 있다.

 

 

삼: 그럼, 이번 파업은 어떻게 예상하나? 정부가 강하게 몰아부칠 수도 있다는 말인데? 더군다나 의사폐업에 끌려다녔다는 비난이 있는 터라 더 열악할 듯한데…

노: 끝까지 몰리는 상황이면, 외환이나 조흥은행은 아마 끝까지 버틸 가능성이 높다. 이 두 은행, 한빛까지 세 은행은 부실은행으로 취급당하고 있고, 합병되면 엄청난 감원이 예상되니까, 버티기는 할 것이다. 물론 공권력을 투입하면, 아마 대부분 도망갈 것이지만, 그래도 강경진압하지 않고 정부가 협상의 자세로 임하면 외환, 조흥, 한빛은행은 버틸 거다. 초반에 주택, 국민은행은 나가 떨질 것이고…

 

삼: 협상 여지가 있는 은행은 타협할 거고, 어차피 짤릴 거라고 믿는 쪽에선 강하게 나올 거라는 말인가?

노: 외환은행 같으면, 일단 합병하면 50% 정도의 감원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물론 정부는 지주회사제도로 하면, 우산 아래 여러 은행들을 모아 놓으니 감원도 없다고 꼬득이지만, 그거 장난 같은 소리지.

 

삼: 도저히 못 믿는다? 계속 말을 바꾸니까?

노: 그런 문제가 아니다. 이때까지 재경부나 금감위가 은행에 지시할 때, 무슨 문서를 남긴다거나 공적인 절차를 밟는 게 아니다. 그냥 전화로 한다. 결국 어떤 기구 장에게 전화로 지시하는 거지. 어떻게어떻게 하라고. 그 장은 시키는 대로 하는 거고, 안 하면 짜르고.. 그래 놓고 자기들은 그렇게 한 게 아니고 스스로 자율적으로 결정해서 한 거다, 이렇게 주장하겠지. 이때까지 정부는 늘 그렇게 해왔고. 지주회사라는 것도 꼭 그런 형식이지. 정부는 관여 안 하는 척 있고, 지주회사가 감원하면, 자기들이 알아서 한 거다, 정부가 시킨 게 아니라고 더 말하기 좋지. 눈 가리고 아웅이지.

 

삼: 일선 은행원들 눈에는 그런 수와 절차가 다 보인다?

노: 다 보이지. 사람들 다 아는 거지.

6. 은행원으로 살아간다는 것? 암담하다!

 

삼: 자, 그럼 그런 최악의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할 건데? 어떻게 마음을 먹고 있나?

노: 택시 운전이라도 한다, 1종 면허는 있으니. 헌데, 내가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스스로 못 믿겠어. 택시 운전할 만한 체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다른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최악의 상황에 대한 각오는 되어 있는데, 정말 그때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지는 나도 모르지. 사실 암담하다.   

 

삼: 이건 또 다른 질문인데, 만약 구조조정 혹은 합병이 없으면, 은행에 계속 다닐 생각이 있나?

노: 전혀. 예전에는 은행은 평생 직장, ‘첩밥통’이라 하면서 눌러앉을 생각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새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10%도 없다.

 

삼: 업종 전환하면 주로 뭘 하나?

노: 주로 먹는 장사지. 그래서 은행연합회에서 강권하다시피 한 게 있는데, 재무관리사 자격증을 따라는 거였다. 은행에서 교재비까지 지원해 주면서 권했다. 다른 사람 부동산이나 재산 관리, 상담하고 세금 상담해 주고 하는 뭐 그건 자격증이다. 많은 사람이 거기에 응했는데, 거의 3만 명인가 달려들었다. 결국 누가 돈 벌었나? 학습지 회사 말고는 없다. 도대체 한꺼번에 몇 만 명씩 나오는데 그게 무슨 돈벌이가 되겠나? 정부에서 책상머리에 앉아 내놓는 아이디어란 게 고작 그런 수준이다.

 

삼: 이번에 합병으로 인원 감축이 있다면, 일반 행원들이 타격이 클까 임원들이 클까?

노: 다 클 것이다. 그렇지만, 본점 부장급, 지점장급 이상의 임원은 거의 전멸할 거라고 본다.

 

삼: 그 사람들은 노조원도 아니라 파업에 동참하지는 않겠지만, 이번 사태에 꽤나 관심이 있을 법하고, 역시 엄청난 불안 속에 있을 듯한데?

노: 체념하고 있다. 어차피 짤린다. 그래서, 또 문제가 생기고 있다. 이거 어찌보면 웃지 못할 현상이다. 부장급 임원들은 가만히 앉아서 예금유치 안해, 대출 안해, 복지부동 자세로 지낸다. 대출 잘못해서 문제 생기면 퇴직금에서 까거든. 지금 기업들한테 자금이 안 도는 상황인데, 무시못할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거다. 지금 지점장이나 본점 부장들은 리스크율이 높은 대출은 절대 안 하려고 한다. 곧 짤릴지도 모르는 상황에 실수했다간 퇴직금을 날리는데, 누가 그런 짓을 하겠어. 현대나 삼성 정도 외에 안 믿는 거지. 현대도 잘 안 믿으려는데. 그러니 시중에 돈이 안 풀리는 거고.

 

삼: 은행에 돈이 없는 건 아니고?

노: 차고 넘치지.

 

삼: 이상한 상황이다?

노: 정부는 자금을 은행을 통해서 풀려고 하지. 은행더러 자금을 풀라, 대출을 왜 안 해주냐고 자꾸 압력을 넣는데, 이게 정말 웃긴 일이지. 한편으로는 부실 대출에 대해 계속 책임을 요구하면서, 또 자꾸 돈을 풀라고 하고.. 그러니 정부를 못 믿는 거지.

 

삼: 장시간 인터뷰 고맙다. 그런데, 당신처럼 생각하는 노조원이나 은행원이 많나?

노: 아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도 이런 생각, 같은 동료들에게는 못한다.

 

삼: 새롭고 특이한 말씀 많이 들었다. 아무쪼록 힘든 상황 잘 헤쳐나가길 빈다.